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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학생들도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긋지긋한 시험과 입시만 끝나면 자신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진짜 불행의 시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시작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수능을 마치고 지긋지긋한 독서실과 학원을 벗어난 뒤 나는 오히려 더욱 불행해졌다. 우선 대학이 그랬다. 재수까지 해서 간 대학이었다. 5세 때 한글을 스스로 깨치고 또래보다 똑똑한 나를 보며 우리 부모는 ‘혹시 이 애가 신동이 아닐까’ 하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 그 믿음이 서서히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부모는 계속해서 믿음을 놓지 않았다. 허나 부모의 기대는 점차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고 그러한 감정에 비례하여 나를 뒷바라지 하는데 들기 시작한 돈의 액수는 점점 커져갔다. 나의 부모와 내가 인생의 한 시절을 바쳐 쏟아 부은 결과는 ‘인서울’이라는 애매한 성적표였다. 더 이상 우리 부모는 내게 기댈게 없었고 나도 그랬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을 스펙으로 만회하기 위해 인턴과 공모전, 학점 관리에 온 힘을 쏟았다. 나는 방학에도 도서관에 나가 공부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성적도 우수했고 스펙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턴활동 중 만나는 명문대 생들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초라해졌다. 나는 대학 4년을 열정적으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조기 졸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대학, 애매한 과로 말미암아 취업도 애매하게 했다. 남들은 내게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입시에 다시 도전하여 두 번째 대학에 입학한 것은 사실 그래서였다. 대학에 다시 가고 취업도 다시 하고 싶었다. 이 둘을 제대로 하면 나도 웃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것이 내게는 교대였다. 나는 성실히, 열심히 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공부를 했고 교대에 합격을 했다. 자, 이제 나는 행복해져야했다. 임용 시험도 재수 없이 한 번에, 그것도 서울로 합격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불행했다. ‘대학 동기는 어떤 남편과 결혼해 어디에 신혼집을 차렸다더라, 누구는 차가 뭐라더라, 누구는 결혼기념일에 명품 백을 선물 받았다더라….’ SNS를 통해 펼쳐지는 지인들의 행복한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우울했고 좌절했다. 기껏 노력해서 나도 이젠 꿀리지 않게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또 나보다 멀리 달아나 있었다. 나는 억울했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것일까. 행복을 찾기까지 꼬박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한 번도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행복한 사회의 출발을 교육에 두어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는 한 번도 학교에서 나 자신을 살피도록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우리는 대학이라는 목표를 두고 끊임없이 상대와 나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며 달려가야만 한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우리는 직업이든 부든 명예든 어떤 식으로든 나의 위치를 상대와 가늠하며 때로는 안도하고 그러나 대부분은 좌절을 경험하며 결국엔 불행해진다. 만약 학교에서 좀 더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면. 내가 나라는 존재에 확신을 갖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해 주었더라면. 그랬다면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학생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인 이야기만을 해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무작정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도 않다. 공부를 잘하면 좋고 돈도 많으면 좋고 명예도 있으면 좋고 좋은 직업도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나를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의 좋은 점을 굳게 신뢰하고 내가 꾸리는 삶에 대한 자신이 있으며 나와 나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것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내가 될 때 서로의 삶을 저울질하며 비교하지 않을 수 있고 그로인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책을 읽으며 내가 특히 집중했던 부분은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소외되는 학생 없이 모두가 자신 안에 있는 강한 힘을 발견하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길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책 속의 열 명의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학교는 정녕 소수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우울감에 빠지고 자꾸만 타인을 좇느라 그들의 인생을 허비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우리 아이들이 결코 그 길을 가지 않도록 안내할 것이다. 그들이 강한 내면의 힘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응원하며 옆에서 함께 달려주며 살아가고 싶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아이, 나의 교실에서 소외되었을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허리를 굽혀 사과한다. 그들을 지금 이 순간 너무도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간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뜨거운 포옹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알고 있다. 더 이상 불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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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딸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축하를 건넨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오는 딸아이 만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모조리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5살 때부터 그랬다. 3년을 이어지다 보니 마치 나도 딸아이와 같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껴 하루를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있었던 일도 모조리 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이야기한다. 미술학원, 교회 유치부 선생님들도 우리 집의 대소사를 거의 알고 있다. 나와 아내는 이런 딸아이의 모습을 좋아한다. 지지하고 독려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자기 이야기에 반응해 주는 것에 기뻐한다. 요즘 가장 신나있다. 지금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반응을 가장 잘 해주기 때문이다. 이전 유치원 담임선생님이나 미술학원, 교회 선생님도 반응을 잘 해주셨지만 지금 담임선생님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며 빈도도 잦다.
“종종 잊어버리죠. 아이들은 언제나 꼭 이렇게 느껴야 합니다. ‘우리 선생님에게 나는 중요한 존재구나!’, ‘우리 반에서, 우리 집에서, 우리 사회에서 나는 중요한 존재구나!’ 이것이야말로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요.” (p.156), <선생님, 엄마, 친구 메테 페테르센>
선생님의 반응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집에서 부모가 해주는 그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스무 명이 넘는 아이를 맡고 계신 선생님으로부터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하 인사를 받는 일은 드문 일이다. 선생님의 관심과 반응이 부모와 아이를 춤추게 한다.
사실, 내년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살고 있는 동네에 우리와 같은 젊은 부부가 많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많다. 5분만 차를 타고 가면 군 소재지의 초등학교가 있다. 학급당 학생 수가 동네 초등학교의 3분의 1일이다. 얼마 전, 군 소재지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우리 동네에 와서 학교 홍보를 했다. 몇 년 전, 폐교를 앞둔 학교에 뜻있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진학시키면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아내를 통해 전해 들은 학교의 모습에 마음이 확 쏠렸다.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수업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하지만 그 초등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불법을 저질러야 한다. 위장전입이 필수니까. 부모가 마음을 정한 후 동네 이장님을 만나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고 한다. 홍보를 나온 그 학교 학부모는 웃으며 “아이가 나중에 고위 공직자가 선출직 공무원이 되지 않는다면 문제없어요.”라고 했다는데, 웃을 일인가 싶다. 우리 부부가 뭐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아니지만, 불법을 저질러 가면서 아이를 진학시켜야 하는지 의문이다.
교사가 핵심이다.. 나와 아내 둘 다 학창시절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다. 하지만 딸아이의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적어도 내게 ‘교사’와 ‘선생님’이 주는 어감의 차이는 크다. 나는 학창시절 ‘선생님’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직업 ‘교사’만 만났었다. 위장전입을 통해 군 소재지 초등학교에 간다고 해서 딸아이가 지금 유치원에서 만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 내가 만났었던 직업‘교사’를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책 「삶을 위한 수업」은 물론 오연호 선생님의 이전 책들을 통해서 덴마크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모습에 환상을 지나 절망에 이르기도 했다. 당장 덴마크에 이민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 딸아이는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특별한 기회가 없는 한 이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코로나 펜더믹 하에서 한국의 방역체계와 국민의 의식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K팝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절망적이다.
“에프터스콜레는 덴마크에만 있는 일종의 ‘인생설계학교’이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쉬었다 가는 기숙학교다.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는 1년 동안 국어, 영어, 수학 등 기본 과목만 가르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해보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 (p.192), <그냥 춤춰라 마리아네 스코루트>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은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는 진짜 환상적인 시스템이다.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선생님과 1년을 오롯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이후의 인생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책에 소개된 ‘꿈틀리인생학교’를 본 후,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여러 기사를 찾아봤다. 덴마크 정도의 거리감은 아니지만 그대로 아직 먼일이다. 덴마크처럼 공교육 자체 시스템이 아니기에 지방에 사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국가와 교육 당국에서 정해 놓은 일률적인 시스템과는 다른 대안을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책을 통해서만 ‘우와, 진짜 부럽다. 가고 싶다.’라는 감탄사에 머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대안학교나 대안적 교육시스템이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국가와 교육 당국이 주도하지 않는 한 그렇다. 학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앞서 언급한바, 동네에 젊은 부부가 많이 산다. 소위 ‘별난’엄마들이 많다. 6살 7살 아이들이 벌써부터 학원을 대여섯 군데나 다니기 일쑤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수시로 전화를 걸고 교육청·구청에 민원 넣는 것도 예사다. 오직 내 ‘새끼’를 위해 모든 구차함과 뻔뻔함을 감수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새끼’를 위한 일이라 여긴다. 머리가 아프다.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 엄마, 친구”가 되어준 덴마크의 메테 페테르센 선생님 정도는 아닐지라도 아이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결혼기념일을 기억해 축하까지 건네는 ‘선생님’은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찬가지로 공교육 시스템과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갖고 온전히 아이를 맡기는 덴마크의 학부모 정도는 아닐지라도 아이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학부모가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 담임선생님의 성함을 알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성함 정도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심에서 출발해야 신뢰에 다다를 수 있다.
딸아이의 초등학교 진학 여부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시간은 없는데, 고민만 쌓인다. 이 책을 다시 아내와 함께 읽으며 결정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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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교사 10명이 이뤄나가는 교육 방식을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과연 다른 것인가에 대한 것보다는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비슷함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들이 가지는 자율성이 우리 교실에는 주어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낌으로써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의 크기를 생각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꼭 그만큼 아이들은 자라난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좀더 자율성이 주어질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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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읽는 내내 그랬다. '그룬트비'의 후예들이 만들어가는 '덴마크 교실'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의 삭막한 교실과는 천지 차이. 나는 덴마크와 한국의 정반대인 학교 모습에 몹시 부끄러웠다. 우리의 아이들도 덴마크처럼 행복한 학교에서 배우며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육, 절망의 한복판에서 아무리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도 오늘의 교육이 민주시민을 키워내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현재의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는 염치없다. 경쟁을 교리로 삼는 교육이 바뀌지 않는 이상 행복은 불가능하다. 불안하고 불행한 삶들이 늘어갈수록 사회는 점점 더 피폐해질 것이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병폐와 사회 문제들도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교육'이다.
책 <삶을 위한 수업>의 저자인 덴마크 저널리스트 마르쿠스 베른센은 2014년부터 한국 생활을 해왔다. 에너지 넘치고 따뜻한 분위기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덴마크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교육시스템 만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 아이를 한국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며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16쪽)고 했다. 나는 세 명의 아이를 둔 학부모다. (좀 과장된 표현으로) 대한민국 교육에 세 아이를 맡기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학교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편이다. 그러나 나 역시 베른센처럼 한국의 교육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쇳말이 아니라 여전히 '문제 그 자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망적이다. 교육이 '희망의 엔진'이 아닌 '절망의 수레바퀴'라는 것에 대한민국의 비극이 있다. 단서를 찾고 싶었다. 한국의 교육도 덴마크처럼 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었다. <삶을 위한 수업>은 덴마크 교육에 대한 일방적인 예찬이라기보다는 한국 교육에 대한 성찰적 문제 제기에 가깝다. 수많은 절망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교육 현장에서 길을 찾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처럼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은 분명히 있다고,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 덴마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빨리 포기하지는 말라고. 교실의 '행복 서클' 가능한 이유 저자가 만난 덴마크의 교사들은 뚜렷한 교육적 소신을 갖고 아이들과 함께 자율적인 배움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참여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덴마크의 교실에서 배움의 주체는 철저히 학생 자신이다.
"만약 학생들이 '우리 교실의 모든 권력은 선생님에게만 있어'라고 느낀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참여가 어떤 의미인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학생들이 어떤 의견을 말해도 항상 교사가 최종 결정을 한다면, 학생들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신이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이런 경험은 뭔가를 하고자 하는 동기를 죽입니다...(중략)...이런 상황이야말로 교사인 제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환경에서는 학생들이 새로운 탐험을 주저하고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도전 정신을 잃고 단지 안정만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배움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호기심과 동기를 유지할 수 없어요."(38~39쪽, 헤닝 아프셀리우스, 고등학교 교사) 이 교사는 "학생들이 뭔가를 배우고 있음을 느낄 때, 그래서 그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느낄 때 행복하다"(46쪽)고 했다. 이러한 순간들이 쌓이면 교사는 행복해지고 그 기운을 받아 아이들은 더 성장하는 '행복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배움'이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학생들 스스로 지식을 획득하고 세상을 알아나가며 성장하는 과정이 곧 '배움'이다. '배운다'는 것을 이렇게 규정한다면 '시험'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학생마다 배움의 과정과 성장의 속도가 다를 것이기에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많은 헌신적인 교사들도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선생님들도 덴마크 교사들처럼 '배움의 본질'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사들은 많이 억눌려 있다. 교사의 자율성보다는 학교-교육청 조직의 위계가 더 중요시되는 문화다. 경쟁에 순응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한국의 학교 문화에서 덴마크의 교실과 같은 '행복 서클'이 작동할 수 있을까. 한국과 달리 덴마크는 '학교법'에 따라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공통교육목표는 정해져 있으나, 수업방식은 전적으로 교사의 결정이다. 수업 방식에 대한 교사의 자율성은 누구도 침해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 교장도, 학부모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이러한 존중과 신뢰의 문화가 바탕을 이루고 있으므로 한국처럼 '교권 하락'이 이슈가 될 일도 없다. 행복한 교육, 행복한 사회 교육을 바꾸려는 모든 혁신적인 노력들을 빨아들여 버리는 입시경쟁의 블랙홀이 버티고 있는 이상 학교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불평등과 차별이 해소되어야 제대로 된 교육, 행복한 학교도 꿈꿀 수 있다. 교육은 한국사회 정치사회적 맥락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학교도 사회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입시경쟁체제는 배움의 본질과 학교의 존재 이유를 변질시킨다. 'in 서울'의 그럴듯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왜곡된 신념은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았다. 대화할 시간, 느낄 시간, 놀 시간, 쉴 시간, 잠잘 시간 등을 빼앗아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경쟁으로 내몰았다. 시간을 빼앗았다는 것은 권리를 빼앗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권리를 빼앗긴 자리에 '삶'은 없다. 스트레스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자기 자신를 괴롭히면 우울증, 자살이 되고 남을 괴롭히면 학교폭력이나 범죄가 된다.
"학생들은 조만간 학교 밖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삶이 과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죠....(중략)...진짜 무서운 게 뭘까요?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어느날 아침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요? 그동안 부모, 학교, 사회가 만들어 준 길을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면 조만간 힘든 시기가 찾아올 겁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스스로 자기 인생을 관장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연습은 일찍 할수록 좋습니다."(100~101쪽, 킴 륀베크, 초중등학교 교사) 진짜 교육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내는 역량을 키워내는 것이다. 학교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의 '오늘' 뿐만 아니라 '미래'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학교를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물음과 일맥상통한다. 오늘의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이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교육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이 당연한 이치는 '행복한 사회가 행복한 아이들을 길러낸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덴마크 교사가 충고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그들을 '젊은 어른'으로 바라봐야 한다"고.(133쪽) 학생을 한 명의 시민으로 대접하고 존중해야 그들도 세계의 시민들을 존중할 것이다.
"내가 노력하면 세상을 멋지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학생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극이 되어 공부든 일이든 더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는 아이를 길러낸다는 것은 그저 한두개의 과목을 잘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131쪽, 안데르츠 슐츠, 고등학교 교사) 책에 소개된 덴마크 교사들의 경험과 고민, 창의적인 노력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 한국적 현실과는 엄연히 다른 조건의 덴마크 교실을 그대로 베껴올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교실에서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존의 학교를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도 필요하다. 학교를 혁신하는 것,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모두 교사들만의 몫도 아니다. 이 책은 '질문'이다. '숙제'다. 덴마크 교사들이 묻고 있다. "진짜 배움은, 진짜 학교는 무엇이어야 하냐"고. 교사들만이 아니라 학부모, 교육행정관료 등 대한민국 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답해야 한다. 이 질문 앞에서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받고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면 아직은 희망적이다. 질문을 품은 이들이 교육을 바꿔나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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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 학교에 갑니다
우리가 유럽의 교육과 복지제도에서 희망을 찾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현실에서는 결핍되어 있는 것들을 보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백년대계 교육이라고 하면서, 교육과정은 시기를 타며 바뀌고 입시제도는 더욱 복잡해졌으며, 정작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선생도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무용수처럼 곤란한 상태에 놓여있다.
수능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3일이던가? 이 정도로 아둔하게 수능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우리 집에는 '대'수능생이 없기 때문이다. 학령기의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어보니, 다가 올 수능날 12년 공부를 시험 한 번으로 결과를 내야 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ㅣ>와 <ㅏ>를 아직도 헷갈려하는 우리 집 초등학교 1학년이 더 걱정인 현실이다.
유치원은 고작 하고,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를 통해서 처음으로 공교육 내에서 격차를 절감하게 되었다. <한글도, 기본 학습도 학교에서 차근차근히 배웁니다>라는 교육청의 안내 공문에도 불구하고, 학기가 끝나자 아이는 성적표 비슷한 것을 집으로 가져왔으며, 거기엔 중(상-중-하)이라는 평가가 수학 평가란에 기재되어 있었다. 다소 심란한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말없이 저녁을 먹었다. (한국 교육에선 국, 영, 사, 과를 다 잘해도 수학을 못하면 힘을 못쓴다 라고 말한다.) <이래서 다들 미리미리 학습지하고, 누리과정 찾아가고, 영어학원 가고 그러는 거구나... 숲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 맨날 숲에서 놀던 아이가 어느 세월에 그걸 다 따라잡는데...>
마음이 심란할 때는 책에서 답을 찾는다. 책에는 덴마크만의 교육철학과 <학생들은 왜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과 여기에 답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지!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
책 속의 선생님들이 주로 상대하는 학생의 연령은 보통 8학년들(우리나라 중2-3)로, 향후 고교 진학에 대한 고민을 하는 또래들이었지만, 그게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기에 한분 한분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수학을 왜 배우는지 먼저 알아야지, 그럼,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누가 처음부터 영어를 잘해. 왜 배우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하는 자문자답을 하면서 말이다.
덴마크의 교육의 차별점은, 1. 소외 없는 교실 만들기 (학생 개개인이 "나도 우리 교실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를 느끼게 한다) 2. 시험 점수 없는 평가방법(시험은 적을수록 좋고, 시험에 대한 분석은 많을수록 좋다) 3. 구체적인 직업군을 만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 수업에 편성되어 있다는 것(학교에 가기 싫다면, 그 주간은 개별 학생이 지역사회와 연계해 현장학습 수업도 가능하다) 4. 민주주의 교육(공동체 사회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5. 본인들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1년간의 갭이어(gap year)도 있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진로 상담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언을 얻는다)
대학시절 여행을 하며 만났던 유럽 출신 친구들에게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혹은 직업학교 )전 갭이어(gap year) 기간이 있어 이 시기에 여행을 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덴마크에는 이 같은 과정을 '에프터스콜레'에서 수행하고 있다. 덴마크에만 있는 '인생설계 학교'인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쉬었다 가는 학교로 여기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능하다.
진로 고민 없이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고, 100여 군데의 회사에 지원서를 낸 후 뽑힌 곳에 들어가 일을 했기에, 30이 넘은 나는 아직도 진로라는 것에 뚜렷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치열한 고민과 자기 탐색을 거쳐서 도달해야하는 진로, 직업, 꿈에 우리는 좀처럼 시간을 내어 고민하지 못한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다.
우리나라는 중등과정 중에 '자유학기제'라는 시간을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학교 시험이 없기에 선행 진도를 빼기 좋은 기간으로 더욱더 사교육 시장이 치열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좋은 취지의 제도도 사회 전체의 의식변화가 없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음을 , 사교육 문제를 타파하지 않는 한은 당장 풀기 어려운 현실의 문제들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교육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루소의 '에밀'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교육의 목적은 도덕적 자유, 즉 자유와 규율, 의지의 독립성과 사회정의를 양립시킬 수 있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 교육내용의 선택도 지식의 체계에 대신하여 생활의 원리가 중시된다. 이는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다룬 5장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며, 실제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과도 같은 내용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는 아이를 길러낸다는 것은 그저 한두 개의 교과목을 잘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지만, 지금 한국학교의 경우에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치열해지는 선행학습과 공과(功課) 쌓기, 이를 교두보 삼아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포트폴리오 만들기를 위한 자격 취득의 장이 된 것만 같아 씁쓸하다.
호우르키에르 선생님은 가장 나쁜 교육이 '정답을 맞히기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분명 '세상을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라는 목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우리의 학교 생활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16년에서 끝나지만,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다시금 1학년 아이의 학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개학으로 시작된 학교생활은 좀처럼 풀릴 생각을 않는다. 사실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해보니 그럭저럭 새로운 시대의 적합한 교육방법이며 나쁘지 않았다.(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온라인 학습법으로 재편되는 기점이 지금이 아닐까) 그렇지만 우리가 학교를 생각할 때 무조건적인 지식 습득만을 고려할 것인가? 아니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아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규칙과 질서가 형성된 곳이며, 내 기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기분은 어떤지, 상대방도 이런 방식을 좋아하는지, 공동체 생활에서 필요한 덕목들을 차근히 경험하며 배워나가는 곳이다. 선생님과 학생 간의 관계 속에서 위계질서를 경험하고, 학교 안에서의 문제들을 때로는 스스로, 때로는 반 친구들이 힘을 합쳐 해결해나가야 하는 작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 2회 등교를 하면서도 학교를 다녀와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말하며 학교생활을 복기하는 아이를 보면 학교가 아이 인생의 어떤 의미인지는 미처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삶을 위한 수업'을 읽으며, 좀 더 희망적으로 미래를, 우리 학교를 바라본다. 뜻있는 선생님과 그를 뒷받침 해주는 교육제도, 그리고 점수로 등급화하지 않은 평가시스템, 꿈과 직업이 미래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에서 살아 숨 쉬는 진로와 직업체험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그리고 소외됨 없이 모두가 스스로 소중한 한 명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함양하게 되는 그런 학교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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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은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대해 10명의 선생님들의 수업 철학과 수업 방식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생생하고 깊이 있게 소개하는 책이다. 덴마크는 '행복 지수 세계 1위의 나라'라고 한다. 이 책은 행복한 수업, 행복한 교실, 행복한 학교가 어떻게 행복한 사회,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기획하고 편역한 오연호님이 만난 덴마크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11가지 수업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첫번 째, 학생 이전에 인간이다. 공부 이전에 관계가 중요하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친밀감과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두번 째, 수업 진도를 나가기 전에 '왜'를 묻는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 왜 우리는 교실에 앉아 있는가? 왜 영어와 수학과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세번 째, 학생을 경쟁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다. 좋은 경쟁을 유도한다. 나쁜 경쟁이 나만을 위한 것이라면 좋은 경쟁은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네번 째, 상위 10퍼센트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뒤처진 학생들도 끝까지 챙긴다. 학생 모두에게 크고 작은 성취감을 안겨주면서 주눅이 들지 않게 한다. 다섯번 째, 학생 간의 배려와 협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배움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와 협력할 때 더 잘 이뤄진다고 믿는다.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듣기'다. 여섯번 째,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권력을 분점한다. 교사의 자율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학생의 자율권도 보장한다. 학생을 '젊은 어른'으로 대접한다. 비판 정신을 길러준다. 일곱번 째, 학생들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시킨다. 자기 주도적 인생을 살 수 있게 한다. 동시에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올바른 자세를 가르친다. 여덟번 째, 시험을 위한 수업이 아니라 '삶을 위한 수업'을 지향한다. 실생활과 연관된 수업을 한다. 호기심이 최고의 교과서다. 교과서를 버리고 학생들의 질문에 더 주목해야 한다. 아홉번 째, 인생은 통합적이다. 학교 수업도 그래야 한다. 그러러면 교사가 통합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정치와 음악, 영어와 과학을 통합적으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열번 째, 교실은 입시 전쟁터가 아니라 '웰빙(well-being)'을 체험하는 생활 공동체다. 학교와 교실은 집같이 편안해야 하고 왕따와 폭력이 없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 열한번 째,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학교 운영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학창 시절에 교사와의 관계가 좋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교과목에 대한 관심도 적어졌었던 것을 기억한다.
덴마크 교사의 자율성과 유연한 결정권은 바로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에 대해 교사가 그때그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스칸디나비아 나라의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 학생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진정한 배움은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대화에서 나온다." "어떤 결정도 교실 안에 있는 선생님과 학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힘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개입해서도 안 되고, 지역의 교육정책 입안자나 교장이 개입해서도 안 되며, 오직 선생님과 학생들이 결정해야 한다."
덴마크 교사들에게 주어진 교사의 자율성과 유연한 결정권이 많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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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교육철학이란 스쳐가는 찰나에 불현듯 생길수도 있다. 나의 교육철학은 스쳐지나가며 듣던 라디오에서 생성이 되기도 했는데 그때 라디오에서 나온 내용은 시험을 못 본 아이를 혼냈는데 아이는 자신이 시험을 못봐서 얼마나 낙담하고 속상할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많은 공감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시험을 못봐도 혼내지 않고 위로해주어야지 다짐한것이 무색하게 어느 덧 부모가 되어 내 아이는 나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욕심만 무럭무럭 키우고 있던 차에 적절한 책읽기였다. 지금 나의 마음을 재정립하기에 알맞은 책이었고 아이에게 정답맞추기식 교육이 아닌 올바른 삶에 대하여 알아갈 수 있는 교육을 하리라 다시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 준 책이다. |
| 책 <삶을 위한 수업> (마르쿠스 베른센 저, 오연호 역) 후기 //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어 구매한 책이었는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교육 방식이나 수업 형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교육 분야를 진로로 희망하거나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배움이 있는 귀한 책이다이미 독일의 교실과 학생, 교사에 대한 책을 감명깊게 읽어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교육도 큰 호기심이 있었다 동료 선생님들이 읽고 각자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 빌려 읽은 후에 소장하고 싶어 구매해서 다시읽는 중이다 나를 되돌아보면서 배움이 무엇이고 무엇이 필요하고 정말 어떤것이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배움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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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다닐때 솔직히 몇몇 수업이 너무나도 지루했다 학원에서 배운 수업을 다시 하는데다 그저 선생님이 그저 교과서만 읽는 꽉 막힌 수업은 내가 졸게 만들기 딱 좋았다. 또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에 매일매일이 경쟁을 하던 이 학교라는 공간은 답답하기도 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수업도 있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매 순간을 웃고 참여하게 하던 수업들도 존재했다, 이러한 수업들은 이 덴마크의 교사들의 수업과 비슷한점이 있었다 바로 그저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시키며 수업을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한 수업이었다. 솔직히 읽으면 읽을수록 덴마크의 수업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수업은 그저 성적을 위한 경쟁으로 모든게 다 이루어진 반면에 덴마크의 교사들은 말한다 학생들의 배려와 협력을 중요히 여기고 실생활과 연관된 수업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잘 적응 할수 있도록 스스로 선택할수 있도록 계속 계속 도와준다. 내 생각이지만 이러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는 덴마크 학생들은 매시간이 즐겁고 편하게 학교에서 공부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그러므로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협력또한 너무나도 중요하다. 뭔가 우리의 학교는 성적 경쟁이 가장 중요하고 협력은 성적경쟁에 비해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다 . 이책은 이야기 한다 그리고 기회를 준다 우리 교육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변해가야 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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