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문턱에서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관습적으로 심장박동의 정지, 수의근 운동의 정지, 호흡의 정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왔다. 이렇게 보면 ‘죽음’은 간단한 현상이지만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나 죽음 이후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불안한 사건의 배경 때문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그러니까 불안한 일들 뒤에 있는, 그 안에 내재된 원초적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육체적인 일차적 실존성에 위협을 느낀다. (따라서) 나를 두렵게 하는 대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원초적 불안을 극복1)”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있어야만 ‘죽음’에 대한 원초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다고 그때까지 우리 모두 두려워하면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그런 삶이어야 한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먼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접근이 개인의 개별적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개별적인 동시에, 최후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서는 고유의 접근 방법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를 띠기에 그렇다.2)”
저자는 17년간 1,000여 명의 임종을 관찰하고, 그 과정을 면밀히 연구해서 “죽기 직전의 사람은 의식과 무의식의 전이와 인지 전환을 경험한다. 죽음이 임박하면 자아뿐만 아니라 자명했던 지각, 주체적이고 자신과 연관돼 있던 지각 능력도 후퇴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후퇴한 자아 역시 우리가 반응하고 본능에 충실한 것처럼 어떤 것에 반응하는 패턴을 보인다. 또 다른 세계, 다른 의식 상태, 다른 의미 경험, 그리고 다른 경험 방식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은 세계관이나 신앙과는 무관하다. 인지 전환은 존재, 관계, 존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변하게 한다.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다.3)”라고 말한다. 즉, ‘개별적 존재’로서의 자아가 죽음의 과정을 거쳐 이전의 자기와는 전혀 다른 타자, 즉 ‘포괄적 존재’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죽음의 과정’을 3단계로 나눈다. “내가 이해한 임종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나는 통과 이전(의식과 무의식의 내적 경계 전), 통과 순간(이 경계를 넘는 순간), 그리고 통과 이후(경계를 통과한 이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통과 이후란 ‘내세’가 아닌, 여전히 이승에 머물러 있지만 이승에서 가장 멀리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4)”
이런 죽음의 각 단계마다 사람들은 독특한 심리 상태를 경험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달라진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란
“죽음 전의 삶의 여정은 현실적이고 자아로부터 적극적으로 시작되는 반면, 급격한 변화에 접어든 (임종 과정에서의) 자아는 수동적이다. 죽음이 점점 다가오면서 임종 과정에서의 변화를 겪게 될 자아는 무언가 생각하고, 이해하고, 기대하고, 주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엄청난 한계에 직면한다.5)” 따라서 이 과정을 고통스럽게 지내지 않으려면, 환자의 가족이나 의료진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죽음이라는 “험난한 협곡을 통행할 때 또 다른 의문의 고통이 생겨나고 끝내 환자는 반(半)의식 상태에 빠지고 만다. 즉 고통이 고통을 낳는다(통행 고통).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환자가 고통을 이기는 용기를 갖도록 지식을 전해야 한다. 즉 경계를 통과하는 모든 고정에서 환자는 존재의 전이를 향해 나아가지만 통과 이후에는 고통에 변화가 있을 거라는 것을 환자에게 전해야 한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이 경계를 통과한 이후에는) 포괄적인 평온한 상태(통합 평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환자가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바로 위로와 격려이다.6)”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임종 준비란 죽어가는 사람의 내적 요구를 들어주고 그 이후에 그가 편안히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일7)”이라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임종 준비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의 마지막 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존엄한 죽음은 안락사(安樂死)8)처럼 단지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락사는 죽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회피하는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면, ‘죽음’ 그 자체를 수용함으로써 삶을 마무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의 삶에 있어서 주인공은 당신이고, 당신 이외에 그 어느 누구도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면서 자신이 존중 받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테니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모니카 렌츠,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전진만 옮김, (책세상, 2017), p. 92 2) 모니카 렌츠, 앞의 책, p. 38 3) 모니카 렌츠, 앞의 책, p. 30 4) 모니카 렌츠, 앞의 책, p. 44 5) 모니카 렌츠, 앞의 책, pp. 42~43 6) 모니카 렌츠, 앞의 책, pp. 78~79 7) 모니카 렌츠, 앞의 책, p. 211 8) 안락사에는 치사량의
약물이나 독극물 등을 투여하여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적극적 안락사, 의사의 과실치사(간접적 안락사), 연명치료의 중단에 따른 소극적 안락사/수동적 자살,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을 직접 처방 받아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력(助力) 자살이 있다.
|
|
죽음은 두렵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정말 많다. 죽음은 피할 수 없기에
무섭고, 그 이후가 없기에(적어도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인 내게는 그렇다), 또는 그 이후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신을 믿는, 내세를 믿는 이들도 그
이후를 상상만 하지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대체로 고통을 동반하기에 두렵다. 단 한번만 겪는 과정, 또는 결과이기에 어찌 진행되는지 알 수 없기에 그렇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지나치게 많다.
그렇다면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
물음은 정말로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은 나의 죽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내 곁 사람의 죽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 질문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다를 바 없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당신은 죽음을 경험해
봤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벗어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묻고 또 묻는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러니 이에 대해
가장 가까운 답을 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죽음을 가장 많이
접해본 사람, 그 죽음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해본 사람. 모니카 렌츠 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수백 명의
임종을 관찰하였고, 그 과정을 면밀히 연구했다. 그렇기에
비록 죽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음에도 죽음에 대해 말할 수는 있다.
죽음, 또는 임종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했다(이는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이미 접했었다.). 모니카 렌츠는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해석해서 임종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사람이 어떤 심리적 상태를 거치는가를, 통과
이전(의식과 무의식의 내적 경계 전), 통과 순간(이 경계를 넘는 순간), 그리고 통과 이후(경계를 통과한 이후). 각 단계마다 사람들은 독특한 심리 상태를 경험한다고
하고 있는데, 또한 그 단계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는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상태를 정리하고 있는데, 불안, 대결, 운명의 거부와 수용, 가족과의 화해, 마지막 성숙, 죽음 앞에서의 겸손’이
그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렇다. 이는 퀴블러 로스의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좀더 현실적인 심리로 보인다.
예전부터 나는 죽음은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했었고, 비록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상황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서로 다른 개별적이라
했었다. 죽음은 보편적이면서 고유한 것이다. 제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래도 죽음이
우리 앞에 다가왔을 때 조금이라도 참조할 만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다. 모니카 렌츠의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바로 그 하나임에 분명하다.
|
|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만, 가급적이면 우아하게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저자가 스위스 장크트갈렌 종합병원에서 정신종양학의사로 17년간 근무하면서, 임종을 앞둔 환자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같은 심리적 증상을 진단, 치료, 관리하면서 경험한 죽음을 담았습니다.
저자는 ‘임종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과 지식을 공개하여 가족을 위로하고 의사와 관련자들을 고무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아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삶에 대한 미련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죽음이란 ‘성공한 삶과의 이별’, ‘본인이 자신의 죽음에 동의하는 경우’, ‘고통 없이 눈을 감는 것’, 혹은 ‘자신의 죽음을 또렷이 마주할 수 있을 때’ 등으로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죽음은 마치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열어야 하는 현관문과 같다(31쪽)’라고 정의합니다. 죽음은 사후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의 초기단계라는 의미가 읽힙니다. 그그리하여 임종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통과이전(의식과 무의식의 내적 경계선), 둘째, 통과 순간(이 경계를 넘는 순간), 셋째, 통과이후(경계를 통과한 이후) 등입니다. 한편 통과이후를 내세가 아닌 여전히 이승에 머물러 있지만, 이승에서 가장 멀리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하는 것을 보면 죽음 이후의 세계의 존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임사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죽음의 과정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경험하는지는 의학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어떤 감정이 들었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죽음을 앞두고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불안에 휩싸인 분들이나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받는 분들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필요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은 곧 이별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진했던 것들, 특히 남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특히 갈등이 있던 가족들과 화해하는 과정은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있는 사람 모두에게 심리적인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임종준비란 죽어가는 사람의 내적 요구를 들어주고 그 이후에 그가 편안히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도 소리를 듣는다,(117쪽)’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 역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하는 분에게 작별하는 순간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라는 권유를 듣기도 했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신경생물학적 검사를 통하여 임종의 순간에 대뇌의 활동을 기록해본 바에 따른 연구결과에서도 도출된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죽은 분으로부터 확인되지는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하여 그들이 좇고 있는 것은 궁극적, 신적인 완성을 예감할 수 있고 추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만, 죽음은 무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같은 맥락일 수도 있겠습니다.
부록에 적은 것처럼 이 책은 10년간 1,000명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수행한 ‘죽음 전이’에 관한 연구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며, 게다가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학문적인 서술을 담고 있어 딱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공부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샤갈은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무정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죽음을 향해 유정하게 갈 수는 없는 것일까. 17년간 임종을 앞둔 환자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같은 심리적 증상을 진단, 치료, 관리하는 의사로 일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목도했던 모니카 렌츠의『어떻게 죽음 마주할 것인가』를 샤갈이 읽으면 ‘삶은 죽음 향해 가는 무정한, 혹은 유정한 과정’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미지의 것에 근접하여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룬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최소 한 번 이상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다. 그때 그들의 인지 능력 또한 변화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죽음 맞기 전에 이미 시공간에서, ‘자아’와 ‘타자’에서, 그리고 주체와 주위 환경에서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감각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러고는 완전히 다른 체험의 세계로 침잠한다. 수많은 임사체험들은 이와 같은 지각 변화뿐만 아니라 특정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의 의식이 있음을 증언한다. 여기서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공간의 한계가 없음을, 육체 안에 한정되지 않음을 가리킨다. 또한 ‘무한’이란 시간의 차원과 한계를 벗어남을 의미한다. 이런 임사체험들은 대부분 평온하면서 심지어 거룩하기까지 한 현상을 설명하고 사랑과 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p. 9~ 10 서문
흔히 죽음 이후를 종교와 결부하고는 하는데, 모니카 렌츠는 “이 책은 피안의 세계에 대한 믿음을 의도적으로 깔고 있지 않을 뿐더러 신앙 교리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논의를 올바르게 이끌어가고자 한다. 임사체험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의 관찰 경험과 연구를 통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죽음 자체가 신비라는 것도 안다. 다만 우리가 죽음의 문제를 생사를 넘나들었던 생존자들에게 의존해 논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p. 10~ 11), 라고 말한다. 이 책의 부제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임종학 강의’다. 마치 강의를 들려주듯, 어찌 보면 논문에 가깝기도 하지만, 1장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일어나는 일들, 2장 죽음의 문턱을 건너다, 3장 존재를 뒤흔드는 불안의 경험, 4장 죽어가는 사람은 듣고 있다, 5장 죽어가는 자의 언어, 6장 무엇이 죽음을 가로막고 인도하는가, 7장 존엄한 죽음과 그에 동반한 문제들에 대해 말한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죽어가는 사람도 듣고 있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도 소리를 듣는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혼수상태에 빠져 아무런 반응이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데도 소리를 듣는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소리나 음악을 통해 말을 전할 수 있다. 신경 생물학에 따르면 음악은 고통, 불안을 느끼거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음악은 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매체이다. 우리는 그림과 상징을 무의식의 기운이 형태, 형식과 빛깔로 표현된 것으로 이해한다. 반면에 음악이라는 매개체는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꿈 의식보다 더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p. 117
모니카 렌츠는 환자에게 음악처럼 들리도록 해야 말이 전달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임종 준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의지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존엄은 공허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존엄은 지위나 직업이나 업적에서 파생된 명예와 같은 외부적인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또한 존엄은 (수치심까지 유발하는) 고통과 반대되는 특성이다. -p. 222
나이가 들수록 죽음과 마주하는 날이 많아진다. 물론 마지막에는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모니카 렌츠는 “임종 준비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인도하는 도움의 손길이다.”(p. 212), 라고 말한다.『어떻게 죽음 마주할 것인가』는 그 도움의 손길을 알려주는 책이다. 읽기가 쉽지 않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
|
"내가 이해한 임종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죽음의 문턱에 선 인간은 세 단계의 상태 변화를 거친다. 이과정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된다. 나는 통과 이전(의식과 무의식의 내적 경계 전), 통과 순간(이 경계를 넘는 순간), 그리고 통과 이후(경계를 통과한 이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익숙하지 않다. 낯설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주제로 올려놓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면 불편하거나, 금기시 되거나, 혹은 알 수 없어서 모호하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를 앞에 두고 자연스레 책의 내용이 죽음을 마주하기 전에 생의 정리 단계에 대한 조언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주변에 친절하라던가, 용서를 구하거나 하라던가, 금전문제를 정리하라는 등의 내용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나니 내가 떠올린 것들은 엄밀히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마주하기 이전의 생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죽음을 마주한다고 떠올리면서도 그 앞까지 도달하지 못한 단계에서 머물러버린 것이다. 어쩌면 무지이고, 혹은 회피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종잡을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은 죽음을 '소유'할 수도, '만들어'낼 수도, 준비할 수도 없다. 죽음은 개별적으로 일어나고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17년간 임종 준비를 해왔지만 늘 불안했다. 죽음을 긍정하고 인정하도록 하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부당한 요구를 해올지를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성서 본문에 등장하는 천사가 여러 차례 말한다. 천사는 이승과 저승 두 세계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해주는 전령이자 경계에 서 있는 상징적 존재이다. 이 존재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넌지시 일러준다. 우리가 어떤 영역과 관계되어 있다고, 그 영역에는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경험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죽음을 앞둔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지거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근원적인 공포감에 대해서 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겪게되는 신체적, 정신적, 감각적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면은 있지만, 그 근원적인 공포나 두려움은 상쇄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수긍하고 인정하도록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었다. 이유는 다름아니라 저자 역시 17년간 임종 준비를 해왔어도 그것을 준비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어 늘 불안했다는 고백 때문이었다. 때문에 때때로 죽음을 떠올리고 불안해하거나 하는 일이 과민한 불안 증세인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 공감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나,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환자들의 행동 양상에 대해 알게 되는 점들이 많았다. 다만 일부 내용에서는 다소 종교적인 관점으로 죽음을 받아드리도록 서술된 면이 있어서 크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죽음은 이별이다. 죽음은 삶의 단절이고 결코 좋은 것이 아니며 최종적이고 일회적이다. 임종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은 절박함을 느낀다. 이는 가족 간의 화해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모든 것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문턱을 넘는 과정에 맞춰진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한층 더 심한 강요와 압박, 인간관계의 충돌, 뒤끝이 찜찜한 관계 단절과 쉬고픈 욕구가 느닷없이 밀려온다."
성인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인의 죽음을 경험해보았을거라 생각된다. 특히 가족과 같은 가까운 인물의 죽음은 망자 뿐 아니라 남은 이들에게도 숙제를 남긴다. 죽음의 과정, 망자의 사후까지도 죽음을 함께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이별의 과정에서 오는 절박함은 상호적인 것이고 때로는 길게 그 상흔을 남기기도 하는데 이 양자적인 면도 함께 깊이있게 다뤄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분명히 새로이 깨달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애매하게도 이것을 어떤 식으로 삶 속에 녹여낼지는 막막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살피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면서,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혼란과 두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저 단순히 참고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미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삶의 자연스런 과정 중 하나인 죽음에 대해 우리의 삶을 준비하고 계획하듯이 한번쯤은 떠올려보고 주변의 죽음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모니카 렌츠의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진실로 죽음의 순간을 눈 앞에 둔 환자들을 직접 마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임종학 강의'를 담아놓았다. 이 책에 담긴 다년간에 걸친 임종의 실 사례들과 그에 비롯한 죽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는 죽음과 죽음의 과정, 순간들을 한 발 더 다가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준다. |
|
죽음은 가장 큰 실존적 문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숙명이지만, 죽음은 개별적이고 그 이후의 세계는 알 길이 없다. 실제로 인간의 많은 불안과 행동의 동기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환자의 죽음을 다루는 임종학 강의다. 임종 과정은 어떤 단계를 거치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겪는 원초적 불안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가족과 의료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한다. 저자 모니카 렌츠는 정신병리학, 신학, 철학 박사로 다소 생소한 정신종양학 의사로 재직중이다. 정신종양학이란 암을 의료적 차원을 넘어 심리적, 사회적, 행태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암환자의 심리적 지지치료, 호스피스 서비스를 포괄한다. 책은 저자가 종합병원 병동에서 17년간 근무하며 1,000여 명에 달하는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고 경험한 연구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의 과정을 설명할 때 퀴블러 로스의 5단계를 인용한다. 죽음을 앞둔 인간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관점은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은 다루지 않고, 당사자가 죽음을 수용하는 내적인 여정만을 보여주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임종 과정을 특이하게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넘나드는 상태로 이해한다. 크게 세 단계인, 통과 이전(의식과 무의식의 내적 경계 전), 통과 순간(이 경계를 넘는 순간), 통과 이후(경계를 통과한 이후)로 나눈다. 예컨대, 시한부 환자가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쉽다.
통과 이전 단계는 인간의 '몰락'이 심화되는 시기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아의 정체성과 희망을 잃어버린다. 이 시기는 최고의 고통완화 의학과 간호가 필요하고, 존엄성의 측면에서 의연하게 대처하도록 유도한다. 통과 순간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는 경우로,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환자가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통과 이후는 죽어가던 사람이 평온을 찾는 단계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아의 상태에서 보다 자유롭고 본질적인 상태에 자연스럽게 접어든다. 죽음은 개별적인 탓에 이러한 단계는 공식적이지 않고, 드물게 통과 순간에서 임종을 맞이하거나 여러 번 교대로 진행되는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죽음 현상을 다루기 위한 위의 관점은 지극히 실존적이고 독특하다. 환자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는 동안 원초적 불안과 누미노제를 경험한다. 누미노제(Numinose)란 인간이 신적인 존재를 만날 때 나타나는 종교적 경험으로, 그로 인한 전율적인 두려움, 신비로운 경외심 등을 일컫는다. 임종을 앞둔 환자는 위의 단계마다 와해되고 조각된 언어를 사용하지만 영적이고 신비한 상징적인 체험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적인 존재, 혹은 환영을 묘사하거나, 빛과 어둠의 대결, 천사와 악마가 대결이 벌어진다고 호소를 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임사체험, 즉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살아온 사람이 저승사자를 봤다는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모니카 렌츠 박사는 이러한 환자의 영적 체험을 적절히 도와주는 것도 호스피스의 중요한 과제로 언급한다. 예컨대, 환자의 체험에 알맞는 종교적 의례를 치뤄주거나, 직접적으로 "천사가 올 때까지 당신은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천사 미카엘이 당신을 집어삼키는 용을 물리치기 위해 곧 나타날 거라며 격려하는 식이다. 임종 치료를 위해 구스타프 융의 무의식적 상징이나 신학적 차원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는 죽음이다. 존엄사 찬성이 아니다. 인간의 내적 가치를 지키고, 책임감을 환기시키며, 칸트식의 정언적 존엄을 존중하는 태도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자기중심적인 자아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마지막 성숙으로 심리적 이행을 하는데, 이는 퀴블러 로스의 5단계 과정과 흡사한 면이 있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저자 모니카 렌츠 박사의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죽음을 실존적으로 이해하고, 임종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환자의 원초적 불안과 영적 체험까지 다룬 점은 독특하다. 책에서 나온 다양한 사례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스캇 펙 박사의 <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에서 존엄사 반대 논리로 퀴블러 로스의 5단계 과정에서 겪는 인간의 영적 성숙을 들었는데, 모니카 박사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반면에, 저자의 영적인 가치관과 도덕주의적 관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다. 일본은 벌써 사회적으로 임종 치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고 한다. '어디서 죽을 것인가'가 중요한 의제로 거론되고, 재택 요양 등 다양한 대안이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보낼 수 있는 두터운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치료, 정신종양학과 임종학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국가적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
|
죽음의 관한 이야기는 언제부터이가 서슴치 않게 책에 등장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것은 아닌데 인간의 생명이 끊어진다는 그 자체만으로 무서움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듯이 마지막 생을 마무리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알려면 최후의 순간을 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 읽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무거운 마음을 두고 읽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죽음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인정을 하고, 이제는 100세 시대가 되면서 죽음이 삶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저자는 심리치료사로 임종을 앞둔 환자를 17년간 치료하며 관리를 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죽음을 앞둔 사람 그리고 가족들에게 조언(?)으로 죽음을 마주 할 수 있게 했다.
책의 내용은 직접 마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람의 심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단순히, 치료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 내면에 더 깊이 들어가 죽음을 마주한 이들의 정신 상태를 알려주며 왜 그들이 그 순간까지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알려준다. 더 나아가 죽음을 앞둔 자만이 아닌 가족이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호상(好喪)이라는 단어가 있다. 누군가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고 다른 이는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을 만난다. 저자는 두 번째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통이 아닌 편안하게 마지막 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들의 몫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절대 받아 들 일 수 없는 현실...그런데, 이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꿈 때문이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욕심이냐 아니냐를 떠나 인간이기에 당연하다.
또한 가족들 역시 임종을 앞둔 이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함께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은 바로 가족이다. 떠나 보내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절실히 알고 있기에 그러면서도 상황이 힘들기에 본인들의 마음이 흐트러진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예민해지고 특히,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하지만 모르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접하게 된다. 이 부분은 심리로 풀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꿈이나 환상으로 보는 것은 심리적인 상태, 불안한 현재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과정들을 차례차례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인간의 생이 '죽음'이라는 단어로 마무리 된다는 표현 보다 더 나아가 이 '죽음'을 세세하게 풀어 놓은 거이 바로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다. |
|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경험한다. 영생을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막연하게 생각한다. 언젠가는 죽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 언제가 될지 어떤 모습일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건강한 준비도 해 볼 수 없고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터부시 되는 금기어와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여기 그런 죽음에 관해 면밀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 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는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떻게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가 의아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시한부의 마지막 길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그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감정변화와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들을 가장 잘 지켜 볼 수 있다. 사람이 잘 죽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그것이었다. 스스로 인간답게 죽겠다고 말하는 그들. 하지만 인격적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의 내용은 다소 철학적인 느낌을 준다. 의식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들의 생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의 자세와 감정.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잘 그려져 있었다. 누구나 맞는 죽음이기에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과 평안의 시간 그리고 우리가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사후의 과정을 아주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치 내가 죽음에 이를 때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느낌을 준다. 죽음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경험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무런 준비도 예비도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죽는 것일까. 우리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와 그 안에서 나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이 책은 권유하고 있는 듯 했다. 삶의 경계에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정의 골이 숨어 있을 것이다.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게 될 이 경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어떻게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 인간의 삶에 있어서 동전의 양면같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나는 오랫동안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피해왔다. 무엇이 무서웠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글자 자체를 마주 하는 것 조차 무섭기만 하다. 누군가의 부고 소식이 들리면 마음이 덜컥 내려 앉기도 하고, 될 수 있으면 필연적으로 마주 할 수 밖에 없는 이 주제를 저 멀리 우주 밖으로 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다고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의연하게 혹은 쉬이 대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마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그저 '죽음'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스위스의 장크트갈렌 종합병원의 정신종양학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모니카 렌츠의 임종학 강의다. 17년간 1000여명의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 보면서 의사로서 느꼈던 감정과 그들이 겪었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떠나야 할 사람과 떠나보낼 이들의 감정적인 추이와 그들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과 간병인이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쓰여져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그들이 편안하게 가고자 하는 길을 돕지만 그 것이 의식과 무의식 속에 그들이 평온의 길을 인도하고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존엄은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다. - P.52 더불어 이 책은 의식과 무의식, 불안과 평온, 존엄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는 학술서적과 같이 설명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완연하게 인간의 죽음에 대해 크게 와닿지 않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들이 겪는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당황하지 않고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마주하기 힘든 어려운 이야기다. 불안이란 무엇인가? 원형적인 형태의 불안은 흔하게 나타난다. 불안은 육체적 반응, 즉 떨림, 경련, 식은땀, 오한과 같은 달갑지 않은 반응으로 나타나며 우리를 붙잡아놓고 야금야금 침식해 들어오는 감정이다. - p.101 고통 속에서 혹은 잠을 자듯 영면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시간들을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지켜보는 과정 또한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저자인 모니카 렌츠는 이 주제를 연구한 학자이자 의사이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의 끝에 선 그들의 연구에 있어 피상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와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잘하면서 여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 또한 생각해 볼 주제이기도 하다. 임사체험이나 자기 부정, 분노와 절망으로 보내는 많은 이들을 위한 하나의 메세지이자 가족과 의사 모두가 진지하게 고찰해야 할 문제이기에 두렵고도 두려운 주제이지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이 어려운 주제를 일반인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각주와 이론에 가까운 설명만 계속해서 읽다보니 임종학 강의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반드시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발걸음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것이 나만의 현상인지 아아니면 사회적인 풍조에 의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끝을 조망하는 일은 여전히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심리가 공존하게 된다. 아직은 먼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을 조망하는 일 보다는 살아가는 일에 더 아둥바둥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의 끝에서 서 있을 때 점점 멀어져 가는 삶의 끝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대로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만 남는다. 실질적인 도움이 그려진 책이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죽음'에 대해 문을 열어놓고 깊이 통찰해 보지 않아 이 책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천천히 이 문제에 대해서 저자의 말대로 천천히 인식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과정 또한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죽음이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긍정에 순응하는 것이다. - p.178 |
|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모니카 렌츠 지음 | 전진만 옮김 [책세상]
‘죽음’에 대하여
‘죽음’이란 주제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맞이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운명일 것이다. ‘사랑’과 ‘죽음’은 아마도 인간의 인지능력이 여타의 동물과 달리 창발되어 드러난 이후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함께하는 주제가 아닐까한다. ‘사랑’은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논했던 주제인 반면, ‘죽음’은 어쩐지 우리가 회피하고 더 막연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죽음’은 그 본연의 실체를 모르기에 더욱 공포스러운 생명체의 운명이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의 저자 모니카 렌츠는 스위스 동북부에 위치한 장크트갈렌St. Gallen 종합병원의 정신종양학 의사로서, 그리고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음악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심층 심리학자로서 활동하는 죽음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17년 간 1000여 명의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을 지켜보고, 경험한 점들을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 ‘죽음’에 대해 갖게 되는 공포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의 실체에 대해 모르는 것은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우리의 죽음이 지극히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몽테뉴의 에세이 형식을 닮은 빌헬름 슈미트의 철학서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서도 ‘죽음’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죽음은 솔직함의 극단적 지점이며, 더 이상 회피를 용납하지 않는 진리의 순간이다.”라고 하였다. 누구나 피할길 없는 이 자명한 운명은 지극히 개인적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마주해야하는 대상이다. ‘안락사’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는 바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 모니카 렌츠는 서문에서 ‘안락사’에 대한 개념을 여러 가지 유사 개념들과 함께 구분해 놓고 있다. 생명유지가 무의미한 상황에서 생명 연장을 위한 조치들을 포기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여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거나 거두는 ‘적극적 안락사’, 그리고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을 직접 처방받아 환자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력 자살’ 행위도 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문화적 맥락에서 ‘안락사’는 더 논의를 꺼내기 쉽지 않은 주제다. 나아가 내 가족 중 한 명이 ‘안락사’를 이야기 한다면 더욱 힘겨운 주제가 될 것이다. 현재에도 특별한 시대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안락사’는 금기시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안락사’는 금기시되는 단어라고 어느 교수로부터 들었던 적이 있다. 바로 나치가 권력을 잡던 시기에 아우슈비츠와 같은 집단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일’이 ‘안락사’라는 단어와 결부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 나치의 광기어린 지도층에게나 ‘안락사’라고 말할 뿐,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수용되어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고려와는 전혀 무관한 표현이었다. 이처럼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은 ‘안락사’를 언급하기도 하며 저자가 말하려던 의도는 무엇보다 ‘존엄’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여타의 동물과 다른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인간의 마지막 모습에 ‘존엄’이란 존재할 수 있나? 저자는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도 자문한다. 저자가 기존의 죽음을 다룬 사람들과 다른 점은 아마도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의 관점에서 ‘죽음’을 고려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일 듯하다. 따라서 저자에 따르면 일반적인 인지과정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임종환자의 ‘존엄’은 보다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책의 여러 곳에서 꾸준히 ‘존엄’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저자는 심지어 다시 환기하자면 죽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일어나는 실존 형식의 하나로서, 죽음을 17년 간 관찰해온 저자의 ‘죽음’에 대한 경험을 나도 조금 얻어갈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죽음의 의사’라고 불리기도 하였던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연구와 업적은 저자의 선배 세대로서 ‘죽음’이란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하는지에 대해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 모니카 렌츠는 선배 연구자 퀴블러 로스의 업적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언급함과 동시에 한계점을 언급하고 있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순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다만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앗다는 확진을 받고 나서 쇼크, 상실, 비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내적인 여정만을 묘사한다.”(42면) 곧 퀴블러 로스의 견해는 임종 환자의 죽음에 대한 수용-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하며, 저자 자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이해를 하기위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 모니카 렌츠는 죽음의 과정은 크게 3가지 다른 양상으로 구분된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임종 과정은 이 다른 상태 사이를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전이 현상’으로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죽음의 과정 3단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 이전의 단계(통과 이전), 이 경계를 통과하는 순간, 그리고 경계의 통과 이후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경계 이전의 단계에서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우리의 자아가 소멸되어간다고 한다. 이 때 경계 통과 이전의 경직된 상태는 경계를 통과하며 이러한 상태가 이완되는 과정을 수반한다고 한다. 또한 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기점으로 임종 환자의 시∙공간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됨을 강조한다. 따라서 임종환자의 인지 경험은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임종 환자는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전의 자기와 전혀 다른 타자가 되어 죽는다’고 한다. 죽음의 과정은 통제가 불가능하고 지극히 개인적이므로 결코 완전한 이해에 다다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와 같은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닌 이상, 자연적인 죽음에는 큰 틀로서의 진행방식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일부만이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들이 파악될 것이다.
모니카는 죽음의 각 단계에 대한 연구와 소개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추구한다. 곧 죽음의 각 단계에서 ‘존엄’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임종환자의 가족으로서 그리고 전문가인 의사로서 환자를 어떻게 돌보아야하는지를 저자는 되묻고 또 고민한다. 모니카가 잊지 않고 당부하는 점은 임종 과정이 환자 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한가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존엄’이라고 하는 개념이 초기 근대의 계몽주의적인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대인들이 ‘죽음’으로부터 소외된 이후, 우리는 ‘전문가'로서 의사의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필요’를 전문가인 의사와 간호사에게 위탁함으로써, 과거 우리 선조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임종과정을 지켜보고, 후손들에게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서 전달되던 ‘죽음’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일반인들로부터 분리된 상황을 초래했다. 결국, 일종의 계몽주의적 산물로서 ‘죽음’은 ‘전문가’들의 지식과 돌봄에 대한 경험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우리 선조들 보다 앞에서 언급한 ‘존엄’의 의미가 더욱 가벼워진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 저자는 분명히 삶과 죽음의 경계 통과 이후의 모습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없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죽음’의 연구에 있어서의 한계를 인정한다. 죽음의 실체에 대해 완전히 이해가 가진 않고, 또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지만, 모두에게 ‘반드시’ 일어나게될 실존의 한 형식으로서 ‘죽음’에 대해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 깨닫는 경험이었다. 죽음에 대해 좀더 알게 된 것이 반갑고 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곳곳에서 저자가 기독교적 해석을 가미한 점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점은 있지만, ‘죽음’의 실체를 이해하기위한 노력과 각 죽음의 단계에서 진지하게 되묻는 ‘존엄’의 의미 추구는 공감을 많이 하게 된다. 오히려 저자가 소개하는 칸트의 ‘존엄’의 의미는 우리의 경험과 무관하게 ‘인간이기에 존엄을 갖는다’는 정언적 선언이기에 모호하고 공감을 하기 힘든 점이 있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금기시하는 사회’라고 서경식 교수가 쓴 글을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난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가족들에 의해 둘러싸여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병원 시설에서 첨단 장비에 연결되어 생명 활동의 신호가 수치로 모니터링 되는 상태로 명을 이어가다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맞는 죽음은 금기시 된다. 모니카 렌츠는 오늘날 터부시되는 것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닌, ‘죽음의 고통’이라고 보다 명확히 지적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죽음을 회피하게 된 현상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를 좀더 신랄하게 비판해본다면, 나는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죽음’도 아웃소싱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표현해보겠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일부를 회피하는 데서 생기는 소외현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바꾸어 말하면, 이런 상황은 ‘죽음’이 우리 삶의 필요충분조건이자 우리 삶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정보 내지는 조건처럼 인지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데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한다. 그 가운데는 현대 사회의 병폐에 기인하는 점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같다.
책을 덮으며 모니카 렌츠가 자문한 것처럼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고민해본다. 누구나 죽는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죽음은 너무나 개별적이기에 죽음 앞에 ‘좋은’이란 수식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죽음’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선배 세대에 비해 ‘죽음’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있음을 느낀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는 점점 더 희귀해진다. 죽음은 생명을 가진 개체의 삶의 완성이기에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