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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 이상의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 <행복의 기원>에 의하면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치자. 그들은 어떠한 이유든 간에 인간을 좋아해서 우리 인류를 번성하고 오래 살도록 해주고 싶었다. 수십만 년의 여러 가지 시도 끝에 그들은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한 유인책을 찾아냈는데, 그게 바로 '행복감'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번식과 관계된 행위와 오래 살아남도록 하는 행위를 할 때마다 행복한 느낌을 갖도록 해서 인간이 지속적으로 그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화론으로 본 행복의 정체다. 진화론의 렌즈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바라보면 거의 모든 인간의 행위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이성을 향해 과감히 돌진하는 것은 인간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할 때마다 행복감이라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영양가 높은 과일을 찾아 나서고 아름다운 이성에 열렬히 구애한다. 반대로 인간이 더러운 것과 낯선 것을 피하고, 위험을 두려워하고, 질병과 상처에 고통을 느끼는 것도 진화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존에 방해가 되는 것에는 불쾌하고 두렵고 고통을 느끼게 함으로써 이를 피하도록 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의도가 숨겨있다고 할 수 있겠다. <행복의 기원>에서 서은국은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은 다르다고 말한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행복은 인간의 의식과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본능에 보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감정과 본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의미 있는 삶이 가치 있고, 좋은 삶일 수는 있지만, 행복한 삶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에서도 의미 있는 삶과 행복을 구분한다. 저자 댄 에리얼리가 책의 입구에 배치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의미와 목적의 부재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행복이 아닌 의미를 찾는 능력이 필요하다.' 확정적으로 단언하지는 않지만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에 우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에서는 삶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꼈다. 댄 에리얼리는 행복감을 얻는 진화 유래 행동, 즉 사랑을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서부터 좀 넓게 보면 돈을 벌고, 물질적 욕망을 채우는 행위들이 인간을 한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1차적 욕망에서 비롯된 생존과 번식에 연결된 쾌락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선택에 의해 성공적으로 진화한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개와 고양이도 사랑을 나누고 음식을 먹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에게만 부여되는 행복감과 비슷한 감정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과제나 목표에 몰입했을 때의 느낌과 그것을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 그리고 나 아닌 다른 더 큰 존재에 기여하거나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드는 좋은 느낌들은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다. 이런 감정들은 행복감과 꼭 같지는 않지만 그에 이웃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북돋운다.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일종의 고양감은 이성이 훨씬 더 깊게 개입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행복감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몰디브 야자수 아래서 모히또를 마시며 한평생 일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고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실제 인간은 무조건 많이 갖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는다.(그런 인간 종류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가진 것을 조금 나누어서 전혀 모르는 타인을 돕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도 하고, 더 큰 뜻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적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인간은 1차원적인 생물학적 행복감만을 쫓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댄 에리얼리의 말에 기대면, '자기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대한 목적의식', '의미와 연대감을 찾는 일이 힘들수록' 그 결과에 따른 만족감을 크게 느낀다. 그렇다면 진화적 이득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의미 추구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존이나 번식과 상관이 없거나 오히려 불리한 행동을 하는 근원적인 이유 말이다 나는 의미 추구에서의 만족감도 넓게 보면 진화적 이득에서 파생했다고 생각한다. <행복의 기원>에서도 행복감은 사회성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집단을 구성하여 동료와 함께 있을 때 생존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뇌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이성을 사용하는 능력이 고도화되어 본성을 이해하고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메타인지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괜찮은 삶이 무엇인지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인간은 생명체 중 아마도 유일하게 진화적 유불리와 상관없이 존재 자체를 긍정하게 된 종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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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일을 하는 순간에는 그 일의 '본질적인 즐거움'에 집중을 하게 된다. 허나 같은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을 두고 계획을 세울 때는 쉬이 보수나 결과물 같은 외적인 동기요인에 더 집중을하게될수있는데, 이렇게 앞서서 외적인 요인에만 집중하고 본질적 동기를 간과해버리게 된다면 자신의 의욕을 북돋는 요인이나, 의욕을 저해하는 요인에 대해서는 정확한 갈피를 잡지 못한채 혼란에 빠질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린 그저 자신의 욕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일을하며 필요하다 생각되어지는 동기,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거듭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분명 누구나 다 해봤을 고민이고, 여전히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얘기이다 싶은데.. 책에서 소개되는 여러 예제들을 통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