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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느슨한 사회, 빽빽한 사회라는 두 개의 구분으로 사회를 나눠서 본다. 국가적 차이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 싱가폴이 대표적인 빽빽한 사회, 껌씹다 걸리면 벌금 내는.. 의외인 것은 이스라엘이 엄청 느슨한 사회. 역사가 길지 않고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어서 그렇다는데, 여하튼 덕분에 여기는 엄청난 창의적 벤쳐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느슨한 사회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 시대와 같이 빡빡한 사회규범을 다 같이 지키는 것이 필요할 때에는 느슨한 시스템은 독이 되고 전염과 전파를 통제하기 어렵다. 빡빡한 곳은 조금 불합리한 것도 잘 참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목표를 밀고 나가고, 집단적 목표가 개인에게 잘 전해지고 순응도가 높다. 그런데, 내가 재미있게 본 점은 노동환경과 사회문화적 계층이다. 단순노동, 육체노동,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는 일은 규범이 중요하다. 단체작업이고 상대적으로 위험하다. 시간을 엄수해야하고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함께 하니 누가 게으름을 피워도 실수해도 안된다.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 더욱이 저임금이기에 조금 실수해서 내가 놀거나 다치면 고스란히 그 피해는 개인에게 오고, 조금 손해를 보는게 아니라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하층 계급 사람들이 같은 국가에서도 빡빡한 규범을 갖는다고 저자는 연구결과로 소개한다. 하층민들이 생각하는 사회는 위험한 곳이다. 어린 시절부터 직장 전체에서 전반적으로 강한 규칙, 엄한 처벌, 많은 감시, 적은 선택지를 받을 확률이 높았다. 더 빡빡하고 용인되는 행동의 폭이 좁았다. 그리고 사회가 더 빡빡해지기를 바라는 비율도 높다. 그래서 자식들도 엄하게 처벌한다. 집안의 규율을 자기 직장에서 그랬듯이 엄격히 잘 지켜주기를 바란다. 부정적인 일에 엄하게 처벌을 한다. 고졸이하 학력자가 대졸이상 학력자에 비해 체벌 비율이 3배높았다. 반면 상류층은 널럴하다. 느슨하다. 실패해도 생존에 위협이 없다. 그러므로 느슨한 세계관과 규범을 갖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생겨도 안전망이 있으므로 자식에게도 탐험하라고, 모험하라고 부추긴다.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고 리버럴하다. 규범을 잘 지키지 않는다. 좋은 차를 타는 사람들이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비율이 높은 이유로도 설명한다. 예의범절도 잘 지키지 않고, 소소한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르는 비율도 높다. 주사위를 던져 큰 숫자가 나올수록 돈을 더 받는다고 하자, 거짓말로 보고하는 비율이 상위계층이 더 많았다. 이들은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기를 더 좋아한다. 5개의 펜을 놓고 4개는 빨강, 1개는 파란색인데, 어느 색 펜을 고를지 보는 실험에서 하류계층은 다수색을 고르는 비율이 72%, 상류계층은 44%에 불과했다. 이런 차이는 대학생활 적응에 까지 이어진다. 미국 대학은 자유로운 생활, 창의적 사고, 토론을 중요하게 여긴다. 상류층 아이들이 쉽게 적응하는데 반해 중하류층 출신 학생은 대학 적응에 이런 규범의 차이 때문에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이는 규범이 빡빡한 아시아 학생들과 유사하겠지) 계층의 이동이 어려운 것, 개룡남이 상류층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것, 상류층에서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어 혁신적인 사업을 하거나 제품이나 작품을 내놓는 것도 상당수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이런 가정의 규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아, 이걸 보면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가 갈리는 지점도 이해가 간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의 중산층 이상에서 민주당 지지자가 많고, 미국 중부, 남부의 공장지대에 공화당 지지자가 많거나, 에반젤리스트라고 불리는 보수 기독교도가 많은 것도 사회경제적 계층의 차이로 인한 규범의 차이가 낳은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학교별로 봐도, 교외의 주택이 많은 중상류가 사는 학교와 도심에 있는 학교의 학교 규범과 규율의 빡빡함도 꽤 차이가 난다는 연구도 있었다. 우리 학교들은 어떤까?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규범을 느슨하게 하는 쪽으로 흘러가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매우 규범이 빡빡한 곳에 속한다는 통계가 책에 나온다. 세칭 4차 산업혁명의 관점에서 보면...지난 30년간 제조업에서 한국의 발전은 빡빡한 규범에 기반한 교육과 가정, 사회환경의 덕을 꽤 본듯하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 방역의 우수함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만일 이 시기가 지나고, AI와 다퉈야하고, 제조업이 아닌 그 이상의 새로운 영역의 산업으로 우리 아이들이 먹고 살아야하는 사회가 온다면? 이 규범의 수준은 도리어 아이들에게 해가 될 뿐일 수 있다. 제약이 될 뿐이다. 그런 면에서 교육과 가정의 환경문화의 규범의 자유도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방향성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할 것같다. 이건 문화적 규범의 이슈라 쉽게 변화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씩 어느 방향으로 가는게 나을지, 해오던 관성의 방향이 아닌 쪽이라 저항이 강하겠지만 1센티미터씩이라도 느슨한 규범쪽으로 조금씩 가려는 사회적 합의가 미래를 위해 필요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