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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메더워는 1960년 이식면역 분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이른바 면역학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위대한 실험생물학자이면서, 뛰어난 교육자였으며, 또한 과학 행정가였다. 그리고 많은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젊은 과학자에게》는 1979년. 그의 나이 60대에 쓴, 자신의 후대 과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책이다.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젊은’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지만 젊은 과학자, 즉 이제 과학의 길로 들어선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중견의 대열에 들어선 과학자들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나아가 과학자가 아니라 일반인까지도 독자로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과학 활동에 대한 폭넓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과 과학자, 그리고 그 영역에 대해 차분히 조언하고 있는 글이다. 그래서 이미 젊은 과학자라는 타이틀은 벗었지만, 그렇다고 나이든 과학자는 아닌 나의 입장에서 이 글은 여전히 의미가 있으며, 또 동료며, 후배, 그리고 제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는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는 자신을 늙었다고 여기는 법이 없다." (104쪽)라고 하고 있으니 더욱더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현재형일 수 밖에 없다. 만약 내가 정말 과학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과학자의 삶은 최고급의 만족감과 보상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여기서 보상이란 물질적 보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배제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추가로 자신의 모든 열정을 한 곳에 쏟을 때의 충만함도 맛볼 수 있다.” (22쪽) 물론 지금은 그런 충만함과 대양감(oceanic feeling)을 맛보고 자부심을 갖기에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라고 보는 이도 있지만, 이 분야에 뛰어든 사람으로써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근거를 그는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얇은 책이지만, 그는 과학자와 과학자의 활동에 대해 상당히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조언하고 있다. 과학자의 결혼에 대해서도, 과학자 사회에서의 남녀차별과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보상에 대해서도. 언뜻 생각하면 이런 것들이 과학 활동과 무슨 관련이 있겠냐 싶다. 하지만 실제로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느낀 바로는 정말 중요한 문제일 수가 있으며, 정말로 누구에겐가 조언을 받고 싶은 문제들이다. 물론 시대에 쳐진 좀 구닥다리 조언도 있다(이 책이 나온 게 1970년대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이를테면 학회에서 발표하는 데 슬라이드 사용보다는 칠판 사용을 권한다는지 하는 것을 비롯해서 연구비에 관한 문제도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진 면이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무수히 느낀다. 과학자가 되기 위한 자질에서 특출난 지능보다는, 놀라운 손솜씨보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성실성을 앞에 둔다든가, 과학자가 되기 위한 준비로 필요한 것으로 배움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는 것, 공동 연구의 자세, 순수 과학과 응용 과학 사이의 불필요한 구분(당시는 순수 과학이 위에 있다고 여겨져서 이런 얘기를 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인 상황이다. 그래도 역시 의미 있다), 과학적 메시아주의(과학으로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이상주의)에 대한 경계 등등이 그렇다.
구닥다리 조언을 넘어서 동의하지 못할 부분도 없지는 않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인 포퍼와 쿤에 대한, 즉 과학적 방법에 대한 그의 견해다. 그는 포퍼의 ‘반증 가능성’에 커다란 방점을 찍고, 쿤의 ‘패러다임’, ‘정상과학’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친다. 그의 정상과학에 대한 반감은 정상과학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많은 평범한 과학자들에 대한 옹호로도 보이지만(그는 과학자에 대한 오해를 경계했다), 그래도 이 책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게 하는 부분인 것만은 사실이다(모든 책이 그래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은 이 조언들의 문구 자체에 매달리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한 노학자가(지금 나이로 보면 별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 자체, 그 조언에 담긴 정신, 즉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자만이 아니라), 과학을 대하는 태도, 과학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 등등에 감동을 받고, 나 자신을 추스리는 계기가 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의미로서 더 적절해 보인다.
메더워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부분은 과학자들에 대한 경계이면서 자부심을 잘 나타낸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수정이기도 하다. (비록 칼 포퍼의 관점에서 쓴 내용이지만, 그래도 충분히 음미할 만하다.) “과학자가 완벽한 확신을 담아 ‘증거’라 칭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경험이 많을수록 그럴 가능성은 줄어든다. 과학자는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반증법의 특수한 강점과 입문자들이 ‘증거’라 칭하는 것의 위태로움을 깨닫게 된다. (중략) 비판과 개정의 가능성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준의 확실성은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란 진실의 구도자라 할 수 있다. 과학자는 진실에 닿으려 애쓰며, 언제나 진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완전무결한 확실성이란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으며, 답이 필요한 질문 중 많은 수는 자연과학이 다루는 범주 바깥에 있다. … 과학자라면 … 적어도 이해하려 발버둥칠 수는 있는 것이다.” (167쪽)
과학자라면 한번은 읽어봐야 한다. 읽고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아직 젊은 과학자인지, 내가 여전히 진실의 구도자인지, 내가 나의 생각을 도그마로 여기는 고루한 과학자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