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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있는 공동체로 가는 감정적 기제, 이제는 눈물 대신 웃음을..
"열려있는 공동체로 가는 감정적 기제, 이제는 눈물 대신 웃음을.." 내용보기
눈물! 우리는 눈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언제 우리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걸까? 눈물을 흘려본 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얼마전 방송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가가 축축 해졌던 기억이 나서 머쓱해진다. 예전엔 별로 흘리지 않던 눈물이 제법 많아진 것은 나이가 들어 호르몬 탓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만히
"열려있는 공동체로 가는 감정적 기제, 이제는 눈물 대신 웃음을.." 내용보기

   눈물! 우리는 눈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언제 우리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걸까? 눈물을 흘려본 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얼마전 방송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가가 축축 해졌던 기억이 나서 머쓱해진다. 예전엔 별로 흘리지 않던 눈물이 제법 많아진 것은 나이가 들어 호르몬 탓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젊어서도 알게 모르게 흘린 눈물이 많았다는 생각이다. 책을 읽다가도, 혼자서 사색에 잠겨 있다가도 때로는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니 말이다.

 

  이 책 [눈물과 정치]는 영화 학자인 저자가 대중문화에서 흘려진 눈물과 현실에서 흐른 눈물을 엮어 20세기 한국의 문화와 정치, 감정과 이데올로기를 탐구한 책이다. 20세기의 한국을 조망할 때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대중의 눈물이며, 이는 대중극, 영화, 방송드라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서사의 중요한 대목에 눈물이 흐르는 것은 눈물이 수용자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요소이기 때문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일상 자체가 눈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일상에서 눈물을 흘릴 일이 적다면 대중문화에서 흘리는 눈물은 청승 그 자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처럼 지난 세기 한국에서 흘려진 여러 눈물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평가하고, 이런 눈물이 정치와 결합하는 양상을 이 책에서 살펴보고 있다.

 

  먼저, 눈물이란 무엇일까? 눈물은 불쾌를 유발하는 자극과 관련하여 그것을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의 일부라고 한다. 불쾌한 상태 중 하나가 고통인데, 고통은 눈물을 수반한다. 슬픔 역시 눈물이라는 신체적 반응을 수반한다. 이처럼 눈물, 고통, 슬픔은 모두 존재의 불쾌한 상태와 관련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눈물은 감정의 자리에서 실천의 기반이 되는 추진력을 제공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종종 눈물을 흘리면서 약해진 감정을 추스르고 강인한 의지를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런 눈물의 실천력을 근대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찾는다. 일제강점기의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홍도의 눈물과, 영화 [아리랑]에서 영진의 눈물이 그것이다. 홍도의 눈물은 가부장적 가족제도 안에서 딸, 누이, 아내, 며느리의 눈물로 가족의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눈물이고, 영진의 눈물은 가부장제 하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눈물이었다. 이는 지난 100여년간 우리의 대중문화에서 끊임없이 흘려온 눈물이지만, 근대 한국인의 실제 삶에서도 눈물은 넘쳐났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눈물의 기나긴 흐름을 신파라 부른다.

 

  이러한 신파는 정치를 이해하는 키워드로도 유용하다. 정권은 위기감을 조성하고, 그런 위기감으로 대중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정치적 동원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적인 눈물이 정치적 동원에 포획되는 것을 저자는 정치적 신파라 부르고, 근대 한국정치에 있어 정치적 신파가 어떻게 기능 했는지를 살펴본다.

 

  먼저 저자는 민족주의와 눈물의 결합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 국제대회에서 매달을 딴 운동선수들은 의례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기까지의 고통에 대한 것 일수도 있지만, 눈물 속에는 개인적인 고통이 국민적인 그리고 민족적인 것과도 겹쳐져 나타났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신파적 눈물의 흐름 속에는 정치적 접속의 여러 양상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민족주의와의 접속이었다. 민족의 위기는 가족의 위기로 재현되고, 그 과정에서 민족은 자주 가족으로 은유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민족주의가 유난히 눈물과 강하게 결합한 것은 피식민지배와 분단의 경험 때문일 거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러나 1960년대가 되면서 이러한 민족주의적 신파적 눈물은 파시즘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세력에 의해 환기되었다.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으로 오도된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파적 눈물에 호소한 것이다.

 

  한국영화 100년사에서 가장 눈물이 많이 흐른 시기는 1960~1970년대의 20년간이었다고 한다. 그 눈물은 기본적으로 가족주의적인 것이었지만 민족주의가 그 위에 덧씌워졌고, 이는 자유의 억압과 민주주의의 훼손을 수반하는 동원 정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흘려진 눈물은 바로 파시즘에 의해 포획되었다. 집단적인 위기감을 조성하고 울음을 강요한 것이다. 박정희 체제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의제는 반공과 개발이었다. 이 기치하에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폭력 정치를 밀어 붙이기 위해 고통, 슬픔, 눈물이 강하게 환기 되었으며, 이것이 눈물의 파시즘이 탄생한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신파적 눈물은 박정희 체제의 파시즘이 성립하고 작동하는데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 눈물은 대중으로부터 비롯됐지만, 국가에 의해 부추겨짐으로써 과도하게 흘렀다. 또한 이성적 판단력을 가로막고 부당한 고통을 감수하게 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상태를 악화시켰다.’ (187)

 

  박정희가 눈물로 호명했을 때 응답했던 수많은 조국근대화의 눈물들, 아마 탄핵 정국의 태극기부대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박정희의 호소 란 사실은 명령이었다. 아무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시즘의 눈물을 극복하고자 나타난 사회주의운동 역시 그 동력은 눈물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1920년대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인에게는 사회주의가 민족주의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기에 독립을 위한 실천에 이르게 하는 눈물, 실천의 과정 중에서 흐르는 눈물은 바로 민족의 눈물로 소환되었다. 이런 사회주의 운동이 파시즘적 눈물에 대항하기 시작한 것을 전태일의 일기와 사노맹 전위였던 박노해의 시에서 찾는 저자는 사회주의 문예물들 역시 신파적 눈물에 젖어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이끈 현실의 고통으로 인한 눈물, 그럼으로써 자신과 가족들이 겪게 될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이 흘린 눈물은 자본주의가 산출한 고통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사회주의적 실천으로 인한 고통의 산물 이기도 했 (262)던 것인 셈이다.

 

  저자는 이러한 민족주의적, 파시즘적, 사회주의적 눈물의 발원지는 자유주의라고 말한다. 자유주의적 배치, 시장으로 대변되는 진화론적 경쟁의 장에 던져진 가족의 눈물이라는 것이다. 개인적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눈물이라면 자유주의적 눈물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자유주의적 눈물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적 실천의 과정에서 흘려진 국민의 눈물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독점했던 폭력이 시장에 회수된 신자유주의 세상이 되면서 급기야 눈물마저 멈춰버렸다. 내내 철철 넘치도록 흘러서 정치에 포획되었던 눈물이 고갈되어 버린 것이다.

 

  저자는 흘러 넘쳤던 눈물도, 메마른 눈물도 감정의 주된 표상일 따름이지만 근본적으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유주의 너머 새로운 감정과 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정치는 열려 있는 공동체이며, 새로운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향유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감정적 역능, 웃음이다. 슬픔과 수치심보다는 행복과 자부심이, 분노와 시기보다는 공감과 연민이, 혐오와 경멸보다는 존중과 신뢰가 존재의 좋은 상태에 대응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는 눈물보다는 웃음이 요청된다는 뜻이다. (…) 궁극적으로는 웃음이 눈물보다 더 강력한 생의 열정의 발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330)

 

  오래전 일이라 누군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올림픽에서 금매달을 목에 걸고 눈물 대신 환하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눈물이 나쁘다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저자의 말처럼 눈물보다 웃음으로 가득찬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신파적 눈물을 통한 근현대 한국의 정치학,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k*****1 2018.08.23. 신고 공감 9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