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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
1. 저자에 대하여
조송희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P13 일상의 늪에 빠져서 죽을 것 같았던 중년의 여자가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여행하면서 상처받은 내면의 밑바닥을 만났다. 그것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시간이었다. 나는 여행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여행을 하면서 성장했고, 나 자신과 내 일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여행은 내 일의 일부이자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길이 내게 준 선물이다.
P16 여행은 내가 깨지는 시간이다. 나의 고정관념과 어리석음이 깨지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깨어짐은 통쾌하다.
P28 작가 제이미 제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서 ‘세상에는 그곳을 여행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행자를 변화시키는 이상하고도 놀라운 장소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 그 여행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알지 못했다.
P23 나는 ‘푸른’이라는 말이 좋다. 푸른이라는 말에는 슬픔과 희망과 자유가 뒤섞여 있다. 희망이 없는 슬픔은 얼마나 쓸쓸할까, 슬픔이 없는 희망도 난 그다지 믿지 않는다. 자유에도 슬픔과 희망은 필연적으로 스며있다.
P27 내가 진실로 원한 것은 바로 이 자유의 향기였다. 어쩌면 바로 지금이 내가 나를 혁명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르겠다.
P42 온몸이 흔들리며 통곡처럼 터져 나오는 울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마음은 터질 듯 벅찬데, 뜨겁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한 무언가가 내 영혼을 뿌리째 흔들어대는 느낌이다. 슬픔이 아니다. 고통과 회한도 아니다. 나는 분명 오열하고 있지만, 이 눈물은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감사와 기쁨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감사하다. 태어나서 첨으로 나라는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P51 안나푸르나에 가자는 메일을 받는 순간, 본능적으로 나는 알았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 존재가 진짜 나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그 경계가 바로 신들의 나라 네팔, 그 중에서도 안나푸르나라는 것을 …. 작가 김연수의 말처럼 나는 지금 ‘전혀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며 바로 이 순간이 ‘경계를 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P57 히말라야산맥은 인간 세상의 냄새를 모두 지우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사람만 받아들인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은 모든 겉치례와 허세를 벗어버리고 가장 원초적인 본래의 자기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P75 건배를 했다. 살아오면서 했던 어떤 건배보다 멋진 건배다. 한 모금의 술이 목구멍을 짜릿하게 훑으며 넘어간다. 금세 뱃속까지 훈훈해진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가 눈물겹게 달콤하다.
P81 길을 걸으면서 내가 지나왔던 날들을 보았다. 나는 내 봉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줄 안다. 나만 힘들게 산다고, 나 혼자만 죽을 것처럼 외롭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히말라야산맥을 오르면서 비로소 알았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산을 넘고 있었다.
P83 그래도 나는 도전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경계, 안나푸르나를 넘었다. 기대와는 달리 나는 다른 존재가 되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말할 수 없이 충만하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봉우리를 만나게 되겠지만 예전보다 조금 덜 외로워하고, 덜 서러워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마다 안나푸르나가 어머니처럼 묵묵히 나를 지켜볼 것이다.
P89 그런 내가 여행을 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수시로 장애에 부딪혔다. 내가 가진 힘을 믿어야 했다. 여행지의 낯선 환경은 때때로 피할 곳 없는 절벽 같았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서 뚫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찾아보면 언제나 길은 있었다. 열쇠는 대부분 내가 쥐고 있었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여행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비겁하게 살았는지 알았다.
P92 간절하다는 건 필연적이니 이끌림이며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 이끌림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 길을 걸으면 알게 돌 것이다.
P94 모든 인간에게는 여행의 유전자가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 유전자를 좀 더 강하게 타고 태어난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여행을 떠나오면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원했는지 알 수 있다. 낯선 공기에는 두려움과 감미로움이 뒤섞여 있다. 그 미묘한 불협화음 앞에서 세포는 더 예민해지고 마음은 본능에 더 가까워진다. 여행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
P103 산티아고 길은 채움의 길이기보다는 비움의 길이다. 걷다 보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는다. 길 위에는 순례자들이 버리고 간 옷가지며 화장품, 심어지는 신발까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행의 고수들은 짐이 가볍다. 초보여행자일수록 더 많은 짐을 지고 걷는다.
P115 “그것이 네가 선택한 삶이냐?” 똑똑하고, 자신만만하고, 우직한 자신의 아들이 세상에서 이룬 모든 것을 떨치고 길을 떠날 때 탐이 물었다.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입니다.” 아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P117 길이 나를 불렀고, 나는 그 부름에 응답했다. 탐이 아들은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또한 필연적으로 내게 오는 것이고 내게 주어신 삶을 사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 사느냐가 내 몫일 따름이다.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결국 부름을 받았다는 점에서 길과 삶은 같다. 길이 나를 불렀고, 삶이 나를 살게 했다.
P160 레에서 보내는 이 쓸쓸한 시간이 말할 수 없이 자유롭다. 이토록 서러운데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내가 이 높고 외떨어진 도시에 오고 싶었던 것은 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본능이었는지 모른다.
P160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 온몸의 세포가 가닥가닥 촉수를 세우고 낯선 세상과 접촉하고 있다. 나는 깊이 몸을 기울여 내 마음의 골짜기를 들여다본다. 이 도시처럼 어둑하고 축축한 그곳에 내 온 마음을 포개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에 비가 내린다. 그 비에 내 몸과 마음도 고스란히 젖는다.
P170 정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오롯이 혼자 느끼는 이 낯선 바람, 찬란한 햇빛, 스메타나의 선율이 내 마음에도 자유를 풀어놓았다. 지나가는 바람에 길을 물었다. 네 멋대로 가라고 한다.
P208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여행이 나를 이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 여행의 주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길을 잃는 것도 그런 경우다.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서 내 여행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틀어 놓는다. 그때는 여행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나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여행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여행이 되는 순간이다. 신비로운 건 그 순간이 전혀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리는 또 하나의 출구가 된다는 것이다. P208 삶도 그렇다. 가끔은 내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 도무지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도 있다. 분명 내 인생인데 내 운명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느낌, 내 운명을 다른 누군가가 움켜쥐고 뒤흔드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의미 없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존재의 뿌리가 흔들렸던 날들조차 나를 키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운명의 주인은 운명이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오롯이 내 몫이다. 내 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이다.
P236 살다 보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순간이 있고, 반드시 머물러야 할 장소가 있다. 특히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장소나 사람에게서 운명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헨티아이막 언덕 위의 오보가 바로 그런 곳이다..
P237 헨티 아이막에서 내 몸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별처럼, 들풀처럼, 강물처럼 사는 것임을 알았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젖고,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흐르며 삶을 내 영혼이 얼마나 오랫동안 갈망해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일주일 종안 나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온전한 나 자신이었다.
P252 여행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노래와 춤이 터져나올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마음가는 대로 몸을 놓아준다. 기쁠 대 마음껏 기뻐하고, 슬플 때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이제는 안다.
P259 스티브 잡스가 “커넥팅 도츠(Connecting dots)”라는 말을 했다. ‘인연은 낯선 곳에서 시작되어 나오 모르는 곳으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이 발걸음이 내일 또 어떤 곳으로 나를 이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3. 이 책을 읽고
코로나로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현 시점에서 다가온 이 책처럼 반가운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세계 여러 나라를 애정 깊은 사진과 글로써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책의 저자는 남자들도 쉽게 가지 못하는 안나푸르나를 비롯하여 용기를 내어 도전했고 거기에서 자신을 다시 만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중년 여성들에게 더욱 용기를 내어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익숙한 것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일상에 얽매인 사람에게는 아마도 일상의 고리를 끊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 않는 나이에 길의 부름, 손짓을 알아보고 용기있게 가벼운 배낭과 사진기를 들고 떠난 저자가 경험한 모든 것을 사진 한장, 글 한 대목으로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다.
1. 길의 부름에 용기 있게 나서야 할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행이란 모든 것이 갖추고 나서야 하는 줄 알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 시간적인 여유, 체력적인 것이 다 갖추어야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지인으로부터 온 메일 한 통으로 인해 가보리라고 생각해 보지 못한 안나푸르나를 가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남편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혼하고라도 가려고 한다는 선전포고로 여행을 결행한다. 여행지는 자신이 계획하고 갈 수도 있겠지만 저자처럼 일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어떤 부름에 이끌려 가는 여행이 있다. 저자가 말하듯이 그것은 길이 여행자를 초대한 것이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많은 길의 부름이 있다. 다만 그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은 그 부름에 합당한 사람, 또는 그 부름이 들리는 사람만이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한다. 길의 부름에 지체하지 않고 떠난 여행은 그만큼의 보답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우리에게 손짓하면서 속삭이는 길의 부름에 응답해야 할 때이다. 길의 부름에 응답한 자에게 늘 좋은 것만 기다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 거기에는 장애물과 어려움과 아픔이 있다. 그것을 온전히 견디어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여행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아직도 그 부름에 충실히 응답하고 있고 온갖 촉수를 가동시켜 세계 곳곳에서 부르는 길의 부름에 응답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인생길을 가면서 자신에게 손짓하는 길의 부름에 충실히 응답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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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을 기다려 온 책이다. 아마도 5년을 다듬었을 것이다. 작가가 올린 십 수년간의 사진들과 그 사진에 덧붙인 군더더기 없는 언어들은 내게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할 이유로 충분했다. 소소하게는 작가의 앵글에 잡힌 여행지가 궁금했고, 사진보다 많은 글을 어떻게 버무려놓을지가 더욱 궁금했다.
첫 해외여행인 안나프르나 등반을 결심하며 이를 실천하기위해 이혼까지 언급하며 실행을 예고한다. 지금의 내가 싫어 떠난 여행이 책 말미에 '지금의 내가 가장 좋다'는 삶의 명백한 이유가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여행 내내 간결한 묘사와 느낌들은 주절주절한 부연설명 없이 짤막한 소회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공감이 밀려온다. 필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평소에 접했던 작가의 언행에 대한 신뢰가 글 속에도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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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인생 꽃을 피운 그녀, 조송희 이야기 -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를 읽고-
사람은 각자 서로 다른 계기로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인생의 행복을 찾는다. 어떤 이는 반려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면서 또 어떤 이는 놀이나 운동, 아니면 공부를 통해서 행복을 찾고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여기 여행을 통해서 행복을 찾고 인생 꽃을 피운 여자, 조송희의 이야기가 있다.
일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중년의 여자가 나이 마흔 아홉에 처음으로 바이칼 여행을 하면서 그녀의 삶은 바뀐다. 특히 안나푸르나, 북인도와 산티아고, 몽골과 중앙아시아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오지를 찾으면서 상처받은 내면을 만나고 고통 받은 지난날을 치유한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여서 일까? 그녀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해저 속에 숨어있던 보석을 찾아 길어 올리는 것처럼 그녀의 간절한 소망이 꽃을 피우는 것 같아 저절로 마음의 박수를 치게 된다. “나는 여행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여행을 하면서 성장했고, 나 자신과 내 일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여행은 내 일의 일부이자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길이 내게 준 선물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행복이 마치 나의 행복 같기만 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얻었다. 그녀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삶도 함께 따라가게 되어,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이제 나도 홀로 배낭을 메고 광활한 오지를 향해 두려움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은 것이다. 이것은 자유롭고 용기있는 나 자신을 위한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녀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살아왔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여행을 하면서 세세하고 절절하게 느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삶 앞에서 늘 쪼들리고 쫄려서 산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맛을 음미하지 못하고 우걱우걱 음식을 입으로 쑤셔 넣은 것처럼 살아온 나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나도 분명 그녀와 같은 곳을 여행했는데도 마치 고속도로를 휙 하고 달린 것처럼 별로 남은 것이 없다. 여행이 아니라 관광을 한 탓이다. 자그마한 것 하나까지 세상과 교감하고 느끼고 되돌아보며 삶을 치유하고 꽃을 피우는 그녀의 여행은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느끼고 교감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라.’ 고 이야기 한다. 그 동안 내가 고통으로 생각했던 것들도 사실은 내가 만든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더 폭 넓게 세상을 이해했더라면 그 또한 행복한 시간으로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이 말이 나의 생각과 아주 똑같이 포개진다.
길을 걸으면서 내가 지나왔던 날들을 보았다. 나는 내 봉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줄 알았다. 나만 힘들게 산다고, 나 혼자만 죽을 것처럼 외롭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면서 비로소 알았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산을 넘고 있었다. p.81.
그녀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건 여행 속에 오롯이 그녀의 삶이 녹아들고, 깊은 사색의 흔적과 탐구의 기록과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더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소박한 정을 내 보이던 사람들, 길 위해서 서로에게 깃들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너무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나직한 목소리로 나긋하게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영혼을 어떻게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내가 가지고 누렸던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녀의 눈을 통해서 보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깨닫게 된다.
나는 불편하거나 더러운 것, 찜찜한 것을 잘 못 참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오지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 내가 고집스럽게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무엇이든 잘 하려고 했던 그 마음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을 찾아 떠날 용기가 생겨난다.
마라톤을 하고 나면 오논강으로 달려간다. 이른 아침의 강물은 산골에 사는 숫처녀처럼 풋풋하고 순결하다. 차가운 강물에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붉은 빛을 띤 강물에서 풀 향기가 섞인 흙냄새가 난다. 이를 닦고 나면 오래오래 입안을 헹궜다. 내 입에서도 향기로운 흙냄새가 밴다. 강물에 머리를 감는다. 흐르는 물줄기가 수백 개의 손가락이 되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헤집는다. 물속에서 내 머리카락이 물풀처럼 흔들린다. 머릿속에 뒤엉켜 있던 온갖 생각의 실타래가 활활 풀어진다. 강물에 씻긴 머릿속이 환한다. p.234.
그녀처럼 완전히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살아도 좋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는 그녀처럼 들판으로 달려갈 것이다. 내 안의 나를 박차고 나의 밖을 향해 자유롭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