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쉬는날이다보니 무엇을 할까 하다가 이효석 소복과 청자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230)을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애초부터가 그 여자는 성양춤같은 것에 까달도 없이 열중하는 측이 아니어서 사교장도 그런 설비도 없는 바에 어쩌자는 서양 춤이냐고 맞바로 내대면 할말이 없는 천마조였다는게 재미있었던 부분같아요. 읽기만 해도 묘사가 잘되어있어서 상상되네요. |
|
소복과 청자라는 제목이 참 이중적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고 은실이라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성이 하얀색을 즐겨입고 서양 문물을 좋아하는 무조건 외국꺼가 좋다는 그래서 하얀색이 소복이라는 생각이 들고 청자와 비유한 것이 은실이라는 인물로 표현되지만 무분별한 외국문화 찬양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다 |
|
은실이라 불리우는 여자가 있었다.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단박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 게 있었다. 소복차림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지닌 은실은 또렷또렷한 서울말씨를 가져 지방의 사람들에겐 이국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다방에서 일 하는 그녀는 좁다란 다방에 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방의 단골들은 그런 은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다방을 중심으로 그 곳에 몰려든 한량들 주로 문인들이 그녀 은실이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동시대의 아네모네 마담 같은 느낌의 이 작품은 이효석의 도시 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소설이다. 1980년대 어느 중소도시의 다방이나 카페에서 볼 수 있는 광경같은 느낌.
단어의 쓰임도 그렇고 사건의 흐름도 그렇다 |
|
이효석의 소복과 청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여인 은실이의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극화한 작품이다. 새하얀 순복색의 옷을 항상 즐겨 입는 은실이는 무엇이든지 외국 문물이면 다 좋다하며 추종하고 그렇고 알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러면서 바로 우리 발 밑에 아주 귀한 보물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집안의 가보인 고려청자를 등장시키며 단편 소설을 클라이맥스로 달려가게 된다. |
|
아파아트에서나 다방에서나 늘 은실(銀實)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뭐 딱이 일이 있대서가 아니라 그 이름이 그저 부르기 좋대서 그렇게 부르곤 했었고, 그 여자도 싫기는커녕 도리어 즐거워하는 듯싶었다. 은실, 은실 이렇게 수없이 되뇌어 보면 은(銀)실꾸러미를 무한정 풀어내는 듯한 감미로운 어감이 느껴진다. 은실어떻소? 「실비아」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여운이 있고 맑은 기운이 일지 않소? 「실비아」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여운이 있고 맑은 기운이 일지 않소? 「실비아」라고 하니 생각나지만 은실은「실비아 시드니」와 퍽 닮았었다. 큼직하지 않은 날씬한 몸집에 겁겁한 듯하면서도 기실 착 가라앉은 눈매, 어디나 없이 애처러운 몸짓……정말 흡사. 그러나 구태여 그러한 외국 여배우를 은실과 겨누기 위해서 끄집어내잘 것 없이, 그 미목이 수려한 「실비아 시드니」의 아름다움을 꼭 두배로 했다고 상상하면 충분하다. |
|
이효석 소복과 청자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230)을 구매한 후 읽고 바로 리뷰를 작성합니다. 사람들은 뭐 딱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름이 그저 부르기 좋대서 그렇게 불렀다는 은설. 은설이라는 애칭이 이름으로 지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겨울과 잘 어울리는 이름같더라고요. 제 친구중에도 은설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친구도 같이 생각나니 좋았습니다. |
|
이효석 소복과 청자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230)을 읽어보았습니다. 천만조는 머리가 깨지고 윤씨는 왼편 팔이 무러져 양편이 다 이주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상처를 입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두 사람 다 붕대를 쳐감은 모습인 바엔 숨기려야 숨길 수도 없이, 이 사건은 아파아트는 물론이려니와 온 거리에까지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으니 다 나아도 그 후가 문제가될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