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종교는 없지만 절에 가면 느껴지는 특유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청아한 풍경 소리 때문에 절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불교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고 불교 서적에도 관심이 전해졌다. 그러나 불교서적을 읽어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너무 어렵게 느껴져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던 중 불교 2000년 최고의 가르침인 반야심경을 틱낫한 스님의 해설로 쉽게 풀이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이 반야심경에 대해 풀이한 다른 서적들과 구별되는 점은 아래의 설명과 같다.
2014년 8월 틱낫한 스님은 『반야심경』의 전통적인 번역을 수정하여 『반야심경』이 허무주의를 가르치는 내용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공(空)’의 의미를 명확히 했습니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를 뜻하지 않습니다. 공은 분리된 자아가 비어 있다, 즉 따로 자아라고 부를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의 전통적인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자신의 『반야심경』 새 번역본에 ‘강 건너 참자유에 이르는 지혜(The Insight that Brings Us to the Other Shor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번역본은 제목과 동일한 내용의 통찰을 담고 있으며, 연기(緣起), 무아(無我), 중도(中道), 공성(空性), 무상(無相), 무원(無願)에 대한 『반야심경』의 가르침의 본질을 매우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p. 23. 새 번역 및 해설판 추천사 中)
[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는 틱낫한 스님의 새로운 해석으로 기존의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거나, 문장을 추가하기도 하면서 반야심경의 참 뜻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도록 쓰인 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읽는 사람은 그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은 ‘공(비어 있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황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공을 무(無), 비존재, 부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철학은 ‘존재냐, 비존재냐’라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지만, 불교는 존재와 비존재라는 이분법적 관념을 초월합니다. 나는 종종 이렇게 표현합니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로다. 문제는 상호존재일지니.” 종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종이 안에 깃든 햇살이 보입니다. 햇살 없이는 숲이 자랄 수 없습니다. 햇살 없이는 그 무엇도 성장할 수 없고, 우리 역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햇살 역시 종이 안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이와 햇살은 함께 있습니다. 좀더 깊이 관(觀)하면 나무를 베어내고 나무가 종이로 변신할 수 있도록 제재소로 실어가는 벌목꾼이 보입니다. 또한 종이 안에서는 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인 빵 없이는 벌목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먹는 빵이 된 밀 역시 이 종이에 깃들어 있습니다. 벌목꾼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종이 안에 있습니다. 이처럼 종이 아닌 이 모든 것이 없다면 종이는 애당초 존재할 수 없습니다. (p. 46~47)
시간, 공간, 대지, 비, 흙속의 광물질, 햇살, 구름, 강 열기, 심지어 의식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것이 이 종이 한 장에 깃들어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이 종이와 공존합니다. 존재한다는 뜻은 곧 상호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이 한 장의 종이가 존재합니다. (p. 48)
모든 것에서 그것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 나의 존재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구나.
2. 비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비워졌다는 뜻입니다. 이 컵은 아무것도 비어 있지 않은 상태일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비었는지를 알지 못하면 ‘비었다’는 말에는 아무런 뜻도 없습니다. 물을 따라버린 컵에는 물이 들어 있지 않지만 공기가 비어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비어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가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굉장한 발견입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이 오온이 공(空)하다, 즉 오온이 모두 비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님, 무엇이 비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중략) “무엇이 비었다는 뜻일까?” 그 답은 이러합니다. “분리된 자아가 비었다.” (p. 52)
쉬운 말로 풀이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쉽지는 않다. 진리에 다가가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냐만은… 알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머릿속에서 내용을 쫓아가다가 잠깐 안개속에서 헤매다가 다시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비치다가 하는 기분이었다.
3. 깊이 들여다보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당신을 낳은 날은 당신이 태어난 날이 아닙니다. 당신이 이 형상으로 나타난 날일 뿐입니다. 당신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태어남이란 없습니다. 오직 지속만 있을 뿐입니다. (p. 76) 종이는 과거 삶에서 나무, 숲, 햇살, 구름, 비였을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숲이고, 햇살이며, 구름이고, 비입니다. 이는 수많은 원인과 조건이 함께 발현한 것, 즉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이의 탄생 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종이가 태어난 순간이 아닙니다. 종이는 무(無)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이의 진실은 태어남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이는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종이라는 형상을 취하는 순간은 단지 지속 가운데 한순간일 뿐, 탄생의 순간은 아닙니다. (p.76~77)
나는 이전부터 이후까지 계속 존재한다. 모습만 다를 뿐이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내가 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원인과 조건이 맞았을 때 그 순간에 보여지는 어떤 형상이 나라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뿐이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태어났다거나 생겨났다고 말한다.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윤회라는 것도 불변하지 않는 고유한 아(我)가 육신을 옮겨 태어남을 반복하면서 영혼의 성숙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모 조부모 그 위의 조상들의 지속된 상태로 존재하며, 그 이전에는 흙, 구름, 햇살, 비, 바람, 곰팡이, 물 등 이었고 형상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가 마음이 더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졌다. 서평기한에 쫓기지 않았다면, 더 깊이 읽고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 이 책은 두고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이해하고 싶다.
4.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습니다. 상호존재라는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어린 매춘부, 소년병, 굶주리는 어머니, 이주 노동자가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괴로움은 물론 온 세상의 괴로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상호존재의 통찰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 참된 자비심이 솟아나고 그 상황에 도움이 되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p. 105)
장미가 곧 쓰레기이고, 쓰레기가 곧 장미가 되듯이, 우리는 서로의 반대편이 될 수 있다. 서로 반대편이고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던 것도 하나의 나뭇가지 안에서의 양 끝부분일 뿐이다. 가지의 어느 한 부분을 잘라낸다면 지금의 내 자리는 과거의 반대편이었던 그 위치가 될 수도 있다. 상호존재의 관점에서 우리 안에는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어려움은 나의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구하는 것은 어쩌면 나를 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5. ‘열반’이라는 것은 단순히 태어나고 죽는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아니다. 무아(無我)를 깨달아 생과 사가 없음을, 존재와 비존재가 없는 것을 깨닫는 그 자체인 것 같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무명이 행을 일으키고 그것이 의식, 감각을 일으켜 그것을 취하려 하기에 존재가 있고, 존재가 있기에 우리가 태어나서 거듭되는 윤회를 겪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생각은 ‘나’가 존재한다(자아가 있다)는 착각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내가 없다면 행도 없고, 의식, 감각, 존재, 태어남 등의 모든 것은 있을 수 없다.
6. 꽃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꽃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사람인 것으로 충분합니다. 왜 굳이 부처가 되어야 합니까? 당신이 사람이며, 사람 안에 깨어난 자연이 담겨 있는 사실을 안다면 더 이상 그 무엇도 쫓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됩니다. 당신이 지금 뒤쫓고 있는 것은 이미 당신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불성(佛性)은 사람의 본성 안에 오롯이 들어 있습니다. 굳이 무엇인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p. 153)
꼭 뭔가를 쫓아갈 필요는 없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것을 자세히 보고, 느끼면 될 뿐이다. 이미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을 갖고 있었구나 알아보고 느끼면 된다.
7. 우리도 이와 같아서 달리 열반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열반은 우리의 참된 본성, 다시 말해서 시작과 끝이 없고 태어남과 죽음도 없는 우리의 진면목이기 때문입니다. 파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참된 본성에 닿을 수 있다면 일체의 두려움과 분노와 절망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태어남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오고감, 같음과 다름 같은 관념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열반은 우리가 찾고 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우리는 열반의 경지에 이를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열반에 이르러 있기 때문입니다. 실재하는 우리의 현실에는 태어남과 죽음이 없습니다. 실재하는 우리의 현실에는 오고감이 없습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열반에 이르러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 아닌 처음부터 열반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p. 169)
열반에 이르려고도 노력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미 열반에 이르러 있었으므로. 그저 눈을 뜨고 보기만 하면 될 뿐이다.
8. 살아 있고, 숨을 들이마시고,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멋진 일입니다. 이것은 이미 충분히 멋진 일입니다. 이것은 이미 깨달음입니다. 우리 내면에 마음챙김의 빛을 밝힘으로써 우리는 성자가 되고, 붓다가 되고, 보살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p. 172)
내가 살아 숨쉬어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그들을 느낄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나는 무엇을 그렇게 가지고, 채워 넣고, 앞으로만 가려고 했을까.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채로 세상을 바라보며, 없다고 부족하다고만 여겼을까.
이 책은 읽는 이에게 마음의 평화가 깃들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심오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 쉽게 풀이했다고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것 같다. (특히 나 같은 완전 초보에게는… ㅠㅠ) 그러나 반야심경을 책 한권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진리에 눈을 뜨는 것도 사실 말이 안되는 것 같다. 단순 지식에 관한 학과 공부만 해도 몇년씩 시간을 들여 하는데, 이런 진리를 책 한권으로 깨닫겠다면 너무 큰 욕심 아닐까. 그럼에도 이 책은 다른 책보다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이해를 도우므로 반야심경의 말씀을 깨닫는데, 가장 빨리 가장 가까이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란 건 분명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읽는 동안에 먼 곳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멀리 멀리 갔다가 책을 덮으면 다시 제자리에 와 있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플럼빌리지 명상 수련에서는 이따금씩 감귤 파티를 합니다. 모두가 귤을 한 개씩 나누어 받습니다. 손바닥에 귤을 올려 놓고 귤이 실재함을 깨닫도록 가만히 호흡하며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귤을 먹을 때 귤을 보지 않고 온갖 다른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귤을 본다는 것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보고 또 햇살과 비를 보는 것입니다. 손바닥 위에 놓인 귤은 생명의 경이로운 현존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귤을 보고, 귤 꽃의 향기와 따뜻하고 촉촉한 흙내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귤이 실재하면 우리도 실재합니다. 그 순간 삶이 실재가 됩니다. 이제 마음챙김을 유념하며 귤껍질을 벗기고 향기를 맡습니다. 조심스럽게 귤 한 조각을 떼어내 혀에 올립니다. 그러면 귤이 실재하는 귤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온전한 마음챙김을 유지하며 한 조각씩 귤 하나를 다 먹습니다. 이렇게 귤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귤과 귤을 먹는 사람 모두가 실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p. 187)
[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는 깨달음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 눈앞에 보여지는 상에 집착하지 않고,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라는 식의 지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주변의 사물 하나하나의 진실된 본성을 알아차린다면, 매 순간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또한 우리가 이미 열반에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그것이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깨달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틱낫한 스님과 새벽 아침, 축축한 안개가 끼인 숲을 산책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머리속이 안개속같이 느껴져서 일지도 모른다. 안개속을 걸어 다녀 길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산책 덕분에 마음은 가벼워졌고, 왠지 몸도 더 건강해진 것 같다.
이 책은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 반야심경을 좀 더 깊이 있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 틱낫한 스님의 말씀과 지혜를 듣고 싶은 사람, 그리고 삶에 지친 마음을 잔잔하고 편안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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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읽을때마다 계속 의문속에서 되뇌이기만했던 글귀들이 있었는데 틱낫한스님의 성찰을 통한 재해석으로 쉽지만 깊이있게 알 수 있게 해주셔서 이 책을 통해 깨달음까지 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시간을 두고 다시 사서 두번째 읽는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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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관련 서적을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하는 마음으로요 서술이 쉽고 잘 읽힙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데 어려워요 아마 처음이라 그런 것 같아요 계속 읽고 읽다보면 알게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책이 양장이고 가름끈도 있어서 너무 좋아요 요즘 가름끈까지 넣어주는 책 별로 없어서 이렇게 넣어주는 책 만나면 너무 행복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