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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트하우젠의 사진사/살바 루비오 /문박엘리/생각비행/2020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정말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결국 보수주의자이자 왕당파의 승리로 끝난 이후, 스페인에서 50만명이나 되는 좌파 공화주의자들이 망명길에 올랐다고 하네요. 그러나 자칭 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이들을 망명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수용소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른바 수상한 외국인들을 위한 처벌수용소. 망명길에 올라 프랑스에 가기도 전에 사망자가 속출했고, 프랑스에 도착해서 수감된지 반년 반에 1만 5천명 이상이 숨지게 됩니다. 결국 태반이 스페인으로 되돌아갔지만 22만명은 프랑스에 남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닥쳐오면서 이들은 프랑스 군에 의해 군대에 편입되거나 외인부대 혹은 군사 시설 특히 외국인 노동자 회사에서 복무하도록 강제되었죠. 프랑스가 나치에 굴복하면서 이들 프랑스 군복을 입은 스페인인들 역시 나치의 손에 떨어집니다.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었으니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야 했는데, 운 좋게 그렇게 수감된 사람들은 프랑스 처벌 수용소 보다 처우가 나았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프랑스의 비시 정부도 스페인 프랑코 정부도 이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들은 지난한 도피길에 다시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대략 만 명 정도는 마우트하우젠-구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죠. 이 강제수용소에서는 가장 끔찍한 작업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채석장에서 노동하도록 시켰고 수감자들은 매일같이 질병과 기아 그리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다 하나 둘 죽어갔습니다. 죽을 때 까지 노동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죠. 무려 5천명의 SS 친위대가 근무했다는 마우트하우젠-구젠 수용소. 이보다 더 많은 인원이 근무한 곳은 아우슈비츠 뿐이었다고. 이 수용소는 절멸 수용소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무려 9만명이 살해된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시신은 절멸 수용소에서 그랬듯이 태워버렸죠. 이 만화의 주인공 프란시스코 부아는 만화 속의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실존인물로 스페인 내전에서 패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노동자 회사에서 강제 노역을 당하다 결국 마우트하우젠에 수감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차저차하여 파울 릭켄이라는 전직 교수이자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SS 친위대의 눈에 들어 그의 일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죠. 바로 사진을 현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사진은 끔찍하게도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들이었는데, 보아하니 예술적으로 연출된 죽음의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실제는 살해되었는데도 자살한 것처럼 꾸민... 이후 점차 다른 사진들도 현상하게 되면서 마우트하우젠에서 자행된 만행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필름을 빼돌리기 시작합니다. 어느날엔가는 힘러와 칼텐부르너가 채석장에 들른 것을 찍은 사진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죠. 전세가 나치에게 불리해지면서 나치들은 서둘러 수감자들을 처형하기 시작합니다. 소련군 포로들도, 일반 수감자들도... 일부는 더 열악한 환경의 노동 수용소인 구젠으로... 그리도 마우트 하우젠에도 가스실이 설치되었죠. 부아는 릭켄의 명에 따라 외출을 하여 사진을 찍는데 동반하기도 했는데, 히틀러처럼 이른바 죽음의 미학에 심취되어 있었던 리겐은 부아가 죽는 모습을 찍겠다고 했죠. 하지만 단 둘만 있는 상황. 부아는 릭켄을 두드려 패고 위기를 빠져나옵니다. 희한한 일이지만 릭켄은 수용소에 돌아와서도 그를 죽이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버리죠. 부아는 필름을 빼돌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가 어느날 수감자들과 친위대들 사이에 벌어진 축구 경기를 틈타 한 소년 마테우에게 필름을 축구장 밖 풀숲에 던져 넣도록 부탁하게 되죠.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친위대들은 몰려오는 연합군에 쫓겨 도망을 가고, 수감자들을 해방을 맞게 됩니다. 마우트하우젠의 악명 높은 고위 친위대는 자살하거나 도주하려다 살해 당했다고. 릭켄은 이후 재판을 받고 종신형에 처해졌지만 몇 년 복역 후 출소했다고 합니다. 부아는 빼돌린 사진을 찾아보았지만 2만 장 중에 1천장 정도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난리통이었으니... 이렇게 출소한 이들의 운명은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측에서 살아남은 수감자들을 나치 부역자로 여겼기 때문이죠. 좌파 공화주의자였던, 따라서 소련을 해방군으로 맞이했던 부아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프랑코는 스페인에서 자신의 파시스트 독재 정권을 공고히 했고, 부아의 입장에서는 스페인 판 나치즘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스페인 생존자들은 여전히 오갈 곳이 없어진 상황이었죠. 가장 슬픈 장면은 바로 마테우가 수용소에서 얻은 병으로 결국 죽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이 한 일이 가치 있었다고 철썩같이 믿으면서 죽어 간 마테우. 그러나 그렇게 해방을 맞아도 소용없는 일이었다는 걸 부아는 차마 말하지 못합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시작되면서 부아는 자신이 직접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증언하기로 합니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었고 아우슈비츠와 라벤스부뤼크 수용소의 생존자였던 바이앙 쿠튀리에 여사를 만나 증언 기회를 얻기도 했죠. 특히 그는 수용소에 시찰을 온 칼텐부르크에 대해 제대로 증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 진행을 서두르는 재판장에 의해 자주 제지당하고 변호사도 검사도 추가 질문도 없이 그냥 넘어가 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죠. 결국 칼텐부르크는 교수형에 처해지겠지만, 시체 하나가 늘어난다고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 하는 허탈한 심정. 마이앙 쿠튀리에는 말합니다. 어떤 말이나, 어떤 이미지로도 이 일을 겪지 않은 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을 거예요. 시간을 두고 이해시켜야 할 거라고... 만화 속에서 부아는 언젠가는 여동생 누리아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알리는 일을 하리라 다짐하죠. 하지만 수용소에서 나온지 몇년 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불과 31세. 이 책의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은 어찌 보면 더 끔찍한데, 오랜 프랑코 독재가 끝난 이후에도 스페인에서는 자국민이 당한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별로 없다는 것.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이 1978년으로 이 책이 나온 것은 40년이나 지난 이후인데도 말입니다. 살바 루비오는 지금이라도 이야기 해야 한다면서 용감하게 이 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