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중립적, 객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것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여러 방향과 입장에서 고민해 보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사태를 파악해 보려는 노력이겠지요. 그런데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도 판단을 유보하는 이러한 입장들은 결국에는 현재의 차별을 유지하는 쪽, 권력이 위치한 곳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73쪽 중에서]
작가가 이영 감독님을 만나 인터뷰 했을 때, 감독님이 남긴 말입니다. 혐오라는 단어가 자신의 정체성에 포함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각하지 못하거나 주류 편에 서서 비주류에 대한 비난을 할 때 혐오라는 공격권을 당연한 듯 쓰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대놓고 혐오하는 표현과 대상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몰상식함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소수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는 혐오에 대해 감독님의 말은 중립인 척 하면서 비주류 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정, 혐오를 함께 묻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더라고요.
다음은 당신일 수 있어요
[우리가 혐오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혐오는 인간의 존엄성을 산산조각 내 그 사람을 하찮게 여기도록 한다. 차별과 혐오는 바늘과 실이다. 누군가를 차별하면 그 대상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본문 11쪽 중에서]
사회 속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존엄과 가치를 인정한다고 우리는 자부합니다. 스스로가 혐오나 차별의 주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내재적인 주류 근성이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다르게 대하는 것이 차별 자체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인지하고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나 갈등 관계에 속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과 혐오가 바늘과 실의 관계라는 작가님의 뼈때리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남성의 소비는 당당히 제 돈을 쓰는 행위지만, 여성인 나의 소비는 남자에게 빌붙어 분수에 맞지 않게 돈을 쓰는 사치로 둔갑한다. 이런 시각에는 여성이 자신이 노동의 대가로 소비하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하는 남성은 있어도 노동하는 여성은 없는 것이다. 본문 27쪽 중에서]
[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분들의 싸움이 남성과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걸 경계해야 하고요. 남성들 역시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운동이 아니라 남성 자신과 여성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하고 페미니스트가 되어 여성들과 연대해야 하다고 봐요.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은 남녀 차이가 없어요. 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여성과 남성이 성차별주의자와 남성우월주의자에 맞서 함께 대항해야 하지 않을까요? 본문 46쪽 중에서]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구도가 되어 버린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닌데, 성별 적대적 관계가 형성된 것이죠. 사실 이 관계 속에서 남성이 이득을 보는 것도, 페미니즘 활동이 여성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성별 갈등으로 구도를 바라봐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가부장제 뿐 아니라 군사주의까지 복합적인 문제가 얽힌 것이기에 더욱 구성원 대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바라봐야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사람을 일컫는다. 이길보라 감독은 청각장애인 부모의 자식이자 딸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를 주인공 삼아 <반짝이는 박수 소리>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같은 제목으로 책도 냈다. 본문 59쪽 중에서]
[외국인이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었을 텐데. 한국인도 아닌데 외국인이 왜 남의 나라 일에 관심을 쏟지라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고 봐요. 남의 일을 내 일로 여길 수 있는 마음, 역지사지 그것이 바로 인권 감수성이자 공감 능력인 거죠. 본문 68쪽 중에서]
[청각장애인끼리는 이런 농담을 해요. 우리는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다.(웃음) 우주로 나갔을 때 우주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청각장애인밖에 없다고요. 지구별 땅 위에서는 우리가 살기가 매우 불편하고 불리하지만, 우주에 가면 우리가 제일 잘 소통할 수 있다고요. 본문 80쪽 중에서]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감독의 이야기는 장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저 조금 불편하다는 비장애 입장의 한계를 넘어서서 아주 새로운 입장, 전혀 다른 입장의 이야기였습니다. 말로 소통을 하는 인류의 역사가 그렇지 않았던 시절에 비해 짧습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정상이라고 인지한지 얼마나 되었느냐 것이죠. 현재는 말을 하고 듣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의사 소통 체계에서는 어떨까, 입장을 바꾸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발상을 전환하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 혐오에 맞서는 시작일 듯 합니다.
[그가 온 곳 그리고 그가 사는 세계와 그가 존재하는 조건을 알지 못한다면,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것은 내가 아는 세상에서 바라본 그일 뿐이다. 그가 있는 세상에서 그가 선택한 그가 아니다. 본문 97쪽 중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소통할 일이 많은 입장에서 감독님의 말이 와닿습니다. 함께 일하고 소통하며 그들의 일상을 아는 입장에서는 쉽사리 그들을 불법체류자로서만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들도 이곳이 아니어도 모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사연, 모국어는 전문적 용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어에는 서툰 것 뿐 등 선택했지만 선택이 아닌 결과들로 이 곳에 있는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이익을 빼앗고 불안을 주는 존재로 보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는 구조나 문제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그들에게 투사하는 것 뿐입니다. 일자리 부족 문제가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저렴한 인건비로 일하는 영역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 범죄를 일으키는 퍼센트가 높아졌다면 그만큼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에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 인구가 많아진 것입니다.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가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아보는 지표가 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가부장제가 강한 사회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해 열등한 존재로 차별하며, 성소수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정된 성역할을 교란하는 동시에 노동 인력을 재생산하지 않는 불온한 존재로 인식해 혐오한다. 본문 143쪽 중에서]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본문 165쪽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흔하지 않기에 소통할 기회도 없지만 그만큼 정말 극소수일지 아니면 그들이 사회에 발을 디딜 수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성에 대한 선택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옳고 그름이 되는 것이 맞는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살인을 해서는 안되는 법과 도덕의 문제처럼 성의 선택도 같은 선상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기준이 현재는 성에 의한 것이지만 결국 더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사람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 신분제가 그러하였고, 조선시대 여성이 그러하였으며 산업화 시대 아동이 그러했습니다.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동물을 좋아했어요?라고요. 또 어떤 분은 '난 동물은 관심없어'라고 말해요. 이때마다 참 난감해지곤 해요. 예컨대 노동자를 주제로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사람은 '언제부터 노동자를 그렇게 좋아했나요?'라고 묻지는 않잖아요. '난 노동문제에는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지도 않죠. ...중략.... 제가 비인간 동물들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그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모든 약자 중의 약자이기 때문이에요. 본문 192쪽 중에서]
[그래서 저에게 채식이라는 건, 단순히 고기를 안 먹는 게 아니라, 강요된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 관습과 자본과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섭식을 하겠다는 선언이에요. 그러니까 무엇을 못 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인 것이죠. 본문 205쪽 중에서]
감독님의 말 중에 채식주의자들에게 콩고기 먹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들이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만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실천을 노력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식을 하는데 어렵기 때문에 고기를 먹던 습관 등을 채식으로 옮겨 가긴 위한 중간 과정 같은 거라고 이야기하죠. 우리는 실천하지 못하고 선택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고기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선택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동물, 인간과 인간이 아닌 동물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결국 공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지요. 알면서 야생동물은 살리지만 지구 환경의 위협이 되는 축산 사육은 끊임없이 양산한다면 모순적인 것이죠. 모순을 바로 잡아 가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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