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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는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라는 소곡집에 수록된 [르 말 뒤 페이] 가 언급이 되는데.. 쓰쿠루가 아직은 친구들 그룹에 속해 있을 때, 시로가 자주 연주하던 곡이기도 하고, 대학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하이다가 가져온 음반 속의 곡이기도 하다. 쓰크루가 성인이 되어 이 곡을 듣고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은 하이다와 함께 그의 방에서 그가 가져온 레코드를 듣던 와중에 이다. 그는 제목도 모르고, 작곡가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조용하고 애절함이 가득한 그 음악이 문득 기억이 난 것이다. 단음으로 천천히 시작해서 이어지는 인상적인 테마와 안온한 변주를. 쓰쿠루는 그 곡이 뭔지 하이다에게 묻는다.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예요.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 있죠. "Le Mal du Pays. 프랑스어예요. 일반적으로 향수나 멜랑콜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려운 말이에요." "내가 아는 여자애가 자주 그 곡을 쳤거든.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는데." "나도 옛날부터 이 곡을 좋아했어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요. 그 친구라는 분, 피아노 잘 쳤어요?" "난 음악에 대해 잘 모르니까 잘 쳤는지 아닌지는 판단이 잘 안 돼. 그렇지만 들을 때마다 참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했지.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련한 슬픔으로 가득한데도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아." "그런 느낌을 줄 정도라면 아마 멋진 연주였을 거예요. 기교적으로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표현하기가 어려운 곡이거든요. 악보대로 그냥 쳐 버리면 아무 재미도 없는 음악이 되죠. 반대로 너무 감정을 많이 넣으면 싸구려처럼 보이고요. 페달을 어떻게 쓰는지 하나로도 음악의 성격이 확 바뀌어 버려요." 그때, 그들이 듣던 음반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인 라자르 베르만의 연주였다. 리스트의 피아노 곡들은 일반적으로 기교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평을 받는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라는 피아니스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리스트를 연주할 때 모두들 기교에 대해서 말하지만, 내가 리스트를 위해서 피아노 앞에 앉을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은 단 한가지. 침묵.이라고. 나는 리히테르의 음반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한 마디에서 그 만의 사색적인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키는 극중 하이다의 입을 빌어,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리스트를 가장 올바르고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라자르 베르만이라고 말한다. 화려한 기교과 장식 속에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는 독특한 깊이를 표현해낼 줄 안다는 얘기일 것이다. 자, 그럼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피아노 솔로 작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순례의 해]에 대해서 살펴보자. 1855년에 출판된 1권인 ‘첫 번째 해 스위스'. 그리고 1837년부터 1849년 사이에 작곡되어 최종적으로 1858년 출판된 '두 번째 해 이탈리아' . 마지막 '세 번째 해'는 딱히 부제로 국가명이 달려있지 않지만 대부분 이탈리아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1867년부터 1877년 사이에 작곡하여 죽기 3년 전인 1883년에야 출판되었다고 한다. 작품 전체를 완성시키는 데에 무려 4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여행의 인상을 기록한 일종의 음악적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음악이므로, 다양한 음악 어법을 만나볼 수 있다. 하루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La mal du pays]는 첫번째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첫번째 앨범 스위스 편이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소박해서 비가 오거나, 그늘진 풍경 같다면, 두번째 앨범 이탈리아 편은 조금 더 밝고, 발랄해서 강렬한 햇살 속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세번째 앨범에서도 다채로운 화성과 리듬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 에스테 별장 시리즈’는 참 아름다운데, 실제 피아노로 연주하려고 하면 꽤나 어렵겠구나. 느껴지는 곡이기도 하다. 인생은 복잡한 악보 같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 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 차 잇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올바른 음으로 바꿔 냈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사람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리란 보장도 없다. 사람의 행위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야만 하는 것일까? 어릴 때는 화려한 기교의 음악들만 대단하게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사색적이면서 서사적인 연주가 오히려 마음을 두드리는 걸 보면, 취향이 달라지는 것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은 것인지, 아니면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영향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극중에서 하이다가 두고 간, 박스에 든 세 장짜리 레코드는 아직도 쓰쿠루의 방에 있다. 쓰쿠루는 나고야에서 핀란드까지 이르는 긴 순례의 여정을 통해서, 과연 자신의 과거와 마주서고, 상처를 극복했을까. 쓰크루가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하는 것처럼, 인생이란 해석하기가 까다로운 복잡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자신있게 알고 있다고 믿은 누군가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처럼,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짐작하거나, 내가 이해하는 부분들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될 것이다. 사람이란 굉장히 복잡한 존재이고,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래서 참, 사는 건 재미있고도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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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리스트의 '순례의 해' 그 중에서도 르 말 뒤 페이에 대한 궁금증을 떨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시로의 피아노 연주에 이어 하이다의 LP까지 향수라는 이름으로 번역할 수 있는 르 말 뒤 페이는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통하며 특유의 흐린 분위기를 강조한다. 두달에 한번쯤은 클래식 음반을 구입하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는 터라 이번엔 리스트를 구입해 보기로 했다. '순례의 해'에 익숙해진다면 앞으로 책과 음악과 또 특별한 장소인 기차역 어느 하나를 만날지라도 나머지 두가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기차역에 홀로 앉아있던 다자키 쓰쿠루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검색해 보니 리스트는 화려한 테크닉과 수려한 외모로 '악마적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지닌 괘짜였던 모양이고, '순례의 해'는 그가 노년에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작곡했던 피아노 솔로곡이라 한다. 음악을 글로 표현하는 건 너무 어렵다. 풍성하지 않고 짤막한 단음에 쉼표가 많다. 볼륨을 한껏 높여도 잘 들리지 않고 어느새 한참을 멈춰버려 의아하게 만든다. 미풍이 어느덧 폭풍으로 변해 몰아치는 장면도 없고 가끔씩 금방 멈춰버리는 소나기가 있을 뿐이다. '르 말 뒤 페이'는 월광처럼 돋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짧은 단음 사이에 공간감이 느껴진다. 책에서처럼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다음 기차가 올때까지의 여백같은 느낌이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한장씩 있어도 좋은 음반인 것 같다. 책과 하루키와 잘 어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