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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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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 강사들이 TV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볼 때 마다, 저런 사람들이 언제부터 저렇게 활발하게 활동했을까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유튜브 때문인가. 워낙 많으니 가끔은 제대로 알 지 못하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나에게 최고의 역사 선생님은 이이화 선생님이다. 두 가지 때문이다.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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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 강사들이 TV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볼 때 마다, 저런 사람들이 언제부터 저렇게 활발하게 활동했을까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유튜브 때문인가. 워낙 많으니 가끔은 제대로 알 지 못하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나에게 최고의 역사 선생님은 이이화 선생님이다. 두 가지 때문이다. 1차 자료를 직접 다루고, 그 내용을 정말 재미있게 전달해 준다. 강연을 직접 듣지는 못 하는 책으로만 접했지만, 아직도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를 읽을 때 느꼈던 흥분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쓰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 재미가 약간의 과장이나 각색도 없이 1차 자료를 정확하게 다루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에 그 감동은 두 배가 됐다. 지금은 돌아가셨으니 그 아쉬움이 더하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있다. 이 책을 든 이유는 '동학'도 이제 지나 간 역사의 한 페이지 혹은 전라도라는 지역의 사건이 되어간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그렇게 깊게 '동학'을 다루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나라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읽기 시작했다. 

 

1권은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이유가 서술됐다. '집강소'를 통한 민주주의 실천이 기억에 남는다. 비록 불완전했지만. 또, 남접과 북접의 대립도 기억에 남는다. '동학'은 종교활동임과 동시에 사회적 '혁명'이라는 말을 다시 실감했다. 비록 과정도 곳곳에서 삐걱됐고, 결과도 미완성이긴 하지만, 누구의 말대로 결국 혁명이란 더 낫게 실패하는 것 아닌가. 

 

이이화 선생님이 적확하게 전달해주는 당대를 살아 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왜 여전히 동학농민군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되는 지 알 수 있었다. 좋은 책이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책이다. 

 

g********m 2022.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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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중간리뷰 #6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중간리뷰 #6" 내용보기
주화약에 따라 농민군이 해산한 뒤 조정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였던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의 군사들이 물러나는 것! 그리고 호남의 평온함을 만들어야 할 전라감사에 김학진이 임명됩니다. "편의종사"를 요구한 김학진 여기서 편의종사란 수령이나 장수가 현지 사정에 따라 임금의 결재를 받지 않고 먼저 일을 처리할 수 잇는 권한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전주에서 해산한 농민군은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중간리뷰 #6" 내용보기


주화약에 따라 농민군이 해산한 뒤 조정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였던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의 군사들이 물러나는 것! 그리고 호남의 평온함을 만들어야 할 전라감사에 김학진이 임명됩니다. "편의종사"를 요구한 김학진
여기서 편의종사란 수령이나 장수가 현지 사정에 따라 임금의 결재를 받지 않고 먼저 일을 처리할 수 잇는 권한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전주에서 해산한 농민군은 각자 살던 고장으로 돌아가 차분한 마음으로 지역의 폐단을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게 됩니다.
전봉준은 농민군이 고을 단위로 폐정의일을처리할 대도소, 곧 집강소 설치를 독려하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닙니다.

집강소를 아시나요?

군현단위로 설치된 집강소. 이를 통해 농민군은 면, 리를 넘어 읍 단위 고을의 행정력까지 장악합니다. 전라감사 김학진과의 바른 의견 조율로 의견 일치를 보여가던 관군과 농민군. 김학진은 "함께 국나에 대처하기 위해 감사는 도인을 거느리고 힘을 합해 전주를 지키기로 약속하자"고 제의합니다.
김학진과의 유대를 바탕으로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집강소는 수령들을 보조 또는 협조자로 끌어들인 농민통치기구였고, 반봉건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합니다. 이러한 집강소가 설치된 곳으로 김개남이 남원에 자리하면서 운봉과 금산 등지를 석권하였고, 손화중이 광주, 최경선이 나주에서 집강소를 운영합니다. 김인배는 순철을 김덕명은 금구의 집강소를 원평에 설치합니다.

평화롭게 잘 진행되면 좋았을 것을... 남원을 중심으로 임실, 장수, 무주, 운봉, 금산을 관할하던 김개남. 김개남은 노비, 백정, 승려, 장인, 재인 등이 중심인 "천민 부대"가 잇었는데 이들이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없애는 데 있어 과격한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지나가는 양반의 갓을 찢거나 폭력을 행사합니다. 완강한 반봉건 의지를 가지고 있던 김개남은 전라감사 김학진과의 타협도 거부하고 현직 수령들과도 마찰을 일으킵니다.


본디 집강소는 동학 교주 최시형이 포덕을 하면서 육임제를 만들어 각기 역할을 맡긴 데서 비롯된 것으로 종교 활동을 위한 일종의 점조직입니다. 농민군이 이를 변혁운동을 펼치는 곳으로 활용한 것인데 기층 민중에 의한 직접 통치기구로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농민군 집강소는 지방관의 역할을 대행하기도 하는데 조세, 공물, 군비 등 국가 수추의 징수를 수령 대신 담당했고, 형벌권을 행하였으며, 덕화를 펴고, 풍속을 장려하는 등의 일을 수행합니다.

농민군 집강소 기간 동안 도집강인 전봉준은 감사 역할을, 고을 집강들은 수령 역할을 대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강소의 농민군은 종, 상전, 백정, 양반, 남년노소 모두 예외 없이 서로 접장이라 부르며 만나면 맞절을 했습니다. 서로 동등한 호칭사용과 같은 자세의 절은 그들이 추구한 신분 해방과 평등의식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동등한 호칭을 통해 평등을 실현하고자 한 시도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동무(토바리시)'를 사용한 것을 처음올 꼽는데 실제 동학과 동학농민군은 러시아보다 최소 20년 앞서 평등의 호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순조로와 보이는 집강소 활동에도 점점 먹구름이 드리우는데 그 원흉은 바로 일본입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d*******9 2021.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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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중간리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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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의 첫 횃불이 시작된 곳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대한 항거입니다. 1894년 1월 10일 밤, 예동의 공터에 농민군과 고을민 수천 명이 모여들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죽창을 꼬나들며 임시 깃발인 석기를 들고 고부관아로 진격!! 군중심리는 계기가 생기면 한순간에 흥분해 발동하기에 이들은 전봉준의 지휘 아래 하나로 뭉쳐 11일 새벽 고부관아 동헌을 장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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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의 첫 횃불이 시작된 곳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대한 항거입니다. 1894년 1월 10일 밤, 예동의 공터에 농민군과 고을민 수천 명이 모여들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죽창을 꼬나들며 임시 깃발인 석기를 들고 고부관아로 진격!! 군중심리는 계기가 생기면 한순간에 흥분해 발동하기에 이들은 전봉준의 지휘 아래 하나로 뭉쳐 11일 새벽 고부관아 동헌을 장악합니다. 잽싸게 도망간 조병갑.

전봉준은 고부 봉기를 발판으로 삼아 호남뿐 아니라 전국 전역으로 봉기를 확대하려는 구상을 세웁니다. 이어 무장에서 농민군 훈련장을 만들고 전면적 봉기를 결행하기로 합니다. 3월 20일 창의소라는 이름을 내걸고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순으로 서명하고 포고문을 발표한 농민군. 이 포고문은 민씨 정권을 향한 전면적 선전포고였고, 벼슬을 독점하고 특권을 누리는 양반 유림을 향한 질타였습니다. 무장읍성을 점령하고 4대 명의라는 행동 강령을 공포한 지도부! 이들이 세운 4대 명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멋대로 잡아먹지 말라.
둘째, 충효의 마음을 다하여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셋째, 왜의 오랑캐를 섬멸하고 성스러운 길을 맑게 하라.
넷째, 군사를 몰아 서울로 들어가 세도가를 깡그리 없애라.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d*******9 2021.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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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중간리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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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은 1860년 몰락 지식인인 최제우가 "사람이 한울이다"라는 가치를 내걸고 창도한 종교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되 인간중심적 사화종교이며 나라와 시대의 모순을 고민하고 돕는 보국 종교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신분계층의 차별과 민중의 고통을 너무나 잘 이해한 최제우가 제시한 기도문으로서의 주문은 다음입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뜻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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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은 1860년 몰락 지식인인 최제우가 "사람이 한울이다"라는 가치를 내걸고 창도한 종교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되 인간중심적 사화종교이며 나라와 시대의 모순을 고민하고 돕는 보국 종교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신분계층의 차별과 민중의 고통을 너무나 잘 이해한 최제우가 제시한 기도문으로서의 주문은 다음입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뜻은 "한울님을 모셔 조화가 정해짐을 길이 잊지 아니하면 온갖 일을 알게 되니라"라는 뜻으로 동학도들은 이 주문을 외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주술적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주문은 최제우가 살아 있을 때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누구나 함께 평등한 세상, 즉 '개벽 사상'을 제시했던 최제우는 "이단"으로 유교의 가르침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1864년 대구에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3월에 열린 원평 집회에서는 강경파인 남접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데 그 중심에 녹두장군 전봉준이 있습니다. 원평집회에는 영광 불갑사, 장성 백양사, 고창 선운사 등 남도의 유명의 유명한 사찰의 승려들이 참여합니다. 유교사회에서 천대를 받았던 불교 세력도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두 집회에 대해 정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할 뿐 정세를 읽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세를 정화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보은 집회를 보고 "동요는 1893년에 시작되었다"라고 외칩니다. 이들은 약장수, 유학생으로 위장한 첩자를 보냄으로써 민심의 동향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왜 정부는 민심 동향 파악에 실패하고 오히려 외세가 더 정확하게 민심을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d*******9 2021.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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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중간리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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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임술년 2월 18일 진주성을 시작으로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개를 잡아 피를 입에 바르고 맹세합시다. 우리가 벼슬아치와 악질 토호를 징치합시다" 이들 봉기군의 분노는 보이는 양반마자 짓밟고 옷을 찢으며, 구실아치들을 잡아 곤장을 치고, 불구덩이에 던지고 짓밟아 죽입니다. (아... 분노한 민중의 무서움이라니..) ** 구실아치란 조선시대에 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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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임술년 2월 18일 진주성을 시작으로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개를 잡아 피를 입에 바르고 맹세합시다. 우리가 벼슬아치와 악질 토호를 징치합시다"
이들 봉기군의 분노는 보이는 양반마자 짓밟고 옷을 찢으며, 구실아치들을 잡아 곤장을 치고, 불구덩이에 던지고 짓밟아 죽입니다. (아... 분노한 민중의 무서움이라니..)

** 구실아치란 조선시대에 각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 입니다.

이들의 분노의 모습에 대해 조정에서 파견된 박규수는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립니다.

(49) 진주 병영에서 환곡을 들어먹고 나서 때를 틈타 한 고을의 두민을 불러 모아 술과 밥을 먹이며 유인하기도 하고 감옥에 가두어 협박하면서 6만 냥 가량의 돈을 집집에 배당하여 백징(白徵)하려 했다. 이에 민심이 끓어오르고 사람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임술록] 중 "박규수 장계"

** 백징(白徵) : 조세를 내지 않는 땅이나, 납세 의무가 없는 사람에게 이유 없는 세를 물리거나,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빚을 물리는 일.
이 1년간의 봉기는경상도 18고을, 전라도 54고을, 충청도 43고을에서 각각 일어납니다. 농업이 집중된 호남지역에서 봉기가 가장 많이 일어어납니다. 그러나 이때의 봉기는 앞으로 일어날 동학농민혁명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입니다. 봉기가 분산적이고 고립적이어서 이웃마을과 연계되지 못했고, 수령과 아전들은 남은 향촌 권력을 쥐고 아직 버틸 힘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봉기세력이 요구한 것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삼정에 따른 폐단을 시정하라
둘째, 부정을 저지른 수령과 구실아치를 처벌하라.
셋째, 관련 문서를 불태우고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무고한 죄인을 풀어주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미봉책으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합니다. 그러나 실제 삼정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그닥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봉기가 잠잠해지자 "삼정 개혁"또한 잠잠해지며 "너무 서둘러서 완벽하지 못할 염려가 있으니 옛 규례대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 "환자는 수백년 동안 지켜온 법제인데 하루아침에 폐지하는 것은 안타깝다"는 말로 개혁은 물거품이 됩니다. (어찌 변하는게 하나도 없는지..)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d*******9 2021.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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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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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억해야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서문-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무엇일까? 정조의 죽음일까, 귀족들의 횡포일까 아니면 그때 있었던 일들의 역사적 나열들일까? 아마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백성이라고 불리는 '농민'이 왜 봉기를 일으켰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처음 영남에서 일어나 호남에서 더욱 심해지고 호서 지방으로 번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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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억해야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서문-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무엇일까? 정조의 죽음일까, 귀족들의 횡포일까 아니면

그때 있었던 일들의 역사적 나열들일까?

아마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백성이라고 불리는

'농민'이 왜 봉기를 일으켰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처음 영남에서 일어나 호남에서 더욱 심해지고 호서 지방으로 번지고 있다." (P.52)

 

관리들이 농업 집산지를 선호했던 이유는 그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인맥과 뇌물을 통해 발령받은 이후 그들은 자신들이 쓴 만큼의 배로

걷어들이기 위해 수탈을 일삼는다.

그렇게 해서 농민들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직적이지 못한

농민들의 불길은 꺼지는 듯하다.

이후, 농민들의 불길은 활활 타오를 수 있을까?

 

"동학은 천주교마저 공인을 받아 선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현실에서도

공인받지 못해 끊임없이 탄압을 받았다." (p.85)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관직을 파는 행위들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1893년 보은과 원평에서 집회가 열린다.

그 중심에는 '척양척왜'의 정신이 있었으나, 두 집회는 하나가 되지 못한다.

각자의 요구 사항만 전한 채, 그렇게 해산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등장한다.

북접과 남접,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동학은 왜 하나로 뭉치지 못했을까?

 

1894년 1월 첫 횃불을 든 고부 봉기

드디어 동학과 난민이 결합한 첫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

고부 봉기를 시작으로 무장봉기 그리고 황토현 전투의 승리와 전주성의 점령까지.

그런 과정을 주시하고 정확히 파악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이었다.

첩자들을 통한 일본의 동학에 대한 주시는 우리나라의 지도층보다 훨씬 정확했다.

부정부패와 비리들 그리고 지도층들의 무능함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제의 침탈 야욕은

어쩌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그리고 집강소!

그렇게 농민들의 봉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계획은 서서히 동학 농민군은 물론 조선을 압박해오고 있다.

지나온 역사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때

우리는 어떠한 것에 근거하여 평가를 내려야 할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료를 가지고 평가할 때

어느 한쪽의 의견만을 고집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할 것이다.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는 사료에만 치중하지 않고, 동학 농민군들의 집회 장소와

전투가 벌어졌던 사진들과 현재의 사진들 그리고 그때 기록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교과서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알려준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일본의 첩자들에 의해 기록된 일본이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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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8 2021.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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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혁명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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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그리고 집강소! 그렇게 농민들의 봉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계획은 서서히 동학 농민군은 물론 조선을 압박해오고 있다. 지나온 역사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때 우리는 어떠한 것에 근거하여 평가를 내려야 할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료를 가지고 평가할 때 어느 한쪽의 의견만을 고집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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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그리고 집강소!

그렇게 농민들의 봉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계획은 서서히 동학 농민군은 물론 조선을 압박해오고 있다.

지나온 역사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때
우리는 어떠한 것에 근거하여 평가를 내려야 할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료를 가지고 평가할 때
어느 한쪽의 의견만을 고집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할 것이다.

 

#네이버독서카페#리딩투데이#리투#지원도서#이이화의동학농민혁명사#이이화#교유서가#한국사#동학#리투리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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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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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세상과 소통하는 실천 학문이에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해요. 역사를 모르면 미래를 열어갈 수 없어요.”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 中     이이화 (대구, 1937~2020, 84세) 역사문제연구소 소장과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이기도 했다. 2015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노교수의 삶에 대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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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세상과 소통하는 실천 학문이에요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해요역사를 모르면 미래를 열어갈 수 없어요.”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 

 

 

이이화 (대구, 1937~2020, 84역사문제연구소 소장과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이기도 했다. 2015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노교수의 삶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동학혁명을 단순히 질서에 반하는 무력시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그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실천의 동력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은 헛소리예요인류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미래를 만들었어요예를 들어 6·25 동란으로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탄 났어요그래서 우리가 전쟁은 더 하지 말자고 하는 거예요.” 노교수의 이 말을 들으면서아나톨 프랑스가 생각이 났다노벨문학상 10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책이 있었는데세계 1차대전을 겪은 아나톨 프랑스가 평화를 외치며 고뇌하는 글이었다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지켜본 노교수와 백 년 전의 작가와 수천 년 전의 철학가는 인간의 행복을 보는 시선이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이다. 300권이 넘는 저술 활동을 했는데전해지는 것은 몇 권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그래서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 대부분은 후대 추종자들의 해설에 유래한다고 한다학파의 철학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다평정평화자유무통 등의 행복의 조건에 들어간다고 한다쾌락과 고통은 선과 악의 척도가 되며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신은 인간을 죄인으로 보지 않으며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다고 말했다그의 철학 중에 세상의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빈 곳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기원전의 철학자가 세상을 미시적으로 해석한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따름이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1895년 동안 농민들이 무력봉기한 일을 말한다반란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역사가들의 시선에서도 옳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반란은 정부체계나 지도자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키는 것이지만혁명은 사회체제를 폐기하고 한층 고도의 사회체제를 세움으로써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반란은 특정 집단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발생할 수 있지만혁명은 자연적으로 인간사회 본연의 생물학적 특성이다인류는 유인원보다 물리적 힘이 약하다또한같이 진화한 네안데르탈인보다 뇌도 작았으며 약했다일부의 역사학자나 심리학자는 말한다호모 사피엔스라는 현 인류가 살아남은 이유는 협력과 소통에 있었다고 말이다인류는 서로와의 소통을 넘어 개들과도 소통하여 협력하여 사냥했다고 한다결국호모 사피엔스에게 협력과 소통하지 않는 지배층들은 진화를 방해하는 암과 같은 것이다.

 

 

이이화의 동학동민혁명사는 총 3권에 걸쳐 동학혁명에 대해서 사료를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다. 1권의 주요 내용은 굶주린 민중들이 농기구 대신 무기를 들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이야기한다가장 큰 요인으로 우선 세도정치라는 당파싸움을 들고 있고관직을 매관매직하고지방관리들은 잃어버린 재물을 충당하기 위해 농민들을 더욱 핍박하였다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은 썩을 대로 고이기 마련이다.

 

 

 

 

유학이라는 지배계급의 논리가 아닌실학의 발전과 나라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정부를 보며 민중의 삶은 더욱 불안해졌다굶주림과 침략이라는 두려움 속에 민중들은 스스로 뭉치기 시작했고집강소를 통해 마치 프랑스 시민혁명과도 같은 민주주의의 뿌리가 내려지기 시작했다인간의 질서와 도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한다당시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민주주의에 눈을 떴다.

 

 

 

 

a****0 2021.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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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혁명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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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월 첫 횃불을 든 고부 봉기 드디어 동학과 난민이 결합한 첫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 고부 봉기를 시작으로 무장봉기 그리고 황토현 전투의 승리와 전주성의 점령까지. 그런 과정을 주시하고 정확히 파악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이었다. 첩자들을 통한 일본의 동학에 대한 주시는 우리나라의 지도층보다 훨씬 정확했다. 부정부패와 비리들 그리고 지도층들의 무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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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월 첫 횃불을 든 고부 봉기

드디어 동학과 난민이 결합한 첫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
고부 봉기를 시작으로 무장봉기 그리고 황토현 전투의 승리와 전주성의 점령까지.

그런 과정을 주시하고 정확히 파악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이었다.
첩자들을 통한 일본의 동학에 대한 주시는 우리나라의 지도층보다 훨씬 정확했다.

부정부패와 비리들 그리고 지도층들의 무능함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제의 침탈 야욕은
어쩌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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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8 2021.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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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혁명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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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보은과 원평에서 집회가 열린다. 그 중심에는 '척양척왜'의 정신이 있었으나, 두 집회는 하나가 되지 못한다. 각자의 요구 사항만 전한 채, 그렇게 해산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등장한다. 북접과 남접,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동학은 왜 하나로 뭉치지 못했을까?   #네이버독서카페#리딩투데이#리투#지원도서#리투리포터즈#이이화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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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보은과 원평에서 집회가 열린다.
그 중심에는 '척양척왜'의 정신이 있었으나, 두 집회는 하나가 되지 못한다.
각자의 요구 사항만 전한 채, 그렇게 해산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등장한다.

북접과 남접,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동학은 왜 하나로 뭉치지 못했을까?

 

#네이버독서카페#리딩투데이#리투#지원도서#리투리포터즈#이이화의동학동민혁명사#교유서가#이이화#동학

s*****8 2021.08.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