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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쁨>으로 만났던 프랑스 작가 실뱅 테송의 <호메로스와 함께 하는 여름>을 읽었습니다. 마침 고전독서회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을 예정이라서 준비하는 셈으로 읽은 것입니다. <호메로스와 함께 하는 여름>은 작가가 <프랑스 앵테르>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앵테르>는 2013년부터 여름이면 <OOO와 함께 하는 여름>이라는 기획을 방송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프랑스 문학자 앙투안 콩파뇽이 <몽테뉴의 수상록>으로 방송한 내용을 역은 <인생의 맛>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트로이전쟁은 트로이와 아테네의 그리스 연합군 사이에 10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진 지루한 전쟁입니다. <일리아스>는 그 전쟁의 마지막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옛날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뛰어난 장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전쟁은 장수의 소모전인 셈입니다. <일리아스> 역시 누가 출전해서 누구를 죽였고, 그러다가 누구에게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별 재미가 없습니다. 실뱅 테송 역시 중학교 1학년의 교과과정에서 호메로스를 읽을 때는 지독하게도 지루해했다고 고백합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전하려면 청취자의 흥미를 끌 미끼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실뱅 테송은 일찍부터 극한 조건의 여행과 탐험에 나선 모험가입니다. 어쩌면 작가의 그런 배경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의 서재에서 방송을 준비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호메로스에 관한 자료를 들고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과 마주한 티노스 섬에 머물면서 원고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섬들은 하나 같이 에게해의 뜨거운 햇빛과 거센 바람 그리고 거친 파도로 유명합니다. 저자는 티노스의 돌풍에 질겁하고 빛에 넋을 잃어보고서야 호메로스의 시가 장소의 정기와 인간의 정기의 만남에서 탄생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40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에 대하여 몇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호메로스라는 맹인 천재가 나타나서 창작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음유시인들의 집단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사실 지중해 연안에는 서사시를 들려주는 음유시인들이 많이 활동했다고 합니다. 특히 에게해와 발칸반도에는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메로스가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트로이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형식으로 짜깁기해 놓았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 신화는 유럽문학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시구를 외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의 아주 희귀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라틴어 학습이 엘리트주의라는 프랑스 교육당국의 정책 때문에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자는 호메로스의 책을 펼치는 것은 느닷없이 폭풍과 전투의 따귀를 맞는 일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인용하여 세상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연히 호메로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용합니다. 가끔은 사실관계를 헷갈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트로이전쟁의 시발점이 테티스 여신이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하던 날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초대되었다고 적었습니다만, 사실을 초대받지 못한 에리스가 결혼식장네 나타나 황금사과를 던져놓은 것이 사단이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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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이 책은
이 책의 저자인 실뱅 테송은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펼쳐 들고 바다 앞에서, 방 창문 앞에서, 산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몇 구절 읽어볼 것을. (25쪽)
그런데 독자인 나로서는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다는 것, 말해두고 싶다. 바로 이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 를 공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해서 호메로스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고 난 다음에 두 책을 읽으면, 단지 몇 구절을 읽는다 하더라도, 보다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실뱅 테송, 프랑스의 작가·여행가이다. <일찍부터 극한 조건의 여행과 탐험을 일삼았고 두 발로 세상을 살며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노숙 인생Une vie a coucher dehors》으로 2009년 중편소설 부문 공쿠르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수상했고, 《시베리아 숲속에서Dans les forets de Siberie》로 2011년 에세이 부문 메디치 상을 수상했으며, 《눈표범La Panthere des neiges》으로 2019년 르노도 상을 수상했다. 그의 여러 책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은 2018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에세이이자 전 분야의 베스트셀러 6위에 자리매김했다. >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에서 2017년 여름에 방송된 [호메로스의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을 몇 번 읽으면서, 어느 다른 호메로스 관련 책보다도 호메로스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결과 다음과 같이 호메로스와 그의 책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에 실린 정보와 정보 제공방법이 탁월한데 있지 않나 싶다.
다음은 이 책을 읽고, 호메로스와 두 서사시 -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를 나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호메로스에 대하여
호메로스가 누구일까, 누구였을까 저자는 이런 말로 그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의 도입부에서 므네모시네를 소환한다. 기억의 여신인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인인 그는 그 멜로디의 정수를 받아 적기만 할 것이다. 텍스트가 여신의 입에서 나왔는데 필사자의 가면을 벗겨서 무엇 하겠나.(27쪽)
해서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를 찾아본 결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는 것, 기록해 둔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가멤논과 위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이 이루어졌도다. (『일리아스』, 1권 1-7행)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 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오디세이아』, 1권 1-2행)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다. 헤로도토스는 그가 “나보다 400년 앞서” 살았다고 주장한다. (28쪽)
이런 발언은 헤로도토스의 저술인 『역사』에 나오는 말이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는 나보다 기껏해야 4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생각되며> (『역사』, 헤로도토스, 2권 53)
그리스의 일반적인 생각과 호메로스의 개별적 가르침의 토대는 이것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제자리를 벗어나는 데서 오며, 삶의 모든 의미는 내쫓긴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있다는 것. (119쪽)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저자는 호메로스의 저작인 두 서사시에 대하여 그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어떤 때는 개별 작품을 논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두 작품을 연결하고, 비교하면서 작품의 특성을 잘 추출해 보여주고 있다.
『일리아스』는 우리에게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인간은 저주받은 피조물이라는 것. 세상을 이끄는 것은 사랑도 아니고 선의도 아니고 분노라는 것. (99쪽)
『일리아스』는 인간들에게 내린 저주를 주제로 한 노래였다. 반면 『오디세이아』는 집단적 광기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타고난 조건 - 자유롭고 존엄한 - 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고 애쓰는 인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108-109쪽)
『오디세이아』는 영원한 난파 야야기다. (53쪽)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괴물들은 폭풍을 의인화 한 것이 아니었을까? 밧줄을 때리는 바람의 울부짖음을 들으면 어떤 짐승이 깨어난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 않는가? 그 울음소리는 인간을 벼룩처럼 작아지게 한다. 바람의 고삐가 풀리면 그 분노는 얼굴을 갖게 되고, 그것을 그리는 건 시인의 몫이다. (55쪽)
마녀들의 섬도 솟아나는데, 마녀들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이 제 열망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로토파고이 족의 섬도 나타나는데, 이 왕국에 들어서는 자들은 나태한 쾌락에 빠져든다. (58쪽)
로토파고이 족은 선원들에게 “꿀처럼 달콤한” 로토스(Lotus)라는 식물을 준다. (126쪽) 로토스는 우리를 핵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기회들을 은유한다. (127쪽)
『오디세이아』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115쪽)
『오디세이아』는 도주에 관한 책이다. 신이 되게 해주겠다는 칼립소의 품에서 외딴 섬에서 마약을 하는 로토파고이족으로부터 혹은 연인들을 짐승으로 바꿔버리는 키르케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185쪽)
『오디세이아』는 탐험의 책이다. 그리스 섬들은 저마다 보물을, 부(富)를, 약속을, 위험을 감춘 채 에게 해 위에 떠있다. 각 섬이 하나의 세계다. 『오디세이아』는 그 세계들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다. (195쪽)
오디세이아는 우리의 척후병이다. (196쪽)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 사적인 균형을 복원함으로써 우주적 질서를 바로 잡는 것, 이것이 오디세이아』의 목표다.(108쪽)
『오디세이아』의 구성은 단선적이지 않고 연대순도 아니다. 현대식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107쪽)
『오디세이아』에는 플래시백이 가득하다.(110쪽) 오디세우스는 파이아케스 인들의 연회에서 한 음영시인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겪은 파란만장한 모험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는 익명을 지켰다. 그런데 갑자기 음영시인이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그를 익명에서 끌어낸다.(110쪽)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자기 정체를 밝힌다. 당신이 언제 우는지 말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소. (122쪽) 우리의 정체성은 눈물 속에 담겨 있다. (122쪽)
알키노스 왕의 요청을 받고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모험담부터 칼립소의 동굴에 이르기까지 야야기를 들려준다.(124쪽)
외눈박이 거인에게서 빠져나오면서 보여준 호메로스가 자기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저자는 그걸 언어유희로 해석한다.
외눈박이 거인은 오디세이아의 계략으로 눈을 잃고, 동료들이 누가 그랬는가 묻자, 오디세우스의 꾀에 넘어가 “아무도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그건 오디세우스가 자기 이름을 말해주기를 ‘아무도 아니다’라고 했기에, 자기 눈을 멀게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아무도 아닌 사람’이 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호메로스는 역사상 최초로 언어유희를 만들어낸 것이다. (129쪽)
키르케의 섬에서 : 신들은 인간들을 망각보다 더 고약한 위험에 직면하게 한다. 신체적 정체성을 잃을 위험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의 해독제, 즉 자기 자신으로 남게 해주는 묘약 덕분에 그 위험을 모면한다. (132쪽) 신들은 언제나 “고통을 감내하는 영웅”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영웅에게 겪게 한 위기들에 대한 해독제도 제공한다. (132쪽)
이런 말은 밑줄 긋고 새겨볼 만하지 않는가
호메로스는 다시 강조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힘들게 얻어진다. (143쪽)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내면의 이타케를 하나씩 품고 있다. 그곳을 되찾기를, 때로는 그곳으로 되돌아가기를 꿈꾸지만, 대개는 그것을 지킬 수 있기를 꿈꾼다. (167쪽)
호메로스가 말하는 ‘인간이란?’
인간은 비장하게도 애처롭다. 타인에게는 통찰력을 발휘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93쪽)
호메로스의 시 속에서 인간들은 신들의 도움을 받지만 동시에 일정한 자유를 고수한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운명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달려갈 수 있고, 때로는 어떤 조작도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254쪽)
인간은 언제나 신들을 탓한다. - 인간들에게는 편리한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책임을 전가하는 편을 선호한다. (259쪽)
인간이란 마치 나뭇잎과 같아서 때로는 대지의 열매를 먹고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때로는 생명을 읽고 시들어지지요. (『일리아스』 21편 464 -466행)
우리가 그리스 영웅들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길 좋아하는 것은 그들 중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멀고 추상적인 유일신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은 쉬이 과오를 범하는, 정감 가는 신들의 시대였다. 신들도 자기 내면의 구렁텅이 가장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172쪽)
호메로스가 말하는 ‘신이란?’
신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길에 개입해 시련을 부과한다. 하지만 몇몇 신들은 그가 그 시련들을 뛰어넘도록 도울 것이다. 여기에 고대 신들의 모호성이 숨어있다. 그들은 판관이면서 당사자다. 그들은 함정을 마련해두고, 그것을 뛰어넘을 도움의 손길도 제공한다. (108쪽)
이 책에서 가장 압권인 해설
<아테나가 아가멤논을 죽이려는 아킬레우스를 말리는 것은 내적 갈등의 은유가 아닐까?> (248쪽)
이 걸 읽고 그간 막연하게 느껴지던 『일리아스』가, 안개 때문에 뿌옇게 보이던 길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뚜렷하게 보이듯, 보이기 시작했다.
인용한 글은 일리아스 1권에 나오는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 국면에서 아테나 여신이 등장하여 아킬레우스를 진정시키는 장면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다.
해당 장면을 원문을 통해 읽어보자.
(아킬레우스가) 넓적다리에서 날카로운 칼을 빼어 들고 사람들을 모두 쫓아버리고 그 자신은 아가멤논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억제할 것인가 하고 그 마음속으로 이런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칼집에서 큰 칼을 빼는 사이에 [………………………………………………] 그는 은으로 만든 칼자루 위에 무거운 손을 얹어 큰 칼을 도로 칼집에 밀어 넣었고, 아테나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았다. (『일리아스』, 1권, 190-220행)
[ ] 부분 : ………아테나는 아킬레우스의 뒤에 서서 그의 금발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에게만 보일 뿐, 그 누구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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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 아테나 여신이 등장하여 아킬레우스의 머리카락을 당기고 있다.)
[ ] 부분에서 아킬레우스와 그를 돕는 아테나 여신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아테나와 아킬레우스의 대화) -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나는 그대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노라. 헤라가 보내셨노라. … 그러니 자, 말다툼을 멈추고 칼은 빼지 말아라.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그를 꾸짖어라. - 그대들 두 분의 말씀이라면, 마음 속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복종해야겠지요.
아가멤논을 죽이려든 아킬레우스가 마음을 다스리며 진정되는 그 순간을, 호메로스는 신화적 방법을 사용해 아테네 여신을 등장시켜 처리하고 있지만, 저자는 <아테나가 아가멤논을 죽이려는 아킬레우스를 말리는 것은 내적 갈등의 은유가 아닐까?> (248쪽)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니, 거의 3000년 전에 쓰여진 책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가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을 죽이려고 칼을 빼드는 순간, 그 찰나같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을까? 그걸 호메로스는 아테네 여신과의 대화로 돌려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VS. 텔레마코스
또한 저자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반론도 제시하는데, 타당한 주장이라고 여겨진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에 호메로스의 텔레마코스를 맞세우고, 결별이 아니라 재회에 토대를 둔 새로운 증후군을 만들어낼 수 있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고 어머니를 탐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되찾아 왕좌에 다시 앉히기 위해, 부모를 결합시키기 위해 싸운다. 반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는 개별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기원을 모독한다. (116-117쪽)
다시. 이 책은
그렇게 이 책으로 호메로스와 그의 두 서사시를 정리해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나름 기쁨으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에 가까운 일이라 여겨진다.
1957년 역사가 버나드 베렌슨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일평생 호메로스에 관한 자료들을 읽었다. 문헌학·역사학·고고학·지리학의 자료들을. 이제 나는 그저 순수예술로서 호메로스를 읽고 싶다.”
이제 호메로스에 관해 이정도 정리가 끝났으면, 베렌슨의 말처럼 이제부터 순수예술로서의 호메로스 작품을 읽어갈 차례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 이 책을 읽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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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문학을 덕질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며 랭보와 함께하는 여름을 읽었는데, 호메로스도 마찬가지다. 덕질의 기운이 느껴진다. 호메로스를 쓰기 위해서 미코노스 섬과 마주한 티노스 섬에 머물렀다고 한다. 호메로스가 살았을 곳으로 가서, 그가 보았을 풍경을 보고, 그가 느꼈을 바람을 느끼고, 햇살아래 서보고서야 비로서 호메로스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호메로스는 더이상 과거가 아니다. 호메로스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지금이 된다.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아직 되지도 않은 상태에 대해 알려준다. 21세기를 보라. 중동은 분열되고 있고, 호메로스는 전쟁을 묘사한다. 여러 정부가 잇달아 이어지는데, 호메로스는 인간의 탐욕을 그린다. 쿠르드 족은 그들 땅에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고, 호메로스는 찬탈당한 권력을 되찾으려는 오디세우스의 싸움을 이야기한다. 생태학적 재해가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데, 호메로스는 인간의 광기를 마주한 자연의 분노를 그린다. 요즘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이 시 속에서 메아리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역사적 요동이 호메로스의 예감을 반영한다. - 머릿말 중에서 |
![]() 호메로스는 유럽문학 최고 최대(最古最大)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자라고 전해진다. 그의 출생지나 활동에 대해서는 그 연대가 일치하지 않으나, 작품에 구사된 언어나 작품 중의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앞의 두 작품의 성립연대는 BC800∼BC750년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의 성장지로 추측되는 도시가 7군데나 되나 그 중 소아시아의 스미르나(현재 이즈미르)와 키오스섬이 가장 유력하다. 그는 이 지방을 중심으로 서사시인으로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이오스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앞의 2대 서사시 외에 『호메로스 찬가』라는 일군(一群)의 찬가집(讚歌集)이나 익살스러운 풍자시 『마르기테스』와 『와서회전(蛙鼠會戰)』 등 몇 가지 서사시가 그의 작품이라고 하나 이것도 불명확하다. 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동일인의 작품이냐의 문제로 오래 전부터 논쟁이 많았다. 18세기 후반 F.A.월프가 『호메로스 서설(序說)』(1795)을 발표한 이래, 그의 존재 그 자체와 작품의 성립과정, 2대 서사시의 작자의 진부(眞否) 등 여러 가지 시비가 있었으나 어떻든 두 서사시는 한 작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일리아스』는 1만 5693행(行), 『오디세이아』는 1만 2110행의 장편 서사시이며, 각각 24권으로 되어 있다. 두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로, 그 후의 문학 ·교육 ·사고(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고, 로마제국과 그 후 서사시의 규범이 되었다. 역사는 그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대 서사시의 저자로 기록했지만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가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이 두 편의 서사시를 정말 그가 썼는지 아닌지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으로 남은 두 서사시가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가장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최고의 걸작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상 호메로스와 시 암송, 인물, 그림 사진 포함 『두산백과사전』, 『인물세계사』 등 참조) ![]() ![]() 호메로스는 누구일까? 강가를 떠도는 고독한 천재일까, 아니면 여러 세기로 이어진 한 무리의 음유시인들일까? 1957년 역사가 버나드 베렌슨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일평생 호메로스에 관한 자료들을 읽었다. 문헌학·역사학·고고학·지리학의 자료들을. 이제 나는 그저 순수예술로서 호메로스를 읽고 싶다." 호메로스는 어떤 인물이기에, 그 옛날에, 그토록 예리하게, 우리가 아직 되지도 않은 상태에 관해 얘기할 수 있었을까? 2,500년 묵은 그 이야기들은 어찌하여 오늘날에도 이토록 친숙하게 울리는 걸까?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에서 2017년 여름에 방송된 '호메로스의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작가이자 모험가인 저자 실뱅 테송이 우리에게 제안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펼쳐 들고 바다 앞에서, 방 창문 앞에서, 산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몇 구절 읽어볼 것을. ![]() ![]()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자기 왕국인 이타케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이야기한다. 『일리아스』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와 그의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불러온 재앙이다. 『오디세이아』는 영웅과 탐험의 이야기이다. 하나는 전쟁을, 다른 하나는 질서의 복원을 묘사한다. 그러나 두 시에서 공통으로 엿볼 수 있는 점은, 늘 신들이 그 인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인간들을 조종한다는 것이다. 신들은 어디서나 끼어들고 주사위 놀이를 하고 인간들을 가지고 논다. 신들은 시도 때도 없이 복잡한 술책을 부리고, 끈질기고 충직한 인간만이 예측불허의 상황에 맞서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사리에 어긋나게 하지 않는 것, 어기지 않는 것, 이것이 호메로스가 생각하는 삶의 명예다. 이 책을 읽으며 호메로스의 강을 항해하다 보면 오늘날 점점 잊혀 가는 말들이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영광, 용기, 격정, 운명, 힘, 명예… 등.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영웅들은 힘뿐만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현재의 명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지략이 뛰어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며, 마지막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안다. 그들은 고귀한 목적을 위해 죽음을 택할 뿐, 결코 자신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가운데 최고”가 되었다. ![]()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인 샤를 페기는 2,000년도 더 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대해 “호메로스는 오늘 아침에 읽어도 새롭다. 어쩌면 오늘 신문만큼 낡은 게 없을지 모른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 책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인 〈프랑스 앵테르〉에서 여름을 맞아 야심작으로 기획한 〈OOO와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의 하나로 진행된 ‘호메로스’ 편을 출간한 것이다. 이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은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3일 만에 초판 3만 부가 매진되고 2018년 그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에세이이자 전 분야 베스트셀러 6위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이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데는 작가이자 모험가인 저자 실뱅 테송의 인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노숙 인생』으로 2009년 중편소설 부문 공쿠르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시베리아 숲속에서』로 2011년 에세이 부문 메디치 상을 수상한 작가이면서 일찍부터 극한 조건의 여행과 탐험을 일삼아온 그는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모험가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도 키클라데스 제도의 섬에 틀어박혀 에게해 해변과 햇빛, 파도거품, 바람과 함께 지내며 그곳의 정기를 느껴 보고서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물질적 본질에 다가설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 테송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몇 달 동안 나는 호메로스의 리듬에 맞춰 숨 쉬었고, 시의 운각(韻脚)을 들었으며, 전투와 항해를 꿈꾸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더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2,500년 전 에게해의 자갈밭에 던져진(혹은 상륙한) 한 시인이, 몇몇 사상가가, 철학자들이 세상에 내놓은 가르침이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무뎌지지 않았”다는 것에 감탄한다. 호메로스가 두 권의 책에서 묘사한 전쟁과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분노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호메로스는 어떤 인간이기에, 그 옛날에, 그토록 예리하게, 우리가 아직 되지도 않은 상태에 관해 얘기할 수 있었을까? 2,500년 묵은 그 이야기들은 어찌하여 오늘날에도 이토록 친숙하게 울리는 걸까? 테송은 “몇 편의 노래로 인간의 윤곽을 그려낸 것”이야말로 호메로스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호메로스 이후로 아무도 다시 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호메로스를 둘러싼 그런저런 논란에 끼느니 차라리 그의 시에 빠져들어 이따금 성경의 시편을 암송하듯 그 시들을 암송해볼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그러면 누구라도 거기서 자기 시대의 그림자를, 자신의 번민에 대한 답을, 자신의 경험에 대한 예시를 발견할 것이기에. ![]() “하늘의 빛,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안개에 감싸인 섬들, 바다에 드리운 그림자들, 폭풍우. 거기서 나는 고대 문장(紋章)의 메아리를 감지했다. 모든 공간은 저마다의 문장을 갖고 있다. 그리스의 공간은 바람이 때리고, 빛이 관통하며, 의미심장한 발현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다. 오디세우스는 고통의 배를 타고 그런 신호들을 받았다. 프리아모스와 아가멤논의 병사들은 트로이 평원에서 그 신호들을 지각했다. 지리(地理) 속에 산다는 것은 독자의 육신과 텍스트의 추상 사이의 거리를 넘어서는 일이다.” <p. 36> “오디세우스는 초라한 오두막에 머문다. ‘왕의 귀환’을 위한 싸움은 그곳,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돼지들의 오두막에서 궁정까지 이어지는 길은 유혈이 낭자할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재탈환과 복원에 대한 우화다. 호메로스는 그 오두막에서 이루어진 왕과 종복의 가장 아름다운 동맹을 그린다. 지금 오디세우스 왕에게는 지지자가 돼지치기 한 사람뿐이다. 그것이 그의 군대의 시작이다.” <p. 142> ![]() 테송은 수천 년 전의 신들과 전사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신들과 인간들이 벌이는 사건들을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며, 호메로스의 세상에서 일어난 이야기와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다르지 않음을 줄곧 환기한다. 그리고, 사랑과 증오, 권력과 복종, 유혹과 굳건함, 호기심과 용기… 등, 영혼의 불변요소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호메로스의 세계는 내일의 독자가 읽어도 새로울 것이라고 말한다. 호메로스가 트로이 평원의 전사들을 통해, 영웅들을 통해 그린 고대 그리스인이라는 인물상은 “인간의 표본”으로 지금도 우리를 경탄하게 한다. 아킬레우스, 헥토르, 오디세우스의 말은 오늘의 인간들에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탐욕과 욕망의 끝이, 무절제한 삶이, 자신을 망각하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호메로스가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이여! 너는 너의 무절제로 신들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왜 네 분수보다 높은 곳에 오르려고 그토록 고집을 부리는가?” ![]() 마지막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두 권의 사전을 참조해 두 편의 대서사시의 내용과 그리고 작자를 설명한 부분을 옮겨 제재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와 그리스 간의 전쟁을 다룬 서사시다. 황금 사과에서 비롯된 세 여신의 불화와 ‘파리스의 선택’, 지상 최고의 미녀 헬레네의 납치와 도주로 시작돼‘트로이의 목마’로 끝난 이 전쟁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일리아스』는 이 유명한 신화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하지는 않는다. 어느 고전학자는 어린 시절 『일리아스』 번역본을 선물 받고 나서 그 책을 판매한 서점 주인이 사기를 친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가 그 책에는 전혀 안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의 기원과 경과에 관한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시간 순서가 아니라 중간에 회고 방식으로 설명되며, 이것은 그리스 서사시의 특징인 동시에 그 영향을 받은 유럽 역대 서사시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대신 『일리아스』는 10년여에 달하는 트로이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이야기에 집중된다. 이 서사시의 실제 주인공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다. 서두에서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싸우고 나서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그리스 군은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 군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하며,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앞서의 맹세를 철회하고 전투에 복귀한 아킬레우스는 결국 헥토르를 죽여서 원수를 갚는다. 그 와중에 아가멤논, 오디세우스, 아이아스, 디오메네스, 헥토르, 아에네아스, 프리아모스 등 양편의 주요 영웅들의 용맹과 지략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전투를 감상하며 종종 여기저기 참견하는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 『오디세이아』는 흔히 『일리아스』의 속편으로 간주되지만, 역시 두 편의 내용이 곧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 이후, 계속된 전쟁의 와중에서 아킬레우스는 ‘아킬레스 건’에 화살을 맞고 죽으며, 트로이는 ‘트로이의 목마’에 속아 무너진다. 승자들은 저마다 전리품을 잔뜩 챙겨 고향으로 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이런저런 불운이 겹치며 10년 동안이나 더 바다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오디세이아』 역시 『일리아스』처럼 이야기가 중간에서 시작되어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바다 요정 칼립소의 섬을 떠나 알키노스 왕의 궁전에 도착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모험을 회고하는 긴 이야기가 끝나면, 드디어 고향에 돌아간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집을 유린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아내와 재회하는 것으로 서사시는 마무리된다. ![]() 아돌프 부게로의 1874년 작. 그 웅장함이며 긴박감에 있어서는 『일리아스>에 미치지 못하지만, 『오디세이아』는 오랜 방랑 생활 동안 주인공이 맞닥트리는 갖가지 기이한 사건과 사물(대표적인 것이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 오디세우스 일행을 가둬두고 한 명씩 잡아먹는 키클로페스(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파이아케스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를 구출해 준 나우시카 공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을 속이기 위해 매일 베를 짜고 또 풀었던 페넬로페, 텔레마코스에게 부친을 찾아갈 방법을 조언하는 멘토르 등이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또 수많은 비유를 낳은 바 있다. 분량으로 따지면 『일리아스』 쪽이 더 많지만, 내용의 풍부함으로 보면 『오디세이아』가 단연 압권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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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시학과 "플라톤"시론을 읽으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 만났다. 플라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대해서 칭찬하면서도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오디세이아'라는 이름은 모험이나 여행을 이야기 하는 다른책에서도 자주 등장해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일리아스'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라는 어릴 때 그리스 로마신화와 함께 만화책으로 본 기억이 있다. 다시 '일리아스' 그리고 '오디세이아' 각각의 책을 함께 읽어나갔다.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각각이 서사시라는 것을 운율이 있다는 것을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책에서는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이해는 쉬었지만 운율이 묘미를 드릴수 없어 아쉬웠다. 호메로스에 대해서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호메로스 수수께끼'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아닌 무리의 여러 사람일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호메로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판소리"꾼들이 생각이 났다. 북을 연주하는 사람,노래를 부르는 사람, 여러명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장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호메로스에 대해서 그 비슷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호메로스의 시가 시들지 않는 것은 인간이 옷을 갈아입어도 여전히 동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평원에서 투구를 쓰고 있건 21세기의 버스 노선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건, 똑같이 가련하거나 위대하며 똑같이 보잘것없거나 숭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p.21) 이 구절을 읽으면서 니체의 "영원회귀"가 생각이 났다.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는 기원전 9세기의 인간이나 지금 AI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같은 고민과 같은 걱정을 하면서 같은 모습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도서관이 그 많은 모든책들도 인해 무너질 필요 없이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살펴보면서 플롯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이야기하는 "플롯"이다. 이 기법들은 현재 영화에 소설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플래쉬백"이라는 기법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 읽고 나서 "오디세이아"를 읽었을때 이미 "호메로스"가 이런 기법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넘어서는 탄성이 나왔다. 이렇게 오래 전에 이미 이런 플롯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했을까? 호메로스는 정말 타고난 천재이거나 지구의 사람이 아닌 우주 어디에선가 와서 지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디세우스는 유토피아적인 유혹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 자리에 머무는 선택을 하지 않고 그의 목적은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며 그 목적지는 고향이다. 그리고 그가 떠난 고향에 다시 도달하려고 하며 그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제자리로 돌려 놓으려고 한다. 지금의 Covid-19 팬데믹과 여름에 많은 비로 인한 홍수로 힘든 상황을 보면서 한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히브리스'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의 성경에 미래에 대한 예언이 들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성경 이전에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그리고 '오디세이아'를 통해 미래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는 것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히브리스', 그리고 '스카만드로스 강'의 시신과 범람을 통해 '절제'와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경고를 무시했으며 강의 범람와 감염을 눈 앞에 보고 있다.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리아스'는 '록 오페라'한편을 보고 있는 느낌, 그리고 록 음악을 듣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오디세이아'는 지중해의 바람을 뚫고 폭풍우와 싸우면서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따라 여행하게 한다. 습하고 더운 여름 '호메로스'의 이야기는 여름의 그 습한 장마 속으로 들어가 때로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칼을 들고 창을 들고 그 여름과 싸우고 때로는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구고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가 함께 수영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호메로스와 함께 남은 여름을 마저 보내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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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시학과 "플라톤"시론을 읽으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 만났다. 플라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대해서 칭찬하면서도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오디세이아'라는 이름은 모험이나 여행을 이야기 하는 다른책에서도 자주 등장해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일리아스'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라는 어릴 때 그리스 로마신화와 함께 만화책으로 본 기억이 있다. 다시 '일리아스' 그리고 '오디세이아' 각각의 책을 함께 읽어나갔다.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각각이 서사시라는 것을 운율이 있다는 것을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책에서는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이해는 쉬었지만 운율이 묘미를 드릴수 없어 아쉬웠다. 호메로스에 대해서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호메로스 수수께끼'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아닌 무리의 여러 사람일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호메로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판소리"꾼들이 생각이 났다. 북을 연주하는 사람,노래를 부르는 사람, 여러명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장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호메로스에 대해서 그 비슷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호메로스의 시가 시들지 않는 것은 인간이 옷을 갈아입어도 여전히 동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평원에서 투구를 쓰고 있건 21세기의 버스 노선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건, 똑같이 가련하거나 위대하며 똑같이 보잘것없거나 숭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p.21) 이 구절을 읽으면서 니체의 "영원회귀"가 생각이 났다.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는 기원전 9세기의 인간이나 지금 AI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같은 고민과 같은 걱정을 하면서 같은 모습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도서관이 그 많은 모든책들도 인해 무너질 필요 없이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살펴보면서 플롯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이야기하는 "플롯"이다. 이 기법들은 현재 영화에 소설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플래쉬백"이라는 기법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 읽고 나서 "오디세이아"를 읽었을때 이미 "호메로스"가 이런 기법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넘어서는 탄성이 나왔다. 이렇게 오래 전에 이미 이런 플롯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했을까? 호메로스는 정말 타고난 천재이거나 지구의 사람이 아닌 우주 어디에선가 와서 지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디세우스는 유토피아적인 유혹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 자리에 머무는 선택을 하지 않고 그의 목적은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며 그 목적지는 고향이다. 그리고 그가 떠난 고향에 다시 도달하려고 하며 그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제자리로 돌려 놓으려고 한다. 지금의 Covid-19 팬데믹과 여름에 많은 비로 인한 홍수로 힘든 상황을 보면서 한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히브리스'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의 성경에 미래에 대한 예언이 들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성경 이전에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그리고 '오디세이아'를 통해 미래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는 것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히브리스', 그리고 '스카만드로스 강'의 시신과 범람을 통해 '절제'와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경고를 무시했으며 강의 범람와 감염을 눈 앞에 보고 있다.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리아스'는 '록 오페라'한편을 보고 있는 느낌, 그리고 록 음악을 듣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오디세이아'는 지중해의 바람을 뚫고 폭풍우와 싸우면서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따라 여행하게 한다. 습하고 더운 여름 '호메로스'의 이야기는 여름의 그 습한 장마 속으로 들어가 때로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칼을 들고 창을 들고 그 여름과 싸우고 때로는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구고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가 함께 수영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호메로스와 함께 남은 여름을 마저 보내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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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는 대작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남겼다. 이 두 작품 모두 분량도 분량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나도 지금까지 읽기를 망설였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이 책이 출판되었고 서평단에 선정되었다.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은 프랑스인인 실뱅 테송 (Sylvain Tesson)이 방송으로 녹음했던 것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원작 <Un ete avec Homere>를 백선희 번역가님께서 한국어로 옮겨주셨다. 347쪽의 분량 안에 호메로스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핵심적인 교훈과 생각거리들이 알차게 담겨있다. 마냥 짧지만은 않은 분량이고 신화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접하기가 어려울 독자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신화, 특히 트로이 전쟁 부분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나가기에 수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리스로마신화를 잘 아는 편은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아는데도 이 책을 읽는데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가 살던 시기에는 '문학'이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호메로스는 현대인들이 말하는 문학의 가치에 부합하는 모범적인 형태의 문학작품인 <오디세이아>를 쓴 것이다. 저자는 책의 초반에 요즘 세대에 호메로스의 작품을 공부하지 않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저자 실뱅 테송은 지금까지 수많은 문학, 고전 작품들이 생겨났는데도 굳건히 살아남고 자리를 지켜왔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잘 모른다는 점을 한탄한 것이다. 사실 나도 문학, 고전에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 그리고 서양사를 깊이 공부하기 전까지 '호메로스'라는 이름을 접한 적이 없던 것 같다. 서양사를 이해하고 서양 고전과 문학에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대작들을 찾기 전까지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게 되었다. 호메로스가 사람들에게 주는 날카롭지만, 현실적이고 나 자신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조언들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호메로스의 작품을 현대인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신화가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신들에게 비춰지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두 작품들에서 신들은 개인의 덕성과는 관계없이 인간을 도와주기도 하고 도와주지 않기도 한다. 또,호메로스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신들 조차도 인간처럼 비완벽한 존재로 여긴다. 이러한 호메로스의 신박한 생각을 알게 되며 이 책을 읽는 동안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행복한 무명으로 남는 것? 아니면 지옥으로 간 아킬레우스가 되는 것? 134pg." 우리는 끊임없이 최고가 되고자 노력한다. 영웅 아킬레우스도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업적을 남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는 지금까지 그 이름과 능력이 전해져 온다. 그런데 영웅 아킬레우스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지 의문이다. 그는 삶의 목표가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자신의 이름에 있었던 것 아닐까? 자기 자신을 위한 삶보다, 즉 현재보다 미래에 남겨질 빛나는 자신의 이름만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평범하지만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즐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아닐까?
로토스는 <오디세이아>에서 로토파고이족이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에게 준 아주 달콤한 식물을 뜻한다. 이 열매는 마치 아편처럼 인간을 기분 좋게 만들지만 동시에 무기력하게 만드는 독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로토스는 존재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디지털화된 현대 시대에서의 로토스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와 SNS라고 말할 수 있다. 각각 컴퓨터와 SNS로 대표되는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를 저자인 실뱅 테송은 우리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무력한 인간으로 만드는 로토스 딜러들이라 본 것이다. 호메로스는 그의 작품들에서 트로이 전쟁 등 고대 시대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 (주로 아킬레우스, 헥토르, 오디세우스 등)와 그리스로마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은 먼 옛날 일이라고 남일 같지가 않고 그저 허구적이기만도 하지 않다. 이것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영웅과 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의 행동과 실수들은 어딘가 모르게 지금의 우리의 모습들과도 닮아 있다. 마치 이 책의 저자가 <오디세이아> 속 로토스를 현재의 디지털 기기들로 비유했듯이 말이다.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 세상의 난간 앞에서 멈춰 설 줄 아는 것이 좋다. 222pg." 호메로스는 '무절제'의 덕을 매우 중시한다. 또 모든 일탈에 대해 경고한다. 이는 지나침이라는 것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침의 상태가 되기 전에 멈출 줄 알아야 된다는 뜻이다.
2. 어제의 강자들은 다음 노래에서는 약자가 된다. 3. 모든 일탈에는 대가가 따른다. 222 ~ 223pg," 어제의 강자들은 다음 노래에서는 약자가 된다. 이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평생 이기면서 살겠는가? 승자가 될 수도 있지만 곧바로 패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이 이치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절제하며 살아가는 힘만이 실패했을 때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열쇠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세가지 교훈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면 '적당함'과 '절제'의 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기'라는 행위를 생각해보면 된다. '먹기'는 사람을 포함한 생물체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어 배가 더이상 고프지 않음에도 정신적 공허함을 무언가를 계속해서 먹었다. 적당히 먹음으로써 충분히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었음에도 '스트레스를 풀려고 먹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기합리화를 한 적이 많다. '절제'라는 덕은 도덕책이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아닌 것 같다. 절제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훨씬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부터의 조그마한 노력들이 모여 비로소 절제의 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핵심 구절들이 부분 인용되어 수록되어 있다. 초록색의 깔끔한 글씨체가 참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내용을 적절하게 번역해서 옮겨주신 옮긴이 백선희 번역가님께 감사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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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적은 프랑스 라디오의 여름 특별방송의 내용을 정리한 서적으로 최근 출간한 서적 <눈표범>의 작가 실뱅 테송이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를 주제로 방송한 내용을 정리한 서적이다. 호메로스를 파악하기 위해 티노스섬에 머물며 호메로스의 본질에 접근하려 한 저자의 노력이 빛을 발한 내용이 독자들에게 호메로스의 매력에 빠져들 계기나 그의 서사시의 길잡이가 될 고마운 서적으로 평하고 싶다.
이 서적은 아홉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내용은 <일리아스>,<오디세이아>의 구절을 인용하고 그 글의 주제를 호메로스의 당시의 관점으로 설명하고 현대사회의 문제점이나 지향 점을 저자의 입김을 불어넣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일리아스>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헥토르, 아킬레우스, 프리아모스에 대한 이야기와 신들의 변덕과 불안정함을 이야기하며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모험과 복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저자는 오만, 방종, 무절제를 아우르는 단어인 ‘히브리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하며 현대의 탐욕적 자본주의, 정치, 종교, 환경파괴, 전쟁 등을 강하게 비판한다. 워낙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관심이 갖던 부분만 요약해 본다면, 3장에서는 무심코 지나쳐 기억조차 못했던 프리아모스의 품격에 대한 내용으로 복수심에 헥토르의 시신을 훼손하던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의 덕에 무릎을 꿇는 내용이었다. 4장에서는 세이렌의 중얼거림을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인류를 총체적으로 감시하는 것과 같다고 해석하며 디지털 노예로 전락한 현대사회를 비판한 내용이었다. 5장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문화의 위기>를 인용하며 호메로스 시대의 영웅의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면 현대 민주주의에 의해 모든 사람이 최고라는 세속화된 기독교의 명령이라 지적하며 내세의 수확을 기대하지 말고 현재를 자연에 거스르지 말고 살아가라는 충고를 담은 내용이었다. 6장에서는 아가멤논이 자신이 뺏은 아킬레우스의 몸종으로 인해 아킬레우스가 참전을 거부하자 그것은 신의 뜻이라 변명하는 내용이 직업 정치인들의 횡설수설과 비슷하다 주장하며 일리아스에 개입하는 신들 자체가 인간의 기분을 신으로 의인화했다는 정신분석학 이론을 제시한다. 7장에서는 고대의 적들은 항상 서로를 존중하며 전쟁을 하며 연설을 했지만 현대 국회의원들의 내분에는 매우 큰 증오가 자리 잡고 있다 지적한다. 8장은 가장 저자의 철학이 강하게 표출된 장으로 히브리스, 아리스타(무절제한 분노로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끔찍한 전과를 올리는 일화들)에 대해 심도 있는 정의를 내리는 부분으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내용이 많다 하겠다. 9장은 호메로스 텍스트의 신선함과 우수함을 극찬한 내용으로 끊임없이 수식어를 활용하고 유비(추론, 유추)들을 사용하며 현대 문법에서 꺼리는 형용사의 나열이 빚은 서사시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특히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케에 도착해 만난 ‘신성한’ 돼지치기로 묘사한 수식어 ‘신성한’의 의미에 대한 서술을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었다.
이 서적의 1, 2장의 초반부는 <일리아스>, <오세이아>를 읽은 독자들의 감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자연주의자다운 해석이 나타나며 독자들은 새로운 각도의 호메로스를 만날 수 있다. 저자의 <눈표범>을 최근에 읽어 이 서적의 서술은 매우 쉽고 가독성이 좋았다. 물론 호메로스의 저작을 약 5회 정도 읽은 것과 저자가 인용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모두 읽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전쟁 영웅들의 모험과 어떻게 죽는 것이 명예로운 가에 대해 과거에 집중했다면 이 서적을 통해 다양한 분야로 시각을 확장할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올 여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읽으며 저자가 강조했던 부분을 눈여겨보려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넓은 시야로 보려는 분들에게 큰 도움을 줄 서적으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리즈 중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한 여름>의 출간소식을 고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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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시가 시들지 않는 것은 인간이 옷을 갈아입어도 여전히 동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로이 평원에서 투구를 쓰고 있건 21세기의 버스 노선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건, 똑같이 가련하거나 위대하며 똑같이 보잘것없거나 숭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p23)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진 호메로스는 사실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보통은 시력을 잃은 음유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실존적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부분은 호메로스가 뿌리이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모든 문학작품들도 호메로스에 빚지고 있다. 왜 우리는 호메로스에 열광하는걸까? 아마도 그 답은 위에서 인용한 본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호메로스가 인간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신들이 세상을 주사위판으로 놓고 인간을 주사위 삼아 놀이를 하고 있을지언정, 인간은 유한성과 소멸성을 무기삼아 신들의 불멸성에 대항하는 존재, 신들이 쳐놓은 경계를 기어이 넘고야 마는 속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고 호메로스는 바로 그러한 인간의 히브리스(오만)를, 망각을, 어리석음을, 용기를, 그리고 결국엔 인생의 달콤함보다 집단적 기억으로 남기위한 명예를 선택하는 그 불완전한 인간을 노래하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특별한 프로그램의 산물이다. 프랑스의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에서 기획한 문학의 거장과의 만남 비슷한 그런 프로그램으로 <~와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 중 하나였다고 한다. 누구나 들어보았지만 읽어보지 못한 거장들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나본데 마치 얼마전까지 인기리에 방영되던 '책 읽어드립니다'의 작가 버전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몽테뉴, 프루스트, 빅토르 위고 등 쟁쟁한 작가들이 많이 다루어졌지만 호메로스가 단연 압도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하는 걸 보면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일리아스>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트로이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겪은 일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저자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구절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호메로스가 새겨넣은 의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풀어내고 그의 위대함을 칭송한다. 그리고 호메로스가 노래한 작품 속 인물들과 사건들이 어떻게 오늘날에도 기가막히게 데칼코마니처럼 적용될 수 있는지를 피력한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현재를 끌어다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서도 가끔은 틈새를 허용하는 신들과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에 순응하는듯 하면서도 자유의지로 반항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는 뜻이다. 비록 저자처럼 호메로스가 있었을법한 에게해의 바람을 맞으며 이 책을 읽을 순 없었지만 방구석 독서만으로도 호메로스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호메로스 시대에서 500년이 흐른 뒤의 시대를 살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킬레우스에게 느낀 질투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 손! 신을 어머니로 둔 행운? 목숨보다 명예를 선택한 용기? 아니다. 바로 아킬레우스가 평안한 삶보다 명예를 선택했음을 후세에게 널리 알려준 호메로스를 만났다는 것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이러니 말 다했다. 호메로스를 안읽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도 일말의 의심이 남는 이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저자와 호메로스의 궁합이 장난 아니다. 호메로스 이후로 500년이 흐른 기원전 334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킬레우스의 무덤을 찾아가서 트로이 전쟁의 무적의 전사를 행복한 영웅이라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용맹한 행위를 전하는 메신저로 호메로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명예는 클릭수 100만을 넘기는 데 있지 않고 '신의 영감을 받은' 음영시인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데 있었다. 문학을 전도하는 나는 그 시대가 그립다. (p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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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tvn "책 읽어드립니다" 같은 방송이 프랑스에도 있더라구요. 우리는 티비고 그쪽은 라디오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요. 몽테뉴, 프루스트,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뿐 아니라 호메로스가 그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는데요. 단연코 최고 인기는 호메로스였던 듯 합니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3일 만에 초판 3만부가 매진되고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해요. 프랑스 라디오이니 영영 들을 일 없겠지만 열광하며 책을 구입하셨을 독자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요. 저도 이 책! 등장하자마자 무지무지 궁금했단 말이죠>_<
전 호메로스 하면 기다란 수염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는데요. 호메로스의 정확한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같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끝에 신빙성 있는 가설이 세 가지쯤 추려졌나봐요. 첫째는 호메로스는 그냥 천재다! 라는 가설이에요. 트로이 전쟁 후로부터 4백 년이 지나 태어났지만 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이 괴물 같은 음유시인이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거대한 문학을 창조했다는 겁니다. 둘째는 호메로스는 한 사람이 아니라 음유시인, 음영시인들의 집단이라는 건데요. 이야기꾼 종족(?)이, 일종의 집시 같은 사람들일까요?, 수 세기에 걸쳐 수집한 텍스트를 추려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집대성 했을 가능성이 있대요. 셋째 가설은 호메로스가 표절자라는 거였어요. 그 시절 널리 알려져있는 전통 이야기들을 하나의 항아리에 모아 연금술사처럼 재구성하지 않았겠냐는 건데요. 브람스가 헝가리 농민의 춤곡을 재구성해 고전음악에 편입시킨 걸 예로 들었더라구요. 물론 가설 중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언제까지고 알 수 없겠지만요.
일리아스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편이었어요. 아마 매들린 밀러의 "아켈리우스의 노래"를 읽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 것 같아요. 아킬레우스는 어머니 테티스로부터 예언을 듣는데요.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를 죽이면 그 자신도 전사하게 될 거라는 거였어요. 그는 긴 시간 헥토르와의 정면 승부를 피합니다. 헥토르는 내게 잘못한 게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죠. 아가멤논에게 모욕 당한 후에는 아예 전투에서 빠져버리기도 해요. 그 바람에 그리스 진영에서는 전사자가 속출하지만 주변의 간청에도 아랑곳 없어요. 연맹의 안위보다 제 명예가 우선이거든요. 언제까지? 친우인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의 손에 죽어 그가 입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강탈 당할 때까지요. 이때만큼은 죽음의 예언도 그를 말리지 못해요. 되찾아야 할 명예가 너무도 컸으니까요. 신기한건요. 미친개처럼 날뛰던 아킬레우스가 정작 프리아모스 왕이 찾아와 간청할 때에는 정중하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는 거에요. 이또한 명예 때문이었구요. 그보다 앞서 헥토르가 죽기를 결심하고 아킬레우스 앞에 나선 것도 이 명예 때문이었대요. "아! 싸워보지도 않고 영광 없이 죽기는 싫다. 후세 사람들이 들어서 알게 될 위업을 이루고 죽으리라!!"(일리아스 22편, p181) 잊히지 않기 위해 집단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으리라는 야심으로 죽으려 하다니요. 소시민인 저로서는 도통 이해 못할 사고 방식이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는 사실도 부정 못하겠어요. (추신 : 훗날 저승의 아킬레우스를 오디세우스가 만나게 되는데 엄청 후회를 하더랍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데 명예는 개뿔~ 했다는 썰이 ㅎㅎㅎ)
작가 샤를 페기의 말입니다. "호메로스는 오늘 아침에 읽어도 새롭다. 어쩌면 오늘 신문만큼 낡은 게 없을지도 모른다."(p166) "2천8백 년 묵은 신선함"(p343)이라니 이토록 요물 같은 책이 또 있을까요? 올여름 더는 미루지 않고 무명으로 남지 않으려는 영웅들의 욕망 같은 일리아스와 이케아로 돌아가기 위해 갖은 고난의 항해를 지속하는 오디세우스를 만나고 말리라 다시 한번 작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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