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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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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화사의 발자취를 보면 유구하게 이어져 오는 경우보다는 실이 툭 끊어지는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 속에서 번창하고 멸하여 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특히 산업혁명이 시작되기전 사람이 두 발로 걷고 낙타와 말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경제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그 시대는 화폐로서 물건을 주고 받는 것보다는 물물교환이 주가 되었다.문화인류사에 족적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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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문화사의 발자취를 보면 유구하게 이어져 오는 경우보다는 실이 툭 끊어지는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 속에서 번창하고 멸하여 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특히 산업혁명이 시작되기전 사람이 두 발로 걷고 낙타와 말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경제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그 시대는 화폐로서 물건을 주고 받는 것보다는 물물교환이 주가 되었다.문화인류사에 족적을 남기고 문명의 광휘를 빛낸 것이 실크로드라고 생각한다.동서양의 문화가 시작되는 시발점이고 실크로드를 따라 카라반(대상인)들이 모래먼지 나는 사막 위를 걷고 고산지를 넘으면서 문물을 전파하고 교류를 했던 것이다.

 

 동서양 문물의 교류가 러시아와 영국이 주도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결과물과 돈황 석굴의 유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과 연구,호기심을 더욱 증폭해 나갔다.실크로드는 중국 한나라 수도 시안을 시발점으로 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광대역의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기에 동서양의 문화,역사,소통과 상생의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본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오기도 하고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서남아시아,인도 등을 왕래하고 교류하는 사이에 오아시스 도시가 형성되기도 했으며 중국의 비단을 주로 사갔다.이러한 교역이 7~10세기 초반에 이루어졌다.특히 돈황은 오아시스 도시로서 4~10세까지 중국의 불교 중심지였으며 러시아와 영국의 탐험대에 의해 돈황석굴이 발견되면서 잊혀졌던 실크로드의 문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일부는 제국에 의해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중국이 자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한 소이였던 것이며 그 소중함을 깨닫고부터는 외세,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여진다.

 

 실크로드 문화의 중심지 돈황에서 중앙아시아,남부 인도를 가려면 만년설로 유명한 고지대 및 사막들이 산재되어 있는데 그 험난하고 위험한 지형을 극복하고 동서양의 문물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톈산산맥,쿤룬산맥,티베트 고원,파미르 고원(세계지붕이라고 일컬어짐)을 비롯하여 타클라마칸 사막,고비사막 등의 요새와 같은 험난한 지형들로 이루어져 있다.베일에 가려진 돈황석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잊혀지고 사라진 제국들을 비롯하여 문물의 교류가 매우 방대하고 다양한 교류라인에 또 한 번 경이롭기만 하다.혹독한 기후 특히 8개월간 혹한이 지속되는 중앙아시아와 오아시스의 도시들의 기후는 황량하고 맹렬하기만 하다.

 

 비단의 원료인 명주실을 짜기 위해서는 뽕나무와 누에가 필요한데 비단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전설상의 황제 부인인 누조(嫘祖)이며 중국 비단이 지중해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2세기경이라고 한다.실로 비단의 교류가 유구하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으며,그리스.로마의 작가들은 비단을 쾌락과 퇴폐와 연관짓기도 했다.속칭 비단옷은 야시야시한 느낌이 없지 않다.명주실을 이용한 다양한 화집을 통해 중국의 공예기술,수준이 높다는 것도 말해 주고 있다.누에 및 뽕나무 산지는 중국 남서부부터 산동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골고루 생산되지만 주로 양자강 삼각주 지역이 주산지이다.

 

 중국의 비단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그리스.로마로 전래되고 중국은 서역에서 생산되는 참깨,완두콩,양파,고수풀,오이 등을 일찍이 한나라 시기에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렇게 물자 교역이 빈번하면서 중국은 교역과 이동을 통제하고 상품이 유입될 때 일종의 관세를 부과하며 밀수방지책도 마련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육로를 통한 교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바닷길을 통한 교역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품목이 진주,별갑,상아,무소뿔 등이다.몇 명이 무리를 이룬 상인들이 있는가 하면 보따리 장수와 같은 사무역을 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동서양의 문물교역의 정점인 돈황석굴과 천불동은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그 주위는 황량하고 건조한 기후 탓인지 목화밭,양,염소들이 많다.돈황설굴 안에는 다채로운 불상과 불탑,문서,그림들이 수장(收藏)되어 있는데 불교자료들이 위주가 된다.놀라운 것은 다양한 언어가 발견되고 다양한 종교의 문헌도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돈황석굴은 실로 동서양의 문물교류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가 없다.이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각종 문물과 문서들이 돈황석굴 안에 숨겨져 있었고 그 석굴을 폐쇄한 이유가 무엇일까.그것은 서하(西夏)앙국을 세운 탕구트족이 위협해 올 무렵,아니면 1000년에서 1010년 사이에 닫혔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19세기 러시아 및 영국 탐험대에 의해 돈황석굴이 알려지면서 폐허가 되다시피한 그곳에서 다양한 문물과 문서,가치있는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왕의 폐허 별장,땅 속에서 건져 올린 부처 두상과 괴수상 등이 관심을 끌게 한다.중국역사 전문학자이면서 영국 국립도서관 중국문헌 큐레이터인 프랜시스 우드저자 의해 동서문물 교류의 역사와 문화,언어,그림과 문서,탐험일지를 비롯하여 중국에 종교전파를 위한 흔적의 일환으로 다양한 종교자료도 돈황석굴에서 발견되어 인류학,고고학,종교학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꼼꼼하고 정교한 자료 및 해설이 이 글의 완성도를 높여 주고 있기도 하다.

 

 

 

 

 

 

 



j******6 2013.07.1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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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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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가 뚱뚱한 미녀였다는 거 아셨나요? 7세기의 여인상은 조그맣고 날씬하며, 입은 옷도 몸통이 늘씬하고 소매가 길고 좁은데   8세기 중반의 무덤에서 나온 여인상은 뚱뚱한 첩의 모습이 반영된 데다가   실크로드를 따라 유입된 중앙아시아의 복식까지 갖추고 있으며   7세기 미인들의 모자 없이 말끔하고 조그만 두상과는 딴판으로 큼직하게 속을 채운 터번을 머리위에 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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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가 뚱뚱한 미녀였다는 거 아셨나요?

7세기의 여인상은 조그맣고 날씬하며, 입은 옷도 몸통이 늘씬하고 소매가 길고 좁은데  

8세기 중반의 무덤에서 나온 여인상은 뚱뚱한 첩의 모습이 반영된 데다가  

실크로드를 따라 유입된 중앙아시아의 복식까지 갖추고 있으며  

7세기 미인들의 모자 없이 말끔하고 조그만 두상과는 딴판으로 큼직하게 속을 채운 터번을 머리위에 얹고,  

풍만한 몸매를 휘덮도록 낙낙하게 늘어진 가운을 걸치고 있다고 합니다. 

발가락 끝에는 두툼하게 솟아오른 덧신을 신고 있었는데,  

이것은 실크로드상에서 발굴되곤 하던 것과 같은 형태라고 하네요. 

흡사 복식사 공부를 다시하는 느낌이 듭니다.

책은 세계사 교과서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구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 같군요.

교과서 같은데에선 언급되지 않았던 얘기들도 많이 나오는 것 같구요.

실크로드를 훑는 중 서식하는 동물에 대한 얘기가 나올때는 학명까지 언급하는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이 가독성을 좀 떨어뜨리기도 하는 것 같지만  

전문적인 자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겐 유익한 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을 소개해 보면 

사막의 혹독한 추위에 대한 언급, 물이 종종 짰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온병에 든 물은 얼어 있었고, 푹 삶은 달걀도 얼어 있었고, 

차가운 닭고기는 두드리면 울리는 소리를 냈으며 과즙이 많은 쿠차의 배도 녹여야만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르코 폴로는 타림 분지로 가는 길에 겪은 추위를 이렇게 묘사했다고 하네요.

"파미르라고 하는 이 고원을 지나려면 꼬박 12일을 가야 한다.

이 12일 내내 사람의 거주지도 몸을 피할 만한 곳도 없다. 여행자는 반드시 식량을 지니고 가야 한다.

여기서는 고도와 추위 때문에 새 한마리도 날지 않는다. 그래서 내 장담하건대,  

이 엄청난 추위때문에 여기서는 불을 피워봤자 불빛이 그리 밝지도 않고 색깔도 다른 곳과는 차이가 있으며  

음식이 잘 익지도 않는다..."-p22~p.23 

 

실크로드가 가로지르는 사막을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1년이 걸리고, 가장 좁은 지점을 지나는 데도 1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하루 밤낮을 꼬박 가면 마실 물을 찾게 되는데 떫고 짠 물이 나오는 곳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물을 끓여 차를 많이 마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물을 구했던 모든 우물에는 소금과 소다가 잔뜩 끼어 있었는데, 암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어떤 때는 너무짜서 거의 마실 수가 없는가 하면, 무척 떫을 때도 있었다.

최악의 물은 위성류가 있는 지역에 있었다. 사막에 있는 위성류는 나무라기 보다 관목에 가까운 것으로 ,

물에 닿을 때까지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물이 지표면 가까이 있을 때에는 그 뿌리가 습한 땅속에서 썩으면서 물을 노란색으로 바꾸어버린다.

그 물은 탁하고 끈적거리며 말할 수 없이 떫고 불쾌하다." p.25

 

사막에 길을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단한 일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책의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끊임없이 흐르는 삶의 궤적

2. 반룡과 가는 양털-옥과 실크

3. 그리스-로마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그리스-로마로

4. 하늘이 버린 민족-흉노와 한나라 시대의 교역

5. 교역과 종교의 확산-토하라인과 소그드인

6. 중앙아시아 문물의 유행

7. 천불동-실크로드의 불교

8. 탕구르족, 몽골족, 네스토리우스교도 및 마르코 폴로

9. 장미 정원-명나라 사마르칸트에 간 사람들

10. 그레이트 게임과 실크로드

11. 아시아의 차가운 품에 사로잡힌 사람들-실크로드의 탐험가들

12. 사냥 전리품과 호랑이 창자-실크로드에서의 사냥과 이론화

13. 표본의 확보-오럴 스타인

14. 마지막 발굴-펠리오, 폰 르 코크, 워너

15. 아기 장군-1930년대의 실크로드 여행

 

다음은 개인적으로 필요한 자료를 옮겨 본 것입니다.

<고백록>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젊은 시절 빠진 적이 있다는 마니교에 대한 내용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마니교의 실체를 깨닫고 기독교에 귀의하여 사제가 된 건 다 아실테지요)

 

실크로드를 따라 소그드 상인과 여행자들이 중국으로 전한 또 다른 종교는 마니교이다. 

이 사실은 소그드인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니교는 기원후 216년 파르티아 왕가 후손의 집안에서 태어난 예언자 마니(Mani)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창시했다.

12세, 24세에 두 차례 계시를 받은 뒤 마니는 인도 북서부의 불교국가 쿠샨으로 신탁을 설파하기 위해 떠났다.

그의 신앙은 이란과 셈 전통을 혼합한 데에다 불교와 그리스도교까지 가미한 것이었는데,

이는 중세 유럽에서 프로방스의 카타르파(Cathar : 12~13에 번성한 그리스도교 이단 종파. 금욕을 강조 했다.) 운동과

발칸반도의 보고밀파(Bogomil : 10~15세기에 융성한 이원론적 종파)에 계승되었다.

일반적으로 영지주의(靈智主義)적이라고 간주되는 마니의 사고는 우주에 대한 이원론적 관점을 제시한다.

여기서 선은 악에 맞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비밀스러운 지식의 해석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정신은 빛과, 물질은 어둠과 동일시되었고,

선은 자신을 가두고 있던 어둠의 물질로 부터 달아나려고 발버둥치는 빛의 입자로 간주되었다.

마니는 조로아스터, 부처, 예수 등의 선대 예언자들을 망라하는 만신전(pantheon)을 꾸미고

자신을 이 예언자들의 후계자로 선포했다.

신앙을 이끄는 "선택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설파했으니, 이들은 흰 옷을 입고 채식을 철저히 고수하며  

엄격한 금욕을 통해 최후의 믿음을 지키게 될 자들이었다.  

호초에 있는 8, 9세기의 사원에서 발견된 마니교 책자의 한 면에는 흰옷을 입은 사제가 등장하는데,  

그는 힌두교의 신인 시바(Shiva), 브라마(Brahma) 그리고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시(Ganesh)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 페이지의 반대 면은 마니의 순교(276년 페르시아 왕 호르미즈드 1세의 명으로 처형되었다)를 기리는  

베마(Bema) 축전을 묘사하고 있다.  

솟아오른 모자나 흰색 터번 모양 모자 등 각색의 모자를 쓰고 흰 옷을 입은 검은 수염의 마니교도들이 카펫 위에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수박, 포도, 멜론등의 채식 성찬이 쌓여 있는 금제 삼발제단이 있다. 

마니의 믿음에 따르면, 사람(물질)은 제한된 수의 입자를 지니고 있는데 이 입자들을 번식을 통해 후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점점 성글게 된다.  

마찬가지로 음식의 준비는 채소를 비롯한 모든 생물에게 내재된 선(善)의 빛 입자를 나누는 것이었으므로,  

선택된 자들은 "이것은 내가 솥에 넣지 않았고 다른 이가 내게 준 것이니 죄 없이 먹노라"고 낭송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준비해주는 채식을 먹었다. 

이 신앙은 소그디아나의 수도이자 마니교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로 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되었다.

시리아어, 중세 페르시아어, 파르티아어로 쓰인 경전들이 소그드어, 투르크어, 중국어로 번역되었고,  

대부분 8, 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몇가지 문서가 돈황의 사찰 서고와 투루판 지역 몇 군데에서 발견되었다. 

위구르의 통치자 부구그 칸은 마니교를 받아들여, 몽골이 발흥하기까지 수백 년간 위구르의 국교가 되었다.

중국에도 마니교 사원들이 있었는데, 불교와 이슬람교에 점점 신도를 빼앗기긴 했지만 복건성 천주 근처의 초암에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사원의 안뜰에는 "광명의 부처 마니"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실내에는 전문가들이 볼 때 부처라기보다는 분명히 마니에 가까운 상들이 있다.  

러나 그곳에서 참배하는 "독실한 노부인들"의 모습은 불교도라는 인상을 주는 듯하다. 

마니교를 둘러싼 이와 유사한 혼란이 13세기 후반에도 발생했다.

당시 마르코 폴로는 아버지, 숙부와 함께 중국 남동부의 복주를 방문하여 신도 무리를 만났다.

신도들은 신앙에 대한 박해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폴로 일행에게는 뭔가가 알쏭달쏭했으니, 그들은 불을 숭배하지 않으므로 조로아스터교도도 아니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므로 불교도 아니며, 그 지역의 "사라센"(무슬림)통역관 말로는 무슬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폴로 일행은 그들의 종교 문헌을 연구하여 그 성서가 「시편」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그리스도교이니 몽골의 대칸에게 대신 잘 말해 주겠다고 했다.

마니가 그리스도교에서 차용한 것을 익히 아는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 신도들이 마니교도였음을 확인했다.

특히 복주는 천주와 초암에서 북동쪽으로 족히 15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지만 같은 성省에 있고,  

마르코 폴로는 여느때처럼 거의 정확하게 사정을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마니교도를 만난 이야기는, 1930년대에 톨레도에서 발견되었고 15세기 중엽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코 폴로의

「세계 기술」의 한 필사본에만 유일하게 실려 있다.

이전의 다른 판본들에서 보이지 않는 2백 절 이상의 내용을 담은 이 필사본은 약간 의심이 간다.

이 이야기만 놓고 볼 때, 13세기(또는 14, 15세기)에 실제로 마니교도들이 복주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15세기 중엽 "폴로"의 필사본을 만든 필경자가 이야기 하나를 편입시켰을지도 모른다. 

폴로 일행의 판단이 옳았는지 여부를 떠나, 소그드 상인들이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마니교 신앙은  

이런저런 아리송한 형태로 중국에 남아 있었다.p.89~p.93

s******7 2013.07.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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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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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프렌시스 우드 지음│박세욱 옮김│연암서가 刊   실크로드는 동서 문명교류의 육상통로로 수천년 전부터 이어진 길이지만, 팍스 아메리카나가 배제된 유일한 문명 통로이기도 하다. 그 시대에 초강대국 미국은 없었으니. 뒤늦게 실크로드에 뛰어든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이란과 고전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며아이러니하다. 역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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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프렌시스 우드 지음│박세욱 옮김│연암서가 刊

 

실크로드는 동서 문명교류의 육상통로로 수천년 전부터 이어진 길이지만, 팍스 아메리
카나가 배제된 유일한 문명 통로이기도 하다. 그 시대에 초강대국 미국은 없었으니. 뒤
늦게 실크로드에 뛰어든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이란과 고전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며
아이러니하다. 역사의 유구성은 타임머신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이미 마르코폴로와
동방견문록으로 명성이 높은 저자의 웅숭 깊은 소개로 실크로드를 쫓아가 본다.

 

이미 실크로드에 대해선 많이 읽고 다큐멘터리물도 많이 본 셈이라 개론은 대충 알아도
그 디테일에는 허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진짜 갔댔는지의 여부와
동,서 간의 수평적 교류보다는 일방의 약탈이 더 심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문제도 따져볼
셈으로 세세히 읽어봤다.  비단 실크로드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돈황의 비밀 석실을
탐험기라는 미명으로 가져간 행위는 대영제국의 엘긴마블 못잖은 문화적 약탈이라 본다.

 

BC 2세기, 중국의 북방 광활한 초원에서 발흥한 흉노는 중국의 아킬레스 건으로 조공을
받쳐 가며 달래야 했다. 공주를 인질로 보내고 흉노의 부마국이 됐으니 중화사상에 젖어
조공체제의 슈퍼 갑이던 중국으로서는 보통 쪽팔리는 역사가 아닐 게다. 궁색하게 '선물'
이라는 미명으로 흉노를 달래야 했다으니. 그러나 역사에는 공짜가 없는 모양이다. 유목
민족 흉노의 약탈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서역' 을 탐험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궁
극적으로 오늘날 광대한 영토를 가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지랄같이 거대한 이웃을 두
게 된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급기야 한무제가 2세기에 흉노를 궤멸시킨다. 그로부터 2 백년 후 4세기, 헝가리 평원에
홀연히 나타난 훈Huns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켜 로마제국을 멸망시키에 이른다.
서양인들이 보기에 지지리도 흉측한 모습을 가진 훈족과, 유목민 흉노의 상관관계 규명
은 꾸준하게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현안이다. 당연히 실크로드일 수밖에 없는 흉노의 스
텝루트에서 실마리를 찾아내야 하는 어젠다이기도 하다. 때마침 페이스북 홍익희 님의 '
기마민족이 유럽의 질서를 바꾸다' 에서 '외국의 사가들이 제기한 훈족의 한반도 기원설'
이 오비이락으로 확 와닿는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중앙아시아를 가로 지르는 텐산산맥을 머리로 하는 실크로드에서
비롯한다. 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책에는 빼곡한 비주얼이 풍부하게 실려 독감을 돋군다.



d****o 2013.07.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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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문명의 중심] 프랜시스 우드 지음
"[실크로드 - 문명의 중심] 프랜시스 우드 지음" 내용보기
기원전 206년부터 기원후 25년까지 한(漢)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에서 시작해서 란저우와 둔황을 지나 길은 둘로 갈린다. 북쪽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인 투루판, 쿠차, 악수 등을 통과해서 카슈가르로 이어지고, 남쪽은 체르첸, 케리야, 호탄 등을 지나 카슈가르로 이어진다. 카슈가르부터는 여러 길이 있어서 간다라와 탁실라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로, 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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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6년부터 기원후 25년까지 한(漢)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에서 시작해서 란저우와 둔황을 지나 길은 둘로 갈린다. 북쪽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인 투루판, 쿠차, 악수 등을 통과해서 카슈가르로 이어지고, 남쪽은 체르첸, 케리야, 호탄 등을 지나 카슈가르로 이어진다. 카슈가르부터는 여러 길이 있어서 간다라와 탁실라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로, 다마스쿠스나 콘스탄티노플로 연결되었다. 이것이 바로 2천 년간 동양과 서양을 잇는 비단길, 실크로드의 경로라고 한다.

 

<실크로드 - 문명의 중심> (2013, 프랜시스 우드 지음, 연암서가 펴냄)은 영국 국립도서관 중국 문헌 담당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중국 역사 전문 학자가 지은 책으로서, 저자는 직업과 경력에서 알 수 있듯 중국 문헌에 능통하다.

책 서두의 '명칭의 표기에 대하여'에서 설명하듯, 실크로드를 둘러싼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역사를 기록했고,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명칭으로 가리켜 서술한 것들을 집대성하기는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런 작업을 완수해 준 저자 덕분에 우리는 실크로드를 둘러싼 오랜 역사와 민족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사막과 도적, 물 부족으로 대표되는 실크로드 여행의 어려움은 더위와 갈증에 강한 동물인 낙타의 사용, 여럿이 무리를 지어 무리를 꾸리는 것, 오아시스들을 연결해서 거점으로 사용하는 것 등으로 극복했지만, 역시 녹록하지 않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유래된 비단의 교역에서 저자는 비단을 제조하는 과정뿐 아니라 그리스의 철학자 세네카가 실크의 투명함 때문에 정숙함을 경고한 이야기와 더불어 집에서 취미로 누에를 기른 20세기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등 시간과 공간이 폭넓게 포함된다. 실크로드는 비단과 보석, 동물과 향료, 곡물 같은 상품들뿐 아니라 사람을 통해 종교와 문화등이 오고 간다. 진시황과 흉노, 동로마제국이 활약하던 실크로드는 십자군전쟁과 쿠빌라이 칸의 시대로 이어지고, 마르코 폴로와 라반 사우마의 여행기 등이 동반한다. 이후 영국과 러시아 등 제국주의 세력이 실크로드 주변을 압박하며, 스벤 헤딘과 오럴 스타인 등의 탐험가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실크로드 곳곳을 누볐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실크로드는 이제 부분적으로 복원되어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책은 종이 위의 기록으로만 기억된다. 상상력이 없는 이공계 출신의 내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책에서 묘사하는 실크로드의 공간과 사람과 문화는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 다시 다가왔다. 흑백이어서 그 화려함이 덜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서 그런 생생함을 더한다. 문화의 생성과 발전, 전파, 소멸과 파괴까지 역사의 다양한 면을 담고 있는 멋진 책이다.

y*****9 2013.07.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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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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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프랜시스 우드 지음 / 박 세 욱 옮김      “실크로드(Silk Road)”라는 로맨틱한 이름은 사실 최근에야 등장한 것이다. 이 용어는 끊임없는 여행을 암시하지만, 실제로 비단이라는 상품들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일련의 중개상과 루트를 통해 이동되었다. 중앙아시아를 가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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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프랜시스 우드 지음 / 박 세 욱 옮김

 

   “실크로드(Silk Road)라는 로맨틱한 이름은 사실 최근에야 등장한 것이다. 이 용어는 끊임없는 여행을 암시하지만, 실제로 비단이라는 상품들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일련의 중개상과 루트를 통해 이동되었다.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뻗어 있는 옛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전 구간을 실제로 가로지른 사람의 수는 매우 적었다. 초창기에 그들은 주로 다양한 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이었으나, 19세기부터는 탐험가, 지리학자, 고고학자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1271~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하고 그 여행기(동방견문록)를 쓴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유럽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루트를 전 구간 여행한 사람일까? 이 책의 저자는, 1장에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대해, 다른 여행자들의 기록을 비교하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않은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해서 기록한 부분들이 있다는 견해).

 

   이 책의 저자 프랜시스 우드(Frances Wood)는 중국 역사 전문학자로 현재 영국 국립도서관 중국문헌 담당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제 돈황 프로젝트의 운영위원이다. 저자는 1995년 마르코 폴로의 책(동방견문록)은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라 여러 여행기를 모아 놓은 것이라는 내용의 라는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갔는가?(Did Marco Polo Go To China?)󰡕책을 출간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실크로드의 시작부터 오늘날까지 발전하고 있는 풍부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15장으로 구성된 351쪽의 책으로, 각장에 대한 참고자료에가 미주로 처리되어 있고, 각 내용마다 필요에 의해 짤막한 설명들이 각주로 처리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이 책이 단순히 실크로드에 대한 설명이나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닌, 실크로드에 관한 충실한 학적 도서임을 알게 하며, 본 책의 내용들이 신빙성이 있는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연구되어 졌고, 기록되어 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동양의 신비함을 탐험하기 위한 서양의 탐험가들, 지리학자들 그리고 고고학자들의 탐험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실크로드 탐험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의 여행지가 아니다. 만년설이 쌓여있는 험준한 고산을 넘어야 하고, 물 한 방울이 아쉬운 사막을 횡단해야 만하는 죽음을 담보로 하는 탐험이었다. 문명이 서로 다른 민족들로 인해 소통이 쉽지 않아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당시 이 험준한 실크로드의 탐험을 감행했던, 탐험가, 지리학자, 고고학자들의 발자취를 섬세하게,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삽화와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당시의 실크로드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독자 역시 탐사대의 일원으로 현장에 함께 있다는 착각을 하리만큼 현장감이 있다. 각 지역의 지명 등, 여러 명칭들을 사용함에 있어 가능한 대영제국의 입장에서의 음역이 아닌, 그 지역민들이 사용하던 명칭이나, 가장 널리 알려진 명칭들로 사용하였고, 필요한 경우 괄호에 다른 명칭을 함께 기록하므로 혼란을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동양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탐험을 시작한 이들도 있고, 탐험을 한 뒤 동양의 학문을 가르치는 학자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도 소개되고 있다. 코즐로프 등 많은 탐험가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저자는 유독 동방견문록을 기록한 마르코 폴로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다. 수많은 탐험가들에게 매력을 주었던 실크로드, 이 길은 단순히 여행의 기쁨을 주는 길이 아니라, 그 길가에 문명을 이루며 치열하게 살아갔던 수많은 민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열악한 환경가운데에서도 아름다운 문명을 이룩하며 살아갔던 사람들, 그들의 얽혀있는 삶을 실타래처럼 풀어 놓은 것이 이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동양 사람들의 조용함과 순수함이 서양 사람들의 진취적임과 탐욕적인 생각에 정복당하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징기스칸의 몽골 군대가 중국 대륙을 넘어, 서아시아의 끝자락 유럽의 관문까지 점령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후 수많은 문화재들을 파손시키거나, 자신들의 컬렉션(collection)으로 반출해 나간 사건들을 읽으면서 한 나라의 힘(정치적 힘뿐만이 아니라, 문화재 보호에 관한 열정)이 부족하면, 자신들의 보물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날, 우리 선조들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해외로 밀반출 된 것 역시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탐험가들이나, 지리학자들, 고고학자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문명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었겠는가. 문명의 중심 실크로드는, 읽는 내 자신의 마음에 이 땅에서의 치열한 삶에 대한 잠잠한 아름다움의 여운을 갖도록 해 주었다. 도전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도전의 열매는 어떤 사람들에겐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겐 미지의 세계를 알 수 있도록, 그리고 동경할 수 있도록 하는 창을 열어주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가방을 꾸려 어디론가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식 없는 사람들의 꾸밈없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h********2 2013.07.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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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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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현대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바로 전 세계로 유통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세계화' 시대라고  부르며  지구 정반대 지역의 뉴스나 정보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인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정보화 시대에  과거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동. 서양 문명과 물품의 교역로였던  '실크로드'를 읽는 시간은  더 신비롭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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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현대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바로 전 세계로 유통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세계화' 시대라고  부르며  지구 정반대 지역의 뉴스나 정보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인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정보화 시대에  과거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동. 서양 문명과 물품의 교역로였던  '실크로드'를 읽는 시간은  더 신비롭기만 하다.  '실크로드'라는 말은 역사공부를 통해,  관련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을 통해  많이 접하곤 했지만,  실제로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단순하기만 했다. 그저  아시아의 대국이었던  중국의 비단이나 향신료 등이  끝없는 사막으로 이어진  길을  사막의  이동에 용이한 낙타를 이용해 운반하며 만들어진 길이라는 것이 내가 가진 상식의 대부분이었다. 

 

  '실크로드'라는 잘 알듯하면서도,  별로 손에 잡히지 않던 것이 이 번에 읽은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시야를  넓히고,  그 무한한 역사의 흔적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흔하게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사진자료들은 관련된 내용을 더 흥미롭게 이해하기에 도움이 많이  된다.  이 책을 통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상식으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실크로드'라는 용어조차 수 천 년 전에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200여 년 전 독일의 탐험가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또한 실크로드의 전체 구간을 가로지른 사람의 수도 매우 적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비단길이 자  교역로 정도로 알고 있던 실크로드에 담긴 의미도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를 가진 광범위한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쉼 없이 이어 온 동. 서의 오고 감은 인류의 삶 그 자체였다.  그것은 일상이었고 별난 움직임도 아니었다.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삶의 궤적들이 특별해진 것은 서구인들의 이기심으로 인한 파괴  때문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책장을 펼치면서 읽은  옮긴이의 말 첫 부분인  '서구인들의 이기심으로 인한 파괴'라는 글이  책장을  덮으며  그 의미가 몇 배의  깊이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발전이나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 곳곳이 모두 한가지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은 서구에 의한 제국주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발전으로 인한  파괴 앞에서  과거로의 회귀나  각 나라의  독특한 문명을  갈망하며  그러한 것을 찾기 위해 오지로의 여행을  경험하기도 한다.  실크로드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들은 오랜 기간  그곳을 오간 이들의  역사를 그대로 품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석굴 속에 감춰진 문서들은  모래사막 아래에 깊이 숨겨진 모습 그대로 천 년을 넘게  세월을 버티고 누워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그렇게 잠들어 있던 유적에 대한 소문은 실크로드를  탐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떠돌고 있었고,  드디어  모래 속에 파묻힌 보물들이 하나 둘 인간의 손에 의해  발견되었다.  겨울의 혹한이나 사막의 모래바람은 그들을 발굴을 멈추게 하지 못했으며,   그로인해  셀 수 없이 많은 종이문서나 그림 등의 유물들을 손에 쥐게 된다.  어느 시대나 누군가의  탐험 이야기는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그들이 발견한 실크로드의 유물 발견, 특히 4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서  중국의 불교 중심지역이었다는  둔황 지역의  유물을   발견해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쉽게 읽히지 않을 수 있을 내용을 여러 가지 관련 사진자료와 함께 읽으면서 푹 빠져서  수 천년 전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시간이자,  지금도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담고 있는 그곳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YES마니아 : 골드 n***r 2013.07.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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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그 심연을 들여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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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중앙국립박물관의 '실크로드와 둔황' 기획전을 관람 할 기회가 있었다. 교과서에나 들어 본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중국 10여 곳의 박물관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8세기 혜초가 여행하였던 그 길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동서문명 교류의 젖줄인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일대 여러 오아시스를 경유하는 루트를 중점적으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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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중앙국립박물관의 '실크로드와 둔황' 기획전을 관람 할 기회가 있었다. 교과서에나 들어 본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중국 10여 곳의 박물관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8세기 혜초가 여행하였던 그 길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동서문명 교류의 젖줄인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일대 여러 오아시스를 경유하는 루트를 중점적으로 소개 한 흔치 않은 기회였다.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지만 직접 눈앞에 마주한 순간, 감동이란. 생각만으로도 아직도 가슴이 두군 거린다. 유물 하나 하나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들과 책을 통해 막연하게 동경해 온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상상이 끝없이 펼쳐져 한동안 낙타를 타고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꿈을 꾸곤 했었다. 모험과 환상은 나이와는 무관한가 보다. 

 

실크로드를 통해 수천 년 동안 동·서양 문명의 교류가 이어져 왔으며 어릴적 읽었던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이야기를 비롯한 목숨을 건 흥미로운 모험담과 에피소드를 탄생시켰다. 그래선지 비단길이란 이름만 들어도 낭만과 모험 그리고 여행이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영국도서관의 중국문헌 담당 큐레이터인 프랜시스 우드는 이 책을 통해 실크로드에 대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저자는 실크로드를 따라 삶을 면면히 이어 온 사람들의 지극히 일상적이고 진부한 모습들과 실크로드가 간직한 2천 년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다. 저자의 안내로 실크로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실크로드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 생명력과 삶의 궤적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책은 실크로드와 그 주변의 다양한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 서적, 사진 등 좀처럼 보기 드문 시각 자료들 담고 있다. 
비단이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유럽까지, 즉 중국에서 로마에 이르는 길들을 따라 운송되었고, 이러한 몇 갈래의 길들을 "실크로드"라 한다. 허나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약 7천 년 전부터 중앙아시아 사막 주변의 오아시스 도시들과 중국 사이에서는 물품들이 교역되었으며 실크로드 남쪽 루트에 있는 호탄 지역으로부터 운송되었던 최초의 물품은 옥(玉)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상품들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일련의 중개상과 루트를 통해 이동되었다. 실크로드의 전 구간을 실제로 가로지른 사람의 수는 매우 적었다. 초창기에 그들은 주로 다양한 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이었으나 19세기부터는 탐험가, 지리학자, 고고학자들도 등장했다. 실크로드의 황량한 지역을 이곳저곳 여행한 최초의 대탐험가는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이였으며 1천 년 가까이 돈황의 비밀 석실에 숨겨져 있던 유물들을 영국으로 가져간 오럴 스타인을 비롯해 펠리오, 폰 르 코크, 워너등 아시아의 차가운 품에 사로잡힌 탐험가들이 실크로드를 찾았다.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게 밝혀졌지만 마르코 폴로의 책은 여행자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정보였다. 저자는 탐험가들의 저서나 여행기록들까지 두루 섭렵하였으며 법현이나 현장에 관한 서술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참고로한 중국문헌들을 보면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박식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시들과 모래 속에 묻힌 보물들, 낙타와 카라반, 이국적인 분위기와 그와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들을 접하면서 실크로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영국과 러시아가 19∼20세기 초에 중앙아시아 내륙의 주도권을 두고 벌였던 패권 다툼인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결과물과 돈황 석굴의 유물이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실크로드를 비롯한 동서양 문물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대영제국은 인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 제국은 영토 확장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다. 이후 그레이트게임은 중국과 극동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함에 따라 막을 내지만  전쟁과 서구인들의 이기심으로 인한 인류의 보물은 파괴와 돌이킬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중국과 구소련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관광업으로 돈을 벌기 위해 철도망을 연결하고, 사막 여행에 필요한 낙타를 공급하는 반면, 파미르 고원 건너편의 아프가니스탄은 종족분쟁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마치 그레이트 게임이 결코 끝나지 않은 듯 초강대국들의 먹잇감으로 남아 있었다. 2001년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의해 바미안의 고대 석불에 탱크와 로켓 포격을 퍼부었으며 이로인해 수세기에 걸친 파괴행위와 풍상을 견뎌낸 불상이 심하게 훼손 되었다. 온갖 물리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의 생명력은 시들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강렬하게 매혹한다. 이런 매혹은 교역 못지않은, 어쩌면 훨씬 중대한 상상의 문제일 것이다. 물질적인 교역뿐만이 아닌 꿈과 이상과 상상이 함께 오갔을 수천년동안 이어 온 그 길을 그들은 이렇게 읊고 있다. 


우리는 그저 장사를 위해 여행하는 건 아니라네.

뜨거운 바람이 우리의 타는 가슴을 덮치는구나.

알아선 안 될 것을 알려는 욕망을 좇아

우리는 사마르칸트로 황금빛 여행을 떠나네.

k******2 2013.07.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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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옛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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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역사 수 천 년 인류의 삶은 동서양의 오고 감 그 자체였다. 이 오고감은 당연히 ‘실크로드’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었고, 실크로드는 자연 문명 교류의 대명사가 되었다. 실크로드 하면, 예나 지금이란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화려한 수단(繡緞)을 실은 낙타행렬, 북아시아의 전역에서 모여들어 당나귀, 양, 멜론, 건포도, 따위를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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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역사

수 천 년 인류의 삶은 동서양의 오고 감 그 자체였다. 이 오고감은 당연히 ‘실크로드’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었고, 실크로드는 자연 문명 교류의 대명사가 되었다. 실크로드 하면, 예나 지금이란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화려한 수단(繡緞)을 실은 낙타행렬, 북아시아의 전역에서 모여들어 당나귀, 양, 멜론, 건포도, 따위를 사고파는 여행자들과 이방인들이 북적이는 시장이 있는 오아시스 도시를 거쳐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사막을 건너는 광경 등을 연상하며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무척이나 운치가 있고 낭만적으로 생각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상 이상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었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7천 년 전부터 중앙아시아 사막 주변의 오아시스 도시들과 중국 사이에서는 물품들이 교역되었는데 최초의 물품은 옥이었다.(33면)

그리스-로마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그리스-로마로....

로마가 여러 속국을 거느린 거대국이며 신비한 것들을 생산한다는 관념은, 그 당시 로마의 힘에 표하는 경의였을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의 반대편 끝에서 로마와 맞먹는 힘을 지니고 진귀한 상품들 또한 로마에 못지않게 생산하는 중국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다.(59면)

 

외국인에 의한 실크로드의 고고학적 탐사는 사실상 랭던 위너의 탐험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제 오후 퇴근길에 라디오 뉴스를 통해서 “코리아 실크로드 2차 탐험대가 25일 경북도청에서 발대식을 갖고, 중국 시안에서 터키 이스탄불에 이르는 1만3천㎞(3만리) 대장정에 돌입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교수 · 청년탐사대, 역사기록팀 7명, 차량 응급구조, 행정지원팀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실크로드 2차 탐험대는 오는 7월17일부터 8월31일까지 45일간 중국 시안~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란~터키 이스탄불까지 7개국 1만3천㎞ 대장정에 오른다는 소식이었다. 이번 대장정에서 탐험대는 중국 둔황·서부지역,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터키 구간 등 실크로드 주요 권역별 문명교류사의 흔적과 신라역사를 재조명하는 다양한 탐험과 학술활동을 펼친다고 하였다. 21세기 신 실크로드의 개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도전이 멋있고 부럽다.

 

실크로드, 지구촌 각기 서로 다른 문명과 문명을 이어주는 소통과 교역의 중심, 흔히 비단길로도 잘 알려진, 실크로드, 용어는 많이 접하고 들어 봤지만, 그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다. 하지만 이 실크로드가 있었기에,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어 이어질 수가 있었고, 소통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실크로드를 통해서 어떤 문명과 유물들이 오갔고, 그 경로는 발견하게 된 경위 등, 실크로드와 그 시공을 초월한 변화를 기술한 실크로드 개론서로서 실크로드에 대한 입문서로는 아주 매력적이면서 적격인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책 곳곳에 수록된 사진이 칼라였다면, 한결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었다. 

d*****h 2013.07.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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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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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내가 처음 이 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중학교 역사 시간을 통해서 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때는 비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배웠던 것 같은데, 그 이름만으로도 하늘하늘 윤기가 흐르는 비단을 연상했었다. 그런데,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877년 독일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인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붙였다고 한다. 그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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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내가 처음 이 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중학교 역사 시간을 통해서 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때는 비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배웠던 것 같은데, 그 이름만으로도 하늘하늘 윤기가 흐르는 비단을 연상했었다.

그런데,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877년 독일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인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붙였다고 한다. 그 보다 훨씬 이전인 1세기경부터 중국인들은 서역으로 가는 북쪽 길과 남쪽 길에 자신들이 붙인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실크로드는 중국 서안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유럽의 로마에 이르던 교역로로 주로 중국의 비단이 로마로 전해지게 되었는데, 로마인들은 그당시에 중국에서만 생산되는 비단에 매료되었다. 이 멀고 먼 길, 그리고 혹독한 기후와 사막을 거쳐야 하는 지형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되었던 길이다.

1980년대 말부터는 실크로드 관광업이 크게 성행하면서 이 길에 대한 서적들은 대체로 여행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비하여 '프랜시스 우드'가 쓴 <실크로드>는 역사와 문화를 중심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이책의 저자는 " 학술적 연구 보다는 실크로드 2천 년의 숨결이 울려주는 미세하고도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마치 실크로드의 흐믈을 재연이라도 하려는 듯이 아주 평탄하면서도 생생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저자인 '프랜시스 우드'는 영국 국립도서관 중국 문헌담당 큐레이터이기에 실크로드에 관한 책들을 비롯하여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귀한 도판들을 책 속에 소개해 준다. 그와 함께 이곳에 관한 여행기, 탐험기 속의 흥미로운 부분들은 발췌하여  책 속에 담아 놓았다.

 

 

실크로드를 이야기하자면 자연스럽게 중국의 한나라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을 알아야 하겠기에 중국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그와 함께 중앙 아시아의 여러 세력들이 어떻게 흥망성쇠를 하였는가를, 그리고 유럽에는 어떤 물품들이 건너가게 되었으며, 어떤 물품들이 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특히 이 길은 비단이 교역되던 길이기에 기원전 1~2세기에는 이미 중국의 비단이 로마에 전래되게 되는데, 이것이 동방에서 서방으로 수출된 최초의 물품인 것이다.

이밖에도 실크로드 남쪽 루트에 있는 호탄지역으로부터 옥이 전래되기도 했고, 한나라때는 중앙아시아로 부터 천마, 무소뿔, 상아, 별갑, 빈랑, 포도 등이 들어 오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의 왕실에서는 코끼리, 사자, 타조, 맹수들을 궁에서 사육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이런 물류만 동방에서 서방으로, 서방에서 동방으로 건너갔을까.

종교를 비롯한 문화적 요소들도 교류를 하였던 것이다.

 

 

 

저자는 마르코 폴로 이전의 선교사들의 기록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럴 스타인의 탐험기 등을 읽고 그 속에 담긴 내용들 중에서 독자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내용들을 이 책 속에 담았기에 그 어떤 실크로드에 관한 책들 보다  깊이있고 흥미로운 실크로드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음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가 있다.

 

 

 

 

n******5 2013.07.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