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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5권 - 테오도르 몸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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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포에니 전쟁으로 시킬리아, 아프리카, 히스파니아, 사리디니아 등을 정복한 로마의 전쟁은 장소를 이동해 계속되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과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와 치른 4차례의 마케도니아 전쟁과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왕과 치른 시리아 전쟁은 로마를 희랍과 아시아로 진출하도록 부추겼고 이집트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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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포에니 전쟁으로 시킬리아, 아프리카, 히스파니아, 사리디니아 등을 정복한 로마의 전쟁은 장소를 이동해 계속되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과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와 치른 4차례의 마케도니아 전쟁과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왕과 치른 시리아 전쟁은 로마를 희랍과 아시아로 진출하도록 부추겼고 이집트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계승자를 자청하던 마케도니아, 시리아(아시아), 이집트는 로마에 무릎을 꿇었고 로마의 영역은 지중해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기원전 2세기 중엽을 지나며 로마에게 남겨진 과제는 한 세기 가량에 걸쳐 획득한 동맹이나 식민지를 어떤 식으로 통치해야 하는가였다. 이 시기의 로마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희랍인들이 조상의 지혜와 용기를 잊은 채 타락한 것처럼) 타락과 혼란을 겪고 있었고 국가를 위한 헌신과 그에 대한 명예를 존중하는 로마인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피호국들을 국경으로 하는 로마 제국의 경계가 엄청나게 확대된 것에 반해 징병제에 의존하던 로마의 상비군으로 모든 지역들을 지키기 힘들었기 때문에 외세의 침입에 취약한 상태였다. 게다가 로마 제국의 지배력이 공고하지 않았거나, 로마의 식민통치가 너무 가혹했거나, 혹은 피호국이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로마의 힘을 과소평가함에 따라 자주 반란이 발생했다. 

 

히스파니아는 속주를 다스리는 행정관의 무분별한 통치가 원주민들의 분노를 야기했고 이들을 독립을 향한 투쟁으로 내몰았다. 희랍에서는 아카이아 동맹 내 반로마 세력의 선동에 의해 로마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내 도시 국가들 간의 분쟁으로 번져 로마의 개입을 요하게 되었다. 훌륭한 조상의 은덕으로 로마로부터 예외적인 존중을 받았던 희랍이지만 자신들의 분수를 망각한 대가로 크고 작은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고 그들에게 주어졌던 자유는 크게 축소되었다. 아시아에서도 반로마 움직임이 일어났으나 이내 진압되었다. 로마군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면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반란은 국력의 낭비와 무의미한 희생만 남긴 채 진압되었지만 로마의 통치체계의 결점과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로마에는 타락한 귀족정과 그릇된 방향으로 성장 중인 민주정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어느 한쪽도 로마 제국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고 서로의 이권을 늘리기 위해 혈안인 상태였다. 귀족당파에는 진정한 귀족이 없었고 민중당파에는 스스로 판단할 진정한 시민도 없었다. 기원전 2세기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계층인 기사 계급이 급부상했고 이들의 입김이 입법, 행정, 사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혼란한 양상은 심화되었다. 

 

전통적 귀족과 기사계급이 부를 늘리는 방법으로 토지를 확장해 나가자 로마의 자영농들은 땅을 잃고 무산자계급으로 전락했는데, 거대 노장을 소유한 자본가계층이 노예를 이용한 경작으로 생산비를 절감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자영농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기원전 133년, 이러한 로마의 상황을 타개하고나 나선 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후손이랄 수 있는 그락쿠스 형제였다. 형인 티베리우스 샘프로니우스 그락쿠스는 호민관으로 선출되어 농지개혁법을 발의하고 본디 국가 소유였던 토지를 환수 후 자영농에게 분배함으로써 중산층(자영농)의 확대를 꾀했지만 반대파에 의해 살해당함으로써 완수하지 못한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 동생인 가이우스 그락쿠스는 형보다 훨씬 치밀한 계획 하에 전통적 귀족을 억누르고 자본가계급과 무산자계급을 선동해 개혁을 이루고자 했다. 가우우스는 그의 형이 시도했던 농지개혁법을 추친함과 동시에 무산자계급을 로마시로 불러들여 이들에게 (무상에 가깝게) 빵과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기사계급에게 사법권을 주는 등 전통적 귀족계급이 향유하던 권리를 빼앗아 제공함으로써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가이우스와 자본가계급 및 무산자계급의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기 보다 이권에 따른 결탁이었기 때문에 가이우스의 반대세력이 자본가계급과 무산자계급에 당근을 제시하자 가이우스에 대한 지지는 금새 무너졌다. 가이우스 또한 그의 형처럼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기원전 121년). 

 

기원전 2세기 말, 가이우스가 남긴 개혁의 불꽃이 사그라들 무렵, 로마는 두 차례의 위험에 직면한다. 로마의 든든한 아군이 되었던 누미디아의 마시니사 왕이 죽자 왕권을 둘러싼 내전이 발생했고 결국 왕위를 차지한 유구르타는 로마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아프리카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아프리카 전쟁의 초기 양상은 로마의 잇따른 패배로 유구르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는데 이는 유구르타의 뛰어남에 힘입은 바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로마군의 나태와 방종 그리고 군율의 헤이함에서 비롯되었다. 유구르타 군대에 수차례 패배함으로써 경각심을 느낀 로마는 신분은 낮으나 군대에서 실력이 입증된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사령관으로 파견한다. 마리우스는 로마군의 기강을 바로 세운 후 유구르타 군과 대적해 승리하고 끝까지 그를 추격해 결국 죽음을 선사한다. 이 때 유구르타를 잡는데 막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이다. 

 

아프리카 전쟁이 끝나갈 무렵 로마를 긴장시킨 또 다른 일은 마케도니아의 북쪽에 위치한 킴브리인들의 이주로 인한 로마와의 충돌이었다. 킴브리인들은 로마에 자신들의 거주지를 제공해줄 것을 당부했지만 로마는 이를 거절했고 국경 밖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는 구실로 이들을 함정으로 내몰아 몰살시키려 했다. 그런데 결과는 함정을 판 로마군이 되려 대패로 끝났다. 킴브리인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갈리아에 이르렀을 때 로마는 군대를 파견해 이들을 제압하고자 하였으나 빈번이 패배하였다. 결국 아프리카의 영웅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다시 사령관으로 임명해 킴브리인들을 상대하도록 했으며 마리우스는 국가와 시민의 기대에 부응해 킴브리인들에 대승을 거두고 이들을 서쪽으로 몰아낸다. 

 

로마가 우여곡절 끝에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속주들과 킴브리인의 문제에서 드러난 바는 로마라는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부의 파탄 상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단 점이었다.

 

아프리카와 갈리아에서 로마를 구한 영웅 마리우스는 위대한 장군이었지만 정치가로서의 역량과 교양은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민중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다는 점과 로마군의 전폭적인 신뢰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 때문에 로마의 제 1인자가 되었을 뿐 마리우스는 로마 제국을 이끌 재량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우스에 기대 개혁을 이끌고자 하는 무리들이 무산자계급과 퇴역군인들을 이끌고 마리우스에 합류한다. 마리우스와 그의 동지들은 가이우스 그락쿠스의 농지개혁법을 재개하고 징병제의 군제를 모병제로 전환했으며 무산자계급에 대한 복지혜택을 늘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귀족당파인 원로원을 억압해 그들의 권력을 빼았았다는 점으로써 로마 정치체제가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열었다는 것이다. 

 

마리우스와 그의 동지들은 개혁을 위해 같이 발을 내디뎠지만 그들의 보조는 썩 좋지 않았다. 우선 개혁안들이 대부분 귀족들의 권력을 뺏고 그들의 부를 환원받아 서민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마리우스들의 계혁은 이내 정부 지도층과 자본가계급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이 때 마리우스는 모호하고 애매한 입장을 견지했고 귀족당파와 민중당파 어느 곳에 서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갈피를 못잡았다. 마리우스와 달리 개혁의지가 투철했던 스타르누니스 등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만 전통적 귀족 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정책의 한계로 인해 궁지에 몰려 목숨을 잃게 된다. 

 

 

 

 

 

어느덧 <몸젠의 로마사> 5권까지 읽게 됐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마지막 권을 남겨두고 바람이나 쐴까하고 시작했던 것인데....

<몸젠의 로마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굉장히 딱딱한 느낌이 들어 마치 교과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계속 읽다보니 문장에 담겨있는 위트를 발견할 수 있었고 문장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원인인지, 역자가 원인인지 아니면 <몸젠의 로마사>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권에 비해 5권은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몸젠의 로마사>는 현재 5권까지 발매된 상태로 이전의 책들의 출간년월을 보면  아마 6권이 올해 후반기나 내년 상반기 중으로 발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적으로 로마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2인이 한니발과 카이사르인데 아마 <몸젠의 로마사 6권>에서 카이사르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된다. 그리고 꼰대 이미지가 강하지만 술라라는 중요 인물의 활약상도 그려질 것이다. 

 

언제가 될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빠른 시일 내에 6권이 발매되길 고대해본다.  

 

YES마니아 : 로얄 t******8 2021.05.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