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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만에 과학 이론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5백면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이 책에는 과학사 혹은 과학이론의 발달사를 쉽고 상세하게 개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세계관’이라는 용어의 기원과 의미를 보다 깊이 있게 음미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독서 경험은 나에게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원래는 자연과학에서 객관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세계관’은 어떤 지식이나 관점을 가지고 세계를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나 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본래는 우주 또는 세계 만물의 기원이나 본성 그리고 발전 등 자연 과학적 지식 체계를 일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처음 출간된 이래 지속적인 수정 작업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은 세 번째 개정판(3판)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더 이상의 개정판을 내지 않겠다고 하면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3판은 많은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끝가지 모든 장을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의 내용이나 체제가 매우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 책에는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어떤 학문이든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이론들의 경쟁을 통해서 그 오류가 드러나고 또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겪게되는 것이라 할 수 잇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세계관의 정의와 이론적 근거 등을 상세히 짚고 있는 1부의 내용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전체 3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1부는 ‘세계관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주로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충돌점들’을 세세하게 논하면서 이론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세계관이란 용어는 퍼즐 조각이 맞물리듯 서로 연결된 믿음 체계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믿음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로 엮이고 연결된 믿음 체계’라고 규정한다. 이 책에서도 퍼즐 그림을 통해 천동설을 주장했던 과거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대한 예시를 들고 있는데, 그러한 체계 속에서 중심 믿음과 주변 믿음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 하겠다. 때문에 중심 믿음이 깨지면 세계관이 바뀔 수밖에 없으며, 그에 반해 주변 믿음은 얼마든지 쉽게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겠다. 이 역시 인문학의 관점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설명 체계라고 여겨진다.
이와 함께 과학적 ‘진리’라는 것이 과연 실재할 수 있는가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결국 세계관에 따라 그 인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신뢰하지만, 그 역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겪은 일이 과연 실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도 결국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1부의 내용은 주로 과학철학 혹은 과학사를 논거로 들고 있지만, 세계관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과학철학이나 과학사는 인문학과 서로 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세계를 인식하는 과학적 체계의 역사를 개관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흔히 ‘천동설’로 대표되는 지식 체계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며, 당시의 경험적 과학 수준에서는 상당한 근거를 가진 이론이었다고 논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비슷한 듯 하면서도, 그 사이에 경험과 실험을 통해서 축적된 지식의 관점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세계관이 17세기까지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종교적 신념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으며, 결국 ‘지동설’이라고 할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지금도 이전과 전혀 다른 변화를 겪는 것을 일컬어 ‘코페르니쿠스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라고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망원경의 등장과 함께 발전하기 시작한 우주관, 그리고 뉴턴에 의해 보다 정밀해진 세계관의 문제들이 다양한 과학적 증거와 이론을 바탕으로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2부까지가 주로 이론과 과학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면, 3부의 ‘21세기 세계관의 퍼즐 조각들’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비롯하여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적 세계관이 21세기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진단을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숱하게 접했어도 나로서는 여전히 어렵게 여겨지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 등에 대해 이 항목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의 진화론에 대한 내용은 다윈과 동시대 인물인 월리스라는 인물의 연구 성과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는 더욱 정밀한 관측 기기의 등장으로 기존의 상황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가, 하나씩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현상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해석의 기저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즉 ‘세계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특정 과학자의 세계관에 의해, 오히려 과학적 진실이 오도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과학이론과 지식들에 대해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1부를 제외하면 여전히 구체적인 과학 지식에 대해서는 좀더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의 역사와 이론의 변화 과정을 접하면서, 얼마나 다양한 경험과 이론들이 명멸했고 또 그것이 축적되어 오늘의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의 설명을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과학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동일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면서, 앞에서 다뤘던 내용들을 상기시키는 저자의 설명 방식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세계관을 단순한 하나의 지식 체계로 설명하기보다 중심 믿음과 주변 믿음으로 엮어진 ‘퍼즐 조각’이라는 저자의 설명을 통해서, 앞으로 문학 작품의 분석에 적용한다면 더욱 풍부한 서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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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김희주 세종서적/2020.7.10.
우리의 세계관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점차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짚어보는 책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에서는 서양인들의 세계관 형성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 과학철학연구 결과를 역사적 사실을 예를들어가며 설명한다. 우리의 세계관 역시 서양식 교육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기에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 리처드 드위트는 미국 페어필드대 철학과 교수로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주 연구분야는 수리논리학과 철학적 논리학, 심리철학이다. 저서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은 과학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쓴 입문서다.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은 주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한다. ‘세계관’이란 용어는 퍼즐 조각이 맞물리듯 서로 연결된 믿음 체계를 뜻한다고 저자는 정의 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상에서 과학이 발전하면서 1600년대에 태양 중심으로 옮겨 갔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지금까지 익숙한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이론들이 주장되면서 다시 혼란에 싸이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3부로 나누어 설명한다. 1부에서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기본적인 쟁점을 소개하고, 2부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탐구하며, 3부는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진화론 등 최근의 과학발전에 따라 서구 세계관이 직면한 도전을 탐구한다. 진리란 무엇인가? 사실이 무엇인가? 참되고 사실적인 믿음과 거짓되고 비사실적인 믿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믿음을 참되고 사실적인 믿음으로, 다른 믿음을 거짓되고 비사실적인 믿음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탐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는 목적론적 설명이 타당한 과학적 설명이었다. 기계론적 설명이 우세한 현대 과학과 뚜렷이 대비되는 생각이다.(p.143)” 모든 자연적 물체에는 본질적인 성질이 있다. 본질적인 성질은 목적론적 성질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성질이 물체가 나름대로 움직이는 이유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우주는 목적론적인 우주, 본질론적인 우주였다. 지구중심세계관을 신봉했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역사상 최초로 천문학 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는 행성마다 각각 주전원과 이심원, 동시심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태양과 달, 별, 행성을 설명하는 상당한 복잡한 작도 모음집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태양 중심 체계다. 현재 우리는 태양을 태양계의 중심으로 보지만,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 두드러진 내용은 태양을 단지 행성들이 공전하는 중심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p.207)” 1600년대 초반의 발견들이 우주에 관한 특정한 믿음 몇 가지만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 관한 전반적인 견해를 변화시켰다. 목적론적이고 본질론적이며 지구와 인간이 중심인 우주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와 더불어 우리가 사는 우주의 형태에 관한 전반적인 견해도 기각되었다고 한다.
“빛은 가능한 한 가장 짧은 경로로 이동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체도 어떤 힘의 영향을 받지 않을 때는 가장 짧은 경로로 이동한다. 즉 물체가 일반적으로 측지선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이다.(p.381)” 일반상대성이론에서 태양 같은 물체는 시공간 만곡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에 따르면 이 만곡 때문에 화성이 이동하는 측지선이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가 타원처럼 보인다. 물체가 지구를 향해 떨어지거나 행성이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도는 이유가 물체들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 만곡 때문이라면, 중력을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기껏해야 편리한 설명일 뿐 그야말로 올바른 설명은 아닐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윈과 윌리스는 자연적인 선택 기제를 통해 이와 유사한 과정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바로 자연선택이다.(p.503)” 그리고 다윈과 윌리스는 한 개체군 내에서 이런 자연선택 과정이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면, 개체군 내의 변화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종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본래 개체군과 아주 다른 개체군이 나타날 수 있음도 깨달았다. 진화는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개체군의 진화적 변화는 목적론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과정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진화는 목표가 없는 기계론적 과정이다. 개체군은 생존하려고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기 때문에 생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는 목표 지향적인 목적론적 과정이 아니라, 자연적인 기계론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과 마찬가지로 진화론도 우리에게 아주 오랫동안 지켜온 기본적인 견해를 재고하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제 이전의 견해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p.558)” 어떤 새로운 견해가 등장할지 짐작하기에는 여전히 시기상조이지만, 1600년대 초 우리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반적인 세계관의 중대한 변화가 분명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추산되는 1,000만 종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우리가 이미 멸종한 종은 물론 현재 살아 있는 식물과 동물 하나하나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좋아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유기체와 비슷했다. 뉴턴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기계 부품들이 상호작용하는 것과 흡사하게 여러 부분이 다른 부분과 서로 밀고 당기며 상호작용하는 기계와 비슷했다. 최근의 발견들은 한 가지 아주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른 우주를 암시한다는 특징이다. 아스페실험에서 입증한 비국소적 영향은 그 어떤 연결도 없는 사건들의 즉각적인 영향을 허용하는 우주를 암시한다. 결코 우리에게 익숙한 우주가 아니다. 앞으로는 우리와 상당히 다른 우주관을 개발할 것이다. 그렇게 세계관은 또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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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김희주 세종서적/2020.7.10. sanbaram
우리의 세계관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점차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짚어보는 책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에서는 서양인들의 세계관 형성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 과학철학연구 결과를 역사적 사실을 예를들어가며 설명한다. 우리의 세계관 역시 서양식 교육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기에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 리처드 드위트는 미국 페어필드대 철학과 교수로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주 연구분야는 수리논리학과 철학적 논리학, 심리철학이다. 저서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은 과학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쓴 입문서다.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은 주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한다. ‘세계관’이란 용어는 퍼즐 조각이 맞물리듯 서로 연결된 믿음 체계를 뜻한다고 저자는 정의 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상에서 과학이 발전하면서 1600년대에 태양 중심으로 옮겨 갔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지금까지 익숙한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이론들이 주장되면서 다시 혼란에 싸이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3부로 나누어 설명한다. 1부에서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기본적인 쟁점을 소개하고, 2부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탐구하며, 3부는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진화론 등 최근의 과학발전에 따라 서구 세계관이 직면한 도전을 탐구한다. 진리란 무엇인가? 사실이 무엇인가? 참되고 사실적인 믿음과 거짓되고 비사실적인 믿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믿음을 참되고 사실적인 믿음으로, 다른 믿음을 거짓되고 비사실적인 믿음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탐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는 목적론적 설명이 타당한 과학적 설명이었다. 기계론적 설명이 우세한 현대 과학과 뚜렷이 대비되는 생각이다.(p.143)” 모든 자연적 물체에는 본질적인 성질이 있다. 본질적인 성질은 목적론적 성질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성질이 물체가 나름대로 움직이는 이유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의 우주는 목적론적인 우주, 본질론적인 우주였다. 지구중심세계관을 신봉했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역사상 최초로 천문학 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는 행성마다 각각 주전원과 이심원, 동시심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태양과 달, 별, 행성을 설명하는 상당한 복잡한 작도 모음집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태양 중심 체계다. 현재 우리는 태양을 태양계의 중심으로 보지만, 코페르니쿠스 체계에서 두드러진 내용은 태양을 단지 행성들이 공전하는 중심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p.207)” 1600년대 초반의 발견들이 우주에 관한 특정한 믿음 몇 가지만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 관한 전반적인 견해를 변화시켰다. 목적론적이고 본질론적이며 지구와 인간이 중심인 우주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와 더불어 우리가 사는 우주의 형태에 관한 전반적인 견해도 기각되었다고 한다.
“빛은 가능한 한 가장 짧은 경로로 이동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체도 어떤 힘의 영향을 받지 않을 때는 가장 짧은 경로로 이동한다. 즉 물체가 일반적으로 측지선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이다.(p.381)” 일반상대성이론에서 태양 같은 물체는 시공간 만곡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에 따르면 이 만곡 때문에 화성이 이동하는 측지선이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가 타원처럼 보인다. 물체가 지구를 향해 떨어지거나 행성이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도는 이유가 물체들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 만곡 때문이라면, 중력을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기껏해야 편리한 설명일 뿐 그야말로 올바른 설명은 아닐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윈과 윌리스는 자연적인 선택 기제를 통해 이와 유사한 과정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바로 자연선택이다.(p.503)” 그리고 다윈과 윌리스는 한 개체군 내에서 이런 자연선택 과정이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면, 개체군 내의 변화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종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본래 개체군과 아주 다른 개체군이 나타날 수 있음도 깨달았다. 진화는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개체군의 진화적 변화는 목적론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과정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진화는 목표가 없는 기계론적 과정이다. 개체군은 생존하려고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기 때문에 생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는 목표 지향적인 목적론적 과정이 아니라, 자연적인 기계론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과 마찬가지로 진화론도 우리에게 아주 오랫동안 지켜온 기본적인 견해를 재고하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제 이전의 견해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p.558)” 어떤 새로운 견해가 등장할지 짐작하기에는 여전히 시기상조이지만, 1600년대 초 우리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반적인 세계관의 중대한 변화가 분명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추산되는 1,000만 종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우리가 이미 멸종한 종은 물론 현재 살아 있는 식물과 동물 하나하나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좋아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유기체와 비슷했다. 뉴턴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기계 부품들이 상호작용하는 것과 흡사하게 여러 부분이 다른 부분과 서로 밀고 당기며 상호작용하는 기계와 비슷했다. 최근의 발견들은 한 가지 아주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른 우주를 암시한다는 특징이다. 아스페실험에서 입증한 비국소적 영향은 그 어떤 연결도 없는 사건들의 즉각적인 영향을 허용하는 우주를 암시한다. 결코 우리에게 익숙한 우주가 아니다. 앞으로는 우리와 상당히 다른 우주관을 개발할 것이다. 그렇게 세계관은 또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 생각된다.
(예스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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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계관'이라는 것은 다분히 '종교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대다수인 탓에 '세계관=종교관'이라는 도식적 설명이 태반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종교'를 다룬 책이 아니라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덧붙이자면, 이 책은 '과학적 세계관'을 다루며 인문학적 교양을 풍부하게 쌓아줄 '과학책'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어울리겠다.
그래서 이 책을 꼼꼼히 다루다보면 '과학사적 쟁점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과학적 사고의 변천사'를 낱낱이 밝혀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허나 내 깜냥으로 그런 '쟁점들'을 단 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썰을 풀어낼 방도가 없으니,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적 세계관', 다시 말해서, '과학관의 변천사'를 나열하는 정도로 소개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뉴턴 과학을 거쳐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진화론 등을 하나하나 일일이 열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하나만 고른다고 해도 '책 한 권 분량'일텐데...그럴 자신은 전혀 없다.
한편, 이 책을 읽다보면 '과학철학'과 '종교철학'의 대립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흔히, '중세철학'이 다분히 종교적 뉘앙스가 강하게 작용한 탓에 '과학'의 발달을 저해하였고, '마녀사냥'과 같은 비과학적인 방법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을 안타깝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의 보편적 관점(세계관)으로 봤을 땐,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중세 사회에서는 그런 '비과학'이 일상이었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 허나 정작 진짜 문제는 '과거의 종교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현실이다. 종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이 첨예하게 맞닥뜨린 뜨거운 현장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책하고는 별개의 내용이지만, 21세기 '보수교회'가 저지르는 행태는 정말이지 몰상식할 지경이다. '코로나19'가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감염으로 인한 고통과 후유증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관계자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본 수칙'도 전혀 지키지 않으며 자신들의 신앙의 자유만이 최우선이라는 듯이 벌이는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현재 가장 사망자가 많은 '미국의 보수교회'나 최근 다시 대규모 감염을 일으킨 '한국의 보수교회'의 작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비과학적인 행태'를 저지르는 까닭이 무얼까? 오늘날의 과학은 '자연의 신비'를 밝혀내는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지구와 우주를 포함한 모든 것을 '과학적 사고'를 통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명백히 밝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하느님의 축복'이나 '눈물'이라고 표현은 할지언정, 과학적인 관점에서 수증기가 포화상태가 되면 공기중에서 '응결'을 하고, 구름을 형성한 뒤에 얼음알갱이로 점점 커지다가 더는 늘어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지구의 중력에 의해 떨어져내리고, 내려오다가 기온이 따뜻하면 녹아서 비가 되고, 기온이 낮아 그대로 내리면 눈이나 우박이 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누구나 인지한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신앙인은 비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계시라도 받은 듯이 행동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창세기'를 믿으면서 '빅뱅이론'을 믿으면(?) 안 된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이게 뭔소린가 싶은 독자들이 더 많겠지만, '종교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도 이런 '믿음'을 고수하고 있단다. 특히, '보수교회'에서 말이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때문에 '지적설계자'를 등장시키는 일도 일어나고 있지만, 정말 '비과학적인 행동'은 우리가 굉장히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다.
이 책의 목적이 바로 이런 '비과학적인 행동'을 일삼는 부류가 더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부터 오래된 '목적'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시대별로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이 버젓이 돌고 도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에는 '과학'도 '철학의 범주'에 속했기 때문에 '과학철학'이라는 것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상당수 철학자들에 의한 '잘못된 철학'을 바로 잡고자 노력했던 이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던 거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중세의 교회가 이어받으면서 '지구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굳어져 버렸다. '과학철학'이라는 것이 '교부철학(종교철학)'과 만나 하느님이 창조한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못박아 버렸다. 그리고 하느님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일이 벌어져 버린 거다. 이걸 깨부수기 시작한 것이 코페르니쿠스의 '지구이동설(태양중심설)'이었고,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관측한 결과로 '코페르니쿠스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깨뜨린 이가 바로 '고전 물리학의 대가'인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서 '지구'를 비롯해서 우주의 움직임까지 모두 설명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만나면서 '뉴턴 물리학'은 조금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뉴턴 물리학'으로 거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좀 더 '먼 우주'로 시선을 돌리니, '기계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만 하는' 뉴턴 물리학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고,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거다. 하지만 과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하이델베르크의 '양자이론'의 등장으로 아인슈타인이 억지로 만들어낸 '우주상수' 없이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게 되자, 현대과학은 '양자론'이 대세가 되었다.
한편, 머리 아픈 '양자론' 설명은 건너뛰고, '진화론'을 설명하자면, 또다시 '믿음'이라는 주제를 건드리게 된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했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말처럼, 다윈의 '진화론'도 종교재판에 버금가는 맹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허나 '진화론'은 오늘날 과학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가 되었다. 물론 '진화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고 '추론'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빈틈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진화론'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과학이 '과거의 과학'과는 많이 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과학'에서 보면 '오늘날의 과학'도 부정되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고,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과학'은 종교와 다르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학적 방법'으로 추론과 검증을 하면서 얼마든지 깨어지고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 뉴턴에 의해 깨어지고, 뉴턴의 과학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아인슈타인도 하이델베르크에 의해 '수정'되었다. 오늘날의 '양자론'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저 먼 우주까지 인간의 과학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과학'이 언젠가는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 세계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게는 '비상식적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고, 크게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과학의 변화'를 실감하기 위해서다.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과학의 발달은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과학적인 행태'에 빅엿은 날릴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이 시급한 시기라고 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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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이다. 수학과 과학, 특히 물리는 손을 놓은지 20년이 훨씬 더 된다. 삶의 모든 일들을 수학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렇게 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내게 과학적, 수학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생각과 세계관의 폭을 넓혀주었으며,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재고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신의 세계관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보는 방식, 우주를 생각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왜냐하면 내가 믿고 있는 과학적인 믿음이 우리의 세계관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년부터 1600년 무렵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달 위의 영역에 있는 행성들을 이루는 원소가 에테르이기 때문에 그것의 특성 때문에 지구 주위를 끊임없이 돈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정지해 있으며, 달과 행성, 태양은 24시간 주기로 지구 둘레를 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떨어지는 물체는 물체의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더 빨리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1600년대 초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뒤집는 뉴턴 세계관이 등장한다. 뉴턴은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24시간 돌며,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물체의 고유한 행동은 외부적인 영향, 즉 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 뉴턴의 세계관은 마치 그림퍼즐처럼 체계적인 믿음이 맞물려있다. 이런 그림퍼즐 믿음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그래서 만약 그림퍼즐이 하나라도 틀리다고 판명되면 다른 퍼즐 또한 영향을 받아 수정되어져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천문학 이론들을 거쳐간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의 체계에서 우주의 각각의 행성에 대해서 등속운동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등장한 코페르니쿠스는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태양을 전 우주의 중심으로 보았다. 행성들이 완벽하게 원운동과 등속운동을 한다고 보았고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관점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보다 조금 더 뛰어났다. 1500년 대 말에는 두 체계가 평화롭게 공존했지만 대부분 천문학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대해서는 실재론적 태도를 지켰고,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해서는 도구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론적 태도란 프톨레마이오스가 화성의 원운동과 등속운동을 설명할 때 주전원이란 개념을 설명했는데 그것이 과연 실재하느냐가 중요한 태도이고, 도구주의적 태도란 주전원의 실재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이론이 관련 데이터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티코와 케플러 체계를 거쳐서 갈릴레이 세계관으로 발전, 진화되어 간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해서 행성들을 관찰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경험했던 사실들을 토대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해나간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관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이 등장했고, 양자론이라고 하는 실재적인 세계관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책읽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일주일에 걸쳐서 나누어서 읽었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지금까지 사람들이 가졌던 세계관의 흐름들을 한 눈에 딱 정리하여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해 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양자론에 대해서도 살짝 맛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사실 과학적인 사실들을 철학적으로 개념적으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입문서이다. 그런데 입문서치고는 꽤 어렵게 느껴졌다. 물론, 수포자, 과포자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과학보다는 철학을 더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특히 내가 흥미있게 본 부분은 바로 과학 이론들이 공약 불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말한다. 세계관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막대기에 작은 돌맹이를 매달고, 그 돌맹이를 앞뒤로 흔들리도록 나뭇가지에 매단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과학자들은 그 작은 돌맹이의 운동을 목표지향적인 본성으로 우주의 자연적인 자리를 향해 움직인다고 보지만, 뉴턴 전통의 과학작들은 줄에 묶여서 운동에 방해를 받는 자연적인 물체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공약 불가능성은 과학이론에서 사용한 용어, 개념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서로 다른 과학 이론들을 객관성을 가지고 비교할 수가 없다. 객관적으로 경쟁 이론들을 적절히 비교할 수 없다면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한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학 이론들이 단순히 실재적인 자료와 데이터만 가지고 예측,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믿음과 개념, 용어를 쓰는 것인가도 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아주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떤 믿음 체계, 즉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여전히 한참 뒤떨어진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일부분과 뉴턴의 세계관 일부분을 여전히 믿고 있었고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하는 과정에 있으며, 양자론이라는 놀랍도록 새로운 세계관을 접하고는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는 상태다. 우주의 행성들이 태양주위를 타원형궤도로 등속운동을 한다는 것을 관성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으로 간단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세계관은 정말 낡아 빠진 진부한 것이었다. 자석에 철을 놓으면 자기장의 영향으로 포물선의 형태를 띤다. 이것처럼 태양에서 나오는 자기장으로 타원형 궤도의 포물선 형태를 띠게 되어 행성들이 그 궤도를 등속운동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이 나를 전율케했다. 양자론에 대해 읽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 라는 말이 실재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양자 실체 실험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양자론은 사실 과학 문외한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양자론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내가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불어넣어주어 그 분야의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책이다. 이런 세계관은 실질적인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거나 실질적으로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 천문학, 철학 같은 분야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나와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것들이 때로는 내 삶에 너무나도 상관있게 되는 일들이 흔하지 않는가... 지금 나의 세계관은 어떤지 한 번 생각해보자. 업그레이드 받아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북튜버<책읽는 치어리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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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은 방점이 어디에 찍히는지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뉜다, '과학'에 방점을 찍은 과학철학과 '철학'에 방점을 찍은 과학철학. 패러다임 개념을 널리 유행시킨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철학에 방점을 찍은 과학철학서라면, 리처드 드위트의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세종서적, 2020)은 과학에 방점을 찍은 과학철학 입문서다. 철학에 방점을 찍은 과학철학은 과학 이론 자체보다도 과학 이론과 과학자 집단에 재현된 존재론, 인식론, 방법론 등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반면에, 과학에 방점을 찍은 과학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과학, 뉴턴 과학, 아인슈타인 과학 같은 실제과학을 그 주요대상으로 삼는다. 저자 리처드 드위트는 먼저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기본적인 쟁점을 소개하는데, 세계관의 개념, 과학적 방법과 추론, 진리, 증거, 경험적 사실과 철학적/개념적 사실의 대비, 반증가능성, 도구주의와 실재론 등에 관한 쟁점이다.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탐구하고, 세계관의 변화와 철학적/개념적 쟁점들의 역할을 설명한다. 세계관은 흔히 비유나 유추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은 '유기체' 비유를, 뉴턴 세계관은 '기계' 비유를 쓴다. 즉 유기체적 세계관에서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넘어간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여러 기관이 자연적인 목적과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기능하는 유기체와 비슷했다. 뉴턴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기계 부품들이 상호작용하는 것과 흡사하게 여러 부분이 다른 부분과 서로 밀고 당기며 상호작용하는 기계와 비슷했다."(572, 573쪽)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주의 구조에 관한 여러 가지 경쟁 이론이 대두되었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코페르니쿠스 체계, 티코 체계, 케플러 체계 등이 그러하다. 특히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존경하고 평소 천문학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세계관 전환 과정에 관여한 이런 중요한 천문학 이론들이 새삼 반가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진화론 등 최근의 과학 발전에 따른 서구 세계관의 변천을 살핀다. 저자의 말대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은 우리가 사는 우주에 영향을 미치지만, 진화론은 주로 그 우주 속의 우리 위치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철학을 배운 이들은 보통 다음 세 가지 개념에 꽂히는 경향이 있다. 포퍼의 반증가능성,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과 공약 불가능성. 세 가지 개념 모두 '과학'이란 타이틀이 붙는 모든 영역에서 숱한 오해와 각종 복잡한 논증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보기엔 이 세 개념은 여전히 깊이 파고들 가치가 있다. 먼저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은 과학이론과 사이비이론, 과학적 방법과 사이비 방법을 구별짓는 결정적 기준으로 생각하는 식자층이 유독 많은데, 사실 엄밀히 따지면 반증가능성은 그자체로 과학적 방법은 아니다. 단지 '더 좋은 이론'을 대하는 과학적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은 매우 급진적인 개념이지만, 저자는 이 개념에 대한 맥락을 정리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약 불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일관되게 나오는데, 순수과학 영역 외에 사회과학 영역에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과 공약 불가능성 개념이 어떤 인지적 파장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회고가 전혀 없다. 매우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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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택한 건, 바로 저 "세계관"이란 단어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저 세계관의 변화가 궁금했습니다.그리고, 펼친 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 세계관의 이론부터 나왔습니다. 진리대응론, 그리고 진리정합론, 이라는 흥미로움으로 말입니다. 진리대응론의 경우, 실재가 실제인가? 혹은, 실재가 환상인가? 즉, 우리는 "실재"의 실제 모습을 단언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는 말은, <성찰>에 나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 말하자면 그 실재와 실제의 불확실성으로 시작합니다. 조금 어렵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만났을 때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이 지구, 과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라는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은 이미, 지구가 구체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의외였습니다. 또한, 그의 세계관은 촘촘한 퍼즐이며 그것은 그에게뿐 아니라, 메인 명제 즉, 여기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는 것 등만 달라지지 않는다면 하나의 세계가 된단 것이죠 하지만, 만약 그의 생각처럼이 아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면_? 혹은, 이 퍼즐의 중심에 있는 것들 중 메인이 달라진다면, 그 세계관은 어떻게 될까요? 부정되야 할까요?(쓰고도 힘들군요..) 이런 것까진,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철학자답게 물질이란 것에 본질적이고 목적론적인 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말을 해 봤자, 어째든 그의 생각은 지구는, 둥글고(!) 정지해 있으며(??!) 우주의 중심이다. 더 놀란 것은 물론, 지금의 기독교적 신앙처럼은 아니지만(그러나, 그로 인해 발달한 것은 바로 또 종교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었다고 해서 전 놀랬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알아가고 있는데 벽에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의 세계관에서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을 재미있게, 알아가게 한다고 들었는데.. 살짝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그의 체계는 천체의 운동은 오직 완벽한 원형이다, 가 기본이라는데, 반박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무지한 고로 꾹, 하고 있었습니다. 그후,
코페니쿠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태양 중심설"로 기웁니다. 신 플라톤주의는 쉽게 "태양은 절대선"이란 것이죠. 이것이 지금의 여러 종교의 유일신, 그리고 <하나님읜 선하다>일까요? 그의 이론도 상당히 주목을 받았으나, 어쨌든 그 기준이 뭔지 몰라도 프톨레마이오스가, 코페니쿠스보다 더 체계적이다, 라고 평가 받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티코쳬계는, 다시 신플라톤주의와 코페르니쿠스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 "티코 체계에서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며 항성천은 우주의 가장자리다. 달과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돈다. 하지만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으며 달과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지만 행성 운동의 중심은 태양이다. " 본문 225p 어쨌든, 저는 쇼킹했던 게, "지구가 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레이의 주장, 지구가 돌고 있고- 즉,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등에서의 지구가 돈다? 이것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요? 교회는 이 과학적인 견해들을 반대치 않고, 그 새로운 발견들을 성서에 맞게 재해석했을 정도로 융통성이 있었으나, 갈릴레이가 불운한 것인지, 그의 시대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아주 민감한 상황이라 너그럽지 못한 그런 시대였던 것이죠. 가장 쇼킹했던 건요, 지금도 지구가 우주 중심이라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_ 케플러의 1법칙과, 티코쳬계를 따르는 사람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것조차, 실은 모른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우주계의 이 넓은 곳에서 서로 돌아가고 있는데, 무엇이 중심일까? 그래서 논란중이란 것에 또 놀랐습니다.
이렇게 보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만,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나오고, 그의 유명한 관성의 법칙, 등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제껏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본질론에서 뉴턴의 "과학과 밀접하게 연결괸 기계론적 우주관"으로 전환하는 큰 시기를 맞이합니다. 즉, 쉽게 형이상학적인 과학은 더 체계적으로 "철학"과 조금씩 분리되는 시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니,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게"는 맥락에 따른다는데, 그 "맥락"이 이 책에서는 제 이해력이 부족해선지, 설명돼 있지 않았습니다. (전미도서....미국대학 이걸 못 봤.....ㅠ) 그 후, 나온 공약불가능성 그리고 양자론은 제가 감당하기엔 벅차더군요. 파동함수라던가 이미 잊은 줄 알았던 제게, 저기요....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이라든가, 표준해석(코펜하겐 해석)_ 즉, 표준 해석은 "실재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 실체"가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_ 라는 것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실재론은, 이들과 다릅니다. 즉, 그는 "숨은 변수 해석"을 주장합니다. 모르시겠죠..? 하지만, 이 말장난은 의외로 재미있기도 합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즉, "다세계"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이론들은 어마어마했습니다(물론, 제 기준으로요.)벨/아스페의 국소성 이론도 나오는데, 저는 이 부분, 반박의 여지도 많겠다 싶더군요. 지금의 경우, 이 국소성 이론은, 컴퓨터등의 것으로 많은 오류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또다른 과학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인도합니다.특히나, 진화론의 경우, 어떨까요? 물론, 그 진화론에서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생존법칙"이었습니다. 첫 딸이나 첫 아들이 각기 이성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는다_ 이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이라고 듣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말이죠. 찰스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 공작새의 그 화려한 날개는, "열성"이고, 없어져야 한다. 라고 ,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작새를 유독 기억합니다. 그것을 인간에 대입하면, - 인간은 아름다움이 열성이고, 사라져야 한다. 인간은 추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해가 되시나요? 전, 이 할아버지 학자님과 저 책으로 도대체 왜? .... 라고 했습니다만, 이 진화론은 종교론적인 것 때문에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논란거리는 너무나 많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추한가요?
하지만 도덕 감정의 진화론적 기원을 이해한 우리는 이제 객관성이 환상임을 알 수 있다. (....)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개곽성은 환상이다. 하지만 중요한 환상이다. 그리고 여타 환상과 달리, 환상이라고 지적받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본문 539p 우리의 객관성이_ 도덕 감정의 등_ 환상이라면, 지금 우리가 읽었던 모든 것들 역시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환상일까요? 네, 데카르트의 말처럼, 실재하는 것들의 실제, 혹은 실체_ 그것을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 지금의 과학이 있는 것인 것 같습니다. 책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철학과 과학 즉, 예전의 철학자들이 과학자들임을 알기에 이 지구의 "과학"이 아닌, 철학과 과학을 동시에 가볍게 그 변천사의 세계관을 알고 싶었으나, 이 책은 너무나도 전문적이라선 벅찼습니다. 과학도들이 읽는다면 흥미로울 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끝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과학은 참으로 오묘하다. (.....) 우리가 보기에 케플러의 접근법은 상당히 엉뚱하고 기발했다. 그리고 그런 기발함이 없었다면 케플러가 그만큼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문 239p 요약 전, 과학을 쉽게 읽을 수 있나보다, 해서 읽었다가(.....)저처럼 과학과 거리가 멀면 아.....하고만 있어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ㅠㅠㅠ힘들었습니다. 이건 과학인문서가 아닙니다. 과학전문서입니다.물론, 과학에 상당한 흥미가 있으신 분들에겐 참 좋은 책일터이나, 저같은 평범한 사람은, 너무나 힘든 책이었습니다..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게관, 그리고 예전부터 지구중심vs 태양중심, 이런 것들의 논쟁,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실상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의외로 적단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너무 어려웠던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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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깡이입니다 ^^
오늘은 오랫만에 과학에 대한 책을 소개하고자합니다.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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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대학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과학철학서이자, 개념 및 용어의 설명보다 상세한 사례가 돋보이는 교양과학서다. 진리와 사실, 실재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지금, 이 책은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과학을 비춘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서로 밀접하게 엮이고 연결된 믿음의 퍼즐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세계관은 어떠한가? 당신은 어떠한 조각을 품고있는가
아리스토펠레스 세계관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다. 흔히 짐작하는 것과 달리 당시 사람들이 지구중심설을 믿은 것은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경험에 기초한 확고한 추론의 결과였다. 바위처럼 무거운 물체는 밑으로 떨어지고, 불은 위로 타오르는 이유 역시 이러한 믿음의 결과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구중심설은 태양중심설과 쟁점을 벌이게 되는데 당신이 생각하기에 어느 것이 더 신빙성 있는 우주모델일까
이 책을 읽으며 과학과 인생은 많은 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 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철학적 개념을 과학의 역사와 함께 서술한 이 책을 통해 인생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답을 알려주고 싶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일까? 어떤 누구는 지구라고 할 것이고, 어떤 누구는 태양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내가 우주의 중심” 이다. 물론 과학적 접근법에는 맞지 않지만 나는 우리가 각자의 마음속에 은하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주를 천동설과 지동설로 본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게 맞추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의 빛을 받기위해 주기를 맞추고, 그들의 시간에 맞춰 밤과 낮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름답게 보이는 은하수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낱개의 별들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내 인생이 힘든 것도 보이지 않는 별들을 모으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은 쓸모없는 이 작고 힘없는 별들이 빛을 내기 시작할 때 나의 인생도 새롭게 시작될꺼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 리뷰는 세종 서평단 모집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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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종종 '과학은 현실과 대응하여야 한다.'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를 과학 철학에서는 진리대응론이라 부르고, 이와 다른 진리정합론을 소개해 준다. 이때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이 책에는 콰인-뒤앙 명제, 데카르트의 명제 등 다양한 내용이 있어 보다 근본적인 생각도 접해 볼 수 있다. 초장 이후에는 본격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 장에서 개개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대의 세계관은 그 당시 가장 합리적인 관점을 취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계관과 정합하지 않는 현상이 발경되면 비로서 세계관은 수정이 가해지거나 재생성된다. 천동설도 당시의 지식으로 미루어 보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는 세계관이었고 실제로 다른 발전과 비슷하다. 다만, 당시 종교의 권위가 결합되고 탄압적인 면모가 각인되어 천동설 자체에도 부정적인 인식이 깃든 것 같다. 후반부의 내용에는 현대 물리학의 범주까지 간단하지만 그 근간이 이해되는 명쾌한 해설로 이끌어준다. 과학에서 과학사와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생각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다. 나 또한 개인적인 견해 정도만 지니고 학문적 지식은 접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는 빈자리가 매워진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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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사적으로 뉴튼 역학이후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으로 바뀌는 과정에 세계관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먼저 세계관에 대한 저자의 정의가 믿음의 퍼즐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체계라는 정의가 새롭게 느껴졌다. 믿음도 중심이 되는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믿음과 가장자리를 차지하는 좀 덜 중요한 믿음들로 구성된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이러한 믿음들의 모임으로 세계관을 정의하면, 고대부터 1600년대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는 세계관이 과학, 종교, 정치 등 모든 분야의 세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듯하였다. 이후에 뉴턴의 과학체계가 확립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점차로 사람들의 믿음체계에서 멀어지고 과학에 근거한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세상의 사람들의 생각을 대신하게 되었다.
위의 내용까지는 과학을 하는 현재의 사람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세계관일 것이다. 물리를 전공한 일반인으로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을 배운 이후에 세계관은 어떻게 바뀌었나가 나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저자는 양자역학 이후의 세계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세계관이 바뀌는 과정을 통해서 현재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내용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언급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 1600년 이상 세상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였지만, 이후의 과학적인 사실들에 의해서 뉴턴의 세계관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보면, 양자역학적 사실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아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사적인 재미와 과학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역사적 사실들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어 세계관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좋다. 물리를 전공하는 대학생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