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갑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빛
새해를 맞이하면 집집마다 아이들 밖으로 뛰쳐나와 연을 날립니다. 한두 연 아닌 수십 개 연, 때로는 백 개쯤 될 만한 연이 아파트마을 하늘을 뒤덮습니다. 연줄에 풀을 먹입니다. 유리가루 먹이면 더 단단하며 연싸움에서 이긴다 하지만, 나는 유리가루까지 먹이지는 못했습니다. 유리가루 먹이면 연줄을 어찌 잡나 싶었어요. 아이들 누구나 손수 연을 만들 줄 알고, 실을 감을 줄 압니다. 집에서는 언제나 어머니 거들며 바느질도 하고 갖은 집일을 다 하지요. 웬만큼 찢어진 옷은 사내도 가시내도 스스로 기웁니다. 아이들 누구나 바느질 못한다 하면 놀림을 받았어요.
(최종규 . 2013)
|
|
이오덕 선생이 세상을 뜨신 지도 어느덧 11년이 됩니다. 선생의 부음을 신문으로 보면서 연세를 한번 더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일흔아홉. 조금 더 사시지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과 비감에 젖었던 당시가 떠오르는군요. 그런데 벌써 11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빠른건지 아니면 아니면 제가 무심했는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제가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아이들 글쓰기 지도에 관한 책을 찾으려고 서점에 들렀을 때였어요. 그전까지는 선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거든요. 생전 정직한 글쓰기, 살아있는 글쓰기를 강조하셨던 선생의 글은 꽤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선생의 신념은 거의 종교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장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아는 것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 책은 선생이 교단에 계시던 1962년부터 2003년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의 일기 5권 중, 맨 앞 부분인 1권입니다.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일선 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 산골 학교와 농촌의 실태, 학교 행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어요. 선생의 고통스런 심정이 고스란히 들어있기에 읽기가 버거울 정도였지요. 1944년부터 교사 생활을 하셨으니 이십년 쯤이면 넘길 것은 넘기고 맞출 것은 맞출 수 있는 요령과 무덤덤함에 익숙해지기도 하셨으련만, 선생은 그렇게 되지 못하셨나봅니다.
1962년 9월 19일 수요일
첫째 시간 출석도 부르기 전에 돈을 내놓는 아이가 있다. 대구종합운동장 확장 기금이다. 아직 10여 명이 안 가져와서 이걸 그냥 두면 다음 또 다른 돈을 모을 때도 안 가져오겠다 싶어 어제 독촉했던 것인데, 오늘 한 사람 가져온 것이다. 못 낸 아이들을 불러냈다. 야단을 쳤다. 돈 2원이 없어서 못 가져온 아이 손들어라 하니까 대여섯 명이 든다. 거짓말이라고 또 야단쳤다. 훌찌럭훌찌럭 우는 아이가 있다……돈 독촉을 하고 나니 공부를 가르칠 기분이 안 났다.
1967년 3월 23일
여기서는 사흘이 멀게 술판이 벌어진다. 내 머리는 지금 너무나 어지럽다. 학교 돈을 걷어 먹으려고 눈이 뒤집힌 교장, 술, 아이들이 수라 장판이 되어도 방치해 두는 교사, 기성회비를 안 낸다고, 아니, 안 낼 것이라고 미리 예방 삼아 혹독한 체벌을 주는 '모범 교사'……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아이들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가정의 돈을 걷고, 돈이 덜 걷히면 아이들을 무섭게 혼내는 동료 교사들과 학교 책임자들을 보면서 선생은 무척 힘들어하셨더군요. 1957년 이미 중학교의 교감이 되었는데도 한 달만에 사표를 내고, 그후 1965년 초등학교 교감이 되었는데도 교사 강등 청원서를 내 선생은 다시 평교사가 됩니다. 불의와 부조리를 못견뎌할 뿐 아니라, 아이들 곁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보려는 선생의 칼칼하고 외곬수적인 기질이 드러나는 순간들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선생도 행복한 일기를 쓸 때가 있는데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 혹은 자연의 위로를 받을 때, 아이들 속에서 좋은 글을 발견할 때가 그렇더군요.
1964년 6월 6일 토요일
돌아오면서 엿을 사 주고, 나도 먹었다. 아이들 속에서 하루를 보낸 오늘은 너무 즐거운 날이었다.
1969년 12월 15일 월요일 맑음
밤새 눈이 와서 온 산천이 하얗다. 난로를 따뜻하게 피워 놓고 아이들과 마주 앉으면 이런 날은 교과서 따위를 공부하기가 싫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박 씨의 시를 읽어주니 아이들도 좋아하는 듯했다. 아이들을 얕보지 말 것이다. 이런 산골의 저학년 어린애들도 얼마든지 시를 이해하고 쓰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가슴 따뜻한 시간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겠죠? 선생의 분노와 아픔이 절절히 들어있는 1부를 넘으면, 1971년부터 1973년까지의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 기간에 선생은 교감이 되지요. 여러 행정적 부조리 및 교사들의 비교육적 자세와 안일함은 여전히 선생을 힘들게 하지만, 조금씩 좋은 만남도 생깁니다. 읽는 이로서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1973년 1월, 선생은 당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된 권정생 선생을 만나러 갑니다. 두 분의 만남과 교류가 제게는 마치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그 만남 이래 두 분은 마음이 통했던 듯 싶습니다. 그해 9월 8일의 일기 중「 강아지 똥」에 대한 선생의 '참 놀랄 만큼 좋았다. 대화 같은 것을 좀 손대면 거의 완벽한 작품으로 보인다'는 언급은 마치 역사적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기를 읽다보면 권정생 선생은 선생에게 여러 모로 의지한 듯 하고, 선생 또한 좋은 작가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파신 듯합니다. 이 밖에도 이 시기의 일기에서는 아동문학가인 이원수 선생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3부 1974년부터 77년까지의 일기는, 선생이 교장이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과 아동문학 분야의 전문가로서 선생의 반경이 얼마나 넓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활동을 하다보니 때로는 구설에 오르기도 하고, 시비가 붙어 사과문도 게재하게 되면서 선생은 평론가로서의 자신의 자세를 점검하게 됩니다. 이 뿐 아닙니다. 75년 말에는 염무웅 선생에게 빌려준 책이 문제가 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이틀간 조사를 받는 곤욕도 치르게 되지요. 이런 다사다난한 일 가운데 77년 11월 29일의 일기를 마지막으로 1권은 마무리 됩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이오덕 선생을 저는, 바른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투철한 교육관을 가진 분으로만 이해했지요. 그런데 일기 속의 선생은 많은 규제와 제약 속에 제대로 된 교육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뇌하고 갈등하는 힘없는 개인에 불과하더군요. 때로 선생의 민낯은 처절하리만큼 애처롭고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선생의 고뇌로 첨절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1권이었죠. 그럼에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교육관을 지켜온 끝에 선생은 정직한 글쓰기라는 글쓰기의 한 축을 세우게 됩니다. 그 주춧돌이 세워지는 광경을 저는 본 것이구요. 읽는 동안 어쩔 수 없는 감정 이입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그보다 몇 배의 기쁨을 되돌려 받았으니 저는 지금 행복한 사람입니다.
|
|
맨발 꿈을 또 꾸었다. 신을 잃어버리고 맨발로 어찌할 수 없이 돌아다니는 꿈은 내가 가끔 꾸는 것인데, 얼마 전부터 그런 꿈을 안 꾸게 되어 잊어버렸더니 또 꾼 것이다. 이 학교에 와서 새 구두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몇 해 동안 이 학교에 있었지만 신을 잃은 선생님은 없었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나는 신장에 넣어 둔 새 구두를 잃어버린 것이다) 꿈에 신이 없어 쩔쩔맸다. 내 발에는 고무신이 한 짝만 신겨 있었다. 마침 보니 건너편에 고무신 가게가 보였기에 거기 가서 운동화를 샀다. 그 가게까지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웬 찢어진 고무신이 맨발인 한쪽 발에 신겨 있는 것을 깨닫고, 그래도 다행이라 여기고서 그 가게를 찾아가는 꿈이었던 것이다. (134쪽, 1971년 3월 23일) 이오덕 선생님은 발이 커서 구두를 맞춰도 좀처럼 발에 잘 안 맞았다. 한 번도 발에 맞는 구두를 맞춰 신어 본 일이 없다. 기성화를 사도 그렇고, 일부러 맞춰도 그렇고, 언제나 거의 다 떨어질 무렵까지 발가락이 부르트고 뒤꿈치에 피가 나고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남이 맞춰 놓고 찾아가지 않는 신을 신어 보는 가운데 희한하게도 발에 꼭 들어맞아 마치 운동화를 신는 기분인 것을 샀다. 그 뒤로 몇 십 리 산길을 걸을 때나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나 한 번도 발이 아파 본 일이 없이 참 애지중지 신고 다니면서, 누구 맞춰 놓았던 것인지 모르지만 결국 당신을 위해 만든 하느님의 예정이었구나 하고 기뻐했다. 그랬던 것을 그만 잃어버리고 꿈까지 꾸었다. 이오덕 선생님은 신발 없이 쩔쩔 매는 꿈의 의미가 무엇일까 자문한다. 그러고는 신발 없이 다닐 수 없으니 신발은 그것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직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쩔쩔매는 꿈속의 당신은, 마음에 드는 직업을 갖지 못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현실의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쓴 일기이다. 37살(교직 생활 19년째)부터 52살(교직 생활 34년째)까지 평교사와 교감과 교감을 두루 했다. 늘 어린이들과 함께하려고 한 선생님 일기에는 당신의 직업에 대해 회의하는 글이 참 많다. “지금 내 눈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교감, 교장들이 버러지같이 보인다.”며 교감과 교장을 비판하고, “학교 돈을 걷어 먹으려고 눈이 뒤집힌 교장, 술, 아이들이 수라 장판이 되어도 방치해 두는 교사, 기성회비를 안 낸다고, 아니, 안 낼 것이라고 미리 예방 삼아 혹독한 체벌을 주는 ‘모범 교사’……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여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이라면 좀 과장한 표현이지만, 참 가기가 싫은 학교”라고 여겨, “하루빨리 나는 이 거짓스런 직업에서 벗어나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정책을 담당하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진실 대신 거짓 교육을 강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망할 놈의 나라다. 하루빨리 망해 버려라”하고 독설을 내뱉기도 한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앉아 때 묻고 찌그러진 조그만 책상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오늘도 내일도 이 아이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 바쳐 가르쳐야 되겠다”고 다짐한다. 소풍 때 아이들이 선생님 먹을거리를 사 오는 행태에 대해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사람답지 못한 짓을 아무 비판도 없이 그대로 따르고 있었던가?” 반성하고, 가정방문을 대접받는 것으로 여기는 교사들 속에서 오직 선생님만은 집마다 알뜰하게 찾아다닌다. 참된 교육을 한다고 무시당하고 짓밟히면 짓밟힐수록 그 속에서 한 가닥 진실을 붙잡고 버티어 온 것이 선생님의 교사 시절이었다. 이러한 선생님의 반골 정신은 「표절 동시론」으로 고소를 당해도, 오장환이 번역한 『에세느 시집』과 이용악 시집을 빌려 준 것이 문제가 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도 꺾이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인생은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애씀이요, 몸부림이다.”(147쪽, 1971년 3월 24일) |
|
초중고를 다니면서 10분 넘는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물론, 어릴적부터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것을 고려하여, 전학간것까지 생각하면 더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었겠지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정말 선생님다운 아우라를 가졌던 분은 한 분이나 두 분 정도 될 것 같다. 그리고..그분들의 생각을 잠깐 했었다. 새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 이오덕이 교편에 있을 적에 가르쳤던 학생들은, 이 1권을 기준으로 그리고 지금 환산해 보면, 대충 우리 엄마나 삼촌 이모 또래 정도가 되겠다. 새삼...나이 많은 분들 중에서 왜 꼰대가 있고, 나라 말아먹는 인간이 있나 생각해보니...썪어빠진 교육 때문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선생님들도...쓰레기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는데...그 옛날에는 더 하면 더 했짐...학생들 등골 뽑아먹으려던 사람이 한 둘 이였을까. 마찬가지로, 선생님들이 죄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나라의 사회적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도 그렇지만..선생님들도 먹고 살기 힘들었으니...당장 입에다 풀칠이라도 하려면...그 마저도 서바이벌을 위한 전략이였으리라. 그런 관점에서..나는 그 동안 내가 욕을 했던 그 많은 선생들을 조금은 너그러운 관점에서 회상해 볼 수 있었다. 철없던 젊은 선생들이나...나이만 많았던 꼰대 선생들...하긴 선생들만 그랬나, 학생들도 개차반이였지. 이 책을 그저 옛날 이야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펼쳐 들었는데...실상은 읽고 나서 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시기적으로 닭년의 가족이 군림하던 시기였고..그들이 경제를 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방법적인 면에서는 또 결과적인 면에서는 과연 그게 바람직한 것이였나,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 종종 언급되는 이원수 선생님이 언급되는데 그의 '꼬마 옥이'를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아무리 어둡고 황당한 시절이였다고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그나마 아이들이 어느 한 구석에서는 아이답게 자라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얼마전 김영란 법에 선생님들한테 일절 선물을 줄 수 없게 바뀌었다고 하는데, 진작 그런 법이 생겼어야 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뭐 먹고 살기만 좋아졌지, 사람들의 비열함이나 거지 근성은 지금도 그닥 변한 것 같지 않다. 나머지 책은 읽지않으련다. 그의 일기와 그 속에 담겨 있는 교육관은 정말 감동적이였으나... 일기다보니...예쁜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답답한 그즈음의 사회현상까지 묘사하고 있다보니... 답답하다. 나는 지나온 시절은 그냥 예쁘게만 기억하고 싶은데, 그의 글을 읽다보니, 그 황당했던 시절과...그것들이 이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꼬라지가 자꾸 떠올라...마음이 편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