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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눈에 띄고 끌리는 아이, 해원. 이상하게 여자가 아닌 그냥 아이로 인식된다. 남자를 겪어볼 만큼 겪어본 인물인데도 아직 영글지 않게 느껴진다. 라이프스타일도 그렇지만 한국적 사고에 맞지 않아 몇 겹으로 힘들다. 그녀는 풍문과 가십에 휩싸여 우연히 만난 척 연기하며 한국에서 힘들게 지내는 것보다 외국에 나가 이혼남과 산뜻한 새출발을 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부정과 불륜이라는 세상의 이목에서 벗어나 싱그럽고 떳떳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과 힘겨움이 사람에겐 있고, 모든 걸 갖춘? 중년 남자에게는 하나의 작은 놓침이 성벽이 무너질 듯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일상과 안정의 궤도에서 벗어나 갈등의 무곡을 격정적으로 출 수 있는 상대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매혹적인 삶일 게다. 하지만 이때 아무리 이 감독(교수)이 해원을 사랑한다 해도 그에게 그녀는 충동적으로 사들인 사치품이자 향수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가실 여운이다(그 끝에서 확 늙어버리겠지만). 일시적이고 덧없는 관계라 유혹적이고 끊기 힘든 담배와 술 같고 하염없이 맞아야 하는 비다.
어쩌면 완벽히 들어맞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술로 채우고 담배를 날려 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근데 이게 너무나 정확히 들어맞으면 죽을 게 틀림없다). 안개속 늦겨울 남한산성에서 만난 연주 커플을 통해 해원과 이 감독의 미래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들키고 발각되지 않은 채 이어진 7년의 시간과 사랑. 감추고 싶은 자와 드러내고 싶은 자의 온도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지만 인생은 한번뿐이고 청춘의 싱그러운 아름다움도 평생 가지 않는다. 세월 앞에 허물어지고 꺾일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해원은 늦지 않게 누구에게 마음을 주고 또 누구를 잡을지 결정해야 한다(이런 갈아탐을 악마에 비유한 것 같다).
남자들이 말하는 해원은 자기가 누군지 알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강인한 개별성을 지녔다. 그 특별함을 감지하고 남자들이 모여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해원의 탐색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다. 젊은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와 지속성을 갖춘 해원의 멘탈이 버겁지만 적당히 나이 먹은 남자에게는 뮤즈처럼 필요한 에너지일지 모른다. 이제는 고인이 된 김자옥씨가 해원의 엄마로 말한다. 오늘은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는 시간이라고. 다시 못 볼 것 같아 마음이 이상하다고.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인 사직동과 남한산성은 익히 가본 곳이다. 그런데 나는 그곳을 드나드는 유령이었을 뿐 그곳을 제대로 음미하며 시간과 추억을 쌓은 적이 없다. 어디 그곳만 그러겠는가. 그렇게 놓치고 모른 채 지나온 장소들과 사람들이 타다 남은 담배마냥 몽글 몽글 피어오른다. 오늘도 평생 이 마음으로 살 것처럼 어리석게 보내고 있다. 산을 타는 아저씨의 대사로 마무리해야겠다. “Be good to your woman. It's worth the most."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을 꼭 짚어 마음을 쏟을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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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감독을 맞출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영화를 만든 감독
에게는 가장 최고의 찬사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감
독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때로는 그 감독이 보여주는 영화의 색이
너무나 유치해서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분명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사람
들에게 각인시킨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내
고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감독들 중의 한 명이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다는 말은 분명 칭찬의 의미가
더 많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변함없는 하나의 색을
변주하는 모습으로 지금까지 이어졌으면 그 변하지 않는 변화로 사람들에게 계속해
서 사랑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누군의 딸도
아닌 해원이다.
을 한 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주 긴 시간동안 사람들 주변의 이야기를 그
대로 그래서 조금은 찌질한 이야기를 보여준 홍상수 감독들의 영화들이 이제는 서로
미묘한 부분에서 공간을 공유하거나 비슷비슷한 등장인물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관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느새 새롭게 만들어지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서 이제는 자연스
럽게 표현이 되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화 누구
의 딸도 아닌 해원도 그러한 세계관의 안에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
으로는 바로 직전의 영화 중의 하나인 북촌방향과 이어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북촌방향과 커플처럼 보이는 이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하나의 시
간 혹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각각 다르게 기억하는 모습들을 보여준 것처럼 느
껴지는 북촌방향과 또 다른 방향에서 북촌과는 인접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시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이전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한 번씩은 만난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
여준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과 이야기를 통해서 주인공 해원의 일상을 보면서 관객
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찌질한 그리고 그 찌질함 때문에 거부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불륜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것도 비슷비슷한 상황들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촌방향이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는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한 명의 현재
와 미래를 각각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그 하나의 이
야기에서 각각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과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등장
해서 이야기를 펼치는 그 모습은 자극적인 것과는 너무나 멀어, 그 독한 대화들까지
도 별다른 느낌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모습까지도 그냥 삶은 계
속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도 그 특별한 시작과 끝이 없는 부분이 바
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사람들이 찾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삶의 한부
분을 뚝 때어내어 보여주는 그 영화의 이야기에서 자신들의 삶의 한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그 일상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또 다시 사람들 앞에 풀어놓은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