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 광주 아리랑 2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 광주 아리랑 2"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 2    광주민주화운동 14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광주 아리랑>.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나고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했던 책이다. 14일간의 생생한 기록이 마치 그 현장에서 함께 가슴 두근거리며 가까이에 있는 죽음을 느낄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빨리 피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5월 14일부터 시작된 계엄군 투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 광주 아리랑 2"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 2

 

 

 

광주민주화운동 14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광주 아리랑>.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나고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했던 책이다. 14일간의 생생한 기록이 마치 그 현장에서 함께 가슴 두근거리며 가까이에 있는 죽음을 느낄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빨리 피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5월 14일부터 시작된 계엄군 투입의 움직임은 현실이 되었고 헬기로 사격을 감행하며 무차별적으로 진압봉을 휘두르고 군화 발로 짓이기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시민군은 계엄군이 철수한 것 같은 느낌에 가지고 있던 무기를 회수해 계엄군이 다시 광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지만 무기 반납 또한 불안했을 것 같다. 학생들의 조용한 시위로 시작해 시민군이 앞장서 계엄군과 맞서다 그 안에서 희생자도 속출하고 어린아이들도 희생당하는 현장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을지...

 

부상자들이 속출해 헌혈을 하려는 시민들에게 가해지는 총격 또한 너무 충격이었다. 어떻게든 타협점을 잡아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던 광주 시민들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군대가 광주로 들어와 그들을 짓밟아야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빨갱이, 간첩으로 몰아가고 또다시 광주 시민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계엄군이다.

 

죽음 앞에 이른 순간까지도 군홧발로 짓밟아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얼굴을 짓이겨 놓은 계엄군이 너무 잔인하다 못해 살인마로 느껴졌다. 지금껏 무력으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앉았던 그의 횡포에,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는 그가 인간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광주 시민들이, 생각지도 못한 죽음으로 인해 가족과의 이별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책을 읽으면서 더 생생히 와닿았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니.. 그 당시 태어나지 않았었지만.. 죄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눈앞에 영상이 그려지듯 담담하게 그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광주 아리랑'은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힘겨운 이야기라 생각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a*******7 2020.10.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광주 아리랑2
"광주 아리랑2"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은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으로,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4일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장편소설이다. 독서를 하면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책은 다시 없을 거 같다. 광주 시위대는 담양, 목포, 해남까지 시위차를 타고 달려갔다. 소총과 실탄을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화순 말고는 여의치 않았다. 총기는 물론 경찰도 없었다. 목포로 간 시위대도 무기를 구하지 못
"광주 아리랑2"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은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으로, 19805월 광주민중항쟁 14일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장편소설이다. 독서를 하면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책은 다시 없을 거 같다. 광주 시위대는 담양, 목포, 해남까지 시위차를 타고 달려갔다. 소총과 실탄을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화순 말고는 여의치 않았다. 총기는 물론 경찰도 없었다. 목포로 간 시위대도 무기를 구하지 못했다. 시위대에게 약속한 대로 경찰차가 고속버스를 선도해주었다.

 

헌혈차가 적십자병원에서 가까운 곳부터 돌면 서로가 먼저 헌혈을 하겠다고 팔뚝을 걷었다. 서석1동 반장과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듬뿍 올려주기도 했다. 헌혈 하는 여학생을 쫓아와 어머니가 집으로 데려다 놓아도 언제 빠져나가 또 피를 뽑는다.

 

공수들이 철수한 강의실은 취조실로 쓰여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고 러닝셔츠, 신발, 바지 등이 어지러웠고 머리카락도 한 웅큼씩 뭉텅뭉텅 떨어져 있었다. 강의실에는 신발 100여 켤레, 허리띠 50여 개가 널브러진 채 뒹굴었다. 모새를 퍼가지고 와서 핏물부텀 닦고 빗자루로 쓸어야 할 거 같았다.

 

14일부터 16일까지 학생 시위가 시민들의 가담을 촉발시키기는 했으나 학생 간부들은 19일 전까지 이미 광주를 빠져나갔고 실제로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은 서민과 빈민층의 청년 및 보통 학생들이었던 것이다. 재야인사들도 빙빙 돌면서 피신했다가 돌아온 것도 사실이었다.

 

시민군이나 시민들 중에서 여러 명이 지원해 민원실 앞과 상무관에서 장례 일을 보고 있었다. 아직 관에 들어가지 못한 시신의 모습은 참혹했다. 시민군끼리 대여섯 명씩 1조에서 5조까지 기동타격대를 편성했다. 박인수와 김현채는 6조가 되었다. 김현채가 김밥을 먹고 있는데 총알이 김밥을 뚫고 지나갔다.

 

무기가 너무 많이 돌아댕겨서 사고 날 위험이 커서 반납하자는 의견과 제이의 목숨이나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자는 의견이 나뉘었다. <계엄군들은 광주시민을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정신만 살아 있다면 우리들은 평화적으로 계엄군들을 굴복시킬 수 있소. 하느님은 결코 광주시민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오조비오 신부는 말했다.

 

모두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523일에 생긴 주남마을 시민 학살은 분노하게 하였다.소형버스가 지원동을 지나치려 할 때 매복해 있던 장교 한 명과 무전병이 11공수여단 본부에 소형 버스가 화순 방향으로 간다고 보고했다. 소형버스는 100미터도 달리지 못했다. 주남마을 앞에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운전수 김윤수는 즉사하고 소형 버스는 벌집이 되어 옆으로 굴렀다. 여덟 명이 즉사하였고, 남녀 세 명이 중경상을 입은 채 끌려 나왔다. 세 명을 경운기에 태우고 가다가 부상이 심한 시민군 두 명을 훔쳐온 리어카에 싣고 홍금숙은 걷게 했다. 홍금숙은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었다. 혼절했다가 정신을 되찾아 공수부대원 끼리 주고받는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병원으로 보내!” 홍금숙은 폭도라는 말을 악마로 듣고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눈을 뜬 곳은 시민군 부상자들이 북적거리는 전남대병원 병실이었다.

 

교도대에 당한 분풀이를 송암동 주민들에게 했다. 철로변에 살던 김승후는 M16 총알이 집 안으로 날아들자 솜이불을 덮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공수부대원 대여섯 명이 그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청년 세 명 모두 총을 맞고 맥없이 쓰러졌다. 계엄군의 만행은 송암동뿐만이 아니라 동운동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

 

윤상원은 어젯밤에 고등학생들에게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고등학생들은 나가라. 우리가 싸와서 도청을 사수할테니 니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라. 니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거라. 우리는 오늘 계엄군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니들이 우리를 잊지 않는다믄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록할 것이다. 도청을 나가는 니들은 비겁자가 아니다.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p314

 

[광주 아리랑]198051440대 초반의 전남대 학생과장 서명원이 교정에서 바라보고 느낀 봄날과 학생들 시위에서 시작된다. 끝은 527일 새벽 계엄군의 시민군 살육 현장에서 끝내 총을 들지 못하고 비켜나 이불 뒤집어 쓰고 떨면서 쓴 이희규의 비망록이다.

 

작가는 말한다. 정말 광주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였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시위 중에 들었던 횃불이 밤하늘의 별이 된 도시라고. 작가는 40년 전 5월의 광주를 향해 따뜻한 눈물을 흘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g****n 2020.10.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광주 아리랑(전2권) / 정찬주 / 다연
"광주 아리랑(전2권) / 정찬주 / 다연"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전2권) / 정찬주 / 다연80년 5월, 횃불로 별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5.18 40주년입니다.제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는데요당시 저도 빨갱이가 광주로 침투해 남한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들었습니다.그래서 "빨갱이는 싫어요, 공산당이 미워요" 이런 말참 소리 높여 얘기했지요, 엄마아빠한테까지도요.엄마아빠도 당시엔 몰랐던 광주의 그날.5.18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이 알려
"광주 아리랑(전2권) / 정찬주 / 다연"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2) / 정찬주 / 다연





805, 횃불로 별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5.18 40주년입니다.
제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는데요
당시 저도 빨갱이가 광주로 침투해 남한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빨갱이는 싫어요, 공산당이 미워요" 이런 말
참 소리 높여 얘기했지요, 엄마아빠한테까지도요.
엄마아빠도 당시엔 몰랐던 광주의 그날.
5.18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이 알려졌다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 많지요,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시간순으로 기록한 정찬주 작가의 다큐멘터리소설.
만나보겠습니다.

 

 


정찬주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전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
전 샘터사 편집부.
법정스님에게 '무염'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전남 화순에 이불재를 짓고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소설 무소유" 등 작품 다수가 있다.







 

p********g 2020.05.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러분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내용보기
이렇게 리뷰쓰기 힘들었던 책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시작하는 것초자 망설여지기는 또 처음이다. 그 동안 어떤 책이든 그래도 한 번 시작하면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차마 이어나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단어는 오직 학살, 죽음, 아비규환-같은 것. 계엄군이 빠져나간 뒤에 광주 시민들은 '우리들이 이겼다'며 기쁨에 들떠 환호하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여러분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내용보기

 

이렇게 리뷰쓰기 힘들었던 책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시작하는 것초자 망설여지기는 또 처음이다. 그 동안 어떤 책이든 그래도 한 번 시작하면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차마 이어나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단어는 오직 학살, 죽음, 아비규환-같은 것. 계엄군이 빠져나간 뒤에 광주 시민들은 '우리들이 이겼다'며 기쁨에 들떠 환호하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그 끝을 알고 있기에 증폭되는 진압에 대한 공포.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은 양쪽 모두에게 해당된다.

 

2권에는 5월 21일부터 5월 27일까지 총 7일간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시위대에 참여는 못하더라도 헌혈은 하겠다며 당차게 집을 나섰던 박금희 학생. 몇 년 전부터 카드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오고 있을만큼 인정많은 여고생이었다. 말리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친구와 함께 다시 헌혈하기 위해 헌혈차를 탄 여고생의 몸을 총알이 뚫고 지나간다. 죽음의 순간 애타게 불렀던 엄마 얼굴 한 번 못보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딸의 부고를 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첫장부터 눈물바람의 연속이었다.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했지만 혼란은 계속된다. 시민대표라고 행세하려고 나서는 정치인과 종교인에 대한 비난, 서로 각 방향으로 조직된 수습위원들의 서로 다른 의견들에 시민군들이 제대로 협력하고 있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누군가는 협상을 위한 총기 반납을 주장하고, 또 누군가는 목숨과도 같은 무기이니 절대 총기를 반납할 수 없다면서 계속 무장하고 있어야 다시 계엄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그래도 정의를 위해 발로 뛰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가슴에 사무쳤다. 주먹밥과 약들을 제공하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는 시민들, 그런 시민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한층 경계를 강화하고, 사망한 시신들을 수습하는 데 자원하는 사람들. 따뜻하고 인간적인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계엄군의 간첩작전과 양측의 전투는 계속된다. 그 중에서도 원제마을과 진제마을 아이들 학살 사건은 절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중학생들,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개구쟁이 국민학생들을 잔인하게 사살한 계엄군.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도 너무 마음 아팠는데 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몸에서 숨을 빼앗아가버린 무자비한 총격이라니. 읽어내려가면서 차마 숨도 쉴 수 없었다. 계엄군이 어떤 주장을 하든 그들은 이미 이 순간, 그 진정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아이들이 시위대인가. 손에 총이라도 들고 있었나.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사람은 지금 발뻗고 편안히 안녕하신가.

 

깊어지는 두려움 속에서 마침내 마지막 날이 시작된다. 계엄군의 군홧발에 참혹하게 밟히는 사람들과 시신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을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 그런 정신이 일반 시민들 속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가족조차 만나지 않으려 했던 그들. 우리에게 이런, 보석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광주를 지키기 위해, 광주 시민들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또 누군가는 그들을 빨갱이라 매도하며 가차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나라면 그 자리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었을까.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말의 깊이를, 이제야 피부로 깨닫는 느낌이다. 여러분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하고 소중한 오늘이다.

 

y********j 2020.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광주 아리랑 2권
"광주 아리랑 2권"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정찬주 장편소설처음이다! 책 한 권의 서평을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쓰는 일은. 2주 전에 완독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아리랑》은 내 책꽂이 아직 읽어야 할 도서 코너에 계속 꽂혀있었다. (참고로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읽어야 할 책과 서평 써야 할 책을 놓아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눈길이 갔다. 몇 번이나! 밥을 먹다가  우연히 눈길에 꽂히면 밥이 잘 넘어
"광주 아리랑 2권" 내용보기

광주 아리랑


정찬주 장편소설



처음이다! 책 한 권의 서평을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쓰는 일은. 2주 전에 완독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아리랑》은 내 책꽂이 아직 읽어야 할 도서 코너에 계속 꽂혀있었다. (참고로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읽어야 할 책과 서평 써야 할 책을 놓아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눈길이 갔다. 몇 번이나! 밥을 먹다가  우연히 눈길에 꽂히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깔깔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책에 시선이 머무는 순간 웃음기가 싹 사라져버렸다. 무겁고 아픈 느낌은 평소 가진 지병처럼 욱신하게 나를 짓눌렀다. 내용과 달리 너무나 단아하고 아름다운 책표지는 처연한 슬픔을 띤 채 나를 마주했다. 




1권이 5월 14일~21일 총 8일간의 일지였다면 2권에서는 5월 21일 (시민 군 2편)~ 5월 28일까지의 기록이다. 여느 소설 읽기처럼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우리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당시 실제로 일을 겪으신 분 만하겠는가? 다들 마음은 있지만 너무 힘들까 봐 이 책 읽기를 주저했다. 《광주 아리랑》 두 권을 읽기 전에는 죄의식으로 시달렸지만 이제는 희생자분들의 묘에 꽃이라도 한 송이라도  올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계엄군의 만행은 상상 이상이었다. 총 일곱 번의 쪼개 읽기 리뷰에서 올린 것보다 현실은 더욱 잔인하고 계획적이었다. 어린이 희생자도 여럿 있었다. 헌혈이 시급했다. 피가 부족했고 병상이 모자라자 의사의 멱살을 잡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 남직원들이 줄을 세웠지만 서로 먼저 헌혈을 하겠다고 팔뚝을 걷었다. 헌혈한 사람에게 근처 가게 주인은 빵과 우유를 박스째 전달했다.  광주 시내의 약국과 개인병원은 의약품은 물론 다른 상비약까지 그냥 내주었다. 이 와중에도 계엄군의 군용 헬기는 사격 지점을 찾는 듯 저공비행을 했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아비규환, 지옥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침착하게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잘 상상이 안된다. 



전대 치과대학 왼쪽 담 골목 어귀에서는 서석 1동 반장과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큰 함지와 라면박스에 쌓아놓고 있었다 .시위대가 지나다가 마음껏 먹었다. "자식 키운 사람덜이 모른 체허믄 쓴다요? 집집마다 성의껏 쌀을 보태 주먹밥을 맹글었지라." 서석 1동이 처음은 아니었다. 양동시장과 남광주 시장 상인들도 주먹밥을 만들어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시위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나눠주고 했었다. 책에 나오는 지명을 따라 수십 번 지도를 펼쳐보았다.  




사격은 계속되고 어린 나이의 중학생도 희생된다. 가녀린 여학생들이 헌혈을 하러 나왔다. 헌혈하러 나오다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길에 총을 맞고 쓰러진 부상자를 실으러 가야 하는데 부상자 수송 중인 사람에게도 총을 쏘았다.  적십자 마크를 단 차에도 총을 쏘았다고 한다.



아! 시민 군은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했을까? 지휘본부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총 한 번 잡아 본 적 없는 일반 시민이었고 학생들이었다는 점. 군용 트럭에 탄 공수 부대원들이 도로 양쪽을 향해 10여 분 동안 난사를 했다. 광주 시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대형 스피커를 통해 방송은 계속되었다. 시신을 찾아가라는 것과 시민 군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YMCA 옆 진내과 돌담길 옆에 붙은 흰 종이에는 사망자 명단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사망자 명단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56세였으며 하!!! 가장 어린아이가 5세였다... 말문이 턱 턱 막힌다....



이쯤 되면 사재기를 하고도 남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구급약품이 부족하자 여학생들은 자신의 개인 돈으로 사다 날랐다고 한다. 병원 영안실에는 일반 시민들의 시신 중 특히 만삭의 몸으로 남편의 시신 앞에서 통곡하는 여자도 있었다고 한다. 죽었다고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연고자 확인이 안 된 시신은 관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부패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대부분은 총기를 자진 반납했다. 길에 버려진 총이나 수류탄도 있어서 걱정이었다.  '시민 수습위'의 핵심적인 요구는 묵살되었고 상무대 안에는 20사단이 들어와 있었다. 애당초 사건 원인의 진단부터 서로 다르니 회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삼베를 구하지 못하고 무명으로 대충 만든 수의를 입혔다. 논밭에 일하러 나온 농부들을 쏘았다고 한다. 도청 안 시신 안치실은 울음바다가 된다. 고인들은 마지막 가시는 길도 쓰디쓴 익모초를 지려밝고 가셨을 터. '죽어가는 영령들의 피를 팔아서는 안 된다.' 이 날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 비가 오는 가운데도 마직막 순간까지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윤상원은 고등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고등학생들은 나가라. 우리가 싸워서 도청을 사수헐 테니 니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라. 니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거라, 우리는 오늘 계엄군에게 죽을지도모른다. 그러나 니들이 우리를 잊지 않는다믄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록헐 것이다. 도청을 나가는 니들은 비겁자가 아니다.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  




새벽 3시30분 계엄군이 근접해오자 박영순은 마이크를 잡고 절규한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도청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어서 도청으로 오셔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세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빠 형제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나오셔서 학생들을 살려주세요." 이 방송을 하신 분을 검색해보니 아직 살아계신다. 역사의 증인이다.




도청 안팎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계엄군은 수류탄을 터트렸다. 잡힌 사람들을 직업, 출신을 분류하여 주동자로 몰리는 사람의 등에는 매직으로 '극렬'이라는 단어를 썼다. 외신 기자들은 정문 쪽에서 이 장면을 촬영했다. YWCA를 방어하던 시민 군들도 도청 앞으로 끌려갔다. 그냥 연행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죽도록 두들겨 맞은 후 그들은 트럭에 던져졌다. 거의 한 문단 건너 수명씩 사망자가 묘사되어 있다. 책에서 온통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두려워서 시체 밑으로 들어가 숨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희규는 도망쳐 자기방에서 마지막 글을 남긴다. '고결한 분노'라는 제목으로. 공수부대원 한 명이 옥상에서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의 마지막은 모른다. 소설은 여기서 끝났다.... 그렇게 끝나 버렸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1 때다. 전교조였던 국어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날 광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렇게 성인이 된 후 궁금증은 책을 통해 해결되었다. 만일 광주 아리랑 3권, 4권이 나온다면 5. 18 이후의 일과 희생자와 살아 계신 분들의 근황, 계엄군으로 지냈던 사람의 야심 선언이라든가  5.18이후 오늘날까지의 수사 상황 등이 궁금하다. 물론 가해자가 버젓이 살아있다. 가해자들은 얼마나 영욕을 누리며 한평생 호의호식하며 살다가 나이 들어서 결국 자연사하는 영광까지! 죄 없는 민간인이 그만큼 학살되었는데 가해자 처벌을 이렇게 질질 끌일 인가! 과정을 알았으니 이제 심판할 때다!




우리 근현대사의 사장 큰 민간인학살이자 군사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광주 폭동'이니 '빨갱이 간첩 사건'으로 알고 계신 어른들이 많았으니! 그 이후의 오랜 지역감정 역시 얼마나 불필요한 감정소모인가! 실제로 내가 가본 광주는 지역감정은커녕 친절하고 시민의식이 높은 도시였다. 내가 사는 지역이 코로나를 온몸으로 앓으며 정부가 시키는 대로 자가격리 수칙을 지키며 경제가 거의 파탄 수준이었을 때 가장 먼저 손 내밀어 준 도시는 역시 광주였다. 대구, 광주의 달빛동맹 끈끈한 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광주 사건뿐 아니다! 근현대사의 과정에 우리는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인권을 짓밟힌 사건들이 많았다. 전문가를 통한 공정한 사건 조사와 가해자 엄벌, 피해자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에 서둘러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r******7 2020.10.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제 편안해지시기를...
"이제 편안해지시기를..." 내용보기
?읽는 내내 온 몸이 아팠다.입안은 까칠까칠 하고 머리로는 읽어야지 하는데 손은 가지 않았다. 그래도 힘들게 완독했다.제3자인 나도 이런데 아직까지 그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가슴이 아릿하다.그 열흘동안의 광주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커다란 상처로 몸에 각인되어 질 것이다.특히나 정찬주선생님이 쓰신 광주 아리랑에는 누구 하나 주인공 아닌 사람이 없다. 그날 그 현
"이제 편안해지시기를..." 내용보기
?
읽는 내내 온 몸이 아팠다.

입안은 까칠까칠 하고 머리로는 읽어야지 하는데 손은 가지 않았다. 그래도 힘들게 완독했다.

제3자인 나도 이런데 아직까지 그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

가슴이 아릿하다.

그 열흘동안의 광주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커다란 상처로 몸에 각인되어 질 것이다.

특히나 정찬주선생님이 쓰신 광주 아리랑에는 누구 하나 주인공 아닌 사람이 없다. 그날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은 누구나 그 시대의 주인공이었고 그들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해 내었다. 왜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야하는지도 모르고 순진하게 모두 고스란히 받아낸 사람들...총기를 소지하고 있는것만으로도 가슴이 벌렁거려 자발적으로 총을 반납한 사람들, 힘든 와중에도 장을 열어 국을 나르고 밥을 같이 먹은 사람들, 자기 이익보다 광주를 위해 미래를 버려야 했던 젊은이들...광주에 살았다는것만으로 총에 맞아 죽은 영혼들...그리고 그 비참한 현장에서 혼자 살아 남았다는 슬픔을 가지고 힘들게 살아내와야만 했던 사람들...

광주의 울부짖음을 누가 잠재울수 있을까...

이제 그만 그 힘듦에서 다들 편해지시기를...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글 입니다
p****e 2020.10.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광주 아리랑
"광주 아리랑" 내용보기
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역사적 평가가 다양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올 해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이 남긴 숭고한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역사에 정치가 개입되는 순간, 권력자들의 욕망이나 야망을 풀기 위해, 그리고 그 권력에 의지하며 개가 되었던 사람들, 우리 근현대사를 바라 볼 때, 여전히 평
"광주 아리랑" 내용보기

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역사적 평가가 다양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올 해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이 남긴 숭고한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역사에 정치가 개입되는 순간, 권력자들의 욕망이나 야망을 풀기 위해, 그리고 그 권력에 의지하며 개가 되었던 사람들, 우리 근현대사를 바라 볼 때, 여전히 평가가 갈리는 부분도 많고 사람들이 언급하길 꺼리는 사건들도 많이 존재한다.

 

이 책도 역사소설이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라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갈망하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얻을 수 있었고, 지금처럼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현대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이룬 국가이다.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이런 과정에서 희생되거나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자세가 중요하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억류되거나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 시민을 상대로 발포를 명했던 무책임한 사람들까지, 인간이 보여주는 사악함이 어느 정도까지 행할 수 있는지, 우리는 그 잔인함에 분노를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5.18 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은 단체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역사의 뒤에서 숨어 이를 부정하거나 폭도로 규정, 혹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분단의 비극을 이용한 빨갱이 몰이, 지역차별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비방, 지금의 관점에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펼쳐졌음을 알게 된다.

 

독재를 부정했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모두가 잘사는 나라, 시민들이 주류가 되어 함께 희망을 보는 나라를 그렸지만, 우리 역사에서 군부독재는 계속해서 되풀이 되게 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갖는 상징성에 대해선, 역사시간에 많이 배웠을 것이다. 이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군부정권은 몰락했고, 시민들이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개인이 사익이나 정치적 활용을 위해 역사를 부정해선 안된다. 적어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사과하며 적절한 책임과 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책을 통해 5.18 민주화 운동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m**********m 2020.06.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광주 아리랑
"광주 아리랑" 내용보기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이했다.매해마다 뜻깊은 날이지만, 10주년 단위로 딱 떨어지는 날이면 더 특별한 느낌을 갖는 것 같다.이 책은 그런 40주년을 맞이하여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출간된 소설이다. 읽으면서 얼마나 숨차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던지.이경철 문학평론가님의 서평 내용처럼 '이게 기록인가, 소설 작품인가'
"광주 아리랑" 내용보기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이했다.

매해마다 뜻깊은 날이지만, 10주년 단위로 딱 떨어지는 날이면 더 특별한 느낌을 갖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40주년을 맞이하여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출간된 소설이다.

읽으면서 얼마나 숨차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던지.

이경철 문학평론가님의 서평 내용처럼 '이게 기록인가, 소설 작품인가' 묻게 하면서도 개결한 맛과 품위가 뭔지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광주 아리랑』은 5월 14일부터 5월 27일, 즉 14일간의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수많은 인물들과, 현장, 그리고 시간대와 날짜별로 짜임새있게 그리고 숨 가쁘게 그려나간다.

보통 주인공은 한명 내지 다섯 내외로만 두고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편인데(예를들면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는 영화 '택시운전사' 같은 경우처럼.) 이 책은 나오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식당 주방장, 요리사, 시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방직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대장, 장교,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기자, 신부, 목사 등 엄청 다양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까닭은 80년 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한 분 한 분을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영원히 기리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 마음을 알고 봐서 그런지, 14일동안 수없이 죽어간 많은 주인공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광주 아리랑』은 12.12사태 이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등 요직을 맡으면서 잠복해 있던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고 '계엄령을 철회하라' , '전두환 물러가라', '정치일정 단축하라', '노동자 생존권 보장하라',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라' 등을 내걸며 시위가 봇물 터지듯 일어난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집회인 '민주성회'가 한창이었고 횃불시위 행렬이 도청 광장에서 출발할 무렵, 전북 금마 7공수여단에서는 공수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식을 하면서 "작전은 화려한 휴가처럼! 건배!"를 외치고 있었는데...

'작전은 화려한 휴가처럼'이라고 건배사를 한 것은 고된 시위진압 훈련을 끝냈으니 휴가를 즐기듯 시위 시민, 학생을 상대로 산짐승몰이 방식으로 인간 사냥에 나서자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진압은....

 

끌려온 학생들은 모두 상의가 벗긴 채 허리띠를 풀고 신발을 신지 않은 전쟁포로의 몰골이었다. 얼굴이 부은 학생, 이마에 멍이 든 학생, 콧대가 주저앉은 학생, 머리가 찢긴 학생, 다리를 저는 학생 등을 보는 순간 서명원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p174

 

금남로 거리의 공기는 매캐했다. 특히 18일 이후 도청 앞 공기는 더 심했다. 눈이 따갑고 목구멍까지 메스꺼웠다. 최루탄 가스가 원형 분수대 주변을 스멀스멀 맴돌았다. p224

 

죄없는 학생들을 총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두들겨 트럭으로 실어가며, 부녀자를 발가벗겨 총칼로 찌르는 놈들이 이 누구란 말입니까? 이들이 공산당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중략) 죄없이 학생들과 시민이 수없이 죽었으며 지금도 계속 연행 당하고 있습니다. 이 자들이 있는 한 동포의 죽음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서울을 비롯하여 도처에서 애국 시민의 궐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p246

 

11공수여단 61대대와 62대대 공수부대는 특공조를 편성 공격해 버스 유리창을 깨부순 뒤 차 안에 최루탄을 던지며 운전수와 시위 시민 들을 끌어냈다. 현장에 붉은 피가 뿌려졌다. 그래도 시민군중은 공수부대 저지선 20미터까지 나아갔다. 이제는 공수부대원들과 시민들이 육박전을 벌였다. 시민 군중 가운데 부상자가 수십명 속출했다. 오후 7시 45분쯤에는 전투용 장갑차가 나타났다. p290

 

그때였다. 바퀴 달린 시위 장갑차 한 대가 도청 분수대 쪽으로 달렸다. 장갑차 뚜껑을 열고 한 청년이 용감하게 상체를 드러냈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청년은 윗옷을 벗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도청 광장을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그 청년을 향해 가차 없이 집중사격을 했다. 목에 총을 맞은 듯 청년의 머리가 푹 꺾였다. p341

 

정말 지옥이 따로 없는 광경이었다. 부상자들을 싣고 오는 차량으로 병원 앞 도로가 차량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적혀있다.

게다가 피가 부족하여 헌혈을 해 달라고 호소하는 헌혈차가 돌아다니기까지 했다고 하니. 정말 얼마나 심각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정말 책 속의 모든 사건들과 인물들이 진실을 밝히고 전하기 위해 아우성을 보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참 많은데 이 책도 그 소설들과 함께 길이길이 기억되어 그 날의 진실을 계속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시민들은 구호를 외쳤고 학생들은 훌라송을 불렀다.

그러다가도 시민과 학생이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모아지면 아리랑을 목 놓아 합창했다.

아리랑은 날마다 거리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졌다.

민주화를 위한 평화집화 때는 학생들이 열망의 아리랑을 불렀고, 공수부대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는 시민들이 공포의 아리랑을 불렀다.

또 공수부대와 총격전을 치를 때는 시민군들이 분노의 아리랑을 불렀고, 공수부대의 총에 시민들이 희생당했을 때는 부모 형제들이 통곡의 아리랑을 불렀다.

그런가 하면 공수부대를 물리쳤을 때는 시민 모두가 감격의 아리랑을 불렀고, 도청을 탈환했을 때는 해방의 아리랑을 불렀으며, 계엄군이 다시 진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탄식의 아리랑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민들은 도청 광장에 다시 모여 부활의 아리랑을 부를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2권 p268

YES마니아 : 골드 z******0 2020.05.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