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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에 그녀는 계단에서 헛발을 디뎌 굴러떨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자주 휩싸였고 또 그만큼 자주 계단 앞에 걸어가는 사람을 그녀가 밀어 넘어뜨릴 것만 같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 폭설, 126p
그럼에도 이런 겨울 오후에, 각설탕을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리면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각설탕 탑을 쌓는 일에 아이처럼 열중하는 늙은 남자의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어른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는 삶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또다시 차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 199p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그러다 탑이 무너질 떄까지. 각설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 201p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닿고 싶은 마음의 크기와 그 모양이 단 1%라도 훼손되지 않고 그쪽으로 그대로 온전히 옮겨갈 수 있도록. 전하고 싶은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바람은 더더욱 간절했다. 기대와는 정반대로 내 마음이 전혀 다른 색깔로 닿는다거나 아예 닿지도 않고 튕겨져 나온 일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요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말과 글로 분명히 담아내는 사람들이 부럽다. 당신이 하는 말이 분명하게 나에게 들어올 때면 나 역시 그 힘을 받아 정확하고 솔직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절로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백수린 작가가 <여름의 빌라>에서 하고 싶은 말은 명확했던 것 같다. 8개의 단편은 모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탄생했지만 결국 작가가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같은 선상에 놓여 있었다.
책에는 완벽하게 아름다웠던 관계가 속절없이 망가지거나, 이미 망가져버린 관계를 뒤늦게 마주하기도 하고, 관계로 인해 '내'가 망가지기도 하는 등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와 그 결이 조금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덮고 보니 특이하게 느껴졌던 점은 망가짐의 끝을 마주하는 인물들의 마음이 마냥 '슬픔'으로만 가득차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 인물이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주는 결말 역시 '그리움'만으로 남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황예인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끝나버린 인간관계를 두고 회피"하는 것이 이토록 쉬운 이 시대에서, 인간관계에서의 단절과 이별이 주는 고통이 "드넓었던 나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식간에 줄어들어버리는 것"과 같을지라도, 책 속의 인물들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마치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공교롭게도 책을 읽는 동안의 나는 소설 속 인물처럼 관계로 인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고 있던 와중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되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나를 무너지게 했다. 마냥 슬펐다기보다, '이게 뭔데 나를 무너지기 해."라는 절망이 더 힘들었다. 경험을 통해 깨우치고 성장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당장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까진 안됐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피하거나 안주하는 대신 슬픔에서 잠시 머물다 끝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이자 분투라는 것. 그 여름 시끌벅적했던 나의 고군분투 속에서 백수린의 소설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부족했던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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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오밀조밀 잘 쓰여진 듯 그럴싸 해보이나, 읽고나니 알맹이가 없다. 즉, 스타일리쉬(?)하게 글은 쓰여졌지만, '도대체 이 책을 읽고 내가 뭘 느껴야하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8편의 수록된 단편들 중에서 두 편 정도만 그냥 저냥 읽어줄만한데, 그 마저도 어지간히 글 좀 쓴다는 작가들이 한 두번씩은 쓰게 되는 성장형, 가족형 이야기라서 새롭거나 신기할 것도 없다. 이 책이 별로인 조짐은 첫 단편 '시간의 궤적'부터이다. 얼추보면 프랑스 유학중이던 '나'와, 그 즈음에 알고 지내던 주재원 '언니' 에 대한 이야기로 작가의 의도는 뻔히 보이지만...일단 화자인 '나'가 조금 문제다. 그냥 별생각 없이 유학 갔다가, 공부는 안하고 일주일 내내 한국 교회만 줄창 다니면서 외로움을 달래다가, 체류증 연장을 위하여 현지인과 사귀다가 (다행히)결혼까지 갔지만, 언어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종종 경제적으로 까지) 외롭거나 괴로워하며 사는...그냥 실패 유학생 뒷 이야기. 특히 프랑스면 더욱더... 그러다보니, 작중 화자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내가 저런 대책없이 사는 허접한 애의 이야기까지 들어야하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여름의 빌라' 역시 뭔가 담은듯하나...주아와 지호는 시간강사이긴하지만, 유학파 박사라는 나름 먹고살만한 애들인데, 태국의 수상가옥을 보는 지호의 시선이 조금 당황스럽다. 뜬금없기도 하거니와...과연 그런말들이 그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하는 면에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고요한 사건'은 일전에 다른 리뷰에서도 썼지만, 이 분야의 여왕은 '외딴방'의 신경숙이다. 심지어 김혜진 작가도 얼마전에 비슷한 내용의 책(아마도 '불과 나의 자서전'인가 하는 작품을 썼다. 그래서 잘 읽히는 소재를 선택했지만, 아무래도, 글빨이든 말빨이든 돋보이는 부분이 없다. '폭설'은 뒷 마무리가 이상하고, '아직 집에 가지 않을래요'는 착한 의사 남편을 둔, 순종적인 와이프의 불안함, 불균형 같은 것이 조금 웃긴다. 82년생 김지영도 나오고 했는데...그렇지 않을 바에야 그냥 집에 차려 입고 앉아서 백화점 쇼핑이나 다니면 될 것 같은데...뭐가 불만이람. '흑설탕 갠디'는 깔끔하기는 하나 그냥 소품정도의 역활만 할 뿐이고... '아주 잠깐 동안에'는 뭔가 흉내는 내고 싶은데 소재도 엉성하고, 임팩트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역시 '고요한 사건'의 카피같은 느낌인데, 그냥 어딘가에서 수없이 봐왔던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고, 가족을 포함한 타인은 이러이러 하였지만, '나'는 무사히 잘(?) 살고 있다,는...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글인지 살짝 의구심이 생긴다. 혹시, 잘못 읽었나 싶어, 작품해설을 보니 칭찬 일색이고, 작가의 말도 그냥 공허하다. 영감을 받은 영화,음악,미술, 다른 문학작품에 대해서 풋노트를 달아놓았는데, 이는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고 연구하여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냥 남의 인스타그램가서 타인의 삶을 훓어보고는마구 마구 상상해서 쓴 것 같다. 뭔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백수린 작가의 글이 요즘 트렌드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름 외국 생활을 하였고 그로 인한 배경의 신선함을 좋으나, 실상 열어보면 글에 '삶의 그 무엇'이 없다. 그냥 별거아닌 감정의 장난질에 썩 적극적으로 대처도 하지 못하는듯하며...그냥 카드들고 백화점에나 가서 신상 핸드백이나 사던지, 아니면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수다나 떨면 끝날 정도의 이도 저도 아닌 심심함이 글 전반에서 느껴진다. 뭐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샤넬 핸드백 하나들고, 커피는 꼭 스타벅스에가서 마실꺼야' 정도의 깊이. 이 책을 책장에 꽂아 넣으면서, 내 책장에 꽂혀있는 다른 책들을 살펴보았다. 책들은 겉표지만 봐도, 그 삶의 생생함이 전해져 칼같은 글들이 떠오르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송곳처럼 내마음을 후벼파 숨이 막힐 지경인데...이 작가의 작품은 그냥 겉표지가 예쁜 잡지 같다. 내 책장에서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으려나. 인간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영원하겠지만, 스타일만 강조한 이야기는 생명이 짧다. 스타일은 쉽게 변하니까... 기대를 많이 했던 소설집인데, 정말 많이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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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아들녀석때문에 구매하게 되었다. 백수린의 소설이 좋은 건 알았지만, 신작 소식에 바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종이책으로 구매할까, 전자책으로 구매할까 갈등중이었다고 해도 될까. 그러던 차에 백수린의 다른 소설을 읽고 있던 아들이 작가의 소설이 너무 좋다며 신작 구매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구매를 결정했다. 여태 읽어왔던 백수린의 소설답게 단정했고 거의 여성의 서사였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다양한 주인공들을 만났다. 때로는 사람때문에 힘겨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이별을 한후 뒤늦게야 후회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고해도 이별한 사람에게 연락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몇 작품은 읽은 소설이라서 반가웠고, 다시 읽는 소설은 처음 읽었던 것과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아무래도 소설을 다시 읽다보면 더 깊이 빠지게 된다. ![]()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게 없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매력적이었다는 말이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시간의 궤적」이나 「고요한 사건」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다시한번 작가가 주는 매력에 빠졌다. 작품들 모두다 좋았지만 특히 언급하고 싶은 작품이 「흑설탕 캔디」와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었다.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같은 경우, 내가 백수린 작가의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뭔가 백수린 작가 답지 않은 소설이라 여겼다. 사춘기,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게 된 시기.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며 만나는 친구들 또한 다양한 감정으로 만나게 된다. 부모님에게는 공부 잘하고 착한 딸이지만 사춘기를 지나는 주인공 '나'는 엄마가 사 준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밤마다 몰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고 있는 성에 눈뜨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힌 다미와 우연히 말을 하게 되며 그 아이가 말하는 직접적인 호기심으로 점점 다가간다. 소설 속에서 언급하던 것과는 다른 실제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다미는 베프 선주와는 다른 느낌의 친구다. 소설은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을 주로 다뤘는데 그때는 금기의 단어였지만 이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한 시기의 추억이었음을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기에는 엄청 큰 사건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삶의 궤적임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흑설탕 캔디」를 읽는데 어쩐지 그리움에 젖은 듯 울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전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던 증조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한 단편이었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이 느꼈을 상황같은 건 없었다. 프랑스에 가지도 않았고 많이 배운 할머니도 아니었다. 기억나는 건 곰방대를 들고 앉아 계신 것만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왜 증조 할머니를 떠올렸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게 할머니라곤 그 분밖에 없어 그랬는지도. 상우 말 때문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을 꾼 주인공 '나'는 오래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자기들을 키워준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의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 교육을 받은 할머니때문에 어렸을때 죽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가 프랑스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후 프랑스로 건너갔던 '나'의 가족은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와 함께 였다.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던 '나'는 그곳에 적응하는 게 바빠 할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본어는 잘하지만 프랑스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타국에서 겪어야 했던 마음에 신경쓰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일기장을 들춰보며 그때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살았던 1층에 거주한 브뤼니에 씨와 얽힌 이야기들을. 할머니는 피아노 곡이 들리는 소리에 그 집앞 창문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멈춰있었는데, 그 뒤로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는 불한 사전과 한불 사전을 놓고 이야기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동안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느꼈을 향수를 음악과 브뤼니에 씨 때문에 버티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약간의 자책과 그리움이 물씬 풍겼다. ![]() 표제작 「여름의 빌라」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9월이긴 하지만 여름에 나왔으므로, 또 여름에 구매하였으므로 여름에 어울리는 제목의 책이다. 「여름의 빌라」의 주아는 배낭 여행중 알게 되었던 독일에 살고 있는 베레나와 한스 의 초대로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의 한 빌라로 향하게 된다. 다른 소설에서도 나타났지만 연인 혹은 부부가 둘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초대하거나 그들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주아도 남편 지호와 함께 베레나와 한스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배낭 여행때 만났었고, 지호의 유학시절을 포함해 5년 넘게 알아온 관계였다. 같은 공간에 머물다보면 서로의 생각이 달라 마찰을 빚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살아온 환경때문일 수도 있고, 각자가 처한 상황때문일 수도 있다. 사원들을 구경하고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상가옥 마을에 가기로 했다. 건기에는 육지이지만 우기에는 톤레사프 호수가 범람해 모든 집들이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이었다. 수상가옥 마을을 다녀온 후 한스는 날씨 걱정도 없고 삶이 여유로웠다고 말하며 그곳으로 어떻게 돌아갈까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지호는 수상가옥 마을의 아이들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거라고 한다. 나중에야 베레나와 한스의 딸이 한 사건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아가 베레나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소설인데 결말에 그만 울컥하고 만다. 손녀딸 레오니와 있었던 일화였다. 네모난 선을 그렸던 레오니.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오자 그 아이들에게 다른 선을 그어 주었던 레오니였다. 선 밖에 있던 아이들에게도 선을 그어 선 안으로 들어오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생각지 못했던 것에서 어른과 아이의 다른 점을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이 피부 색깔이 달라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된다. 하나의 선은 두 개가 될 수 있고, 세 개, 네 개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마음을 어떻게 여느냐에 다르지 않을까. 다양한 경험이 우리 삶의 커다란 자양분이듯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또한 우리 삶의 다른 자양분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친구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재산과도 같지 않은가. 다시 백수린의 소설에 매혹당했다. #여름의빌라 #백수린 #문학동네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책리뷰 #한국소설 #한국문학 #시간의궤적 #고요한사건 #폭설 #아직집에는가지않을래요 #흑설탕캔디 #아주잠깐동안에 #아카시아숲첫입맞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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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빌라를 여름에 읽었다 계절과 어울리는 책이었지만 어딘가 조금씩 조금씩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건 내가 타국의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 탓도 있을 것 같다 * 브뤼니에 씨가 건넸다는 그 말에 대해서 할머니는 대명사 두 개와 동사 한 개라고만 적어놨으므로 그 안에 감춰진 말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을 기다릴게요 Je vous attendrai”일 수도 있고, “그리울 거예요Vous me manquerez”일 수도 있고,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사랑해요Je vous aime”일 수도 있지만 그 말이 진짜로 무엇이었는지 나로서는 영영 알 길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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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를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된 소설입니다. 표지가 소설 제목과 굉장히 잘 어울리며 수채화 색감으로 괜히 마음이 두근거리는 시작이었습니다. 단편집라서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면서 여행이 가고싶어지는 책이었습니다 ㅎㅎ 따스해지면서 눈물이 날것같은 감정은 뭘까요..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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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말 다 한 것 아닌가요. 오랜만에, 너무 좋았다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필사노트도 가득 채웠구요. 화자들은 어떤 사건의 한 가운데에 있지않고, 다 지난 후에 이야기해요. 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감정, 너도 이해하지? 이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큰 감정들도 지나고나면 괜찮다는 듯, 내게 무언가 남기지만 과거가 될 뿐이라는 듯한. 담담히 잘 읽히면서 또 아름다운 장면을 참 잘 그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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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외양도, 책 속 내용도 예쁜 책이다. 한 폭의 수채화같은 표지는 물론이고, 내지 (도비라라고 하는 페이지??)도 꽃무늬같은 예쁜 페이지로 되어 있다. 책을 만든 편집자의 정성이 느껴졌다.
아마 작가는 성정이 참 고운 사람인 듯하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생이 결코 차갑고 음울하지 않다는 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우면서 섬세한 문장 사이 사이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8편의 단편 소설들 하나 하나가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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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백수린 작가의 신간.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문체가 잘 드러나는 책이다. 책 속 인물들이 입체적이라는 생각을 하던 중 해설에서 "인간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었다."(p.286)라는 문장을 봤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빛과 그림자 모두를 가지고 있다. 인상 깊은 작품은 <흑설탕 캔디>와 <폭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특히 폭설의 묘한 분위기가 계속 생각난다. 누군가 책표지는 책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그렇다. 은은한 채도의 유화 질감 표지와 레이스 커튼 같은 내지. 그런 분위기를 닮은 글들이 실려있다. / 시간의 궤적
예전에 읽었을 때나 지금 읽었을 때나 너무 좋았던 소설. 내가 짧은 생을 살며 인간관계에 대해 느꼈던 감정들을 축약해놓은듯한 글이라 더 깊게 와닿았다. 화자는 언니를 만나 언니의 세계를 접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언니와 멀어지게 되고 후에 언니의 sns를 알게 되지만 연락하지 못한다. 해설 속 말처럼 "이별의 슬픔은 비단 한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데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드넓었던 나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식간에 줄어들어버리는 데에서 오는 고통"(p.273) 또한 내가 감수해야 할 고통이다. 그러나 나는 이별했다고 해서 나의 세계가 사라지고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자의 상황으로 보면, 언니와 함께했던 순간과 감정들을 화자가 기억하고 있다. 그 세계가 더 넓어지지 않고 멈추어버렸지만, 그게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그 기억들은 내 거니까. 또 해설에서 재밌었던 말. "하지만 이 인물의 특별함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타인의 잘못으로 이별의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p.272) 나는 어쩌면 화자가 분노와 후회와 그리움의 시간 끝에 초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그랬듯이. 시간이 해결해 주었듯이. 그래서 시간의 궤적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여름의 빌라
어쩐지 부끄러워지는 문장이었다. 아이들은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사람을 대한다. 그저 함께 놀 수 있는 '친구'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선입견이 겹겹이 쌓여 낯선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나조차도 그러니까.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이미 껴버린 색안경을 벗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차라리 뇌를 비워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한 가지면만 보고 인간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렇게 판단한 결과가 올바른 결과일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입체적이니까. 고요한 사건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온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과 실제 그 사람 모습 사이의 간극을 마주하는 날이. 그 사람의 이미지는 그저 내 상상 속에서 내가 멋대로 가공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날이. 내 생각만큼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주하면 좀 슬퍼진다. 화자가 고양이 아저씨를 돕지 않는 아빠를 마주했던 것처럼. 화자는 이로 인해 계층 간 구분을 이해하게 된다. 폭설
화자가 열한 살 때 그의 모부님은 이혼하고 화자는 아빠와 살기를 택한다. 엄마는 미국으로 가 케빈이라는 남자와 재혼했고, 화자는 매년 방학마다 엄마가 있는 미국으로 향한다. 화자는 모종의 이유로 열네 살 이후 미국을 가지 않았고, 그 후로는 화자를 보기 위해 매년 엄마가 한국으로 왔다. 시간이 흘러 스물 끝자락에 화자는 다시 한번 미국으로 가게 되고 엄마와 함께 로드트립을 떠난다. 갑작스럽게 마주친 폭설로 도로 한가운데 머무르게 되고, 화자는 엄마에게 그간 쌓였던 감정을 터트린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속 엄마처럼, <폭설>속 엄마는 자식을 위해 본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본인의 인생 또한 중요한 엄마. 그건 내가 나의 엄마에게 바라던 모습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도 이렇게 본인의 삶을 선택했다면? 그랬다면 나도 화자처럼 엄마를 원망하고 그리워하며 자랐을까? 그랬더라도 언젠가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므로.
저 위의 문장이 깊게 와닿았다.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기도 하고. 나는 나를 낳았을 때의 엄마 나이를 지났다. 그 해가 좀 힘겨웠던 것 같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던 엄마 생각을 자주 했고, 나도 엄마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될까 봐 무서웠다. 어쨌든 그 해는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때 엄마는 아주 어렸다. 스물을 넘긴지 몇 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에서 경험을 쌓기도 전에 나를 낳아 키웠다. 종종 그때의 엄마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다 엄마가 나 대신 엄마의 젊은 시절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폭설 속 엄마처럼. 화자의 엄마의 모습에서 어떠한 위로를 얻었다. 내 엄마 모습이 겹쳐 보여서.(물론 우리 엄마에겐 케빈이 없었지만.) 마지막 문장인 엄마의 말이 좋다. "짐승을 한 마리도 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우린 참 운이 좋구나." 엄마 나름대로의 위로가 아니었을지. 네 마음을 다 이해하고, 그럼에도 널 사랑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다른 글들과 달리 다소 스릴러처럼 느껴져서 신선하고 좋았던 글. 어떻게 삶을 거대한 체념과 연관 지을 수 있는지. '거대한 체념' 이 두 단어에 글에 등장하지 않는 화자의 삶이 어땠는지 보이는듯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소름이 끼쳤다.
흑설탕 캔디
동생으로부터 우리 프랑스에 살 때, 할머니 아랫집 할아버지와 사귄 거 맞지?라는 말을 들은 화자.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셔 직접 확인할 길은 없고 할머니의 유품인 일기를 들춰보며 당시 상황을 상상한다. 말도 통하지 않고 손주들도 없는 오전이면 할머니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지에 대해. 불어를 모르는 할머니가 브뤼니에 할아버지와 대화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며 단어로 대화하는 장면이 좋았다.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도. 세월이 지나 겉모습은 늙었으나 할머니의 마음은 늙지 않은 것 같아서. 할머니가 "이건 내 것이란다"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완벽하게 좋았다. 아주 잠깐 동안에
이런 게 인생 아닐까. 분명 선의로 시작한 일이지만 귀찮고 후회하는 마음이 드는 것. 그러나 같은 일이 생긴다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돕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굴러가는 게 아닐지. 언젠가 지하철역에서 캐리어를 옆에 두고 계단 앞에 서있는 아주머니를 마주친 일이 있다. 나는 그때 학원에 늦을 것 같아 마음이 급했고, 캐리어를 들어줄까 하다가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며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갔다. 그리고 며칠 동안 후회했다. 학원에는 늦지 않았지만 그 상황이 잊히질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지나친 것에 대해서. 그 후로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면 그냥 하고 후회하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카시아, 첫 입맞춤
우리 모두 비슷한 사춘기를 보냈으므로 공감되어서 웃겼다가 마냥 웃기지만은 않았던 글. 어디에나 다미 같은 친구는 있고 선주 같은 친구도 있다. "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느라 봄을 온통 허비했다.", "나는 슬슬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껏 흥이 오른 아이들 앞에서 먼저 가겠다는 말을 하기가 싫었고 마음 한구석으로는 내가 드디어 엄마의 통제 밖에서 일탈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다. 이런 문장들에 공감하며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봤다. 그땐 진짜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왜 그런 것들이 멋있어 보였는지. 왜 '일탈'하고 싶어 했는지. 그러나 이 모든 게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저 위의 문장에 너무 공감하며 작가님 ... 혹시 중학교 다시 다니시는 중인가? 졸업한 지 십 년이 넘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 이 단편집 속 인물들은 나의 세계를 넘어 더 큰 세계로 나아간다. 물론 그 과정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런 게 인간의 삶 아닐까. 백수린 작가의 글은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 이 모든 게 공존하기 때문에 마음에 깊게 와닿는다. 그리고 삶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이번 여름을 이 책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
| 안녕하세요~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받아서 구매하게 된 백수린 작가님의 [여름의 빌라]인데요.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해주시는데에는 역시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차분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책도 기대가 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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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여름의 빌라』는 사려 깊은 인물들이 지나온 “격정적인 한 장면”을 둘러싼 계절과 세월에 더해 집중 해서 함께 쫓아가 보는 일이 그의 소설을 읽는 주요한 독법이자 체험일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소설 속에서 아름다운 장면의 연결을 기억하고, 서사의 힘과 문장의 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읽기 목표가 주어졌다.
「시간의 궤적」은 그때는 미처 보지 못한 이면의 진실이 오랜 시차를 두고 당도하는 이야기이며 선명한 상실의 감정 앞에서 단절이 아닌 마주하는 용기를 택하는 소설 속 화자들에게 상실은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다. “언니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언니와 나는 프랑스 어학원에서 몇 달째 수업을 같이 듣고 있었다.
함께 술을 마시며 언니가 대기업 주재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언니와 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들을 좋아하고,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졌고,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꿈꾸며 프랑스에 건너와 살고 있다는 사실들이 벽을 허물게 했다.
“취향과 마음이 맞는 한국인 친구를 만나는 것은 취향과 마음이 맞는 외국인 친구를 만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 가던 차였다.” (p13)
그 후로 몇 주 동안 언니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와 언니의 연애사와 사소한 이야기까지 허물없이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외국 생활에서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서로 힘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서울에서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경험해 볼 생각이었고, 더 이상은 후회로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p18)
언니는 용감하고 반짝이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나는 원했던 대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대학원에서 프랑스인 브리스를 만난다. 첫 만남에서 데이트 신청 후, 브리스와 사귀게 된다. 살림을 합쳐 살던 그들은 석사 과정이 끝나가자 귀국할 시기가 되어 서로 예민해져서 다툼이 잦아졌다.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의 불안 때문에 결혼을 결심한다. 행정적인 절차를 위해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나의 증인 역할을 언니가 해주었다. 나는 결혼 후 불안했던 상황들이 해소되며 충만한 기쁨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해가 바뀌자 기쁨은 조금씩 사라졌고, 나는 내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자각하게 된다.” (p25)
나는 결혼해서 프랑스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 상황이 바뀌었는데, 언니는 체류 기간이 끝나면 귀국할 사람이라 필요한 정보도 대화 내용도 상반될 때가 많아지게 된다. 서로 상황이 바뀌면서 받아들이는 마음도 변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프랑스인과 결혼한 여성과 주재원의 부인들에게 프랑스 요리와 생활 등 프랑스 문화에 대해 배우는 클래스에서 언니를 남자나 밝히는 여자로 험담하는 말을 듣는다.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다”라고 말하고 나와 더 이상 그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언니는 귀국 준비로 바빠졌다. 브리스와 셋이서 마지막 여행을 간다. 브리스와의 관계가 소원해서 브리스를 두고 여행을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느 카페에서 언니와 브리스는 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둘만 아는 이야기를 나눠서 나를 서운하게 만든다.
브리스가 한국 음식만 먹게 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나는 브리스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랐고, 언니는 조목조목 브리스를 다독였고, 나는 브리스가 질린 것이 한국 음식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언니가 내 남편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듯이 말하는 게 싫었고,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p34)
위로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양면적인 생각이 드는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부부의 소원한 문제를 언니는 아이를 낳으면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조언했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석연치 않은 대화로 감정이 묻은 채 여행은 막을 내린다. 마지막 만남 후 언니는 귀국한다.
주인공은 아이를 낳고 예전보다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아이가 생기고 프랑스에도 자기 삶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척들의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서운함도 옅어진다. 프랑스에서 함께 빗속을 뛰어갔던 추억을 생각한다.
언니 생각을 하면 여지없이 보고 싶어 진다는 말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격정의 세월을 함께 보냈던 언니였기에 평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처지가 바뀌면서 관계도 달라진다. 나의 상황이 바뀌면서 상대방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도 바뀐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렇지만, 서로 허물없이 진심으로 관계를 맺었던 순간은 오래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잔잔한 추억이 되어 그리운 순간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