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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신학 : 신학가 사진의 만남 - 최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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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히 낯선 영역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사실 신학에 그다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 최병학의 책들은 이런 내가 신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 그가 쓴 『테오-아르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예술이라는 구체적인 작품들에 깃든 신학적인 의미와 해석은 나로 하여금 신학에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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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은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히 낯선 영역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사실 신학에 그다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 최병학의 책들은 이런 내가 신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 그가 쓴 『테오-아르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예술이라는 구체적인 작품들에 깃든 신학적인 의미와 해석은 나로 하여금 신학에 조금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추상적이라고 생각한 신학의 의미를 예술 작품이라는 구체성을 지닌 것으로 바라봄으로써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사진-신학』(Photheology)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 최병렬은 사진 속에서 신학적 의미를 읽어내는 것에 관한 그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사진으로 대변되는 일상의 모습을 신학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한 장의 사진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겨자씨와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 사진 한 장이라는 보잘 것 없는 도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진-신학'은 사진 한 장에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여 신학적 사유의 풍성함과 신앙의 깊이를 다시금 고민하는 것이다.

 - p. 8 中에서 -

 

 이제 신학은 사진이 존재의 본질과 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찰나를 신의 이름, 아니 신의 빛으로 기억해 내고, 그 사진에 신앙의 깊이를 새겨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다양한 사진을 통하여 신학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진은 장엄하면서도 요묘한 느낌의 사진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어린 딸의 모습과 같은 평범한 사진부터 '카파이즘'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카파(1913~1954)의 그 유명한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1936)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사진들을 신학적인 해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다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다. 어쩌면 그의 이전 작품 『테오-아르스』의 예술 작품보다 일상의 상징인 사진은 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구체성을 지닌 더 적절한 대상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다루지 않는다면 낯선 사진작가 김아타의 시도는 무척 대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는 연장노출(extended exposures)다중노출(multiple layering)을 통하여 의미있는 사진들을 탄생시켰다. 여기에서 연장노출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두고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이고, 다중노출은 이미지를 수십 번 중첩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아타는 『도덕경』 5290자, 『논어』 1만 5817자, 『반야심경』 260자를 한 자 한 자 촬영해 각각 한 장으로 포개는 작업을 했는데, 그 결과물은 각각의 글자의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희미한 흔적의 이미지가 되었다. "자신을 구속하던 경전이 솜사탕이 되더라."라는 김아타의 말은 그 사진을 통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고, 없애버림으로써 있음을 드러내는 구도자의 깨달음이 사진에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중노출 이외에도 얼음으로 파르테논 신전이나 마오쩌둥의 얼굴을 제작하여 1개월간 그 녹는 과정을 촬영함으로써 사진에 "모든 존재가 생멸하고 이 우주에 생멸하는 법을 거스를 존재는 없다."라는 주제를 담기도 하였다.

 

 사진은 물론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를 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은 브라질 출신의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초반에는 지구촌 곳곳을 누비면서 '욕망'과 '기아 문제', '노동자의 치열한 삶', 이주민들의 고통' 등을 생동감있게 사진에 담아내면서 유명해졌는데, 그는 점점 증오가 증오를 낳는 인간 존재의 본성에 회의를 느끼면서 카메라를 내려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생태계 복원작업을 주도하다가 자연의 경이를 마주하면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다시 담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연과 하나가 되며 힐링이 되고 순환하는 삶의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그러한 세바스치앙 살가두를 '신의 사도'로 평가한다. 그가 지구촌을 누비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찍는 것은 천국에 갈 인물들을 찾는 행위로 바라본 것이다. 타자를 위해 비운 자만이 신의 사도가 될 수 있으니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과 주제의 변화는 그에 비견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쟁의 참상으로 얼룩진 시대를 묘사하는 데 한 장의 스틸사진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생생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로버트 카파의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1936),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같은 그의 사진은 스틸사진의 효과를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은 사람들의 분노와 저항을 자아내게 된다.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분노'는 주체로 하여금 대상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분노는 해로움 또는 손상에 대한 반응이며,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은 지닌다"고 말하는 누스바움의 말을 통하여 우리는 분노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저자가 카파의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은 사진에 담긴 의미 해석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 이 땅은 '분노해야 하는 것'을 '혐오하게 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카파이즘을 따르는 기자도(언론의 문제는 영화 『내부자들』이 정말 잘 포착했다.), 존재의 진리를 탈은페하려는 정치도, 존재자의 재현을 통해 존재의 진리를 현시하려는 신앙도, 목회도 없기 때문이다.

 - p. 51 中에서 -

 신실한 기자 정신을 의미하는 '카파이즘'에 대한 이야기에서 사진이 가져오는 분노, 그리고, 그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확장되는 이 과정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기자 정신을 상실한 언론인들에 의하여 거짓 기사가 난무하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고, 권력자는 물론 종교인들마저 물질적인 이권을 탐하며 시국을 어지럽히는 행위가 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각각의 사진이 아닌 사진 그 자체의 등장에 따른 회화계의 변화마저도 신학적으로 해석한 부분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풍경화와 인물화, 정물화와 같이 회화가 재현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사진은 더 잘 재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회화는 곧 종말을 고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회화는 선과 색, 곧 형태와 채색이라는 회화의 근본으로 돌아가며 그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추상화가 등장하면서 오늘날 현대 미술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에 사진은 알게 모르게 기여를 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진이 가져온 변화를 통하여 한국 개신교가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그 근본, 즉 민중을 계몽하고 전근대적 구습과 대결하며 인권을 신장하고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던 개화기의 개신교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주장을 이끌어내고 있다. '반공의 신학화''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세력화'는 어느덧 사람들이 한국의 개신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다. 최근 코로나 19 사태에도 요지부동인 그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종교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진을 찍는 것을 영어로 'shot'이라고 한다. 그런데, 'shot'은 '총을 쏘다'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우연하게 두 가지 의미가 하나로 묶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진을 찍는 행위 역시 총을 쏘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리비아를 철권 통치한 카다피의 살해와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시신을 모독한 행위는 순식간에 카다피에 대한 이미지를 파괴한 행위였다. 알 카에다 조직이 참수 현장을 굳이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카메라의 효과로 인하여 그러한 참수가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분명 총을 쏘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사진회화로 원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진의 효과라 할 수 있다. 『루디 삼촌』이라는 독일의 사진회화 작품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복을 입은 루디 삼촌을 사진처럼 그린 것이다. 하지만 그 사진을 뚜렷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그림으로써 그 이미지가 주는 느낌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유태인을 말살하고 슬라브족에게 가혹했던 독일군의 이미지가 희미함이 주는 상상력이 삼촌에 대한 그리움으로 탈바꿈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사진-신학』(Photheology)은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들, 즉 사진 작품, 사진 작가 심지어 사진 기술을 포함한 것들에서 다양한 신학적 해석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은 영적인 해석으로서 또 현재 우리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로버트 파카와 함께 위대한 사진 작가로 유명한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을 통한 찰나의 미학을 보여준 인물이다. 어떠한 연출과 효과를 거부한 채 그 순간의 장면에 삶의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그를 떠올린다면 사진이라는 그 찰나의 미학에서 신학적인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곧 그 찰나의 순간의 연속인 우리의 일상 자체가 신학적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사진'을 매개로 일상의 삶이 신학적 해석이 가능한 의미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신학에 대한 낯설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g*******7 2020.08.29. 신고 공감 13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사진과 신학의 기능적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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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신학                최병학 지음저자는 사진을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요 시간을 담는 매체'라고 했다. 그리고 신앙은 ‘죄에 빠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며’ 신학은 ‘공동체의 회심과 경험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p 144)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글속에서 사진이라는 예술적 취미 + 신학적 지식 + 신앙의 깊이까지의 공통분모를 인간의 삶속에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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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신학

                최병학 지음

저자는 사진을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요 시간을 담는 매체'라고 했다. 그리고 신앙은 ‘죄에 빠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며’ 신학은 ‘공동체의 회심과 경험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p 144)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글속에서 사진이라는 예술적 취미 + 신학적 지식 + 신앙의 깊이까지의 공통분모를 인간의 삶속에 찾아내고 적용하며 또한 사진의 아마추어 및 전문가적 과거와 현재적 물리성에 가족과의 추억과 소중함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전체적인 포멘인 듯 하다. 덧붙여서 목회자이기도 한 저자의 표현처럼 신학과 사진 공히 존재의 본질과 현실의 고통을 들어내는 찰라를 각각 신의 이름과 자연광을 이용하는 신의 빛으로 기억해 공통적인 신앙적 깊이를 되새기는 사진 + 신학이라는 이름의 여정이다. 이를 비유적으로 말하면 목회자이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에게는 부담스러울듯하지만 성경적으로 말하면 창조로부터 타락, 회개와 구원의 길에대한 모둔 순간들이 성경에 씌여있듯 사진 또한 비록 종이 한장에 불과하지만 이 또한 찰라의 정지한 순간을 과거로부터 존재한 역사적인 현장의 펙트를 박제처럼 기록된다고 보았을때 역시 사진과 신학, 신학과 사진 모두 신학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나 같은의미의 형이상적 물리성을 가지는것에 공감이 갔다. 


그렇다면 생소하지만 사진 신학, 사진에 담긴 신학적 의미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일종의 메타포로 저자의 표현처럼 예를 들면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한 사진이지만 그 속에는 한 사람, 한 세대, 시공간의 숨결이나 생명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진 한장이 어떻게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신앙적 생명을 얻으며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 제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저자의 이 관념을 “사진, 철학을 만나다”의 저자 백승균 교수는 사진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인간 의식과 사진의 관계에관해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으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p 21)

첫번째의 사실은 사실의 기능, 사실의 신학이요, 의미의 사진, 의미의 신학을 말함이요.

두번째의 의미는 사람은 사실만으로 살지 않고 의미로 살아가는 존재요.

세번째의 의식은 김아타 사진작가의 독특하고 탁월한 실험을 통해  다중노출기법이란 기능적 스킬을 적용, 뉴욕을 찍은 1만컷의 사진을 1만번 겹친다면 결과물은 어떻게 될까, 또 논어, 도덕경, 반야심경 성경을 한자씩 사진을찍어 한장으로 겹치면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그리고 인물 얼음 조각이 어떤 형태로 변하며 녹을까라는 실험을통해 의식의 흐름, 글자의 흐름, 형태 흐름의 변화가 의식에미치는 영향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성경에서 말하듯, 천하만국의 영광이 결국 사라지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것을 깨달음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즉, 어원적으로, 사진은 빛을 쓰는 것, 

사진작가는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세상을 쓰는 사람, 

사진 신학은 빛을 신학하는 것, 

신학자는 빚과 그림자로 세상을 해석하는 사람.(p 29)


또한 저자는 사진과 신학의 복선적인 통찰을 통해 포토저널리즘적 시선으로 전쟁 사진작가인 카파이즘을 논하고, 화이트 스완의 비유로 한반도 위기의 지속 가능성을 그렸으며, 다양한 성경 인물들을 통해서는 깨달음의  길은 지극히 어렵다고 고찰하고 있다. 좀더 들어간다면 사진의 찰라를 잡아내는 끝이없는 사진의 예술성 또한 고뇌의 산물임을 말하고 같은 의미로 복음서에서는 좁은 문의 비유와 힌두교의 구원에 이르는 길 세가지인 깨달음의 길, 헌신의 길, 행함의 길을 통해 말로는 쉽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행해보면 정말 어려운 길의 이면을 짚어주고 있다. 여기서 수전 손택이 풀어놓은 사진의 어원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즉, 영어 ‘shot'은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라는 두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어떤 대상의 사진을 찍는 순간 그 대상에 다른 어떤 것이 관통한다고 보는 것이다.(p 77) 관통과 고뇌, 고민은 같은 의미리라.


마지막으로 저자는 라깡의 주이상스를 논하면서 의식의 떨림과 이성과 신체적 주이상스와 신앙과 믿음으로서 바울의 인간적인 고뇌의 한계에서 보여주는 믿음의 주이상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를 접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자크 라깡에대해 읽었던 기억과 풀 리쾨르의 책중에서도 안티고네의 비극에대해 의미있게 읽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가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에 케노시스 기독론, 앞서 언급했던 카파이즘, 시뮬리르크와 시뮬라시옹, 라포, 픈크톰효과, 믿음의 사도로 칭송받는 바울의 인간적 고뇌의 신비체험 등에 대해 저자는 숭고한 어떤 것을 대할때 드는 감정이란 긍정적인 만족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감탄이나 경외감을 내포하는 부정성, 부정적 쾌감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든것들에대해 복선으로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로서 한컷의 작품을 위해 시간과 바람과 빛과 계절의 작용과 반작용의 적용이 의미있는 공감이 갔다.(p 98)

또한 저자가 언급한 롤랑 바르트의 푼크톰puncrum 효과에 대해서도 라틴어로 점이라는 뜻으로 해독하기 힘든 개별적인 효과, 화살처럼 꽃혀오는 어떤 강렬함의 의미로 자기자신에게 어떤 강렬한 상처나 흔적이나 생체기를 남길때를 말하고, 또 스투디움studium은 일반화된 상징으로 예를 드련 강렬한 성경구절이나 의미있는 사진 한장이 영혼을 흔드는 것처럼 자아를 흔들때 적용되는 개념임을 언급하고 있다.(p 9)


이러한 저자의 관점이 갖는 철학적인 의미는 저자에게 사진이란 세상을 담아내는 큰 그릇이다.(p 144)라는 시선이다. 여기에 신학이라는 목회자적 견지에서 바라보는 사물의 신적인 요소까지 소환해서 일반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울수 있겠지만 크리스찬이라면 또 인문학적 독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다양한 읽을꺼리와 취미적 요소들을 상식들과 더불어서 소개하고 언급하고 있다. 사진찍기가 취미이신 분들에게는 사진과 과거와 현재, 신학과 사진의 성경적 요소, 그리고 가족까지 두루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사진을 찍을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고 찰라에 승부는 거는 것은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 그 자체에 정열을 쏟은 적이 없다. 아주 짧은 순간에 나타나는 피사체에대한 흥분, 구도이 아름다움에 내자신을 잊은 채 찍는 것이다.(p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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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닌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 놓은 것이고 

그래서 사진은 기억을하기좋은 매체라는 것이다. [수전 손택]. 

c**********y 2020.09.1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