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왔고 머무르고 다가올 내 모든 날들에 안녕!
안녕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 아침과 저녁이라는 대비되는 상황 앞에서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왠지 나에게는 끝, 마지막을 의미하는 단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안녕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거의 그때뿐이다. 예를 들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내가 맡은 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 안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 앞에 열심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니 조금 우습지만 아무튼 그렇다. 정이현이라는 소설가의 이름보다 먼저 들어온 게 이 책의 제목이었다. 왠지 슬픈 연애 소설일 것만 같은 느낌에 마구 읽고 싶게 만든 작품이었다. 아니면 내 지난 시절에 영원히 안녕을 고하는 것인가 같은 생각도 들었고, 현재 내 삶을 마주 보며 괜찮아? 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말하는 건가 같은 생각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말하는 소설이다. 세 청소년의 시절을 회상하면서 성장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할까.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게 맞을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성장하면서 고통, 아픔, 사랑, 이별, 추억, 그 모든 것을 겪게 되니까.
열아홉살 이후 나는 생에 대해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아왔다. -8쪽
한 번 듣거나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아서 사소한 것,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기억하게 되는 게 두려운 지혜. 잊고 싶은데,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기억해야 하는 것도 참 아픈 일이다. 사람들은 기억하기 위해서 애를 쓰며 살아간다면 지혜는 그 반대 경우인 거다. 뚜렛 장애를 앓고 있어서 걸핏하면 욕설이 튀어나오는 준모. 게다가 이 아이는 첫사랑 앓이로 더 아픈 10대를 보낸다. 이 아이들 사이에서 아픔을 함께하며 자신 또한 양쪽 부모 모두에게서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이 부유하긴 하지만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조부모의 틈에서 삶을 살고있는 세미. 세 아이의 성장기는 조금 아프다. 청소년 시절, 방황 한 번 하지 않는 이들이 있겠느냐마는, 각각이 가진 상실감과 고충이 크기 때문에 이들의 청소년 시절, 90년대는 찬란한 반면 고통으로 일그러져있다.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이,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이, 고등학생 때는 어서 20살 성인, 대학생이 되고 싶었고 대학 생활을 하면서는 하루빨리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뭔가 그럴듯한 자리를 굳히길 바라마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과연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이 되기를 소망하는가? 이제 더이상 어떤 나이가 되고싶다는 생각보다 더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이대로 멈췄으면 하고 바란다. 시간은 유예되지 않고, 젊음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걸 바란다는 거다. 순리대로 살아가자, 섭리를 받아들이지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는 갈망은 은연중에 갑자기 고개를 드러내는 두더지 게임 속 그것처럼 불쑥불쑥 다가온다. 학교 앞 문방구, 오락실 앞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었던 두더지게임을 좋아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해소하려는 마음으로, 그저 저 만질만질한 머리를 통통 쳐대는 스냅이 통쾌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기계를 언제 봤는지도 가물가물 할 지경이지만 말이다. 나의 90년대도 그런 시절이었다. 기억하고 싶지만 가물거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때 그랬었지 혹은 내가 그랬었단 말이야 같은 의아함에 잠식된 채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오랜 지기를 만났다. 만남은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졌고 낯설지 않은 음악을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워갔다. 그때 흐르던 음악을 뒤로하고 친구는 말했다. "너, 이 노래 알아?", "당연하지!", "역시, 나와 같은 시대를 보낸 친구 맞구나!" 우리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그래,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현재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유독, 90년대는 아련하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나의 십 대, 학창 시절이 10년이라는 시간 안에 온전히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90~99년. 초등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나의 사춘기, 나의 학창 시절이 10년 안에 고스란히 다 들어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면서 조금 놀랍기도 하고, -여태 내가 그런 셈을 해보지 않았다는 게- 한편으론 지겹기도 했던 시절이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기도 하다. 최소한 그 시절에 나는 세상을 몰랐으니까, 삶이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는 것도 몰랐고 좋은 날보다는 아픈 날이 조금은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몰랐고 내가 이 나이가 될 거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나와 같은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그리워한다, 함께였던 그 시절을, 멋모르고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우리의 청춘은 왜 이다지도 아파야 하는 걸까. 세미, 준모, 지혜, 1990년대 십 대의 끝자락을 보냈던 아이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처럼 방황했고 이들처럼 미래의 청사진에 부풀었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날개가 꺾여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한 마리 날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 이 시간만 지나가면, 나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제약과 억압에서 벗어나는 20대가 오면, 나는 더이상 바닥에서 힘 없는 날갯짓을 하는 나약한 새가 아니라 비상하고 또 비상하는, 힘찬 날갯짓을 하며 창공을 누비는 새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시간은, 세월이 비껴간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그때의 기백과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조금은 지친, 세월의 때가 묻은 우리가 되어있다. 그래서 시절을 회상할 때 우리는 반갑기도 하면서 때로는 아프다.
당분간이란 잠깐과 얼마나 비슷한 단어이고 또 다른 단어일까. 얼마의 틈을 당분간이라고 하는 걸까. 그 당분간이 지나간 뒤에 우리가 다시 모인대도 우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길 위를 나란히, 서로의 등을 밀며 걷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215쪽
기약 없음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섣부른 약속과 다짐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지만 사실 나는 그 단어를 체념과 동의어로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쭙잖은 자기 위안인 걸까. 맞다. 그래야만 당장을 견뎌낼 수 있으므로, 어쭙잖더라도 되뇌는 것이다. 괜찮다. 언젠가는 괜찮아진다 라고... 이들의 당분간은 돌고 돌아 10년이 넘는 세월이 되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은 정말 알 수가 없다. 10대의 끝자락에, 성장의 문 앞에서 작별의 인사를 했던 이 아이들도 그리 긴 세월 동안 자신들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월은,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가 버린다. 눈 깜짝할 새에, 우리의 어제는 오랜 과거로 남아, 힘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이 소설 안에서는 세 친구의 우정을 매개로 그 시절 굵직굵직했던 사건을 수면 위로 부각시킨다. 당시에는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핫이슈도 10년이 넘게 지나온 세월 앞에서는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 사망, 성수 대교, 삼풍 백화점 붕괴, IMF 등. 몇 날 며칠 동안, 사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꽤 오랜 시간, 이 사건들의 뉴스로 도배됐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은 오밀조밀 견고하게 직조된 반면, 세세한 기억 앞에서는 백기를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시절을 회상할 때 우리는, 큰 사건을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고 연상작용을 통해 내 기억을 연쇄적으로 들춰내게 된다. 이 소설이 가진 힘이 그런 거다. 아스라이 멀어진 기억을 조각조각 끼워 맞추며 내 십 대를 돌아보게 하면서 현재의 나를 투영하게끔 하는 시간을 전해주는 것.
그런데 요즈음 너의 삶은 어떠니.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나는 어쩌면 이제야 그것을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247쪽
세미, 준모, 지혜를 보면서 생각해보니 그랬다. 10대 학창 시절 나는 항상 나를 포함해 세 명이 함게 몰려다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곰곰 반추해봤는데 정말 그랬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다 다른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같은 듯 다르게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쉽게 말해 세 명이서 공통의 비밀을 만들지는 않았다는 거다. 않았던 건지 못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명이 함께 어울리고 친하게 지내면서도 각각의 상대와만 하나씩, 혹은 그 이상의 비밀을 공유했다. 왜 그랬을까. 분명, 친했지만 상대적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셋 중 둘은 더 친하거나 덜 친하고 덜 친밀했던 것이다. 성향과 가치관은 쉽게 동화되기 어려운 법이므로 우리는 같은 듯 다르게 서로의 비밀을 공유했던 거였다. 그렇다면 세미, 준모, 지혜, 그들이 결국 같은 비밀을 공유했다고는 하나 그 비밀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비밀에, 고민에 휩쓸려 살았다고 할 수도 있는 거였다. 비밀은 비밀로 남겨진 채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이들이 공유한, 함께 직조한 비밀은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결국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각자의 삶을 살았다. 비밀의 무게에 짓눌렸을 테고 비밀을 영원히 지키고자 선택한 그들 나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어 만났을 때도 비밀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외려 더 견고하게 무장한 채였다. 아니면 옅어졌다고 해야 할까.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무게가 비밀의 무게보다 더 버거워 잠시 망각했었다고 해야 할까. 기억의 심연 어딘가에서는 언제나 묵직한 돌덩이처럼 가슴을 콱 움켜쥐고 있었지만, 살아가야 하는 현재가 더 중요했으므로, 기억하면서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같은 듯 다르게 기억을 직조한 채로 살아간 이들이었다. 그래서 비밀의 시절을 회귀하는 동안 그들은 아팠던 것이다.
같은 듯 다른 비밀을 공유했던 친구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삶의 영속성이 주는 과제라면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겠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우리는...
안녕,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지난날, 안녕,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의 모든 나날, 안녕, 지나왔고 머무르고 다가올 내 모든 것.
|
|
같은 시대를 산다는 건 추억을 공유하는 일이다. 유행하는 문화를 함께 즐기고 놀라운 사건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함께 한 친구는 특별하다. 비밀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방패가 되어주는 친구가 있어 힘겨운 시간을 견딜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영원한 우정이 존재하리라 믿었던 시절이 있는 것처럼.
소설 속 지혜, 세미, 준모도 그랬다. 의지로도 제어할 수 없는 뚜렛 증후군을 앓는 준모, 잊고 싶어도 한 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을 가진 지혜,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부유한 조부모의 집에 짐처럼 맡겨진 세미는 삼총사였다. 중학교 때부터 언제나 함께였다. 그들이 지나온 1990년대는 놀라운 사건이 많았다.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졌고 김일성이 죽었다. 정이현은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1990년대 서울의 강남을 복기시킴과 동시에 혼란스러웠던 십대의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세 아이들의 이야기는 세미가 화자가 되어 들려준다.
‘스무살이 되는 해는 1997년이다. 가깝지만 머나먼 숫자였다. 유리잔 밑바닥에 남은 우유 찌꺼기처럼 희뿌옇고 탁했다. 1988년에는 1991년이, 1991년에는 1994년이 그렇게 느껴졌었다. 시간은 늘 체력장 오래달리기 같았다. 눈을 감고 뛰다보면, 저 앞에 도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뒤로 처져 있는 거다. 늙어간다는 건 따라잡을 아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없어진다는 거겠지. 앞만 보고 뛰는 일도 뒤를 돌아보는 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 좀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다.’ 63~64쪽
입시로 기억되는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이 되는 것보다 스무살이라는 말이 더 가깝게 느꼈을 때다. 세미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조부모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나이였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집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고모마저 사랑이 아닌 학벌을 택해 결혼을 하자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새 여자를 대동했고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 안은 엉망이 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교수 부모를 두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지혜와 점점 심해지는 뚜렛 때문에 유학을 결정하는 엄마를 따라야 하는 준모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마음을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세미와 친구들은 더 단단해지고 비밀을 나눠가질 수 있었던 거다.
‘불행은 틈을 주지 않고 들이닥친다. 해석하거나 납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 해석되지도 납득되지도 않는 것, 그것이 불행이 가진 본성이니까. 이상한 낌새를 채고 어, 어, 어쩌지, 하는 순간에 불행은 토네이도처럼 사정없이 휘몰아친다. 정신을 차려보면 움푹 꺼진 구덩이와 그 주변에 어지러이 널린 일상의 잔해뿐이다. 잔뜩 물때가 끼어 있는 불투명 욕실 슬리퍼 한쪽. 그런 것만이 우리가 간신히 목격할 수 있는 불행의 실체이다.’ 174쪽
소설은 1990년대 강남 세태를 담았지만 90년대는 아릿한 어느 시절을 꺼내오는 촉수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가슴 속 깊이 간직한 비밀 상자를 열게 만든다. 비밀 상자에 담긴 게 좋았던 추억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지나야 했던 시절의 상처나 잊고 싶은 기억 말이다. 정이현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게 새로운 기억이듯 감당할 수 없었던 과거의 시간은 살아갈 시간으로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안녕, 내 모든 것>이란 제목처럼 아프고 슬픈 것들과 안녕을 말해야 할 때다.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든.
|
|
김광석의 노랫말이 떠 올랐다. " 점점 더 멀어져간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그 시간과 그렇게 매일 이별을 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것을 이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간 그 시간을 과거라는 기억의 방속에 하나 둘 차곡 차곡 쌓아 놓고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다 불현 듯 다시 꺼내보고 싶을 때 꺼내서 그것을 다시 바라보고 만져보며...하지만 그 기억의 방이라고 하는 것이 쌓아 둔 그대로 모든 것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기에 꺼내보려해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기억들은 불현듯 이 책의 첫 문장처럼.. 김정일이 죽었다.. 김일성이 죽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등등의 일들과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세미, 지혜, 준모가 함께 했던 그 시절을 함께 하며 그들을 통해 나의 기억의 방속에 놓여져 있던 많은 것들과 만날 수 있었다.
다가올 나의 스물, 서른..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기대보다는 막연함과 불안함을 느끼는 때 인 듯 하다. 열일곱이라는 그 시절은.. 세미처럼.. 유엔빌리지를 지나 담장 높은 단독주책과 값비싼 빌라가 늘어선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육중한 철대문의 큰 집에서 살며 아침마다 학교까지 고급승용차로 등교를 하는 세미.. 그러나 그녀는 "그 피가 어디로 가겠어.."라고 말하는 할머니, 무관심한 할아버지 그리고 밤새 나이트에서 놀다가 지혜에게 문 열어달라고 삐삐를 치는 고모가.. 가족이었다. 엄마.. 는 미국으로 야반도주를 한.. 그렇기에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하는 존재였고.. 아빠..는 새로운 여자와 할아버지의 재산을 탐하는 그런 타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는 지혜..그러한 비범한 능력을 감추고 쌓여만갈 뿐 빠져나가지 않는 자신의 기억들을 힘겨워한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이 마구 욕설이 뛰어나오는 뚜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준모.. 세미에 대한 자신의 맘을 온전히 표현하지도 못 한 채.. 엄마의 뜻에 따라 학업을 중단하고 우리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으로 나가 자유로움을 찾아보려 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보듬으며 가장 아픈 십대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들어내고 싶지 않은 각자의 아픔과 비밀은 있었다.. 점저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결국 1996년 그들은 셋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파티를 계획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서로 공유해야하는 그렇지만 떠나보내야만 하는 기억의 한 자락씩을 잡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하는 그들.. 그들은 훗날 어떤 모습으로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만나게 되는 그 기억과 어떤 인사를 나누게 될런지..
존치버의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이라는 소설이 문득 떠 올랐다. 별장에 모인 사람들이 예전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그날을 기억하며 각각의 기억속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이 소설이 그런 것 같다.. 90년대 삼풍백화점의 붕괴. 서태지와 아이들. pc통신 ,삐삐..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각자가 기억해 내는 과거의 기억.. 세미, 지혜 그리고 준모에게는 십대시절에게 안녕을 고하며 우유찌끄러기와도 같이 뿌옇고 탁해보이기만 했던 그 스물을 맞이했던 그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모든 것을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렇다고 무작정 그 궤도를 벗어나기에도 두려웠던 그 시절..나도 내 기억속의 방속 어딘가에 묻혀있던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보게 된다. 그 당시에는 힘들었고 무거웠고 무채색의 칙칙했던.. 그랬다고 믿고 있었던.. 그것들.. 그렇게 한 구석에 놓여있는 그 기억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과 이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지금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면 왜 그렇게 힘겨워하고 두려워했었는지...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들와 안녕? 하며 안부인사를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안녕... 그것은 그것들과의 이별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로에게 지금의 자리에서 무사함을,, 그 안부를 묻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것들로 인한 나의 무사함에 대한 고마움을...
그래서 오늘 나는 이렇게 말해본다.. "안녕.. 내 모든 것.. "
![]()
|
|
‘안녕’이라는 말로 내 지나온 과거와 이별할 수 있다면 좋을까? 아니면 아쉬울까? 1994년은 나에게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년도이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가 94학번(제대로 들어갔다면 91학번이겠지만 ^^)이라는 이름으로 캠퍼스에 나의 존재감(?)을 알리던 시기였고, 신나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기였고,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달달한 사랑이 시작됨을 알리는 시기였다. 지난 과거 중에 가장 기억하고 싶은 때가 언제냐고 물어봤을 때 1994년이요를 크게 외칠 수 있었던 시기였고, 내 청춘의 꽃이 가장 아름답게 핀 시절도 바로 그때였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행복도, 청춘도 90년대 중반이후로 다시 하향 점을 찍게 되었다는 것. 이 책을 통해 나의 20대를 그려본다.
결코 죽지 않을 것 같은 불사신(?) 김일성이 죽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1990년대 중반. 강남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친구 세 명의 이야기이다.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부모와 떨어져 부잣집 조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세미, 뚜렛 증후군에 시달리는 준모, 한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지혜. 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암묵적인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은 1994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의 많은 사건들을 추억하게 한다. 김일성이 죽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유난히 더웠던 여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과 천리안, 하이텔 등의 오랜만에 만나는 추억의 이름들.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환의 천일동안, 1과 2분의 1의 노래... 말하면 금방이라도 입안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유행가의 가사들. 나에겐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고, 상처이고, 추억이다. 강남이라는 신화가 시작되는 그때. 강남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학원 순례를 시작했고, 친구가 경쟁자가 되기 시작했으며, 내 내면의 이야기를 모두 다 꺼내 놓을 수 없는 어른의 바로 전 단계가 시작되었다. 겉으로 봤을 때 부잣집 딸이거나 손녀였을 세미는 마음의 상처가 많다. 하지만 그 마음의 상처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세미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신의 딸(세미에게는 고모)을 검사에게 시집을 보내기 위해 돈이라는 무기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도 안다.
상처 없이, 고민 없이 어른이 되면 참 좋겠지만, 어른 세계로의 입성은 쉽지 않다. 친구들과의 우정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은, 세월은, 외부의 시선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놓는다.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 것 같은 친구에게도 비밀이 생기고 표현하지 못할 마음의 감옥도 생긴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성장해 나간다. 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따르고 배우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되어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 때 유난히 생각나고 기억하게 되는 년도가 있다. 어떤 이는 그 시기가 너무 행복해서 기억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이는 상처가 많아서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어떤 년도가 되었던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 있다는 것은 그래도 행복한 것 아닐까?
누구에게나 오는 사춘기 시절은, 그 당시엔 힘겹고 괴롭고 아플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많이 추억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렇게 쓰라린 성장 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안녕 내 모든 것.” 이라고 작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세미와 지혜는 그 날 이후 일부러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한 번쯤은 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잊고 싶었을 것이다. 언급한다고 해서 기억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인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젠 날고 싶으니까요..” 이렇게 인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좋아하는 작가가 새 책을 냈다고 하면 득달 같이 구입해서 읽는 편인데 사실 많이 망설였다. 94년도라는 추억을 소재로 한 것도 그렇고, 그 중심에 강남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왠지 새롭지 않다는 느낌이랄까?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서도 다뤄진 부분이어서 사실 새롭거나, 아주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색, 자본주의의 성장과정이 그 안에 녹아 있고, 90년대 전후로 비약적 발전을 일으키며 아이들의 심리가 폭발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젠 왠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딱 거기까지. 그래서 조금은 아쉽다. |
|
결말이 다소 뜨악하다. 픽션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읽으면서 내가 인지하거나 제대로 잡아내지 못해서 오는 부분인지, 아무튼지 좀 당황스러웠다.
정이현은 [달콤한 나의 도시]로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 내겐 깔끔한 깍쟁이 같은 문장과 느낌을 갖게 만든 작가였다. 이번 작품 [안녕, 내 모든 것]은 다소 그러한 이전의 내 느낌에 비껴선 10대를 지나 20대를 향하는 세미, 준모, 지혜의 성장담이다.
[안녕, 내 모든 것]은 1990년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즉 김일성 사망, 삼풍 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지존파 사건 등을 배경으로 세 아이가 처해있는 아픔을 이야기 한다. 세 명의 아이는 가난해서 삶의 방향으로 달리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 강남 이라는 둘레에 살면서 각자가 갖게 되는 부모로부터의 문제를 안고 생활한다. 엄마, 아빠의 위장 이혼이 결국은 진짜 이혼으로 이어지고 세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 세미, 자신은 아버지의 손에 의해 부자인 조부모 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생활하게 된다. 그나마 고모가 있어 외롭지 않았지만, 그 고모도 결혼이라는 제도 이후 세미와 거리를 두게 되어 더욱더 외롭게 지내게 된다. 준모 역시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설을 통제하지 못하는 뚜렛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이로 결국은 자퇴를 하게 되고 덴마크로 유학을 결심한다. 대학 교수를 부모로 둔 지혜는 부모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집 안에선 늘 자신의 맘을 둘 곳을 찾지 못하지만, 세미와 준모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쏟아낸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겐 너무나 조용하고 말수 적은 아이로 알려져 있지만, 두 친구 앞에선 전혀 다른 모습인, 솔직한 자신을 보여 준다. 더구나 지혜는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은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그러한 사실을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해 애를 쓰지만, 두 친구에게만은 모든 사실을 알리며 10대 후반의 시간을 지낸다.
완벽한 삶은 없듯이, 세 아이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서로를 친구로서 가까이 또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함께 한다. 그렇지만, 세미 할머니의 주검을 둘러싸고 세 아이는 어쩌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일을 하게 되고 그 사건 이후 서로는 각자의 길로 향하게 된다. 30대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세미와 지혜는 이제는 그 동안의 서로에게 소원했던 시간들에 대해 묻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을 깨닫게 되고, 할머니 무덤을 찾아가보지만, 서로의 엇갈리는 기억으로 실패하게 된다.
[안녕, 내 모든 것]은 세 주인공이 1990년대인 10대에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그저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음을 안타까워하고 아파했던 자신들에게 이제는 '안녕' 을 고해야만 하는 시기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 또한 내가 겪어 왔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 후회와 안타까움을 끌고왔다면 이제는 그러한 시간들에서 벗어나야 할 때는 아닌지 되짚어 봐야겠다.
* 중간에 오자가 한 두개 눈에 띄었다... |
|
정이현의 등장을 생각해본다. 얼마나 신선했던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간결하고 예리한 문장들. 군더더기 없는 내용의 빠른 전개. 낭만적 사랑과 사회, 라는 소설의 첫 두 장을 읽자 마자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됐었다.
이후 나온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도 좋았다. 재미있었고, 그러면서도 통속적이지만은 않았다. 백영옥의 '스타일'같은 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품격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나왔던 '너는 모른다' 이 작품이 나오자 마자 무조건 샀고, 바로 읽었다. 어? 잘 안 읽히네?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래도 읽었다. 정이현이니까. 내가 컨디션이 별로라 너무 잘 읽히는 작가의 책도 잘 안 읽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절반을 넘어가면서, 그게 아닐지도, 그니까 원인이 내가 아닐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흠잡을 데 없는 구성이고 문장이었지만... 소설에 울림이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 작가가 겪지 않은 일을 썼구나. 천착하지 않은 주제구나.
그리고 오늘, 안녕 내 모든 것을 보면서... 이 작가가...여기까지인가? 생각했다. 이 작가가 누릴 영광은 처음의 두 책에 집중적으로 분배되어 있었던 것일까? 정이현은 이 다음 책에서 다시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과연? 아쉽고, 슬펐다. 이름만으로 집어들 수 있는 작가 한 명이 사라진다는 건...슬픈 일이다. 앞의 두 권의 명성과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으로 이 책의 판매부수는 올라가겠지. 하지만...
아마, 작가도 알고 있을 것이다.
|
|
안녕 내 모든것.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한 시기를 불러 낸다. 작가가 주목한 94~96년은 유례없이 불운한 시기 이다.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표면상 민주화가 이루어져 민주주의라는 것에대한 관심이 가장 희미해 져 버렸고 갑자기 나타난 서태지로 상징되는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 서태지 2집을 거치며 완성되어 주류를 위협하기 시작한 때며 88올림픽을 보며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신세대란 이름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와 복학하며 다시한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기 였다. 그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이 일상화 되어도 왠지 모를 안도감과 낭만적인 방식의 도피로 한쪽구석이 불안한 시기 였다. 또한 그시기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새로운 문화 경향, 다양한 소비 패턴, 해외여행, 민주화, 사고들..- 결국 97년이 지나고 나면서 IMF사태의 원인으로 귀결되어 버렸다. 작가는 이 IMF로 귀결되기 전의 시기에 주목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90년대 강남 아이들의 성장담으로 읽는다. 하지만 작가는 이소설을 단순한 강남의 성장담이라 하기에는 불편하고 배배 꼬인 장치를 심어 놓는다.
첫 장치는 가장 강남스러운 주인공인 세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강남에 살고 있지 않고 있다. 물론 강남보다 더 업그레이드 된 유엔빌리지가 그녀의 거주지다. 하지만 세미는 자신을 숨긴다. 이미 그녀는 그가 어디에서 살고 있던 이미 90년대의 우리 사회가 비슷한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란것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런 일들은 고모도 마찬가지다. UN빌리지에 살고 있지만 고모 역시 강남의 영역에 맞추어 자신을 세팅한다.
두번째 장치는 강남에 살고 있는 아이스크림집 아들 준모다. 그는 강남에 살지만 강남안에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욕" 이란 장치로 모국어를 쓰는 모든 이에게 배제 당한다. 유일한 세미와 지혜만이 자신을 구원할 존재 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세미조차 준모를 친구이상의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며 준모의 과외선생과 "성관계'를 함으로서 세상은 녹녹하지 않다는 사실을 준모에게 알려준다. 작가는 준모를 통해서 강남이란곳을 우리 사회 전체로 객관화 함으로써 모순의 보편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세번째 장치는 지혜다. 작가는 지혜의 입을 통해 그녀가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증언한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90년대를 기록한다고 소설 초반에 선언 함으로써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까지도 마치 정말 정확한 기억이며 기록인것 처럼 의미를 부여해 준다.
이런 세가지 장치로 작가는 고립되어 있는 94~96년까지의 한국 사회를 증언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장치와는 다르게 그 증언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 90년대 청춘이 지나간다. 세명은 강남에서 부유하며 떠돌며 때로는 다음 세상을 위한 노력을 하며 삶을 살아간다(불행이도 IMF).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결국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어"
작가는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개발독재의 보편화된이미지의 할머니와 그 아들과 딸들을 등장시키고 몇가지 질문을 툭 던진다.
작가의 단편에서도 등장시킨적이 있었던 "박정희"시대의 인물, 개발시대의 자화상인 할머니를 통해 자랑스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지만 성공하고 생존하였던 개발 1세대의 인물들을 이야기 하고 그리고 그 인물뒤에서 기생수처럼 살아가는 그 2대들의 삶을 조심스럽게 보여주며 그 기생수 아래에서 뚝뚝 떨어지는 단물을 받아먹으며 살고 있는 3세대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작가는 어울리지 않는 우리시대의 1세대와 2세대 그리고 3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며 다르게 살아 가는지도 보여준다. 물론 어떤식으로 그 공존이 끝나는지를 제시함으로서 (어쩌면 시작부터 등장하는 김일성의 죽음 김정일의 죽음이 이를 상징할지도 모른다) 사실은 각 세대라는게 결국은 그 전 세대의 보제품이며 변주에 지나지 않음도 알려준다. 개발 1세대의 몰락이 사실 97년 IMF가 오기전에 발생한것 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생각보다 쉽게 쓰러져 버린다. 그리고 그 쓰러진 존재들은 2세대의 필요성에 의하여 "실종"의 존재로 만들어지고 3대에 의하여 유기 당한다. 그리고 그 유기는 10여년 후 개인의 기억과 현존하는 실체에 따라 때로는 잘 모셔진 것으로 때로는 불법적인 행위로 기억 된다.
작가는 여기서 소설을 끝내지 않는다. 독자 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선언하였던 지혜가 마지막에 도발을 한다. 지헤가 과연 모든 것을 기억했을까? 항상 자신의 과잉 기억을 두려워하고 그 기억속으로 숨고자 했던 지혜는 할머니가 있는 장소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시골 노인에게 이상한 존재로 치부되어 버린다. 작가는 이야기 한다. 애초부터 지혜의 기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쯤에서 작가는 소설 어디쯤에 숨어서 혼자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처럼. 내가 말한 이야기 그리고 지혜가 준모가 그리고 세미가 한 이야기가 과연 그시대의 이야기 일까 하고.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바로 안녕 내 모든 것의 다른 이름인 듯. |
|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신선한 작품집이었다. 철 지난 운동권 회고담이나, 선 굵은 대하 소설, 어설픈 연애 소설의 틈바구니에서 현대 사회의 일면을 예리하게 보여 줬던 정이현의 독특함은 분명 가치 있는 것이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훌륭한 대중 소설이었다. 순문학과 소위 칙 릿의 경계선에서 가볍지는 않은 '연애'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의 역량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정이현의 다른 작품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반포 주공 아파트, 삼풍 백화점, 1990년대' 라는 장치는 그대로이다. 그리고 소위 순문학계에서 흔하게 다루는 사람들과 배경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름의 재미와 독특함은 있다.
그러나 세 명의 주인공은 지극히 평면적이고, '고등학생'임을 감안해도 그 언행의 유치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소위 상류층의 '결혼 문화<재력과 권력을 주고받는>'와 유산을 두고 벌어지는 형제들의 다툼 등의 이야기거리는 식상하기만 하다. 뜬금없는 이야기 진행과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히는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개연성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한 때, 정말 즐겁게 읽었던 작가인데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로맨스 소설 같은 (발랄한? 가벼운?) 느낌의 표지 디자인도 '특정 독자(20~30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듯하고, 거기까지가 어찌 보면 작가의 현 주소인 것 같기도 하다. |
|
달콤한 나의 도시 때문에 알게 된 정이현 작가의 신간 ‘안녕, 내 모든 것’을 좋은 기회에 만나보게 되었다. 저번에 읽었던 달콤한 나의 도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이현 작가의 이번 신간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특히 청춘들에게 들려주는 특별한 안부라는 띠지의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먼저 이 이야기의 간략한 줄거리를 살펴보면 배경은 90년대 중반이고 세미, 지혜, 준모 이렇게 세명의 인물로써 90년대를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들 개인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게 각기 다른 상황들은 어려움과 고단함, 아픔과 상처들이 있다. 이렇게 세 명의 친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기도 위로하기도 하며 방황의 시절들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어느새 나도 모르게 흠뻑 취해 빠져버려서 거침없이 페이지를 넘겨갔다. 이야기 속으로 푹 빠지게 만드는 능력 또한 정이현 작가의 실력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나는 90년대 중반때라면 어렸을 때라서 그때의 사건으로는 기억나는 것들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에게, 그리고 그 시대의 배경 속에 깊게 빠져들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작품의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버렸다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달콤한 나의 도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로운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번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십대 시절의 방황이나 흔들림, 상처와 아픔들,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들까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깊은 여운을 주는 따듯함이 들면서도 뭔가 애틋한 묘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는 달콤하면서도 쓸쓸한 그런 작품이었다. 그리고 달콤한 나의 도시부터 안녕, 내 모든 것 까지 읽게 되니 정이현 작가의 또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고 찾아서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음 나올 작품도 기다려지게 되고 기대가 된다.
|
|
지나고 생각하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중, 고등학교 때였던거 같다. 입시란 같은 문을 보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라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던 그 시간들이 돌이켜 보면 가장 빛나는 시간이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나 온 시간이 아련한 그리움 섞인 소중한 추억으로 다가오는 책 '안녕, 내 모든 것' 그동안 감각적인 작품들을 써 오신 정이현 작가님의 신작소설로 어느덧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잊혀져 가는 90년대의 모습을 세미, 지혜, 준모란 세 명의 인물로 인해 그 시절의 여행을 떠나게 한다.
세미, 지혜, 준모는 하나의 커다란 비밀을 만들게 된다. 선의에 한 행동이지만 평생 사는 날까지 후회할지도 모를 비밀을 공유하게 되어버린 세친구들.... 서로를 의지하며 그동안 쌓아 온 우정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비밀을 만들었기에 그들은 한순간 서로의 인생에서 멀어져 버린다.
스토리의 가장 중심에 있는 세미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배경을 가진 소녀다. 부자인 부모님을 둔 아빠는 반대하는 결혼을 한다. 살면서 크고 작은 사업을 벌이고 실패를 거듭하며 위장이혼으로 아내와 세미의 곁을 매정하게 떠나버린 아빠.... 남편을 믿었기에 임시로 미국에 피신을 하는 엄마는 결국 남편과 딸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남겨진 세미는 조부모와 고모와 함께 사는 삶 속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꾸만 겉돌며 지낸다.
한번 본 것은 너무나 완벽하게 기억해 내는 뛰어난 기억력을 소유한 지혜는 오히려 자신의 이런 능력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부모님 모두 대학교수지만 어느 순간 아내가 더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삐거덕 거리는 부부관계... 겉모습만 완벽한 가족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지혜는 상처받는다.
준모는 뚜렛증후군을 갖고 있는 소년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야기 중에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교육열이 남다른 엄마로 인해 학교도 자퇴하고 유학길에 올라야 하는 준모는 세미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세 명의 아이들은 서로를 통해 위안도 받고 힘도 얻지만 그럼에도 방황은 쉽게 멈추어지지 않는다. 9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건들이 스토리의 곳곳에 등장하는데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크나 큰 사건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음속으론 분명 서로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될 수 있으면 평생 마주치고 싶지 않은 세미와 지혜는 재회를 한다. 어쩜 이로 인해 그들은 서로가 가진 비밀에 조금은 편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살짝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를 함께 한 세미, 지혜, 준모... 서로가 바라보는 곳이 달랐어도 셋이기에 견디어 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기 소설이면서 나의 지나 온 청소년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였다. 왜 이리 그 시간이 그리운건지.... 항상 같이 붙어 다닌 단짝 친구가 너무나 그리운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