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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겉표지에서 이미 책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고, 또 깊은 한숨과 애절함을 담고 있는 듯한 제목으로 인해 대체 어떤 내용인지 내내 너무나 궁금해 하면서 차례차례 페이지를 넘겼었다. 비록 그림동화 이지만 너무나 집약적이면서도 큰 문제 덩어리를 안고있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무게감이 있는 그런 그림책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독선과 획일적인 이기심의 고발과 함께 또한 처절하리 만큼 애쓰며 자아를 찾아가는 곰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언덕 위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곰은 너무나 피곤함을 느낀다. 곧 겨울이 옴을 이미 몸이 느끼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곰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굴로 본능적으로 겨울잠을 자러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세상 모르고 겨울잠에 빠져든 곰을 배제한체 너무나도 황당무게하고 이기적으로 발생하고 만다. 문명의 이기로 과연 누가 덕을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것이 모르겠지만 발전과 개발의 바람은 곰의 사람 골짜기에까지 미쳐 참 다행인지 불행인 곰이 잠을자고 있는 동굴을 제외하고는 그 숲 대부분이 대규모의 공장이 들어서 삭막한 회색빛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그 회색도시를 확인한 곰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놀라 공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곰을 공장장도 인사과장도 전무도 부회장과 회장 마저도 곰으로 인정하지 않는것이다. 자신들이 세워놓은 잣대와 자신들이 편리한 쪽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바라보며 이용하는 독선이 치가 떨리만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 부분이다. 결국 그들이 바라보는 모습대로 면도도 하지않는 게으른 곰은 면도를 하고 공장에서 일을하게 되는데 곰에게는 다행한 일이겠지...다시 겨울은 오고 곰은 본능대로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작업중에도 조는 모습에 결국 해고를 당하고 만다. 공장을 떠나 한 모텔에서 곰은 재워줄 수 없다는 주인의 말에 곰은 귀가 번뜩 뜨인다. 자신을 곰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로써 군중의 마력으로 잊고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되고 숲으로 돌아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일......동굴을 찾아 들어가 다시 겨울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개발의 바람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개발의 목적을 위해서는 긴것도 기가 아닐수도 있고 기가 아닌것인데도 기가 되는 모순은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참으로 심하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개발의 현장속에서 여전히 살고있는 나는 과연 이제 어떤 생각과 어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 |
| 오봉초 4학년 최 상철 처음에 곰이 옷을 입고 수염을 깎고 있을때, 너무 의아했다. 곰이 어째서 저렇게 하고 있을 까? 그리고 옆에서 사람이 지켜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궁금한 나머지, 책을 당장이라도 보고싶었다. 이 책에 나오는 곰은 그냥 숲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겨울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그저 그런 곰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숲을 공장으로 만들고, 곰이 나왔을 때는 짹짹거리던 새와 푸른 나무는 전혀 없었다. 주위에 있는 철망, 그리고 아주 높은 건물 하나였다.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여 일하라 시키고 그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곰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곰의 모습을 보면서도 절대로 아니라고 우기기만 하였다. 결국 곰은 공장에서 일하기만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곰의 모습을 보면서도 왜 곰이 아니라고 했을까? 더 이상한 점은 동물원과 서커스에 있는 곰들이 자신의 동족도 몰라보는 것이다. 역시 곰들은 기본적인 이치만 알지, 너무 미련하다고 생각된다. 자신들은 동물원에 있으니 동물원 바깥에 있는 것은 전부 곰이 아니다. 또한 자신들은 서커스단에 있으니 바깥에 있는 것은 전부 곰이 아니다라는 생각이니... 이 책을 읽으며 또 한가지 생각할 점은 숲을 함부로 없애는 인간들의 이기심이다. 꿀벌들은 이타행동을 하는 동물중에 하나이다. 그 예로 들자면 자신의 나라에 곰이나 말벌이 침입할 때 침을 쏜다. 그리고 침을 쏘면 안에 있는 내장이 함께 빠져나와 죽어버린다. 이렇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이타행동이라고 한다. 말미잘과 집게도 이타행동을 한다. 말미잘은 집게에게 접근하는 물고기를 공격하고, 집게는 자신이 먹고 찌꺼기를 말미잘에게 주어 공생관계를 맺는다. 물론 사람도 사람끼리 이기적 이타행동을 한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타행동은 잘 하지 못한다. 자신들을 위해서는 자연도 파괴하는 사람. 어쩌면 동물들의 눈에는 인간이 악마로 보일지도 모른다. |
| 서점에 가면 그림책이 진열된 곳에 뻘쭘하게 기웃거리는 대학생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동심천사주의에 가득한 동화책을 읽었고 [흑설공주] 나 [늑대가 들려주는 돼지 삼 형제] 같은 대안동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동안 [콩쥐팥쥐]나 [흥부와 놀부] 등을 읽으면서 권선징악이라고 달달 외우기만 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는 듯이 난 일주일에 한 번, 서점에 가는 날에는 그림책이 전시된 곳에서 한나절이 넘어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진다. 오늘, 또 그렇게 종로의 한 서점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이해의 선물]에 나오는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들어가서 드롭프스, 막대사탕, 젤리 등을 고르며 감각적 기쁨을 충만하게 받았던 소년처럼 그림책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만난 책 한 권.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는 어린이들에게 권하기보다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곰은, 그저 <곰>이었다. 어느 해 겨울, 겨울잠을 자러 동굴로 들어간 <곰>이 있던 땅에 사람들이 와서 공장을 건설한다. 봄에 잠이 깬 <곰>은 자신의 동굴을 나와서 뒤바뀐 환경에 대해서 놀라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공장의 감독은 "이봐, 당신 여기서 무얼 하는 거야? 빨리 자리에 가서 일해!" 라고 소리쳤다. <곰>은 자신이 곰이라고 말을 했지만 소용없었고, 인사과장에게로, 전무에게로, 부사장에게로 불려 다닌다.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 같은 놈이 곰이라고 우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곰>은 결국 사장에게까지 불려가게 된다. 사장은 할 일이 없던 차에 곰을 데리고 곰인지 아닌지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는 <곰>을 데리고 동물원으로 서커스단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철장우리 속에 갇히거나, 재주를 넘고 춤을 출줄 아는 곰들 밖에 몰랐기에 <곰>을 곰으로 인정하기 않았다. 결국, 자신이 곰인 것을 증명하지 못한 <곰>은 공장으로 들어가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다. 모던타임즈의 그것과 흡사한 일이었다. <곰>은 사람들과 섞여서 일을 한다. 자신을 잊은 채로 말이다. 한참을 그렇게 일하다보니, 졸립다. 당연하다. 곰이기 때문이다. 졸리운 곰은 작업시간에 계속 졸게 되고 공장감독은 그를 내쫓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잠시 헤메던 곰은 그냥 걷기 만했다. 그러면서 겨울이 왔다. 곰은 피곤해서 한 모텔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곰>은<곰>으로 인정받게 된다. 곰. 그는 정말 곰이고 싶어했으나 증명하질 못했다. 사실 그는 증명 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곰은 곰처럼 살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이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왜 사는지 모르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 그 <곰>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돈으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이 왜 일을 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세상이 그림책에 그려져 있었다. 곰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민중이었다. 결국, 주체적 자유를 쟁취하지 못했던 곰은 그저 순순히 사람들을 따랐다. 자신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 말이다. 나는 아닐까? 혹시 나는 자신의 정체성 없이 혼란을 겪고 있진 않을까? 졸업사진 찍는다고 4만원짜리 메이크업을 하고 백화점에서 산 비싼 옷을 입고 나타나는 친구들을 보며 왠지 그들이 나가는 세상이 곰이 겨울 내 있던 동굴을 빠져나가는 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곰처럼 되었던 건 아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부터, 노동으로부터 소외를 겪는 인간들에게 곰은 그저 곰이길 원했고 자신의 길이 보이자 그 자리로 돌아간다. 혹시 우리는 소외된 자신을 더 철저히 소외시키기 위해 돈을 위한, 일을 위한 생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적극적 자유의 쟁취 없이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이 이처럼 저며드는 것도 처음이다. 나도 이 곰처럼 살고 있었던거다. 그림책을 글로 설명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림 속에는 인사과장과 전무와 부사장과 사장의 집무실이 점점 더 커지고, 배경도 달라진다. 인사과장의 방에는 서류철 밖에 없지만, 전무의 집무실에는 싸구려 달력 그림 같은 것이 하나 걸려 있고 부사장의 집무실에는 창문도 있다. 사장의 집무실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이 그림책은 그렇게 계급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그려진 이 그림을 단지 어린이를 위해서 그렸다고 볼 수 있을까. 작가는 단지 곰이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을까. 곰이 소외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소외를 받고 있다. 소외 없는 세상에 살 수는 없을까. 그림책에 나타난 곰의 1년이 우리의 전 생애와 비교해도 어긋남 없는 것을 과연 기뻐해야 할까. 우린 언제쯤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본연의 모습. 자본주의 속에서 소외와 계급은 필연일까. 계속. 마음이 아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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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개인의 인격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최고의 이익을 내기 위해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노동자를 원할 뿐이다. 생각하는 사고나 비판적인 시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은 자본에게 독이 될 따름이다. 시키는 대로 아무 비판의식 없이 열심히 일만 하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노동자를 원할 따름이다. 그리고 어떤 인격도 자본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렇게 되고 만다. 자본의 막강한 힘이자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예외일까. 본문을 열면 숲 속 곰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고 있다. 곰은 털 사이로 겨울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겨울잠을 자야 하는 시기이다.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지상에서는 변화가 생긴다. 숲 한가운데 공장이 세워진다. 봄이 되어 곰이 잠에서 깨어나 동굴에서 나와 보니 숲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무 놀라 멍하니 공장을 바라볼 때 공장 감독에게 발견되어 인사과장에게 끌려간다. 더러운 게으름뱅이로 몰린 것이다. 곰은 전무, 부사장, 사장한테까지 끌려가게 된다. 그래도 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도는 사장이다. 사장은 곰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며 동물원으로 서커스단으로 곰을 데리고 간다. 그러나 이미 길들여진 생활을 하는 동물원과 서커스단의 곰들은 ‘철창 안에서 살고 있지 않아서’, 그리고 ‘춤을 출 줄 모르기 때문에’ 야생의 곰은 곰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공장으로 돌아온 곰은 도착하자마자 공장 감독이 건네주는 작업복을 받아 입는다. 공장 감독이 면도를 하라고 하자 말없이 면도를 한다. 다른 일꾼들과 마찬가지로 출퇴근 카드에 도장을 찍는다. 그러고는 자기가 맡은 일을 하기 위해 공장 감독이 가리키는 기계 앞에 자리를 잡는다. 다른 일꾼들처럼 노동자가 된 것이다. 곰은 날마다 다른 일꾼들과 함께 기계 앞에 서서 일을 한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간다. 그러자 곰은 점점 피곤함을 느낀다. 겨울잠을 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침이 되어도 일어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공장 감독은 곰을 해고해 버린다. 곰 때문에 일이 엉망이 되니 그럴 만도 하겠다. 곰은 공장 감독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짐을 챙겨 공장 문을 나선다. 하루 종일 걷고 그 이튿날도 걸어 마침내 모텔에 들어가 방을 달라고 한다. 모텔 직원은 곰을 위아래로 훑는다. “미안합니다만, 우리 모텔에서는 공장 일꾼들한테는 방을 내주지 않아요. 더더군다나 곰에게 방을 내주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아니, 방금 뭐라고 하셨지요?” “우리 모텔에서는 공장 일꾼한테 방을 내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곰한테는 절대로 방을 줄 수 없다고요!” “지금 저한테 ‘곰’이라고 하셨나요? 그러니까 제가 곰이라고 생각하신단 말씀이지요?” 곰은 자신을 곰으로 봐 주는 모텔 직원의 말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 동안 아무리 곰이라고 주장해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장 감독, 인사과장, 전무, 부사장, 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일하는 노동자, 동물원과 서커스단의 곰들도 자신을 곰으로 봐 주지 않았다. 그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공장에서 해고되자, 그리고 허름한 행색으로 모텔에 들어가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은 것이다. 곰은 인간 세상의 상징이랄 수 있는 모텔을 기꺼이 벗어난다.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며 천천히 숲을 향해 걸어간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
| 읽으면서 동화책보다는 어른을 위한 우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긴 겨울잠을 자고 동굴 밖을 나온 곰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규정되고 획일화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난 과연 내가 원하는 모습인가? 어느날 문득 내가 있는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낯선 공간에 그대로 눌러앉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드디어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면 나도 곰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난데없이 나타난 곰에 대한 공장 사람들의 반응 또한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이다. 공장감독, 인사과장, 전무, 부사장, 그리고 가장 할일없는 사장까지 아무도 곰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곰의 모습에 비추어 그들 앞의 곰은 곰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때로 이 사람들처럼 나도 내가 아는 범주에서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문해보았다. 이 책은 짧은 동화지만 내 자신에 대해서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어느날 내 자신조차 내가 누구인지 의심스러울 때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곰처럼 본능이 이끄는 대로 다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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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이런 그림책도 있군요? 새삼 충격이면서도 어깨를 짙누르는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큰 그림책이기에 그렇기에 어떻게 그 감정들을 모두 정리해서 담아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그림책이예요. 겨울잠을 자러 마지막 석양을 바라보고 동굴로 들어간 곰. 그렇지만 이듬해 잠에서 깨어나 동굴밖으로 나온 곰에게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온통 회색빛 세상!! 바로 개발의 바람으로 그 산은 깍이고 깍여 회색빛 커다란 공장이 들어선 겁니다. 너무나 놀라 움쩍이고 있는 사이 공장장이 다가와 곰에게 게으름뱅이 일꾼이나 나무라고, 자신을 인간처럼 대하는 공장장에게 곰은 하소연 조차 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내 불성실한 직원으로 찍혀, 사장앞으로 까지 끌려갔으니까 말이지요. 여기까지 오기까지 수없이 자신은 동물 즉 곰이라고 설명을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싶은 것만, 알고 싶은것만 알 뿐입니다. 그렇기에 진실한 곰이 아닌, 자신들의 급여만 축내는 게으름뱅이 직원이 미련스럽게 서있을 뿐이지요. 결국 서둘러 거울앞에서 자신의 털을 밀어내는 장면은 뭔가모를 불편함과 씁쓸함을 선사합니다. 그길로 공장라인에 투입되어 쉼없이 일을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결국 곰의 서툰 일솜씨 덕분에 그 공장에서 쫒겨나고 맙니다. 이제 곰은 어떻게 또 어디로 가야할까요? 우연히 들른 여관에서 곰은 여관에서 재워줄 수 없다는 말에 곰은 그제서야 잊고있던 자신을 되찾게 되고, 다시금 겨울잠을 청하러 동글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흠...너무나 이기적이고 속단적인 우리 인간들의 부지식한 속내를 여실히 보여주는 따끔한 회초리 같은 그림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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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곰이예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자신의 각각의 잣대로 마추던 사람들...
모텔직원의 한마디에 곰은 "지금 저 한테 '곰'이라고 하셨나요? 그러니까 제가 곰이라고 생각하신단 말씀이지요?" 비로소 곰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본성에 충실하며 겨울잠을 자러 간다. 우리도 우리 아이들도 남들의 그리고 만들어진 잣대에 맞추어 판단하고 오해하는 건 아닐까? 하면서 곰인채로 살려고 하던 ....그러나 아무도 인정하지 앟아 외롭고 겉돌던 곰이 우리가 아닌지 되돌아 보고 그래서 더더욱 자신을 찾는 그 한 대사가 반갑다. |
|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스물다섯살의 나, 나도 이 책을 한번 보고서 이해하기 쉽진 않았다. 책을 덮고서 몇 분동안 한참 생각한 끝에 알아낸 사실은 존재로서의 소외감과 사회로부터의 단절이었다. 가을이 다가옴을 새삼 느끼며 따뜻한 겨울잠에 빠져들기 시작한 곰, 그러나 사회는 그를 추위에서 벗어나서 겨울잠을 자야하는 곰으로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공장의 일꾼으로서 대한다. 그가 털복숭이인 것은 게을러서 면도를 안했기 때문이고 자연과 어우러져살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망연한 눈빛을 보이는 것은 단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산을 깎고 무차별적으로 개발해서 세운 공장, 거기에 필요한 것은 그 공장을 위해 기계속의 나사처럼 묵묵히 일해줄 일꾼 뿐이다. 그들이 필요한 건 단지 푸른 작업복에 깔끔히 면도한 남자일꾼이었을 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다. 그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의 실체는 무언지, 그가 원하고 그가 진실로 얘기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은 모른다기보다는 전혀 관심밖의 일일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은 떄로 아니 어쩌면 자주 왜곡되곤 한다. 상대의 요구, 상대의 언어, 상대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나의 요구를 생각하고 나의 언어를 앞세우며 나만의 표정과 몸짓으로 상대를 단정짓고 바라본다. 내 욕구를 일시적으로 충족될지는 모르겠지만 끝없는 방출되는 내 욕구가 채워지는 동시에 상대의 존엄함과 생명의 가치, 그리고 그의 진실은 무덤 속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게 비단 악한의 특성일까, 아닐 수도 있다. 규격화, 물질화된 현대사회의 틀 속에서, 이미 인간성은 뒷전으로 치부되는 이 시대의 모든 이가 은연 중에 행하고 있을 지 모를 서글픈 자화상인 것이다. 사람의 눈빛을 한참동안 바라보자. 그리고 그가 나의 부당하고 억지스런 주문에 이끌려 '면도하고 푸른 작업복을 입은 곰'의 모습으로 어색하고 이상스럽게 서있는 건 아닌지 반문해보자. 그렇지않으면 그는 어느새 날선 바람이 세차도록 불어대는 겨울산 속에서 추위속에 죽어갈지도 모르니까. |
| 이 동화는 회의론, 현상과 실재, 자아의 정체성 등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물론 이 동화가 철학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문맥은 철학도에게 낯익은 인식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의 하나로 다가온다. 동화 전체의 맥락은 물론이고 각 부분의 에피소드조차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동화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모두가 그들의 눈앞에 서있는 대상은 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에 그 대상은 '면도도 안 한 더러운 게으름뱅이'로만 인식되고, 단지 그 공장에서 일하기만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동화가 진행되가면서 곰은 스스로 자신이 곰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게 된다. 그가 예전에는 자신이 곰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르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의 이전 지식은 아무 의미없이 무너졌으며, 그리고 그 지식의 기초는 의문투성이로 변해간다. 만약 그가 곰이었다고 생각할 정당한 근거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면, 이제 그는 더 이상 곰이 아니게 된다. 이제 독자는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가 곰이라는 것을 아는데 있어서 우리가 그 앎의 근거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동화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즉 그들 앞에 서 있는 대상이 곰이 아니라면, 그 곰은 환상이며, 그래서 동화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그런 곰은 실제로는 없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서커스단에서 만난 다른 곰의 비웃음, "보기에는 곰처럼 생겼네요. 하지만 그는 곰이 아닙니다. 정말 곰이라면 관중석에 앉아 있을 리가 있나요? 진짜 곰은 춤을 출 수 있지요."라는 말은 지식의 정당성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 인습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이 동화는 나비가 된 꿈을 꾸고 나서 혼란스러웠다는 장자의 철학적 고뇌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자아와 주체가 대상과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사색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