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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직업을 가진 이후로 슬럼프만 되면 다른 직업이 궁금해진다. 같은 직장에서 계속해서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다른 경험에 대한 동경이 생긴 듯하다. 특히, 슬럼프 때마다 많은 생각에 부딪힌다. 만약 내가 저 직업을 가졌더라면, 혹은 돈이라도 많이 받았더라면. 슬럼프 때마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질문들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현재 직업을 그만두면 먹고살 방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서기에 남다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스스로를 갈아 넣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 판이다. 그렇기에 고학력 직종 전문 직종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가정을 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신포도는,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정조차 무의미하다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저런 판사가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연일 부당한 판결들로 난자당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일하는 방식, 일상적인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기억은 드물다. 판사들이 쓴 다양한 에세이들이 출판되어 그들의 생각은 비교적 널리 알려지고 있음에도,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저 서류에 갇혀 살 뿐이라고 짐작만 한다. <판결문을 낭독하겠습니다>는 현직 판사 스스로 말하는 판사(직업) 설명서다. “‘한 권으로 읽는 재판 실무 해설서’나 ‘판사 무작정 따라 하기’에 가깝(p.10)”다고 저자 스스로 못 박는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사정을 알리는 일이야 말로 올바른 이해로 다가가는 길(p.24)”이라 믿기에 저자 스스로 일하는 방법을 공개한다고 말한다. 현직 판사라는 한계가 있지만, 판사의 일상적인 삶과 일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들을 수 있다. “사건의 결론을 내리는 일, 대립하는 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p.182)”다. 결정 장애가 있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누군가의 운명을 가르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고달픈 일이라 짐작된다. 판사는 그것이 직업이고 일이라는 점에서 숨 막힐 듯하다. 자신의 선택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본인의 ‘양심’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또한 판결이 결론을 내리고 한쪽을 선택하는 만큼 적이 생기고 싫은 소리를 듣는 게 필연적이다. 괜히 공무원 봉급의 절반이 욕(먹는) 값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결정에 우군은 적고, 적군만 많은 판사는 고독한 직업임이 분명하다. 자연스럽게 대중과 괴리되고 숨어들 수밖에 없겠다 싶다. 공개하고 드러날수록 먹는 욕은 늘기만 한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들의 일은 선택하는 일이다.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다. 최선이 아니라도, 차악이라도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을 위한 업무 역시 과중하다. 경찰이나 검찰 역시 업무는 과중하고, 선택의 고통은 여전하다. 하지만 최종 결론을 자신의 몫이 아니다. 판사가 있기 때문이다. 판사는 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최종 판결 권한을 가지고 있다. “판사가 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p.281)”지만, 가장 최후에 최종적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대중과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가 그게 아닐까. 대중의 법 감정과 판결, 양형의 부당함에 많은 사람들이 성토하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자신의 판결이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p.392)”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사를 만날 일도 없기에 그들의 노력, 일과 일상에 대해 알 수 없다. 여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친밀한 사람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판사의 눈빛을 볼 기회도 적고, 본다 해도 그들과 친밀하지 않다. 당연히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결국 말해야 한다. 서로 공개하고 이야기하고 터놓아야만 알 수 있다. 판사들이 쓴 에세이보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판사의 생각법에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판결이라는 수면 위 보다 수면 아래에 있을 서류와 고뇌, 그리고 다양한 법리와 제약을 떠올려 본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 이 책은 ‘법률 에세이’가 아니라 ‘한 권으로 읽는 재판 실무 해설서’나 ‘판사 무작정 따라 하기’에 가깝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애초에 글을 쓴 동기이기도 합니다. p.10 무엇이든지 감추기보다는 드러내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사정을 알리는 일이야 말로 올바른 이해로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제대로 알리지 못한 부분은 전하고 잘못된 점은 고쳐야겠지요. 법원과 판사가 공적인 위치에 있음을 생각하면 굳이 감출 이유도 없는 것이고요. p.24 실형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가 요구하는 액수의 합의금을(p.149) 지급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합의가 되었으니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방식이 정의로운 결과일까요? 피고인에 대한 형벌을 정하는 절차에 돈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상황은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p.150 사건의 결론을 내리는 일, 대립하는 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p.182 판사로 일하면서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하나는 (...)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은 선함이나 정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른 사물의 옳고 그름에 관한 내적 믿음’을 뜻합니다. 즉,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판사 자신의 옳고 그름에 관한 내적 믿음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둘째,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만 판결할 수 없는 사건이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p.202 법조계에는 ‘판사가 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당사자들입니다. 그다음은 당사자들을 직접 대면해 면담하고 조사한 변호인과 검사입니다. 판사들이 보는 것은 변호인과 검사를 통해 진실이 어느 정도 여과된 다음입니다. 판사들이 변호사나 검사와 달리 피해자와 피고인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이유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객관성을 확보하는 자리는 진실에서 조금 멀 것이고요. p.281 판사가(p.391) 선고하는 하나하나의 판결이 당사자들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느리긴 하지만 사회적 갈등을 푸는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판결 중에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다소 튀는 것이 나오는데 오히려 그러한 판결들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할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판사는 자신의 판결이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합니다.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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