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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작가의 『춘천은 가을도 봄』을 구입한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제목에 춘천이 들어간 최초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춘천은 학창시절을 함께 한 추억이 서린 곳이다. 직장 생활로 인해 춘천을 떠난 이후에도 10여 년 전에 어머니가 작고하실 때까지 계셨으니 고향과 같은 곳이므로 이 책을 소장하기로 했다.
둘째, 작가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강릉 출신이지만, 한계령 부근인 양양에서 생활한 적이 있으며 춘천에서 대학생활을 했다. 작가가 한계령에서 생활을 한 경험으로 자전적인 여러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중에 한 편이 『은비령』이다. 은비령은 실제 지명이 아니고, 작중인물이 한계령에서 생활하면서 붙인 지명이다. 『은비령』이 독자의 호응을 받으면서 아예 지명으로 정착되었으니, 작품의 지명이 실제 지명으로 정착된 드문 예이다. 그 무렵 나는 한계령 서쪽인 인제에 근무했는데, 학생들에게 향토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셋째, 작품에서 나의 추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후반 춘천의 대학생활을 배경으로 한다고 들었다. 작가의 작품들은 자전적인 내용이 많았으니 이 작품에서도 그 무렵의 춘천 생활이 담겨 있으리라는 기대가 느껴졌다. 시간적인 배경은 나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고 싶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친구의 일기장을 보듯 나의 추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호(남주인공)가 다닌 춘천의 대학교명은 나오지 않으나 그 무렵 춘천에서 이 작품과 일치하는 대학은 강원대학교뿐이다. 무엇보다도 강원대의 상징인 ‘각의 종 ’이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팔호광장, 육림고개, 명동, 전원다실, 이디오피아의집, 에메랄드하우스, 미군부대, 장미촌, 사창고개, 요선터널……. 학창시절에 자주 들었던 지명이다. 진호가 기자 생활을 했던 학보사의 분위기도 익숙하다. 내 친구 중에 학보사 기자가 있어서 학보사 사무실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특히 검은기러기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그 시절이 떠올랐다. 강원대를 중심으로 한 춘천의 비밀조직, 그들이 교내 각종 시위를 선도했다고 하는데, 나는 재학하는 동안 조직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만 이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갑자기 누군가 사라진 뒤에 그가 군대로 끌려갔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가 검은기러기라더라, 라는 풍문만 돌았을 뿐이다. 아, 강원대학교에 검은기러기는 없었다. 내가 아는 이름은 거멀못이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예민한 부분은 이름을 감추고 있다. 소설은 허구라고는 해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가 아니겠는가? 곳곳에서 긴 세월 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추억을 확인했다.
둘째, 명진이 어디일까 생각했다. 이 작품은 진호의 고향인 명진,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했다가 제적되었던 서울, 2차로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을 한 춘천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명진이 어디인가? 강원도에 그런 지명은 없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문진이 아닌가 싶다. 주문진이 강릉시에 편입되기 전에는 명주군이었다. ‘명주군 주문진읍’에서 ‘명진’을 생각했을 것이고, 훗날 진호의 형수가 된 여성이 그 지방 토호인 강양최씨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강양최씨는 없다. 강릉의 대성인 강릉최씨일 것이고……. 그밖에도 작가가 숨긴 지명이나 인명을 바로 추측할 수 있었으니, 그만큼 나는 이 작품과 가까웠나 보다.
셋째 70년대 청춘의 갈등이 담겨 있었다. 진호의 아버지는 당시 지방의 유지이자 유신시절 대통령선출 거수기이기는 하지만 대접은 받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었다. 그의 할아버지와 종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지방토호였지만 한국전쟁 때 공산당에 맞아죽었다. 서자인 막내할아버지는 북으로 갔다가 내려왔는데 그로 인해 진호의 아버지 등 남은 가족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막내종조부의 아들이 이 작품에서 시인으로 나오는 당숙이다. 당숙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진호는 잠시 운동권 학생이 되어서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그 과정에서 채주희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진호는 그 무렵 청춘이 지닐 수 있었던 갈등의 상당수를 담은 채 70년대의 세파와 부딪친다.
넷째, 작품과의 묘한 인연에 스스로 놀랐다. 진호는 1년 후배인 채주희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주희는 다문화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미군, 어머니는 세칭 양공주……. 내가 아찔함을 느꼈던 것은 그런 여학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4학년 때 어느 여학교에 교생실습을 갔는데, 내가 담당한 학급에 그 여학생이 있었다. 여학생들이 남자 교생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고, 나는 그 여학생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졸업한 뒤 그녀는 나의 후배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녀가 이 작품의 채주희라는 것은 아니다. 채주희와 비슷한 시기에 입학을 했을 테니 작중인물 설정에 모티브가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다섯째, 박판영 교수를 통해서 진호가 경영학과에 입학해야 했던 이유를 알았다.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경영학과 박판영 교수다. 나는 경영학과가 아니었으므로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존재는 알고 있었다.
나의 학창시절에 강원도는 늘 끝판이라는 자조적인 푸념을 하곤 했다. 교련반대, 유신반대 등의 데모가 있을 경우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해서 거의 전국의 대학이 일어난 뒤에 마지막에 시작되는 곳이 춘천이었다. 충북대와 강원대가 뒤에서 선두를 다퉜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강원대가 아주 드물게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시절 전국 최초의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당시 강원대생 4천여 명이 대부분 참가했다던가. 그로 인해 박판영, 유병석, 문선재 교수를 비롯해 학생 100여 명이 보안대 지하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이 작품의 박판영 교수는 그것을 모델로 삼았고, 조용히 지내던 진호가 박교수의 귀교를 요구하는 시위를 이끄는 것으로 전개된다. 작품을 읽는 내내 진호가 경영학과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박판영 교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박교수의 인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진호는 경영학과여야 했나 보다.
여섯째, 은비령을 보면서 작가의 미소를 생각했다. 이 작품에는 진호가 은비령을 지나는 장면이 삽화처럼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은비령’은 정식 지명이 아니라 작가가 작품 속에서 설정한 이름이 정식 지명으로 통용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 지역에서 은비령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작가가 ‘은비령’이라고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작가는 자신이 작명한 은비령을 또 다른 작품에서 인용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일곱째, 옥에 티라기보다 아쉬움도 느껴졌다. 70년대에 춘천에는 4개 대학교가 있었다. 강원대학교, 춘천교육대학교, 성심여자대학교, 춘천간호대학이었다. 교내 축제 때는 4개 대학 초청 배구대회도 했고, 신입생 시절 미팅 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밖에도 동아리 별로 여러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강원대학교 외에 다른 대학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작품에서 관내의 대학이 꼭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70년대를 함께 보낸 청춘이고, 그들도 넓은 의미에서 독자일 텐데 한두 꼭지는 등장시키는 것도 배려가 아니었을까? 이로 인해 이 책은 70년대 춘천의 청춘을 노래한 책이 아니라, 70년대 강원대학교의 청춘만 담은 책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꼭 춘천이 아니라도 작품으로도 흥미진진했다. 그 시대 청춘의 아픔과 갈등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19금의 내용은 없으니 중학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다. 특히 춘천에서 70년대를 보낸 청춘들은 추억을 더듬을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