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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얼마 전 미솔로지를 읽다 보니 실낙원에 나오는 구절을 많이 인용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실낙원은 창세기의 내용을 시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인간의 창조와 타락이 주된 내용이다. 솔직히 이 책은 시의 형식인데 운율을 나는 못느꼈다. 운율이 꼭 시의 필수요소는 아니라고 배웠지만 그래도 운율이 없다면 산문과 무슨 차이인지 난 아직 모르겠다. 내용은 정말 생각할 거리가 많다. 가끔 과거의 이야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를 천사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기도 하고 장차 이루어질 예언도 나오며 정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의 죄, 분열... 선악과를 먹자 아담과 이브가 바로(?) 서로를 비방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 전까지는 서로 당신의 나의 모든 것입니다. 당신이 최고입니다 하며 서로 위하던 사람들이 니가 그때 날 말렸어야지. 난 널 배려한 죄밖에 없어.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고 이런 느낌의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은 슬프기까지 했다. 시이기에 행간의 배려로 인하여 굉장히 두껍지만 그렇다고 막 그 두께에 겁먹을 정도로 내용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많은 지식과 인문학 내용, 성경의 이야기를 중간중간에 절묘하게 그것도 많이 넣고 있어서 읽다 보면 다른 작품이나 내용들에 궁금증이 생긴다. 다만 살짝 아쉬운 것은 분명 본문에 주석 표시가 있어서 주석을 찾아봤더니 없는 주석이 있었다. 그게 좀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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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중학교 3학년 말이었을까? 도서관 서가에서 나는 벼르고 별렀던 실낙원을 집어들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 추억과 향수를 다 함께 간직한 책이 '실낙원'이다. 무엇에 홀린 듯 정말 빠른 속도로 읽어내린 '실낙원'은 섬광처럼 내 뇌리를 강타했었다. 그 무렵 즐겨 읽던 책과 어쩌면 상가작용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크롬웰 시대에 빠져 있었고, 그 시절의 유럽사를 탐독하고 있었고, 그리스 로마 시대는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분야이고 기독교 관련 서적도 꽤나 읽어제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연도가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내 기억이 정확한 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주말 나른한 아침에 읽었던 실낙원이 왜 그토록 강렬했을까 싶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서 나는 아마 그때 사탄의 타락과 전투, 그리고 그가 지구를 향하는 과정을 매력적으로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 안의 교만과 그리고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한 사탄의 존재, 그리고 그로 인해 원죄를 짓고 낙원을 잃는 인간들. 인간 본성에 깃든 자유의지와 유혹, 이 얼마나 다채롭던 소재들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흐릿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실낙원은 빛처럼 반짝이는 글자들과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펼친 실낙원에서 나는 그 빛을 찾지를 못했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사탄의 몰락과 본성에 관한 책들도 읽었지만,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빛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는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혼란과 방황을 느꼈다. 명료했던 것들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읽을 때면 카멜레온처럼 작가의 사상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전혀 상반된 사상의 책을 읽을 때는 그때 나름으로 저자에게 동화되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유연했던 나의 사고는 이제 틀을 잡아갔고 나이가 들면서 견고해졌으며 불편한 것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여성에 관한 생각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니, 요즘 들어 읽는 책들 속에서 나는 정말 남성저자들이 쓰는 글 속에 담겨진 여성에 관한 모든 생각들이 불편해지고 있다. 그것은 이제 내가 사회 절대 권력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한때 열광했던 사상 속에서도 나는 내가 여자의 입장이라면 그 사상이 내 목을 조이는 올가미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왜냐면 대부분의 책들에서 여자란 존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니면 매우 열등한 존재로 존재할 따름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존재, 주체가 되는 여성도 여성성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언제나 억압받고 보호받아야하는 존재이며 아니면 헌신하는 존재일 뿐이다. 혼자 설 수 없는 보호자일지라도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
그것이 모든 사상과 책 속에서 드러나는 순간 나는 세상의 소수자임을 깨닫는다. 이 책에서도 그렇다. 여성이란 온전히 남성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존재일 따름이다. 사탄의 유혹에 인간이 굴복하여 인간은 구원의 기회를 얻었지만, 남성을 유혹하게 된 여성은 사탄과 비슷하게 생각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담은 이브와 함께 할 열망에 선악과를 먹는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전개에서 이브는 그저 복종하는 자신의 지위를 깨달으며 모든 깨달음과 지식은 아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된다.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 사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읽으면서 감탄을 토했던 수없이 많은 문장들은 이제 조금 빛바랜 느낌도 든다. 성경의 구절 하나 하나가 교묘하게 맞물리며 문장에 빛을 발하지만 여자 독자인 내게 다가오는 빛은 이제 점점 흐릿해질 따름이다.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각주들이 너무 많았고 더구나 각주의 번호는 있으나 내용은 없는 기이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번호를 단 각주의 내용이 없다고 독서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지만 대체 무엇을 설명하려고 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