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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가족은 가족!, 최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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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p8)이라고 한다. 거기다 지독한 자기 혐오(외모 컴플렉스 등), 사회에 대한 불만, 기타 등등의 이유로 폭력성을 가지기도 하며 이런 히키코모리가 일본에선 꽤 오래전부터 사회현상이자 문제로 대두되어왔다.   히키코모리는 어째서 생겨나는 걸까? 그들은 왜 스스로 방에 갇히는 걸 택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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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p8)이라고 한다. 거기다 지독한 자기 혐오(외모 컴플렉스 등), 사회에 대한 불만, 기타 등등의 이유로 폭력성을 가지기도 하며 이런 히키코모리가 일본에선 꽤 오래전부터 사회현상이자 문제로 대두되어왔다.

 

히키코모리는 어째서 생겨나는 걸까?
그들은 왜 스스로 방에 갇히는 걸 택한 걸까?

 

히키코모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겨나는 의문들이었다. 보편적으로 그렇진 않겠지만 내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면 히키코모리에 대한 유혹이 더 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쉬는 날이면 밖에 나가기 보단 집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고 가끔은 잠깐이라도 나가는 게 싫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역시 일주일 내내 사회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나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고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이기에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여튼 스스로 갇히기까지 고민의 시간이 꽤 있었을 것이고 그들로선 죽기보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게 '히키코모리'가 아닌가 싶다.

 

 

죽고 싶진 않다. 그치만 살 자신도 없다. 꽁꽁 숨고 또 숨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나 자신에게도...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아들, 우치야마 히데키는 초보 히키코모리에서 어느덧 중증으로 서서히 발전해가고 있었다. 창문도 시커먼 종이로 가려버리고 아주 작은 구멍만 하나 남겨두었을 뿐이다. 그 구멍을 통해 아주 조금이나마 세상을 보려한다. 어머니, 아키코는 그런 아들을 어떻게든 치료하고자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고 아버지인 히데요시는 언제 해고될 지 위태로운 회사에 다니면서 체면때문에 아들이 히키코모리라는 사실을 숨긴다. 동생 도모미는 히키코모리가 되면서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오빠를 보며 하루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히데키는 남겨둔 작은 구멍으로 카메라 렌즈를 갖다대어 밖을 보다가 이웃집의 매맞는 여자, 유키를 목격하게 되고 그때부터 구멍은 조금씩 늘어간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히데키가 이웃집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도와주려, 지켜주려고 한다. 그러면서 늦은 밤이지만 바깥출입도 하게 되고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도메스틱 바이얼런스'에 대한 공부도 하고 관련기관과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조금씩, 변호사와의 면담을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히키코모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혼자서 살아갈 힘을 가지는 거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                       p262
 

 

가족은 기대고 싶을 때 기대고, 이런저런 감정들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공동체지만 동시에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개개의 인격을 가진 존재다. 개개인의 가족은 혼자로 상처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있으며 때론 무너질 수도 있다. 히데키가 깨달은 것처럼 가족은 함께지만 사람은 혼자이고 혼자서 살아갈 힘을 지녀야하는 것이다. 언제, 어느때고 스스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일본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일본 문화를 접할 때마다 스치듯, 조금은 심각하게 접해왔던 현상이었다.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기에 과연 어떠한 현상이고 어째서 그런 부류들이 자꾸 생겨나는 건지 궁금해졌다.

 

이 책에 나온 가족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었지만 자기자신에 대해, 가족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말들이 많았고 히키코모리라는 현상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뭔가를 결정하고 한다기보단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생각한 다음 가족을 생각하고 해나가는 게 진정 가족을 위하는 게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걸 스스로 생각하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찾은 그녀나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그가 서서히 변해간 것처럼... 앞서 이야기 했듯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내가 바로 설 수 있어야 가족도 함께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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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가족』 by 무라카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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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가족』 은, 2001년 10월 어느 날부터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우치야마 가족들에게 두 달 동안 발생한 일상과 사건을 그들 각자의 시선으로 번갈아가면서 풀어낸 1인칭 시점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각자의 언어로 다르게 이야기한다. 우치야마 가족은 망가진 상태,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제 기능을 잃은 상태로 첫 선을 보인다. 10년 전 일본의 버블경제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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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가족』 은, 2001년 10월 어느 날부터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우치야마 가족들에게 두 달 동안 발생한 일상과 사건을 그들 각자의 시선으로 번갈아가면서 풀어낸 1인칭 시점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각자의 언어로 다르게 이야기한다. 우치야마 가족은 망가진 상태,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제 기능을 잃은 상태로 첫 선을 보인다. 10년 전 일본의 버블경제로 인한 비참한 몰락과 함께 가족의 추락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 히데요시의 회사는 언제 붕괴될지 몰라서 해고 상태에 놓여있고, 그 위태로움은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는 것도 모자라, 아들 히데키의 폭력을 못이겨 집까지 나오게 된다. 26년을 근속한 회사는 언제 도산될지 모르는 경제 위기 속에서,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어머니 아키코는 히키코모리가 된 아들의 치료를 위해 정신과 의사와 카운슬러를 찾아다니기 바쁘지만, 열세 살 연하의 목수와 플라토닉한 연애를 즐긴다. 애초에 사랑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은 자유 연애를 향한 도피처를 생성하게 되고, 히키코모리 아들을 위해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구사하게 된다. 모든 잘못된 원인과 탓을 외부로부터 돌리는 히키코모리 아들 히데키는, 이웃집 여인의 구타 현장을 목격하면서 도메스틱 바이얼런스를 연구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현실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딸 도모미는 언제라도 가출하고픈 충동에 휩싸이지만, 열 살 연상인 곤도의 특별한 사고방식에 매료되어 자신만의 미래 노선을 찾게 되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른다.

 

 총체적으로 보자면, 이들 가족의 해체는 결코 몰락이 아닌 상승효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공간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만이 가족의 평화와 번영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 과연 그들은 행복했었나? 그러지 못했다. 각자 독립적으로 살아도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고 자신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새로운 가족의 화두로 자리잡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위기(危機)는 동전의 양면처럼 위급함과 기회가 함께 자리하는 것이다. 어려움을 면밀히 분석하고 활용하기에 따라서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가 있다. 우치야마 가족들에게 위기는 기회였다. 완전한 패배와 몰락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당면한 문제와 위기의 복병들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지녔다. 완벽하게 스스로를 훌쩍 뛰어넘을 줄 아는 일종의 전면승부였던 셈이다. 각자의 슬럼프를 현명하고 적절하게 벗어났을 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여 적극적으로 미래 가치로까지 활용한 우치야마 가족들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아니 지구상의 모든 가족을 위해 건투를 빌어본다.



d******7 2013.08.07. 신고 공감 1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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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센티 구멍을 통해 보는 희망 《최후의 가족》
"10센티 구멍을 통해 보는 희망 《최후의 가족》" 내용보기
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로만 세상과 접속하고 있는 여자, 머리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스스하고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더러운 낯빛을 하고 방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쓰레기 천지이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온라인에서 아름다운 여자이자, 지적인 여자, 그리고 재치가 넘치는 여자이다. 가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이여자는 오로지 댓글과 공감을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여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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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로만 세상과 접속하고 있는 여자, 머리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스스하고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더러운 낯빛을 하고 방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쓰레기 천지이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온라인에서 아름다운 여자이자, 지적인 여자, 그리고 재치가 넘치는 여자이다. 가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이여자는 오로지 댓글과 공감을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여자에게 존재를 확인하는 공간이자, 세상과 유일하게 연결되어 있는 '가상'의 세계가 전부인 그녀는  영화 《김씨 표류기》의 주인공인 히키코모리이다. 최후의 가족은 이런 은둔형 외톨이가 사는 가족이야기이다.

 

온라인 세계의 무한한 변화속에서 오프라인의 공간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세상과 연결하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온라인의 영역은 점점 범위를 넓혀 ‘삶’의 현장마저도 침범하고 있다. 《최후의 가족》은 온라인의 폐해를 다룬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거 버블경제의 폐해로 인하여 거품경제의 퇴조로 인한 사회의 불안한 분위기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닥친 가족의 불안과 해체를 비교적 덤덤하게  그려가고 있다. 26년동안 한 회사에 근속한 히데요시에게도 닥친 구조조정의 바람은 성실하고 근면하였던 가장을 무참하게 만들어버리고  이류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단에 녹아들지 못한 채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인해 1년째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아들 히데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유학의 꿈을 꾸며 우울한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딸 도모미, 아들 히데키를 위해 히키코모리 부부모임과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치료방법에 적극적인 모습의 엄마 아키코로 구성되는 이 가족은 매우 평범하고 보통의 가족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단, 아들이 히키코모리가 아니었다는 가정일때이지만,

 

창문을 검은 켄트지로 모두 막고 카메라 파인더 크기의 구멍으로만 세상을 보는 히데키는 어느 날 뷰파인더에 잡힌 이웃집 여자로 인해 잠들었던,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재생시킨다. 이웃집 여자에 대한 막연한 상상은 호기심으로 이어지게 되고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용기까지 덤으로 얻게 되기도 한다. 처음으로 맞딱드린 도메스틱 바이올렌스(가정폭력) 앞에 스스로 책도 사보며 공부도 하고 가정폭력 신고로 여성상담센터와 경찰서에 제보를 하는 등, 삶에 적극성을 띄게 되면서  세상과 연결된 단 하나의 10센티 크기의 구멍은 네 개의 구멍으로 늘어나고 절망가운데 있던 히데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선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갑자기 히데키를 집 밖으로 나서게 만든 강력한 힘의 정체다. 그 힘은 다름 아닌,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웃집 부인 유키를 구하려는 강렬한 욕망이다.

네 명의 가족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분열과 불통으로 서서히 분리 되어 해체되어 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해체된 가족에게서 전에는 찾아보지 못하였던 평화의 기운이 감돈다. 은둔형 외톨이의 가족의 모습을 재현하면서도 가족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작가의 필체에서 참된 가족의 의미를 상기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1차  집단이 가지고 있는 의미, 그것은 강제성이나 강요되지 않는 책임이다. 그러나, 때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라는 이유로, 어머니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강압적인 책임을 강요받을 때가 많다. 이런 책임의 짐은  히데요시와 아키코를 통해 그대로 투영 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저마다에 부여된 책임의 짐을 벗어던지자, 오히려 가족들은 진정한 의미의 가족구성원으로 거듭난다.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엄마는 희생이라는 부담을, 자식이라는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삶을 위해 선택을 하고 사회에 조금씩 한발 내딛는 도모미와  폭력을 당하는 이들을 위해서  헌신과  봉사를 하며 변호사라는 꿈을 향하여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히데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매 순간 가족이라는 의미로 서로를 구속하고,  많은  책임의 짐을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떠올려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가족의 참된 의미와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게 해주는 의미 깊은 가족이야기이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3.08.12.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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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순간 완성되는 것도 있다. 『최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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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의 아들은 방안에서 1년이 넘게 나오지 않는다. 문 밑 틈으로 건네지는 메모지로 대화한다. 열여덟 살의 딸 도모미는 집에서 나가는 게 꿈이다. 열 살 연상의 보석 디자이너 곤도를 만난다. 마흔아홉의 아버지는 기계부품회사의 영업사원이다. 26년 근속했지만,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버지는 곧 정리해고될 것이다. 가정주부인 어머니는 열세 살 연하의 목수 노부에와 데이
"해체된 순간 완성되는 것도 있다. 『최후의 가족』" 내용보기

스물한 살의 아들은 방안에서 1년이 넘게 나오지 않는다. 문 밑 틈으로 건네지는 메모지로 대화한다. 열여덟 살의 딸 도모미는 집에서 나가는 게 꿈이다. 열 살 연상의 보석 디자이너 곤도를 만난다. 마흔아홉의 아버지는 기계부품회사의 영업사원이다. 26년 근속했지만,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버지는 곧 정리해고될 것이다. 가정주부인 어머니는 열세 살 연하의 목수 노부에와 데이트를 한다. 이 가족 각자에게 저마다의 삶의 모습이 있지만, 공통으로 보이는 문제는 이거다. 주택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히키코모리 아들을 위해 상담을 받기 위해 매달 일정 금액을 지출하고 있다. 딸 도모미의 대학 등록금도 마련해야 한다. 정신적·경제적으로 총체적 난국에 처한 이 가족은, 보고만 있어도 위태롭다. 곧 누군가 호각을 불고 "해체!" 하고 외치면, 곧 그렇게 해체될 것만 같다. 그 외에 이들 가족에게서 다른 미래는 그려지지 않는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최후의 가족』 속의 가족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떤 표본을 한 장소에 옮겨 놓은 듯하다. 어느 집의 히키코모리 아들, 그런 집이 지겨워 탈출을 꿈꾸는 딸, 정리해고 대상자에 올랐음에도 가족에게 말하기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가장, 마을을 터놓고 얘기할 대상 한 명 만난 것을 유일한 숨구멍으로 여기는 주부.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암담하다. 해결은커녕 지금 숨 쉬고 있는 게 용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가족의 모습을 거부할 수 없는 게 바로 현실인 듯하다. 비단,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다큐 프로그램에서 너무 흔하게 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없어야 행복한 삶일 텐데, 이런 장면이 낯설어야 하는데 익숙하다. 현 사회에서 두드러진 문제점으로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보아왔던 이런 주제의 소설에서, 나는 제대로 된 맺음을 보지 못했다. 화해한 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고, 잘 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만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긍정적인 미래를 보여주려 애쓰지만 공감하기 어려웠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나 바로 등 돌려 버리고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최후의 가족』의 모습은 '그래, 이게 정답 아닐까?' 하는 물음표 백만 스물두 개를 머릿속에 심어놓았다.

 

일 년이 넘게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히데키는 창에 빛이 들어오지 않게 검은 종이를 발랐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동그란 구멍을 하나 뚫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우연처럼 옆집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옆집의 젊은 아내가 유키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유키를 구해줘야겠다고 마음먹은 히데키의 행동이 해체 직전이었던 이 가족의 해결점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히데키는 유키를 구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방법을 연구한다. 유키의 상황을 알리고 유키가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저곳에 전화한다. 하지만 들여오는 답변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피해자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 그건 곧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히데키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가 방 안에서 생활하게 된 이유는 너무 사소한 것 같았지만, 그에 비해 너무 큰 상처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저마다 살아가야 할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감정적인 문제였는데, 그걸 감당하기 어려웠던 마음 한 자락이 너무 큰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그로 인해 새롭게 불거진 가족 사이의 감정적인 문제들과 가족 각자에게 닥친 위기가 이 가족을 더욱 깊은 위기로 빠뜨렸다.

 

그런데 좀 의외다. 히키코모리의 설정이 주가 될 것 같았는데, 이 가족 모두의 모습이 어느 한 사람도 내 시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슴에 상처를 품고 방안에 틀어박힌 히데키. 이런 집이 지긋지긋해서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고 외치는 도모미. '가족이란 이래야 한다.' 라며 자기가 정한 가족의 매뉴얼을 읊어대는 아버지. 주부인 자기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데 왜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털어놓고 얘기할 상대 한 명 없었던 어머니. 각자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사정이 있다. 그런데 억지스러운 고리로 자꾸 묶어대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강요하게 되는 태도와 감정들이 이들의 상처를 더 깊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이니까 말해도 되는 일들이, 가족이니까 말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거다. '함께' 해야만 가족인 게 아니고, 함께 '모일 수 있는' 게 가족인 거, 아닐까.

 

결국, 이들 가족은 해체된다. 좀 더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이들 가족의 구성원 각자는 독립한다. 가족이라고 함께 한 시간에 닥쳐온 위기는 이들 각자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게 하면서 더는 암울하지 않은 미래를 그리게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가족이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부여했던 것들이 와해하는 순간이다.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가족이란 것이 같은 피를 나누고 같은 성을 사용하면서 묶여 있지만, 각자가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음을 망각했기에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한다. 각자 생각이 다르고, 하고 싶은 게 있다. 유전적으로 같은 피를 물려받았어도 입맛 하나도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오는 위기가 어떤 모습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내가 이 소설의 결말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시 하나로 뭉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가족이고 최선이라는 결말이 아닌, 각자가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평온이었다. 본문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자기 자식이라 더 모른다.' 다 안다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그게 아님을 드러내고 있는 증거 아닐까.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다. 그건, 비단 자식뿐만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보통은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빈번하게 스며드는 오류가 아닐까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함을 이유로 묶어두거나, 다 안다고 오판하지 말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봐야만 더 잘 보이는 게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봐야 할 대상이 바로, 가족이다.

 

 



n******i 2014.03.17.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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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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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 가족의 행태가 자꾸 일본을 닮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범죄의 경우, 뉴스에서 그 범죄를 알게되고 따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우리나라 가족의 해체가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그대로 따라가는건 아닌지...   어떻게든 가족을 책임지려는 가부장적 가장인 아버지,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서 자식을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어머니,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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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 가족의 행태가 자꾸 일본을 닮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범죄의 경우, 뉴스에서 그 범죄를 알게되고 따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우리나라 가족의 해체가 일본의 경우를 보면서 그대로 따라가는건 아닌지...

 

어떻게든 가족을 책임지려는 가부장적 가장인 아버지,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서 자식을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어머니,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전공을 하게 되면서 '히키코모리'가 되어 폭력성까지 띄는 아들, 그런 오빠를 보면서 가족에 대한 정을 느끼지 못 하는 딸.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팔려나가는 상황에서도 아들의 병원비, 집에 들어간 대출금 등을 걱정해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돈벌어오는 기계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들의 '히키코모리' 병을 고치기 위해 정신치료 상담을 다니다 연하의 목수를 알게 되는 어머니는 어떻게든 아들을 지켜내려는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건을 가족 각각의 관점에서 풀어내어 왜 그런 상황의 사건이 벌어졌는지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이야기 방식이 특이하다.

각각의 관점으로 보면서 똑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 관점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소설의 마무리는 가족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들 각각 나름의 행복을 찾아나서는 모양이어서 조금은 따뜻하다.

가족의 최후가 아닌 '최후의 가족'이어서 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j*****7 2013.07.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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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마음을 나눌수 있다면-최후의 가족
"[서평]마음을 나눌수 있다면-최후의 가족" 내용보기
그냥 조금 읽다가 다음에 마저 읽어야지 하고 집어든 책은 두께가 얇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술술 읽혀지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무라카미류의 작품들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어도 이 책은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가독성은 있는 편이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는 '야행관람차'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조금은 덜 비극적인 이야기라고나 할까.   가족. 일인 가족이 늘어나
"[서평]마음을 나눌수 있다면-최후의 가족" 내용보기

그냥 조금 읽다가 다음에 마저 읽어야지 하고 집어든 책은 두께가 얇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술술 읽혀지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무라카미류의 작품들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어도 이 책은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가독성은 있는 편이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는 '야행관람차'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조금은 덜 비극적인 이야기라고나 할까.

 

가족. 일인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세대에 가족이라는 말은 어쩌면 조만간 없어질지도 모를 단어 같기도 하다. 또 다른 말로는 식구라고도 한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 그래서 혈연가족은 아니지만 '도모미하숙집의 선물'에서 나오는 하숙생들처럼 오히려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끼리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더 가족같음을 누리고 있기도 한다.

 

많지도 않은 식구 네명. 아버지는 가족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면서 집안의 규칙을 만들지만 영업직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기다려 저녁을 먹는 일은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커피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커피를 갈아서 내려서 만들지만 자식들은 그마저도 별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 다 잘 자랐다고 생각 할 무렵인 대학교 2학년. 큰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폭력성도 거세어서 부모를 마구 때리기까지 한다.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의 증상이다.

 

작가는 큰아들을 히키코모리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족의 해체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또는 가족끼리 소통의 부재를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큰아들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모든 대화는 쪽지로 하게 된다. 자신이 선택한 삶. 과연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나오게 될까.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박힌 이상 자신이 무언가 하고자 하는 원동력만 만들수 있다면 히키코모리는 해결될수 있는 문제라고 방향을 잡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세상과 담쌓고 창문에까지 여려겹으로 종이를 붙였던 큰 아들은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자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이 가족은 각자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가족끼리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가 팔려버릴 지경이고 어머니는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러 여기저기 상담을 받으러 다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목수에게 마음이 가서 데이트를 하고 아들은 히키코모리이며 딸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각자 자신만 알뿐 다른 가족들은 그 속내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혈연관계여서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음을 나누고 속 내용을 나눌수 있는 것. 그것이 가정인 것이다. 아들이 자신의 문제를 미리 부모와 의논했다면 그는 방에 갇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회사문제를 미리 아내와 상의 했더라면 더 좋은 상태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모든 일이 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결이 나고 그후에야 이 가족은 모이게 된다. 저마다 뿔뿔이 헤어졌지만 오히려 그들은 더 가족같음을 느끼게 된다. 과연 지금 시대에서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b***8 2013.07.25.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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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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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상상한 것과 달리 이 책에서 나오는 가족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다만 장남이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일뿐. 어머니 아키코는 그런 아들을 위해 여기저기 정신과 의사와 카운슬러를 만나려 다닌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그녀보다 13살이 어린 젊은 청년과의 만남이다(관계를 맺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 히데요시는 가부장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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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제목을 보고 상상한 것과 달리 이 책에서 나오는 가족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다만 장남이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일뿐. 어머니 아키코는 그런 아들을 위해 여기저기 정신과 의사와 카운슬러를 만나려 다닌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그녀보다 13살이 어린 젊은 청년과의 만남이다(관계를 맺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 히데요시는 가부장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없고 단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여동생 도모미는 고등학생으로 가족과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그리고 장남 히데키는 재수 후 이류 사립대학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인간관계문제로 그만 두고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이들 가족은 분명 서로를 생각하고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잘 드러나지 않고 그 때문에 갈등은 깊어만 간다. 그런 가족에게 아버지의 해고라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완전히 해체되어 각자의 길로 가게 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라는 게 대강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가족들 각자 시점에서 전개되는 만큼 주인공은 가족들 모두이겠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아버지 히데요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틀을 이루는 보금자리인 집을 구입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포기하기 싫어 앞날이 불안정한 회사일 망정 헌신적으로 일한다. 또 단란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무조건 식사는 같이 해야한다는 룰을 만들기도 하며 아들이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렸어도 자신이 집을 나간다. 심지어 정말로 해고가 결정되자 집을 못 지켰다는 절망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이다. 그는 혼자서 언제까지고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 성벽이 되고자 혼자 고민하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며 노력해왔지만 그런 헌신은 가족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히데요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상인만큼 공감이 가장 잘 됐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제껏 한국사회에서 살아왔던 내 관점에서 보면 뿔뿔히 흩어진 가족을 과연 정말로 가족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지만(특히 아키코가 이혼도 하지 않고 젊은 남자와 해외여행을 가며 자신의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들을 가족의 최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하고 부모 역시 평생 서로에 얽매어 살아야한다고 강요할 수 없으니까. 새들은 둥지에서 새끼를 키우고 새끼가 다 크면 모두들 둥지를 버리고 떠난다. 가족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둥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떠나야 할 때도 둥지에 매달려 있다면 제대로 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거슬렸던 것이 번역. 번역자가 무라카미 류 최적의 번역가로 평가된다길래 잘 했거니 생각했는데 어쩌구니 없는 번역 실수에 깜짝 놀랐다. 부모님이 집을 지워주었다니 대체 이건 무슨 말? 초등학생도 틀리지 않을 초보적인 미스에 실망했다. 야키소바를 구운 국수로 표현한 건 뭐 그렇다쳐도(그럴거면 히키코모리는 왜 그대로 히키코모리인가?) 핸드폰 모니터는 뭐야? 숨어 있는 거울이라는 표현도 거슬렸다. 번역 너무 대충 한 거 아닌가?

YES마니아 : 로얄 p******e 2013.08.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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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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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일명 히키코모리,즉 은둔형 외톨이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도 일본에 있었던 이지메가 우리나라에서 왕따라는 사회문제로 발전했듯이 히키코모리도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발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것들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경기침체라고 생각한다. 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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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일명 히키코모리,즉 은둔형 외톨이로 인한 가족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도 일본에 있었던 이지메가 우리나라에서 왕따라는 사회문제로 발전했듯이 히키코모리도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발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것들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경기침체라고 생각한다. 경기침체로 인해 소득의 불균형과 계층 사이의 갈등이 찾아왔고 여기에다 그 원인으로 인한 실업이나 가정 파괴 등이 이러한 사회문제를 나타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실에 대한 관심을 지나칠 정도로 깊숙하게 보여왔던 무라카미 류가 이번에는 이 히키코모리로 인한 가족 문제를 다룬 <최후의 가족>을 들고 나왔다.

 

이 작품은 히키코모리로 인해 문제가 생긴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계를 챙기려는 아버지,자식과 아버지 사이 갈등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는 어머니,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으면서 이후 히키코모리 성향을 띄게 되는 아들,그런 오빠의 모습 때문에 가족에게 실망하게 된 딸 등 하나같이 가슴 한 켠에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가족들에게 몇몇 사건들이 펼쳐지게 된다. 아버지에게는 실업의 위기가,어머니에게는 연하의 목수와의 작은 사건이,아들에게는 아버지와의 충돌로 인한 폭력 사건이 일어난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점은 캐릭터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별로의 시점에서 가족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작품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한쪽으로 치우쳐진 캐릭터가 등장해서 작품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단점이 있기 마련인데,이 작품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각 구성원의 시점으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골고루 균형잡힌 캐릭터들로 충분히 쉽게 납득할 수 있고 공감가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했다. 100%는 아니지만 어느 부분에서 나에게도 꽤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더불어 나만 알고 있었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이 작품을 통해서 대리만족으로 느낄 수 있어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흔히 이런 작품들의 결말은 부정적으로 끝나는 게 많지만 이 작품의 결말은 다소 유동적이다. 물론 앞에 나온 사건들에 대한 결말로 이어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줬다는 부분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100% 해피엔딩으로 나온 건 아니지만 극복해가는 과정으로 끝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결책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에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는데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과 동시에 한 작품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려 12년 전의 작품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고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013/8/11

 

l*****3 2013.08.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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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북스] 무라카미 류의 최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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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릴땐 모든것을 해줄 수 있고, 그러기에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 떠 맡아서 살아가야 한다고 느끼는 가장 히데요시. 자신이 현재의 일에 충실하지 못할 경우 가족이 생활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때문에 회사의 일을 항상 우선 순위에 둔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그나마 입학한 대학에서 여자친구에게 외면당한 이후로 집에만 틀어 밖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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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어릴땐 모든것을 해줄 수 있고, 그러기에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 떠 맡아서 살아가야 한다고 느끼는 가장 히데요시. 자신이 현재의 일에 충실하지 못할 경우 가족이 생활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때문에 회사의 일을 항상 우선 순위에 둔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그나마 입학한 대학에서 여자친구에게 외면당한 이후로 집에만 틀어 밖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인 아들 히데키, 아들과 눈에 드러내는 반항을 하지는 않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딸 도모미, 그리고 가족의 불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가족을 돌보는 아내 아키고. 이들이 그려가는 삶의 이야기를 엮어낸 "최후의 가족"

 

 아들 히데키와 아버지 히데요시는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각자 자기의 생각을 상대가 이해못해준다는 생각에 서로에게 생각을 강요하다 폭력으로 맞서게된다. 옆집의 시노야마 가정을 훔쳐보고 난 후의 상황에서 히데키가 히데요시에게 "아들 말하고 다른 놈 말하고, 어느 쪽을 믿는 거야" 라고 한다. 우리는 가까이 있으며너 소중한 사람의 말보다는 별 상관도 없지만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하여 말하는 그런 사람들의 말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닐까? 가장 소중한 것을 그저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에 치중하느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는 히데키가 옆집의 유키를 구한다는 생각으로 다사키라는 변호사를 만나고 나서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가까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이다" 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동안 은둔형 외톨이로써 혼자 지내온 사람이 얻은 결론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니 아이러니컬하다. 히키코모리는 혼자서 성숙하게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고립된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직한 후 마음 고생을 한 히데요시는 크리스마스에 식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자신이 실직한 것과 가족들의 바램을 들어줄만큼 형편이 되지 않음을 이야기 하며 가족들의 원망을 생각하지만 이미 가족들은 모두 스스로 살아가는 마음의 결정을 한 것이다. 그 순간만은 집안의 가장만이 어떻게 미래를 살아가야하는지 방황하고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난후 히데요시도 고향으로 가서 커피가게를 준비하고, 아이들은 제각각 자기의 꿈을 찾아서 일을하고 아내 아키코도 자신의 삶을 위해서 일을하다 히데요시가 준비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커피가게를 찾는다. 히데요시는 주변인들에게 자신있게 "우리 가족이야"라고 말한다.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상관하지 않고 진정 소중한 가족임을 깨닫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살아온 영업사원이 아니라 새롭게 짓고 있는 미완성된 커피가게는 마치 이들 가족이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m*****9 2013.08.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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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해체? 새로운 가족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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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해체: 가족집단이 이혼, 가출, 유기 등에 의해 가족구성원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가족구조가 붕괴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가족해체는 결속감, 소속감, 충성심, 합의, 가족단위의 정상적 기능 등의 파괴.  ‘최후의 가족’의 유치야마 가족은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었고, 어머니는 열세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난다. 게다가 아들은 1년 반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에다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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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해체: 가족집단이 이혼, 가출, 유기 등에 의해 가족구성원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가족구조가 붕괴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가족해체는 결속감, 소속감, 충성심, 합의, 가족단위의 정상적 기능 등의 파괴.
 ‘최후의 가족’의 유치야마 가족은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었고, 어머니는 열세 살 연하의 남자를 만난다. 게다가 아들은 1년 반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에다가, 고등학생인 딸은 일부러 어른스러운 속옷을 입고 열 살 연상인 남자와 데이트를 즐긴다. 처음에 우치야마 가족을 보고, 흔히 요즘 쓰이는 말로 ‘막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치야마 가족이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과연 저런 가족이 있을까?’하고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막장가족’이라는 생각보다는 히데요시의 이야기는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고, 아키고의 이야기는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며, 히데키의 이야기는 아들들의 이야기이고, 도모미의 이야기는 딸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최후의 가족’은 어느 가족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미래에는 이런 가족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나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써 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도모미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고, 도모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는데 영향을 준 ‘곤도’라는 인물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특히 그의 말 중에 우리는 뭔가를 시작한 후에 힘들어지거나 지겨워졌을 때 그만둘까 말까 망설인다는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란 자각이 없다는 것과 처음부터 내가 절실하게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누군가가 나를 그만두게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게 된다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곤도’라는 인물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선입견이 사라지면서,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 쉽게 그만두는 행동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곤도가 보석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머니는 실패하면 어떡할 생각이냐고 말하셨는데 곤도는 보석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안 될 경우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면서, 자신이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말릴 수 없다기보다는, 말려도 의미가 없다고 한 말은 특히 인상에 남았다. 나는 지금 대학교를 1학기 남긴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이 말을 듣고, 내 소신대로 밀고 나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곤도가 한 말을 들으면서, 도모미가 열 살 연상인 ‘곤도’에게 왜 끌렸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나는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국 우치야마 가족은 해체된다. 히데요시와 아키코는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부부는 아니다. 혼자 따로 살면서, 회사에서까지 구조조정을 당해 커트나이프로 손목을 긋기도 했던 히데요시는 고향으로 돌아가 홀로 작은 커피숍을 연다. 히키코모리를 위한 비영리 단체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아키코는 결혼으로 인해 중단했던 대학을 다시 다니면서 노부에와 하와이 여행을 한다. 이웃집 부인 유키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히키코모리를 청산했던 히데키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률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도메스틱 바이얼런스 구원 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음울한 분위기의 집안을 늘 뛰쳐나가고 싶어했던 도모미는 이탈리아로 떠나 가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구 디자인을 배운다. 비록 우치야마가족은 해체되었지만 마지막에 히데요시의 커피숍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사람이 벌써 손님이 왔느냐는 말에 히데요시가 겸연쩍어하면서도 들뜬 모습으로 “우리 가족이야.”라고 말한 것을 보면서, 이것이 가족의 ‘최후’가 아니라, 가족의 최후 뒤에 오는 최후의 ‘가족’, 즉 미래에 올 새로운 가족이라는 작가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각기 너무도 다른 개성들이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하는 ‘가족 제도’속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불화와 고통들, 나아가 범죄에까지 이르는 이 시대의 적나라한 ‘가족의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또 치유할 길을 모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를 몰랐었는데 사회적 문제를 소설 내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책의 작가인 ‘무라카미 류’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보고 싶다.

j****1 2013.08.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