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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장에는 동학 농민군 지도자들의 후손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탄압이 심할수록 이에 항거하는 투사도 많았으니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 미수사건과 관련해 일어난 105인 사건으로 구속된 독립투사 편강렬 같은 이가 대표적인 예이다. 관군의 앞잡이로 친일 부역배로 악명을 날린 이들을 기억하리! 반면 죽음을 같이 한 투사도 있었으니 역사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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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배신자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손병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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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녹두장군 전봉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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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끝난다. 동학농민군의 패배는 그들의 후손들에게 수난을 안겨주지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어진다.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그들의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한용운과 홍범도에 관한 이야기 또한 동학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들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또 실망한다. 동학농민군은 일제에 대항하기 위하여 의병에 합류하지만 그들이 참여할 수 없는 이유는 딱 하나다. 단지 신분이 다르다는 것이다. 비록 동학농민군은 나중에 합류하게 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지만,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분명히 편견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 상황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과연 조선의 양반들과 똑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지 의문이다.
손병희의 천도교와 이용구의 일진회 그리고 일제의 탄압과 회유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잘못된 역사 인식은 우리보다는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동학이라는 운동에 대해 그리고 운동의 과정 중에 일어났던 일들과 사건들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할 때가 아닌가 싶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활동들이 재개된다. 활발한 활동을 통해 잘못된 것들은 바로잡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를 비롯하여 미래를 살아갈 그들에게도 올바른 사실들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지나온 사실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올바른 역사를 찾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3>권에서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중요한 사료들이 실려 있다. 옛 기억을 되살려 사발통문과 폐정개혁안 12조를 들여다본다. 그들이 바라는 것 중에 잘못된 것은 과연 있을까? 그들이 바란 것은 하루하루가 힘들더라도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 하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잡히고 나서 기록된 '전봉준 공초'가 부록에 들어있다. 교과서에 실린 공초와는 달리 한 달여의 시간 동안 5차에 걸친 공초 기록들은 동학농민혁명의 1차 자료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공초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는 동학에 대해 한 발짝 더 다가간다.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사건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알기 쉽게 구성하여 근현대사를 통한 민족사적 의의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그 의미를 되새겨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재조명한다. - 교유서가 -
리딩 투데이 지원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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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이 잡히고 나서 기록된 '전봉준 공초'가 부록에 들어있다. 교과서에 실린 공초와는 달리 한달여의 시간동안 5차에 걸친 공초 기록들은 동학농민혁명의 1차자료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공초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는 동학에 대해 한발짝 더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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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을 되살려 사발통문과 폐정개혁안 12조를 들여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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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활동들이 재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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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의 천도교와 이용구의 일진회 그리고 일제의 탄압과 회유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잘못된 역사 인식은 우리보다는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동학이라는 운동에 대해 그리고 운동의 과정 중에 일어났던 일들과 사건들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할 때가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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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중간 중간 반가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래도 이름을 이전에 알았던 사람..한용운과 홍범도.. 이이화 교수님은 이들과 동학농민군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어 설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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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세상과 소통하는 실천 학문이에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해요. 역사를 모르면 미래를 열어갈 수 없어요.”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 中
이이화 (대구, 1937~2020, 84세) 역사문제연구소 소장과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이기도 했다. 2015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노교수의 삶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동학혁명을 단순히 질서에 반하는 무력시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실천의 동력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전봉준이 순국한 뒤 그와 관계된 인사는 모조리 핍박받았고 후손들도 떠돌이로 살아야 했다. 본가인 천안 전씨와 처가인 여산 송씨는 목숨을 건졌더라도 재산을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다.” 비단 전봉준의 후손들만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많은 농민군의 후손은 핍박 박고 떠돌아야 했다.
1929년 친일파 이규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는다. 2020년 2월 법무부는 이규원의 후손을 상대로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4월 법원은 ‘땅이 국가의 것이 맞다’라는 취지로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2010년부터 총 17건의 소송에서 이겨 친일파 땅 300억 원가량을 환수했다. 1910년 일본에 귀족 작위를 받은 이해승의 후손은 300억 원이 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부는 2007년 14년에 걸쳐 소송전을 했고, 이해승 후손의 토지를 환수했다. 그러나 2010년 대법원은 국가에 ‘돌려줄 필요가 없다’라며 후손의 손을 들어준다. 이곳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친일파를 처리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일제식민지의 국가를 계승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살아남은 동학 농민군과 후손들은 항일 의병과 3.1혁명에 참여하는 주축이 된다.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을 기점으로 1895년 대전 유성에서 문석봉의 의거로 시작한다. 남한산성을 점령하고 서울 진공계획을 수립하지만, 고종의 해산 조칙이 내려져 1896년 전후로 위축 종료되게 된다. 전기 항일 의병은 주로 반침략·반개화를 주창하는 유생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농민군 출신의 평민이 지휘부에 참가하기도 했다.
중기는 1904~1907년 한일의정서와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국권 침탈이 고조되자 재차 항일 의병이 황동에 나선다. 특히 평민 출신의 신돌석이 봉기하여 전과를 올렸으며, 양반과 평민이 지휘부와 병사에 모두 포진하여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후기는 1907~1910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명분으로 고종이 강제퇴위 되고,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되자, 군대가 함께 의병에 참가하게 된다.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3달에 걸쳐 서울근교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최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해산하게 된다. 이후에도 홍범도, 채응언 등 많은 항일 의병의 활약으로 연속된다. 이와 같은 항일 의병은 일제의 주권 강탈을 늦췄으며, 향후 전개될 국내외 독립운동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이처럼 갑오년 농민군들은 일제와 나라를 팔아먹은 양반들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을 이어나간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된 일본과 미국 및 여러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걸쳐 해방을 맞이하게 되나, 농민군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의 경우 나치 지배에서 벗어난 후 ‘협력행위 처벌에 관한 명령’을 만들고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에 대해 재산몰수를 명령했다. 기록상 당시 드골은 나치 부역자 약 1만여 명을 처단하였다고 한다. 언론인과 지식인, 정권의 고위 관리들을 숙청한 후 가계에 뿌리박은 나치 협력자 또는 부역자들을 철저히 숙청하였다. 1944년 말에 5천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403명의 판사가 나치 협력혐의를 받았다. 이것은 프랑스 전체 판사의 17%에 이르는 수치였다. 반면 이승만은 정권의 안정화를 위한다며, 친일파 출신의 경찰과 관료들을 대거 임명하여 오늘날 같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는 나라를 만들고 말았다.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인간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집 앞마당도 아니고 시키지도 않는데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위협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많은 그곳에서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 세상은 순리가 아닌, 이기적인 자들이 그 혜택을 모조리 삼키고 있다. 수 대에 걸쳐 목숨을 걸고 지켜온 나라가 친일파 후손 땅 1필지를 환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하에서 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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