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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불릿, 그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전쟁 익수는 화학병 교육을 받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가스통에 씨에스파우더를 옮겨 담다가 이후에는 헬기에서 직접 살포했다. 그는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지만 동시에 고엽제에 노출되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슬로우 불릿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베트남전쟁의 고엽제 후유증 환자를 슬로우 불릿(Slow Bullets)이라 부르는 것에 깜짝 놀'란다. '귀신같은 별명이어서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그는 아직 살아있지만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에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 6개월 동안 32만 명이 참전했지만 고엽제의 후유증은 1991년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 내한해 고엽제의 피해로 인해 원인모를 병을 앓아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93년 2월 고엽제 후유의 중환자 진료 등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통과시키는 등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국가보훈처에서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보상 및 치료를 실시하게 되었다. 고엽제에는 발암성이 가장 높다는 맹독성분인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어 폐암, 간암, 임파선암, 혈액암, 생식기능장애, 불임, 기형, 장애어린이 출생, 발육 장애 등의 각종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것. '서서히 그러나 마침내 심장에 박히는 총알. 아주 서서히 죽이는 살인'이라는 설명이 괜히 붙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토록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고엽제 희생자들은 아직도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슬로우 불릿』에서 그려지는 익수와 자녀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을 치뤄내는 병사들의 모습같다. 끝날 줄 모르는 전쟁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병사들의 모습말이다.
미국은 베트남전 기간 동안 베트남의 정글에 고엽제, 이른바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뿌렸는데, 그 양이 자그마치 50,000톤(약 4,000만 리터)에 이른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고엽제를 사용한 것은 주요 전투가 밀림이 우거진 정글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다. 도로망이 부족하고 열대림과 같은 자연적 장애물이 많은 상태에서 미군의 작전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즉 베트콩의 기습공격에 노출될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미군은 적에게 은닉처를 제공하고, 작전에 장애가 되는 베트남의 밀림을 파괴하기 위해 에이전트 오렌지와 같은 강력한 화학 제초제들을 공중 투하하는 새로운 작전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랜치 핸드 작전(Operation Ranch Hand)'이다. 이 작전은 베트남 전쟁 중인 1962년부터 1971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베트남 공화국의 농촌 일대에 살포된 고엽제는 약 1,200만 갤런이다. 고엽제 희생자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단지 참전용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2세들에게도 고엽제 후유증은 유전된다. 대물림되는 것이다. 이대환의 장편소설 『슬로우 불릿』에서는 고엽제 후유증을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가져온 비참한 상황과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준다.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고엽제 희생자의 가정 『슬로우 불릿』은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한 환자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다. 고엽제 때문에 걸쭉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아버지 익수와 사타구니 습진이 유전으로 인한 고엽제 후유증은 아닐까 걱정하며 가출한 영섭, 하반신 마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원에서 보내다 집으로 돌아와 자살 한 영호, 아들과 남편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지친 어머니 숙희. 인물들은 모두 병들고 피폐해 있으며, 어느 한 부분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전쟁의 피해자이자 고통 받고 있는 자들이다. 아프지 않나. 후유증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은 지나치리만큼 생생해 가슴이 아플 정도다. 그들의 삶은 붕괴되고 있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가정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붕괴되고 있다. 붕괴되는 그 현장 속에서 익수씨는 자신이 고엽제 뿐만 아니라 씨에스파우더를 함께 다뤘다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상기해낸다. 그리고 의심한다. 영호의 하반신 마비는 일반 고엽제 환자에게서 볼 수 없는 증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 부분이 익수씨의 의심에 신빙성을 더한다. 이 작품 속에서 익수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고엽제 뿐 아니라 씨에스파우더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방송은 고엽제에 대한 부분만을 보도할 뿐, 진실에는 무관심하다. 작가는 이 부분을 통해 베트남 전쟁과 고엽제 환자들에 대해 더욱 많은 진실들이 밝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물림 되는 아픔 속에서 익수는 죄책감을 느낀다. 영호는 철저하게 계산 된 미소로 익수를 괴롭힌다. 자신의 가슴에 아버지를 안고, 아버지의 가슴에 자신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가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영호야 말로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자 괴로운 인물이다. "내가 나무를 죽였습니까, 베트콩을 죽였습니까! 그런데 내가 왜요, 아버지─."하며 울부짖던 스물두 살의 영호의 절규가 그렇다. 단지 죄가 있다면 참전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죄밖에 없는 그가 왜 그 벌까지 고스란히 물려 받아야 하는 것일까. 단지 2세라는 이유만으로 그 죄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한다면, 그 폭력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만큼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영호는 죽음을 택했다. 그것은 그가 작품 속에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던 장자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긴 것이기도 하다. 죽음에 다다르면 삶의 고통은 없을 것이라는 장자의 가르침 말이다. 그는 질병을 마주한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다. 『슬로우 불릿』은 하나의 증언문학이다. 취재에 의한 세밀한 이야기가 이 작품을 그렇게 만들었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문학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진실을 파헤치는 문학, 증언하는 문학이 여기 있는 것이다. 『슬로우 불릿』은 경북 포항 호미곶이란 마을에 살고 있는 실제 고엽제 환자 김길웅 씨 가족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영호가 남긴 유서에서 영호는 목숨을 끊기 전, 녹음기 앞에 육필로 쓴 '인간 선언'을 남겨둔다. 사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시적인 유서의 내용에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계가 나에게 안긴 최악의 선물은 폭력이며, 이 세계가 나에게 남긴 최선의 선물은 분노이다. 내 하반신에 엉켜 사라지지 않는 폭력에 대한 분노를 더 참을 수 없어 이 세계로 돌려주는 그 순간, 마침내 나는 영원히 온전한 인간을 회복한다.(178쪽)' 이 유서에 담긴 메세지는 마치 뻐꾹이의 울음소리 같다. 익수의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내게 만들고, 영호의 하반신에 마비가 오게 만들었던 그 뻐꾹이의 울음소리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