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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모조리 진리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주인공인 필리베르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이 책에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익숙하게 믿어왔던 진리들이 진짜인지 의심하게 된 필리베르의 하루가 매우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필리베르는 그 날 아침 과거의 사건들와 지금의 사물들에서부터 존재에 대해서까지 근원적인 의심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의심은 자연스럽게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진리들을 의심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실험해 보기로 결심하고는 여느 날처럼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역사 시간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필리베르의 실험이 시작된다. 자기가 호명되었을 때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왜 그런지 묻는 역사 선생님에게 자신은 필리베르가 아니라 르네 데카르트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존재, 역사의 진실 문제를 언급하며 선생님을 당황케 한다. 머리를 쥐어 박힐만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현명한 역사 선생님은 필리베르의 철학적 물음을 이해하고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이런 선생님들이 대한민국의 학교에도 많이 있었다면 이 나라가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진리에 대해 습관적으로 믿어버리는 태도에 필리베르는 도전한 것이었고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진짜 진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필리베르의 예상과는 달리 교장선생님은 철학을 가르치는 칼벨 선생님과 필리베르가 철학적 물음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칼벨 선생님은 필리베르와 같은 학생들이 간혹 출현할 때마다 기뻐했다고 한다. 새로운 철학자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칼벨 선생님은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철학작 물음을 가지고 상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다. 필리베르의 생각을 강압적으로 멈추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주었다. 칼벨 선생님은 필리베르가 가고 싶다고 한 바닷가로 운전해가서 바다를 보며 철학 이야기를 해 준다. 철학적 물음은 우리의 삶을 생동감있게 해 준다. 칼벨 선생님과 필리베르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철학이 무엇인지, 철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철학의 한계와 모든 사람에게 억지로 철학적 물음을 가지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도 확실히 해 준다.
"철학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거지. 철학은 토론하는 거야! 너는 나를 위해, 또 앙투안(필리베르의 친구)을 위해, 나는 너를 위해 철학을 하지. 누가 정말로 우리 말을 듣고 있는지는 잘 몰라. 그러니까 절대로 낙담하면 안 된다. 우리가 말하는 대상이 다음 사람, 앞으로 나타날 사람, 아직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어"
선생님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통해 철학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발전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장면에서는 마치 칼벨 선생님이 내 앞에서 내게 말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난 필리베르와는 다르게 진리에 대한 의심이 들었을 때에 내가 믿고 있었던 진리의 권위 혹은 습관에 눌려서 그것을 부정한다는 상상을 스스로 접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이유 이외에도 사람들이 철학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는 것들이 많이 있다. 칼벨 선생님은 그중에서도 텔레비전을 꼽는다. 바보 상자라 불리던 텔레비전은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이 책이 쓰여졌던 20여년 전에 비하면 그 영향력은 보다 광범위해지기까지 한 듯하다.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다른 것을 보여줄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그것을 선택했다고 믿게 돼. 축구선수나 영화배우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줄까? 다음 날 아침 일찍 일하러 가야 하니까 못하는 일을 그들이 대신 해주기 때문이야. 우리를 꿈꾸게 해 주기 때문에 많은 돈을 주는 거지. 그 사람들의 자리에 우리를 대입하고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상상해. 그 사람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정말 마음에 드는 삶을 창조할 수 없으니까 남들이 대신 정하게 내버려 두는 거야. 이미 정해진 일처럼. 그리고 그 동안에 시간은 흐르지.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음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거야. 우리가 죽은 뒤에도 시간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흐르지.”
현대인들에게도 이 말은 계속해서 진실이 될 것 같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사람들의 주의를 점점 더 딴데로 돌리고 있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우리는 철학에서 멀어져만 간다. 철학이 없어져 버린 이 땅에 다시 철학을 회복해야 한다. 필리베르와 같은 어린 학생들을 윽박지르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에서 회복이 시작되어야 한다.
"철학이 요구하는 것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찾아서 정말 그렇게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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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모든것에 의문이 생긴다. 세상의 일들은 왜 그렇게 정해지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모든것들이 낮설기만 하다.
16살 필리베르의 어느날 아침은 모든것이 의문이 생기는 날이었다. 전혀 이상한것이 없는데도 자꾸만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 매일 아침 되풀이 되는 일상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똑같은 일들을 반복한다.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가기위해 준비하는 자신이나 매일 같이 같은 수프를 요리하기위해 똑같은 야채를 주문하는 옆집 할머니나 습관처럼 되풀이되는 일상을 보면서 "진리"에 대한 의문은 증폭된다. 끝나지 않는 생각속에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고 자신의 머리에 병이 생겼을거란 이유밖에 없는 어느날 아침 습관적으로 출석을 부르는 역사선생님에게 자신의 이름은 데카르트라고 말해버리는 필리베르와 그것에 대한 벌이라면 벌로 철학선생님인 칼벨 선생님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서 진리와 습관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고 무조건적이 아닌 왜 그렇게 되는 이유와 사실에 대한 논리적인 생각들을 털어나가면서 한단계씩 철학이라는 문앞에 다가간다.
모든 사실에 대하여 의문이 생겨나 자신조차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존재와 진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는 어느날 갑자기 지금 중학생인 아들녀석을 바라보게 된다. 책속의 첫부분만 접하고나서 하는말은 "엄마! 나도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어".한다. 어느새 울아들은 철학이라는 복잡하고 의심스러운 단계에 다가서고 있었다. 나 어릴적에도 그런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많은 의심속의 일들은 생활속의 습관이 되어 버리고 그런 진리에 대한 의심들은 그냥 무디게 사라지고 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책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발생한 병같은 일 나자신 조차도 누구인지 의심스럽고 세상의 모든 진실들이 다 낯설고 의심스러워질때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신비한 세계로 들어간다면 모든일들에 의미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학생인 울 아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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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던 일상에 대하여 불현듯 의문이 생긴 바로 그 날, 진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려운 소설이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답을 알게 되는 질문이 아니라, 어른들도 대답하지 못하는, 아니 어른으로 굳어져버려 오히려 대답을 잃어버린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어른들은 삶을 진리로 가득 채웠고, 그 진리들 때문에 답이 없는 질문을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128). <아주 철학적인 하루>는 한때 고등학교 교사였던 철학 교수가 청소년들에게 일상생활에 작동하는 '철학적 사고'를 일깨우기 위해 쓴 '철학 소설'이다. 철학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그렇다면 철학적 사고는 무엇일까?
열여섯 살 소년, 주인공 필리베르는 어느 날, 평소와 비슷하지만 결코 어제와 똑같지 않은 이상한 아침을 맞이한다. 이제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하여 갑자기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이 '필리베르'라는 것마저도 의심하며, 출석을 부르는 역사 선생님에게 자신의 이름이 '르네 데카르트'라고 대답한다. "진리라고 여겼던 생각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삶 전체가 허공에 떠 버리는 것 같았다"(59). 그러나 필리베르는 이 작은 소동에 대한 벌로 아주 특별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필리베르의 변화를 눈치챈 역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철학 선생님과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필리베르는 바닷가에서 철학 선생님 '칼벨'과 선문답(禪問答)을 나누며 '아주 철학적인 하루'를 보내게 된다.
<아주 철학적인 하루>는 말한다.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만큼 철학은 중요"하다고(37). 필리베르가 어느 날,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은 이상한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은 "세상이 정말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다르게 본 것이다"(41). 뜻도 모르면서 반복하는 습관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철학적 사고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철학의 시작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갖는 것이고, 철학적인 사고란 그러한 의문을 통해 당연한 것들을 자세히 살피고 뒤집어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답,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찾는 일이야. 삶을 가지고 노는 거지"(155).
<아주 철학적인 하루>는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철학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야. 어떤 삶을 원하는지 찾아서 정말 그렇게 사는 법을 익히는 거지"(162). 열여섯 살 소년 필리베르의 '아주 철학적인 하루'를 보며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언제 이런 의문이 생겼던가.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분명 이런 질문들이 나를 괴롭히던 날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삶을 변화시킬 힘이 사라진 사람들과 아직도 삶에서 뜻밖의 일이 생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차이"는 한 가지이다. 필리베르가 앓게 된 병, 바로 '호기심'이다. "중요한 단 하나의 말, '깨어나라!' 어느 철학 책을 보아도 '깨어나라!'라는 호소가 나올 거야. 지식보다는 호기심이 중요해"(154).
필리베르의 철학적 사고, 즉 '생각'이 깨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잠들어 있는 나의 생각도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쇼크에 가까운 충격을 준 한마디는 이것이다. "한쪽에서는 누구나 야생 동물이 되기를 꿈꾸고, 한쪽에서는 누구나 강제로 가축이 된다. 가축이 되는 것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되면 언젠가 모든 것, 심지어 감옥마저도 빼앗길까봐 야생의 삶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98). 이 한 문장이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모든 일상을 다시 흔들어깨웠다. '생각'을 많이 하며 산다고 생각했지만(믿고 있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질문, 정작 물어야 할 질문들은 하나도 갖고 있지 못했나보다. 나를 가두고 있는 '감옥'마저도 빼앗길까봐 다른 사람의 생각에 끌려다니느라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가는 일에는 게을렀다는 뼈아픈 깨달음이 평온했던 마음을 들쑤셔 놓고 있다.
<아주 철학적인 하루>는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교육의 '내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탈무드에 보면 "자녀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부모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을 주려고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안겨주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 무엇이 행복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그곳으로 가는 길, 그것이 바로 철학적인 사고의 힘이 아닌가 한다. 프랑스에서처럼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청소년 필독서가 되기를 바래본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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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잘 헤아려줘야 하는데 매일 공부하라고 야단치고 잔소리하며 사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미안해지네요. 어른이 되기 바로 전, 방황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겪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저도 똑같이 경험하고 지나왔던 시간인데 아이를 똑같이 이해해주고 받아주기 힘든 것도 사실이네요. 필리베르에게 찾아온 변화는 독특했어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들 부모님 모두 필리베르의 행동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16살이면 아직은 미숙하지만 스스로는 다 컸다고 여길 만큼 정신적으로 풍만한 경험을 할 나이지요. 자신이 아는 것이 다 맞다고 생각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벽을 만들고 가족들과도 충돌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구요.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자신의 전부를 줄 것처럼 행동하다가 조금만 삐끗해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 있는 불안한 나이기도 하구요. 필리베르에게는 철학 선생님 칼벨이 멘트같은 존재였겠지요. 세상에 뭔가 변화가 찾아온 것 같은데 그것의 실체는 잘 모르겠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변화가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매순간 조금 불안하기도 했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봐 두근거리기도 했어요.
자신의 이름을 데카르트라고 외칠 때 잠깐 웃었어요.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조금 어긋나고 엉뚱하다 해도 그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사는 아이보다 훨씬 귀엽고 사랑스러웠어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구요. 철학은 정말 어려워요. 깊이 파고들수록 더 어렵고 힘든 분야인 것 같아요. 하지만 매일 하루 하루 겪는 일 자체를 철학이라 여기면서 살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그날의 일상, 생각,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 그것이 철학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과 다른 일상이 찾아올 거라는 상상은 즐거운 것이지요. 내일은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고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겠지요. 필리베르에게 찾아온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요.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야 찾아가는 과정을 귀하게 여겨야겠어요. 필리베르의 변화는 모두가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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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 부터이다. 사춘기가 조금 늦은 나이에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이 그 때부터였을 테니까 말이다. 또, 어떻게 보면 굳이 늦은 나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결정해야 할 시기에 나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늦었다보다는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더 강하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깊이 들어가 보려고 한 적은 없었다. 어렴풋하게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철학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깊이 파고들만큼 내게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 때 한번 공부해보자 하고 넘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과 관련해서 내가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다. 열여섯 살 소년이 철학 모험을 떠날 때, 그보다 10년 더 나이를 먹은 스물여섯 살인 내가 함께 떠난 것이다.
책에는 귀여운 필리베르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그에게 이상한 병이 찾아온다. 그 병은 다름 아닌, 주변의 것들을 자꾸 의심하게 되는 병이었다. 무엇보다도 늘 똑같이 반복되며, 습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바꿔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이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하던 아이는 학교에서 출석체크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의 호명에 침묵으로 답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제 이름은 르네 데카르트입니다.”였다. 자기 이름을 바꿔본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필리베르는 철학을 가르치는 칼벨 선생님과 만나게 되고 바닷가에서 짧지만 강한 이야기를 나눈다.
책에 긍정적인 점수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최대한 쉽게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애쓴 노력이 보인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 독자들이 책을 도중에 덮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전달되기도 했지만. 충분히 스물여섯, 철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물론, 과연 학생들에게 철학이라는 학문이 쉽게 서술되어 있다고 해서 그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는 한다. 일단은 자기 삶에 어느 정도 의문이 들기 시작한 나이래야 이런 내용에 관심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다. 이건 내가 걱정할 부분은 아니지만. 하지만,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 정도라면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은 했다. 아무래도 이런 고민은 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이른 나이에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라면 주어진 것을 한껏 받아들이고만 있는 시기기 때문에 이런 책을 읽어보고 삶에 대해 좀 더 좁게는 내가 배우고 있는 수업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중간쯤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역사 선생님과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생각의 철학 선생님의 짧은 논쟁이 있다. 아무래도 철학 책이기 때문에 철학 선생님의 손을 약간 더 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보편적인 진리의 존재에 대해서 잠깐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칼벨 선생님과 필리베르의 대화를 읽으면서는 무엇보다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른 나라의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생각하는 시간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맞다. 심지어 생각하는 일을 어리석게 보는 것도 같다. “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라고 물었을 때, “난 지금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는 대답을 들려준다면, 아마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밖에서 몸을 움직여 금전적, 혹은 눈으로 구체적으로 보이는 보상이 있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다 결론 내려진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생각이라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행동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기 위해서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저자는 텔레비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나쁜 것만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굉장히 완고하다. 텔레비전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현실이기보다는 환상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뉴스조차도. 읽어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텔레비전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것이 그 습관을 끊어내는 데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굉장히 쉽게 설득을 당하는 사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텔레비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동의한다고 저자의 손을 들어줄 수 있었다.
교사를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실, 필리베르와 같은 학생은 두려운 존재이다. 하지만, 또 안타깝기도 하다. 왜 한국에는 이런 학생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너무 일찍 의심보다는 순응이 인정받기에 더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어른들의 생각에 엇나가는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에 대해 편협하게 대응하는 성인들 때문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이 책을 덮은 후 잠시 동안, 조금 더 소망을 갖자면 조금 더 오랫동안 자유롭게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져봤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담푸스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것입니다. 더불어 서평 내용은 독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소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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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혼란함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경우에 따라 변화를 알면서도 외면하기도 한다. 내게 익숙한 것들이, 가까운 것들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에. 애써 부정하며 자신을 납득시키려 한다.
필리베르는 어느날 갑자기 존재하는 주변의 모든 것에 강한 의문을 갖는다. 여느때와 전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필리베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은 필리베르를 힘들게 한다. 역사 시간에 자신을데카르트라고 말하는 필리베르. 학급에 작은 혼선을 빚은 벌로 철학 선생님과 함께 철학적인 하루를 보내게 된다. 벌이라기 보다는 역사선생님의 배려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민감한 아이의 변화를 눈치채고 그에게 도움을 주도록 주선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이 만약 수업시간에 이런 소리를 했다면? 장난쯤으로 치부되어 매를 맞을 것이고 아이들의 비웃음을 사 두고 두고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칼벨 선생님과 바닷가로 철학여행을 떠나게 되는 필리베르. 필리베르는 칼벨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깨어나게 된다. 칼벨 선생님으로부터 현상에 대한 답을 듣는 강의가 아닌, 대화를 통해 도움을 얻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통념과는 다른 독특한 발상을 하면 창조적인 사람이 되거나 4차원의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엔 후자의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획일적인 교육만 받고 그것이 진리라 믿으며 자라온 사람들에게 독특한 생각은 경계 대상이 되어버린다. 한국 학교에서 필리베르 같은 학생이 나왔다면 왕따를 당하면서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정상이 아닌 것쯤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였을것이다. 카벨 선생님 같은 교사가 있을것 같은 프랑스의 교육환경이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획일적인 교육의 폐혜는 의식하지 못하게 생활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꿈이 없고, 자기 주장도 없는 사람들, 자기 철학이 없어 쉽게 좌절하게 된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현실이 어느정도 그것을 증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나라도 유년 시절부터 철학교육을 받아, 아이들이 어른들의 삶에서 보고 배우는 물질 만능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철학적 사고로 자신의 가치관을 올바로 정립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학교폭력 왕따 문제나 자살률은 크게 감소되지 않을까.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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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변화시킬 힘이 사라진 사람들과 아직도 삶에서 뜻밖의 일이 생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차이를 깨달았다. 호기심을 품게 해 준 '병'이 고마웠지만, 오늘 아침에 당황한 것을 생각하면 자신도 얼마나 습관에 물들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26쪽 우리는 흔히 일상을 '쳇바퀴처럼 도는 하루'라고 표현하곤 한다. 반복되어지는 변화가 없는 삶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하여 앞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익숙한 하루를 보내는데 만족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마도 대부분은 습관적인 하루를 보낼터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오늘도 여전히 똑같은 '나'를 확인하고, 늘 그랬듯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음식을 먹고, 익숙해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시간을 보내며 말이다. 그런 일상에서의 탈피를 가끔 꿈꾸기는 하지만 '일상' 자체에 대해서, 내 주변의 사물들, 인물들에 대해서 새로운 호기심이나 색다른 변화를 느껴본 적은 거의 없지 싶다.
이 책은 그런 평이한 '일상'과는 전혀 다른 '일상'의 시작을 여는 필리베르가 등장한다. 그렇다고해서 필리베르의 '일상'이 어제의 '일상'과 뚜렷한 차이를 가진 것은 전혀 없다. 열여섯 살, 필리베르에게 주어진 일상대로 일찍 일어나고 늘 보던 이웃사람들을 보며 학교에 가고 늘 자신이 앉던 자리에 앉아 주어진 시간표대로 공부를 하고 선생님을 만나고.............. 세상이 정말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다르게 본것이다. - 41쪽 그럼에도 필리베르에게 이 날의 '하루'는 이제까지 지내왔던 '하루'와는 무척이나 다른 '하루'가 되는데, 바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낯설고 의문이 드는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이 드는 하루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필리베르는 이것을 '호기심을 품게 해 준 '병''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화되어진 것이 없는 일상이지만, 그 '생각'의 변화는 필리베르에게 전혀 다른 '하루'를 보내도록 이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지. 원하든 말든 누구한테나 기회가 있는 거야. 지식 보다는 호기심이 중요해. - 154쪽 필리베르는 자신의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에게 자신은 필리베르가 아닌 '르네 데카르트'라고 말하게 되고, 그 일로 인해 더이상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교장실에 불려가서 혼이 날거란 예상과는 달리 철학을 가르치는 칼벨 선생님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오후를 보내게 된 필리베르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품었던 여러가지 의문들에 대해 하나씩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된다. 내 삶에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철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길을 찾기 위한 사색임을, 주어진 '지식'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게 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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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나와는 상관없는 것만 같은 단어.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모든 철학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
고등학교 윤리시간을 통해 철학 상상가들의 이야기를 나름 재미있게 들었던 것 외에는 별다른 철학자극이 없었던 내게 엄마가 권해주신 책이 '소피의 하루'라는 책. 소피의 하루를 읽고 철학에 눈뜨게 되었어요! 라고 쓰고 싶지만... 철학을 쉽게 풀어썼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지도 못했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비슷한 의도를 가진 '아주 철학적인 하루'를 집어들게 된 것은 소피를 만날 때보다 거의 두배의 나이가 되었고, 나름 끈기도 생겼고 거기다 그때보다야 당연히! 성숙해졌으니 중도포기하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때문이다.
예전 대학 동아리 선배의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꺼냄이 이해되지 않던 풋내기 대학신입생 시절에서 최근 갑작스레 왜 그 말이 중요한지를 머릿속으로 띵~하며 생각하게 되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
열여섯의 필리베르의 어제와 오늘은 다르지 않았다. 그저 필리베르에게 당연하게만 여기던 것들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이 생겼고 그런 필리베르의 이야기를 '반항'이나 '장난'으로 치부하지 않고 함께해주는 선생님이 있었기에 어제와 다른 오늘이 의미있는 내일이 될 수 있었다.
그런 환경에 있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부러워지는 요즘의 교육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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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는데, 모든 것이 평범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필리베르는 그 날 아침 일어났는데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다. 똑같은 사람인데, 똑같지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삶을 변화시킬 힘이 사라진 사람들과 아직도 삶에서 뜻밖의 일이 생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차이를 알았다.
삶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고 호기심을 품게 해주는 병에 걸린 필리베르는 그날 아침부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습관에 물들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일상에서 새롭게 발견한 의문과 호기심은 필리베르를 기쁘게도 당혹스럽게도 했다.
사실 철학이라는 학문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고 어렵고 , 어렵다가 아하 그렇구나 하는 마음으로 다가오고 읽는 내낸 이런 감정들이 연속이었다.
습관이 진리이다. 사실 습관을 들이고 지키는 까닭은 대개 다른 사람들 때문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들 모두, 우리가 진리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의문을 품는 병이 생기면 어쩔까 자라면서 기본적인 호기심을 갖도록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순종적 미덕을 강요받으며 자랐던 시기, 무조건 수용해야 착한 아이로 인정받던 때에 교육은 질문보다는 복종과 순종을 당연시 여기며 살았었다. 지금도 그런 습관이 남아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자라게 만드는 것은 질문인데도 말이다.
아주 철학적인 하루 , 그런 하루하루가 자신을 성장하게 만드는 날들이다. 생각과 마음이 자라는 내가 되고 우리 아이들이 그런 날들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기대해 본다.
어느 날 우리아이가 필리베르처럼 의문과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면 대답해 줄 수 있는지... 그런 대답을 해 주실 칼벨선생님 같은 분을 만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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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섯살 소년인 필리베르에게는 세상은 그냥 많은사람들이 느끼는 그냥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습관적으로 이루어진 것들, 생각, 진리, 의미 등등 그에게는 이제 세상이 의문 투성이일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서 나를 괴롭혔던 시가있다. 내가 알고 있는 시 중, 외었었던 몇 안되는 시 중 하나인 그 유명한 김춘수의 '꽃'
이 책의 내용을 함축하자면 '꽃'이라는 시를 보여 주면 될 것 같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 . (중략)
'필리베르에게 이 하루가 시작 되기 전에는 그는 다만 습관에 불과했다.
필리베르에게 이 하루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그에게로와서 의미있는 세상이 되었다.'
뭐 패러디를 해도 딱 들어맞는다. 물론 억지로 바꾼 느낌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은 필리베르와 칼벨 선생님의 이야기 인것 같다. 칼벨 선생님의 일방적인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서로 대화를 한다. 시간상으로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지식적으로는 많은 내용에 대해서...
그 중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부분은 '죽음'에 관한 대화를 할 때이다. "진짜 죽음은 흐르는 시간을 소홀히 할 때 찾아오는 거야. 남들이 우리 시간을 대신 관리하게 내버려 둘 때 말이다. 진짜 불행한 사람은 자기 시간이 없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여유가 없는 사람, 생각할 시간을 절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이야." 정말 무섭다. 죽음이란 것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것 같은 대화였다. 우리가 알고있는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정말로 이 말처럼 시간을 소홀히 할 때 찾아오는 '죽음'이야말로 정말 무섭고 경계해야 하는 것인것 같다. 그리고 '죽음'이란 의미에 가장 맞는 것 같고...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한 사람의 삶은 누군가가 신경 써서 기억하는 한 죽지 않는다.' 이 글에서 '백아절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자신을 알아주는 벗이 죽음으로써 백아가 거문고를 끊어버렸다는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고. 백아의 행동으로 인해 그의 친구 종자기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참 신기한것은, 같은 지역에서 살아간 사람들도 아니고, 동시대 사람들도 아닌데 이렇게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그 생각이 지금에서도 의미가 와닿는 것이다.
궁금하다. 그래서 끝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과연 나는 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