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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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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조선의 왕들, 주역으로 앞날을 경계하다박영규씽크스마트/ 2020.7.10.sanbaram   주역은 동양 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에는 글을 배우는 사람의 필독 도서였다. 특히 벼슬을 하고자 하는 사람과 제왕들은 거의 의무적인 공부였다.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신봉하게 되면서 국왕은 나라를 경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역을 공부하였고,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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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조선의 왕들, 주역으로 앞날을 경계하다

박영규

씽크스마트/ 2020.7.10.

sanbaram

 

주역은 동양 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에는 글을 배우는 사람의 필독 도서였다. 특히 벼슬을 하고자 하는 사람과 제왕들은 거의 의무적인 공부였다.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신봉하게 되면서 국왕은 나라를 경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역을 공부하였고, 선비들은 자기의 인생 공부를 위해 주역을 공부했다. 혹자는 점을 치기 위해 공부하였으나 주역을 통달하는 것은 쉽지 않아, 그 이해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는 조선시대 임금들의 치세방법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주역에 얽힌 사건들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 박영규는 서울대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 한서대 대우교수, 중부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인문학을 부탁해>,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자등 다수가 있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주역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주역을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썼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역의 연원과 역사적 의미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고, 64괘의 핵심 메시지도 총망라되어 있다. 조선시대 군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인용한 주역의 괘사나 단사, 상사, 효사 등만 제대로 읽어도 주역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원리를 충분히 배울 수 있다.(p.7)”고 말한다. 정조를 시작으로 선조, 숙종, 영조, 세조 및 연산군을 비롯하여 16명의 군왕들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이 주역을 통해 신하들과 어떻게 소통하였으며 정치를 하는데 활용했는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은 물론이고 임진왜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선조까지도 주역에 밝은 사람이었다니 그들의 주역에 대한 이해가 천차만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익힌 주역을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이 책에서 알아 볼 수 있다.

 

주역은 형상이 변화무쌍하고 그 변화에 따라 괘의 의미도 바뀐다. 천지 만물과 인간의 길흉화복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보는 것이 주역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점괘를 뽑아서 좋지 않게 나왔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p.37)” 길은 흉으로, 흉은 길로 바뀌고 잠복해 있는 변수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흉과 화는 최대한 억제하고 길과 복은 최대한 고양시키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다. 주역은 상황이 변화되는 가능성과 원리를 보여주지만 그 상황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주역의 각 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지며 이 효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를 효사(爻辭)라고 한다. 여섯 개의 효사에는 길과 흉이 섞여 있는데 유일한 예외가 지산겸괘다. 지산겸괘는 곤괘가 위에 놓이고 간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인데 밑에서 세 번째 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효다. 따라서 이들 효 각각의 이름은 초육, 육이, 구삼, 육사, 육오, 상육이 된다고 주역의 기본적인 지식부터 설명한다.

 

숙종은 환국 정치의 달인이다. 서인의 세력이 커지면 판을 뒤집어 남인을 등용하고, 남인이 커지면 또다시 판을 뒤집어 서인을 중용했다.(p.64)” 숙종은 1689년 기사년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는 것에 반대하는 서인을 실각시킨다. 이른바 기사환국이다. 이때 송시열은 제주에 귀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약을 받는다. 그러나 숙종은 5년 후 장희재의 뇌물 사건과 장희빈의 패악을 빌미로 또다시 판을 뒤집어 서인을 중요한다. 이때 송시열의 아들 송기태는 그 옛날 자신의 부친이 효종에게 올린 상소문을 첨부해 숙종에게 탄원서를 올린다. 그러자 숙종은 송시열을 만고에 충신으로 부르면서 기사년 자신의 일 처리가 잘못되었다고 한탄한다. 이때 윤휴를 포함한 남인은 졸지에 소인으로 전락한다. 한편 수찬 이진검이 뇌풍항괘의 효사를 인용해 자신을 공격하자 같은 뇌풍항괘의 상전을 들이대며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역시 국면 전환의 달인답다. 하지만 사관이 기사의 말미에 이진검의 발언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숙종의 리더십을 은근히 비판하는 코멘트를 단 것으로 볼 때 당시 신하들 사이에는 숙종의 환국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조도 주역에 일가견이 있었다. 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조선시대 군주들 가운데 세조만큼 주역에 밝은 사람도 흔치 않다.(p.96)” 세조는 신하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면서 주역의 괘를 상황에 맞게 정확하게 인용하는가 하면 주역의 괘를 주제로 시를 짓기도 했다. 중천건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아래위로 겹쳐져 있는 괘로 모든 효과 양효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그래서 양을 상징하는 군주의 괘로 불린다. 자강불식은 주역의 효사 가운데 많이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로, 쉼 없이 돌고 도는 하늘의 운행 원리를 본받아 사시사철 부지런히 민생을 챙기는 것이 어진 임금의 도리임을 뜻한다고 주역의 괘와 효사를 설명한다.

 

연산군은 정권 초기부터 훈구대신들을 상당수 내쳤다. 그 후 젊은 사림들을 적극 기용해 그 빈자리를 메웠더라면 조정의 분위기를 일신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p.132)” 하지만 연산군은 세조나 숙종과 같은 권도를 쓸 줄 몰랐다. 훈구대신들을 내친 후 사림들까지도 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다. 군왕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정치력의 부족, 이것이 연산군을 패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때 손순효의 상소문에 주역 중지곤괘 육사의 효사에 나오는 구절 괄랑 무구무예 주머니를 묶으니 허물도 영예도 없다를 인용했다. 여기서 육사는 임금의 자리인 육오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군주를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참모를 상징한다. 군주를 보좌하는 측근 참모가 주머니를 묶는다는 것은 입을 닫는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광해를 왕에서 군으로 격하시킨 인물들은 이귀, 김자점, 이괄, 최명길 등 서인 세력이었다.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키며 당시의 집권 세력이었던 대북파를 축출한 후 능양군을 왕(인조)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광해를 군으로 격하시킨 후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p.153)” 인조반정 세력들이 내세운 명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대명사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광해군이 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패륜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반정에 성공하고 친명반청을 철저히 한 결과 사직이 위태로워 졌으며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에서 정권을 잡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형국이 되고 있다. 쉬운 것이 주역이라고 하지만 그 진의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 생각된다. 그 일환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주역이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예스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k******4 2020.08.08. 신고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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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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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조선의 왕들, 주역으로 앞날을 경계하다 박영규 씽크스마트/ 2020.7.10.   주역은 동양 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에는 글을 배우는 사람의 필독 도서였다. 특히 벼슬을 하고자 하는 사람과 제왕들은 거의 의무적인 공부였다.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신봉하게 되면서 국왕은 나라를 경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역을 공부하였고,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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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조선의 왕들, 주역으로 앞날을 경계하다

박영규

씽크스마트/ 2020.7.10.

 

주역은 동양 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에는 글을 배우는 사람의 필독 도서였다. 특히 벼슬을 하고자 하는 사람과 제왕들은 거의 의무적인 공부였다.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신봉하게 되면서 국왕은 나라를 경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역을 공부하였고, 선비들은 자기의 인생 공부를 위해 주역을 공부했다. 혹자는 점을 치기 위해 공부하였으나 주역을 통달하는 것은 쉽지 않아, 그 이해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는 조선시대 임금들의 치세방법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주역에 얽힌 사건들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 박영규는 서울대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 한서대 대우교수, 중부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인문학을 부탁해>,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자등 다수가 있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주역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주역을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썼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주역의 연원과 역사적 의미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고, 64괘의 핵심 메시지도 총망라되어 있다. 조선시대 군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인용한 주역의 괘사나 단사, 상사, 효사 등만 제대로 읽어도 주역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원리를 충분히 배울 수 있다.(p.7)”고 말한다. 정조를 시작으로 선조, 숙종, 영조, 세조 및 연산군을 비롯하여 16명의 군왕들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이 주역을 통해 신하들과 어떻게 소통하였으며 정치를 하는데 활용했는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은 물론이고 임진왜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선조까지도 주역에 밝은 사람이었다니 그들의 주역에 대한 이해가 천차만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익힌 주역을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이 책에서 알아 볼 수 있다.

 

주역은 형상이 변화무쌍하고 그 변화에 따라 괘의 의미도 바뀐다. 천지 만물과 인간의 길흉화복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보는 것이 주역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점괘를 뽑아서 좋지 않게 나왔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p.37)” 길은 흉으로, 흉은 길로 바뀌고 잠복해 있는 변수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흉과 화는 최대한 억제하고 길과 복은 최대한 고양시키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다. 주역은 상황이 변화되는 가능성과 원리를 보여주지만 그 상황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주역의 각 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지며 이 효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를 효사(爻辭)라고 한다. 여섯 개의 효사에는 길과 흉이 섞여 있는데 유일한 예외가 지산겸괘다. 지산겸괘는 곤괘가 위에 놓이고 간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인데 밑에서 세 번째 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효다. 따라서 이들 효 각각의 이름은 초육, 육이, 구삼, 육사, 육오, 상육이 된다고 주역의 기본적인 지식부터 설명한다.

 

숙종은 환국 정치의 달인이다. 서인의 세력이 커지면 판을 뒤집어 남인을 등용하고, 남인이 커지면 또다시 판을 뒤집어 서인을 중용했다.(p.64)” 숙종은 1689년 기사년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는 것에 반대하는 서인을 실각시킨다. 이른바 기사환국이다. 이때 송시열은 제주에 귀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약을 받는다. 그러나 숙종은 5년 후 장희재의 뇌물 사건과 장희빈의 패악을 빌미로 또다시 판을 뒤집어 서인을 중요한다. 이때 송시열의 아들 송기태는 그 옛날 자신의 부친이 효종에게 올린 상소문을 첨부해 숙종에게 탄원서를 올린다. 그러자 숙종은 송시열을 만고에 충신으로 부르면서 기사년 자신의 일 처리가 잘못되었다고 한탄한다. 이때 윤휴를 포함한 남인은 졸지에 소인으로 전락한다. 한편 수찬 이진검이 뇌풍항괘의 효사를 인용해 자신을 공격하자 같은 뇌풍항괘의 상전을 들이대며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역시 국면 전환의 달인답다. 하지만 사관이 기사의 말미에 이진검의 발언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숙종의 리더십을 은근히 비판하는 코멘트를 단 것으로 볼 때 당시 신하들 사이에는 숙종의 환국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조도 주역에 일가견이 있었다. 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조선시대 군주들 가운데 세조만큼 주역에 밝은 사람도 흔치 않다.(p.96)” 세조는 신하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면서 주역의 괘를 상황에 맞게 정확하게 인용하는가 하면 주역의 괘를 주제로 시를 짓기도 했다. 중천건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아래위로 겹쳐져 있는 괘로 모든 효과 양효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그래서 양을 상징하는 군주의 괘로 불린다. 자강불식은 주역의 효사 가운데 많이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로, 쉼 없이 돌고 도는 하늘의 운행 원리를 본받아 사시사철 부지런히 민생을 챙기는 것이 어진 임금의 도리임을 뜻한다고 주역의 괘와 효사를 설명한다.

 

연산군은 정권 초기부터 훈구대신들을 상당수 내쳤다. 그 후 젊은 사림들을 적극 기용해 그 빈자리를 메웠더라면 조정의 분위기를 일신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p.132)” 하지만 연산군은 세조나 숙종과 같은 권도를 쓸 줄 몰랐다. 훈구대신들을 내친 후 사림들까지도 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다. 군왕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정치력의 부족, 이것이 연산군을 패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때 손순효의 상소문에 주역 중지곤괘 육사의 효사에 나오는 구절 괄랑 무구무예 주머니를 묶으니 허물도 영예도 없다를 인용했다. 여기서 육사는 임금의 자리인 육오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군주를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참모를 상징한다. 군주를 보좌하는 측근 참모가 주머니를 묶는다는 것은 입을 닫는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광해를 왕에서 군으로 격하시킨 인물들은 이귀, 김자점, 이괄, 최명길 등 서인 세력이었다.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키며 당시의 집권 세력이었던 대북파를 축출한 후 능양군을 왕(인조)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광해를 군으로 격하시킨 후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p.153)” 인조반정 세력들이 내세운 명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대명사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광해군이 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패륜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반정에 성공하고 친명반청을 철저히 한 결과 사직이 위태로워 졌으며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에서 정권을 잡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형국이 되고 있다. 쉬운 것이 주역이라고 하지만 그 진의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 생각된다. 그 일환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주역이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이달의 사락 k******4 2022.12.24.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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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가 뜻을 세우면 그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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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가 뜻을 한 번 세우면 그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조선왕조 국왕들에게는 용사출척권(用捨黜陟權)이라는 고유한 권한이 있었다. 신하들은 자유롭게 쓰고, 버리고, 내치고, 나오게 할 수 있는 포괄적인 인사권이다. 왕들은 이 권한으로 정국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는데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임금이 숙종이었다. 앞서 송시열과 윤휴, 윤중 등으 대립에서 보았듯이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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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가 뜻을 한 번 세우면 그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조선왕조 국왕들에게는 용사출척권(用捨黜陟權)이라는 고유한 권한이 있었다. 신하들은 자유롭게 쓰고, 버리고, 내치고, 나오게 할 수 있는 포괄적인 인사권이다. 왕들은 이 권한으로 정국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는데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임금이 숙종이었다. 앞서 송시열과 윤휴, 윤중 등으 대립에서 보았듯이 사색당파가 본격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한 숙종 시절에는 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른 조정 신하들 간의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p.69

이진검이 뇌풍향괘의 효사를 인용해 자신을 공격하자 같은 뇌풍항괘의 상전을 들이대며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역시 국면 전환의 달인답다. 하지만 사관이 기사의 말미에 이진검의 발언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숙종의 리더십을 은근히 비판하는 코멘트를 단 것으로 볼 때 당시 신하들 사이에는 숙종의 환국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p.73

이달의 사락 k******4 2020.09.10.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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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잘못을 바로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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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잘못을 바로잡고 허물을 고친다주역은 형상이 변화무쌍하고 그 변화에 따라 괘의 의미도 바뀐다. 천지 만물과 인간의 길흉화복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보는 것이 주역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점괘를 뽑아서 좋지 않게 나왔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길은 흉으로, 흉은 길로 바뀌고 잠복해 있는 변수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흉과 화는 최대한 억제하고 길과 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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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잘못을 바로잡고 허물을 고친다

주역은 형상이 변화무쌍하고 그 변화에 따라 괘의 의미도 바뀐다. 천지 만물과 인간의 길흉화복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보는 것이 주역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점괘를 뽑아서 좋지 않게 나왔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길은 흉으로, 흉은 길로 바뀌고 잠복해 있는 변수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흉과 화는 최대한 억제하고 길과 복은 최대한 고양시키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다. 주역은 상황이 변화되는 가능성과 원리를 보여주지만 그 상황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p.37

이달의 사락 k******4 2020.09.07.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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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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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유생 윤지술은 이이명이 적성한 숙종의 지문이 편파적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이명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하지만 일개 유생이 노론의 좌장격이던 이이명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노론은 윤지술의 언사가 불손하다며 집단으로 공격했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경종은 공격이 심해지자 윤지술에게 유배를 명한다. 이에 윤지술을 옹호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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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유생 윤지술은 이이명이 적성한 숙종의 지문이 편파적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이명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하지만 일개 유생이 노론의 좌장격이던 이이명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노론은 윤지술의 언사가 불손하다며 집단으로 공격했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경종은 공격이 심해지자 윤지술에게 유배를 명한다. 이에 윤지술을 옹호하던 성균관 유생들이 집단으로 동맹휴학을 결의한 것이다. 결국 윤지술의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p.206

시국 사건의 희생자였던 조선시대 젊은 선비 윤지술은 흔들리는 운명 앞에서도 주역을 읽고 있었다. 의연히 두려워하지 않고, 사관은 백성들이 윤지술의 시신을 거두어준 장한사라는 사람의 행동을 의롭게 여기고 칭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윤지술 또한 백성들이 의롭게 여겼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p.207

 

이달의 사락 k******4 2020.09.21.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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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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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한다연산군 시절의 적폐 청산을 정권 창출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중종에게 조광조는 최적의 정치 파트너였다. 중종은 조광조에게 전권을 위임하다시피 했고 조광조는 임금의 지지를 등에 업고 거침없이 개혁을 주도했다.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조광조의 급진적 이상주의는 훈구대신들의 반발을 불렀다. 조광조가 중종반정 공신들의 위훈삭제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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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한다

연산군 시절의 적폐 청산을 정권 창출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중종에게 조광조는 최적의 정치 파트너였다. 중종은 조광조에게 전권을 위임하다시피 했고 조광조는 임금의 지지를 등에 업고 거침없이 개혁을 주도했다.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조광조의 급진적 이상주의는 훈구대신들의 반발을 불렀다. 조광조가 중종반정 공신들의 위훈삭제를 들고 나오자 남곤, 심정 등의 훈구대신들은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에 역모 혐의를 씌워 단칼에 제거했다. p.142

기묘사화로 조광조와 사림들의 개혁정치는 좌절됐다. 그 후 명종 초에 발생한 을사사화로 사림의 세력은 다시 한번 크게 위축된다. 하지만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사림이 주장하는 민본정치는 주역에서 말하는 원형이정처럼 조선의 중추적 이념으로 서서히 부리를 내려갔다. p.144

이달의 사락 k******4 2020.09.18.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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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어금니를 빼어 말리니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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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어금니를 빼어 말리니 길하다유자광은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세조에게 발탁된 지 8개월 만에 갑사에서 정 3품 당상관에 오른 것이다. 그야말로 벼락 출세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바람막이였던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입지는 흔들렸다. 유자광은 예종 때 도승지 현석규와 우승지 임사홍의 대립으로 촉발된 무술옥사 당시 승지들을 ‘너’라고 불렀다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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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어금니를 빼어 말리니 길하다

유자광은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세조에게 발탁된 지 8개월 만에 갑사에서 정 3품 당상관에 오른 것이다. 그야말로 벼락 출세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바람막이였던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입지는 흔들렸다. 유자광은 예종 때 도승지 현석규와 우승지 임사홍의 대립으로 촉발된 무술옥사 당시 승지들을 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대간들의 탄핵을 받아 동래로 유배된다. 유자광이 다시 한번 도약한 것은 연산군 때였다. 유자광은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에 역모의 숨은 뜻이 있음을 밝혀내 연산군에게 일렀고, 연산군은 이를 빌미로 김종직을 처형하고 그의 스승 김일손을 부관참시하는 등 사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무오사화의 주역으로 연산군의 신임을 얻은 유자광은 갑자사화 때도 임사홍과의 친분을 활용해 나름의 공을 세운다. 하지만 말년의 연산군이 그를 따돌리자 유자광은 다시 한번 놀라운 정치적 변신을 시도한다. 중종반정이 일어났을 때 유자광은 반정 세력에 적극 가담해 1등 공신에 책봉된다. p.138

대관들은 유자광, 임사홍을 조정에서 물리치라고 탄핵한 옛 충신들의 사례를 거울삼아 간신들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 나라에 이롭다며 중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p.140

이달의 사락 k******4 2020.09.17.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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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이 주역을 모르다니 술로 벌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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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이 주역을 모르다니 술로 벌을 받아 마땅하다정인지는 조선시대 관료들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천재다. 수학과 천문학에 특히 뛰어나 세종시대 때 역술 편찬 작업을 주도했고, 문장도 뛰어나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다방면에 뛰어나던 세종도 정인지에게 한 수 배울 정도 였다. 관운도 타고나 태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9대에 걸쳐 벼슬을 했다. 과거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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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이 주역을 모르다니 술로 벌을 받아 마땅하다

정인지는 조선시대 관료들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천재다. 수학과 천문학에 특히 뛰어나 세종시대 때 역술 편찬 작업을 주도했고, 문장도 뛰어나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다방면에 뛰어나던 세종도 정인지에게 한 수 배울 정도 였다. 관운도 타고나 태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9대에 걸쳐 벼슬을 했다. 과거시험에서 태종이 직접 장원으로 선발해 중용하기 시작했으며 세조 때에는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단종의 척살을 주장하는 등 비정한 선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엄청난 치부로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두주불사의 애주가였으며 그 때문이었는지 술로 인한 실수담이 많이 전해진다. 특히 술에 취해 세조를 라고 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p.93

 

이달의 사락 k******4 2020.09.12.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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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이루어가면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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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이루어가면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영조는 숙종과 무수리 최씨 사이에서 태어나 신분이 미천했기 때문에 노론 유력자인 김창집의 집안에 양자로 갔다. 덕분에 숙종 말년 왕위 계승 문제가 표면화되어 입지가 흔들릴 때 노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영조는 경종이 즉위한 후 노론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신임사화로 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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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이루어가면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

영조는 숙종과 무수리 최씨 사이에서 태어나 신분이 미천했기 때문에 노론 유력자인 김창집의 집안에 양자로 갔다. 덕분에 숙종 말년 왕위 계승 문제가 표면화되어 입지가 흔들릴 때 노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영조는 경종이 즉위한 후 노론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신임사화로 노론이 대거 숙청 될 당시 세제였던 영조의 처지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p.77

주역의 각 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지며 이 효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를 효사(爻辭)라고 한다. 여섯 개의 효사에는 길과 흉이 섞여 있는데 유일한 예외가 지산겸괘다. 지산겸괘는 곤괘가 위에 놓이고 간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인데 밑에서 세 번째 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효다. 따라서 이들 효 각각의 이름은 초육, 육이, 구삼, 육사, 육오, 상육이 된다. p.88

 

이달의 사락 k******4 2020.09.11.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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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면 반드시 후회하니 치우치지 말고 기울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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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면 반드시 후회하니 치우치지 말고 기울지 말라광해를 왕에서 군으로 격하시킨 인물들은 이귀, 김자점, 이괄, 최명길 등 서인 세력이었다.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며 당시의 집권 세력이었던 대북파를 축출한 후 능양군을 왕(인조)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광해를 군으로 격하시킨 후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 인조반정 세력들이 내세운 명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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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면 반드시 후회하니 치우치지 말고 기울지 말라

광해를 왕에서 군으로 격하시킨 인물들은 이귀, 김자점, 이괄, 최명길 등 서인 세력이었다.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며 당시의 집권 세력이었던 대북파를 축출한 후 능양군을 왕(인조)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광해를 군으로 격하시킨 후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 인조반정 세력들이 내세운 명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대명사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광해군이 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패륜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p.153

광해군 사후 서인 세력들이 주도해서 편찬한 신록광해군 일기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읽는 역사서에는 광해군이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균형을 상실한 역사다.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보면 광해군은 지금이라도 군이 아니라 왕(광종)으로 고치는 것이 옳다. p.154

 

이달의 사락 k******4 2020.09.19. 신고 공감 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