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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과 시간에 대해
"여성의 삶과 시간에 대해" 내용보기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여자의 마음을 묘사할 수 있는지, 여성작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6편의 단편엔 저마다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주인공들이 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없단 말인가.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다시 읽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같은 성의 삶을 바라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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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여자의 마음을 묘사할 수 있는지, 여성작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6편의 단편엔 저마다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주인공들이 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없단 말인가.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다시 읽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같은 성의 삶을 바라본다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표제작인 「숨은 눈」은 이혼한 여자의 심경을 다룬다. 결혼생활 25년의 마무리는 이혼이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진부하고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기엔 너무도 복잡했다. 이혼을 했지만 딸과의 관계는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다. 자식이란 그런 것이다. 이혼한 전 남편의 간병인이 되는 상황이라니.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랬다. 담석으로 입원한 전 남편. 사랑이라고 우겼던 여자와는 헤어졌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자신이 병상을 못 지키면 딸애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 이 모든 행동의 원인은 딸을 위한 것이었다. 이상한 건 이혼을 한 후 어디선가 전 남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도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CCTV, 심지어 관리사무소의 수족관 속 물고기의 시선까지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잠깐 볼일 일이 있어 집을 나온 후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벨을 눌렀지만 기척이 없었다. 딸이 아직 출근하지 전인데, 혹시 이상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두려움이 몰려온다. 딸을 구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딸의 방 유리창을 깨고 만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집을 잘못 찾았다는 사실을. 딸애는 일을 하러 갔고 여전히 비밀번호는 생각나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자는 근처 백화점을 배회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 싸움을 하는 옆집 여자를 만났다. 좀 전에도 그 집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났다. 백화점에서 여자는 옷을 사려는 옆집 여자에게 조언을 한다. 어떤 옷이 실용적이고 어떤 옷이 더 잘 어울리는지. 남의 집 유리를 깼다는 사실은 잊은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떠오른 비밀번호는 결혼기념일이었다.


 여자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삶.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을 꿈꾸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때로 이혼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을 참아내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정리할 수도 없다. 이혼을 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달의 노래」에서 그런 감정을 만난다. 이 단편에서도 이혼 사유는 남편이 외도였다. 이혼한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한다. 아빠는 오빠의 학비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온다. 아빠가 올 때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정작 아들인 오빠는 그런 아빠를 보려 하지 않는다. 아빠가 다녀갈 때마다 술에 취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운 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화자인 나는 아빠 몰래 아빠가 그 여자와 운영하는 식당을 훔쳐본다. “아빠는 숯불에 손을 쬐며 달을 보았다. 나는 같은 피를 나눈 사람끼리 느낄 수 있는 육감으로 숯불을 피우는 아빠의 외로움을 알아챘다.”란 문장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위기를 견디고 이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다른 삶을 그려보았다. 장성한 남매를 둔 노년의 부부의 모습을 말이다.


 산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무조건 참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에 뜬 그림자를 보다』속 화자는 많은 시간을 참았다. 도박에 빠진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살던 집을 날리고 경제적으로 무너졌지만 아이에게 아빠를 빼앗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빠이기를 포기한 사람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집을 떠난 건 그였다. 이혼을 선택했다.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간병인을 시작했다. 경력이 단절된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엄마였기에 아이를 버리고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없었다. 주말마다 만나는 아이와의 시간은 간절했고 이혼 사실을 모르는 어머니가 묻는 아들의 근황에 대해 답하기는 어려웠다. 아들이 소식을 찾는 애달픈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지만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병들고 아픈 삶을 돌보는 간병인의 시간은 단조롭고 고단했다. 답답한 무언가를 털어낼 수 있는 게 필요했다. 환자를 돌보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된 말문 트기 게임을 주인공 스스로에게 대입한다. 깊은 우물 속에 담긴 응어리진 말을 꺼내는 일,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남자였다. 치매에 말이 통하지 않는 환자가 아닌 또래의 젊은 여자 환자를 돌보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가만가만 몸을 살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를 둔 같은 엄마로 그녀가 더욱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남자와는 더욱 상처 나 기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돼버렸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 여자의 시선만이 아닌 남자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들. 그들의 서로의 감정을 달래고 나누는 형태는 다른 이름의 외도일까. 소설을 읽을수록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느 하나 행복한 주인공이 없다. 마치 삶이 그런 걸 몰랐냐고 묻는 듯하다.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내 마음의 파랑」속 엄마의 마음, 미혼모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딸의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그런 딸이 위탁모를 택했으니 그건 운명이었을까. 어린 딸을 두고 떠날 수 없는 심경을 고스란히 전하는 「섬」속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오직 자식을 향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본연의 ‘나’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삶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비혼 주의, 다양한 구성원의 가족,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 하지만 엄마가 되지 않는 이상,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책, 영화, 드라마 그런 것들로 체득할 수 없다. 모성을 자극한다는 게 아니라 삶이 그렇다는 말이다. 경험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 섣불리 누군가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물을 숨겼다. 복잡한 감정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r*********s 2020.12.1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