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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를 기초로 한 책이 다른 나라에 번역되어 출판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혹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만약 우리나라 역사를 기초로 한 소설책이 번역되어 출판된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에스토니아(이름도 생소하기만 하다)의 조용하고 가난한 마을에 홀로 사는 노파 알리데. 그녀 앞에 어느 날, 상처투성이인 젊은 여자가 찾아온다. 남편과 여행 중 길을 잃었다는 젊은 여자의 이름은 자라. 자라의 말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알리데는 자라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라를 집안에 있도록 허락한 알리데는 그녀가 자신의 숨기고픈 과거와 맞닿아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 첫눈에 반해 버린 사랑이 언니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은 형부가 된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된 알리데는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살아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알리데. 자라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려 소련에서 기회의 땅 독일이 정착했지만 잔인한 포주로 인해 꿈도 없이 창녀로 살아왔다. 알리데는 왜 자라에게 끌리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자라는 왜 알리데를 찾아간 것일까? 그 둘은 어떤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이 책을 계기로 에스토니아란 나라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소련의 무력에 반해 반 폭력 독립운동을 추진해 발트해 민족과 함께 1991년 12월 소련연방을 해체 시키는 기반을 이루었고 독립이 되었으며 우리나라 교민은 6명이라고 한다. 러시아 옆, 핀란드 아래에 위치한 이 나라를 지구본에서 찾아보았다. 지구본에서 우리나라만큼 이나 작게 표시된 나라. 그래서 생소하고, 그래서 조금은 남의 나라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기 위해 혹은 사랑을 얻기 위해 이념쯤은 개나 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어 아팠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 사랑을 위해, 사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그를 오로지 내 소유로 만들기 위해 거짓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만 바라 볼 수 있다면.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고, 나를 비웃기까지 한다.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던 공산당의 기세등등함이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알리데를 기다린다. 그리고 알리데 앞에 자라가 나타난다. 그녀가 누구인지 안 그 순간 알리데는 자라를 통해 속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읽는 동안 유쾌하지 않았고, 몰입감도 크지 않았다. 아마도 내 나라 역사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구상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를 나라의 이야기가 반가울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만약 우리나라의 독립 이야기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가 읽는다면 나와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변해 버렸다. 우리의 말을 쓰고, 우리의 글을 읽고, 우리의 책을 읽는다는 것. 만약 그때 우리의 조상들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내 주고, 순응하며 살았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을 것이다. “기억해라 자라. 넌 러시아 여자가 아니야. 넌 에스토니아 여자야. 또 시장에서 씨앗을 사서 내게 보낼 수도 있잖니. 내 창틀에 에스토니아 꽃을 피우고 싶단다.” (114) 평범하지만 그 평범한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순응하고 그 나라에 꼬리를 내렸다면. 오늘 나는 한국의 여인이라는 사실에, 내 창틀에, 내 집 앞마당에 우리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가족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알리데. 자신의 할머니에게 배운 얘기, 크리스마스이브에 자면서 들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자기가 들으면서 자란 이야기들을 하나도 할 수가 없었다. 자기와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가 듣고 자란 이야기들은 하나도. 알리데는 자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랄 때 들었던 이야기는 해주고 싶었다. (260)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나라에 배신했던, 언니의 남자를 사랑했던 행동들이 알려지니까.
일제시대. 친일을 한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살아야겠기에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시대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지난 나를 이야기 할 수 없이 늙어간다는 건 왠지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읽고 나서 여운이 많이 남은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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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보아주기를 원했던 것이 그렇게 큰 죄일까? 평생을 가슴에 품은 남자를 이제 묻으려 한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지역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게 사람이다. 더군다나 내일의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전쟁중에는 이런 마음이 더 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전부터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북유럽 나라들의 작품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추방' 역시 산타클로스의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 작가의 작품으로 이 작품이 부산축제영화제 초청작의 원작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스토리는 두 자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 남자와 그녀들, 그리고 한 여자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의 시간 속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할머니 알리데 트루는 자신의 집 마당에 누워 있는 물체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진흙투성이에 지저분하지만 나름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는 여인은 남편과 자동차 여행중이였다고 털어 놓는다.
낯선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알리데는 젊은 여인 자라의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그녀를 우선 자신의 집에 한동안 머물게 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수시로 밖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라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그녀가 에스토니아에 오기까지의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자라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원치 않는 끔찍한 시간을 살아야 했던 자라의 모습이 안타깝게 전개된다.
오래전 과거의 시간속 한 남자 한스가 알리데의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봐주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그녀의 바램이 이루어지는 순간 눈부신 햇살이 그만 알리데의 언니 잉겔에게 쏟아지고 그 모습은 한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자연스럽게 잉겔과 한스이 결혼을 하지만 행복한 그들의 모습은 알리데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알리데가 순간적으로 먹은 나쁜 마음도 미처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잉겔이 임신을 하게 되고....
정치적 신념이 다른 한스가 전쟁통에 위험에 빠질까봐 자매는 한스를 숨긴다. 공포의 고문 시간도 무사히 잘 견디었다고 생각했지만 알리데가 자신을 도와줄 남자로 선택한 인물로 인해 그만 언니 잉겔과 조카는 멀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쫓겨나게 된다. 언니가 떠난 공간에서 언니의 남편 한스를 돌보고 싶었던 알리데... 안전을 위해 선택한 남편 몰래 형부 한스를 위해 알리데의 위험을 무릎쓴 행동이 이어진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엇갈린 사랑을 향한 한 여인의 무모하리 만큼 안타까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집착으로 변해간다. 자신보다 무엇이든 잘하고 완벽한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섞인 감정...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이런 감정들이 있기에 알리데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자라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라를 이용해서 욕심을 채웠던 인물들로 인해 자라가 누구인지... 그녀가 왜 알리데를 찾아왔는지 마침내 들어나기 시작하는데....
읽으면서 드라마적 요소가 가득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사랑, 시기와 질투, 배신이 섞인 이야기는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구나 살기 위해 몸부름쳤던 전쟁통 한가운데 끔찍하고 무서운 상황에서 자신들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행동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 어떤 남성보다 강하다는 느낌을 준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스토리를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지 궁금해졌다. '추방'은 스릴러 소설을 통해서 주로 접했던 북유럽 소설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전쟁 속에서 살기위해 몸부름쳤던 한 여인의 가슴속 깊이 간직한 은밀한 이야기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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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이야기 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든다. 두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한 사랑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좀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한 나라의 슬픈 역사 이야기, 그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념적인 갈등, 폭력, 감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뭐, 사랑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이 책은 정말이지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배경이 들어가면서 이 책은 다소 무거운 책이 되어 버렸다. 조금은 읽기가 힘든 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편하게 사랑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사랑이야기만 간단하게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자매는 반 소비에트 운동가인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다. 그 남자는 자매 중 언니를 선택하고 선택받지 못한 동생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점점 사랑만 깊어질 뿐이다. 그러던 중 형부가 수배를 당하게 되자 동생은 형부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공산주의자가 되어 언니와 조카를 소련으로 추방시키고 형부를 숨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동생 앞에 조카의 딸이 나타난다. 수명적이고 필연적인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그동한 꽁꽁 숨겨왔던 동생의 이기적인 사랑이 어떤 불행을 가졌왔는지 보여준다. 동생의 그릇된 사랑이, 집착이. 지신의 행동이 어떤 결말을 가져왔는지 말이다.
책을 읽고 아니 읽으면서 쭉 생각한 것은 나도 여자지만, 여자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사랑에 눈이 먼 여자. 아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는 자신의 사랑받에 모르는 이기주의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한번 알게 되었다.
그녀가 선택한 행동이 역사적 현실과 맞물려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의 사랑은 그녀가 그렇게 사랑한 한스에게 조차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아니 이해도 받지 못했다.
동생인 알리데의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 그녀의 사랑은 집착을 넘어 끔찍한 공포를 선사란 영화 <미저리>속의 여자처럼 보일 뿐이다. 그녀의 선택이 한 가정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 그리고 그녀의 삶 또한 얼마나 불행했는지 보여 줄 뿐이다. 그래서 일까 알리데가 한없이 불쌍해 보였다. 아니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불쌍해 보였다.
추방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읽으면서 사랑이야기에 가슴이 설레이기 보다는 가슴이 막막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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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은 꽤 멋진 문구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책의 배경은 에스토니아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책은 꽤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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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웬 역사 이야기?
좀 뜬금없긴 하지만 잠깐 역사 이야기부터 좀 해볼게요 20세기 유럽의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합니다.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나치즘 파시즘 맑시즘 코뮤니즘 등 이데올로기의 변화가 있었구요. 국가와 민족 간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고 연합이 해체되고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 계속되었죠. 인문학, 과학, 예술의 발전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그 피해와 희생이 너무나도 컸지요.
20세기 유럽, 그 처절했던 시대
그 시공간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전쟁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현실같지도 않은 참상 앞에서 절망했을 겁니다. 시체들과 폐허, 비인간성과 굶주림으로 가득했던 전쟁이란 것은 무얼 상상하든 그보다 더 끔찍했을 겁니다. 이데올로기의 변화 앞에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누군가에 의한 감시와 억압이 끊이지 않았을 겁니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사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살기위한 배신과 고발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던 그 때엔 아마 주위의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겠지요. 재앙과도 같이 들이닥쳤던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었던가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대피할까요? 그마저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원전사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했고 그 영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피해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역사 속 개인의 삶이란
듣기만해도 녹록치 않아 보이는 이 20세기 유럽의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땠을까 잠시 생각을 해 봅니다. 굵직굵직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은 신경을 쓰기엔 좀 하찮은 것일 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건들과 극한에 가까운 현실이 그 땅에 살았던 개개인의 삶과 만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20세기 유럽의 역사적 사건들과 개인의 삶이 만나는 지점에서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대단한 작품이며, 명작의 반열에 든 경우도 많고, 인기도 많으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는 점일 겁니다. 그 처절했던 환경 속에서 살아간 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겠죠. 쉰들러 리스트, 블랙북, 타인의 삶,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등이 머리속에서 바로 떠오르네요
- 존재의 거짓말 감상 링크! : http://blog.naver.com/opusdog/130174084859
소피 옥사넨의 <추방>도 이러한 맥락에서 봐도 좋을 작품입니다. 소설은 독립국가에서 나치 체제로, 그뒤를 이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바뀌는 에스토니아를 배경으로 그 속에 살았던 어느 가족의 삶을 그립니다. 자신보다 언니를 선택했던 남자,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평생을 집에 숨어 살았던 형부, 그런 형부를 차지 하기 위해 저지른 어리석은 선택, 배신자로서의 이중생활, 잊고 살았던 언니의 재등장, 그리고 속죄로 줄거리를 요약해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 추리소설, 미스테리 소설 등의 수식어는 좀 잘 맞진 않는다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은 페이크 다큐이다 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만.... 그건 너무 오버인가요?
추천받아 마땅한 책
화려한 수상경력이 돋보이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럴만하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가 개인에게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역사가 현재에 어떻게 침투 되어 있는지에 대한 묘사한다' 라는 평가는 이 책의 모든 걸 보여준다고 해도 좋은 평가네요. 물론, 이야기 의 재미도 보장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네요.
추방? 숙청? purge?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습니다. <숙청> 이란 영화인데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012년 선보였던 영화라고 하네요. 근데 왜 제목이 추방, 숙청이죠? 책을 다 읽고 나서보니 추방, 숙청 보다는 '속죄' 나 '정화' 가 더 적절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작가도 그러한 의미에서 작가도 puhdistus, purge 를 제목으로 정한 것 같은데요. 조금더 생각해 볼 문제 입니다. 여담이지만, '추방' 이란 제목이 사실 좀더 자극적이긴 해요. '속죄'나 '정화'보다는 쪼금 더 쇼킹 하잖아요.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생각이 많이나는 다른 책이 있어요 앞서 잠깐 언급했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입니다. 제가 읽은 책 중 가장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책이기도 하구요. 강력 추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는 영화 '타인의 삶'이 떠오르더라구요. 이 역시 강력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모든 사정을 점차 밝혀지는 그 순간에, 아, 왜 그랬을까 주인공은 왜 그랬던걸까 하는 안타까움에 어쩌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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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삶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파괴된 삶은 온전하게 복구되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때문에 전쟁을 소재로 다룬 소설은 언제나 가혹하다. 소피 옥사넨의 <추방> 역시 그러하다. 정치적 이념으로 발생한 전쟁에 휩쓸린 처참한 삶을 보여준다.
소설은 1930년부터 1990년대까지 소련과 독일의 지배를 받은 에스토니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역사 속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리데와 자라라는 두 명의 화자를 내세워 들려준다.
1992년 남편이 죽고 혼자 사는 알리데는 집 앞에서 피투성이의 낯선 젊은 여자 자라를 발견한다. 통제 받는 생활 속 감시자가 아닐까 의심하지만 자라를 돌본다. 자라는 알리데에게 남편과 여행 중 길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외할머니와 엄마를 소련에 남겨 두고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났지만 창녀로 살아야 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외할머니가 준 단 한 장의 사진 속 이모 할머니 알리데를 찾아온 것이다.
알리데는 자라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모른 척한다. 자라를 통해 먼 기억 속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형부 한스에게 언니 잉겔의 소식을 거짓으로 전하며 그를 속였던 것이다. 그렇다. 자신이 사랑한 한스를 빼앗은 여자, 잉겔이 있었다. 한스는 에스토니아의 자유를 위해, 이념을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알리데는 어떻게 해서든 한스를 구해야 했다. 숱한 고문을 견디며 공산주의자가 되어 언니 잉겔과 조카 린다를 소련으로 추방한다. 한스를 숨겨두고 그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스는 오직 잉겔 뿐이다.
자라는 외할머니 잉겔에게 에스토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곳에 땅과 숲에 대해, 그곳에 남겨둔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들었다. 포주의 눈을 피해 탈출한 자라가 에스토니아를 선택한 건 운명적 끌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리데는 잉겔을 부정한다.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일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라는 수십 년 전 잉겔과 알리데가 마주했을 부엌, 집 안 곳곳에서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자매가 함께 했을 평범한 일상을 말이다.
‘자라는 통을 더듬어 보았다. 냄새를 맡아 보았다. 가장자리에 뭔가 말라붙어 있었다. 이스트 반죽? 할머니가 만든 빵을 만들었던 그 반죽일까? 이틀하고 반나절,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반죽을 치대기 전 천을 덮어 뒷방에서 이틀하고 반나절 숙성한다. 반죽이 익어 가며 빵 냄새가 방 안을 감돌게 되지. 그러다 사흘째가 되면 반죽을 치댈 때가 된 거야. 할머니는 땀 맺힌 이마로 반죽을 주무르고 꼬고 쿵쿵 쳤겠지. 이 먼지에 덮인 마른 반죽은 수십 년 동안 쓰이지 않았으리라.’ 272쪽
알리데는 이념이나 정치를 알지 못했다. 다만, 한 남자 한스를 원했을 뿐이다. 평생 잉겔과 린다를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알리데에게 자라는 잉겔이었고 한스였을 것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라를 지켜야 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구성이지만 쉽게 읽히거나 이해되는 소설이 아니다. 알리데의 간절한 사랑과 기구한 운명이 안타깝다. 알리데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이다. 더 이상 이념의 대립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삶이 붕괴되지 않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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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을 수 있는 은행나무 출판사의 작품인데다가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북유럽 소설이라 아주 많이 끌렸던 작품이다.
핀란드인 아버지와 에스토니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머니 나라에 대한 관심이 꽤나 높은 듯 하다. 첫 작품도 핀란드로 이민 온 에스토니아 여인의 삶이 주 내용이었는데, 이번 작품도 에스토니아의 역사를 바탕으로 두 여인의 삶과 비극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 애증, 질투, 배신 이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역사의 흐름을 타고 먼 훗날까지 이어진다.
쉽게 넘어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웬지 묵직하고 지금까지 읽었던 북유럽 소설(그래봤자 스릴러 물에 불과하지만)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형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질투로 번져가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집착이라는 감정으로 바뀌게 되면서, 결국 한 가족의 불행으로 치닫게 된다.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조절하기도 힘든 감정이 사랑이고, 또한 바로 곁에서 매일 바라봐야만 하는 존재에 대한 감정은 쉽게 잊혀지기도 힘들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질투를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선에서 끝났어야 했는데..
결국에는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한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을..문득, 전쟁이 배경이 아니었다면 형부에 대한 알리데의 사랑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렀을까 궁금해진다. 이러한 상황이 알리데를 끔찍한 집착으로까지 몰고 간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역사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읽으니 이 작품이 훨씬 더 리얼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이 고문당하는 장면은 특히나..
원작의 제목인 '추방'보다 영화제목인 '숙청' 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온다. 확실히, 이런 내용은 영화로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데 평도 꽤 좋아서 기대된다. 작품 속 알리데가 특히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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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라 선뜻 선택하기가 곤란했지만, 쉽게 접할수 없는 핀란드 문학이라는 점과 요즘 핀란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작가의 작품인데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숙청>의 원작이고 은행나무에 서 출간된 책이라는 점에 믿고 읽게 되었다. 표지그림에서 알수 있듯이 한여자가 가방을 든 채로 고개를 떨구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이 모습이 아마 책속 주인공인 알리데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의 한적한 농장에 외롭게 살고 있는 알리데는 몰골이 말이 아닌 미지의 젊은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는 남편과 자동차 여행을 하다 길을 잃었다고 변명을 하나, 그녀의 말에 신빙성은 없어보인다. 뭔가 이끌림이 있어서일까, 아무튼 알리데는 자라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바로 자신의 과거 치명적인 실수를 되살리게 하는 단추가 된다. 알리데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언니와 결혼함으로써 형부로 맞이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화살표는 절대로 원만하게 순탄하게 정해지는 것이 아님을 또다시 보여준다. 알리데는 사랑을 지키고자, 한스를 자신의 사람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하에 공산주의자가 된다. 어떤 이념이나 이상이 있었던것도 아닌 여자가 공산주의가 됨으로써 받아야 하는 충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언니도 내버린채 한스를 향한 사랑만을 갈구했던 알리데는 잘못된 사랑에만 집착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도 못했고, 자신의 마음쓰임이 상대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질수도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알리데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남자이자 형부인 한스에게는 오로지 잉겔이라는 여자밖에 없다. 그것을 지켜보고 깨달아야 하는 알리데의 인생도 참 안쓰럽기는 매한가지다. 이와 달리 자라는 자신이 꿈꾸는 황금빛 미래를 위해 가족을 등지고 독일로 왔지만 결국에는 매춘부로 살아야 했고 그 바닥인생을 전전하다 외할머니가 건네줬던 단한장의 사진을 근거로 알리데를 찾아온것이다. 참 운명은 두사람을 예측할수 없었던 시점의 공간에서 마주하게 한다. 알리데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알기에 이번에는 어떻게든 자라를 지켜내고 싶었다. 그리고 각자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두여자가 서로의 입장을 들여다보며 결국은 끈끈한 애정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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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유럽 소설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 책은 핀란드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핀란디아 문학상과 프랑스의 FNAC 문학상과 프리 페미나 에트랑제 상을 수상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숙청] 원작 소설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많은 화제가 된 작품이다. '추방'이라는 제목과 표지속 한 여인이 가방을 들고 괴로워하는 표정이 묘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 소설 속에 익숙하지 않은 에스토니아가 등장할까 싶었더니 저자는 핀란드인 아버지와 에스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녀가 2003년 핀란드로 이민온 에스토니아 여인의 삶을 그린 《스탈린의 소》라는 첫소설로 문단에 등장한 것을 보면 그녀의 삶에서 어머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책 표지속의 여인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괴로워보이고, 동시에 아픔을 느끼게 하는데 책 내용을 읽다보면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930년부터 1990년까지 60년간 소련과 독일 다시 소련의 정렴을 받았던 에스토니아의 역사가 묻어나는 소설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을때 우리나라 여성들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남자들과는 또다른 강제징집을 당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것 같다.
소설 속 이야기는 1992년 에스토니아 래네마에서 살고 있는 알리데의 집에 의문의 낯선 자라라는 여자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자라는 남편과 여행을 하던 중 길을 잃었다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사실은 알리데를 찾아 온 것이다. 돈을 벌러 독일에 갔지만 결국 창녀가 되어야만 했던 자라가 이모할머니인 알리데를 찾아 온 것이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던 자라에게서 알리데는 옛날 형수 한스를 좋아했던 추억과 그로인해 공산주의자가 되어서라도 한스를 지키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외할머니 잉겔은 알리데에겐 한스의 부인이자 언니였고, 자라에게 에스토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렇기에 자라는 죽음을 무릅쓰고 에스토니아의 알리데를 찾아 왔던 것이다.
자신의 집착과도 같은 사랑에 한스는 알리데 자신을 증오했고, 추방된 언니와 조카를 그리워 했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조카의 딸인 자라의 모습을 보면서 알리데는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며 괴로웠을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자라를 지켜냄으로써 그 잘못에 대한 속죄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는 떠올릴수가 없었다. 오히려 에스토니아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졌다. 정확히 어디쯤에 위치에 있는지도 몰랐던 나라의 한 여인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그 나라로 돌아 오게 된 한 여인이 경험한 일들이 안타까움 이상의 감정을 자아내게 했던 소설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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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세계지도를 펼쳐보고 어디쯤인가 찾아보았다. 1917년 에스토니아 공화국으로 독립했으나 핀란드와 영국의 지원을 받아 소련과 휴전조약을 맺었다. 1940년 공산당이 승리하여 구소련에 가입했다가 잠시 독일이 점령하고 다시 독일의 패망으로 구소련에 복귀했다. 1991년 구소련 보수파의 쿠테타 발생으로 완전독립을 선언했다. 갑자기 무슨 세계사 공부인가 싶을 것이다. <추방>이라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고,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그런데 궁금해졌다. 왜?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에스토니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세 명의 여인이 나온다. 잉겔과 알리데 그리고 자라.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여자들의 삶은 불안한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자가 자매라는 사실은 이미 불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보일 리 없다. 사랑때문에 가슴 아픈 여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한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비극이 만들어낸 삶이다. 남자들에게 성적 노리개가 된 여자는 자신이 꿈꾸는 삶을 위해 집을 나섰지만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를 잘 모르지만 주변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버텨온 역사가 어쩐지 세 여인의 삶과 겹쳐지는 것 같다. 과거의 단편적인 사건들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비극은 존재하는 것 같다. 왜 이 소설이 핀란드 베스트셀러 1위이고, 핀란디아 문학상 수상을 했는지는 알 것 같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소설의 진정한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에스토니아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강렬한 로맨스와 오싹한 서스펜스"는 기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느낌의 소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강렬하거나 자극적인 느낌보다는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운명의 굴레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소설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는 순간은 더 극적인 것 같다. 잉겔과 린다가 러시아로 떠난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추방...... 잉겔은 몰랐던 것 같다. 어떻게 자신이 추방되었는지를. 러시아로 추방된 잉겔과 린다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잉겔의 손녀딸 자라는 어떻게 밑바닥으로 전락하게 된 것일까? 알리데는 철저하게 현실주의자로 살면서 행복했을까? 잉겔과 알리데가 서로 헤어진 이후의 시간이 싹뚝 잘려나간채 다음 세대의 자라가 등장한 것은 굉장히 뜻밖이다. 운명적인 연결고리는 좋지만 서로에게 비어있는 시간들이 추방이라는 단어를 더욱 또렷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특히 자라는 너무나 처참한 상황을 자신만의 의지로 버텨내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 자라의 불행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마치 알리데의 숨기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처럼 그냥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자라에게는 묻을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벗어나야 할 현실이기에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라는 자신의 모든 불행을 나타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자라는 다른 곳에 있다고. 그리고 할머니가 남겨 준 사진 한 장만으로 알리데를 찾아 나선다. 잉겔과 알리데의 이별 이후의 삶은 추방과 단절이지만 잉게의 손녀딸 자라가 알리데를 만나는 순간 단절되었던 그들의 운명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사회는 그들을 다른 식으로 분류하고 관리한다. 불순한 민족주의 범죄자들. 인간은 사회가 만든 틀에 갇혀 본연의 인간다움을 드러낼 자유조차 없다. 에스토니아에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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