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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 버튼 : 문명을 거부한 소년 실화를 동화로 만들었다. 1830년대에 남미의 작은 섬에 살던 소년을 영국의 신사들이 그들의 나라로 데리고 갔다. 물론 납치는 아니다. 소년은 약 3년간 영국 상류 사회의 문화를 배웠다. 3년간 많은 것을 배웠다. 영국인들은 그를 다시 그가 살던 땅으로 돌려 보냈다. 자신들의 문명이 원시 부족들에게 전파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대략 이런 내용의 실화를 동화로 그대로 옮겼다. 모든 그림은 판화 기법을 이용하여 제작된 것 같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줄줄 외우던 판화기법 중 실크스크린 기법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영국 남자와 여자를 무수히 많이 찍어 내고, 오직 제미 버튼만은 자몽색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군중 속의 고독 같은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오직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주인공으로 보여진다. 모든 이야기와 글들은 한장에 몇 줄이 되지 않는다.매우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화풍을 갖고 있다. 2명의 화가(일러스트레이터역도 포함)들의 공동 작품이어서 그런 것인지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이 교차로 나타나고 그림의 원근이 달라질 때 스타일도 바뀐다. 이런 개성있지만 뭔가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내 아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했다. 아니는 그냥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성급하게 무언가 질문하기 보다 그냥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 같다. 무엇을 생각한 걸까? 이런 호기심이 들었을 때, 아들이 제일 먼저 던진 질문이다. “왜 제미 버튼은 키가 작고 혼자만 자몽 색의 피부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왜 영국에 머물고 얼마 안되어 수염이 생겼어요?”라면서 2~3개의 질문을 던진다. “키가 작은 것은 남미의 키 작은 부족 사람이라 그런 것 같고, 자몽 색의 피부도 늘 옷을 벗고 뜨거운 태양 아래 살아서 빨게진 것 같애. 수염은 성인 남자가 되고 싶어 그냥 부쳤거나 사실은 수염이 날만큼 나이가 많았던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식의 대답을 했다. 그런데, 질문을 받고 생각하는 가운데 제미 버튼을 소년으로 이해한 것은 이 책의 작가와 당시 영국인들의 눈에 비친 제미 버튼의 키와 외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 부족민을 보면서 성인 영국 남자와 달라 어린 소년으로 오해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이는 한참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정작 정글북이 생각난다는 예상 밖의 이야기로 나와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가 영국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다가 돌아와서는 그저 예전처럼 돌아간 것일까 하고 궁금했다. 누군가가 조선시대에 살던 나를 데리고 영국에 갔다면 나는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일단은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동화되고 돌아와서도 그들 문화를 전달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제미 버튼은 그냥 3년간 다른 것을 경험했지만 그저 돌아왔고 그후로 이전과 같이 맨몸에 그들 말을 하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아들은 덤덤히 그냥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어느새 나는 3년이란 시간을 아까워서 버리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게 되었다. 이전 것을 보수라며 새로운 것만을 쫓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오늘 밤은 제미 버튼처럼 하늘의 별과 달을 쳐다볼까 싶다. 그냥 그렇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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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7 ‘야만스러운 원시인’한테 ‘진보 문명’ 가르치기 ― 제미 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 엘릭스 바즐레이 글 제니퍼 우만·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다섯수레 펴냄, 2013.6.25. 12000원 그림책 《제미 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다섯수레,2013)은 1830∼1832년에 있던 일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무렵 영국에서는 비글호라는 배가 남미로 떠났고, 남미 끝자락에 있는 티에라델푸에고라는 섬에 닿았으며, 이때에 ‘영국 선원’은 ‘섬사람’을 ‘야만스러운 원시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영국 선원은 이곳 섬사람 가운데 ‘오룬델리코’라는 아이를 영국으로 데려가서 ‘영국 신사’로 키우기로 합니다. 이 아이 어버이한테 진주로 빚은 단추를 주고 아이를 데려가요.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이 아이를 ‘제미 버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섬마을 아이는 영국에서 영국 상류사회 교육을 받았고 1832년에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해요. 자, 섬마을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국에서 ‘영국 상류사회 교육’을 받아 ‘영국 신사’가 되도록 이태 남짓 이것저것 배운 아이는 고향 섬마을로 돌아가서 무엇을 했을까요? 먼 옛날, 아주 먼 섬에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밤이면 섬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로 올라가 별을 보았습니다. 파도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 건너편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2쪽)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다니지 않습니다. 큰아이는 여덟 살을 살며 학교도 학원도 발을 한 차례조차 디디지 않습니다. 학교나 학원을 안 다니는 우리 집 두 아이는 ‘학교 사회’나 ‘여느 사회’ 굴레를 쓸 일이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우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습니다. 신문도 잡지도 따로 보지 않으며, 인터넷으로 퍼지는 온갖 정치 얘기나 사회 얘기나 경제 얘기를 듣지 않고, 스포츠 얘기나 연예인 얘기도 듣지 않아요. 우리 집 아이뿐 아니라 나도 요즈음 연예인이나 가수 이름을 하나도 모릅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시골사람으로서 늘 고무신을 신습니다. 우리 마을 할매와 할배도 늘 고무신을 신지만, 읍내로 마실을 가실 적에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구두를 신으셔요. 그래서 우리 식구는 마을 어르신을 읍내에서 뵐 적에는 좀처럼 못 알아봅니다. 마을에서 뵐 적하고 차림새나 입성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시골 어르신은 마을이나 면이나 읍에서도 으레 시골말을 씁니다. 나이가 젋은 시골 어른은 마을에서는 시골말을 써도 면이나 읍이나 도시로 나가면 시골말이 아닌 표준말로 바꾸어서 쓰려고 합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나 푸름이는 시골에서도 시골말을 잘 안 쓰려 하고, 학교에서는 으레 서울 표준말을 쓸 뿐 아니라, 시골을 떠나서 다른 고장으로 가면 시골말을 꽁꽁 가두고 서울 표준말을 ‘얌전히’ 쓰려고 애씁니다. 방문객들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자기들 나라로 소년을 초대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 말을 배우고 발달된 문명 세계를 경험해 보렴.” (6쪽) 그림책 《제미 버튼》에 나오는 ‘제미 버튼’은 섬마을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나가 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이러한 꿈대로 섬마을 아닌 먼먼 곳으로 배를 타고 갈 수 있어요. 섬마을에서는 ‘영국사람이 말하는 옷’을 입지 않고 살았으나, 배에서 내려 영국에 닿으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양복’이라 일컫는 옷을 점잖게 빼입고 돌아다녀요. 섬마을 아이 제미 버튼은 다른 영국사람하고 똑같이 양복을 갖추어 입고 모자를 쓰고 구두를 꿰고 지팡이를 한손에 걸치기로 합니다. 영국 상류사회 사람들이 가는 극장에 가서 오페라 같은 노래도 듣고, 영국 여왕와 국왕도 만납니다. 영국사람이 쓰는 말(영국말 또는 영어)을 배우고, 영국 사회를 이모저모 둘러봅니다. 아이는 섬마을 사람다운 살빛이 차츰 사라지면서 영국사람하고 똑같은 말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삶이 됩니다. 사람들은 제미 버튼을 태양보다 밝은 빛이 있는 곳에도 데려가고, 파도 소리만큼 달콤한 음악이 있는 곳에도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보다 더 화려하게 꾸민 왕과 왕비도 있었습니다. (26∼30쪽) 학교에 안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두고 이웃에서는 ‘앞으로 사회 생활을 어떻게 시키려고 그러느냐?’ 하고 묻곤 합니다. 이때에 나는 가볍게 대꾸합니다. ‘아이가 왜 꼭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느냐?’ 하고 되묻지요. 아이가 앞으로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삶으로 가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아이한테 꿈을 심어서 꿈을 이루는 길을 스스로 슬기롭고 즐겁게 가도록 할 때에 삶이 즐거울는지, 아니면 서울에 있는 손꼽히는 대학교를 마쳐서 서울에 있는 연봉 높은 큰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을 잘 받아야 즐거운 삶이 될는지 되묻습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마음껏 뛰놀면서 흙을 밟고 구름을 노래하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가 어릴 적에 놀이가 아닌 학원 공부와 교과서 시험공부만 해야 한다면, 이 아이한테 삶이란 무엇이 될는지 넌지시 물어봅니다. 삶을 가르치는 학교라면 얼마든지 아이하고 함께 이 학교를 다닐 만하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들려주는 학교라면 얼마든지 아이하고 같이 이 학교에서 배울 만하다고 느낍니다. 꿈을 키우는 학교라면 얼마든지 아이하고 나란히 이 학교에서 오순도순 생각을 키울 만하리라 느껴요. 임금님 이름을 외거나 전쟁 발자취를 살피는 일이 ‘역사 공부’라고 느끼지 않아요. 문법을 배워야 ‘말’을 배운다고 느끼지 않아요. 사람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사람이 살아갈 길을 내다보는 눈길을 틔울 때에 비로소 공부라고 느껴요.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나무를 살뜰히 아끼며, 보금자리를 알뜰히 가꾸는 삶일 때에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거듭나는 공부라고 느껴요. 제미 버튼은 가장 높은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에 올라가 파도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람 냄새를 맡고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 저쪽을 가만히 바라보며 바다 건너 세상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속삭였습니다. “잘 자.” (42쪽) 그림책 《제미 버튼》에 나오는 아이는 1830년에 고향 섬마을을 떠난 뒤 1832년에 고향 섬마을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영국 사회에서는 이태 남짓 이 아이한테 영국말을 가르치고 영국 문화와 문명과 사회를 가르쳤으니, ‘야만스러운 원시인’ 티를 벗고, 섬마을 다른 사람들한테 ‘진보한 문명’을 퍼뜨리는 길잡이가 되겠거니 하고 여겼다고 해요. 제미 버튼은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나 고향 섬마을에 닿아서 배에서 내린 뒤, 맨 처음에 옷부터 벗어던졌다고 합니다. 이태 남짓 이 아이 몸을 감싸던 ‘영국 양복’은 가볍게 벗어던지고 맨몸(알몸)으로 돌아갔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영국말을 버리고 ‘섬마을 사람들 말’을 되찾으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진보한 영국 문화와 문명과 사회’를 퍼뜨리는 일은 한 가지조차 안 하면서, ‘야만스러운 원시인’ 모습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려 했다고 해요. 그림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문명과 문화란 무엇일까요? 야만이나 원시란 무엇일까요? 교육이란 무엇이고, 진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 곁에 있는 이웃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들려줄 적에 서로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사람’으로서 ‘슬기로운 몸짓’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고 할 만할까요? 한국 사회는 ‘진보한 문화나 문명이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아이들은 한국 어른들한테서 즐거운 삶이나 고운 사랑이나 푸른 꿈을 배울 수 있을까요? 4348.1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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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제작년에 M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이란 프로그램이 떠올랐습니다. 아마존 강을 따라 원시 부족의 형태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tv를 통해 보여지는 동안 시청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제미버튼이 살던 섬주민들을 처음 발견했을때의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처럼 그들을 미계인으로 보고 우리들의 '선진' 문명을 전파시켜야할 대상들로 여기진 않았는지요? 저는 과연 무엇이 선진화된 문명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 바로 지금 이곳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과학기술의 발달을 추동해온 자본주의라는 생활양식은 오히려 인간의 삶을 거대한 기계의 일부로 전락시켜 인간성과 각자의 개성을 오히려 말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지요. 오직 자본만이 삶에서 가장 큰 가치를 의미하고, 획일화된 삶의 모습들은 한쪽에서는 대량소비, 다른쪽에서는 대량생산을 초래하는 그 이상도 아닌 갈수록 자연과 공존할수 없는 문명이 되어가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이책 중간중간에 제미버튼이 느낀 '비슷하지만 똑같을수는 없다는 말이' 우리가 고도문명 이라고 말하는 삶에서 느껴지는 상실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책을 덮으며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단지 과학기술이 발달하는것만으로도 선진화된 문명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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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앨릭스 바즐레이 그린이 제니퍼 우만, 발레리오 비달리
인류가 배를 타고 신세계를 찾을 무렵, 유럽사람들은 아직 비문명인곳을 많이 방문했지요. 그들 눈에는 그곳 원주민들이 문명의 혜택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문명이란 무엇이고, 발전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을 통해서 원주민들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했을까요
1830년, 영국의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 끝자락의 티에라델푸에고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야만인 같은 섬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중 가장 원시적인 사람을 영국 신사로 탈바꿈 시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룬델리코라는 소년을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왔지요. 제미 버튼은 영국에서 상류사회의 방식과 기독교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832년 제미 버튼이 섬의 다른이들에게 문명을 전파해줄 것을 기대하며 티에라델푸에고로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제미 버튼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옷을 벗어 버리고 모국어를 다시 배웠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것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먼 옛날, 아주 먼 섬에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밤이면 섬에서 가장 높은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가 별을 보았습니다. 파도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 건너편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까만 밤 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발가벗은 소년. 대비되는 색상으로 소년의 자유로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듯 합니다.
어느 날 방문객들이 섬에 오고 방문객들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자기들의 나라로 소년을 초대했습니다.
발가벗은 소년은 색을 입히고, 방문객들은 똑같은 옷에 무채색으로 표현한것으로 자유로움과 정형화된것을 비교하여 표현했습니다.
방문객은 아름다운 진주로 만든 단추를 소년의 가족에게 주었습니다. "네 이름을 제미 버튼 이라고 하자."
소년의 가족에게 진주로 만든 단추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네요. 그리고 단추 하나로 그들의 요구를 관철했다는 것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제미 버튼은 바다 건너 멀리로 배를 타고 갑니다.
그곳은 나무보다 더 높은 집들이 가득했고,
소년이 이때까지 만난 동물의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미 버튼은 곧 사람들과 비슷해졌지만,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높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곧 그곳이 고향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비슷했지만 똑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미 버튼은 이제 섬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다시 바다 건너 멀리 섬으로 돌아갑니다. 제미 버튼은 섬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방문객들의 생각대로 문명을 섬사람들에게 전파 했을까요?
우리는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세계 여러곳의 자신들만이 누리고 있는 문화를 야만이라고 치부하며 비하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발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자신의 평화로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발전이 힐요할까요? 오히려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존재하는 사회만이 올바른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음을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책을 통해 배울것입니다.
앞뒤 속지의 모습을 보면 이야기의 끝을 알수 있습니다. 나무에 걸린 옷이 보이시나요? 제미 버튼이 벗어 던진 옷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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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속에 초록빛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빼곰히 내민 아이에게 무슨 사연을 안고 있을까 하고 손에 든
제미 버튼.
먼 옛날 섬 소년은 밤이면 늘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파도가 흥얼대는 소리를 들으며 별을 보며, 소년은 생각했어요.
'바다 건너편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 하고.
어느 날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온 손님들이 "우리와 함께 가서 발달된 문명 세계를 경험해 보렴" 하며 소년을 자신들의
나라로 초대했지요.
손님들은 소년의 가족들에게 진주 단추를 선물하여 소년의 이름은 ‘제미 버튼’이 됐답니다. 어둡고 거친 바다를 오래도록 나아가 낯선 육지에 닿은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돌로 지어진 집이 숲 속 나무보다 훨씬 높다니…. 갖가지 옷으로 치장한 사람들과 기기묘묘한 물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소년은 그런 광경을 처음 본지라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수많은 색깔, 소리, 옷들 때문에 제미 버튼은 벌거벗은 자신의 작은 몸이 더 작게 느껴졌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모자를 쓰고 멋진 옷을 입고 싶었지요. 하지만 제미 버튼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긴 했지만 같을 수는 없었답니다.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에 이끌려 여기저기 멋진지고 달콤한 곳에 가게되고, 왕과 왕비까지 만나지만 고향과 같을 수는
없었지요. 가끔 자신이 살던 고향 섬이,그 곳의 나무와 밤하늘, 별도 너무 그리웠어요.
그들의 옷을 입고 말을 배우며 지내는 제미 버튼이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먼 나라 사람들은 제미 버튼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주민들에게 그동안 배운 문명을 가르치라”고 하지요.
2년 만에 배를 타고 먼 고향으로 돌아간 제미 버튼은 고향 사람들에게 어떤 것들을 가르쳤을까요?...
이 이야기는 1830년 영국의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 끝자락 티에라델푸에고 섬(불의 땅)에 가닿아 선장은 야만인 같은 섬 주민들을 영국 신사로 만들려고 오룬델리코라는 소년을 영국에 데리고 갔었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해요.
남아메리카 끝자락 원시 섬에 살고 있던 소년이 유럽에서 온 방문객들의 제안을 받고 문명 세계로 가서 그들의
옷을 입고 말을 배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수많은 세대 동안 야생의 땅에 적응해온 본능을 잃지 않고, 돌아오자
마자 그들이 주었던 옷을 벗어던지고 다시 모국어를 배우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네요.
아무리 좋은 옷들과 문명의 혜택이 있다고 한들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 곳은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라
생각했었던 제미버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명의 혜택을 느끼며 더 좋은 것만을 누리며 살고 싶은 욕구로 가득찬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하는 어린이만이 아닌 어른들도 보면 좋을 듯한 책이 아닌가 싶네요.
원시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섬의 숲과 바다의 모습을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모습과 대비하며 섬세하게 그려내어
이야기도 그림도 참 이쁜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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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수레의 [제미 버튼]이라는 동화책은 이렇게 신문의 소개글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글밥이 적은 책이지만 내용민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으로 다가왔네요.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한 글이라 더 관심이 간데다, 그림도 예사롭지 않아 아이와 읽어보았답니다.
문명을 거부한 소년-제미버튼 흔히 문명은 우리 인간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체면을 차리며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삶, 인생이라고 여기지만, 책을 읽고나면 그것은 모두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소년이 사는 섬으로 방문객들이 찾아 옵니다. 까만 그림자로 묘사된 그들은 소년과 비교가 되지않을만큼 거대해 보이네요. 힘을 가진 사람들, 제 눈엔 매우 위협적으로 비칩니다. 진주단추를 주면서 이름도 '제미 버튼'이라 짓고는 소년에게 영국의 앞선 문명을 가르쳐준다며 데려갑니다. ![]() 그리 행복해보이지는 않은듯 합니다. 나무보다 높은 집, 멋진 못과 모자를 쓰고 비슷해지려 애쓰며 동화되려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자신을 보며 결국 다시 섬으로 가기로 한답니다. 태양보다 밝은 빛이 있고, 파도 소리만큼 다롬한운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꽃보다 더화려한 궁전이 있었지만 자신의 고향만은 못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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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간 배운것을 가르치라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어둡고 거친 바다를 건너 섬으로 돌아온 소년 제미버튼은 돌아오자마자 옷을 벗습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바다 건너편에서 생활하며 깨달은 게지요. 살아가는 방식은 누구나 다릅니다. 제미버튼이 사는 섬에서는 그들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생활이 있고, 바다 건너편 사람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리다는 것은 말할 가치가 없는데도, 우리는 늘 자기 생각이 옳고 자신과 좀 다르면 '틀리다'고 여기며 교육이라는 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지요. 제미버튼을 통해 깨닫습니다. 게으르거나 영특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문명이라는 속박 따위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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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거부한 소년 제목으로 제미 버튼이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는 듯 하다. 바다 건너의 세상이 궁금했던 저 멀고 먼 섬에 살고 있던 소년은 어느 날 섬을 방문한 방문객을 따라 바다 건너 문명의 세계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방문객들은 그 소년에게 자신들의 문명과 자신들의 말을 가르쳐서 원시의 섬에 자신들의 문명을 전파하리라는 다부진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어둡고 머나먼 바다를 한참을 배를 타고 간 후 드디어 육지에 도착한 제미 버튼. 문명 앞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멋진 옷도 입고 싶고 모자도 쓰고 싶었고, 곧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결코 그들과 같을 수는 없음을 제미 버튼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제미 버튼은 자신의 고향이 그리워진다. 방문객들도 이제는 제미 버튼이 고향으로 돌아가 방문객들 나라의 문명을 원시의 섬에 퍼트리리하고 기대하며 제미 버튼을 자신의 섬으로 돌려보낸다. 바다를 지나 지나 자신의 고향에 도착한 제미 버튼은 고향에 도착하자 자신의 의복을 벗어 가족에게 보여주고는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다시 예전의 그 장소에서 방문객의 세상을 떠올린다.
이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쓰여진 이야기라니 더욱 놀랍다. 그저 원시섬의 모습 그대로를 왜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모습으로 누군가를 바꾸려 했을까. 하지만 결국은 제미 버튼은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더욱 노력을 했어야 했고,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다니 방문객(영국인)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제미 버튼에게 했나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와 같기를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행동은 얼마나 잘 못된 행동인가, 각자는 각자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줄 때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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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
문명을 거부한 소년 제미버튼은 1830년 영국의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이 남아메리카 끝자락의 티에라델푸에고 섬에 도착하여 섬에 살던 원주민 소년을 영국 신사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영국으로 데려갔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해요.
야만인 같은 섬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원주민 소년을 자신들이 사는 나라로 초대해요~ 새로운 문명을 경험하고 그들의 말을 배우길 바라죠!~
방문객들은 소년의 가족들에게 진주로 만든 단추를 주고 소년의 이름을 제미버튼으로 바꾸어 그들의 나라로 소년을 데리고 갑니다.
숲이 울창한 섬을 떠나 소년은 방문객을 따라 어둡고 거친 바다를 지나 육지에 도착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본 건물들~ 숲속의 나무와는 비교 할수 없을 만큼 높은 집들이 놀랍기만 했어요.
소년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자신도 그들처럼 모자를 쓰고 멋진 옷도 입고 싶어졌어요~ 어느새 제미버튼은 문명을 받아 들인듯 변해가고 있었어요~ 그들의 언어도 배우고 또 모습도 비슷해져 가고 있었지만 같을수는 없었어요!
문명의 세계로 온 제미버튼은 정말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음악소리~ 왕과 왕비를 만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까끔씩 그리워 지는 섬....지붕위에 올라가 밤하늘을 쳐다보았지만 섬에서 봤던 반짝 반짝 예쁜 하늘이 보이진 않았어요~~~~~
방문객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배운 제미버튼을 다시 그가 살던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게 되요. 무언가를 기대하면서요~~~무엇을 기대했을까요?
그들은 제미버튼에게 자신들에게 배웠던 것들을 그들에게 가르치라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의 배웅속에 다시 먼바다를 건너 소년의 고향에 도착했지요^^
소년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지만 섬은 처음 모습 그대로 였어요.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었지만 소년에겐 제미버튼이란 이름도 그 옷들도 진짜는 아니였던건가 봐요~ 집에 돌아오자 소년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모국어를 열심히 다시 배우고 옷을 벗어 던지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요~
소년은 자신이 진정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어느곳에 있을때가 진짜 내 모습인지를 깨닫게 된거겠죠!~ 좋은 물건. 좋은 문화를 접한다 해도 소년이 보고 느끼고 싶은 나무와 숲 그리고 하늘은 문명이 발달한 세계에서는 똑같이 찾아 볼수 없었어요~~~~~
문명이 발달되어 우리가 누리는 환경이 좋아졌을지 몰라도 삶의 기준과 가치가 무조건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걸 소년을 통해 깨닫게 되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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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 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이라는 책 표지만보고도 한번에 마음을 사로잡혀 버렸다. 녹음으로 우거진 풀숲사이에 호기심어려보이는 한 소년이 내 눈을 뻔히 바라본다. 책은 거의 동화책 수준이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다시한번 찬찬히 넘기며 그림을 감상했다. 두사람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공동으로 작업한 동화책의 일러스트는 완성도가 아주 높아서 눈이 무척이나 즐거운 책이다. 동화책을 좋아해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제미 버튼이라는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제미 버튼은 책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 책이 더 흥미로웠던 점은 실화라는건데 1830년 비글호의 선장 피츠로이가 남아메리카의 끝자락 티에라델푸에고 섬을 항해하던 중 ‘오룬델리코’라는 원주민 소년을 영국으로 데려갔다. 진주 단추에서 이름을 따 제미 버튼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고서. 제미 버튼은 문명사회에서 문명을 접하게 된다. 글도 배우고 예절도 배우고 섬에서 실오라기 하나 안걸치며 지내다 멋진 신사복도 걸쳐입고 수염도 따라 길러보고 생전처음보는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심지어 왕과 왕비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모든 문명을 다 경험시켜주고 제미 버튼을 원래 살던 고향으로 보내주면서 지금껏 배운 모든것들을 고향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라고 한다. 그러나 제미 버튼은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옷부터 벗어던지며 다시 고향 말을 배운다. 그리고 문명따윈 하나도 없는 그 섬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제미 버튼이 아무리 문명의 신셰계를 경험하더라도 뿌리깊은 자신의 본능을 잊지 못하였다. 별하나 보이지 않는 까만하늘보다 제미 버튼이 바라보는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이 더 아름다운데 자신의 문명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여 원주민에게 문명을 가르쳐주려고 한 도시사람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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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 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 앨릭스 바즐레이 글 / 발레리오 비달리, 제니퍼 우만 그림 다섯수레
'1830년, 영국의 로버트 피트로이 선장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 끝자락의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만한 로버트 선장은 야만인 같은 섬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사람을 영국 신사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거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룬델리코 라는 소년의 가족에게 진주로 만든 단추를 주고 대신 오룬델리코를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진주 단추 하나에 팔려온 그는 제미 버튼이라는 새 이름이 생겼고, 또한, 이 소년은 영국에서 빅토리아 상류사회의 방식과 기독교 방식으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날마다 온갖 놀라운 경험을 하고, 윌리엄 4세와 아들레이드 왕비의 관심까지 끌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발달된 문명과 문화를 그 소년에게 완벽하게 주입시켰다고 생각한 로버트 선장은 제미 버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832년 피츠로이 선장은 원주민들에게 문명을 전파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제미 버튼의 티에라 델 푸에고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 그 항해에 동반하여 제미 버튼이 살았던 지역을 조사했습니다. 1833년 1월, 배가 해안에 접근하자 제미 버튼은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옷을 벗어 버렸습니다. 제미 버튼은 무진 애를 써서 모국어를 다시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이 책의 내용이 분량에 비해 길게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 길게 차지하게 되었다. 제미 버튼은 영국인들과 비슷해졌지만, 진정으로 영국인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많은 시간 동안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살았던 것 뿐입니다. 원시인에서 영국의 신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다시 모국의 원시인으로 돌아오는 내용을 담은 이야기가 재미있다. 하지만 설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감흥이나 교훈은 적다고 생각된다.
2013.7.12.(금) 이은우(초등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