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에 읽었던 SF라면, 그보다는 환타지에 걸맞는 듯한 로저 젤라즈니의 글이나 같은 그리폰북스에서 나온 다아시경의 모험, 드래곤과 조지 정도였다. 이들은 같은 '다른 세계'를 그리더라도 기법이 SF적이라기 보다는 환타지적-이런 표현을 쓰는 것도 요즘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지적- 인 요소가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작가는 후기에서, 자신이 글의 모델로 삼은 것이 백조자리 61연성중 보이지 않는 별(61C)이며, 그 별을 왜 소설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별난 모양 - 일반 행성같은 구형이 아닌, 넓적한 파이모양 - 으로 추측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이 어찌나 천문학적인지, 문외한인 나로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자료와 학자 이름, 그들의 연구 결과만으로도 아찔하여 그에게 승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자신이 충분히 그 결과를 위한 계산을 수행해 본 것 같았다. 심지어, 자신이 비 전문인 분야에 대해서는 친구의 손까지 빌려가면서!
그리하여 가장자리(!)의 중력은 지구의 3배, 극지방의 중력은 무려 700배나 되는 기이한 행성의 모양이 정립되었고, 그 곳에 생물이 살기 위한 조건 - 수소와 암모니아로 구성된 대기와 메탄으로 이루어진 대양 - 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의 기온이 여름보다 따뜻하다던가, 지구의 강철로도 흠집도 내기 힘든 표피를 가진 생물이 사는 그런 세계가 마련된 것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그런 기교적인 특징만이 아니다. 지구인들의 부탁을 받아 자신이 사는 별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 전혀 다른 문화권들의 충돌이라던가, 그 와중에도 꿋꿋이 교역을 시도하는 모습들을 상당히 잘 묘사하고 있다. 이젠 진부한 칭찬인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요즘같이 범람하는 출판물 가운데서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작가 특유의 다소 건조한듯한 묘사로 인한 것도 있겠지만, 상인이자 선장인 발리넌과 일등항해사로서 다소 신중하지만 한 걸음 뒤에서 선장을 떠받히는 입장인 돈드래그머, 지구인들과 그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찰리 래클랜드는 전형적인 캐릭터임에도 그 전형성을 떠난 개성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캐릭터를 단순히 설명으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닌, 글 자체에서 드러낼 수 있는 필력을 작가가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사건을 풀어가는데 열쇠가 되는 과학적인 잔지식이 없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데는 큰 무리가 없고, 오히려 역자의 주석을 보는 동안 자신의 학창시절 지식을 반추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상깊은구절] ... 발리넌이 특별히 미신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세계의 가장자리'에 이토록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때문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평가해도 상상력이 풍부하다고는 볼 수 없는 부하들 조차 때때로 불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긴 재수 없는 곳이야, 하고 부하들은 투덜거렸다. '가장자리' 너머에 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이 세계 쪽을 향해 수천 킬로미터씩이나 몰아치는 무시무시한 겨울 푹풍을 불어보내고 있는 것이 어떤 존재이든, 그 존재는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고가 날 때 마다 새로운 불평 소리가 터져나왔고, 그놈의 사고는 또 빈번히도 발생했다. 누구나 평생을 지녀온 약 250킬로그램의 몸무게 대신에 1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지게 된다면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실수하기 십상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점을 그대로 인정하는 데는 교육이, 혹은 적어도 논리적인 사고가 요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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