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9)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9%
  • 리뷰 총점8 11%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9.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내게로 스며든 [토지]속 박경리의 말..
"내게로 스며든 [토지]속 박경리의 말.." 내용보기
일전에 저자의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 [토지]가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던 그 책에서 저자는 ‘어쩌면 [토지]는 겹겹의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얼굴 같아 보입니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얼굴로 때로는 그럭저럭 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때로는 사는 게 참으로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 말입
"내게로 스며든 [토지]속 박경리의 말.." 내용보기

일전에 저자의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 [토지]가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던 그 책에서 저자는 ‘어쩌면 [토지]는 겹겹의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얼굴 같아 보입니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얼굴로 때로는 그럭저럭 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때로는 사는 게 참으로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 말입니다. 아마도 그 갈피갈피의 주름을 하나하나 들춰보는 일이 [토지]를 읽어내는 일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글을 읽고서 [토지]를 다시금 완독해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의 말 마냥 책 갈피갈피 사이에 들어있는 주름을 하나씩 들춰보면서 과연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인지 알아가는 과정으로 삼았던 것 같다. 그렇게 [토지]를 읽은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대학에서 몇 년 동안 매 학기마다 학생들과 [토지]를 함께 읽는다는 저자는 [토지]의 말과 박경리 선생의 말을 모으고 싶었다고 한다. ‘언제 어느 세상일지라도 나는 나이고, 내가 내 삶을 살아간다는 대단히 소박한 사실은 그대로’이고, ‘단순한 그 사실이야말로 일제감점기의 [토지]속 사람들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인간이, 아니 인간이 인간인 한 그렇게 살아야 할 모습’이며, ‘박경리 선생은 그 인간을, 그 삶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제 각자의 삶을 [토지]로부터 읽어내고, 그래서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토지]를 곁에 두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그런 [토지]속에서 찾아낸 박경리의 말을 화두로 저자의 생각을 적은 글들이 모여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박경리의 말 중에는 [토지]를 읽으면서 나에게 스며든 말도 있고, 그렇지는 않지만 [토지]속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내가 읽었던 나남출판사의 [토지]와는 권수와 쪽수가 같지 않아서 그 부분을 찾아 다시한번 펼쳐볼 수 있게 해주었기에 행복한 책읽기이기도 했다. 저자가 모았던 말들, 그 중에서 내게도 스며들었던 말들을 다시금 읽어본다.

 

‘산다는 거는… 참 숨이 막히제?’ (17권, 359쪽/나남본 18권 345쪽) 홍이가 만주로 떠날 결심을 하고 평사리 부친의 묘지에 가 성묘를 한다. 그리고 한복의 집에 들러 얘기하던 도중 홍이가 만주에서 김두수에게 욕을 본 사실을 두고 한복이 미안해하며 한 말이다. 한참 뒤에 홍이 말한다. ‘숨이 가쁘지요.’

산다는 거는 어떻게 보면 당시에는 숨 가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숨 돌리는 것이지 싶다. 그래서 한복이와 홍이가 했던 말에, 절박하고 절실했던 것들도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이라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때로는 숨 막히는 시기도 있었고, 때로는 가쁜 숨을 내쉬며 관조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순환하는 절망과 희망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 역시도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안 하는 것은 쉽고 하는 것이 어려워.’ (11권 296쪽/나남본 11권 284쪽) 서희가 만주에서 국내로 송환되어 교도소에 갇힌 길상을 면회하고 오던 날, 환국은 걱정이 되어 조퇴를 하고 기다린다. 기죽지 말고 명년 진학을 생각하라는 서희의 말에 환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희가 한 말이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안하는 것은 쉽다. 우선은 몸이 편하고, 다소 찝찝한 마음이 든다 해도 자신의 마음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이유는 수천, 수만 가지나 된다. 그럼에도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한 내면의 불안과 고통을 대면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우리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 [토지]의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안하고,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핑계삼고 싶을 때마다 환국과 서희의 마음을 헤아리며 박경리의 이 말을 떠올려본다.

 

‘머릿속에 도판을 그리기보다 땅을 먼저 밟아야 하네.’ (18권 436쪽/나남본 19권 341쪽) 지리산에서 해도사가 이범준의 사촌동생인 이범호가 앞날을 위해 준비하자는 말에 이범호에게 한 말이다. 이어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서둘지 말게, 산에는 철 따라서 꽃이 피고 잎이 지네. 서두는 것은 사람뿐이지.’ 이범호는 해도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수긍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해도사의 말은 서로 모순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이범호와 같은 나이였을 때라면 해도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행에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 두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다. 백가지 생각보다 한가지의 실천이, 조급함보다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필요함을 해도사는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 일게다. 해서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말들이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저자는 박경리의 말들을 소개하면서 비단 [토지]속에 있는 말에 한정하지 않는다. 박경리 선생이 다른 곳에서 했던 말들도 길어 올리고, 그 말들을 따라가며 음미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말들을 길어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을 사유하며 오늘도 힘든 삶을 견뎌내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그래서 [토지]는 백수십년 전의 이야기이고, 50년 전에 쓰인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토지]의 해당대목을 찾아 읽는 시간이 내내 즐거웠다.

k*****1 2020.07.23. 신고 공감 18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소설 속의 구절들에 옷을 입혔다.
"소설 속의 구절들에 옷을 입혔다." 내용보기
유명인의 유명한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복된 일이다. 특히 박경리의 ‘토지’란 작품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문학 학습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이다.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문장력을 길러주기도 하면서 우리들 곁에 함께했다. 참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저자는 나름대로 문장을 골라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이런 책이 요즘 많이
"소설 속의 구절들에 옷을 입혔다." 내용보기

유명인의 유명한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복된 일이다. 특히 박경리의 토지란 작품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문학 학습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이다.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문장력을 길러주기도 하면서 우리들 곁에 함께했다. 참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저자는 나름대로 문장을 골라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이런 책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유형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새롭게 음미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이 책도 그런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작품 토지에 나오는 명구들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그 말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일깨워 보고 있다. 토지가 가져다주는 삶이, 토지가 만들어 내는 삶이 그 문장들에 녹아 있다. 그 삶을 보석을 캐듯 기록하고 있다. 그 언어들에 풍겨나는 향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고운 글이다. 글을 통해 문장을 고른 저자의 성향과 마음도 느껴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무척 행복해 진다. 그것은 동질성을 느끼는 민족의 삶이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책들의 부분 부분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살았다는 것, 세상을 살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는 살았다는 흔적이 없다. 그냥 그날이 있었을 뿐, 잘 견디어내는 것은 오로지 권태뿐이야.

 

봉순과 이상현의 딸 양현은 미인이자 여의사다. 봉순이 죽자 서희의 양녀가 되어 사랑을 받지만 나중 이상현의 집안으로 호적을 옮긴다. 서희는 둘째 윤국과 양현이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이루어진 상황 앞에서 영현은 혼란스럽다. 그래서 평소 잘 챙겨주던 명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때 명희가 한 말이다. 그러면서 양현의 고통, 슬픔이 투명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

 

어 가자. 간장 녹을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산 보듯 강 보듯 가자.

 

토지의 내용이 기억 속에 가물거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석이가 큰일을 하겠다고 관수를 따라 나서는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과 정겨운 장면을 연출하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고 관수가 한 말이다. 의병으로 나섰던 관수는 석이에게 강단 있게 말한다. 아베 원수를 갚겠다는 그 따위 시시한 생각이면 따라나설 염도 내지 마라 한다. 사내란 원한도 인정도 크게 가져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큰마음을 가질 것을 종용하는 말이다.

 

내사 머어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마는 사는 재미는 사람의 맘속에 있다 그 말이지. 두 활개 치고 훨훨 댕기는 기이 나는 젤 좋더마.

 

이는 윤보의 말이다. 그는 조금 특이한 인물이다. 토지의 인물들이 거의 농부인데 반해 그는 목수이기에 자유로운 처지인 모양이다. 홀홀단신으로 유유자적하며 살고, 마음이 내켜야 일을 하며 토지에 나오는 600여 명의 인물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의식과 행동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의 방랑벽이 제대로 이야기 되고 있는 글이고, 나름의 삶의 철학이 들어있다 하겠다. 제멋대로인 사람, 동학교도도 농민도 아니면서도 혁명에 끼어들고, 의병활동에도 모습을 보이고 조준구가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채는 상황에서도 맞선다. 자유롭지만 의식을 가진 그는 역사적인 인물로도 행보를 보이면서 소설을 이끌어가는 청량제 역할을 감당한다. 이런 자가 하는 방랑의 삶, 기억되는 바가 된다.

 

늙고 못생겼으면 난쟁이같이 볼품없는 체구 그 어디에선가 풍겨나는 당당함,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막딸이는 늙고 못생긴 아낙네다. 난쟁이라 놀림도 받고, 남편에게 대우도 받지 못한다. 자식을 둘이나 낳아 길렀지만 남편은 대처에 나가 딴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마을 사람들이 막딸이를 가련하게 생각한다. 막딸이는 남편에게 내처지고 다 성장한 아이들도 냉랭하다. 하루는 대처에서 남편과 함께 산다는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기생 첩, 분결같이 희고 고운 여인이 찾아온다. 기생 첩이라고 하지만 호구지책으로 여길 뿐 욕심내는 것도 없다. 남녀 간의 사랑도 본처 자리도 욕심이 없는 여인이다. 막딸이는 이혼당한 본처다. 누가 봐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박경리 선생은 이런 막딸이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당당함이 있다고 한다. 꽃 같은 기생 월화가 난쟁이 같은 본처를 보고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니 말이다.

 

밤하늘의 그 수많은 별들의 운행같이 삼라만상이 이치에서 벗어나는 거란 없는 게야. 돌아갈 자리에 돌아가고 돌아올 자리에 돌아오고, 우리가 다만 못 믿는 것은 이르고 더디 오는 그 차이 때문이고 마음이 바쁜 때문이지.

 

서희의 재산을 빼앗은 조준구의 삶이 6년의 시간이 지난다. 그러던 중 서희의 재산 회수 계획을 돕는 공노인이 찾아온다. 공노인은 자산가 행세를 하면서 금광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물욕에 눈이 먼 조준구는 공노인의 재산까지 탐을 낸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다. 원래 자기 것이 아닌데, 다 그 자리로 돌아갈 뿐인데. 더디 움직이고 빨리 움직일 따름이지 다 부질없는 일인데 물욕은 왜 그리 내는지  결국 조준구는 패가망신을 한다.

 

가난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일을 해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사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사로잡혀 사는 거야말로 수치다.

 

서희의 둘째 윤국의 말이다. 윤국의 선배 홍수관은 학생운동으로 잡혀들어 간다. 그리고 형사와 논쟁이 벌어진다. 그 논쟁 속에서 홍수관은 열정적으로 논박을 했지만 노회한 형사의 유도 신문 같은 논리에 말려든다. 그래서 전향이냐 불령선인이 되어 퇴학을 당하느냐의 길림길에 선다. 두 달 후면 졸업인데 지인들의 침묵 요구에도 홍수관은 오열을 터뜨리며 외친다. 조선 독립을 위해 살겠다고. 생존이 무너지는 소리다. 홀어머니 아래서 어렵게 공부하고 있었던 그였으니까. 그 후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난 홍수관은 동창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남루한 모습이다. 수관은 윤국에게 말한다.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후 그는 생활에 찌들고 남의 눈초리에 찌들어 목에 올가미를 쓰지 않고도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이라 말한다. 자신이 경멸스럽다 말한다. 이에 윤국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혼잣말을 한다. 마지막 말 사로잡혀 사는 거야말로 수치다는 무슨 말일까. 자신의 의식 속에 갇혀 사는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

 

어중간히 눈 밝은 자들이 큰일이라 결국은 순결한 마음 순박한 열정만이 저어 수만 리 장천을 나는 철새처럼 목적한 곳에 당도할 수 있는 게요.

 

롯데 타자였던 박정태의 얘기를 하면서 이 글을 설명하고 있다. 박정태는 2루수 골든글러브를 5번이나 탔던 선수다. 이 부분 최다 수상자다. 그야말로 레전드였다. 그런 그는 프로 입단 3년차에 발목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부상을 당했다. 모두가 은퇴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활의 길을 갔다. 22개월 동안 무려 6번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어느 인터뷰에서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무조건 열심히라고 대답했다. 내가 얼마나 연습을 하겠다, 그것이 목표라 말했다. 박경리 선생의 철새가 순박한 열정으로 하염없이 날 듯 말이다.

 

뛰지 말고 걸어가면서 계속하자 일이 보배이니라

 

일이 보배라는 말은 토지의 곳곳에 남겨진 말이다. ‘석이네의 입을 빌려서도 말을 한다. 일이 보배지. 하모 일이 보배고 말고.’ 한다. 석이네는 평사리 소작농 정한조의 아내이자 석, 순연, 복연의 엄마다. 남편은 조준구가 폭도라 지목한 탓에 아무 증거도 없이 처형당한 인물이다. 그들은 정말 어려운 가운데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석이네가 겨울 찬 얼음물에 빨래를 행구며 하는 말이다. 그녀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단지 고단함을 잊으려고 하는 말일까. 온힘을 다해 자식들과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잘난 사람은 일 못한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는 게야.

 

독립운동 자금을 전하러 만주에 온 한복에게 길상이 한 말이다. 한복은 현 김두수가 일본 밀정을 한다는 것이 이유가 되어 만주로 가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형 때문에 조금 일이 쉽다고 여긴 사람들이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한복은 이런 상황에서 하소연한다. 형은 잘나서 일본 밀정을 하지만 자신은 대역무도한 형을 둔 기막힌 처지 때문에 분복에 남치는 애국자가 되었다고. 결국 미천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독립운동을 박경리 선생은 바보의 짓이라 하지 않고 길상의 입을 빌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으로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책은 그에게 구원이었고 숨 쉴 통로였으며 외롭지 않았다. 동굴 속과도 같이 차단된 세계 속에 책은 유일한 벗이었다.

 

할아버지를 백정으로 두었던 영광이 한 말이다. 영광은 서희의 아들인 환국의 눈에 비친 모습은 섬세하고 화사한 감수성, 곧은 내면을 가졌던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영광은 백정의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녔다. 부모는 그 연을 끊어주기 위해 대처로 학교도 보낸다. 하지만 세상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영광은 학업을 포기하고 유랑극단 연주자로 만주, 조선을 떠돌아다닌다. 그때 낡은 짐 꾸러미 속에서 찾은 책과 노트를 보면서 어릴 적 책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책은 그에겐 희열이었고, 구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신분 때문에 경멸과 자학으로 가득 했다. 신분이 똑똑한 사람을 잡은 경우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인생은 보석의 빛이 아니요 뿌옇게 타오르는 모깃불, 목화씨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중략) 무슨 놈의 밤도깨비 같은 짓이었나, 허허 하고 웃는다.

 

김환(구천)의 마음 한 자락이다. 그는 동학군 장수 김개주가 최참판댁 윤씨 부인을 범해 낳은 사람이다. 아비가 죽은 후 그는 어머니를 찾아가 하인살이를 자처한다. 그런데 이복형제인 최치수의 부인 별당아씨와 야반도주를 한다. 위의 문장은 윤씨 부인, 최치수, 별당아씨 모두 죽고 꼬일 대로 꼬인 인연을 생각하는 복잡한 심사가 나타난 문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날 윤씨 부인의 제삿날 구천이 생모의 무덤을 찾아온다. 자신의 생애를 무덤 앞에서 생각하면서 역행으로 나타난 삶의 모습을 허허롭게 웃음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 이상 어떤 말이 필요 있으랴.

일하는 사람은 이름이 없소, 일하다 죽은 사람은 무덤도 없소!

 

조선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었다. 신여성들조차도 박에스더, 김엘리스 등으로 서양식 이름을 가져와 썼다. 개화기 신여성들의 이름이 저러했으니 일반 여성들의 이름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어릴 때는 거의 예쁜이, 간난이 정도로 불리다가 시집가고는 친정의 지역을 따라 전주댁, 강릉댁 등으로 불리는 게 고작이었다. 토지도 그런 경향이 많았다. 삼월이, 강청댁, 옥이네 등으로 호칭이 불려졌다. 이런 이름의 변천사는 여성이 인간으로, 주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으로 보면 될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이 말은 이름 없이 대단하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는 사람 말이다. 무덤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어른은 몸으로 날 가르쳤던 말시. 참말로 잊을 수 없을 것이여.......말씸으로 안 허시고 몸으로 허셨단께로. 마지막꺼지 그 어른은 몸으로 허싯어.

 

그 어른은 강의원이다. 실제 모델은 독립운동가 강우규 선생이다. 분은 한약방을 경영하던 사람으로 국권이 빼앗기고 난 후 북간도로 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부임하던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지다가 잡혀 순국했다. 이 글은 선생이 치료해 준 주갑이 선생의 수행을 자처하고 따라나서 선생의 행보 속에서 그 옆을 지키면서 선생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한 말로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동 평사리는 많은 문학인들의 마음 속 고향이다. 바로 서희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구한말, 일제의 어려운 시간을 관통하며 살았다. 그 시간 속을 살면서 많은 성격을 지닌 인물들과 동행했다. 그 사람들의 다양한 말, 다양한 생각들을 박경리 선생은 평사리를 중심으로 그려낸다. 그러기에 토지에 향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게다. 평사리를 거닐다 보면 많은 작품 속의 인물들이 말을 걸어온다. 삶의 어려움도 있고. 사랑과 인내도 있고, 분노의 분출도 있고, 미래의 소망을 그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다양한 삶을 살아보는 일이기에 복된 일이다. 우리는 평사리에 가면 그 삶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그 평사리를 사모하게 만들어 준다. 저자의 언어를 통해 기억 속의 평사리를 떠올려 보고, 토지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된다.

j****3 2020.07.26. 신고 공감 11 댓글 2
리뷰 총점 eBook 구매
이 책을 추앙합니다.
"이 책을 추앙합니다." 내용보기
한권의 선물같은 책입니다.박경리님의 메세지를 해석해주시면서 어쩐지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그냥 나로써 바지런히 한번 살아가보자는 어떤 알수없는 희망마져 생깁니다.유식하게 적지못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이 책을 출퇴근길에 수없이 읽고 또 읽었습니다.너무나도 좋습니다.
"이 책을 추앙합니다." 내용보기
한권의 선물같은 책입니다.
박경리님의 메세지를 해석해주시면서 
어쩐지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냥 나로써 바지런히 한번 살아가보자는 
어떤 알수없는 희망마져 생깁니다.
유식하게 적지못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이 책을 출퇴근길에 수없이 읽고 또 읽었습니다.
너무나도 좋습니다. 
d*********0 2025.08.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