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5%
  • 리뷰 총점8 12%
  • 리뷰 총점6 12%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0.0
  • 40대 6.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연원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
"연원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 내용보기
두 사람의 여정이 평행이론처럼 펼쳐진다. 아니 셋인지 모르겠다. 한갓진 카프카의 오두막에서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중 우주의 실재를 체험한 작가 니콜, 내면의 부름을 따라 사막의 언덕으로 성변화하듯 사라져버린 엡스타인의 여정에 필자도 동행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스라엘로 향했을까? 전격적이었다. 주변에 미리 알라지도 않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불쑥 길을 나선 것이다.
"연원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 내용보기
두 사람의 여정이 평행이론처럼 펼쳐진다. 아니 셋인지 모르겠다. 한갓진 카프카의 오두막에서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중 우주의 실재를 체험한 작가 니콜, 내면의 부름을 따라 사막의 언덕으로 성변화하듯 사라져버린 엡스타인의 여정에 필자도 동행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스라엘로 향했을까? 전격적이었다. 주변에 미리 알라지도 않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불쑥 길을 나선 것이다. 출구 없는 막막한 현실에 너무 갈급한 나머지 이리저리 셈해 보지도 않고.

먼저 삶이나 글쓰기 모두 벽에 부딪힌 작가 니콜.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그녀는 무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겨 버렸다.

나는 정말로 왜 텔아비브에 온 것인가? 소설에서는 인물의 행동에 모두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동기가 없어 보이는 행동이라도 뒤로 가면 플롯과 공명의 섬세한 건축술이 항상 그 동기를 드러낸다. 빛이 어둠을 감당하지 못하듯이, 서사는 무정형을 감당하지 못한다-서사는 무정형의 안티테제이며, 따라서 무정형을 전달할 수 없다. (중략)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서사의 구조로 이룩한 합리성과 고안된 아름다움이 더욱 미심쩍게 느껴졌다. 그런 속성들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그것들이 주는 위안 없이 살고 싶지 않았다. 의미가 잡히듯 그 속성들 역시 손에 잡혀 다뤄질 수 있도록, 무정형을 포함할 수 있는 형태로 포용하고 싶었다. 그런 일의 불가능성을 감시해야 했지만 그저 잘 잡히지 않는다고만 느껴졌으므로 그 포부를 버릴 수 없었다. (90~91)

작품 구상에 진척이 없어 안달하며 글쓰기 자체에 회의를 느낀 면도 있지만 니콜의 실제 삶도 궁지에 몰려 있었다. 특히 남편과의 관계는 정리가 필요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밤에 남편이 내게 등을 돌리고 침대 저쪽에서 잠이 들면, 나도 그에게 등을 돌리고 침대 이쪽에서 잠들었다. 우리는 상대에게로 건너갈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건너기가 두려워 건너가고 싶지 않은 것을 건너가지 못하는 거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각자 여기에는 없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며 잠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에 두 아이 중 하나가 자면서 따뜻해진 몸으로 우리 침대로 기어들어올 때에야 우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그곳에 대한 강한 애착을 다시 기억해냈다. (163~164)

뚜렷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도착한 텔아비브에서 그녀는 생경감과 친숙함을 동시에 느낀다. 모순적인 감각에 휩싸인 채 자신의 마음결을 짚어본다.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하자면 운하임리혜에 해당하는 심리 상태란 걸 직감한다. 새롭고 생소한 것을 맞닥뜨리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친숙한 느낌이 드는 양가적인 감정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운하임리혜란 억압된 무언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생기는 특별한 종류의 불안이라고 주장했다. 하임리히와 운하임리히가 하나이며 같은 것임이 드러나는 이 어원의 연보에서 우리가 결국 발견하는 것은 특정한 종류의 불안, 프로이트에 의하면 새롭고 이질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억압 과정을 통해 의식과 멀어진 익숙하고 오래된 어떤 것과 직면할 때 생기는 이 불안에 담긴 비밀이다. 숨겨진 채로 있어야 하는데 훤히 드러난 것. (93쪽)

니콜은 엘리에제르 프리드만이라는, 실존하는 인물인지 가공의 존재인지 정체가 모호한 인물의 인도를 받아 카프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와 동행하다 엉겁결에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카프카가 말년에 머물렀던(?) 사막 한가운데 오두막에 유폐된다. 홀로 남아 삶을 되짚어보던 니콜은 열병에 시달리며 다중 우주와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을 깨닫게 되면서 어느 순간 하나의 문턱을 넘어선다. 자신을 객관화하며 고뇌의 열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비로소 얻은 것이다. 카프카의 문턱이 내포하고 있는 희망과 낙관을 읽어낸 것이다.

카프카처럼 철저히 문턱에 머물러 산 사람도 없었다. 행복의 문턱, 저 너머로 가는 문턱, 가나안의 문턱, 우리에게만 열려 있는 입구의 문턱에서. 탈출의 문턱, 변신의 문턱에서. 거대하고 최종적인 이해의 문턱에서. 그런 일을 카프카처럼 잘해낸 사람은 아무도 업었다. 그런데도, 카프카가 결코 불길하거나 허무주의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문턱까지 이르는 데도 희망에 대한 민감성과 강렬한 갈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은 있다. 올라가거나 건너가는 길은 있다. 우리가 이 삶에서 거기에 도달하거나, 그 문을 알아보거나, 통과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할 뿐. (173)

또 한 명의 구도자가 이스라엘로 향한다. 엡스타인은 한때 모든 것을 다 가진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그 마이더스의 손으로 못 이룰 게 없었다. 어떤 하찮은 것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명예와 이익, 젊음과 섹슈얼로 변모하였다.

그는 벽을 마주치면 계속 들이받고 매번 넘어졌다 일어서면서 결국 언젠가는 그 벽을 돌파했다. 그런 엄청난 압박과 노력이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감지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하면 안간힘처럼 보일 것들이 그가 하면 기품의 한 형태로 보였다. (19)

그러던 그에게도 실존적 자각의 순간이 찾아왔다. 부모님의 별세, 아내와의 이혼, 직장에서의 퇴직 등 외적인 여건의 악화와는 다른 차원의 감각이 그를 휩쌌다. 어느날 마실 것을 가지러 부엌에 가려고 일어서다 머리에 빛이 가득 차오르는 체험을 한다. 마치 그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새로운 지경으로 나아가는 꿈을 꾸게 된다.

엡스타인은 슐로스에게 말했다. 스물일곱에 자신은 성공과 돈과 섹스와 아름다움과 사랑을, 규모뿐만 아니라 핵심을, 눈에 보이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는 야망과 욕구에 눈먼 사람이었다. 그와 같은 치열함으로 정신적 영역에 매진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자신은 그토록 철저하게 그 영역을 차단한 걸까? (24)

길굴 공동체의 랍비 메나헴 클라우스너와 교유하며 그는 점점 버림과 비움의 경지, 미답의 신비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다.

엡스타인은 셔츠를 벗고 바다 앞에 서서 넘치는 생동감, 새와 같은 자유를 느끼며 그동안의 포기와 기부가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마침내 이해했다. 바로 이 바다, 이 가벼움, 이 배고픔, 이 태곳적 분위기. 야파의 색채에 취한 채로 휴대전화가 빛을 내며 전해줄 저 너머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이 유연함. 더 큰 존재로부터, 시나이산에서 모든 것을 본 후 그에게 얘기해주려고 서둘러 내려오고 있는 모세로부터,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에게서 받을 것이라고는 그 자신밖에 없는 여자로부터, 그의 간청대로 사막에 있는 황량한 산비탈에 나무 사십만 그루를 전달해주기로 한 사람들로부터 전해질 메시지를 기다리며.
그의 나날은 산란하게 퍼져나갔다. 물과 하늘을 나누는 선이, 그 자신과 세상을 나누는 선이 없어졌다. 그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 자신 역시 무한한, 계속 반복되는, 보이지 않는 생명으로 가득찬 존재라고 느꼈다. (291)

그는 더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향을 바꾸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 자유롭고 평온한 곳, 어두운 숲으로 발을 내딛는다. 성변화하듯.

저자 니콜 크라우스도 두 사람의 구도행에 함께 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페르소나인 듯 아바타인 듯 이름조차 같은 니콜의 입을 빌려 이곳 세속의 막막함을 토로하며 저 세상 너머를 그리워한다. 그예 새로운 지경에 이르러 문턱을 넘는 경험도 한다. 아니 지어낸 것일 수도 있다. 꿈인 듯 실재인 듯 가물거리는 불빛 속에 새로운 경지에 이르려는 결기가 강고한 탓에 예지몽을 꾼 것일 수도 있으니.

처지와 입장이 유사한, 성향과 지향의 결이 같은 두 사람이 연원을 찾는 구도의 여정은 치열하면서도 온화했다. 인연이 닿은 이들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않았고 남은 자들도 납득할 만한 선택과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누구든 자신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미래를 추론해보고픈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a*****7 2021.01.07.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레흐 레하'와 '이미 거기에'
"'레흐 레하'와 '이미 거기에'" 내용보기
『어두운 숲』은 전작인 『위대한 집』 이후 7년 만에 출간된 니콜 크라우스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사람들이이 이 소설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기의 천재 커플이라 칭송받았던 니콜 크라우스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이혼한 후 니콜이 처음으로 출간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땐 제목이 부정적이어서 걱정이 앞섰다. ‘어두운 숲’이라니 어쩐지 불
"'레흐 레하'와 '이미 거기에'" 내용보기

『어두운 숲』은 전작인 『위대한 집』 이후 7년 만에 출간된 니콜 크라우스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사람들이이 이 소설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기의 천재 커플이라 칭송받았던 니콜 크라우스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이혼한 후 니콜이 처음으로 출간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땐 제목이 부정적이어서 걱정이 앞섰다. ‘어두운 숲’이라니 어쩐지 불행했던 결혼생활이나 이혼이 준 정신적 충격 등 작가 자신의 삶이나 현재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한 제목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의 제목은, 단테가 썼고 롱펠로가 번역한 『신곡』 중 「지옥편」의 도입부에서 따온 것이다. 니콜 크라우스는 언젠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긴 자동차 여행을 했는데, 그때 일행 중 누군가가 작가에게 다음의 문장을 인용했다.

 

우리의 인생길을 반쯤 지났을 때
나는 어두운 숲에서 헤매고 있었네,
똑바로 난 길을 잃어버렸기에.

 

이 서사시의 주인공은 낯설고 캄캄한 숲에서 길을 잃었다. 사방에 도사린 어둠 속에서 헤매는 그 혼란과 방황의 이미지는 『어두운 숲』의 전반을 지배하는 주제와 정서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두운 숲』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인 엡스타인, 그리고 작가의 분신이자작가 자신인 것처럼 보이는 극중에서도 작가인 니콜(작가와 이름이 같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챕터별로 교차해서 전개된다.

 

뉴욕에 사는 이 둘은 유태인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각자의 이유로 이스라엘로 향한다. (엡스타인이 실종된 걸로 시작된 첫 장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뉴욕에서부터 이스라엘까지의 엡스타인의 여정을 따라간다. 니콜의 장은 뉴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니콜 역시 텔아비브의 힐턴호텔로 떠난다.)

 

이 소설에서 ‘미지의 공간으로’로 번역된 챕터의 원제목는 'out in the blue'다. '별안간', '난데없게'를 의미하는 관용구인 'out of the blue'라는 표현을, 영어 숙어를 제대로 사용한 적이  드문 니콜의 숙부가 잘못 말한 것에서 따온 것이인데, 참고로 'the blue'는 '저 먼 곳', '미지의  공간' 등을 뜻한다.

엡스타인이나 니콜이 이스라엘(텔아비브의 힐턴 호텔)로 간 것도, 그곳에서 경험하게 되는 사건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뉴욕에서 엡스타인이 우연하게 겪게 되는 일이나 니콜이 문학에 대해 겪고 있는 슬럼프도 모두 'the blue'로 집약되어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변호사와 작가로 직업은 다르지만 뉴욕이라는 같은 공간에 살던 엡스타인과 니콜이 이스라엘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경험하게 되는 사건들 역시 'the blue'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작품의 제목인 ‘어두운 숲’과 ‘the blue’는 일맥상통하거나 동일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현재의 어둠과 혼돈을 의미하면서도 어떤 변화를 일으킬 미지의 대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숲'은 부정적인 대상만은 아니다.

 

니콜은 텔아비브의 힐턴호텔에서 프리드만을 만난다. 그리고 프리드만을 만남으로써 니콜이 그동안 혼자서 해왔던 고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작가로서의 고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 아이들에 대한 걱정 등등(심지어 할머니처럼 일찍 알츠하이머가 발병할 것이라는 걱정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니콜처럼 유대인 작가였던 카프카가 있다.

(이 소설은 어떤 측면에선 미스테리 소설이나 추리 소설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엡스타인은 처음부터 실종된 채 장례식을 치르고 이야기가 시작되고, 니콜과 프리드만은 카프카의 행적을 추적한다. (카프카는 사실 우리가 아는 그때 죽은 게 아니라 이스라엘로 들어와 살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한다. 엡스타인과 니콜은 몇 가지 접점을 가지긴 하지만 결코 만나지도, 스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작가가 정성들여 연결한 장치들과 상징을 통해 둘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 각각 구 세대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것 같은 두 인물을 통해 작가는 유대인들의 정체성이나 뿌리찾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사이.

 

엡스타인은 돌아가신 부모를 기념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또 '숲'이 등장한다. 소설의 곳곳에서 상징처럼 등장하던 숲이 실체를 드러낸 셈인데, 원래는 비옥한 숲이었으나 사막이 된 곳을 다시 숲으로 회복하려는 엡스타인의 시도를 통해서 '어두운 숲'은 태초의 에덴 동산, 그리고 마지막에 회복될 천년왕국의 이미지와 겹친다. 이로써 이 책의 제목인 ‘어두운 숲’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라는 게 명확해진다.

 

한편 군인들에게 끌려가 카프카가 마지막에 거처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막의 오두막집에 감금(?)되었던 니콜은 결국 그 집과 사막을 빠져나온다.

 

내가 주목한 것은 마지막 두 챕터이다. ‘레흐 레하’와 ‘이미 거기에’.

 

레흐 레하

 

엡스타인의 마지막 장의 제목이 '레흐 레하'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전 장에서 이미 언급했듯 이 용어는 '가라, 떠나라'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되기 전 아브람에게 나타난 신의 명령인데, 엡스타인의 마지막은 아브라함 같다기보다는 모세와 같다. 그러나 작가가 이를 아브라함과 같았다고 해석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엡스타인은 실종됐거나 죽은 것이지만, 사실은 새로운 세계?작가의 해석대로라면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하느님이 의도하신 것이 되기 위한 공간을 만들'(325쪽)기 위해?로 떠난 것이다.

 

이미 거기에

 

니콜의 마지막 챕터이자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이미 거기에’이다.

간신히 사막을 빠져나온 니콜은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그사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짧은 전쟁도 끝난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그 여파로 힘이 없고 피로하고 여전히 식욕이 거의 없는 니콜은 다시 힐턴 호텔에서 머물고 그곳에서 추락하는 한 남자를 본다. (이것은 니콜이 뉴욕을 떠나 힐턴에 오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이미 과거의 일인데 니콜이 지금 시점에서 이 사건을 목격한다.) 그리고 니콜은 뉴욕으로 돌아가 여행가방을 끌고 현관 계단을 오른다. 집안엔 아이들과 의자에 앉은 내가 있다.

 

이 글을 번역한 민은영은 ‘옮긴이의 말’에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변화가 아니라, 각기 다른 물질적 현실들을 통과하는 영혼의 연속성에 관한 이야기." (363쪽)라고 이 작품에 대해 정의내리는데, 사막을 선택한 엡스타인이나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을 선택한 니콜 둘 다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고, 질서와 논리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에서 놓여난 삶의 주름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s*****n 2020.10.3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내 앞에서 어두운 숲을 지나간(지나갔을까?) 작가의 이야기
"내 앞에서 어두운 숲을 지나간(지나갔을까?) 작가의 이야기" 내용보기
나는 <사랑의 역사> 옆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꽂아두었고 <엄청나게...>를 읽은 다음엔 <사랑의 역사>를, <사랑의 역사>를 읽은 다음엔 <엄청나게...>를 읽었다. 그래서 알마와 오스카는 영혼을 나눈 쌍둥이처럼 살을 맞댄 표지 사이를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두 작품의 서사를 뒤섞어 버리곤 했다.작가 커플의 사랑과 삶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서,
"내 앞에서 어두운 숲을 지나간(지나갔을까?) 작가의 이야기" 내용보기
나는 <사랑의 역사> 옆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꽂아두었고 <엄청나게...>를 읽은 다음엔 <사랑의 역사>를, <사랑의 역사>를 읽은 다음엔 <엄청나게...>를 읽었다. 그래서 알마와 오스카는 영혼을 나눈 쌍둥이처럼 살을 맞댄 표지 사이를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두 작품의 서사를 뒤섞어 버리곤 했다.
작가 커플의 사랑과 삶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서, 오래 전에 이혼한 줄을 몰랐다. 그러리란 생각을 못 해봤다.
그건 살아온 방식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서 어느새 '어두운 숲'에 들어선 줄 몰랐던, 뒤늦게 길을 잃어버린 작품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의 내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
<사랑의 역사>보다 <위대한 집>이, <위대한 집>보다 <어두운 숲>이 더 난해하고 재미없었다. 그토록 생동하던 감각은 무뎌져가고 대신 삶을 지속할 의미들을 찾아야만 하는, 어쩌면 인생이 그런 여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z******8 2020.08.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어두운 숲
"어두운 숲" 내용보기
니콜 크라우스 작가의 소설, '어두운 숲' 리뷰입니다. 니콜 크라우스라는 작가는 어떤 작가인지, 이 책까지 읽고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필력을 가지고,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는 것 정도일까요.  면밀한 문장들과, 꽤나 긴 호흡의 이야기 (두꺼운 책이라는 이야기랍니다), 이게 어떤 이야기인지 쉬이 감을 잡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읽
"어두운 숲" 내용보기

니콜 크라우스 작가의 소설, '어두운 숲' 리뷰입니다. 니콜 크라우스라는 작가는 어떤 작가인지, 이 책까지 읽고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필력을 가지고,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는 것 정도일까요. 

면밀한 문장들과, 꽤나 긴 호흡의 이야기 (두꺼운 책이라는 이야기랍니다), 이게 어떤 이야기인지 쉬이 감을 잡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싶은지 궁금하다는 생각은 계속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책도 한권 읽어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r********d 2023.04.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