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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잠시 시골 살 때는 집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지금은 도심 속에서 살다 보니 개와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뚝 끊겼다. 특히 사람을 잘 따르는 개와 달리 사람을 경계하고 마치 사람을 깔보는 듯한 특유의 시니컬한 눈빛이 영 마땅치 않은 고양이는 다욱 관심 밖의 그런 동물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고양이에 관한 책 - <고양이가 쓴 원고로 만든 책(폴 칼리토 / 월북)>, <행복한 길고양이(종이우산/북폴리오)> - 과 고양이 사진으로 유명한 블로거들의 글과 사진을 접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면서 저렇게 앙증맞고 이쁜 고양이라면 나도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져 아내와 진지하게 상의를 해본 적이 있었다. 결국 고양이를 자유롭게 키울 수 있는 단독 주택이 아니라 이웃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라 “고양이 키워보기”는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껴안고 있는 고양이를 볼라치면 괜히 다가가서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단지를 떠도는 길고양이들을 보면 어디서 사는지 괜히 따라가 보곤 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달랜 아쉬운 마음을 제대로 들쑤시는 그런 책을 만났다. 바로 시골 길고양이들을 담은 이용한의 <명랑하라 고양이(북폴리오/2011년 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전작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에서 도심 속 길고양이들을 담아 많은 애묘가(愛猫家들에게 절대적인 지지- 아쉽게도 전작을 읽어보진 못했다 - 를 받았다는 작가가 이번에는 여름에서 시작하여 다음해 여름까지 1년 반 동안 만난 시골 길고양이들의 삶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사실 도심에서는 여기저기서 발견하는 고양이 배설물, 고양이가 찢어 놓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서 흘러나오는 악취, 한 밤에 들으면 마치 귀신소리처럼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이미 골칫거리로 전락해 고양이 번식을 막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나올 정도인지라 한적한 시골에서는 그래도 그런 위협은 없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오히려 도심보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보금자리인 축사며 집들이 철거되어 하루아침에 쉼터를 잃어버리고 거리로 내몰리는 시골 길고양이들 삶도 결코 녹록치가 않아 보인다. 작가는 그런 시골 고양이들의 고단한 삶 뿐 만 아니라 누구 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애교 만점의 고양이들의 모습들을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담아낸 사진과 함께 일기를 쓰듯이 꼼꼼히 적어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마치 이래도 고양이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저렇게 이쁜 눈망울을 한 고양이가 아직도 괜히 꺼름직하냐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많은 고양이들 중에 기억에 남는 고양이로 우선 그렇게 먹이를 줬건만 끝까지 고양이 특유의 시니컬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블로그 연재 당시에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는 “바람이”를 들 수 있겠다. 3개월이 넘게 먹이를 줬음에도 그 모습조차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왕초 고양이 “바람이”,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면 경계의 몸짓을 보이며 달아나 버리기 일 수 이며 항상 뚱한 표정으로 작가의 집에서 키우는 집고양이들을 일순 경계하게 만드는 포스가 장난 아닌 이 고양이는 엉뚱하게도 먹이를 주는 작가에 대한 보답(?)으로 새를 물어다 주는 선물을 했다고 한다. 난감한 작가가 앞서 선물한 두 마리를 묻어주자 죽은 새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지 세 번째에는 살아있는 새를 선물했던 이 고양이, 끝까지 왕초 고양이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시니컬한 모습을 간직했던 바람이는 만난 지 일년 만인 어느 봄 날 기생충 감염으로 보이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긴급 구조해 동물병원에 데려갔지만 결국 완치되지 못하고 무지개다리 - 이 책에서는 고양이의 죽음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라고 표현한다 - 건너고야 만다. 죽기 전날 찾아간 작가를 알아보는 듯한 묘한 눈 마주침을 하고 나서야 편안하게 잠들었다는 바람이 최후의 모습을 들려주는 대목에서는 절로 가슴이 짠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동네 파란 대문집 마당 고양이 -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는 고양이 - 인 “달타냥”을 들 수 있겠다. 막상 주인인 홀로 사는 할머니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지만 달 빛에 담 타는 모습이 멋져 “달타냥” - 삼총사의 그 달타냥이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한다 - 이라고 이름 붙인 이 고양이는 할머니가 마실 나갈 때 마다 마치 호위하듯 따라 걷기도 하고 문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하는 등 기특한 구석이 많은 그런 고양이였다. 볼 때마다 먹이를 줬더니 어느새 작가가 지나가면 따라 붙어 뒷동산을 같이 산책하기도 해서 “궁극의 산책 고양이”라고 지칭하는 이 고양이, 길고양이인 암컷 깜찍이와 사랑에 빠져 신혼집을 차려 새끼 다섯 마리 - 그 중에는 전혀 달타냥의 새끼라고 보기 힘든 검은 고양이이가 있어 작가는 깜찍이의 불륜을 의심하기도 한다 - 를 낳고는 홀대를 받기 시작하면서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열흘 씩 집을 비우기도 한단다. 개도 아니고 고양이가 주인을 졸졸 따라 다닌다니 여간 귀여운 녀석이 아니어서 한번쯤은 꼭 키워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녀석이다. 어디 인상 깊은 녀석들이 이 두 녀석 뿐이랴. 작가만 보면 벌러덩에 무릎 올라가기 신공을 펼쳐 보이는, “개냥이”라 부를 정도로 궁극의 접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어디선가 쓸쓸히 죽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봉달이”, 개울가 방죽에 앉아 사색하는 모습에 철학자이자 소설가 이름을 붙여준 암컷 고양이로 폐가에서 새끼를 낳아 가족을 이뤘지만 집이 철거되면서 영역을 잃고 떠돌다가 새끼마저 잃고 자신 또한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불쌍한 고양이 “까뮈”, 어미 까뮈와 형제들의 죽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어엿이 성장한 두 형제 고양이 “당돌이와 순둥이” 등 한 마리 한 마리들의 “묘생(猫生)”이 사람들과 비교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고양이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종의 “애묘가(愛猫歌)” 또는 “헌사(獻辭)”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앙증맞고 귀여운 고양이 재롱들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다가도 쓸쓸하게 죽어간 가엾은 고양이들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는 등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다 보니 어디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금세 다 읽어버리게 되었다. 작가는 마지막 4부 여름편의 부제(副題)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명랑하라 고양이”로 달아놓았다. 길 위에서의 묘생이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겨울 추위에 쓸쓸히 죽어가기도 하고,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돌에 맞아 한 쪽 눈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길고양이들을 죽이려고 풀어놓은 쥐약에 목숨을 잃기도 하는 등 결코 명랑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인데도 작가는 길고양이들에게 명랑하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길고양이들의 삶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는 고양이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고양이들의 별”에서의 안온하고 행복한 삶이 인간과 어우러지는 이 지구라는 별에서도 꼭 이뤄지기를, 그래서 그들의 삶이 “명랑”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바람 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어떤 손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피고 쓰다듬는데, 어떤 손은 길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고 막대기를 휘두른다. 어떤 손은 아름답고 어떤 손은 공포가 된다. 망설이는 당신, 길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어보라. 길고양이는 당신의 아름다운 손을 기다리고 있다.- P. 247
즉 이제는 더 이상 길고양이의 삶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그들이 삶이 온전히 “명랑”해질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덕분에 간신히 달래놓은 고양이를 키워보겠다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불쑥 내민다. 그러나 아파트에 사는 이상 집고양이를 키우겠다는 내 소망은 이루기가 여전히 요원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아파트 단지에서 종종 만나는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더 가져볼 생각이다. 먼저 가을까지 종종 눈에 띄던, 그 어느 해보다 모질었던 겨울 동안은 자취를 감췄던 우리 아파트 단지 길고양이 “냥이” 녀석을 찾아봐야겠다. 그래도 1월 중에도 가끔 나타나서 음식을 몇 번 준 적이 있다는 경비 아저씨 말씀을 들어보면 분명히 어딘가에 씩씩하게 살아있을 것 같다. 직접 찾아다니지는 못하지만 경비 아저씨께 고양이 사료라도 사 드려야겠다. 작가처럼 꾸준히 먹이를 줄 수 는 없겠지만, 먹이를 준다고 해서 그네들이 “달타냥”이나 “봉달이”처럼 내 품에 안겨 재롱을 떨지는 않겠지만, 그네들을 그저 거리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불쌍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네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무심히 외면하지 않고 가서 따끔하게 혼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작가가 말하는 “아름다운 손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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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라는 책의 저자를 모르고 표지만 봤을 때, 가장 먼저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는 책이 떠올랐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고양이의 모습에서 받는 느낌이 익숙했다고나 할까.. 역시나 알고 보니 이 책은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두 번째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저자의 첫 번째 책을 읽었던 나는 두 번째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사실, 동물들을 좋아하고 특히나 강아지는 너무 좋아하지만, 고양이는 나에게 조금은 무섭게, 멀게 느껴지는 대상이었다. 어릴 적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지만 반면 고양이에게 할큄을 당했던 한 번의 기억과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들과 가출을 해버린 일, 그 2가지가 나에게 고양이와 함께 했던 기억으로 자리 잡아 있었다. 너무 어릴 적이지만 잠깐의 그 2장면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특히나 가끔 조용한 밤에 무섭게 울어대는 길고양이들과 어슬렁거리며 불쑥 나타나 지켜보는 듯한 고양이를 간혹 만나게 되는 것도 무서웠다. 그래서 길고양이에 대해 좋은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고양이, 그것도 길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바꿔 준 몇 가지 중에 하나가 저자의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는 책이였다. TV를 보면서 길고양이의 수가 늘어나 인간과 길고양이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접하며 가지게 된 길고양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저자가 길고양이를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이 겹쳐지며 생각아 고양이, 특히 길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켜 주었다.
두 번째 이 책에서는 저자의 영역이 시골 마을로 옮겨졌다. 길고양이들을 보면 특징을 집어내 이름을 지어주던 저자의 모습을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다. 2년 가까이 인연을 맺은 60여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저자와 교감을 나눴던 고양이들의 따뜻한 이야기이다. 살면서 고양이를 알게 된 것이 우연이고 그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 묘생을 담아낸다.
시골로 영역을 옮긴 저자에게 나타난 바람이, 배고픈 고양이에게 먹고 가라고 놓아둔 먹이를 바람같이 나타나 먹고 가며 먹이를 준 지 달포가 지나서도 저자에게 정을 주지 않던 바람이. 그러나 점점 저자의 생활에 슬며시 들어오며 애교도 없고 그루밍도 하지 않던 바람이가 저자에게 내미는 엉뚱한 세 가지 선물을 보고 얼마나 황당하면서도 사랑스럽던지. 그동안 흐른 시간만큼, 길고양이였지만 바람이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마움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달타냥, 할머니 따라 마실 가는 고양이, 사람을 잘 따라다니지 않는 고양이의 특성과 달리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할머니에게는 이름도 없는 무명씨, 단지 쥐를 잡기 위해 키우는 고양이. 저자는 달밤에 담을 터 넘는 고양이를 보고 달타냥이라 붙여준다. 만날 때마다 먹이를 주고 애정을 보이니 저자도 잘 따르고 산책도 같이 하는 애교많은 달타냥.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들처럼 시골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열악한 환경도 관심을 끌었다. 이웃마을 축사에 사는 대가족 축사고양이, 새끼 노랑이의 주검이 그대로 썩어가고, 축사나 외양간 웅덩이에 고여 있는 소 오줌물이나 구정물인 '소지랑물'을 먹으며 생활하는 길고양이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봉달이, 덩달이, 가만이, 여리 등 다양한 길고양이와 저자는 따뜻한 교감을 주고받는다.
책을 읽으면서 만날 수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도 이 책을 만나는 또 다른 재미이다. 사진을 통해 무섭게만 느껴졌던 길고양이들의 귀여운 모습과 순간순간 동작을 포착하고 또 일러스트로 재치 있게 담아내면서 길고양이에 대한 매력을 담아냈다. 길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독자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독자도 좋아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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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를 처음 만난 건 며칠 전 서점에 갔을 때였다. 신간서적과 베스트셀러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곳에 제법 상큼한 표지의 이 책이 다소곳이 누워있었다. 그런데 손이 책으로 가다가도 순간 멈칫했다. 제목에도 있지만 표지의 고양이 사진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무서워하는 동물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섭다’가 자연스럽게 ‘싫다’로 바뀐 것뿐이다. 어쨌든 고양이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일단 책을 넘기며 대강의 내용을 살펴본 결과 저자의 글이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결국은 이렇게 책을 손에 넣고 끝까지 읽게 되었다.
<명랑하라 고양이>는 저자의 첫 번째 길고양이 관찰기록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시즌 2인 격이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간 이용한 작가가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시골 고양이들과 함께한 1년 반의 기록은 이 책으로 새로이 엮었다. 이 책에서 특히나 재밌었던 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면면이 소설의 캐릭터들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저자는 친절히 고양이들의 캐릭터 설명을 먼저 해 놓았다. 그러나 내용을 읽기 전에는 그 캐릭터를 아무리 봐도 노란고양이, 검은고양이, 회색고양이로밖에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계절을 지나 다시 처음 만난 계절 여름이 돌아올 무렵에는 나도 대강의 사진만 봐도 ‘아~ 얘는 바람이고, 얜 달타냥이구나! 저 까만 애교점의 고양이는 까뮈군!’하며 고양이들의 식별이 가능해 졌다.
저자의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읽지 않아서 나는 정확히 어떤 인연으로 저자가 길고양이들의 돌보미가 되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양이와 우연에서 인연으로 맺어진 저자는 이미 집으로 데려와 기르는 길고양이 랭보도 있지만, 시골 동네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에게도 아낌없이 양식을 주며 그들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 길고양이들 중에서도 도도하지만 특유의 뚱한 표정이 매력이었던 ‘바람이’가 마음을 짠하게 한다. 그리고 제 자식인지 의심스럽지만 부성애를 발휘하고 있는 ‘달타냥’도 기억에 남고, 특이하게 눈을 좋아하던 ‘봉달이’와 ‘덩달이’도 인상 깊게 남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길고양이의 생이 어떠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가끔 퇴근길에 어두컴컴한 아파트 화단이나 자동차 밑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나를 놀라게 했던 길고양이는 늘 무서운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고양이의 눈을 사랑스럽다고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적어도 길고양이들의 생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그들의 치열한 생존의 사투가 가련하다. 누군가의 반려동물이었다면 얼마든지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안전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길고양이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살기 위한 투쟁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웃고 까불고, 사람들의 주위를 맴돌며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 있든 지금의 이 겨울도 그들이 잘 견디고 있기를 바란다. 곧 봄이 오고, ‘달타냥’이 좋아하는 꽃이 피는 계절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응원하고 싶다. 그들의 무운을 빈다. 그리고 명랑하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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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한님의 명랑하라 고양이는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에 이은 두번째 작품으로 시골 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이 담겨 있다. 책을 읽기 전엔 고양이 사진을 찍으러 시골까지 진출한 것일까 ? 라는 생각에 의아했는데 도시를 떠나 시골이나 다름없는 전원으로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만나게 된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것이더라는 ~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읽을때 느꼈지만 고양이들 이야기는 물론 순간포착한 멋진 사진들은 하루아침에 찍을수 없다는것을 알기에 그 노력과 정성에 감동!!!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 없듯 사연 없는 고양이는 없다고 저마다의 이름으로, 행동으로, 한결같이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고 울었던 주말이었다. 책에는 묘생의 희노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고, 그들의 모습에 덩달아 희노애락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고양이'가 아닌 '고양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저자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지속적으로 마주하는 동안 일어나는 매일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담아냈다. 눈에 띄는 특별한 무늬가 없이 색이 비슷하면 이녀석이 그녀석같이 사진을 찾아 비교하는 나는 완전 왕왕왕초보자 ㅠ-ㅠ 그 많은 고양이들의 모습과 성격은 물론 지나온 역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을 읽고 있노라면 동물농장을 보는 것보다 큰 재미에 빠질 것이다.
봉달이, 바람이, 달타냥, 덩달이, 까뮈, 당돌이와 순둥이, 여울이, 축사고양이, 여리, 가만이, 전원고양이 등등 수많은 고양이들이 등장하는데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래도 먹이를 준 지 3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체를 드러내지만 여전히 무뚝뚝하고 까칠하며 애교도 없는, 쉽사리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바람이' 저자만 나타나면 쏜살같이 달려오는 바람에 마라토너 이봉주의 별명을 빌려 '봉달이'라 부르게 된 고양이, 졸졸 따라다니는 것은 기본이요, 뒤집기와 발라당은 옵션인 데다 누워서 빤히 눈을 맞추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인, 파란대문집 산책고양이 '달타냥'. 요 세마리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큰 매력을 갖고 있는데 특히나 사람만 보면 착착 안기고 살갑게 구는 고양이 '봉달이'와 '달타냥'이라면 고양이데 대해 왕초보인 나도 잘 키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절로 붙는다는 ~ 저자 역시 한 번도 고양이를 안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봉달이'를 적극 추천한다 적어놨더라 ㅎㅎ
![]() 깨를 베고 난 날카로운 깨 그루터기에 이를 쑤시고 있는 '달타냥' <p.92 참고> ![]()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간 사연은 ? <p.111 참고> ![]() 고양이가 날짐승이 아닌데도 '나비'라 불리우는 것은 이것 때문 ??? <p.162 참고> 간결한 점프, 군더더기 없는 비행자세, 안정적인 착지까지. 봉달이의 비행. 고양이 점프란 이런것이다 !!
봉달이가 개울을 건너뛰는 모습을 보고 일년동안 '날아라 고양이'프로젝트를 진행해볼 생각이었는데 하천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개울이 형체를 알 수 없게 파헤쳐지면서 어쩔수없이 중단되고 말았는데~ 아~ 이것은 정말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합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봉다리의 나는 모습을 더 보고팠는데 +_+ ![]() 고양이 보초 서는 까치. 이들의 사연은 ? <p.192 참고> ![]() ![]() 철쭉 속에서 노는 꽃고양이 / 금낭화를 좋아하는 봉달이 +_+
고양이와 금낭화. 금낭화와 고양이 앞으론 금낭화가 아니라 금냥화라 불러야지 ~ ![]() 고양이 등에 고래가 +_+ 보고 또 봐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고래 고양이 이이야기는 <p.213 참고> . .
그 외 눈을 좋아하는 덩달이와 시집도 가지 않은 암컷개가 제 자식처럼 젖을 먹이고 품 안에서 키운 고양이들의 사연이 그러하다.
개도 아니고 할머니 따라 마실 가는 고양이 '달타냥', 철쭉 속에서 노는 고양이, 금낭화를 좋아하는 고양이 '봉달이' 사연에 웃었다가도 축사나 외양간 웅덩이에 고여있는 소오줌물이나 구정물을 가리키는 '소지랑물'을 먹고 사는 축사 고양이 사연에는 안타까웠다가 기생충에 감염되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바람이' 사연에는 절로 눈물이 나더라. 어디 그뿐이랴 ~ 내가 좋아하는 봉달이는 어쩌고 흑흑흑 축사가 철거되면서 호밀밭에 머물렀지만 그것마저도 갈아엎어져 터전을 잃게 된 고양이들. 적당한때에 부모곁을 떠나 독립하게 된 다른 고양이들과는 너무 다른 사연. 그 모든 것이 우리네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야하나. 불평할 것도 자만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시골이라 마냥 평화롭고 여유로울 것 같았던 고양이들의 삶.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시는 전원주택에 사시는 할머니도 계시지만 이곳에서도 몰래 밥챙겨 주는걸 싫어하거나 텃밭을 파헤쳐 오줌을 싼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거나 돌을 던져 괴롭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이때만큼은 인간인 내가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사람의 손은 길고양이에게 구원이 될 수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손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피고 쓰다듬는데, 어떤 손은 길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고 막대기를 휘두른다. 어떤 손은 아름답고 어떤 손은 공포가 된다. 망설이는 당신, 길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어보라. 길고양이는 당신의 아름다운 손을 기다리고 있다. <p.247>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_+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때때로 명랑한.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고고씽 ~
![]() 책 속 예쁜 고양이 스티커 2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고양의들의 모습이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멋지다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때때로 명랑한.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고고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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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 책이 눈에 먼저 닿을 수 밖에 없었다. 선한 눈빛과 둥근빵을 연상시키는 도톰하고 복실거리는 귀여운 발, 애교섞인 몸짓으로 사람의 다리에 몸을 부비며 아양을 떠는 녀석들은 제목그대로 명랑한 모습으로 사진속에 가득 담겨있었다. 1년 반이란 시간동안 함께 해온 고양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진과 함께 재미나게 써 내려간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애틋했으며, 때로는 가슴아린 슬픔이 교차했다. 우선 첫장에는 이 책에 나오는 고양이들의 영역지도를 알기쉽게 그려놓았다. 그리고 등장고양이에 프로필(?)이 나와있고 고양이와의 즐겁고도 행복했던 시간, 이별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명랑하라 고양이란 제목속에는 많은 의미를 숨기고 있는거 같다. 낭만적이고 호기심많은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고양이를 죽이기도 한다. 그렇게 고양이들은 천대받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늘 그렇듯 그들은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헤쳐나간다. 글쓴이의 집 마당에 답례로 죽은 새를 놓아주다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듯 하니 살아있는 새를 잡아다 주던 바람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 녀석은 끝내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책속에서 수많은 이 들의 사랑을 받으며 왕초고양이 답게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생각한다. 고양이는 보은을 잘 하는 동물이다. 예전에 지붕에서 떨어진 새끼고양이를 찾아다 다시 올려주자 어미고양이가 집 문앞에 죽은 쥐를 가져다 놓고 냥냥 거리던 모습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생각났다. 나는 잊고 지낸지 오래되었는데 바람이의 선물속에서 어릴적 그 고양이의 보은이 생각난것이다. 그때 그 죽은쥐를 앞에 두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어미고양이가 쥐를 문앞에 두고 나를 응시하던 그 눈빛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그 어미고양이에게 고맙다고 했어야 했는데.. 도도한 왕초고양이 바람이가 아름다운 세상을 살다 갔길 바란다. 이 땅의 모든 고양이들이 늘 명랑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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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연이다. 살면서 고양이를 알게 된 것. 그리고 그 우연이 인연이 되었다." 시인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정확히는 길냥이다. 시인은 오지를 떠돌다 동네를 떠돌았고, 동네를 떠돌다 고양이를 만났다. 사람들은 흔히 길에서 보는 주인이 없는 고양이를 '도둑 고양이'라고 부르며 기피하지만, 시인에게 고양이는 또 하나의 이웃이었다. 2009년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에 이어 낸 고양이와의 두 번째 만남을 기록했다. 시인의 거주지가 바뀐 탓이다. 길에서 만나게 되는 개들은, 대개는 주인이 있거나 주인이 있었지만 주인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대부분 주인이 없이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먹고 자고 길에서 죽는 생을 반복한다. 많은 고양이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네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사람을 피하고, 사람도 고양이를 피하는 까닭이다. 간혹 차 밑이나 으슥한 골목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어쩌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고양이를 만나기도 한다. 빤히 쳐다본다. 사람과 만나는 것이 익숙해진 탓일까. 한 번은, 집앞의 쓰레기 봉투를 헤집고 있는 고양이와 마주했는데, 낼름 도망가더니 멀리 가지 않고 골목 귀퉁이에 서 있다. 내가 가던 길을 걷고 봉투에서 멀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원하는대로 나는 집으로 들어갔고, 고양이는 다시 봉투로 기어왔다. 그 봉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뭘 먹겠다고 계속 헤집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 있던 참치캔을 따서 집 앞에 두었더니 처음엔 경계하던 녀석이 그걸 다 먹어버렸다. 흔적도 남겨놓지 않고. 그러나 다시 그 고양이를 만난다 해도 참치를 먹은 고양이인지 구별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책에는 고양이의 생이 담겨 있다. 시인이 사는 동네에는 많은 고양이들이 살고 있고, 처음에는 그들을 구별하지 못했지만, 곧 그들의 거처와 특징, 가족 관계까지 꿰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어떤 고양이가 사라지면 그 고양이의 행방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십중팔구 누군가에게 맞아 죽거나 겨울을 나지 못한 경우다. 고양이는 사람들 곁에서 어울리는 동물은 아니지만, 분명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울고 웃고 아파하는 또하나의 존재를 우리 곁으로 불러온다.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명랑하라 고양이." 덧) 이 책에 실린 고양이 사진은 시인이 직접 찍었다. 이런 장면을 어떻게 포착했을까 싶을 만큼 재미난 사진도 많다. 그만큼 시인이 길에서 고양이와 지낸 시간이 많다는 증거일 게다. 또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고양이가 카메라를-아니, 정확히는 카메라를 든 시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친근하다는 것이다. 매번 밥주고 물주고 놀아주기에 이런 표정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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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때, 쪼그만 강아지가 골목앞길을 막고 있어서 2시간동안 그 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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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이용한 작가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먼젓번 책은 도심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면 이번 책은 시골 길고양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저자가 이사한 곳에는 꽤 많은 고양이들이 거주한다. 물론 도심보다는 그 밀도가 낮은 편이지만 어림잡아 약 60마리의 고양이와 인연을 맺었다고 하니 시골치고는 꽤 많은 수가 이곳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내가 여름마다 가는 시골집 근처에는 고양이의 수가 10마리 남짓 정도밖에 없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 여름과 가을, 겨울, 봄, 다시 여름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며, 많은 고양이들이 각각의 꼭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이야기이기에 각각의 고양이에게는 이름도 있고, 저마다의 사연도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바람이는 이 동네 왕초고양이로 저자의 집에서 급식을 하던 녀석이다. 처음에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다가 3개월이 넘어 가면서 슬쩍슬쩍 얼굴을 보여주었고, 좀더 지나서는 밥을 달라고 으냥냥거리기도 하고 저자의 집에 있는 고양이 랭이와 랭보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한 녀석이다. 매일매일 밥을 먹으러 오면서도 절대 곁을 내주지 않던 바람이지만, 급식에 대한 고마움으로 새를 잡아 선물하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죽은 새를 가져 오더니 나중에는 살아있는 새를 기절시켜서 가져왔는데, 사람이 선물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자 선물의 상태(?)를 달리하는 배려를 보였던 것이다. 고양이의 선물을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양이가 선물을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람이 역시 무뚝뚝한 면이 많았지만 속정은 깊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인연을 맺은지 1년정도 지나 바람이는 희귀 기생충에 감염되어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바람이는 그곳에서도 왕초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달타냥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녀석이다. 할머니가 노인정으로 가실 때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 마중을 나가는 궁극의 접대냥이이자, 산책을 즐기는 궁극의 산책냥이기도 하다. 잘생긴 외모에 사근사근한 성격은 누구라도 반하게 할 정도. 달타냥은 깜찍이란 암컷을 만나 사랑을 키웠고 그 결과 아기 고양이가 다섯마리나 생겼다. 하지만 달타냥을 닮은 크림색은 한마리도 없고, 엄마를 닮은 고등어랑 올블랙이 태어났다고. 아무리 봐도 달타냥의 새끼는 아닌 듯 하지만 달타냥은 그에는 상관없다는 듯 깜찍이와 아기 고양이들을 위해 먹을 것도 집마당도 양보하는 착한 녀석이다. 마을 축사에 사는 고양이 가족은 길고양이 가족 수치고는 꽤 많은 11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비록 환경은 열악해도 가족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맨앞에 보이는 큰 고양이가 대모 고양이로 가족의 우두머리이다. 윗배 새끼들과 아랫배 새끼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하지만 사는 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해던 만큼 대모 고양이가 병에 걸리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물은 더 중요하다. 오염된 물을 먹고 살았던 탓인지 병에 걸렸지만, 무사히 회복했다고.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계절은 겨울이다. 몸집이 작은만큼 겨울에 태어난 새끼는 간혹 얼어죽는 경우가 발생한다. 축사에서는 개사료를 끓이느라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데 그 여열이 고양이들을 따뜻하게 해준다. 때로는 남은 열기에 몸을 데우기 위해 아궁이로 들어가 재투성이가 되어도 추운 것 보다는 낫지, 싶다. 환경도 열악하고 배 부르게 먹지도 못하는 생활이지만 축사 고양이네에 경사가 생겼다. 대모 고양이가 새끼 여섯마리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곧 축사가 철거되어 버렸고 아기 고양이 여섯마리는 종적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갑작스런 철거로 집을 잃은 축사 고양이네 가족은 생존을 위해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몇 마리 남은 녀석들은 축사 근처 호밀밭에서 생활하고 있기도 했지만, 축사철거로 인해 호밀을 소사료로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축사는 호밀밭마저 갈아엎었다. 근처에 동물 사체와 축사 쓰레기를 태우던 곳에 몸을 숨긴 여리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까뮈는 네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낳았다. 빈집에 거주를 했었지만 이 집도 철거. 까뮈네는 엄동설한에 집을 잃은 것이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까뮈는 두 마리의 새끼를 잃었다. 아기 고양이들을 추위로부터 지키기 위해 바람을 막고 앉아 있는 카뮈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남은 두 녀석인 당돌이와 순둥이에게 어미 까뮈는 맵고 짠 총각무 김치를 내놓았다. 그 전에 집이 있을 때는 저자가 사료를 가져다 주었지만 집의 철거 이후 종적이 묘연해졌더니 이런 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고양이라고 이런 게 맛있어서 먹겠는가. 배는 고프고 날씨는 추우니 이런 것이라도 먹어야 버틸 수 있으니 먹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새로운 영역을 찾았고 이곳에서 까뮈네의 생활은 순조롭게 이어진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어미 까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새끼 고양이들을 독립시켰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해 죽은 채로 까뮈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고양이에 대해 편견과 적대심을 가지고 대한다. 그런 적대심에는 이유도 없다. 예전에는 시골 인심이 좋았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인심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귀찮아하고, 밭을 파헤친다면서 쥐약을 놓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해코지에 희생되는 고양이는 점점 많아져 간다. 하지만 늘 사람들이 고양이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전원고양이들의 생활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길고양이 한 마리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맺어진 인연이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을 불러 들였다. 위에 있는 사진을 보면 고양이들 꼬리가 한껏 치며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완전 기분좋아, 완전 행복해 오라의 발산이랄까. 밑에 있는 사진을 봐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 어묵을 먹으면서 웃고 있는 듯한 고양이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비록 고양이 사료가 아니라 개 사료나 사람이 먹던 밥일지라도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 편히 쉴 수 있다는 것, 매끼 밥을 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이 녀석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욕심내며 살고 있는지. 전원고양이네에는 큰 개도 한 마리있다. 이 개는 처녀개로 새끼 한 번 낳아본 적이 없지만 아기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렸다. 그래서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고양이들은 개 뒤로 숨거나 개 집으로 피신하고 개는 이들을 보호한다. 비록 종은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는 굳건한 믿음과 애정이 있다. 이 마을에는 개와 고양이가 가족처럼 지내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까치와 고양이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추운 겨울 먹을 것이 부족한 때에 까치와 고양이가 먹을 것을 나누어 먹는다. 보통 고양이들은 까치를 공격하거나 쫓아내겠지만 이 고양이와 까치는 차례를 기다려 사이좋게 먹을 것을 나누어 먹었다. 비록 먹을 것이라곤 배추쪼가리에 생선대가리밖에 없었을지라도. 이웃마을 개울냥이 여울이가 여름에 새끼 여섯마리를 낳았다. 아기 고양이를 위해 캣맘에게 먹을 것을 얻어 물고 가는 여울이. 엄마는 아무리 더워도 아무리 추워도 아기들을 위한 먹이 원정을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여울이를 보니 시골집 근처에 사는 어미 고양이가 떠오른다. 겨우 2킬로 그램이나 될까, 눈에도 이상이 있지만 어미 고양이는 매년 새끼를 낳고 기른다. 눈 때문에 사냥을 하기 힘든 어미 고양이는 늘 구걸을 한다. 우리 집에 오면 사료를 줄텐데 얼른 와, 라고 말을 건네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는 이미 터줏대감처럼 눌러 앉은 녀석이 있어서 어미 고양이는 집 주위로만 지나갈 뿐이다. 이 긴 겨울, 어미 고양이는 무사히 살아남았을까. 그리고 어미 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도 잘 살아남았을까. 그해 여름 축사 고양이 중 한마리였던 가만이도 새끼를 낳았다. 총 네마리의 아기 고양이와 가만이는 돌담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여름 더위로 푹푹 찌는 가운데 가만이네 식구와 여리가 쉬고 있다. 하지만 이 장독대 옆의 풀이 베어지는 바람에 은신처를 잃어버린 후 장독대 가까이에는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덩달이(좌)와 봉달이(우)는 마당고양이로 좋은 친구사이이다. 늘 함께 붙어 다니는 두 녀석. 눈밭에서 놀던 덩달이와 봉달이가 저자를 보고 반가워서 뛰어 왔다. 사료를 내 놓으시오~~~ 누가 고양이는 눈을 싫어한다고 했던가. 덩달이의 표정을 보니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눈밭에서 뒹굴고 뛰어 노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눈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이 아니라 눈 내린 후의 고양이처럼 즐겁다는 표현을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시골에서의 마당 고양이는 사실 길고양이와 다름없다. 그저 집이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생활은 밖에서 하니까. 봉달이는 개울가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특히 개울 건너뛰기 신공을 보여주는데, 이건 점프가 아니라 비상이다. 날아라 고양이! 하지만 하천정비사업으로 인해 봉달이가 뛰어 넘던 개울이 보로 막혀 버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봉달이는 여전히 비상한다. 이런 건 문제가 아니야, 라고 말하는 듯이. 언제 어디에서나 발라당 신공을 보여주었던 봉달이, 꽃이 피는 봄날 꽃아래 앉아 진정한 낭만고양이의 모습을 보여줬던 봉달이, 그리고 점프가 아니라 비상을 보여줬던 봉달이는 이제 없다. 밭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이 쥐약을 놓았는데 그 쥐약을 먹고 희생된 고양이가 아무래도 봉달이인 듯 하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밭을 죄다 망쳐놓은 것도 아닐텐데, 그 정도 이유로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무섭다. 우리 시골에도 가을에 땅콩같은 것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섞은 미끼를 두었다는데 그것을 먹은 고양이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산에서 내려오는 동물들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애꿎은 고양이들만 줄줄이 죽어나갔다. 물론 산에서 내려온 동물들 역시 이런 희생을 당할 이유는 없다. 사람들은 이제 나눠주는 것의 미덕은 다 잊어 버린 것일까. 사람들은 시골 고양이들이 도시 고양이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시골에는 인심도 박하고 먹을 것도 없다. 농약을 뿌려대는 통에 개구리도 없고, 메뚜기도 없고. 쥐약을 놓아 쥐도 없다. 예전에는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길렀지만 쥐가 거의 없는 요즘, 고양이들은 그저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고양이를 싫어한다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될텐데 굳이 해코지를 하고 죽이려는 이유는 뭘까. 이렇게 작고 여린 생명이 뭐가 그렇게 큰 죄를 지었다고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시골이든 도시든 고양이의 삶은 척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늘 힘들고 아프고 슬픈 순간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짧은 시간의 편안함일지라도 그들은 그시간을 기꺼이 누릴 줄 안다. 삶이 고달파도 꿋꿋하게 참으며 살아간다. 짧게 반짝이는 순간의 행복일지라도 그들은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인간들이 못살게 굴어도, 주위 환경이 척박하게 변해도, 고양이들은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명랑하라, 고양이! 삶이 그대를 아프게 할지라도, 아무리 긴긴 밤이 있다 해도 밤이 지나가면 아침이 올 것이고, 아무리 추운 겨울날이 있을지라 해도 그것이 지나면 봄이 올지니. 사진 출처 : 책 표지, 책 본문 中(10~11p,16+97+190+278p, 23p, 32~33p, 76p, 83p, 154p, 249p, 286~287p, 102p, 141p, 244p, 262p, 192p, 299p, 342p, 135p, 136p,163p, 203p, 256p, 368p, 372+37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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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도도함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자취하는 친구가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족으로 맞이한 고양이 두마리. 한번은 그 친구네 집에 친구가 놀러와 하루를 같이 지샌적이 있었다고 한다. 고양이와 친해지려 쥐 잡기 놀이도 같이 해주고, 밥도 직접 주고, 온갖 아양을 다 떨었지만 아무리 불러도 들은체도 하지 않던 고양이들.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으니. 친구가 잠결에 머리쪽이 축축한 느낌이 들어 살포시 잠에서 깨보니 자신의 머리위에 아까의 그 도도한 고양이 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다. 그것도 그냥 처다보고 있는것이 아닌 흔히 윗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 자세로 자신의 앙증맞은 발을 친구의 머리에 대고 쓰담쓰담은 물론, 한번씩 혀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기까지. "너는 내 보호아래 있다. 내가 예뻐해 줄테니 잘 자거라-" 이런 뉘앙스로 친구를 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에게는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하진 않는다는데, 고양이들도 자기 나름대로 서열의식은 가지고 있나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웃었던지.
강아지만큼 애교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주인이라고 절대 속내를 다 보여주진 않는다는 고양이를 보며 그네들은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사뭇 궁금했다. 흔히들 사람들은 떠도는 강아지를 보고는 유기견이라며 보호해준다. 하지만 고양이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히려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며 내치지 않았던가. 오갈곳 없이 집을 잃고 떠도는 처지는 똑같은데 한쪽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동물이라 생각하고, 한쪽은 사건만 읽으키고 피해를 불러오는 장본인이라며 기분나쁘게 생각하기 일쑤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중에 한명이었다. 괜히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해코지 할까봐 눈길을 피했고, 따뜻한 밥 한번 준적 없으면서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그네들을 보며 참 지저분하다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도도하고 까탈스럽다고만 생각했던 고양이. 하지만 그네들에게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나름의 상처들이 있었으니-
고양이들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이용한씨가 시골마을에서 고양이들과 동침을 하면서 써내려간 그의 이야기에는 사람사는 냄새와 따뜻한 온정이 느껴졌다. 자신이 느낀바를 그대로 적은 이야기들도 있고, 고양이들의 시선으로 우리를 관찰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바람이와 작가가 교감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핑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3개월을 넘게 매일같이 사료를 제공하는데도 바람이는 여전히 도도할 뿐이다. 그래도 나름 고마움의 표시로 새를 잡아 작가에게 선물을 바치지만 그 선물을 받는 작가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그인지라 바람이가 상처받지 않게 몰래 선물 뒤처리를(?) 하는 모습에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 바람이는 바람이 나름대로 몇번의 시도와 실패 끝에 어렵사리 잡은 사냥감을 큰 맘 먹고 작가에게 선물한 것인데 일반 사람들은 그걸 못된 행동이라고만 생각하고 고양이들을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고양이들도 고마움을 느끼고, 이를 갚고자 했던 것 뿐인데 시각의 차이가 빚어내는 오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강아지보다 사람을 더 잘 따르던 접대냥 달봉이, 마을 어른들의 산책동무 달타냥, 달봉이의 절친인 덩달이, 지극한 모성애를 보여주고 떠난 까뮈, 한없이 도도하다고만 생각했던 바람이의 마지막 모습 등을 보면서 묘생길도 녹록치만은 않구나 생각했다. 자연과 함께 살고자 했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길 원했던 그들은 인간들의 무자비한 개발과, 무관심속에서 하루하루 힘든 삶을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의 주변에선 갈 곳 없는 고양이들이 먹을거리들을 찾아 지천을 헤매고 있을테지. 어떤 고양이들은 운 좋게 인심좋은 사람을 만나 밥 한그릇 얻어 먹을 수도 있고, 어떤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이유없는 원망의 소리를 들으며 이곳저곳 쫓겨다니고 있을 모습에 가슴 한켠이 싸하다. 부디 고양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저 먼 고양이별로 돌아가기 전까지 이곳에서의 삶이 따뜻했다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낸 이곳을 그리워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