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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사회적 청춘에 대한 기록
"90년대 사회적 청춘에 대한 기록" 내용보기
아마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숨쉴틈 없이 달려온 봄 학기의 마지막 고비를 넘던 지난 5월, 캘리포니아의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푸코와 벤야민의 역사 인식 대한 두 개의 논문을 마치고 있을 무렵, 유출된 건축학개론을 유튜브로 보면서, 잊혀진 줄 알았던 내 청춘의 기억들이 되살아옴을 느끼고 있던 때,  이 책의 원문이 된 Matti(저자 이명준씨의 온라인 필명)의 글을 읽으며, 벌써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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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숨쉴틈 없이 달려온 봄 학기의 마지막 고비를 넘던 지난 5월, 


캘리포니아의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푸코와 벤야민의 역사 인식 대한 두 개의 논문을 마치고 있을 무렵, 


유출된 건축학개론을 유튜브로 보면서, 잊혀진 줄 알았던 내 청춘의 기억들이 되살아옴을 느끼고 있던 때,  


이 책의 원문이 된 Matti(저자 이명준씨의 온라인 필명)의 글을 읽으며, 

벌써 오래 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잊고 지낸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만났던 것은.  


당시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사태로 진보의 해묵은 숙제가 전면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대중적 공론화되고 있을 무렵,  


저자 이명준씨는 이러한 진보의 치부가 우리들의 90년대 대학과 학생운동의 경험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지에 주목하면서, 우리들의 말할 수 없던 바로 그 문제의 기원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우리의 진보는 왜 어떻게 정체되었고 여러 청산 못한 과거를 짊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90년대라는 역사적 환절을 온 몸으로 겪어내던 한 이름 없는 대학생의 기억에서 끄집어내 내부로부터의 시각으로부터 해명함으로써, 기존의 이론적 설명에서 찾아볼 수 없던 "생생한 그 때 그 사람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복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증언들은 미래에 90년대 사회 연구를 위한 사회과학적 연구에서 1차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은 저자가 90년대 중반이라는, 아직 본격적인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운동의 기억에서는 승리보다 패배의 기억으로 더 많이 남아 있는, 바로 그 시절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인문사회과학의 연구에서는 자칫 폄하되기 쉬운,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진실을 체현하고 있는 구술적, 증언적 1차 사료에 대한 관심과 반영은 그 중요성을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이 90년대 학생운동의 기억에 대한 전부를 복원했는가 하고 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그 기억의 편린들의 하나를 재생했다는 사실이고, 이것이 앞으로 많은 기억들의 재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이 책의 미덕은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우리가 겪어온 과거의 무게,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우리의 소소한 잘못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통찰력 있게 동시에 따뜻한 마음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새로 구성해내기 위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민주화라는 승리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나은 정치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보수적 망령을 되살려 냄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믿게 된 이 기형적인 현실을 가능하게 만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반성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만들어 온 또는 경험한 90년대라는 중요한 역사의 고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묻는 진지한 도전의 책이다. 


자칫 80년대를 추억하는 후일담 문학의 테제나 최근 한국 극우파들의 종북주의 공격 논리를 닮아 있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이 책의 타이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은 이런 점에서 다분히 아쉬운 제목 선택이다. 저자의 시각은 많은 부분 자신이 속해 있던 NL 그룹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것이 특정 집단의 "그들"이 아닌, 90년대를 살아갔던 저자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적시한다. 그렇더라면 책의 타이틀이 드러내는 "그들"이라는 타자화는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고 부적절하다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억과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대한 공감적이고 용기 있는 반성을 이끌어 냄으로써 우리가 문제와 앞으로에 대한 과제를 제시하는 저자의 탁월한 안목과 통찰은 그것대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연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인문학자이면서 책임과 양심이 있는 리뷰어로 이 책이 지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 책의 원 소스가 되었던 Matti의 글이 온라인 게시판에 게시된 시점은, 앞서 언급했듯 5월 경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7월이 되자마자 책으로 급속히 출판되었다. 어떤 글도 이렇게 빨리 출판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렇게 빨리 출판된다는 것은 그만큼 실수와 하자를 많이 포함한 출판물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더 다듬고 보완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당장 출판해서 상업적으로 이용만 하고 싶어한 출판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원문의 자기 고백적 성격의 정갈하고 깔끔한 문체가 답답한 형식적 종결어미를 가진 문체로 편집되어, 본래 글쓴이의 고백적 성격을 제거해버린 것은, 이명준 씨 글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바오 출판사 편집인의 중요한 실수이다. 


이 책이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면 이명준씨의 책과 글은 앞으로도 수 많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치 있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성급하게 만들어져서 이 중요한 증언들이 좀 더 다듬어지고 날카롭고 통찰력 있으면서 정련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정말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자유게시판에 연재시리즈로 올리던 글을 모으기만 한다고 곧바로 하나의 완결된 책이 될 수는 없다. 나는 그의 글을 게시판에서 매일 새로 읽을 때는 그의 글이 참 신선하고 깔끔하고 느꼈는데, 막상 이렇게 책이 되어 하나로 묶여서 나오니, 그의 글이 가지는 신선함 같은 것이 크게 반감되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런 점들이 책으로 묶일 때 반드시 시간을 두고 고치고 생각하고 또 고치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정되었어야 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도입을 하고 다듬고 결론을 낼 것인지 하는 디테일한 부분들이 너무나 가볍게 무시되었다는 데서, 아직 한국 출판계의 편집 수준의 열악함을 엿본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바오출판사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이 멈추지 않는다. 


익명의 게시물이 아닌 하나의 정식 책으로 출판되면서 전체적인 내용에서도 보완되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았다. 저자 이명준씨가 돌아본 90년대 학생운동의 미시적인 흐름과 경험들을 보다 객관화해줄 수 있는 다양한 실제적 자료, 다른 비슷한 사람들의 증언들이 있었더라면 이 책이 미래의 연구 자료로서 가지는 학술적 가치가 훨씬 더 높았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언급해야만 하는 부분이다. 저자 자신만의 경험에 대한 술회와 회상이 개인의 증언록으로 가지는 의미는 충분히 있지만, 그것이 그 자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었다면 얼마나 글이 더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며 다차원적으로 읽힐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모든 것은 이명준(Matti)라는 창의적 작가의 원석을 그냥 시장에 내보내려는 욕심만 앞서서 편집과 구성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출판사와 편집인에 마땅히 돌아가야 하는 비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한국의 사회과학 출판계가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라는 것도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지난 5월 Matti의 글을 읽으면서 머나먼 미국 땅에서 잊고 지낸 내 청춘에 대한 매우 소중한 기억을 회상할 기회를 얻었다.  이 리뷰로서 그의 글에 대한 독후감을 마치고자 한다.        


버클리, 캘리포니아에서 


   

a*****o 2012.07.15.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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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 내용보기
책 제목을 나에게 적용하여 바꿔본다면, <나는 왜 학생회에 참가했는가.> 내지는 <나는 왜 학생회 활동에 참여 했는가.>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이유는 송곳의 구고신 소장의 말과 같다. "밥부터 같이 먹어요.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그렇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다소간 동아리 활동 등 대외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 내용보기

 책 제목을 나에게 적용하여 바꿔본다면, <나는 왜 학생회에 참가했는가.> 내지는 <나는 왜 학생회 활동에 참여 했는가.>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이유는 송곳의 구고신 소장의 말과 같다. "밥부터 같이 먹어요.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그렇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다소간 동아리 활동 등 대외활동을 하기에는 사회성이 부족했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장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학생회 패권주의(?)라고 비난했고, 주류로 자칭하는 그들만의 리그라고도 했고, 우리는 니들은 그럼 무엇을 하느냐라고 비난했다. 서로 암묵적인 그룹이 만들어졌고, 투쟁아닌 투쟁이 있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누군가가 학생회비를 유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진위는 알수없지만 유용한 학생회비의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나 역시도 그 돈으로 술을 얻어 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채워넣고, 그 사안에 대해서는 입닫고 있을 수 밖에. 그렇게 나는 졸업을 했고, 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그때 그 사람들과 이따금씩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그때 그 옛날 이야기들을.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이면 될까 싶다. 서문에서 밝힌대로 과거에 대한 회상이자 반성이다. 나아가 진보 진영에 대한 용기다. 사실 내가 학생시설 학생회는 거의 정치색이 무너져버린 상황이었다.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던 사업들 조차도 참여를 바라기 어려웠다. 농활은 소수의 인원만이 가는 것으로 전락했고 (지금은 거의 안가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총회는 성사조차 어려웠다. 애초에 살아남기 바쁜 학우들이 가봐야 아무것도 없고 형식적인 절차 후 뒤풀이에서 술만먹는 꼰대(?)들만 있는 곳에 오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래서 고민도 많았고, 어떻게 해야 우리 학과가 잘 단합할까 고민도 많았다. 본 책도 마찬가지의 흐름을 따른다. 진보주의에 대한 반성, 주사파에대한 변명(?)일 수 있지만, 90년대를 관통했던 학생회 운동의 흐름을 보면서 내가 있던 시대의 학생회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선배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정파니 주류니 누가 옳으니의 문제로 다퉜고 (정치적 영역이 아닌, 현재는 정치적 영역이 거의 퇴색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쩌면 보편적인 사회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 때와 우리가 달랐던 것은 무엇일까 늘 생각했다. 나 때와는 다른 혹은 지금 학생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까. 그렇기에 참여라는 것에 있어서 이다지도 차이가 날까.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진보진영 내의 주사파 문제였다.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10여년의 간극 전에는 어떻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오고 갔을까. 왜 저런 생각을 가지고 운동을 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깊은 물음은 아니었기에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199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서 잘모는 사람이면, 혹은 주사파의 탄생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지금의 학생회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서 한 번 고민해 봄직한 이야기들도 많다. 

 책이 처음 나온 시기가 통합진보당 사태 시기 인듯 하다. 저자 역시 이런 시기에 큰 부담을 안고 이 책을 냈던것 같다. "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p.11~12)"이기에 용기를 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저자의 말대로 책이 보편성을 가지기 위해 일부 각색되고 축약된 이야기지만, 그 시대를 관통해온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겪어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이해를 위한 토대가, 진보진영에게는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거기에 남아 있(p.11)"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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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인간이 자꾸 과거를 되돌아보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p.11

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이다. p.11~12

반증이 없는 학습이란 종국에는 신앙이 될 수 밖에 없다. p.37

모순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다만 언론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내가 있던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p.68

거대 정파들은 끝없이 희망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p.126

운동가의 성장은 깨달음이 쌓이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고뇌와 두려움을 억누르며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동가들도 인간이다. 자신들에게 향하는 싸늘한 시선들을 모르지 않는다. 그 고통 구조는 중고등학교에서의 '왕따'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누르고 이겨내지 않으면 운동가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의 사고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주체사상으로의 진입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된다.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기 때문이다. p.138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을 가더라도 너와 나를 구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다. 생각이 다른 '분'과는 함께할 수 있지만, 미운 '놈'과는 함께할 수 없는 법이다. p.182

공개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다양한 견해가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해석이 힘을 얻게 마련이다. 이렇듯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이해되는 지점들을 만나게 된다. 괴물처럼 보이는 사회 현상의 밑바탕에는 괴물이 만들어지게끔 하는 사회적 토대가 존재한다. p.191

반성과 성찰도 뭔가 머리속에 많은 것이 들어 있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p.206

우리의 문제는 '반성을 늘 부정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p. 208

약자가 강자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처지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자가 되었을 때의 올바른 태도를 기르는 것이 민주주의 훈련이다. 진보진영에는 이게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p.240

여론이라는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은 무조건 조직력이 우세한 쪽의 승리로 끝난다. NL과 주사가 진보진영을 장악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 진보진영 내부의 모두의 무관심 속에 정글의 법칙대로 돌아간다. 우리 안의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이다. p.274

사실 그 운동가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조직의 죄를 개인이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p.276

내부에서의 조용한 해결이란 결국 가장 힘 센 자들의 의지에 불과할 뿐이다. p.287

유토피아는 존재하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에 창조하는 것이다. p.330

메시아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이제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금송아지를 가져다놓는다. p.333

진보가 진보인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다. 진보가 보수에게 늘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에서 진보가 출발한다. 그렇기에 진보에게 역사적 책무가 있다면 그건 남에게 세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 바로 그게 아닐까. p.348

선한 의도가 의도지 않는 압박이 되는 경우는 어디에나 있다. p.35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17.07.2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학생운동 경험자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소회
"학생운동 경험자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소회" 내용보기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 경험에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는 점이다. 물론 그 감정, 느낌, 경험은 솔직한만큼이나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 자신도 그런 부분에 대해 책의 서두 및 곳곳에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 담긴 저자 개인의 경험과 느낌을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물론
"학생운동 경험자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소회" 내용보기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 경험에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는 점이다.

물론 그 감정, 느낌, 경험은 솔직한만큼이나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 자신도 그런 부분에 대해 책의 서두 및 곳곳에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 담긴 저자 개인의 경험과 느낌을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나도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에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운동권도 좀 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어쨌든 변하는 세상에서 유의미한 세력으로 생존 및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고...

진보진영의 현재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에 참으로 안타깝다.



r****h 2012.10.2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