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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20 복복서가(2003.8.20 문학동네)
2021.05.28. 금. PM 15:00.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작열하는 5월과는 다른, 미안할 정도의 청명함과 시원함이다
‘검은 꽃’은 광복이 오기 전, 그러니까 일제 치하에 있기도 전,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러시아로 몸을 피하고 제 나라가 사라져가던 시기에 제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아내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검은 꽃’도 ‘꽃’인 거라고 나라가 없어도 나라의 사람이길 끊임없이 희망하고 희망하고 희망하던 이들의 처절한 '희망가’이다.
1905년 4월, 조선인 1033명은 조선에서는 어림도 없는 돈을 벌 거라는 소박한 ‘희망’을 들쳐매고 멕시코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의 희망은 그럴싸해보였다. 적어도 ‘일포드호’ 안에서는 그랬다. 세계 정세가 재편되고 있던 혼란의 땅을 비웃기라도 하듯 잔잔한 물살을 헤쳐가는 일포드호에서는 귀족과 고아가 사랑을 나누는가 하면 파계 신부는 자신을 괴롭히던 무엇으로부터 탈출한 셈이었고 별 볼일 없던 천한 신분의 대다수는 앞으로 펼쳐질 평등과 부에 대해 지껄였으며 자신의 황제가 멕시코에서의 안락한 삶을 하사할 거란 사대부의 신념까지도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멕시코에 도착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를 들으면서도, 짐승처럼 책정된 몸값으로 에네켄 농장에 내팽겨쳐졌음에도 여전했다. 사 년만 버티면 에네켄 농장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돌아갈 고국이 없다면 신대한을 세우겠다는 그 모진놈의 ‘희망'
낯선 땅에서 민족적 정체성 없이 살아가면서도 이들은 지독하리만큼 희망의 끝자락을 놓지 못한다. 희망의 끝은 늘 절망이었음에도 이내 다른 희망을 찾아내고 그 희망도 얼마 못 가 절망으로 재배치 되지만 원래 작았던 마냥 끊임없이 크기를 나누고 잘라서라도 붙들고 있다. 이 와중에도 왜 신분은 목숨 같으며 왜 사랑은 하는 것이고 기약도 완성도 없는 무엇을 향해 제 몸이 사라질때까지 왜 날카로운 희망 조각을 놓지 못한 채 피를 흘리는 것인가.
“이정은 너무 늦게 돌아온 것에 대해 사과했고 연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늘 지는 쪽에 있었다고 이정이 변명처럼 말하자 연수는 그래도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운명이었으면 좋겠다고, 조금은 책망처럼 말했다.” P329
이정에게 연수는 돌아가야만 하는 ‘제 나라’였다. 그리고 이정을 기다리던 연수는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도 없이 운명의 물살을 타고 흘러왔다. 그 모진 풍파를 견뎌낸 댓가로 10년이 흘러서야 마주한 연인은 더 이상 검은 눈매가 생동하는 열여섯 소년의 ‘이정’이 아니었고 이정을 처음 받아들이던 볼 방긋한 소녀 ‘연수’도 아니었다. 이제는 다른 남자의 여인이 된 ‘연수’고 제 나라를 잃어 갈 곳이 없어진 ‘이정’이다. 이 둘을 맞이하는 지독한 현실 앞에 잘못은 누구에게 있고 이해는 누구의 몫인지, 나는 아무래도 알 길이 없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P295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거야.” P347
조선의 것이라고는 가진 몸뚱아리밖에 없어 마야 피리에 맞춰 노래하던 내시 출신 김옥선. 우스운 생각일 수 있지만 지금 그의 옆에 있다면 내가 지은 시 인지 노래인지 모를 이것도 흥얼거려 주길 청해야겠다.(제목은 ‘희망가’라고 해두고...)
허이~ 흐이~ 내가 갈 곳 어딘지 알려주오 내 희망이 무언지 알려주오
내게 그런 하찮은 요행도 사치라면 어느 날 내 꿈속에 찾아와 잘했다! 미소라도 지어주고 가오
살아생전 어렵다면 나 죽은 뒤에라도 찾아와 내 나라 사람으로 죽었다 귀띔이라도 해주오~
백 년이 훌쩍 지나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가’는 더 이상 필요 없어졌을까?
“모든 나라가 평등하며 정체는 공화국이 될 것이다. 원하는 마야인들은 들어와 살 수 있으나 우리의 지배를 받는다. 어째서? 김이정이 물었으나 장윤은, 그런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말투로 반문했다. 그럼 우리가 그들의 지배를 받으란 말인가? 이정은 지지 않고 따졌다. 어째서 반드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자코 있던 박광수가 힘없이 말했다. 왜냐고? 우리가 사라질까봐 그러는 거야. 우리는 소수고 마야인들을 셀 수 없이 많지. 그들과 섞여 종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봐 그러는 거야. 그렇지만 우린 어차피 모두 죽어.” P341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과는 거리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먼, 숲만이 이불 덮은 듯 펼쳐진 ‘밀림’에서 조차 우위는 나누어 진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지배하는, 주체만 다를 뿐 같은 궤적을 향해가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물론, 100년 전 멕시코에 내버려진 이들에 비하자면 국가의 개념이 당연해서 치열함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있겠지만 힘의 논리로 분배되는 강과 약은 늘 존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형태이거나 세련됨으로 포장되어 자신들이 지배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갈 뿐.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 결정권을 가진 채로 남과 북은 분단되어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뉴스와 유튜브 영상이 여과없이 쏟아져 나온다. 당연히 강대국은 혹 하는 명분을 만들어 이익이 되는 편에 무기와 자금지원을 하는 형태로 분열을 종용하면서... 100년 전 그들처럼 지배 받지 않기 위해 지배하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사라지게 하는 과정에서 국민은 처참하게 희생되고 그러다 결국, 패배한다면 국가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그러니까. 애석하지만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희망가’는 존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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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장미희 주연의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예전에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인들이 멕시코로 이민가서 고생했던 이야기... 그정도 였던거 같다.(별로 관심없었던 장미희 주연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별 생각없이 김영하의 장편소설이라고 해서 구매한 책인데...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걱정스러웠다. 또 설마 지긋지긋한 일제시대의 뻔한이야기를 다루나? 하지만 역시 김영하였다. 남들이 뻔하게 끌어갈 이야기를 김영하는 각각의 캐릭터를 살려 지루하지 않게 표현했다. 그저 여타 이야기 처럼 뻔한 한국인 이민자들의 고생이야기를 다루는것으로 끝내는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인물들의 스토리를 그려나가며 풀어나간다. 미스터 선샤인 식의 뻔하디 뻔한 드라마가 아니라 그래서 슬프지만 재미있었던 이야기이다... |
김영하 작가님 스스로 '만약 내 소설 중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바로 <검은 꽃>을 읽으라'고 밝힐 정도로 명실상부 작가 김영하의 대표작인 장편소설인 <검은 꽃>을 읽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1905년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간 1033명의 한인 이주노동자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멕시코 애니깽을 시험 문제에서 만난적이 있을 것이다. 애니깽의 실제 이름은 에네켄으로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특산물이고 선인장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잎줄기에서 뽑아낸 섬유질을 밧줄의 원료로 사용했다. 넉넉한 임금을 보장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제물포 항에서 출발해 한달넘게 배를 타고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또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한 한인 이주민들은 (가는 길에 3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의 생명이 새로 탄생해 총 1031명이 되었다) 농장에 갇혀서 노예처럼 선인장을 하루종일 자르고 다듬어야 했다. 선인장의 가시에 베이고 찔리는 건 다반사요, 할당량을 못채우면 날아오는 채찍질도 피할길이 없어 늘 피투성이가 되어야만 했던 한인 이주민들. 계약한 4년이 지나면 큰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가리라는 희망이 무색하게 그들은 아주 적은 일당을 받았고 그나마 그 일당도 거의 식비로 지출해야만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10년 경술국치로 돌아갈 나라가 없어져 '난민'이 된 이주민들. 먹을 것이 부족해 수박 껍질까지 김치로 담가 먹은 그들이지만 조국에 독립자금을 보내고 독립군을 양성하며 먼 타국에서 조국을 그리워했다. 이 소설에서 멕시코행 배에 오른 사람들은 농민들, 양반, 왕족, 내시, 제대군인, 신부, 무당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다. 조선 땅에서는 엄격한 위계 질서 내에서 형성되었던 이들의 관계가 고국 영토를 벗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왕족여인과 고아청년이 사랑을 나누고, 신부는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며 제대 군인은 이발사가 된다. 또 어떤 이들은 멕시코 혁명에 휩쓸려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멕시코로 떠난 이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저 기록으로 남아있는 일부만을 접할 뿐이다. 이 책 역시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등 여러가지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소설이다. 하지만 어찌됐던 실제 있었던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이기에 김이정과 이연수, 박정훈과 바오로 신부 등 등장 인물들이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고 그들의 험난한 타국생활에 더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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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죽음으로 작품이 시작된다는 것조차 모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보니 첫 장면이 그렇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고, 우리 인생도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애니깽이라는 극 작품을 우연히 읽고, 관련 소설이 있다는 사실에 열심히 찾은 결과물로 선택한 검은꽃! 김영하 작품은 언제나 실망을 안기지 않는 선택이니 작가는 마음에 들고, 내용은 뻔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그려낸 것 정도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도 있었지만 우선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진 삶의 현장,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등등 이 작품에는 그렇게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선택한 듯 치열하게 버티면서...그리고 그 중심엔 나라를 잃고 나라에서 버림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치열함이 녹아있다. 특히 주인공인 이정과 연수의 삶은 그 치열함의 중심에 있다. 이름도 없던 주인공이 이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꿈꾸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 속에, 그리고 양반집 규수로 태어나 그 틀에 맞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부모와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택에 따른 삶을 걷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의식의 성장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보게 된다. 이러한 개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속에서 나와 닮은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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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검은꽃을 15년 정도 지나서 다시 읽 었다. 멕시코로 이주한 우리국민 1033명 정말 고생이 말도 못한다.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것도 감사하다 어딜가도 일도 잘해. 공부도 열심히. 정말 위대한 분들이다. 그분들때문에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을거다 |
|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를 읽고 너무 좋아서 다음 책으로 읽으려고 구매했어요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아직 읽는 중이지만 술술 읽히고 금방 다 읽을 거 같아요 또 역사 이야기인만큼 감동도 있고 좋은 내용도 많아서 천천히 읽고 싶어요 |
| 운 좋게 그런 책들이 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느꼈던 책은 없다. 소설마다 읽는 족족 다 재밌었다. 그리고 <검은 꽃>은 특별히 더 많은 재미를 느껴서 두 번을 연이어 읽었다. 책의 뒷부분에 해설과 작품론에서도 평론가들이 언급하지만 <검은 꽃>의 재미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썼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뻔한 사실이 없느냐. 그건 또 아니다. 뻔한 사실을 근간에 두고 낯설지만 흥미롭고 오묘한 이야기가 절묘하게 엮여있다. 남의 나라의 노동과 종교와 군대에 의지 반 운명 반으로 휩쓸리다가 끝내는 남의 나라에서 내 나라를 만드는 이야기라니! 재미난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창작은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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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그런 책들이 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느꼈던 책은 없다. 소설마다 읽는 족족 다 재밌었다. 그리고 <검은 꽃>은 특별히 더 많은 재미를 느껴서 두 번을 연이어 읽었다. 책의 뒷부분에 해설과 작품론에서도 평론가들이 언급하지만 <검은 꽃>의 재미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썼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뻔한 사실이 없느냐. 그건 또 아니다. 뻔한 사실을 근간에 두고 낯설지만 흥미롭고 오묘한 이야기가 절묘하게 엮여있다. 남의 나라의 노동과 종교와 군대에 의지 반 운명 반으로 휩쓸리다가 끝내는 남의 나라에서 내 나라를 만드는 이야기라니! 재미난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창작은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지 싶다. 개인에게서 국가라는 배경과 존재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던 당시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등장인물 박정훈의 말이다. 본래 과묵하기도 했거니와 갑작스런 전역으로 우울하여 배에 탄 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해안선을 보더니 갑자기 입을 연 것이었다. 저기, 나는 안 돌아가려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배에 올라탄 이래로 그 같은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돌아가겠는가.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 만하니 내치지 않았나. 위로는 되놈에, 로스케 등쌀에, 아래로는 왜놈들 군홧발에 이리 맞고 저리 굽신, 제 나라 백성들한텐 동지섣달 찬서리마냥 모질고 남의 아라 군대엔 오뉴월 개처럼 비실비실, 밸도 없고 줏대도 없는 그놈의 나라엔, 나는 결코 안 돌아가려네. <검은 꽃> 94P 이 말은 비단 박정훈만의 말이 아니다. 내 나라에서는 더 이상의 희망을 볼 수 없던 이들이 선택한 나라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 승선한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나라, 나의 조국에 대한 이런 감정은 대한제국이던 당시에만 국한된 감정일까? 안타깝지만 2025년 최근에 접한 캄보디아 사건 관련 기사를 보면서 <검은 꽃>의 그들이 지녔을 국가에 대한 감정과 같은 맥락의 감정을 지금의 이들도 가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얼마 전 범죄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캄보디아에 구금되어 있는 우리 국민을 전원 송환한다는 기사가 모든 매체에서 속보로 다뤄졌었다. 이들 중에는 피해자도 있지만 자발적 범죄 참여자도 물론 있다. 내 나라에서는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의 선택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범죄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이 사건을 가져온 건 타국에서의 안타까운 자국민의 사건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비교 차원에서다. 제국에서는 없었던 게 민국에서는 있다. 이런 게 국가고 이래야 나의 조국이다. 검은 꽃을 읽을 때는 원망스럽게 느껴지던 조국이 이 기사에서는 뿌듯하고 뭉클했다. 형체는 그의 목을 졸랐다. 나는 네가 죽인 자들의 예수다. 최선길은 발버둥을 쳤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소? 그들은 죽일 만하니까 죽였소. 그리고 내가 그들을 죽이기 전부터, 저 일포드호에서부터 당신은 내 목을 졸랐소. 아, 제발 그 손 좀 치우시오. 숨막혀 죽겠소. 형체는 말했다. 나의 시간은 너의 시간과 다르다. 죄는 먼저와 나중이 없다. 죄를 모르는 것이 바로 너의 죄다. <검은 꽃> 308P 도둑질이 업이었던 최선길에게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목을 조르는 형체가 수시로 꿈에 나타난다. 그는 광신자 농장주의 종교에 편승하면서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종교적 대치 이후 붙들린 최선길이 기절했을 때 나타난 형체와의 대화중 "죄를 모르는 것이 너의 죄다"란 무심하게 쓰고 들었던 말이 무겁게 느껴졌다. 도덕적 감수성의 부재가 나와 타인에게 입히는 해를 최선길이란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게 한다. 의지의 여부를 떠나 무지 자체가 면책의 사유가 될 수 없음을 재삼 생각하도록 했다. 다소 과장을 하자면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문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그 힘으로 김영하는 애니깽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매우 멋진 소설을 만들어냈다. 역사소설이라는 맥이 풀려버린 장르를 미학적 가능성의 새로운 영역으로 등재해놓았다. <검은 꽃> 427P 책의 뒤편에 수록된 평론가의 해설 중 일부다. 읽는 내내 나도 이런 생각을 했다. 뻔한 걸 어찌 이리 다루는지 놀랍고 존경스럽다. 작가의 다른 책이 더 읽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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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를 읽고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이 작가가 그저 평범한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을 통해 ‘애니깽’이라는 그저 말로만, 의미만 희미하게 알고 있던 단어가 역사적 실체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1900년대 초반에 하와이, 만주 등의 장소로 우리 민족이 강제 징용, 이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주되었던 역사에 대해서는 들어봤지만 지금도 가기 어려운 남아메리카의 멀고 먼 나라에 아무런 보호 없이 무방비상태로 던져진 이주민들의 역사에 대해 알고 나니 정말 가슴이 먹먹했다. 열강들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분할하고 식민 지배 체제로 만들어가고 있던 시절에 몇 사람의 야욕에 의해 노예처럼 팔려 나간 1000명이 넘는 우리 국민들의 고통을 이 책을 통해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뛰어난 점은 이런 상황을 아무런 감정 이입 없이 무미건조하지만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해나갔다는 점이다. 등장 인물이 매우 다양하고 사건의 속도도 매우 빨라서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장으로 계속 넘겨서 다시 봐야했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지식의 토대 위에 쓰여진 작가의 글은 여러 번 반복해도 좋을 만큼 가치있었다. 하와이 이민 역사도 우리 국민에게 가혹했다고 하지만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비해서는 매우 훌륭한 수준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시절, 그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책을 하나 꼽으라면 이 책을 골랐다고 하는 것처럼 이 책은 새로운 형태의 역사 소설로서 매우 훌륭한 책이다. |
| 동인문학상 수상 당시 “가장 약한 나라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인생 경영을 강렬하게 그린 작품”이라는 품평을 보고 꼭 읽어보고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이번에 사서 읽고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를 이야기화한 상상실화여서 설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