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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코뮌 민중 혁명 운동에 대해서 배울 때, ‘인터내셔널가’의 가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정말 그들은 이상적이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운동에 참여했다가 망명생활을 한 자크 엘리제 르클뤼의 <산의 역사>를 읽으며 문득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낭만적이었구나 하게 되네요. 어쩌면 비슷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산에서 보낸 시간을 지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표현이 더없이 시적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산중턱에 앉아 서로 비교하기보다는 어우러지는 수많은 봉우리를 감상하던 그는 “해가 어둠에 의해 느슨하게 밀려날 때” 즈음 자신의 생각을 “몽상과 어렴풋한 기억”이라고 말해요. 하지만 ‘권력 없는 질서’를 꿈꾸었던 그에게,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었던 그에게 자연은 바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위대한 지리학자이자 사상가였다는 그답게, 산이 기억하고 있는 지구라는 별의 역사를 풀어낼 때면 그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게 됩니다. 인간은 감히 어쩔 수 없는 시간이라는 힘으로 만들어진 그런 자연을 인간은 너무나 손쉽게 파괴하곤 하죠. 예전에는 자연의 경계가 곧 인간의 경계였습니다. 거대한 산의 능선을 따라 기후대가 나뉘고 사람들도 나뉘어져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연결을 꿈꾸기 시작했고, 산을 뚫어 길을 내고, 필요에 따라 깍아내거나 없애버리기도 해요. 물론 그를 통해서 인간은 보다 발전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정신이 자연의 경계를 뛰어넘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과연 좋은 일이기만 할까요? 수십 년 전에 지구에서 살아간 자크 엘리제 르쿨뤼,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고, 자연에서 그 답을 찾았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망칠 데가 어디 있어? 자연이 더러워졌는데...." 이제 인간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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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산을 좋아한다. 산을 숭배하고 산에 기대어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단군할아버지가 태백산에서 내려왔다던지, 산신령 이야기, 풍수지리에서 산을 중시하고 백두대간의 연결을 중시한다는 점 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최근 근대화와 개발주의로 인해 산이 깎이고 파괴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부분을 우려하면서 산을 보전하자는 움직임도 크다. 그런데 이는 우리만의 현상일지, 서구 사람들의 전통 사상에서도 산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였다. 얼핏 우리나라의 완만한 산세는 사람들이 산에 기대어 살수 있게 하고, 서구의 험준한 산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기피하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하지만 서구의 산지에서도 소수이지만 누군가가 삶터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고, 이들의 삶과 인식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지리학자 르클뤼의 책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저명한 지리학자였지만 우리나라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았었다. 개인적으로도 지리학사 과목을 배울 때 약력에 대해 짧게 배우는 정도에 그쳐서, 잘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리학자로서의 학문적 성과는 물론, 무정부주의 운동의 1세대 사상가였으면서도 생태주의, 인권 운동에도 선구적인 주장을 했다고 하니, 최근에 재평가될 요소가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파리 코뮌에 참여했다가 스위스 산악 지역에 망명한 뒤에 집필한 책으로, 배경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지리학자로서 저자는 산지라는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삶의 관계에 주목한다.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산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관찰하면서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지리학은 자연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인간사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자연지리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에 저자는 당대에 발달하고 있던 자연지리학의 체계적인 지식을 토대로, 지층, 암석, 화석, 퇴적물, 빙하, 기상현상, 하천 등 산악 지역의 여러 자연경관에 대해 답사하면서 면밀하게 살피고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저자는 여러 자연경관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또 질문을 던지며, 산에 사는 목동과 대화를 나누며 해결하기도 한다. 물론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한계로 인해 대륙이동설, 판구조론 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지리학, 지질학, 기상학 지식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또 과거의 학자들이 자연의 어떠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했을지, 과거 학자들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산악 지역의 자연에 대해서 이해해 가면서, 자연에 대한 관조와 경외감을 느낀다. 당시 19세기의 낭만주의적 자연관의 일부를 엿볼 수도 있었다. ![]() 목동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 자신도 달라졌다. 목동에게 자연의 지리적 과학적 이모저모를 설명하려 애쓰다 보니 나 역시 자연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 애쓰는 독학생이 되었다. 결국 자연을 사랑하고, 서로 비슷해진 목동과 공감하면서, 나는 산의 현재의 삶과 과거의 역사를 알아보고 싶었다. 우리는 마치 코끼리에 붙어사는 작은 벌레처럼 산에 붙어살고 있지 않은가.(p.11) 또 다른 산악 지대에 이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의 화강암을 볼 수도 있다. 바위 속에 대리석처럼 희고 윤기 나며 작고 검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푸르스름하고 짙은 빛깔도 있다. 거의 어디에서나 화강암은 매우 단단한 돌인데, 오래가는 기념 비석을 만드는 데 이용하곤 한다. 화강암은 쉽게 부서지기도 한다. 그 속을 채운 결정들이 너무 약하게 뭉친 것은 손가락으로 부술 수도 있다. 푸석한 화강암 동산 밑에서 운석가루가 샘솟은 골짜기 물을 타고 내려와 계곡 모랫바닥에 곱게 반짝이며 쌓인다. 졸졸 흐르는 물 사이로 금가루와 은가루가 반짝이는 듯하다. 평지에 사는 시골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드러나고 무심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실어나르는 보물을 찾아 황급히 달려든다.(p.29) 하지만 거친 지표면을 이루는 산과 지구의 역사에서 붕괴 자체는 지층에 주름지는 습곡 현상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오랜 세월 흙과 바위, 사암층, 금속 광맥 등 모든 것이 눌리면서 옷감처럼 주름잡혀 산과 계곡을 빚어낸다. 대양의 표면처럼 육지의 표면도 물결처럼 출렁인다. 대단히 힘찬 물결이다. 지표의 평균 높이보다 훨씬 높이 솟은 안데스, 히말라야산맥이 그 결과물들이다. 땅 위에 있는 바위들이 옆으로 밀어붙이는 힘에 따라 그 주변 바탕도 계속 요동친다. 과일 껍질에 주름이 잡히는 것과 같다.(p.43-44) 구름은 특히 탁 트인 하늘 높이 속은 바위산 주변으로 몰려든다. 구름과 반대 전극을 띤 바위에 끌려온다. 허공의 바람에 밀린 또 다른 구름들은 산비탈이나 높은 장애물에 부딪힌다. 그밖에 미지근한 대기 중에 보이지 않는 엷은 구름은 차가운 돌이나 쌓인 눈과 접할 때나 서리와 김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산이 증기를 압축하고 공기 중에서 짜내는 셈이다. 산마루나 산등성이를 볼 때마다 막 부풀기 시작한 새털구름은 얼음같이 차가운 봉우리 둘레로 모여든다. 분화구에서 치솟는 것 비슷한 연무가 올라온다. 그러면서 즉시 봉우리를 감싸고, 산은 결국 투명한 대기 속에서 빚어지는 왕관 모양의 구름에 둘러싸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누군가 폭풍을 반죽하면서 비를 내리려 준비하는 것 같다. (p.79) 그리고 저자는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주목한다. 산지의 형태에 따라 사람들의 문화, 사회적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주목한다던지, 산지에 사는 사람들의 고유한 삶의 양식이 무엇인지 그것은 산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세계 여러 다양한 산지 사람들의 보편성에 대해서 밝히는 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변두리의 보통 사람들에 주목한다. 국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거나 소속감이 약한, 또는 국가 이전의 전통적인 사람들의 삶을 살핀다. 이러한 사람들의 문화, 사회를 살펴보면 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에 기대어 산과 조화를 이루며서 살아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의 무정부주의 사상과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동물에게도 식물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기후가 오락가락하는 동안, 여러 인종과 민족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추위나 더위를 피해 천천히 남쪽이나 북쪽으로 이동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옛날 민족의 이동을 전하는 역사가 없어 안타깝다. 게다가 인간은 대이주를 하면서 항상 자신도 모르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왜 앞으로 떠밀려 나아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생활근거지를 바꾸며 행진하는 민족이 얼마나 많은가! (...) 하지만 보통 산중턱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날씨와 환경에 대응했는지는 알 수 있다. 산을 둘러싼 양쪽 기슭의 기후 차이가 크지 않을 때, 산줄기가 북남 방향으로 뻗었을 때 라던가 언제나 같은 방향에서 부는 바람이 일정한 습기로 양쪽 기슭을 적신다면 같은 인종이 양쪽 기슭에 널리 퍼진다. 같은 문화와 산업에 종사하며, 같은 풍습을 보인다. 그들을 가로막는 수많은 틈이 있겠지만, 이런 것이 높은 장벽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맥의 연봉이 줄줄이 북향이며 찬바람을 맞는데, 맞은편은 따뜻한 남쪽 햇살을 받는다면, 또는 한쪽으로 바다 수증기가 몰려드는데, 다른 쪽은 언제나 건조한 골짜기라면 말이 달라진다. 양쪽의 동식물과 인간도 뚜렷이 대비된다.(p.160-161) 산악부족들이 독립을 유지하는 중요한 원인이 있다. 산악에 살면 반드시 협력하고 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각자에게 또 서로에게 모두가 절실한 존재다. 높은 산 풀밭으로 부락의 가축을 몰고 오르는 목동은 부락민 전체의 번영에 헌신한다. 재난이 닥치면 그것을 물리치려 모두 힘을 합친다. 눈사태로 오두막이 파묻히면 모두 함께 눈을 치워야 한다. 가파른 경사지에 층층이 경작한 계단식 밭이 빗물에 무너지면 모두 함께 쓸려 내려간 흙을 퍼 담아 다시 밭을 메운다. 급류가 넘쳐 들판이 돌에 덮이면, 모두가 돌을 들어내고 풀을 살린다. 한겨울 눈길로 다니기 위험할 때도 서로 돕는다. 이웃은 형제로 지낸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p.166) 민족마다 세계를 옮겨 다니면서 지평선을 가로막고 있는 산에 모든 민족 전통을 결부하고 숭배했다. 대이동을 하며 거쳐 가는 곳마다 새로운 신전을 올렸다. (...) 유목민이 머나먼 이주의 행진 끝에, 멀리 솟아 있는 듯 보이는 산은 신기루가 아니었다. 눈과 바위로 덮인 진짜 산이었다. 이런 산을 보았을 때, 민족을 따라 산이 함께했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신화는 "인간이 높은 산봉우리에서 내려왔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한다. 높고 깊은 산골에서 신들은 인간이 할 도리를 큰소리로 외치지 않았던가! (p.190-191) 책의 중후반부로 갈수록 저자는 자연 및 사회에 대한 관점과 주장을 강하게 드러낸다. 근대 유럽 문명의 번영을 찬양하는 이들은 많지만, 이것이 자연환경을 제물 삼아 번영하는 것이고 과연 옳은 방향인지 등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들은 없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저자 역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영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자연에 대한 존중의식이 결여되는 인간의 오만함을 지적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과 사회의 권력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러한 문명이 과연 지속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편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인물을 칭송하고, 특히 산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평범한 민중들의 삶을 발견한다. 실제로 저자는 훔볼트와 리터의 낭만주의와 환경관을 계승하기도 하고, 특히 당시 미국에서 출간된 조지 마시의 책 <인간과 자연>에서 지적한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무정부주의와 생태사상 등으로 발전시켰다고 들었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미 유럽인들이 많은 고장에서 거의 모든 봉우리를 정복했다. 조만간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사람이 오르지 않은 봉우리는 없어질 것이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졌던 거대한 지리적 발견은 거의 끝났다.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 지구는 샅샅이 밝혀졌다. 새로운 발견과 정복의 영광을 노리기 어렵게 된 모험가들은 아직 인간이 오르지 못한 고봉에 도전하고 있다. (...) 매년 좋은 계절에 등반가들은 허영심 때문에 무서운 고봉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어려운 방법을 찾고 자신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릴 것으로 확신한다. (...) 그렇게 세계의 주인이자 왕처럼 으스댄다. 그들은 산을 거대한 계단으로 볼 뿐이다. 자기 발밑에 왕국들이 납작하게 깔렸다고 본다. (p.216) 최근 이른바 개화했다는 문명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해마다 자신들이 축적한 힘을 대부분 서로 죽이고 서로의 영토를 황폐화하는 데 퍼붓고 있다. 그러나 더욱 능란한 자들은 그 힘을 지상에서 생산력 증강에 이용하려고 한다. 지구의 모든 힘을 이용해 우리의 자유로은 움직임에 거추장스럽다면서 장애가 되는 자연을 제거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지구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린다. (...) 만약 주민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정서를 깨닫는다면 자연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인류 대부분은 지금 보다시피 거칠고 이기적이며 기만적으로 살 것이다. 지구에 서글픈 자취만 계속 남길 것이다.(p.225-226) 시대를 앞서간 풍운아 지리학자인 르클뤼의 삶과 지리사상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다. 저자의 사상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저자의 삶의 궤적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권력의 변두리에 있는, 산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평범한 민중들의 삶에 주목하는 저자의 태도가 인상깊었다. 기존의 국가주의적인 역사, 지리 서술에서 놓치기 쉬운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지리학의 관점을 제대로 실천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밀하게 자연의 요소를 관찰하고 묘사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여러 지역의 자연을 개괄하기도 한다. 내용상에서 일부 시대적인 한계가 확인되기도 했지만, 당대 학문의 수준에서는 수준이 있는 서술이었고 분명 현대적으로도 재평가할 만한 내용이 더 많았다. 지리사상사는 물론, 산과 자연관, 생태사상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읽어도 흥미로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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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산지 지형이 많은 편이며, 오히려 프랑스는 (특히 인근 스위스에 비해) 강을 낀 평지가 비교적 너르게 발달하여 농사에 유리한 국가로 잘 알려졌죠. 그래서인지 프랑스 인문학자, 사회 운동가가 쓴 "산(山) 예찬론"은 특별한 느낌으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다가옵니다. 더군다나 한국 역시 비교적 최근에 민주화의 여정을 치렀고, 이 저자께서 활동할 당시 프랑스도 "파리 코뮨" 등 굵직굵직한 격변을 거치던 중이라서 교감의 지점이 더욱 넓어지는 듯합니다. 책날개에도 나와 있듯, 저자는 이 책을 가뜩이나 산이 가득한 스위스에서 일종의 망명 시절에 썼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간 지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외롭다기보다는 자유로웠다." (p16) "중간 지대"라 함은 물론 이 책의 제재, 주제인 산을 뜻하겠죠. 저자가 생각한 하늘과 땅은 그럼 각각 무엇을 상징하기에 하필, 새삼, 왜, 거기서만 자유로움을 느꼈을까요? 저자의 성향상 아마도 하늘은 (프랑스에서 지배적 종교였던) 기독교(가톨릭)의 숨막힐 듯한 도덕주의, 땅은 압제와 욕심, 비루함, 거짓 등을 각각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는 우리 동아시아인,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와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고려가요 <청산별곡> 같은 걸 보면 더 그렇죠. 이 저자보다 이백 년 정도 전 사람이고, 이성과 종교적 신심 사이에서 어지간히 갈등도 했던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한 정신"을 나눈 적 있습니다. 이 책 저자는 "어린 시절 나는 산이 완전히 규칙적이고 똑같은 모습으로 뚝 떨어진 거대한 덩어리라고 생각했다(p18)."라든가, "자연은 잠시도 쉬지 않고, 높이 솟은 산의 모양을 계속 바꿔 놓았다(다음 페이지)."처럼, 산이란 지형의 불규칙성, 자의성, 임의성, 예측 불가성에 놀랍니다. 그리고 인위적 조형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냅니다. 저 술회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산지와 비교적 거리가 먼 곳에서 성장했으며 "산을 책으로만 배운" 사람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특히 산을 좋아하고 즐겨 찾는 세대, 유형이 어려서부터 산과 친밀했던 이들인 것과 크게 대조되죠. "인간은 특이하게 비열하다. 산짐승 가운데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짐승들에 감탄하며 찬양한다."(p146) 확실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서양 문학, 기록을 보면 유럽에서 멸종된 지 꽤 오래인 사자를, 구태여 다른 대륙에서까지 찾아 가며 그 생리와 난폭한 본능을 예찬합니다. 거의 어느 왕실의 문장에건, 잔뜩 성이 난 숫사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이 생각을 잠시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저자 역시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네요). 이는 힘, 무력, 지배하는 본능에 대한 예찬(혹은 굴종)이며, 영장류 중 어느 다른 종보다도 호전적인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 보일 법한 행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목동은 독수리(군주들이 좋아하는)를 미워한다.... 곰은 뼈를 씹어 먹을 만큼 힘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왕들은 곰을 좋아하지 않는다. ... 반대로 민중은 곰의 성격을 소중히 여긴다... 곰은 용감하고 솔직하고 착하다! 곰은 새끼에게 다정하다.... 곰은 길들여져 사람 일을 도울 때 온순하게 모욕도 참아낸다.(하략)" (pp.146~148) 마지막 문장은 어떤 스위스 박물학자한테서 저자가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서술엔 작가의 느낌, 세계관 등이 강하게 이입되어 있습니다만 우리 독자들도 뭐 대체로는 동의할 만한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말까지 나오는데... "차라리 곰을 길들여 우리와 함께 일하면서 살아남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동물관, 동물 보호 사상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의 흔적이므로 독자들은 그 점 감안하며 읽어야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다음 문단입니다. "그런데 늑대는 어떨까? 비열하고 못된, 피비린내 나는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데!... 모든 동물이 늑대를 미워하고, 늑대도 다른 동물들을 미워한다... 늑대는 약하고 상처입은 짐승만 공격한다.. 심지어 늑대가 사냥꾼 총에 쓰러져 숨을 헐떡일 때, 다른 늑대들은 그놈을 덮쳐 고기를 뜯는다.(하략)" (pp.148~149) 이게 정확한 박물학적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구절을, 이른바 "늑대정신"을 회사의 모토로 내세우는, 중국의 화웨이 사 직원들에게 들려 주면 어떨까요? 그들은 삼성전자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오늘도 열일한다고 하니.... 여튼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다음에 나옵니다. "피에 젖은 로마는 상상할 만한 모든 중죄의 기억을 늑대에게 떠넘겼다... 로마는 비열한 폭력과 무수한 파렴치 만행으로 고대의 왕이 되었다... 모든 죄악을 날조하면서 암늑대를 어머니 수호신으로 삼아 군림했다.(하략)" (p149) 마지막 문장은 로물루스와 레무스 신화를 염두에 둔 것이겠습니다. 이 책이 쓰여질 무렵 국가로서 통일 작업을 거의 완수한 이탈리아에 대한 적개심 같은 건 아니고, 당시 프랑스를 비롯하여 전 유럽에는 계급 간의 투쟁이 절정에 달했음을 상기해야겠습니다. 좌파 사상은 크게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로 갈라지는 중이었는데(물론 개량주의 스탠스인 이른바 사민주의 역시 이 무렵 확산을 거듭했죠), 저자는 이 중 아나키즘 계열이었죠. 그에게 있어 모든 압제, 폭력, 타락과 죄악의 근원은 로마 제국이었고, 이런 권력 혐오 사상이 저 문단에 잘 표현되었습니다. 우리 동아시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물론 산지 지형이 특히나 발달했습니다만, 그것 아니라도 이른바 자연친화, 청류 사상, 도가 같은 것이 하나 같이 인위와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역시 저자보다 조금 앞선 시기의 루소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바 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저 앞 페이지에서 저자는 특히 "곰"의 습성과 성향을 찬양하는데, 만약 한국의 단군 신화를 그에게 들려 주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p39에 보면, 본문은 아니고 각주에서 한국어 역자가 단군신화를 언급합니다. 어떤 사람은 "대체 늑대와 산이 무슨 상관이냐?"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겠으나,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나옵니다. "산을 아끼는 사람에게는 늑대가 대평원의 짐승이어서 다행이었다.....(그러나) 늑대는 탄력에 넘치는 근육으로 바위를 뛰어넘어 다니기 좋게 적응했다. 프랑스 산악의 산양이나 영양처럼 진짜 산악동물이 되었다.(하략)"(p149) 저자는 늑대를 혐오한다기보다, 늑대에게서 엿볼 수 있는 인간의 비열한 속성과 사회성에 대한 경멸을 드러낸 거죠. 마치 주자가 표방한 "격물치지"의 응용을 엿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 페이지 뒤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늑대는 순하고 사회적이다."(!) 아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ㅎㅎ 그러나 솔직히 우리 독자들은 이 구절에서 안심이 됩니다. 동물은 그저 동물일 뿐, 어떤 선하다 악하다 배울 만하다 같은 느낌은 우리 인간이 그에 부여하는 주관적 가치일 뿐입니다. 저자는 결국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을, 동물을 빌려 풍유했을 뿐 결국 동물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던 겁니다. 저 앞, "곰 이야기"를 하면서 "차라리"라고 한 건, 늑대를 길들여 개를 만드는 대신 곰을 길들여 다른 동무를 옆에 두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겠죠. 이에는 인간이 걸어 온 지난 발자취에 대한 깊은 회한이 담겨 있는 겁니다. 마치, "고대 로마 아닌, 보다 인간적인 다른 공동체 단위가 그 자리를 채웠더라면?" 처럼 말이죠. 저 같으면 저자에게 인도의 굽타 제국 같은 걸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저자는 유려한 문장과 풍부한 상상력을 구사하지만, 본업이 인문학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책에는 온갖 지질학적 지식이 잘 녹아듭니다. 역시 산의 불규칙성에 감탄하는 문장인데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산에서는 비탈과 바위마다 (그) 나름의 독특한 면이 있다. 구성재와 퇴화 물질의 버티는 힘 때문이다. 퇴화하는 물질이 얼마나 오래가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이룬다.... 아무튼 산의 구성요소는 몇 가지 안 된다! 그것을 단순히 몇 가지 조합했는데도 놀랍도록 다양한 모습이다!" (p32) 이하에는 산을 구성하는 바위, 암석이 상당 부분 석영으로 구성되었다는 말, 석영이 규토라는 말, 따라서 산화규소라는 성분이 산 지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 등이 이어집니다. 이때 산화는 酸化이며, 산소(O2)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원소 관련이기도 하죠. 우리도 이미 중3 교육과정에서 "우리들이 사는 지구에서 가장 흔히 보는 건 규산염 광물"이란 걸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조면암, 현무암, 흑요석, 경석은 모두 규소, 알루미늄, 칼륨, 소듐, 칼슘이다."(p33) "옛날에 서로 다른 온도의 층층이 겹친 대기층들은 지질학적 수평층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고산과 첨봉과 절벽은 구름에 휩싸이곤 하는데 지상으로 내려앉으려는 시꺼멓게 찌푸린 하늘 같다.... 산은 증기의 증감에 따라 멀거나 가까워 보인다."(p80) 그러니 이 무렵은 자연과학, 인문지리학, 지질학 등이 아직 서로 모순된 국면을 노출하며 복잡한 공존을 이룰 시절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본국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비관하여 스위스로 떠나와 반(半) 망명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예리한 지성을 번득이며 하늘과 땅과 (그 중간 지대인) 산을 관찰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인간사 복잡다단함을 관조하고 있었던 거죠. 스위스 하면 아무래도 한국과는 달리 눈 덮인 산악의 풍광이 인상적인데(물론 한국도 겨울철 중부 지방에는 눈이 자주 옵니다만), 저자 역시 이 점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시인들이 흰 코트라고 부르듯 눈더미는 찢긴 옷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p94)." 사실 한국에서도 도시 인근의 야트막한 언덕 지형(한국인들은 이런 곳도 산이라고 부르죠)엔, 눈더미가 보기 싫게 여기저기 습하고 그늘 진 곳에 남은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름철 녹지 않은 눈이 남은 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예외라면 전북의 무진장 지역 정도? 그러나 이곳 리조트에서도 인위적 관리를 해야 합니다) 스위스에서는 그렇지 않아 다음과 같은 기술이 책에 있습니다. "여름날 고산지대에서 잠시 내리는 눈으로도 산은 베일에 덮인다. 그래서 멀리에서 볼 때는 완전히 백설에 뒤덮인 모습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자연이 요술을 부린 듯 작은 산의 부분들이 살짝살짝 보인다."(p95) "변화무쌍한 풍경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다."(같은 페이지)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획일성, 일률성, 단조로움, 기계성 등을 혐오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변화무쌍하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융통성 등을 좋아합니다. 또 저자는 이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이라 보며, 압제와 단속, 권력, 상식과 계약에 기초하지 않은 사회성과 질서 등을 궁극적으로 타파해야 할 악, 족쇄로 보는 듯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이분보다 약 십 몇 년 앞서 출생했고 저술가로서의 시기도 많이 겹치는데, 두 분의 저작을 비교해 보고 어디가 닮았으며 어디서 분기(分岐)하는지 살피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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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면서도 피상적인 산의 모습만을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산이 우리가 아는그림처럼 그런 모습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저자 자크 엘리제 르클뤼는 프랑스 사람으로 벨기에에서 교수를 지냈다. 현대인문지리학의 선구자라는 말도 보인다. 지정학이나 역사지리학, 사회지리학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고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지리학자이면서 환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다는 말일 터다. 이 책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산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만 산의 기원이나 물리적인 성격과 같은 산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숲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 기후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산의 테두리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움직임도 살핀다. 그러다보니 전문적인 용어도 꽤나 많이 등장한 듯 하다. 일반적인 산의 모습만을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어느정도는 따분함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배웠으나 잊어버린 산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산은 동물과 식물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다. 산의 속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자연현상에 대해 예를 들면 호수나 강, 혹은 화산활동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자연의 여러가지 형태를 바라보게 된다. 저자는 숲속에서 살고 있는 산짐승들의 움직임까지 관찰했다. 아울러 산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선속에서 산을 숭배하거나 신화를 창조해내는 것까지도. 사실 세계 여러나라의 창조신화를 보더라도 대부분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단군신화 역시 그렇다. 그만큼 인간의 삶은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사라져도 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산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위로 산을 파괴하고 그 산속에서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키고 있다. 하나의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멀쩡한 숲을 파괴하는 행태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일로 인해 생겨날 엄청난 결과는 재앙이다. 이미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이렇다. 산마루와 골짜기, 바위와 결정산의 기원, 화석, 흙더미와 돌더미, 구름, 안개와 뇌우, 눈,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 숲과 풀밭, 산짐승, 기후의 변화, 올림포스 산과 신, 수호신, 그리고 인간등... 목차만 봐도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금 따분하긴 했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이제는 잠시 쉬어갈 때임을. 이제는 제발 멈추어야 할 때임을. 다만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염려스러울 뿐이다. /아이비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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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선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지평선 너머 울퉁불퉁한 봉우리들이 치솟은 높은 산으로 향했다. 앞으로 뻗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해가 지면 뚝 떨어진 시골 여관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에 질려 버린 상태였지만, 혼자 걷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새들의 울음이 구슬프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시냇물 소리와 깊은 숲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웅성거림도 더 이상 치열하게 들리지 않았다. '산'이란 존재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웅장함과 장엄함이 떠오른다. 그리고 왠지 모를 친숙함이 떠오른다. 전자는 아마 히말라야같은 산을 떠올릴 때 느낌일 것이고, 후자는 아마 동네 뒷 산을 떠올릴 때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두가지 상반된 이미지 모두 '산'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평소 산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종종 산행을 떠날 때 '산' 자체가 주는 그 치유력을 경험한다.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보는 기분이란... 정말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다. 이 책의 저자 자크 엘리제 르클뤼는 1830년 프랑스 지롱드에서 태어나 1905년 벨기에에서 사망하기까지 방대한 19권의 [세계인문지리]서를 펴내 현대인문지리학의 선구자로서 지정학, 역사지리학, 사회지리학 등의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생태학 이론과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실제로 그는 채식주의를 실천했고, 개인의 자유 및 모든 제도의 억압에 반대하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사상하였다. 또한 '자유 동거'와 '여성참정권' 등 페미니즘 사상에도 선구적 주장을 펼친 당대를 주도적으로 이끈 선구자였다. 이 책, [산의 역사]는 엘리제 르클뤼의 많은 저서 가운데서도 정권의 핍박을 받고 스위스 산골에서 망명 시절 집필한 저서로 당시에도 아주 큰 반항을 일으켰을 정도로 산을 주제로 하면서도 지리, 자연, 인간의 세 역사를 두루 다란다. 이 책은 그의 3대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20세기 사상사에 중요한 고전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지리학을 다룬 줄 알았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산의 모습 속 미처 알지 못한 일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깊은 산속으로 사방에서 빨려드는 수많은 작은 골짜기는 무수한 가지로 나누어지다가 또다시 가냘픈 잔가지로 나뉘는 나무들과 비슷하다.' (22페이지)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피레네 산자락부터 프랑스 정부의 고원, 독일, 스페인 북부와 스위스의 산악까지 산을 오르내리면서 저자가 느꼈던 순간순간들의 감정이 묻어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지리학적으로 산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대륙의 산맥과 마을 주변의 산들까지 그 존재 자체로서 주목하고 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산도 또하나의 유기적인 존재로서 자연 더불어서 인간과 함께 성장하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저자는 인류에게 있어서 산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주며 자연물로서의 산을 넘어서는 '산'이 지닌 의미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문지리와 더불어 종교적의미로서의 산을 조명한다. 또한 신화의 세계에서 산을 역사의 세계로서 끌어오며 산을 이해하고 파헤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산'이란 존재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인류의 이기심으로 산림이 훼손되고 다시 그 결과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이 시대에서 다시금 거대한 자원으로서 산이 아닌 인류와 함께 해온 '산'이라는 존재 자체를 기억하게 한다. 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는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듯 산을 아끼고 일방적인 악탈이 아닌 공생을 깨우치게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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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거예요. 중요한 건 산에 오른다는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산은 묵묵히 그 자리에서 그들 모두를 품어주는 것만 같아요. <산의 역사>는 자크 엘리제 르클뤼의 인문 에세이예요. 저자는 전문적인 산악인은 아니에요. 쭉 도시인으로 살다가 시끌벅적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첫 문장부터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슬펐다, 살아가는 일에 지쳐 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계획이 무산되고,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친구라던 이들은 초라한 내 모습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들떠 싸우는 인간들이 추해 보였다. 가혹한 운명이다. 그래도 어차피 죽을 것이 아니라면, 정신 차리고 다시 기운을 내든 해야지,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6p) 절망에 빠져 있던 저자는 산에 오르자 기쁜 마음에 온전히 휩싸였고, 바위와 숲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덕에 과거를 잊을 수 있었어요. 더 나아가 진심으로 산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서로 거리를 뒀던 목동과도 같이 지내면서 신뢰가 쌓였어요. 목동은 그에게 작은 식물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보석으로 손질될 암석을 캐내어 보여주었어요. 높은 산마루에 올라 골짜기들을 짚어가며 급류가 쏟아지는 물길을 가르쳐 주었고, 그 지역의 전설과 역사까지 들려주었어요. 저자는 목동에게 자연의 지리적 과학적 내용들을 설명해주었어요. 그들은 자연이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학생이 되었어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산의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역사를 알아보게 되었고, 은둔 생활이 탐구 생활로 바뀌게 되었어요. 여기서 잠깐, 자크 엘리제 르클뤼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자크 엘리제 르클뤼(1830~1905)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벨기엘 브뤼셀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냈어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1871년 파리 코뮌 민중혁명운동에 참여했다가 정권의 핍박을 받고 스위스 산골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산의 역사>를 집필했어요. <산의 역사>는 지리학자이자 생태학자로서 자크 엘리제 르클뤼의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산마루와 골짜기, 바위와 결정, 화석, 무너지는 봉우리, 흙더미와 돌더미, 구름, 안개와 뇌우, 눈,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 숲과 풀밭, 산짐승, 기후의 변화, 산사람과 신화, 수호신과 인간. 역시 사람은 전공 분야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지리학자로서 산을 탐사하면서 산의 생성과 인간이 함께 해온 역사를 새롭게 고찰했다는 점이 놀라워요. 처음에는 과학적 접근이었다면 점점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는 인문학자로서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어요. 마지막 장에서는 그것이 강력한 경고였음을 깨닫게 되네요. 이 책의 단행본은 1880년 출간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는 전부 인류의 책임이라는 것. ... 진정으로 아름다운 정서를 깨닫는다면 자연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인류 대부분은 지금 보다시피 거칠고 이기적이며 기만적으로 살 것이다. 지구에 서글픈 자취만 계속 남길 것이다. 시인이 절망하는 외침이 정말 사실이 되지 않을까? "도망칠 데가 어디 있어? 자연이 더러워졌는데......" (225-226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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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는 책 제목에서처럼 산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지식과 인문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인문학 열풍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 다양한 종류의 인문학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지리' 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면적의 4분의 3이 산지로 이루어져있고, 산지는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 북쪽과 동쪽에 치우쳐서 지형의 등줄기를 이루어 동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면서 동해안에 임박하지만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서해안에 이르는 지형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산은 매우 밀접하고 친숙한 존재이다. 이처럼 산이 늘 가까이 있고 산을 많이 올라가게 되면서 오직 산에서만 특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 항상 산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산의 역사>는 산마루와 골짜기, 바위와 결정, 산의 기원, 화석, 구름,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 숲과 풀밭, 기후의 변화, 산을 향항 숭배, 그리고 인간 등을 비롯한 21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산의 생성과 산의 성격, 현재의 모습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육지와 섬에서 수천 미터 높이의 땅덩어리가 많은 비를 맞으면 비탈은 점점 크고 작은 계곡과 협곡으로 깍이고, 단조롭던 고원 표면은 봉우리, 능선, 피라미드로 나누어진다는 점과 오랜 세월 흙과 바위, 사암층, 금속 광맥 등 모든 것이 눌리면서 산과 계곡을 빚어내는데 대양의 표면처럼 땅 위에 있는 바위들이 옆으로 밀어붙이는 힘에 따라 그 주변 바탕도 계속 요동친다는점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산에서 찾았고 산과 관련된 전통과 전설을 만들면서 오랫동안 산을 숭배해 왔고, 인간이 수십 세기 동안 창조한 신들의 이름과 상징과 능력이 역사와 언어, 수많은 개인과 민족 전통에 따라 변해오면서 산봉우리마다 고유의 신이 존재하게 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산의 역사>를 통해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현상, 그리고 이런 현상들이 산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산의 모습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 볼 수 있었고, 우리에게 매우 밀접하고 수많은 영향을 주는 장소이자 공간인 산의 기원과 특성, 의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산과 인간의 관계, 산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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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엘리제 르클뤼 저의 『산의 역사』 를 읽고 나 자신은 32년을 중학교 현장에서 교사로서 복무를 하였다. 원래는 교사를 전혀 할 수가 없는 위치에 있었다. 실업계고등학교를 나와서 현장에 복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망이 결국 당시 개설이 되었던 방송통신대학교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어 늦은 나이인 스물일곱의 나이에 야간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낮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였고, 복무가 끝나자마자 학교로 가서 밤 시간에 열심히 공부에 임하였다. 2학년 때까지는 이렇게 다니다가 결국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3학년 때부터는 오직 공부 만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운이 좋게 처음으로 야간에 ‘교직과정’이 개설되어 이수하게 되었다. 전공공부도 하면서 교직과정도 공부하여 자격도 획득하였고,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교사로서 근무하는 “천운”의 마음으로 학생들 앞에 서게 되었다. 나름 어렵게 도전하여 얻은 교직이어서 우리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로 임하면서 대한민국 최고 교사로 봉사와 헌신의 상이 되리라 다짐하였다. 그러면서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앞장서서 임하였던 시간들이었다. 그 중에 했던 것이 우리 학생들에게 개개인 메시지 작성 활용이었다. 그러면서 나만의 마스코트로 삼았던 것으로 산과 태양이었다. 모든 메시지와 나의 글에는 내가 그린 푸른 산이 그려지고 둥근 태양이 그려졌다. 푸른 산의 꼭대기는 바로 학생들의 꿈과 목표점을 가르친다. 능선은 거쳐 가는 과정이다. 솔직히 산 정상 정복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많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힘들 때 떠올리는 것 두 가지를 이야기 한다. 바로 둥근 태양과 짙푸른 산이다. 태양은 타오르는 열정을 푸른 산은 젊은 청춘과 강력한 도전정신을 이야기 한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힘듬, 고통을 이겨내고 반드시 산 정상(꿈, 목표)을 정복하여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격려 하였다. 모든 학생들의 시험 볼 때나 생일 때나 각종 행사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이런 격려메시지를 만들어 활용하면서 정신적,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 맺기에 활용했었다. 그때부터 산은 바로 나만의 영원한 마스코트며 가장 친한 친구며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산은 막연한 나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지리학자이자 사상가인 저자의 <산의 역사>책을 읽고서 ‘산은 어떻게 지구를 움직이고, 인류의 삶을 구원했는가?’라는 엄청난 진리를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산에 관하여 과학과 지리학적 시선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역사·문화적 측면의 통찰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산을 통해 성찰하고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저자의 경험과 위트가 듬뿍 담긴 글은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산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데, 산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 막연하게 좋아하는 산에 대하여 역사와 지리, 문화적 측면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의 경험과 관련한 내용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사실은 커다란 효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항상 나의 호주머니와 가방에는 나 자신이 직접 만든 산과 태양을 그려 만든 격려 메시지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나눠드리며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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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파람북 이 책의 저자 자크 엘리제 르클뤼는 1830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1905년에 돌아가셨다. 1871년 나폴레옹 3세의 군주제에 반대해 일어났던 파리코뮌 민중혁명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스위스 산골짜기로 몸을 피해 망명 생활을 하며 이 책을 썼다. 그는 <<세계 인문지리>> 19 권시리즈를 펴낸 현대 인문지리학의 선구자이다. 거의 200년 전의 채식주의자인 지리학자, 자크 엘리제 르클뤼가 가르쳐주는 산이야기, 궁금해하면서 책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는 지리학자 이면서도 사람에 관심이 있는 인문학자였다. 그는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바라보며 애정한다. 이 책에서는 산을 떠날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을 품은 산이야기가 펼쳐진다. 산은 사람을 품어주고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한걸음부터 시작하는 등산은 높은 산이거나 낮은 산이거나 걸음걸음 만큼의 가르침을 준다. 2020년 올해는 특별히 여름 장맛비가 너무나 많이 쏟아졌다. 이 비로 인해 곳곳에서 산사태가 많이 일어났는데, 1800년대 말의 프랑스에서도 산사태가 크게 났나 보다. 저자는 자연이 산사태를 일으키고 바윗돌을 굴리고 진흙을 실어 나르며 모래를 옮기고 산 밑바닥을 다시 돋우면서 식물이 자랄 토양을 조성한다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여름엔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지만 겨울에는 하얗게 쌓인 눈이 눈사태를 일으킨다. 아름다우면서도 안전하고 무서운 면을 가진 산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나의 은신처, 산마루와 골짜기,바위와 결정, 산의 기원, 화석, 무너지는 봉우리, 흙더미와 돌더미, 구름, 안개와 뇌우, 눈,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 숲과 풀밭, 산짐승, 기후의 변화, 자유로운 산사람, 산을 향한 숭배, 올림포스 산과 신, 수호신, 그리고 인간이라는 작은 주제어들을 통해 지질학과 화학, 인류학을 망라하며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산의 역사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자연의 역사, 땅의 역사, 인간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불기둥을 뿜어내는 산을 보며 써 내려간 인류의 신화도 언급한다. 그리고 벌써 그 당시(1800년대 중 후반)에 중국의 태산 이야기를 한다. 공자가 태산을 올라가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 내려간 소나무 자리도 보존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휴화산인 후지산이 가장 의미 있는 산이라고 말하고 그 당시에도 일본에서는 많은 화산이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전 세계의 신화 이야기를 써내려 가면서 간단명료하게 신화 이야기를 정리해준다. 페르시아의 유목민에게도, 노아의 방주에 나오는 신화 속 사람들에게도, 그리스의 사람들에게도 산 꼭대기를 제외하면 이야기 거리가 남지 않는다. 많은 신화에서 인간이 높은 산봉우리에서 내려왔다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 산 아래서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산은 우리에게 더 의미가 있다. 아쉽지만 이 책에 백두산, 한라산은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산은 삶의 터전 바로 곁에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가까운 산은 자동차로 10분~30분이면 닿을 수 있어서 늘 산의 품에 안겨있다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 저자가 살던 19세기를 지나고, 20세기를 건너 오면서 만년설로 덮여있는 높은산들에 인간이 발을 디뎌놓았다. 21세기로 오면서 인간은 산을 탐험을 하듯이 우주로 나가 우주를 탐험하고 있다.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을 것인가. 고맙습니다. 저는 네이버카페<북뉴스>를 통해 <파람북>이 제공해주신 책을 읽고 이 글을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