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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입학 전부터 전래동화와 명작동화를 접하고, 사춘기 무렵이면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고전을 직·간접적으로 만난다. 그런데 만일 이 책들이 남성 중심인 한 쪽의 관점으로 씌어졌다면 어떨까? 분명 그러한 책들은 자라는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는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 중심적 관점에 자연스레 노출돼 자랐고,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하라는 압력 아래 마음과 몸의 제한을 받으며 살아왔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는 한 쪽의 관점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전래동화와 민담, 전설, 단군신화를 다시 해석하며 새롭게 쓰기를 통해 성 평등하고 인간다운 사회로 가기 위한 성 인지적 깨달음을 선사한다.
<신콩쥐팥쥐>에서 팥쥐 엄마는 미혼모다. 처자식이 있는 놈팽이에게 속아 임신한 그녀는 애를 지우려고 별별 노력을 다한 끝에 실패한 후 집을 나와 산 속에서 홀로 팥쥐를 낳고 살다 마음씨 좋은 할머니 덕에 홀아비가 돈 콩쥐 아빠를 소개받는다. 튼튼한 몸으로 가난한 살림을 억척스럽게 꾸려 기반을 닦아놓은 그녀는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콩쥐와 팥쥐를 공평하게 대하고 의좋은 자매로 자라게 한다. 이름만 양반인 무능한 남자에게 시집가 남편의 구박과 폭력을 당하며 아이 둘을 낳고 살던 콩쥐는 든든한 동생 팥쥐와 새어머니의 도움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애엄마들과 아이들을 모아 함께 자립적인 공동체 생활을 한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아기 장수' 민담 속에 나오는 홍길동은 우리가 잘 아는 허균의 <홍길동전>과 다르다. 아기 때부터 남달리 힘이 세어 불의에 맞서다 실패한 역사적 인물의 성장 이야기로 회자되는 한 이야기에는 홍길동만큼이나 힘이 센 누이가 있다. 충남 공주의 무성산성에 얽힌 <오누이 힘겨루기> 전설에 의하면 무성산성을 쌓은 이는 홍길동이 아니라 그의 누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무성산성이 '홍길동성'으로 불리는 데에 의문을 품은 저자가 홍길동의 누이에게 '홍길영'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엄마의 선택을 받지 못한 딸인 그녀의 이야기를 새롭게 다시 쓴 이야기가 <홍길영전>이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 TV에서 본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 이야기는 소름돋는 무시무시함과 특이한 소재로 인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하필이면 무섭고 요괴스러운 구미호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는 것도 이상해 끝없는 궁금증을 자아내곤 했다.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의 작가는 전설로 내려오는 꼬리가 아홉인 구미호 이야기를 현대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작은 마을의 장애 여성의 이야기로 다시 썼다. "전설과 민담 속의 여성 괴물들의 대부분은 가부장제도 하에서 남성이 통제할 수 없는 공포를 투사한 존재이거나 자신들이 가해한 폭력을 뒤집어쓴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고 작가는 말한다. 현대에 새로 등장한 여성 괴물의 아이콘들이 '꽃뱀'과 '김치녀', '된장녀'라고. 하지만 "구미호는 없다. 구미호라는 고약한 이름으로 불리던, 목소리 없는 여성들만 있었을 뿐이"다.
어릴 때 읽은 전래동화 중에 가장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선녀와 나무꾼>이다. 나무꾼과 동일시하며 읽은 나는 끝내 날개옷을 입고 아이들을 안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원망했다. 그리고 막연히 선녀가 하늘로 올라간 이유는 인간 세상보다 하늘나라가 더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여성의 삶과 페미니즘을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다는 걸 안다. <하늘 재판 극, 고통을 벗고 날개옷을 입다>는 선녀의 맏딸 마야의 입장에서 부모의 불평등한 삶을 바라보는 희곡으로 다시 쓰인 이야기다.
어머니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여기는 마야에겐 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적대감과 정의감이 넘실거린다. 마야의 내면 세계는 여러 자아들이 충돌하는 장이다. '밀어붙이는 자아'는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도록 부추기는 반면, 무의식 속의 '내면 가부장'은 마야의 행동이 공동체에게 위협이 된다고 비난한다. 갈등하는 자아들 사이로 나타나는 또 다른 자아인 '돼지'는 위안거리를 주는 외부(음식)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지상에서 사냥꾼으로 변신한 마야는 그 옛날 나무꾼인 아버지가 선녀인 엄마의 날개옷을 감추고 납치하게 한 사슴을 쫓다 마침내 맞고소하게 되어 옥황상제 앞으로 나아가 이야기에 얽힌 사람들이 재판을 받게 된다. 나무꾼에 대한 고소장에는 '결혼 목적 약취˙유인, 재물손괴, 감금, 성폭력, 가정폭력' 등이 씌어있다. 이에 대한 옥황상제의 질문에 나무꾼은, "그저 선녀를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발뺌한다. 그동안 성인지 교육연극과 여성주의 드라마 치료를 안내해온 작가의 경험을 담은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부록으로 실린 <단군 신화에 나타난 한국여성의 분열 - 웅녀와 호녀 이야기>의 저자는 단군신화의 주인공은 단군이 아니라 웅녀이며, '웅녀신화'라고 믿는다. '한국 여자'의 기원을 탐구해온 저자는, 단군신화는 여성의 통과 의례의 주요한 초점인 성적 · 생물학적 역할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다루는 것으로, 고대 한국 사회에 이미 가부장제 질서가 확립되었다고 유추한다. '웅녀신화'를 통해 확립된 한국판 성차별주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과 남성 3대에 대한 여성의 복종, 일부다처제의 전통 세 가지라고 한다. "웅녀는 고대 한민족의 원형적인 마음이 만들어낸 '문화적 실물'이며 '여자'라는 '이데올로기적 형성'의 구체적 현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웅녀신화에 나타난 한국 여성들의 잃어버린 섹슈얼리티는 이러한 신화 만들기 과정 속에 내재된 의도적 장치의 전형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단군신화에 대한 저자의 페미니즘의 해석은 그동안 의문으로 남았던 단군신화 속의 곰과 호랑이에 얽힌 수수께끼에 대한 시원한 해갈이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으며 우리에겐 다른 이야기, 다른 창조신화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어느 한 쪽이 지배하고 다른 쪽은 순종하는 갈라진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문제는 바로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인식 아래 소통하고 협력하는 성숙하고 인간다운 세상 이야기가 요구된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는 이러한 우리에게 필요한 공정하고 신선한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 재미와 가슴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소중한 선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다시 쓰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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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이 많다. 굳이 '페미니즘'의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분명히 다시 쓰여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대목이, 공통적으로 '예쁘고 착한 여자, 못생기고 못된 여자'의 이분법적 캐릭터 설정이다. 이야기 속에서 그려지는 여자들의 '착함'의 의미도 실상 '수동성'이나 '어리석음'에 가깝다. 그게 못마땅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옛이야기를 다시 쓰자는 이 책의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었다. 기존의 이야기가 어떻게 새롭게 탈바꿈될지 너무 궁금했다.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콩쥐팥쥐>, <아기 장수>와 <오누이 힘겨루기>, <구미호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속에서 "묵살되고 지워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부활시켜 각각 새로운 이야기로 꾸몄다. 각 이야기마다 해당 이야기를 쓴 작가의 해설이 덧붙여 있다. 부록으로 <단군신화> 속 웅녀에 대한 논문 내용도 실려 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선별된 것일까. 프롤로그에서도 특별히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솔직히 내가 기대했던 책의 구성은 아니다. 이런 제목으로 책이 나온다면, 적어도 우리 옛이야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뭔가 주제별 혹은 문제의식별 차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급적 많은 내용을 담아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시 쓴 이야기만 본다면 네 편이다. 단지 그 수가 적어서 아쉽다기보다, 왜 굳이 앞서 나온 내용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꾸몄는가 하는 의도나 목적에 대해 밝혀주면 좋았겠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쉬움은 이 책 자체에 있다기보다, 이 책을 기점으로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기인한다. 이런 기획의 첫 책이라면 전체를 조망해주고, 그 다음 책부터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다른 맥락에서 본다면, 이 책은 나처럼 옛이야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이미 가지고 있었거나 다시 쓰는 이야기 자체를 궁금해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실 전체적인 조망이나 주제별 혹은 문제의식별 차례가 무의미하다. 그저 이런 시도 자체가 반갑고 책 내용도 흥미롭다.
콩쥐와 팥쥐 자매의 연대, 항상 길동보다 앞선 누나 길영의 존재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구미호'로 불리던 명희, 선녀와 나무꾼 사이의 맏딸 마야 이야기를 읽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새로운 이야기였다. 자매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아닌 연대와 연합이 좋았고, 길영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도 멋졌다. 속수무책 당하면서도 도리어 비난을 받는 명희는 안타까웠고, 이 땅의 모든 딸을 대변하는 듯한 마야의 버거움이 그대로 나에게도 전해졌다.
다시 쓴 이야기들뿐 아니라 각각의 저자가 쓴 해설도 새롭고 흥미로웠다. 특히, 후기 낭만주의 시에서 처음 등장한 팜므 파탈, 여성과 자연의 융합된 이미지 가운데 그런 치명적인 여성 이미지가 중국과 한국의 구미호 이미지와 일맥 상통한다는 내용이 그랬다. "고통을 벗고 날개옷을 되찾아 입는" 선녀들, 곧 수많은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사연은 먹먹했고, 부록에서 사람이 되지 못한 '호녀'의 소환과 그 의미는 '웅녀'로 한정된 시야를 넓혀주었다.
고정관념, 틀에 박힌 이야기가 바뀌면 우리의 인생이 바뀔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도 바뀔 것이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잘못된 이야기라면, 다시 쓰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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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고전의 재해석, 비틀기를 주제로 한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플롯의 동화들이 존재한다. 구전되었을 무렵의 시각은 비슷했다는 것인데. 너무도 달라진 시대상과 남여 역할(본질적으로는 평등과 존중의 문제)를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 하여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써 본 옛이야기. 최근에 '방한림전'을 읽었다. 동성의 결혼과 남장여인으로 입신양명한 주인공을 다룬 옛소설을 발굴해 다시 번역한 소설인데, 당시의 시대상으로서는 파격이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입신양명의 기준이 결국 '관'을 통해 지위에 오르는 것인 점, 동성과의 결혼이 인륜을 저버린 것으로 주인공 스스로 괴로워하는 점, 어떤 형태로든 자녀 출산과 양육을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했다는 점(입양의 형태), 동성부부이지만 바깥양반과 안사람의 역할이 구분지어졌던 점 등이다. 파격이지만 결국 시대상을 넘을 수는 없었다. 그 점에서 당시에 존재했던 새로운 시도의 책을 찾기보다는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을 펴내자는 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일 것이다. 프롤로그의 '부제'부터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다시 쓰는 옛이야기는 '콩쥐 팥쥐', '홍길동전', '구미호전', '선녀와 나무꾼'이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익숙한 제목들이라 그런지 별 생각 없이 읽다가 어느순간 숙연해지는 부분이 있다. 각 이야기 뒤에 '다시 쓴 작가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본편보다 더 집중하면서 읽었다. 작가들이 접했던 옛이야기와 살면서 함께 했던 여성들의 사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성들이 등장한다. 다시 쓴 옛이야기에는 작가들의 바램이 투영되어 있다. '신콩쥐팥쥐'는 '자매간의 연대'를 그리고, '홍길영전'은 '오누이 힘겨루기'의 누나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에서는 구미호는 실존하지 않고 고약한 아홉 가지 이유만 있을 뿐임을 목소리를 잃고 대상화된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하고, '하늘 재판 극, 고통을 벗고 날개옷을 입다'에서는 '미러링'을 다룬다. 단순히 내용비틀기에 그치는 책이 아니어서 고마웠다. 다루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파격적인 누드제본 형식으로 발간되었다. 표지만을 보고 혹은 제본 형태만을 보고는 이 책의 짜임새와 다룬 내용의 치밀함에 대해 방심하게 된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조금쯤 자세를 바로잡고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기는 일이 생겨난다. 이프북스에서 내는 책을 읽게 된 후로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간다. 나중에 딸에게 해 줄 말이 늘거갈 것 같다. 원래 서평단으로 책을 받으면 나눔을 하곤 하는데, 이 책은 서재에 고이 간직하다 딸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
어설픈 동화 패러디가 아닌 우리가 듣고 싶었던 동화로 다시 쓴 옛이야기.옛이야기라는 주제에 맞춘 옛 서책을 보는 듯한 디자인도 멋있다. 책이 활짝 펴져서 가독성도 좋았다. 이전에 ㅎㄱ의 페미니즘동화 라는 제목만 보고 샀다가 어설프기 짝이 없고 깊이도 없는주제에 차별과 혐오만 재생산해내는 그 책에 실망했던터라 비슷한거려나 싶었으나 전혀 달랐다. 훨씬 분석적이고 깊이 있으며 백마탄 왕자는 없는 한국의 민담 정서까지 잘 파악한 책이었다. 사실 이 책에 ' 콩쥐팥쥐, 오누이이야기 구미호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같은 다시 쓴 한국 옛 이야기'만 있다면 자칫 유치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었으나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을 넣음으로써 구성과 재미가 한층 풍부해졌다. 난 다시쓴 옛이야기보다는 왜 다시써야 했는가? 왜 여성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는가? 옛이야기를 재생산하게된 작가들의 뒷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신화와 설화, 민담은 그 나라의 문화가 녹아있다. 그 국가의 근본을 보고싶으면 건국신화부터 봐야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전세계의 건국신화는 남성들의 손을 거쳐 내려오면서 입맛에 맞게 불평등하게 변동되었다. 또 전세계 구전민담들의 공통점은 잔혹하고 거칠다. 그러나 가족의 틀을 벗어난 여성에게, 욕망을 가지는 여성에게, 남성을 따르지 않는 여성에게 특히 잔혹하다. 동화속 남성들은 잘못을 하면 스리슬쩍 빠지거나 용서받거나 도망쳐살지만 남성들이 정한 틀을 벗어난 여성들은 젓갈에 담궈지거나 불로 달군 신발을 신으며 죽을때까지 춤을 춰야했다.또 외모가 뛰어나지 못하고 가족에 편입되지 못한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하는 핍박은 어떤가, 신데렐라와 콩쥐의 계모와 이복자매들은 다 못생겼으며 산속에 숨어 사는 여성은 구미호가 되고 간을 빼먹는다며 모두가 혐오한다. 사람 사이에 섞여살려고 노력하지만 낙인찍히고 서양의 늑대인간과 마녀의 존재처럼 나쁘기만하고 없애야할 존재일뿐이다. 그들이 어떤 노력으로 사회에 살아가려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구미호와 마녀와 늑대인간이기만 하면 죽여도 면죄부를 받는다. 우리는 사회가 지정한 역할에서 벗어나거나 정해진 신분이 약하다면 받게 되는 벌을 권선징악따위라고 세뇌되어 배우지 않았는가.어렸을 적 동화책으로 읽고 구현동화로 들었던 한국의 민담들은 진부하고 뻔했다. 이책은 우리가 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민담을 의심하기 시작했는지 의심을 어떻게 변화하고 바꾸면 될지 한걸음을 떼는 책이다.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단군설화의 웅녀로 시작된 한국민담까지 태초부터 부정당한 한국여성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하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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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 리뷰 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펀딩 사이트의 소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는 어디서든 페미니즘에 관한 책은 찾을 수 있는데 왜 저렇게 인기가 많은가 궁금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한 나는 페미니즘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어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읽기 불편할 것 같아 거리를 두었는데 이 책은 어느새 내 손으로 들어와 있었다. 페미니즘은 알면 알수록 동등하게 인정받고 서로 존중해 주는 삶을 찾기 위한 것인데... 사회가 반감을 갖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날까지 목소리를 내는 분들을 뒤에서나마 응원한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_겉표지_출판사 이프북스> 이 책은 총 네 가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신콩쥐팥쥐 / 홍길영전 /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 / 하늘 재판 극, 고통을 벗고 날개옷을 입다. 겉표지의 그림이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일지 흥미를 돋구는 역할을 하였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_옆면_출판사 이프북스> 옛이야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구상한 디자인이 엿보인다. 이 책을 출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았는지 느껴졌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_펼친 모습_출판사 이프북스> 내용에 앞서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부분!!!! 책이 활짝 펴져서 내려놓거나 독서대에 올려두기 정말 편했다. 디자인만 생각한 줄 알았는데 물리적으로 읽기 편해서 세상 감동적이었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_홍길영전_출판사 이프북스> 네 가지의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홍길영전" 힘이 센 오누이 길동이와 길영이의 이야기이다. 오누이의 엄청난 능력과 개성으로 인해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풀어가는데 단순하게 시원시원하게만 풀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 장면은 그래서 뭔데??"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도 계속 궁금증을 자아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는 파트였다.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_스티커_출판사 이프북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그려진 스티커도 같이 받았다. 누구나 시원시원하게 재밌게 읽을만한 책으로 어렸을 적, 동화책을 읽으면서 답답했던 점들이 뻥뻥 뚫렸다. 또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사고의 편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페미니즘을 떠나 인관관계에 있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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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성중심적 서사 내부의 권력구조 즉 여성의 억압, 착취, 멸시 등을 정당화 시키고 반명 여성의 부당함을 덕목으로 가르쳐 온 한국 설화를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배우며 자랐습니다. 이토록 그들은 뻗친 수법이 깊고 범위가 넓습니다. 이제는 재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여성들에게 뼛속 깊숙히 부당함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 이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자체 필터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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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은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헝거>가 전부다. 전자는 이동진의 추천 500권 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에 읽었고, 두 번째 책은 그 첫 번째 책이 너무 좋아서 출간하자마자 바로 구매해서 읽었는데 전자보다 더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많아 읽으면서 조금 힘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누군가 추천해달라고 하면 단연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어딘가 뒤틀려지기 시작하고 일부 극단적으로 흐르는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고, 아울러 이 '운동' 역시 역사가 짧고 그간 억눌렸던 무언가가 터져나와 여러가지 잡음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작가의 개인사와 더불어 말하고 있다. 매우 좋은 책이고, 나도 록산 게이가 말하는 페미니즘 정의에 동의한다.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 라는 것을 말하는 정신이다.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다 아니다가 아니라. 서평단 모집에 당첨되서 받게 된 책,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 이야기>. 일단 우리나라 책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갔고, 무엇보다 나는 전래 동화, 구전, 신화를 워낙 좋아해서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를, 그리고 페미니즘으로 재구성했다는 책 컨셉도 마음에 들었다. 신화나 동화도 현재 유통되고 있는 전체관람가 어린이 버젼과 원작인 성인 버젼, 영화 만화 드라마 등 다양한 미디어 버젼들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동화들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책 디자인이 특이하다. 마치 조선시대 책 마냥 옆이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 의도든 아니든, 어울린다. 작가 4명이 4가지 이야기 - 콩쥐팥쥐, 홍길동, 구미호,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 - 를 다루고 있고, 작품이 끝난 다음에 작가들이 각자 해당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와 해석이 곁들어져 있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단군신화 논문에서 페미니즘 시각에서 논의한 부분만 일부 편집되어 실려있다. 콩쥐팥쥐는 <신콩쥐팥쥐>, 홍길동전은 홍길동과 오누이 힘겨루기라는 우리나라 동화를 합쳐 <홍길영전>, 구미호는 유일하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은 그 둘의 장녀 입장에서 쓴 연극 대본, <하늘 재판극>. 다 좋았는데, 더 좋았던 부분은 옛 이야기들 뒤에 나오는 작가들 개개인이 쓴 분석 글들이었다. 몰랐던 사실도 알고 배울 부분도 많았다. 만약 강의를 한다면 한번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동화, 역사 지식과 어그러지지 않은 페미니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신콩쥐팥쥐> 콩쥐가 동양미 삼백석에 빠져 용왕 만나고 임금님하고 결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집 온 뺑덕 엄마랑 팥쥐랑 잘 지내면서 나중에 시집도 가고 애도 낳는 이야기다. 판타지가 사라진 콩쥐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정말 이런 결혼을 해서 그런 남편을 만나고 그렇게 자식을 낳아 살았을 것 같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새엄마와 팥쥐와 잘 지내는 콩쥐 이야기. 작가의 분석 글 덕분에 처음으로 왜 뺑덕엄마와 팥쥐가 재혼을 - 그것도 가진 것 없고 돈도 못 벌고 가난한 장님 남자랑 결혼을 해야 했나 생각해 봤다. 작가 말처럼 당시 시대에는 여자 혼자, 그것도 애가 있는 여자가 혼자 사는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으니 가진 것 없는 장님 남자라도 일단 여자라면 무조건 남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에 공감이 갔다. 마지막에 그렇게 홀로 있는 여자들의 공동체가 꾸려지는 부분도 좋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기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도와주는 관계가 형성된다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점은, 작가가 어렸을 때 읽었던 콩쥐팥쥐에는 팥쥐가 젓갈로 담가지는 결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 그걸 정말 어렸을 때 읽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아이들 버전에는 젓갈로 담가지는 결말로 책이 출판되었을 것 같지 않아서. ...아니면 작가가 아이였을 때 콩쥐팥쥐의 다양한 버젼들을 찾아 읽다가 우연히 연령대에 걸맞지 않는 엔딩을 읽게 된 건가. 그랬다면 마치 신델레라 원본에서 계모가 실제로 자신의 친딸들의 발뒤꿈치와 엄지를 가위로 도려내서 피 철철 구두를 신게 한 원본 스토리처럼 충격적이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가 언급한 그 순결 지키기 은장도 말인데, 맞다. 작가의 의문처럼 “저렇게 짧아서 과연 자살이 될까?”처럼 실제로 은장도는 자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무용지물이었다고 알고 있다. 마치 손톱깍기로 자살하겠다고 소리지르는 거랑 똑같았다고 해야 하나. 남자 위협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고. 예전에 나도 궁금해서 과연 그 옛날에 진짜 은장도로 자살할 수 있었나 알아봤었는데, 물론 목이나 손목에 찌르거나 그어버리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날이 짧고 날카롭지 않아서 진짜 죽으려고 해도 굉장히 힘들게 힘들게 힘들게 죽거나 - 죽고 싶어도 못 죽었다고 한다. <홍길영전> 홍길동과 그 누나, 엄마의 이야기. 우리가 익히 아는 홍길동 이야기와 처음 알게 된 <오누이 힘 겨루기>라는 우리나라 전래 동화를 혼합시켜 만든 이야기, 홍길영전. 어, 나는 그래도 전래동화라면 어지간히(?)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누이 힘 겨루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리고 홍길동전도 <아기 장수>라는 이야기에서 발전된 스토리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아 그럴 수 있지. 오호 재밌다. 흥미로웠던 점은 <오누이 힘겨루기>에도 다양한 버젼들이 존재하는데 마지막에 늘 딸이나 엄마가 죽는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작가의 말처럼 정말 시대적 정신의 한계라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남녀 힘 대결이라는 요소를 민담에서 처음 봐서 개인적으로 한번 찾아보고 싶다. 한가지 의아했던 부분은, 아들 홍길동에게 무쇠 신발을 신겨서 한양까지 걸어 갔다 오게 한 미션. 원작 <오누이 힘 겨루기>를 안 읽어봐서 세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그렇게 살이 벗겨지고 무를 정도로 아픈 신발을 발자국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고향에서 한양까지 왕복한다는 컨셉은 - 흥미진진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사기 치기 너무 쉬운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너무 어른의 때가 묻은건가). 난 중간에 홍길동이 사기 칠 줄 알았는데 진짜 끝까지 그 신발을 신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갔다와서 놀랐음. 그런데 마을 안에 들어와서도 쿵쿵쿵 소리나게 그 신발을 여전히 신고 돌아다니는 건 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련하기 이전에 일단 아프잖아. 그리고 사또가 그 소리를 다 듣잖아. 공포감 조성으로 일부러 쿵쿵쿵 소리를 내는 거라면 이해라도 되는데 그것도 아니면서... 살점이 떨어질 정도로 아프다면서 왜 이미 다 도착한 마을 안에서 신발 안 벗어? <꼬리가 아홉인 이야기> 유일하게 현대를 배경으로 쓴 이야기. 구미호가 그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담아 썼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 못 쓰겠네. 구미호의 정체성을 이렇게 재해석한 부분이 신선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가장 읽기 힘들고 불편했다. 진짜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가 이문열의 소설 <아가>를 읽으면서 “토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거북하다고 느꼈던 책이 바로 <무진기행>으로 유명한 김승옥이 쓴 단편소설 <건乾>이였다. 여기서 주인공 남자 소년이 마을에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여동생하고만 사는 착하고 예쁜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느 날 주인공 형과 형 친구들이 이 소녀를 멀리서 보면서 “야 우리 쟤 먹을래”라고 말하고 소년을 불러 네가 저 여자애에게 가서 오늘 밤 어디 어디에 나오라고, 꼭 혼자 오라고 말하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주인공 소년은 그 뜻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면서 그 심부름을 행동으로 옮기고, 이상야릇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김승옥이 글을 잘 쓴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너무 잘 써서 읽으면서 기분 더러워지는 스토리다. <하늘 재판 극>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특이하게도 연극이다. 좋았다. 선녀와 나무꾼이 동화에서 나오듯이 마지막에 헤어졌는데, 이후 이 둘의 세 자녀 중 장녀인 ‘마야’가 아버지와 할머니랑 사슴을 고소에서 하늘나라에서 열리는 재판 과정을 담고 있다. 어머니 선녀는 아파서 누워 있기만 하고, 나무꾼은 새 장가를 들었고, 할머니랑 사슴은 증인으로 재판장에 온 사실 하나만으로 잔뜩 화가 나 있다. 재미있었다. 결말이 어찌 되나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아 이런 오픈 엔딩으로 만드시다니. 작가가 피해여성센터에서 일하는 경력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자녀 입장에서 겪는 가정 불화의 트라우마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사슴이 사투리 쓰는 점만 빼고 다 좋았다. 성차별 인식에 대한 글이라면 특정 사투리를 악역인 사슴이 쓰는 것 역시 특정 차별 인식을 불러들일 수 있으니(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지역 감정이 심각한 나라잖아요) 그냥 다 깔끔하게 서울말 쓰는 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록 - 단군신화 논문 일부분> 와아. 이런 식으로도 단군 신화를 해석할 수 있구나. 오호. 책에서는 페미니즘 부분만 편집되어서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논문 전체를 한번 읽어보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 단군신화가 그리스로마신화처럼 대중화되지 않은 게 안타까운 사람이라.... 그런 면에서 주민호의 <신과 함께>는 정말 여러가지면에서 수작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의 해석에는 - 곰과 호랑이가 왜 꼭(?) 여자 인간이였는지에 대한 해석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은 하지만 그 의견에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단순히, 그저 당신 곰을 섬기는 부족과 호랑이를 섬기는 부족이 있었는데 그 둘이 싸우다가 결국 곰족이 이겼다는 대중적인 해석에 더 공감하는 쪽이다. 물론 왜 신은 꼭 남자여야 하냐, 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일단 과거에는 어쨌든 남성중심 사회였으니까. 제우스가 그렇게 바람둥이 신이 된 것도 진짜 바람둥이라서가 아니라 왕들과 귀족들이 ‘우리도 신의 자식이다’라는 걸 내세워 신성미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모두 제우스와 맺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서라는 해석이 있지 않나. 그런 역사의 흐름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되어서, 비록 저자의 단군 신화 해석은 배울 점이 많았지만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결국,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 라는 것을 말하는 정신이라고 믿는다. 왜 여남이 아니고 남녀냐, 왜 허스토리가 아니라 히스토리냐, 왜 군대 안 가고 왜 애 안 낳냐 - 라고 싸우는 게 아니라, 이러한 차이점들을 확고히 인지하고 논의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차이를 문제 삼아 서로 공격하면서 누가 더 우월한 성이라고 따지는 건 페미니즘 정신이 아니다. 과거에는 분명 남성 중심으로 사회가 흘러가는 부분이 있었지만(심지어 여자가 무대에 설 수 없어서 남자가 여장을 하기도 하지 않았나) 그 모든 건 역사의 일부이고, 이제는 단순히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동물원에 넣고 전시하거나, 아이들을 노동 인력으로 사용하고, 여자라고 투표를 할 수 없고 42.195km 올림픽 마라톤을 출전을 할 수 없다고 막는 세상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간혹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며 여기저기 떠드는 '과격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그건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자가 남자보다 잘났어, 라고 말하는 정신이 패미니즘이 아닌데. 오히려 페미니즘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남자가 나쁘다며 또다른 차별을 낳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마치 종교가 달라서 사람 죽이는 게 당연하다는 테러리스트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무조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데. 이러저러해도 결국 인류는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페미니즘도 처음 인종 차별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아동 권리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자 투표권과 마라톤 출전권이 인정되었던 것처럼,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 위한 정신 중 하나라고 믿는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