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저자가 먼저 지었다는 '제3의 침팬지'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장장 600여 페이지나 되는 방대함,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었던 반복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꽤나 흥미있게 읽혔다. 문제점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좋은 책, 기꺼히 소개하고픈 교양서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집필 동기를 밝힐 때 소개된, 뉴기니 원주민 친구의 질문 "왜 뉴기니 사람이 유럽을 지배하지 않고, 유럽인이 뉴기니와 호주를 지배하게 되었나?"라는 식의 질문은 웬만한 사람들은 몇번씩 가져봤을 법한 것들이다. 민족주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문명사적인 개념으로 말이다. 왜 백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나? 이 책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이와 같은 질문의 전제는 '왜 호주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가 원주민이 아니라 백인이냐?'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왜 중국인이 아니라, 혹은 인도인이 아니라'는 질문이 아니란 거다. 인도인은 언급을 거의 안하고, 중국인의 문제에 대해선 막바지에 짤막하게 언급을 하고는 있지만, 하여간 그런 내용은 이 책의 대체로 관통하는 현세 인류의 13000년의 역사 - 생태학적/인류학적 분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회학적인 요소들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안나 카레리나의 가설'이라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10대에 이 영화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소피 마르소가 주연해서 새로 만들어진 것 말고.) 대충 기억이 나서, 이 맥락을 알 것도 같다. 저자는 이 문구를 패러디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명제(?)는 경작할 수 있는 식물에게도 해당된다. 환경결정론적인 입장에서 저자는 무엇보다 유라시아 대륙에는 농경과 목축이 가능할 종자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삼는다. 그 동네에 사람이 먼저 살았다는 것 보다도 말이다. 그리고 그 동네가 가장 넓다는 자명한 사실을 주요한 근거로 삼는다. 이 생각을 못하고 살아왔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명쾌하게 다가왔다. 세계사 시간중 4대 문명의 발상지에 대한 이야기 이후에는, 단편적인 주변의 문명들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발상지 사람들이 주변으로 옮긴것(정복한 것?)인지, 그 주변사람이 발상지의 문명을 받아들인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매우 취약하다.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BC 수천년 전의 이야기에 대해선, 항상 신화/전설같은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이후에 여러번 전해들은 얘기로... 아시아의 동서간의 그 막막한 거리는 이미 그 예전에도 여러 경로로 사람들이 오고갔다는 사실, 유목민이 말타고 움직이면 두달이 채 안걸리는 거리였다는 사실, 그런 사실이 어떤 대륙의 인류가 다른 대륙의 인류보다 앞설 수 있게된 주요한 근거라는 것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동식물 종이 교환되기도 매우 유리했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구나.... 바다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립되었던 호주 부근을 제외하고,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경우 동식물 종의 부족과 함께 결정적으로 문명의 발전/전파가 늦어졌던 이유가 이들 동네에서는 이동경로가 남북이라는 것이었다는, 그에 비해 유라시아는 동서로 긴 축을 이룬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소위 기상/환경/기후를 공부했다는 전공자로서도 말이다. 유라시아의 동서축 상에도 다양한 기후대가 존재하지만, 동식물의 생육을 수천년동안 가로막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사하라 북부와 남부 사이의 단절, 북미의 한대의 동식물이 남미 남쪽 끝까지 전파되기 위해서는 온대/건조대/열대/삼림 등등을 지나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질 못했다. 그냥 독한 인종들만 움직였겠지... 하는 생각만 있었을 뿐. 이 책을 보면서, 자연사 혹은 인류사는 참으로 얄궂다는 느낌을 여러번 가지게 된다. 저자의 가설대로, 대략 10000년쯤 전에,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몽땅 바꿔놓았다면, 그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정말 모를 일이다. 인류학, 생태학, 생물학, 언어학 등을 망라하는 자료수집과 정리를 통해 지어진 이 책이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것은 인종차별적 시각이 아니라, 객관적/환경적 요인을 가지고 인류의 현상태를 살펴보자는 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어슐러 르귄의 '헤인 시리즈'처럼, 인류가 여러 행성들에 정착하고 수천 수만년이 흘러서 다시 만나는 일이 생긴다면... 엄청나게 재밌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
|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인기가 많은데는 역시나 역시 명불허전 이유가 있네요 인류 역사에 대해 한층더 깊고 심도있게 알수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을 만큼 멋진책 좋은책 훌륭한책 다이아몬드 만세 만세 만만세 #젊은작가 |
|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서양중심의 사관에 입각해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을 출발로 해서 사실의 나열과 역사를 쓰는 사람의 입장을 기반으로 하는 해석, 분석을 통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간들이 구체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어떻게 목숨은 연명하였으며, 각각의 지역 또는 나라, 환경 등에 어떠한 방법으로 적응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만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더라도 속쉬원하게 대답을 해주는 글을 쉽게 찾을 수는 없다. 그런데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그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리라 생각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근본적이며, 실제적인 것들을 대상으로 해서 인간이 처한 환경 (특히, 자연환경 등)에 어떻게 대처하였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 고고학, 인류학, 지구물리학, 기상학, 병리학, 기술사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저자는 검토하고 분석하여 그 내용들을 서술하고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쉬운 글쓰기를 통해서 일반인들도 누구나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많은 분량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글을 볼 수가 있다. 한편 번역 또한 수준 높게 되어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현대문명의 중심에 있고, 어떤 사람들은 없어졌거나,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 등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책을 읽어보기를 적극 권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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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지배적인 현 시대에 인류의 과거사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단지 지나간 과거에 지나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저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를 기준으로 할 때 과거란 끊임없는 문명과는 다른 야만이라는 잣대로만 재단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다른 열등한 문명 혹은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야만스럽다는 이름으로. 그러나 우리보다 우등하다고 여기는 선진 사회를 보면 곧 의기소침해진다. 이는 문명 혹은 문화간의 비교에 대한 태도는 시대를 비교할 때도 유용한 준거틀을 제공한다. 과거를 볼 때도 우리는 항시 문명을 바라보는 이 잣대를 들이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1980년대조차도 까마득한 과거의 일일 뿐이다. 그때 우리는 왜 오늘과 내일을 보지 못하고 그런 삶을 살았을까하는 아쉬움 가득한 소리를 하기 쉽다. 왜 비슷한 과거임에도 현재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문화 혹은 문명간의 발전의 궤도는 왜 달라지는 것일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가장 큰 준거점으로 그 문명 혹은 문화가 처한 환경적 영향을 지목한다.
이 환경적 영향 때문에 세계사의 궤적은 무기, 병균, 금속을 습득하는 정도가 달랐다는 것이다. 미래에도 유용할지 모르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한 사회가 처한 발전의 궤적은 그 사회가 얼마만큼 환경적 요인을 토대로 총, 균, 쇠를 발전시켰는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사회의 환경적 영향에 따라 총, 균, 쇠를 발전시킨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전 인류의 문명사이다. 책의 두께가 조금 겁나기는 하지만, 일단 몇 장을 넘기게 되면 쉬지 않고 읽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설득력이 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 역사 진행의 차이는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기자들은 저자에게 한 권의 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그와 같은 문장을 만들자면 다음과 같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
| 다이아몬드(굉장한 이름이구만!) 박사가 얄리라는 뉴기니아인을 만난건 1972년 뉴기니 해변가였다고 한다. 얄리는 이 백인과 이야기하다보니 좀 만만해 보였나보다. '너나 나나 별다를게 없는데 너네는 비행기 타고 옷 입고 라이터불 붙이고 살고, 우리는 왜 발가벗고 얼마전까정 타제석기로 사람 잡아먹고 살았냐?', '글쎄당? 어떤놈들은 우리가 너네보다 유전자가 좋다고도하고, 어떤 놈들은 기후가 우리가 더 척박해서 먹고 살기 힘들어 우리가 더 나아졌다고도 하더라(히포크라테스가 그랬데네)' 생리학교수이면서 조류학, 생물지리학자이기도 한 그는 필드워커다. 실험실에서 물론 세포막 연구로도 유명한 사람이나 새소리따라 다니길 더 좋아하는 그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정원사새를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과학의 열정,루이스 월퍼트 외, 다빈치) 그는 문명이 경쟁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는 인류문명의 발달과 역사 급류의 큰 줄거리로 환경의 차이와 이로 인한 작물화과 가축화를 든다. 가축화는 세균에 의한 질병을 부르고, 이는 전염병과 이에 대한 면역력으로 유라시아에 가져다 주었다. 곡물화와 인구밀집은 다시 치열한 경쟁과 무기의 발달을 일으키고, 결국 '아타우알파 생포사건'으로 극명히 문명의 차이를 드러낸다. 페르낭 브로델처럼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인구변동와 식량, 사치 음료와 의복, 유행으로 15-18세기의 역사의 흐름을 미시적인 곳에서부터 짚어낸 것(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까치글방)과는 대조적으로 선사와 문명발생에서 거시적으로 본 생물학자로서의 미덕이 돋보이는 책이다. 문명주변부, 100 여년전 한차례 <총 균 쇠>의 따끔한 맛을 본 우리로는 <금융,총,지식>의 현대 경쟁 아이템의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아야만 또다른 충격파를 면할 수 있을것이다. |
| <총,균, 쇠> 라는 전혀 내용을 예상할 수 없는 낯선 제목과 700여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를 보면 쉽사리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우선 이 책은 생태학을 비롯한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고고학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런 학문에 전혀 문외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오히려 흥미를 가지며-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왜 세계의 부와 힘이 유럽과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고 반면에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그들에게 예속되어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어느 한편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각 민족들의 생물학적 차이 즉 원래부터의 민족적 우열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이유는 단지 환경적 차이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해박한 지식과 학문적인 증거에 바탕을 둔 체계적인 반박으로 우리를 설득(?)시키려 한다. 즉, 경제적 정치적 발전의 토대가 되는 식량 생산에서 볼 때 야생 동식물의 종류와 수효가 각 대륙마다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각 대륙의 면적과 인구의 차이는 잠재적인 발명과 그에 따른 혁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원주민과 유라시아의 민족들이 선사시대부터 그들의 거주지역이 바뀌었더라면 현재 사정은 정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논점은 세계의 대부분의 백인들이 흑인, 혹은 다른 유색인종에 대해 무작정 갖고 있는 그들의 우월의식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반박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비록 학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다 읽고 나면 지적인 통쾌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 1) 얼마 안 돼는 수의 침략자들은 어떻게 잉카와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나? 남미에 남아있는 유적들은 수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즉, 그것을 건설한 것은 단순한 인간의 군집이 아닌, 수많은 인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권력자가 다스리는 '국가'이다. 또한 유물, 유적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그들은 미개인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몇 척의 배를 타고 건너간 스페인인들은 그들을 비교적 손쉽게 정복할 수 있었을까?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스페인인들에게서 전염된 병균에 감염됐다면, 왜 스페인인들은 원주민에게서 병균을 옮지 않았을까? 스페인인들이라고해서 특별히 위생이나 방역에 정통한 것도 아니었는데...... 2) '실크로드'로 대표돼듯이 유라시아에서는 문물이 빨리빨리 퍼졌다. 중국의 화약이 유럽으로 넘어가 총기를 발전시켰으며, 도자기가 넘어가 유명한 마이센 도자기를 촉진했다. 삼국시대에 이미 우리나라에도 인도의 불교가 들어왔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는 남쪽과 북쪽이 그렇게 따로 놀았을까? 로마와 대등하게 싸운 카르타고나, 솔로몬과 시바여왕으로 유명한 이디오피아. 그런데, 왜 남쪽은 현대까지도 왜 '부시맨'으로 대표돼는 것일까? 왜 북쪽의 선진문물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유라시아의 길이(동서)는 아프리카의 길이(남북)보다 훨씬 긴데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 옛날부터 문화가 퍼질수 있었는데...... 3) 호주의 원주민들과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어떻게 발생한 인종일까? 현대인이 아프리카에서 발원해 유라시아로, 그리고 빙하기에 시베리아쪽으로 해서 아메리카대륙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바다로 둘러싸인 호주는 어떻게 된 것일까? 호주 원주민은 어디서 왔을까? 그들이 수만년 전 석기시대에 배를 타고 유라시아에서 건너온 것일까? 그게 가능했을까? 그 옛날 그정도의 기술을 갖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석기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얼마 전 후삼국이 망한 후 당시 기술로 발해에서 고려쪽으로 배를 타고 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자들이 직접 시도해서 증명한 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석기시대에 유라시아에서 호주까지 배타고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아니면, 호주 원주민은 그곳에서 따로 발생한 인류일까? 그래서 아직도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너무 비슷한데. 그렇다고 해서 유라시아에서 호주 원주민과 닮은 인종이 누구라고 꼭 집어내는 것 역시 쉽지는 않다. 이 의문들(그 외에도 많다. 병균은 어디서 온 것일까? 같은 것들.)이 풀린다. 물론 단점도 있다.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역사상, 아니 동생물이 출현한 때부터 뭔가 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에서 설명한 것 말고도 많은 부가적인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너무 단순하고 큰 가닥들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그 점이 아쉽다. 큰 chapter 하나하나를 좀더 자세하게 한권씩의 책으로 만들어 시리즈로 설명해 주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책값이 많이 들기는 하겠지만.) 하여튼 총체적으로 볼 때 꽤 괜찮은 책이다. 처음에는 사람들 사진 하나로 종이 한쪽을 다 쓴 것을 보고 '저래놓고 책값 비싸게 받는다'고 욕했는데 나중에는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
| 책을 주문해놓고 한달여간 방치한 끝에 휴가를 이용해서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처음엔 워낙 책의 두께에 지쳐버리지만 내용의 방대함과 인류 문명에 대한 해석에 대해 또한 번 놀라웠다.앨빈 토플러가 일찍이 '제3의 물결' 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은 우리사회에서 천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농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야 말로 우리가 지금 편히 과학문명의 도움으로 윤택하게 살아가는 발판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미래가 어떻게 될까? 라는 것 보다는 과거에서 길을 찾아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간다.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제목만 보아서는 선뜻 책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참으로 유익한 정보를 내게 준 책이었다. 다 일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다. |
| 저자는 왜 대룩간, 민족간, 국가간의 차이들이 생겼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책에 나온 한 일화를 보니 나에게도 의문이 생겼다. 저자가 10대 시절에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다른 백인 일꾼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했던 한 인디언 일꾼이 술에 취해 백인 농장주에게 욕을 퍼붓는 것을 보고 저자가 느꼈던 것들이 나와있다. 어떻게 단 시간 안에 백인 이주자의 자손은 농장주가 되고, 인디언 전사의 자손은 농장 일꾼이 되었는가, 그리고 백인들이 그토록 찬양하던 서부 개척의 역사란 것이 인디언들에게는 어떤 의미였는가 하는 것 들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내가 이 부분을 일고 궁금했던 것은 이런 점들이다. 저렇게 인간적으로 매력있는 인디언(흑인, 황인, 기타 다른 유색인종들)을 알고 있는 백인들이 저자 한 사람일 것도 아니고, 저런 뜻밖의 겨엄에 놀라는 것도 저자 혼자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누군가는 네오 나치나 KKK가 되고 누군가는 그 '차이들'의 부당함을 깨닫고 탐구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 점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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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회생물학의 거두 윌슨을 현 시대의 사상을 이끄는 사람 중에 하나라고 평한다. 물론, 반대세력도 무지하게 많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 제 3의 침팬치는 크게 재미있게 읽지 않았지만 총균쇠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아주 두꺼운 책인데도 쉬지 않고 한번에 읽었으니... 퓰리쳐 상은 그냥 받는것이 아니다.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저술이다. 그리고 그 안에 깔려있는 사상은 세상을 움직일 만하다.
서양인 우월주의로 가득 찬 이 세상. 다이아몬드의 결론은 결국. 인간은 유전적으로 평등하다이다.
어찌보면 사회생물학자인 윌슨의 유전결정적 입장과 대치되는 듯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흐르는 생각은 결국은 같다. 윌슨의 생물학도 유전적결정을 이야기하면서 동, 서양인종간의 차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핀이 동물의 정신세계를 언급하면서 동물들의 사유를 이야기했다.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평한 것과 대치되는 것 같지만, 그리핀은 인간도 생각하고 동물도 생각한다이고 윌슨은 동물과 인간모두 유전기계다이다.
상반된 이야기인것 같지만, 그리핀의 생각의 의미와 윌슨의 유전기계의 의미 살펴보면 매 한가지다. 다이아몬드의 글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유전적으로 똑 같은데 환경의 차이에 의해서 격차가 생긴것으로 이야기한다. 이것은 인종주의를 넘어선 유전 결정론이다. 다이아몬드와 그리핀. 이러한 생물학자들이 결국은 사회생물학을 대변하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은 유전적으로 인한 불평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평등과 사회구조분석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생물학의 또다른 인류학에의 통합을 만난것 같아 너무 기쁘다. 생물학이 받침이 된 학문이야 말로 진짜 사회과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경이롭다고 생각된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무리 사회를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은 파유족이 사는 뉴기니의 저지대에서였다. 그곳은 늪이 많아서 호수대평원이라고 불렸다. 그 곳에서 나는 지금도 몇명의 성인들과 그들에게 의존하는 아이들 및 노인들로 이루어진 확대 가족들을 가끔 만난다. 그들은 커누를 타거나 걸어서 여행하며 수로 주변에 조잡한 임시숙소를 마련하고 산다. 호수대평원의 사람들은 어째서 여전히 유량형 무리사회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계의 다른 지역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더 큰 정주형 집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