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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2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5300명으로 줄고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소멸할 지역 스무 곳 중 하나로 뽑혔던 가미야마에 IT 기업들이 본사를 옮기거나 위성사무소를 내고 이주자가 늘었다. 그 배경엔 탁월한 리더가 있거나 치밀한 계산을 하거나 한때의 부흥일까 처음 미일 우호의 증표로 받은 인형을 귀향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외국인 청년을 초대하는 3박 4일 연수 프로그램, 해외 예술가들을 초대하여 체류하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이주자를 초대하여 잠시 알아보게 하는 체류 프로그램 등을 열었다. 이후에는 가미야마에서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가진 사람을 주민이 지명하도록 했고, 초등학교 유지를 목표로 적정인구를 산정하며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하였다. 기본적으로 지산지식(산지의 재료를 산지에서 소비)을 실천하였다 가미야마에서는 사람이 기본이다. 기업유치가 아니라 사람을 유치한다. 결과보다 사람들간 의사소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꾀한다. 불가능한 이유를 찾기보다 가능한 방법을 모색한다. 느리더라도 과정을 중시한다. 즐거운 호기심을 기반으로 한다. 숫자가 아닌 내용을 바꾸자고 한다. 그러면서 친절이 순환한다. 가미야마 철학은 연결이다. 민관을 연결하고 관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중간 형태의 공사를 만든다. 마을 사람과 이주민 간의 연결을 위해 면내 주민 버스 투어를 운영하여 서로를 이해하게 한다.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자 손자프로젝트를 운영한다. 프로젝트들간 융합을 꾀한다. 푸드허브의 경우는 작은 것과 작은 것을 연결하고자 했고 그래서 소량 생산과 소량 서비스를 연결했다. 이주자가 늘면서 주택문제도 대두되자 아이들 커뮤니티를 만들고 임업 진흥을 위해 지역에 많이나는 삼나무로 주택을 지으며 천천히 수년에 걸쳐 짓기로 한다. 가미야마산 나무 인증 제도를 도입하고 지금 당장 비싸보이지만 지산지식 원칙으로 오래 살 집을 짓고, 먼 미래를 위해 종자채집과 묘목 키우기도 한다. 가미야마는 미래를 향한다. 농림업말고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고자 애쓴다. 관주도가 아닌 민간이 주도한다. 교육과의 연계성도 고려한다. 지역에 있는 농고와 연계하여 학생들에게 마을의 현황에 대해 알리는 기회를 만들고 손자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정원수 가지치기나 밭을 갈면서 돈을 벌면서 어른들과 만날 기회를 만든다. 학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연수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을 사업이나 지방 재생 사업에 관심이 있다면 볼만한 책이다. 친절이 순환한다 사람이 사람을 모으고 프로젝트가 프로젝트를 부르며 큰 목표를 위해 차근차근 마을이 변화하고 소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마을의진화 #산골마을가미야마에서만난미래 #간다세이지 #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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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 가미야마. 이름도 낯설다. 유명 여행지는 분명 아니다. 딱히 지닌 자원도 없어 보인다. 마을 앞에 붙은 ‘산골’이라는 단어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은 자꾸만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다. 자연스레 인구는 줄어든다.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지 알 길 없는 연결고리는 우리나라 농어촌 지역에서도 쉬이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저 그런 곳으로 남거나 아예 지도 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운명에 처한 이 마을은 변신을 꾀한다. 책에 쓰인 바에 따르면, 2008년부터 8년간 적어도 91세대, 161명이 넘게 이주했는데, 그것도 웹디자이너,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 예술가, 요리사 등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청년들이 대거 포함됐단다. 심지어 가미야마 지역으로 이주한 기업의 수가 16개를 넘어섰단다. 어느 한 지역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너도나도 벤치마킹을 떠난다. 그렇지만 닮고자 하는 의욕이 넘치더라도 비슷한 성공사례를 써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다. 가미야마의 특별함이 궁금했다. 무엇이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으로 이어졌는지가 알고 팠다. 난세에 영웅은 탄생한다고 들었다. 처음으로 변화를 꾀한 인물인 오오미나미를 영웅이라 칭하는 건 무리일까. 그는 2년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다양성을 맛보았다.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가업을 잇기로 부모와 약속했기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경험의 영향도 없진 않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창의성을 타고난 듯했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시골마을을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그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하나씩 실현해 나갔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이내 마음을 같이 할 사람이 곁에 생겼다. 움직임은 탄력을 받았으며 한 차례의 성공은 또 다른 시도로 이어졌다. 현재는 척박했다. 이는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음을 뜻했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처음부터 완벽한 상을 그렸더라면 아마도 강박관념에 시달렸을 텐데 그에게는 구체적인 상이랄 게 없었다. 그도 그런 것이 재미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못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으니 와서 만들어달라는 식의 역발상은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질 수 없음을 자각했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모든 걸 갖추어 놓고 예술가, 기업가를 모집하려 들었으면 여타 훌륭한 인프라를 이미 구축한 지역에 밀렸을 것이다. 공모를 거치고, 유수의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심사를 맡기는 게 일반적인데, 가미야마에선 마을 주민이 직접 자신의 마을에 거주할 예술가들을 선발했다. 심사가 곧 교류였다. 얼굴을 익히고 마음은 나눈 이들은 가미야마를 그리 쉽게 떠나지 않았다. 지역이 필요로 한 건 뜨내기가 아님을 마을 주민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여기까지였으면 아마도 가미야마의 한계는 분명했을 것이다. 변화를 일구는 일에는 행정도 힘을 보탰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를 의문의 눈초리를 하고 바라보던 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관두고 마을일에 헌신을 자처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마을 만들기. 우리나라에서도 5-6년 전 즈음부터 곳곳에서 들을 수 있게 된 용어를 일본 책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살짝 표현 방식은 달랐으나 연대공사는 우리나라식으로 풀자면 중간지원조직, 마을지원센터 정도에 해당됐다. 어디 용어뿐이겠는가. 지자체가 앞다투어 주민참여를 부르짖고, 주민을 전면에 내세운 정책을 펼치고 있는 현실 또한 흡사했다. 특히, 일종의 브레인 스토밍마냥 주민들이 나서서 자신이 관심이 가진 분야에 참여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던지는 장면은 내가 왕왕 보아온 마을계획 분과활동과 무척이나 닮은꼴이었으며, 마을의 산림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 생산은 마을기업을 연상시켰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우리나라에는 몇이나 있을까. 다들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마지 못해서, 떠나고 싶으나 여력이 닿지 않아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왠지 꽤 될 것 같다. 모양만 참여인지 내실있는 참여인지의 차이는 분명 존재할 것이요, 실상은 관이 모든 걸 주도하는데, 일종의 들러리로 주민을 전면에 내세우는 형태의 정책을 펴고 있는 곳도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상황일지라도 사람 없는 마을은 미래도 없다는 인식만은 공유하고 있는 듯해 다행스럽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된다. 원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최적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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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르포를 통해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면 지역이 소멸되고 있다는 소식을 빈번하게 듣는다. 꽤 오래전부터 경고음은 수시로 울리지만 딱히 뭔가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인구 5천만명 중 2천 만 명이 국토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곳에서 오밀조밀 몰려살며 사는 곳을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의 이면엔 그외 지역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그래도 한때는 지역도 사람들도 북적거렸을텐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집약적인 인프라스트럭처가 잘 조성된 서울과 수도권이 편하긴 해도 살인적인 물가와 갈수록 악화되는 환경오염, 버석거리는 인간관계에 싫증을 느껴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는데 여전히 지역 소멸은 진행중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는 현실.
얼마전 한 지역 출신 사업가가 도시에서 온 아이가 있는 가족을 지역으로 불러 집도 마련해 주고 직업도 알선해주는 사업을 하기로 해당 지자체와 협약을 맺었다는 뉴스를 봤다. 내심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민심이라 할 수 있는 댓글엔 좀 다른 의견들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주로 문화생활은 어떻게 할거며 나이들면 병원이 근처에 있어야 하고 어린 아이들이 크면 교육은? 그리고 언급된 직업에 대한 다소 폄훼된 발언들도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도 개개인에게 윤택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지역은 언제나 시혜의 대상이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지역은 깡촌이고 그래도 서울살이를 한 자신이 그런 곳에 내려가주면 제대로 대접해줘야 한다는 마인드일까? 심지어 빌어먹는 거지들도 시골로는 안간다고 우기는 걸 자신이 지역으로 내려갈 수 없는 이유의 예로 들고 있었다.
이 책에 언급된 일본의 가미야마라는 마을도 수도 도쿄에서 500km나 떨어진 곳이고 주변 대도시와도 이격거리가 상당했다. 그런 곳에 사람과 기업과 행동가들이 모여들며 소멸해가는 지역을 살리는 일련의 운동들이 의미있게 전개되었다. 짧은 시간에 급진적으로 일어난 소모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내실있게 발전시켜 다른 곳에서도 벤치마킹하는 수준이고 방송에도 자주 나온 곳이라고 했다.
오래전 전문가들은 가미야마 지역의 소멸을 예견한 듯 이런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1. 지역의 작은 고등학교가 폐교된다. 2. 도시와 지역을 이어주는 버스노선이 사라진다. 3. 세대가 줄어 각종 인터넷 서비스업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그나마 입주했던 기업들도 철수한다. 4. 세수의 축소로 재정이 열악해지면서 사회사업이 중단된다. 5. 병원,상점,택시회사등이 폐업한다 6. 마지막엔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며 유치원, 초등학교도 문을 닫고 교육을 위해 젊은 층이 떠난다.
많이 듣던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며 가미야마 마을은 어떻게 아직도 유지될 수 있었을까
침체된 마을에 광속 인터넷이 들어오고 비영리 단체(NPO) 그린밸리가 만들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시작점은 예술가들이 한적한 마을에 들어와 일정기간 체류하며 자신들의 예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준 "아티스트 인 가미야마" 프로젝트였다. 벌써 25년 전 일이다. 그 이후 지금은 잘 알려진, 일하면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워크 인 가미야마"도 있었고 지역에서 만든 식자재만 소비하는 地産地食운동, 지역 재생을 공부하는 일종의 배움터(塾)도 운영되었다. 그곳에서 요령을 익힌 젊은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지역을 활성화시킬 아이디어도 내는등 일조를 했다.
다수의 IT회사들의 입주는 지역 활성화에 불을 붙이게 된다. 버려진 빈 집을 개조해 사무실로 활용하고 위성 사무실을 개소해 지역의 인재를 직접 채용하자 도시로 가려던 청년들이 고향에 안착하는 순기능도 일어났다. 경제적 문제가 해결이 되자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도 늘자 폐교 위기의 학교도 숨을 쉬게 되었다.
실제로 있었던 프로젝트로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좋은 식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 푸드허브 프로젝트, 임업과 건설업을 연계한 '오노지' 공동주택 프로젝트, 지역의 리더를 키워내는 농업학교,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 홍보를 겸해 마련한 투어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지역이라 어쩔 수 없어" 가 아니라 "지역이라서 가능하다" 인 셈이다
우리도 지역 재생(이제는 소생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에 관심을 갖는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돈이 아니냐고 얘기를 하지만 책 말미에 언급한 것처럼 사람이 가장 큰 문제다. 사람이 없으면 돈이 아무리 많이 투입되어도 지역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고. 암울한 이야기다. 그게 정해진 수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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