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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배경은 물리적 우주로부터 시작된다. 세계는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왔는가? 탄생직후 지구의 역사와 변화 이야기를 필연적 우연으로 가득 담아냈다. 영장류는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본다. 도구와 언어를 사용하며 전개되는 역사는 어떻게 펼쳐질까? 나일강,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인더스강 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생한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교역의 관계망을 엮어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주변환경으로 연결하고 사회정체성을 이어가는 신념체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속으로 긴 여행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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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체계의 탄생 (기원전1000년~기원전350년) 세계 중심은 제국이었다. 인간과 무한하고 포괄적이고 초자연적인 실재인 텐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인도는 촌락의 세계였고 왕국이 출현했다. 페르시아 목농과 소농으로 구성된 부족들이 옥수스강 초원지대에 거주했다. 메소포타미아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 서로 경쟁하는 도시국가들의 세계였다. 이집트 거대한 강을 따라 동질적인 세계 환경영향으로 탄생했다. 히브리인들은 나일강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사이에서 세번째 서사출현했다. 그리스는 하늘과 땅 신과 여신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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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지 전달,돈,수학,관리 체계,군사 기술,거대 서사 등이 발달하면서 정치국가의 규모도 커졌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와 더불어 초강대국의 시대가 열렸고 그리스,인도,로마,중국 등지를 중심으로 비슷한 제국들이 등장했다. 정치국가의 국경 중간지대를 거쳐 서로 다른 문명들이 이동했다. 향신료의 길,비단길 같은 모세혈관을 통해 취사선택하고 새로운 개념의 별자리로 등장하는 영역을 통해 바다끼리 조금씩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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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기독교는 세속적,신적 영역도 존재하지만 서로 별개로 그리스,로마와 조화를 이룬다. 노예제와 불평등으로 관료조직 응집력 약화로 기독교 관계망은 꾸준히 발달했다. 이슬람 영역에서는 금,소금 거래로 아프리카인들이 합류해 이슬람교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노예무역상으로 활동했던 동아프리카까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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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운동은 1095년~1272년까지 200년 가까운 긴 시간동안 일어난 전쟁이며, 유라시아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러 무슬림과 유럽기독교인들의 교약관계에서 서로 이익을 추구하며 도시들을 차지하고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몽골족의 팽창이 십자군 운동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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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중심축이었던 콜럼버스의 최초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선다. 이때를 기점으로 동반구와 서반구가 연결된다. 금,은,면화,담배,설탕,럼주는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는 시발탄이 되었다. 기업은 진취적인 상인들이 합작한 동업조합,지역 교회,왕국등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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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이후의 세계는 중국,인도,이슬람 영역에서 탈피한 유럽이 된다. 아메리카 대륙을 알게 되면서 식민지 쟁탈전이 과열현상을 보인다. 중간세계가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16세기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지구를 누비며 기업가들이 해안에서 교역을 타켓으로 열정을 펼쳐낸다. 신대륙발견이후 도구의 발명이 증폭되고 급속도로 발전하며 인간생활의 중심으로 부각된다. 기계를 많이 보유한 국가들이 정상을 차지하며 산업주의 체계가 형성되고 도시로 집중된다.
#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과 대서사로 이어지는 인류이야기를 담아냈다. 지형을 둘러쌓고 집단형성과 상호연계성을 구축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롭다. 도구,언어,환경적인 면에서 다각도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정말 오랜만에 역사책을 대하며 진지해진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역사서를 대하지 않았던 것을 자기반성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평소 대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해 정서적으로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서 성찰과 고민으로 한걸음 나아가도록 이끌어주었다. 역사의 큰 흐름들과 환경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하고 되돌아보면서 읽어나아가야하기에 한번 읽는 것으로 이해를 마쳤다고 말하기에는 미흡한 점들이 많이 느껴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하는 것으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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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서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아온 작가의 특이한 이력부터 눈길이 갔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책 후반부였습니다. 작가는 책 속에서, 지구의 생물들이 멸종했던 몇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특정 생물종의 과한 번식이라고 합니다. 이때 소름돋았습니다. 현재의 지구 인구는 75억~80억입니다 .. 다음 대멸종의 주인공이 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
| 살다보면 세상 모든 문제로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좀 도 길게보면 1000년전 사람들의 고민이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기도 하고 결국 올 것은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게 해주는 도구도 필요하기도 합니다. 200년 사이에 인류의 진화 속도가 가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망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고 사람들이 답을 찾으려한 모습으로 희망을 가지고 내 삶에 충실하게나 살고 성낼일도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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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 부제 : 인류 문화, 충돌, 연계의 빅 히스토리(섞물리기) 별점 : 별별별별별 별별별별별 < 생각하기 > 저자는 머리말 말머리에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역사책 3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면서 알아채게 된 무언가를 포착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동기를 밝혔다. 한 권은 100여만 명의 농민을 동원해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에 관한 책 : 중국 중심의 세계사적 서사 다른 한 권은 몽골족에게 정복되기 전 몇 세기 동안 중앙 아시아에서 펼쳐진 유목민의 삶에 관한 책 : 이슬람 중심의 세계사적 서사 또 한 권은 제정 말기의 로마를 공격한 훈족의 왕 아틸라 같은 야만족 전사들에 관한 책 : 유럽중심의 세계사적 서사 역사는 너무 광범위하고 내가 다 알아가기에 넘어설 수 없는 벽이라고만 생각했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역사 속 년대별 지구상의 각 문화권(저자는 별자리라고 표현했다)의 생성과 번성, 확대, 이동에 따른 충돌과 변화(섞물리기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소멸 혹은 재탄생을 창의적 발상의 서사로 풀어내었다. 최근 나는 ‘사피엔스’, ‘총,균,쇠’, ‘대변동’, ‘지리의 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유러피언’,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 ‘인간본성의 법칙’ 등의 책을 읽었다. 이러한 책들의 서사 속 유럽 문화권, 중화 문화권의 이야기들은 해당 문화권에 대한 이해의 스펙트럼을 넓혀주었다. 역사를 창의적 발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고, 역사적 배경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다행인 점은 앞서 읽은 이러한 책들의 연장선으로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를 읽게 된 점이다. 배경지식이 풍부할수록 더욱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이책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일 듯하다. 이 책은 역사를 인류의 문화, 충돌, 연계라는 창의적 발상으로 해석했다. < 불균형은 전쟁의 서막일 수 있다. > 중국과 이슬람 문명이 발명한 수학의 발전, 종이, 나침반, 망원경, 항해술, 금속활자, 화약, 시계 등의 발명품은 유럽 세계가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현실 도구를 제공한 문물 이였다. 저자는 1492년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기점으로 기원전후의 개념처럼 나눠야 한다고까지 설명한다. 1492년 콜롬버스 신대륙 발견은 전세계적 크나큰 발견이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에게는 대재앙의 시작 이였다. 당시 우수한 해상 병력을 갖고 있던 스페인, 포루투칼이 식민지 정복 역사를 시작했다. 뒤를 이어, 작은 섬나라 해적 출신의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살던 영국, 네덜란드가 합류했다. 뒤이어 유럽 본토의 프랑스 등의 나라가 세계를 대상으로 식민지화를 실행해 옮겼다. 정작 문명과 발명품을 만들어 낸 중국과 이슬람 문명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 낸 물건에 대해서 개량하고 발전 시켜지 못했다. 오히려 유럽 세계는 당시 선진 문명인 중국과 이슬람 문명을 향한 도전을 끊임 없이 시도했다. 그들은 최초 발명품을 만들어냈던 중국과 이슬람 문명을 식민지화 시켰다. 문화 우월감에 사로 잡혀 있던 중국 문명은 유럽세계에 그들의 물건을 팔 생각만 했을 뿐이다. 논리는 간단했다. 중국인 이슬람인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신들의 물건이 더 좋았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미개한 서유럽인들의 안좋은 물건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영국은 인도 대륙을 식민지화 하면서 얻게 땅에서 양귀비를 대량 재배했고, 생산된 마약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를 얻게 되면서 면화도 얻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뿌리깊은 문화 자존심을 중독성 강한 마약에 팔아버렸다. 그리고, 중국 제국은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중국과 유럽간의 무역 불균형으로 촉발된 미국의 보스톤 차 사건을 시작으로 미국의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1776년 독립했다. 미국의 독립은 영국에게는 식민지 경영에 큰 타격 이였다. 그것은 영국 왕실의 재정의 큰 손실을 의미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1700년대 후반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영국은 엄청난 과학적 발전과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국의 수많은 지배 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젊은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미국과 독일로의 이민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발명가와 과학자에게 혜택을 많이 부여한 독일로도 다수 이주했다. 오늘날의 기계 강국의 된 독일의 배경이다.) 100여년 사이 미국은 풍부한 자원과 기회의 땅이라는 키치로 유럽인들의 미국 이민을 꿈꾸게 했다. 그것이 아메리칸 드림이였다. 미국은 부강해지고 있었다. 1900년대 영국과 프랑스 등 식민지 경영에 문제가 생긴 그들은 1차 세계 대전의 보상 책임을 독일에게 부담하게 했고, 그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독일 국민들은 제국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된다. 1930년대 독일은 나치 세계로 변모하게 된다. 풍부한 자원과 부강한 자본을 갖고 있던 미국은 마지 못해 1차 대전에 참전 했으나 큰 역할은 없었다. 유럽은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죽었고 유럽인들은 피폐해 졌다. 전쟁에 대한 보상 책임을 질 당사자가 필요했다. 그 나라가 독일이였다. 나치즘에 빠져 독일이 세계 2차 대전을 발발하게 만든 계기가 된다. 이렇게 상상도 못한 곳에서 세계는 변화하게 되었다고 책은 설명해 주고 있다.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심각한 무역 불균형이 최근 10여년 사이에 크게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 저자가 설명한 대로, 1700년대부터 1800년대 중국과 유럽의 무역 불균형으로 촉발된 세계의 변화의 시작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현재의 미국과 중국의 갈등(무역 불균형)으로 상상도 못했던 영역에서 세상의 축이 변할 수 있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보니, 소름이 돋았다. 2020년은 년 초부터 중국발 코로나로 전세계 팬더믹이 여전히 진행 중인 시점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20세기초 스페인 독감의 전세계 팬데믹으로 전세계적으로 대유병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전세계는 바이러스의 광풍에 떨고 있다. 세계는 타자성을 규정하기 위해서 코로나19의 책임을 질 누군가를 찾고 있다. 좁은 공간 안에 많은 인간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오늘날의 도시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백신이라는 현대 의학의 큰 발견 때문이였다. 인간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전염병은 가축을 통한 전염병이 인간에게 전이되어 인간들에게 옮겨지는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현재 대다수의 인간들은 이러한 도시 환경을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도 살아갈 방법도 잘 모른다. 이미 대량 생산이라는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는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뉘어진 삶을 살고 있다. 중세 봉건제나 근대 제국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는 구조 속에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더 크게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은 여전히 그 옛날 일인 황제가 치세하는 전제주의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 전세계의 경찰 국가가 아니다. 이렇게 전세계 펜데믹 상황에서 또 다른 역사의 중심축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재편되고 있었던 세계의 지각 변동에 가속 패달을 달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전세계는 크게 요동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중국은 그 옛날 전세계에 명성을 떨치던 전성기를 꿈꾸고 미국과의 대결 구도를 노골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느 한쪽의 힘이 커지게 되면, 즉,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인간본성의 법칙에 따라 인간은 손해보는 감정은 보상받아야겠다는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 결과는 마찰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 개인적 차원의 건강, 일, 재정적 측면에서 불균형의 요소가 있지는 자기 검열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마찰을 피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또 다른 숙제가 생긴다. < 발췌 > P. 393~396. 청 제국 지배층은 신세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럽인들 주머니 속의 현금은 좋아했지만, 얼핏 해로워 보이는 유럽 문화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활동 범위를 해안가의 몇몇 교역 거점으로 제안함으로써 유럽인들의 진정한 제국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유럽 상인들은 중국 상인들이 주문을 받으러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들은 대금을 지불하고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상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 뒤에는 떠나야 했다. 그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유럽 상인들은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목적은 친구 사귀기가 아니라 돈벌이였다. 그들이 실망한 점은 아무것도 사려고 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완강한 태도였다. 중국인들은 물건을 팔려고만 했다. 중국인들이 받아들이는 지불 수단은 금괴나 은괴나 다이아몬드였다. 아마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청 제국의 어느 황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에는 온갖 좋은 물건이 있지마, 유럽 상인들에게는 탐나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 중국 제품이 유럽 제품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왜 우리가 유럽 물건을 사야 하는가? 그래도 서양의 사업가들은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중국으로 찾아왔다. 중국산 비단은 전례없는 규모로 수출되었다. 중국산 자기 수출량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유럽에서는 ‘중국산 자기’는 고품질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서양 상인들이 가장 눈독을 들인 제품은 차였다. 영국인들은 그 음료에 거의 중독되다 시피했다. 지금 나는 중독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쓰고 있다. 차는 본질적으로 마약이다. -중략- 1720년, 영국인들은 약 90톤의 중국산 차를 수입했다. 1729년에는 490톤 가량을 수입했다. 1760년, 영국의 중국산 차 수입량은 1350여톤으로 늘어났고, 1790년에는 약 4050톤까지 치솟았다. 다시 말해보겠다. 사.천.오.십.톤. 엄청난 양 아닌가?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중국산 차 수입량은 무려 연간 1만 6200여 톤에 이르렀다. 한때는 차가 자기의 파손을 막는 완충재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차 운반선의 안정을 유지하는 중량물 역할을 맡았다. 유럽 각국의 정부는 중국과의 그런 교역을 몹시 불안하게 여겼다. 유럽인들이 차를 수입하려고 지출하는 은이 중국을 영원히 살찌울 것으로 보였다. 유럽인들이 구입하는 차는 오줌으로 배출되기 마련이었다. 서유럽은 상인들이 구축한 문화였고, 상인들은 부에 대한 무척 솔직한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볼 때 부는 현금이었다. 만일 구매량보다 판매량이 많으면 점점 부유해질 것이었다. 반대로 판매량보다 구매량이 많으면 점점 가난해질 것이었다. 이 때 현금이란 귀금속을 의미했다. 금괴나 은괴를 가장 많이 가진 상태에서 죽는 사람이 승자였다. ? 이론적으로는 그랬고, 확실히 개별 상인들에게는 그 이론이 들어맞았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정부는 국가 경제를 상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봤고, 그 시각에서 보면 중국은 영국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수입 관세를 통해 막대한 세입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의 수입을 금지할 수 없었다. 당시 영국의 전체 수입품 가운데 10%가 차였다. 차 수입이 중단되면 정부 세입이 급락할 것이었다. 그 무렵 영국은 식민지를 두고 세계 도처에서 벌인 전쟁에서 프랑스를 무찌르느라 엄청난 자금을 지출했다. 돈이 더 필요했지, 덜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영국 정보는 차 관세를 100% 올렸고, 그 결과 차의 판매가 위축되고 차의 수입이 감소했지만, 정부의 세입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는 따로 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운명은 차 판매에 달려 있었다. 회사 관계자들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그냥 손해를 보고 망해야 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 막강한 압력 단체를 돕기 위해. 영국 정부는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네덜란드의 밀수업자들-영국왕에게 세금을 내지 않았다-이 들여오는 값싼 차 대신에 동인도회사의 비싼 차를 사도록 강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차법(Tea Act)는 반체제 성향의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을 자극했고, 어느날 밤 익명의 급진분자들이 항구에 정박한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선박에 몰래 올라타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100만 달러쯤 되는 양의 차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후 영국 정부가 징벌적 성격의 법률로 응수하지 저항의 물경이 더 거세졌고, 마침내 미국 혁명이 발발했다. 그랬다. 결과적으로 청 조정의 정책은 미국의 탄생에 기여했다. 청 조정의 정책과 미국의 탄생은 사슬로 기다렇게 연결된 인과 관계의 양쪽 끝이었다. < 상대를 무시한 결과는 참혹했다. > 유럽 세계와 동양, 중동 세계에서의 자본가의 사회적 위상은 극명하게 달랐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부를 갖은 자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중국이나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야 부를 갖을 수 있었다.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에서는 유럽인들을 단순히 상인으로 생각했다. 이슬람과 중국 문화권에서는 상인은 장사치로 치부하는 하층 계급의 사람일 뿐이였기 때문이다. 무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상인일 뿐이라고 생각한 존재에게 그들은 그들 스스로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래 후손들에게 달라진 그들 문명의 미래를 물려줄 수 밖에 없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법칙에 의해 움직여지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돈의 역사를 써온 유럽의 유대인들을 주축으로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오늘날 이슬람과 중화권 문명은 자본주의의 후발주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향한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한번 놓쳐버린 패권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 인듯 하다. 중국과 이슬람 문명의 번성과 쇠퇴 과정을 읽으면서 오늘을 사는 내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일을 하다보면, 큰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지난 성공의 경험이 성공 공식이 되어 새로운 상황이나, 환경에 대해 간과하거나 등안시 하여 좋은 기회를 놓치거나 실패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곤 한다. 이 책을 통해 이슬람인, 중국인이 범했던 실수를 읽고 나니, 사뭇 나는 지금 그런 유사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라는 자기 검열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변화된 환경의 변화된 사고방식과 철학을 잘 받아 들이고 있는가? 나는 하급 직원 누군가의 날카로운 질문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요즘 세대의 생각의 기준과 관점을 나는 잘 이해하고 있는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제 환경에 나는 나의 일을 어떻게 변화하려고 하는가? < 발췌 > P.397~399 제21장. 중간 세계가 수렁에 빠지다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지구 곳곳을 누비기 시작한 16세기에 이슬람 중간 세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웅대한 우주로 자부하고 있었다. 그 세계의 맹주들은 서로 간에 정리해야 할 사안이 있었고, 문명 차원에서 해소해야 할 모순이 있었지만, 중국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리막길에 접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럽의 기업가들이 해안에 도착하면서 사소한 충돌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졌지만, 무슬림 권력자들은 외국인들을 적이나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않았다. 만약 유럽인들이 정복을 목표로 삼은 군대였다면 무슬림들의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역을 노리는 상인들 이였다. -중략- 유럽인들은 개인 사업가들이었고, 사기업이 유럽과 무슬림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서로 달랐다. 유럽에서는 부유해질 때 정치적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슬림 세계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야 부유해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슬림 세계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야 부유해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말하자면, 이슬람 영역에서 부는 어떤 사람에게 소비력을 선사했지만, 그 사람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정치 권력의 궁극적 담지자인 군사, 종교 복합체와 연관되어야 했고, 그런 연줄은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야 했다. -중략- 유럽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싶어 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사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강력한 후원자의 지위에 오르고, 더 강력한 후원자와 인연을 맺으려고 했다. 유럽 상인들이 무슬림의 영토에 교역 거점을 마련했을 때 무슬림의 후원 관계망은 그 외국인들과의 교역으로 누가 이익을 얻을지를 정했다. 교묘한 혼인, 능숙한 아첨, 영웅적 의거, 권모술수 같은 온갖 사교 수법을 바탕으로 최상류층에 진입한 현지인들이 유럽 상인들과의 교역에 따른 은을 챙겼다. 이후 유럽 상인들이 유럽산 제품을 갖고 돌아왔을 때, 이전에는 판매자였던 현지인들이 구매자로 입장이 바뀐 덕분에 유럽 상인들은 은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유럽 상인들을 잠재적 후원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유럽 사인들과 끈끈하게 연결된, 그리고 유럽 상인들에게 훨씬 더 신뢰받는 수혜자가 되고자 했다. < 자선 활동으로 여기고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해 주라!> 직장인으로써 오랜 세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매출을 어떻게 하면 많이 올릴 수 있을까? 영업이익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 할 수 있을까? 를 언제나 고민하고 일의 목적은 이윤 추구이며 성과는 이윤으로 판단된다라는 기준으로 일했다. 독서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독서를 시작 한 뒤, 부, 사업, 마케팅, 심리학, 역사 등의 책들을 계독하면서 일의 목적과 목표가 달라졌다.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 그것이 사업이다라는 큰 교훈을 알게 되었다. 불편함을 해소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플랫폼 온라인 세상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마케팅이 중요하게 되었다. 마케팅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핵심이며, 그 연결망은 숫자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공익에 이익이 되는 찐연결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찐연결이라함은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 그것이 핵심이다. P.403. 1776년, 스콜틀랜드의 철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했다. 그 중대한 소책자에서 그는 공익을 도모하는 최선의 방법이 각자의 경제적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부유해지려고 노력한다면 다들 타인에게 필요하거나 타인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고 애쓰기 마련이었다. 가장 부유하진 사람들이란 타인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많이 채원준 사람들 이었다. 그러므로 부를 추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선 활동이었지만,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돈을 자유롭게 벌 수 있는 상황에서만 자선 활동일 수 있었다. 개인들은 자신이 돈을 벌 방법, 즉 공익에 기여할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여성! 사람으로 바로 서라 > 라파예트, 봉마르셰 백화점, 패션인 유럽 출장이라고 하면 봉마르셰 백화점 시장조사를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내가 사회 초년생(25년전) 시절, 선배들이 파리 출장을 가게 되면 시장조사로 꼭 가봐야 하는 백화점으로 찍어주던 장소이다. 그 이유를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 시스템의 기계화로 가사 노동을 전담하던 여성의 일이 크게 줄어 들었고, 여성이 집안일이 줄어든다는 것은 부의 상징과도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들의 여가 시간으로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갈 곳이 필요했다. 창의적 발상의 소매상인 사업가는 백화점이라는 유통을 만들어내게 된다. 여성들은 그곳에서 지금의 키즈카페, 북카페, 커피숍 등과 유사한 개념의 여성들의 놀이 동산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로써,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 유통 산업의 발달의 계기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 혁명은 세계적 변화를 선도했고, 더불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도 큰 몫을 담당한 일대 혁명이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와 여성이 사회적 일원에 포함되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200여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울 뿐이였다. 이러한 사실 역시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사회생활 25년차, 워크 홀릭 여성직장인으로 살아왔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사회의 일원으로 일해오면서도 이해 할 수 없는 차별과 차등에 눈물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 보니,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남성 위주의 사회적 권력 구조 속에서 생겨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으로 그들 눈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였던 것이다. 나의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를 고민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변화된 세상에 대해 감사한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2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앞으로 여성 사회인으로써 어떤 태도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숙제를 또 하나 얻게 되었다. P.443~445 생산 시스템의 기계화로 저렴한 소비재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심지어 가정에서도 여성 노동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직접 만들 필요가 없었다. 시장에서 사면 그만 이였다. 산업주의 덕택에 한가해진 다수의 중산 계급 여성들에게 가정 생활은 무의미하고, 심지어 영혼을 옥죄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직장을 다니지는 않더라도 일단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집 밖의 공적 영역에 머물고 싶어 했다. 구체적으로 그런 공적 영역은 어디였을까? 1850년까지만 해도 아직 공적인 모임 장소는 남자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선술집과 술집 밖에 없었다. 그때 소매상들이 기회를 포착했다. 원래 서유럽의 고급 상점들은 물건을 창고에 보관한 채 영업했다. 점원은 문밖에서 손님을 맞았고,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알아낸 뒤 가격을 흥정했다. 흥정이 끝나면 잡역부가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왔다. 하지만 이제 몇몇 진취적인 상인은 손님 스스로 물건을 고르게 하면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그들은 상품을 개가식 선반에 진열한 뒤 손님들이 물건을 구경하게 했고, 손님들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실컷 구경한 손님들은 대체로 물건을 샀으므로, 손님들이 가게에 오래 머물게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판매 전략으로 떠올랐다. 1852년, 프랑스의 한 사업가가 봉마르셰라는 이름의 잡화점을 고대 중간 세계의 시장 같은 백화점으로 탈바꿈시켰다. 중간 세계의 시장은 언제나 상업 구역이면서도 사회적 공간이었지만, 남성 전용 구역이나 다름 없었다. 반면 봉마르셰는 여성들에게 맞춰진 공적 공간이였다. 봉마르셰는 상점인 동시에 훌륭한 여가용 공간이였다. 그 곳에는 예를 들어 아라비안나이트 동굴이나 일본식 정원 같은 주제에 맞춰 상품이 진열되었다. 그리고 여성 고객들이 앉아 서로 어울릴 수 있는 벤치와 구석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여성 고객들이 지나다니는 마루와 통로, 어린이용 놀이터, 조그만 카페 등도 있었다. 봉마르셰의 성공에 힘입어 프랑스 최초의 몇몇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이후 봉마르셰를 모방한 백화점이 여럿 생겼다. -중략- 사회적 심층 구조와 심리적 심층 구조는 동전의 양면이다. 인간의 심리적 구조의 극심한 변화는 일반적으로 한 세대 만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떤 곳인지 깨닫고, 그 사회적 별자리의 한 조각을 이루는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유전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구조적인 사회 변화를 수용하겠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아이들의 인격은 부모의 양육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기 마련이다. 사회적 규범과 관례는 그런 식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것은 사회적 별자리가 고유의 정체성을, 말하지면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회적 별자리가 정체성을 보존하는 과정은 사회적 관례의 진화를 지체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성 역할 은 인간 생활의 가장 뿌리 깊은 구조이므로 급격한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일어난 성 역할과 고정 관념의 변화는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내가 보기에 여성이 공적 영역에 등장한 현상-기계의 여러 파급 효과 중 하나이다.-은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전상 중 하나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 정도 규모로 가장 최근에 벌어진 사회적 대이동은 약 1만년 전의 신석기 혁명이었다. 신석기 혁명 시기에는 다수의 인간이 일정한 위치에 정착했고, 작업장에서 만든 도구를 사용하며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해 먹고 살기 시작했다. 수천년에 걸쳐 진행된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의 상호 연계 방식에 지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 일례로 가부장제가 지배적인 가족 구조가 되었다. 성 역할을 둘러싼 혁명은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다. 성 역할 혁명은 시작된 지 2세기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큰 진전을 이뤘고, 앞으로 나타날 더 종말론적 변화를 예고하기도 한다. 그 변화에는 가부장적 가정의 종말, 그리고 심지어 인간 정체성의 근본적 측면인 성별의 종말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다수 사회에서 해당 사회의 규범과 정서적 공감대가 인류 문화 차원의 성 역할 혁명을 아직 따라잡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