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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解放되었다고 서울로 돌아와 보니, 내 나라 서울은 내 家族 하나를 抱擁할 수가 없는가. 46年의 前生을 아무 野心도 없이 虛心坦懷 오직 小說道에만 精進해왔고, 只今 天下가 모두 政治的 野望이거나 賣名的 野望이거나 謀利的 野望에 뒤끓는 판局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家族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至極히 淡泊한 欲望이거들, 이 欲望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事情이 眞實로 딱하고 寒心스러웠소. 時節도 인젠 嚴冬에 들어섰고, 집은 마련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家族 離散의 悲劇的 覺悟를 한 그때였소. 이런 고마울 일이 어디 있으리오. 軍政廳 廣告局長으로 있는 氏가, 이내 딱한 事情을 어디서 듣고, 매우 同情해주었소 “저 金東仁이는 내 平素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文學이라는 것에는 全혀 門外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卽 그 金東仁이는 過去 50年間 단 한 가닥의 길(營利 行爲가 아닌) 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最近 한동안은, 朝鮮語 死守를 爲하여 總督府 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15 그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온 사람임을, 朝鮮이라는 國家가 있고, 그 國家에서 過去의 功勞者에게 어떤 補償을 한다하면, 마땅히 金東仁에게는 어떤 程度의 補償이 있어야 할 것이다. 只今 解放되었다는 이때, 집 한 칸 없이 家族 이 離散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道理가 아니요 待接이 아니다. 鑛工局에서 日本人의 舍宅을 接受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100餘 채가 있다. 國家 補償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의 애달픈 處地나마, 그 鑛工局 접수 舍宅 中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라 하자. 집貰를 내는 貰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環境이 現在 이 以上은 할 수가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微意(작은 誠意)를 表하자.”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으리오. 一家 離散도 안 하게 되었소. 嚴冬을 지붕 아래서 지낼 수 있게 그리고 家族이 함께 오붓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소.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반갑고 고맙고 感激되는 것은 ○氏의 그 待接이었소.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