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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흰 면사를 쓴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백련하였다. 근 한 달 동안 육혈곡의 본당 마당에서 그리 마주쳐도 그냥 지나쳤던 그녀였다. 제대로 찍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까지 혼자서 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운휘, 따라갔다 오너라." 해악천의 말에 그녀의 목적은 스승인 해악천이 아니라 나였다는 걸 알았다. 본당의 반대편인 공터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니 혈교의 무사들이 보이지 않자 그녀가 멈춰 서서 입을 열었다. "공자님, 내가 누군지 알겠나요?" 그녀에게서 하연 소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이 빠졌지만 그녀는 하연 소저, 즉 백련하가 맞았다. 나는 짐짓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이 목소리? 설마 하연 소저입니까?" 그런 내 모습에 하연 소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시잖아요. 공자는 제가 보았던 어떤 사람들보다 똑똑한 것 같더군요. 한데 지금까지도 제 신분을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모르는 건가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녀에게 사실대로 대답하려는 그때였다. 휙!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무복에 네 자 정도 되는 장도를 등에 걸친 눈꺼풀이 두꺼운 청년이었다. "하아, 드디어 찾았군." 청년의 얼굴이 환해졌다. "육혈곡의 분들이오?" 육혈곡을 아는 걸 보니 본교의 사람이 틀림없었다. 내가 그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다행이군. 육혈곡은 초행이라 산길을 헤맸었네." 청년이 품에서 각패를 꺼내 들었다. '고은재?' 그 이름을 알아본 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는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 어르신의 둘째 제자인 고은재라고 한다. 잠시 기다렸다가 길 안내를 부탁하마." 십 년 뒤에 합혈도객이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칠 인간이었다. 외모를 비하하는 두꺼비 합 자가 들어가는 이 별호를 워낙 싫어해서 그 별호를 부르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악인이었다. 어차피 육혈곡으로 올 거라면 내 신분을 알게 될 테니 여기서 정리하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존의 제자이신 고은재 공자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사존의 첫째 제자인 소운휘라고 합니다." "자네가 소운휘였구만. 스승님께서 괜한 기우를 하셨군." 챙! 갑자기 고은재가 등에 차고 있던 장도를 뽑아 번개처럼 날아와 나를 향해 일도를 날렸다. 막지 못한다면 단숨에 일도양단할 기세였다. 고은재의 일도를 백련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앞으로 나서며 막아냈다. 차아아아아앙! 이존의 제자라 예상은 했지만 녀석은 일류의 벽을 넘어섰다. 하단전의 내공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이런 게 사존의 제자라니. 쯧쯧." 녀석이 히죽거리며 웃더니 비꼬듯이 말했다. 기분 나쁜 녀석이다. 쿵! 누군가 고은재의 뒤에 나타났다. 팍! 고은재가 다급히 뒤를 향해 휘둘렀다. 그의 도날은 두꺼운 손바닥에 막혔다. 그는 바로 해악천이었다. 해악천이 번개처럼 녀석의 머리통을 움켜쥐면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렸다. 기기괴괴 해악천이 고은재의 몸이 바닥에서 위로 튕겨 올라온 상태에서 주먹을 내질렀다. 고은재가 제대로 임자를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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