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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시야에서 사라진 20명과 함께 지금 중학교 한 반이 몇명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땐 70명이었다. 그걸 정확히 기업하는건 중1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셔서 "너네 엄마 빼고 다른 엄마들은 다다녀갔는데 너네 엄마만 안오셨다"며 대놓고 촌지를 요구해 집에까지 찾아온 일이 있었고 그때 들은 70명이란 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모두 교수나 박사급이셨다. 내가 군대가도 최하가 고졸이었고 난 세상이 다 그런 사람들만 있나보다 생각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넌 온실에서 살아서 밀림에서도 살아봐야한다"고 말이 씨가된다고 그렇게 세상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경비서다 맞기도하고 트럭,어린이집차 운전하다 무시는 수시로 당했고 돈없다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현대사에서 가장 부자는 록펠러다 그의 아버지는 사글세살던 알콜중독자로 허구헌날 몽둥이로 아들을 패는게 일상이었지만 그는 빌게이츠 재산의 세배를 모은다. 클린턴의 아버지는 술먹다 하수구에 코박고 죽은 주정뱅이였고 안델센의 아버지도 그랬지만 모두 크게 성공한다.♡♡ 다시 중학교로와 나는 고등학교를 간신히 합격했고 떨어진 애들중 재수해 올라온 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거기서 그친다. 한반에 20명 적게잡아도 10명은 훨씬 넘는다. 앞만보고 달리다보니 중도탈락한 20명의 행방엔 관심이 없었다.☆☆ 글모르는 사람을 찾는게 간첩 찾는것보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구르다보니 그런 사람들 가끔 만난다. TV드라마엔 여러계층의 사람이 등장한다. 모두 삼국지나 홍길동전 같은 허구라 생각한다. 위인들이 후세에게 말한마디 남기는건 몇십년간 축적된 지식의 결과물이다.♡♡ 뽀빠이 이상룡씨가 사회를 보던 우정의 무대에서 어느 여자분이 병사에게. 질문한게 재미있어 기억한다. 당신은 키도큽니까 키만큽니까 키만작습니까 키도작습니까 재미있었고 이때 이상룡씨가 재빨리 저는 키만작습니다했다.☆☆ 드라마엔 사랑이 주재료지만 그 바탕엔 돈이 있고 돈이 사람의 성격을 결정한다. 내가 깨달은건 세상에 네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돈도 많은 사람 돈만 많은 사람 돈만 없는 사람 돈도 없는 사람 드라마엔 두종류의 사람이 주로 등장한다 돈만 많은 사람 돈만 없는 사람 그래야 재미있다.♡♡ 뉴스나 신문에선 재벌이 돈없는 사람에게 횡포를 부린다. 맞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어느 책에서 읽었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무시하는 것보다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 무시하는게 더 심하다고 읽고 한참이 지난후에야 그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는다.☆☆ 방송에선 사회적 약자로 주택단지 경비원을 꼽는다. 폭행에 자살까지한다. 막상 내가해보니 성질 더러운 주민도 있지만 미안할 정도로 잘해주시는 주민도 많다. 또 가끔씩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분들도 있다.그 경비원도 그런 혜택 받았을거다. 아파트단지 빵집에서 몇년간 일했다 반말하고 막대하는 그룹이 하나 있다. 경비원 아저씨들 빵 하나 사면서 거드름 엄청피운다.♡♡ 우리는 역사를 이야기할때 왕이나 장군 같은 사람들만 이야기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포졸 한명에게도 찍소리 못하는 민초들이었다. 지금도 검사가 권력자라지만 TV에서나 볼까 경찰이 가장 가까운 포졸 같은 권력자다. 빵사러 온 경찰은 모두 깍듯했다. TV에서는 약자의 이미지만 보여주지 영업,알바,배달등 상대적 약자들에겐 경비는 강자다.☆☆ 나는 섞여산다는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엔 단세포만한 재산을 가진 사람부터 거인만한 재산을 가진 사람까지 살지만 끼리끼리 모여살아 우린 자기가 속한 세계가 다라고 생각하며 사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언젠가 망한다. 언제 망할까 빈부격차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지니계수 0.5을 넘으면 제국은 약속이나 한듯 붕괴된다. 아무리 훌륭하고 돈이 많은 나라도 부패하면 망한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관동대지진때 조선인 학살도 알고보면 원인은 일자리였다. 외국인 노동지보다 북녘동포들을 더 차별하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장애인의무고용제처럼 탈북민의무고용제도 통일을 대비해 고려해볼 사안이다. 이탈리아가 G7에서 4등인 이유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역문화의 차이가 정치적인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은 것이다. 통일을 원한다면 1971년 대선에서 시작된 남한내의 지역차별부터 시정되어야한다.☆☆ 자본주의의 기본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각계각층이 골고루 나누어 갖는 부의 형성 통일이 목전에 와 있는 이때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합격한 50명의 노동자계층부터 탈락한 20명까지의 노동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대기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회사지 오너의 노력만으로 만든 회사가 아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구호 아래 법까지 고쳐가면서 국민이 키운 회사인데 병역면제 자사골프장건설,초호화분묘,부동산투기,골목상권잠식,전문경영인이 아닌 아들에게 경영권을 세습하는건 지니계수 0.5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골목상권이 위축되고 일자리의 99%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이 설자리를 잃어간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구어가는 현재진행형의 시스템이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건실하게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가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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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이상향에 살기를 꿈꾸며 그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다. 즉 ‘유토피아’(원래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데, 동시에 이 말은 '좋은(eu-)', '장소'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지니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하지만 사회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회과 형성될때가 있다. ‘공산주의’가 그 예인데. ‘공산주의’란 사유재산제를 철폐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재산을 공동소유하는 사회제도를 의미 하는 것으로 칼 막스와 엥겔스와 같은 학자들이 주장한 공산주의는 정립된 이론만 들으면 모든 만민이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사는 이상주의 사회(유토피아)로써 함께 생산하고 함께 분배하고 함께 소유하는 공산주의 사회이지만 현실은 역사속에서 소련, 동유럽, 중공, 북한과 같이 공산주의를 표방한 나라들이 몸소 몰락(생산, 분배, 소유하는 주체가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공산주의가 실패한 사상임을 입증하였다. 이처럼 이론과는 다르게 사회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회는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역 유토피아, 즉 디스토피아인가? 에 대해 토론 하는것도 재미는 있겟지만 궁극적으로 미래를 진지하게 논하려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쌍방의 시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없는가’ 이 책에서 1,2부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자본주의에 대해 깊은 이해가 부족한 독자(물론 필자도 이에 속한다.)들은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좀더 알기쉽도록 풀어 쓰던가, 쉽게 말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그러나 저자가 3부에서 말한 디지털 국가에 관한 이야기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 넘어가는 그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독자로써 무척이나 흥미로운 챕터였다. 인터넷의 시작부터, 그 인터넷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 영향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계선에서 살고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 넘어온 것 에 대해 그저 편해진 문명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부작용은 없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기술적 변화 자체가 전체 학문적 패러다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데 이 충격을 학문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흡수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보면, 디지털 혁명으로 표현되는 현대는 매우 난해한 상황이라 할수있다. 이 같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기술 압박 요인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데, 우리는 이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나 나아갈 방향을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단점을 뽑자면 책의구성이나 설명... 즉 자본주의와 기타 현실시대의 상황에 관해서 여러 가지 분석이나 해석들이 나오는데. 568 페이지라는 얇지않은 책이지만 책 내용은 여러 가지 이론, 역사, 인물, 사상 등이 함축되어있어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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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소감에 조금 추가한다면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진화심리학과 수메르신들의 고향시리즈중 3편 '신들의 전쟁 인간들의 전쟁' 이렇게 4권을 읽어야 기본적인 각성을 한 후 패러다임의 문제를 조금더 객관적인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만 더한다면 '북한의 자연생태계'까지 읽어도 좋지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경제인께서 그러셨다 지구라는 정원을 가장 많이 더럽히는 해충은 인간이다. 김운회교수님은 나에겐 롤모델 역사학의 은인 나의 정신적 스승이시다. 그리고 이 책도 나에게 직접 추천해주셔서 솔직히 읽을 책이 많았지만 '에라 모르겠다'하고 무작정 샀다. 빨리 읽고 싶어서 조회하던중 '고조선은 가짜다'란 책이 보이길래 나중을 기약했다. 이순신의 장부가 태어나 나라를 위해 쓰일진대 만일...... 물러나 밭가는 농부가 되어도 족하니라 이건 김운회교수님의 생각이시고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사람 장량뿐이었다. 그가 오늘의 중국을 만든 장본인이라 난 생각한다. 마음을 비우고 내부단합을 유도한 모든 학문을 수렴한 거인. 이런 인물이 어느 나라보다 먼저 있었기에 그들은 주변민족을 흡수해 오늘의 중국이 만들어지게한 원동력을 제공한건 아닐까 그들은 원래 화남성과섬서성에 있던 조그만 민족에 불과했다 러시아가 모스크바인근에 있던 슬라브민족의 조그마했던 국가였던 것처럼... 예전에 태백친구집에 놀러갔다 본 만화중 크리스털맨이란 인물이 등장하는 만화가 있었다. 어느 일반사회에서 직장일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그가 나중엔 우주에서 활약하던 우주선의 선장이란걸 알게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적군중 크리스탈맨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떤 무기를 써도 죽지않는 사람 하지만 그 선장은 그에게 구식 권총을 쏘았고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미래의 패러다임 어려워보여도 혹시 단순한 논리가 적용되는건 아닐까 인간의 역사란 탈출구가 없어보이는 막다른 계곡에서 홀연히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조개구이집이 판을 치다 사그라들더니 일정수만 남았다 패스트푸드가 난리를 치더니 일정수만 남고 사라져버렸다 어느것이든 확불어났다 적절한 수준까지 떨어진후 기존업소들에 흡수되는 과정을 겪는다. 미래지향적 패러다임 즉 반영구적인 패러다임도 어쩌면 간단할 수도 있지않을까
페이지164,165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책도 하나같이 미인=착한 사람 부자=좋은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게 만든다 인간사회를 더욱 불확실하게 그리고 더 큰 불행으로 몰고가는건 아닐까 우등생은 모범생이라는 등식도 내가 학교다닐때도 나쁜짓하는 친구들도 공부만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반장을 시키는것은 물론 잘못해도 벌을 안주신다 - 선생님들이 경제학은 말 그대로 경제제민의 학문이라는 교수님의 말씀 세상에 미인은 극소수입니다. 우리는 미인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농민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생필품들을 생산하는 많은 노동자들과 이들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건실한 자본가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 짝짝찍 맞는말씀 많이 바쁘신가보다 요즘은 내가 보내드린 글이 열리질 않는다 그래서 www.ebiz114.net/에 다시 쓴다. 예전에 나의 역사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대쥬신을 찾아서" 두 번 읽고 그 속에 나온 추천도서 모두 사서 틈나는대로 읽어 2년만에 완독했다. 나의 역사관 확립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릴때부터 역사책만 읽었다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한국사이야기부터 료마가간다까지... 그리고 대쥬신을 읽었다.
이 속에 물과 다이아몬드이론 갑자기 머리가 확깨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우리주변에 전통시장이 아직 있다는건 아직도 우리에겐 과거의 유산에 매여있다는뜻은 아닐까 아무리 디지털이 확장되어가는 시대라지만 물이 꼭 필요하듯 원시시대부터 쌓여오던 지식의 축적들 700만년전 콩고의 보노보원숭이에서 분화되어 인류로 거듭났듯 ... 뉴튼이 그랬다 우리가 멀리볼수 있는건 거인의 어깨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김운회교수님이 이 책에서 그러신다 모든 창조는 과거의 지식이 고농도로 농축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 205페이지에선 남북문제의 정확한 해법을 479페이지에선 재물이란 어떤것이고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지를.... 474~476에서는 공자 제갈량이전 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동양사상의 원류였던 관자의 사상체계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셨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 있고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다고해도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책은 저자가 경제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깊고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면 감히 쓸 엄두를 낼 수 없는 저서이다.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과거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추천해주셔서 '중국과 세계경제'란 중고서점에서 산 책과 동시에 읽으면서 "와 나같은 사람이 사상가들의 책도 다 읽고 별일 다보겠네 했는데 덕분에 수준이 조금 높아졌나보다. 하하하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성공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오래된 독자가 선생님께
여름은 독서의 계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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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말을 흔하게 보고, 듣는다. "역사를 다시 썼다." "실수를 바로 잡았다." "과거를 고쳐 썼다." 식의 전환된 인식을 갖고 쓰거나, 인식의 전환을 꾀하는 일들을 목격하는 것이다. '전환된 인식'이나 '인식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행동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최근 조용히 세상을 달구고 있는 '촛불 시위'다.
그건 그렇다 하고, 또 다시 오랜만에 일 주일 내내 같은 책을 들고 다니게 되고 말았다. 그 이유? 이유는, 나 스스로가 게을리 굴기도 했지만, 너무 읽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 그건, 내가 자본주의를 '거의', 어쩌면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관심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내게 그저 그정도의 존재였다.
그래서, 이 책 <왜 자본주의는 고쳐쓸 수 없는가>의 가장 큰 의의라고 느끼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것 : "자본주의는 그저 그정도의 것이다." 고백하건데, 이 책은 내게 무척 버거웠다. 이 '버거웠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만 말하자면 하나는 '생소하고 복잡한 내용'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소하고 복잡했다'는 말은 좀 더 풀어 말하면, 자본주의사회라고 불리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바다의 고기가 바다를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가 공기 중의 산소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굳이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했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 생각해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도의 말이 되겠다. 이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내가 무관심한 주제였고, 무지한 상태로 책을 펼쳤다는 것 역시 예의 없는 행동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라 느껴진 데는 단순히 생소하고 낯설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조금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이 책이 지니는 가치 혹은 의의를 이야기해야겠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뒤에 '이념'이라는 말을 붙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본 '자본주의'의 특성상 '이념'이 될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기에 빼버렸다.
이 책의 최대 가치는 다른 곳이 아니라 '시도' 그 자체에 있다. 좁게는 북한과 우리나라, 시야를 넓혀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책이기에 그 '도전'이 인상적인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제법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밀어낸다거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고 하지는 않는다. 그 궁극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공멸'할 게 뻔한 수단을 쓰는 것은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세력, 혹은 패권을 쥐고 있는 국가에 의해 오랫동안 세계는 휘둘려 왔다. 그리고 그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패러다임' 덕분이다.
한 시대가 향하는 방향, 혹은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패러다임은 거의 항상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더러워서' 혹은 '무서워서' 피해다니는 동안 세계는 그들만의 잔치판이 되어버렸다. 그들만의 잔치를 끝내기 위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잔치를 열기 위해, 혹은 현재의 불균형을 뒤짚거나, 바로 잡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 시대를 지배할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소설, 혹은 만화에는 그 이야기만이 갖는 '세계관'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패러다임'도 그런 세계관의 일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세계관은 세계를 지배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관에 지배당하는 세계란 뭔가 일그러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문에 이런 말이 있는 걸 발견했을 때 사실 한참 고개를 갸웃거렸다.
14쪽 : 한국은 세계 여러 후진국들 가운데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할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사실상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 인데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제대로 되었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고, 홍콩은 이미 중국의 일부이며, 타이완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일부로 보고 있으니 큰 의미에서 중화 경제권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이게 무슨 말일까? 하고 싶은 말의 의도는 알겠는데. 우리나라가 선진국인 것과 싱가포르가 도시국가인 것, 홍콩이나 타이완이 중화 경제권의 일부인 게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것과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일까? 애초에 '선진국'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거지?
'기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책을 읽는 데 그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싶다는 데 기준을 두었다면 이 책은 그 의도에 부적합할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미래 예측을 기대했대도 실망하게 될 것이다. 내 기준은 이랬다. '지식인'이라 분류되는 이가 말하는 '자본주의'가 뭔지 일단 들어나 보자. 답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미래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을 바라지도 않았으며,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된다거나, 바꾸게 되길 기대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고개의 갸웃거림을 멈출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결코 '우리들'을 위해 쓰인 것은 아닌 것 같다. 특별히 '이렇다 혹은 저렇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거기다 번번이 저자가 쓰는 말인 "어려운 말, 어려운 표현"을 굳이 가져다 쓰는 걸 보면서 "누구를 위해 쓴 책인가?" 하는 의문을 걷어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어려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기는 쉽다. 하지만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그러셨어요?" 한 번쯤 묻고 싶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점령당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언급하며, 그러한 사상들이 세계의 패러다임이 되지 못한 이유들을 이야기한다. "정치에는 혁명이 있지만 경제에는 혁명이 없다"는 말로 자본주의가 패러다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와 '사회주의'가 오답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같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대부격이던 소련이 붕괴됨으로써 세상은 '사회주의 실패'를 말하지만 그건 소련의 지도자와 내부의 실패이자, 소련만의 실패일 뿐 일반화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나라, 독재가 만연한 세상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했다고 해서 민주주의 자체가 실패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사상'이라는 것은 그 형태가 불분명한 것이다. 그렇기에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것이 실패했고 저것이 성공했다고 '항상'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유연했기 때문'에 패러다임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회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가 좀 더 유연한 사람들에 의해 진전되었다면 과연 자본주의가 세계의 패러다임으로 이토록 오래 군림할 수 있었을까?
특별히 배웠다거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자본주의는 쓰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의 문제인 것 같다. 저자가 몇 번이나 되풀이 한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이란 말은 어떤 단서인지도 모른다. "왜 자본주의를 고쳐쓸 수 없는"지를 암시하는 단서 말이다. 더는 쉽게 쓸 수 없을만큼 "아무것도 아니거"나 "전부인 것", 그것이 자본주의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은 자본주의는 한 번도 고정된 형상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사회주의 같았을 수도 있고, 공산주의 같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그 모든 흐름이 소용돌이치며 유입되고 배출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유연함의 부작용이 바로 지킬박자와 하이드씨로 대표되는 '이중성'일 것이다. 유연하다는 건 어디에나 적응할 수 있다는 강점일 수 있지만, 어떤 해석이든 가능하다는 '승자의 논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유연하면서, 가장 악용되기 쉬운, 악용되면 그보다 나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가 아닐까. 인간이 무리를 짓고,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아마 '빈익빈 부익부'가 아닐까 싶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하고, 또 더 가질 수 있지만 갖지 못한 자는 점점 더 박탈(물질적이든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감만 늘어갈 뿐 빈자와 부자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이다. 많은 법률들로 이러한 현상을 조정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그 법들조차 자본주의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한계는 분명하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도 함께 읽고 있었다.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내전에서 경험한 사상의 충돌과, 기만, 과정과 결말까지를 담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카탈로니아 찬가다. 하지만 이 책에 있는 건 '서사'가 아니라 '분석'이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보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고 분명하게 울려퍼지는 세상,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가 정당화 될 수 있는 현장, 혼란스럽다는 것은 그런 가능성들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표현인 거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현상을 직접 목격해야 비로소 '봤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올바로 인식'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대답은 "결국 해석의 문제에 불과"할 것이란 말 뿐이리라. 전부를 파악할 수 없다면(인간에게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사실 상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결론 내릴 수 없을테니 말이다. 수십, 수백 년 후에 그들은 수십 수백 년 전의 우리들을 보며 무지하고 어리석었다고 말할 지도 모르는데, 그것 참 우스운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 과거의 제도와 시대상을 보며 웃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으니 우습지 않을 수 있을까.
무모한 혁명에 뛰어든 사람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던 노력들을 우리는 자주 비웃는다. 그들을 향해 '어리석다'는 말을 내뱉는다. 그 시대를 살지 않고 그 시대의 패러다임을 논하는 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자기만족적 저술에 그칠 것만 같다. 솔직히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결론이 내겐 너무나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서둘러 읽은 것도 아니다.(하지만 안다. 이 책을 일주일에 걸쳐 읽어놓고 아느니 마느니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하지만 어떤 평범한 독자가 이런 책을 몇 달간이나 자료를 비교하고 공부하고 기억해가며 읽고 있겠는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의의는 무엇인가?) 그렇다고 공부하는 자들처럼 하나하나 분석하며 읽지는 않았고, 그렇게 읽어서 될 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름 친근히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로 애니메이션의 사례까지 가져다 세계관의 하나를 쉽게 설명함으로써 대중성을 높이려 했던 것 같지만 그것마저 실패한 것 같다. 왜 굳이 "어려운 말"로 하는 설명을 되풀이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마르크스로 시작한 자본주의 패러다임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마케팅 패러다임으로 축소된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다. 마케팅이 세계를 지배할 만큼 거대한 패러다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케팅이 많은 것의 결과를 좌우하지만 그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세계수준의 패러다임이 "경제"에 그것도 "마케팅"에 국한 된 건 처음 시작에서 후퇴해도 지나치게 후퇴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거다.
'격변'이라는 말을 꼬리표로 달고 있으면서도 참 지겨울 만큼 변화가 없는 시대가 바로 현대가 아닌가 싶다. 일부에서는 '혁명'적 경제개혁을 요구하지만 경제엔 정말 '혁명'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일상어처럼 쓰게 된 것 같다. 도대체 패러다임이 무엇이기에?
국어사전은 패러다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
이 뜻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물고기가 바다를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이 패러다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란 것이다. 패러다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현재의 사람들에 의해 '현재의 패러다임'이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이 '과거의 패러다임'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 아닐까. 결국 현재의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건 목소리 큰 사람들이 질러대는 메아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생각을 패러다임으로 만들고 싶으면 내 목소리를 키우면 될 일일 뿐인게 아닐까? 전문가가 본다면 이런 생각을 '어리석고' '짧은', 어쩌면 '미숙한' 생각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잡해 보이는 것 가운데 정말 복잡한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 책은 하나의 시도의 시작에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본문 500쪽에 걸쳐 늘어놓은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는 서문이나 다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 한 번씩 언급했으니 이제부터 하나씩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며 다른 책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부디, 조금 '쉬운 말'로 설명해주기만 부탁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