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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年 5月 <文章> 2集에 發表한 金東仁의 短篇小說. 西洋 文明의 겉물을 핥은 또 그 겉물을 연실 이는 핥았다. 아무 속살도 모르고 但只 겉만 흉내 내면서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이렇게 나날이 向上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속 알맹이는 그 몇 해 前 '베개를 내려오라'면 내려오던 그 時節에서 한 걸음도 進展된 바 없었다. 朝鮮 新文化는 大槪 東京 留學生의 힘으로 建設되었고 文化의 第一 過程은 自由 戀愛였다. 연실이가 將次 朝鮮에 돌아가면 建設하려던 朝鮮 新文學은 연실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직 東京 留學할 동안에 싹이 트기 始作하였다. 李古周라는 靑年 文學徒가 彗星과 같이 나타났다. 이 靑年 文學徒가 文學이라는 武器를 利用하여 처음 부르짖은 것이 自由戀愛였다 이 現象은 연실이로 하여금 더욱더 戀愛와 文學은 不可分의 것이라는 信念을 굳게 하였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